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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53

[꽁트] 사랑은 아프다 사진출처: www.flickr.com/photos/micti2007 사랑은 아프다 아름다웠다, 그 노래는. 박자나 음정 따위 가식적 장식에 불과할 뿐, 투박하고 거친 그 음악은 정녕 아름다웠다. 귀로 듣는 노래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어야 하는 노래, 그랬다. 그랬기에 그 노래는 정녕 아름다웠다. 그 노래를 그토록 애잔하게 부른 그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는 그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잔인했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 날은 비극적이면서 동시에 희극적이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나를 떠났고 나는 그녀와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녀는 막 비행기를 탔다고 휴대폰에 메일을 남겼다. 퇴근 후 나는 그녀에게 나오라고 한 카페의 화장실에서 똥을 누면서 그녀가 남긴 메일을 읽고 말았으니, 운치 없고.. 2008. 4. 20.
[꽁트] 두더지 모텔 403호, 고호의 그림 두더지 모텔 403호, 고호의 그림 그녀가 다가와 “진한 커피 한잔해요.”라고 말했을 때, 그는 이것 봐라, 하고 약간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진한 커피 한잔해요.’ 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기 때문이었다. 약간은 촌스러운 표현이긴 하지만 여자를 꼬실 때 언제나 ‘진한 커피 한잔해요.’를 낚시 바늘의 지렁이 미끼처럼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진한 커피 한잔해요.’ 의 의미는 미끼가 아니라 아주 순진하고 애교있는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진한 커피 한잔해요.’ 가 아니라 다른 표현으로 다가왔더라면 그는 그녀의 제의를 거절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부모만큼이나 애지중지 사용하는 ‘진한 커피 한잔해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와의 예사롭지 않는 관계를 상.. 2008. 4. 18.
[꽁트] 우아한 인생 우아한 인생 지하철을 타러 간다. 지하철을 타지 않으려면 택시나 버스를 타야하고 버스를 타지 않으려면 걸어야 한다. 자주 걷지만 신고 있는 구두 때문에 걸을 수가 없다. 굽이 떨어진 건 오늘 오후다. 오늘 오후에는 커피를 마실 시간도 없이 바쁘다. 커피가 무척이나 마시고 싶다. 좋다는 원두커피는 마다하고 커피믹서를 즐겨 마신다. 고객들이 몰려온다. 고객들이 뒤섞인다. 그런 혼란에도 일정한 질서는 있다. 번호표를 한 장씩 들고 있다. 번호표는 무언의 약속이다. 소파에 앉아도 있다. 고객들은 돈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돈을 인출한다. 돈을 예금한다. 돈을 이체한다. 통장을 보며 투덜거린다. 통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현금지급기에도 고객들이 줄서있다. 카드를 현금지급기의 투입구에 넣고 입출금의 액수 버튼을.. 2008. 4. 16.
[꽁트] 어떤 탈옥 어떤 탈옥 “장미의 이름. 장미의 이름은 무엇일까? 이렇게 이야기하자면 [장미]가 아닌가 하고 피식 비웃음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장미는 장미로만 불려야 할까. 그렇다면 장미의 이름은 장미 외엔 여지가 없는 것일까. ‘장미의 이름은 장미’ 라는 말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첫째는, [장미]라고 불리는 나무의 나무격의 무시가 그것이며 둘째는, 언어란 인간 중심적이며 따라서 세계는 인간 중심적 해석의 산물이며 언어는 사물의 본질을 기만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런 이유에서 장미는 불쾌할지도 모를 것이다. 왜 자신이 장미로 불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자신의 존재가 언어에 묶여 규정 당하는 것에 저항하고자 할 것이다. 인간은 언어라는 그물로 대상을 구속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가 없.. 2008.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