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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3 03:12

왜 일본에는 돔 야구장이 많을까?






이미지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41567548&ltype=1&nid=003&sid=0103&page=2


왜 일본에는 돔 야구장이 많을까?


최근 우리나라에 돔(Dome) 야구장 건립이 추진 되고 있다. 몇일 전 이승엽 선수의 도쿄돔 천장에 맞는 홈런성 타구로 돔 야구장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돔 야구장은 천장이 없는 일반적인 야구장에 비해 장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야구인들의 숙원 사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야 돔 야구장을 건립하는 우리이고 보면 이미 돔 야구장을 여러개 가지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현실이 부럽다. 물론 이 나라들은 프로야구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오랫동안 야구와 관련된 인프라가 축척된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 그 중에 하나가 돔 야구장일 것이다. 필요가 기발한 창조물을 낳은 셈이다. 아니 경제적인 이익이 낳은 작품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수의 야구팬들을 수용할 수 있는 돔 야구장이야말로 야구를 통한 수익 창출의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한다.


1988년에 건립된 일본 도쿄 돔을 예로 들어보면, 단순히 야구장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문화 공간으로 여러가지 스포츠 레저, 관광, 예술, 쇼핑 등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것은 야구와 다른 산업들이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 산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돔 야구장 하나 없는 우리의 스포츠 산업과 비교하는 것은 넌센스같기도 하다. 또한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치로의 연봉이 우리나라 야구 선수들의 연봉을 다 합친 것보다도 많다고 하니 말이다. 
 

사실 이 포스트를 작성하면서 단순히 돔 야구장 건립 계획에 대해 적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따라서 이 포스트는 우리나라에 돔 야구장을 짓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아니다. 서두를 돔 야구장 건립으로 시작한 것은 '우리는 참 많이도 뒤쳐져 있구나' 하는 생각의 표현일 뿐이다.

도쿄돔


그렇다면 왜 이 글을 쓰고 있는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왜 일본에는 돔 야구장이 많을까?' 이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처럼 보인다, 지었으니까 많은 것이다. 바로 그게 정답니다. '그렇다면 왜 지었을까?' 라고 물으면 질문이 조금 질문 다워진다. 그래도 좀 어리석은 질문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야구팬에 대한 고려라거나 도시 미관이나 환경을 고려했다고 한다면 그건 좀 오버같다. 위에서도 이미 말했지만 최대한의 수익 창출이 돔 야구장 건립의 가장 주요한 동기가 아닐까 한다. 사람들이 몰려 들 수 밖에 없는 세련되고 멋진 옷 가게나 식당을 하나 차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니면 유명 블로그가 블로그를 세련되고 멋지게 블로그를 디자인해 수익을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돈 이야기하면 천박하게 여길지는 모르겠지만 돈이란 그다지 천박한 것은 아니다. 그 돈을 천박하게 쓰는 인간이 문제인 것이지.
 


얼마 전에 롯데와 SK전에서 롯데팬 한사람이 경기장에 난입 해서 소동을 일으켰다. 롯데팬의 한 사람으로서 이 소동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과거 야구장에서 보았던 달갑지 않은 추억들이 떠올랐다. 외야의 선수들에게 병을 던지고 쓰레기를 투척하고 심지어는 관중석에서 불을 피워 쓰레기를 태우는 소동들이었다. 승부에 불만을 품고 상대 선수들의 버스를 가로막고 욕설을 하고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도 목격했다. 야구 응원이랍시고 술에 취해 고성방가를 즐기는 것도 숱하게 목격했다.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스포츠 경기를 교육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끔찍할 정도이다. 아이와 함께 야구장을 찾는 것은 그야말로 끔찍하다. 그런데 왜 우리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야구장에 데리고 가서 이런 장면들을 대수롭지 않게 노출시킨다. 스포츠란 이름으로 말이다. 열성팬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정말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른다.
    


WBC에서는 일본의  이치로가 (정확치는 않지만) ' 한국이 일본을 이길려면 30년은 더 걸린다' 는 식의 도발을 서슴치 않았고 이후로도 우리를 자극하는 말을 가래 뱉듯이 토해 내었다. 상대에 대해 겸손하지 못하고 막말을 퍼붓는 이치로를 보면서 화가 나고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정치인들의 한국에 대한 망언을 많이 접한 우리로서는 프로 야구 하나에는 유명할지 언정 큰 권력이나 무력을 갖추지도 못한 프로야구 선수 하나가 한국 프로야구, 야구선수, 야구팬, 심지어 더 나아가 한국민 전체를 상대로 그런 막말을 하는 것은 의외였다. 이치로는 솔직히 '나쁜놈' 이다. 절대로 그런 망언을 해서는 안된다. 권투 선수들끼리의 개인적인 신경전이나 눈싸움과는 격이 다른 것이다. 일개 개인이 한 국가의 자존심을 뭉갠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그런데 분노와 자존심을 누그러뜨리고 이치로의 저 자신감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올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즉, 이치로의 망언을 비난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작은 원숭이 같은 이치로라는 선수가 왜 그토록 자신감이 있는지 좀 더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도 봐야 하는 것이다. 그 서슴치 않는 도발의 배경에 일본 야구의 저변에 흐르는 인프라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런 일본을 능가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36년 동안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지만 이제 우리가 일본을 압도하고 능가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어떤 의지를 품어야 하지 않을까? 단순한 일회적인 감정이 아닌, 한 풀이 식이 아닌......우리가 일본의 36년의 지배를 받았지만 아직도 일본보다 뒤처져있다는 것이 정말이지 가슴이 아프다. 이치로 같은 저런 망언이 나올 수 있도록 얕잡아 본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일본이 돔야구장을 세우고 야구 인프라를 확충하는 동안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자문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야구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돔 야구장이라는 가시적인 현상을 놓고 보니 우리가 얼마나 뒤뒤처져 있는가 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승엽 선수가 도쿄돔 구장의 천장에 맞는 타구를 치지 않았다면 나를 이런 생각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야구장 난입이라는 가시적인 현상을 목격하면서 우리의 야구 문화가 선진국 다운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미국이나 일본이라고 해서 야구장 소동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개인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적인 풍토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문화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복합 스포츠 단지로써의 야구 경기장, 야구와 관련된 관광 문화시설, 쇼핑시설, 여행등  시너지 효과라는 일반화된 현상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의 돔 야구장들을 보면서 그저 부러움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과 자질을 살리는 각오를 새롭게 하는 것이 어떤가? 물질적으로는 풍족하나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는 일본의 정치인들, 스포츠인들, 예술인들의 망언을 접하면서 그저 분노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본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앞서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도쿄돔


오사카 교세라 돔


나고야 돔


세이부 돔


세이부 돔 내부


후쿠오카  야후 돔



삿포로 돔


삿포로 돔



*위의 미이지들은 위키피디아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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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9 17:45

후쿠오카 자유여행(1.선상에서)

 


후쿠오카 자유여행


2006년 6월입니다. 정확히는 2006년 6월 9-12일입니다.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그 당시에는 블로그도 웹 2.0에 대해서도 몰랐었지요. 그 당시의 일본여행은 블로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다음 블로그는 좀 일찍 시작하긴 했지만 흐지부지한 상태였고 (좀 뒤의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웹 2.0에 기반한 블로그의 기능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게 좀 아쉽긴 합니다. 안타깝게도 블로그에 올릴 만한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좀 빨리 알았다면 블로그에 최적화된 사진들을 아마도 셀 수 없이 많이 찍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사골 고우 듯이 재탕 삼탕 써먹었을 것일테니가 말입니다. 철지나긴 했지만 이제야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삶의 한 작은 흔적으로 남겨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노동에 대해 광고 클릭까지 해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부산 여객 터미널에서


어찌된 일인지 부산 국제 여객터미널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여행의 이미지를 실을 수 있는 여객터미널의 사진이 너무 필요한데 말이죠. 가족이 들어간 사진은 몇 장 있긴 한데 블로그에 올릴 만한 그럴 듯한 사진들이 별로 없네요. 까멜리아로  승선하러 가는 중에 쓸데없이 찍은 사진입니다. 정작 까멜리아호의 사진은 없습니다. 


컴속의 나 http://conteworld.tistory.com

까멜리아 호로 가는 도중에 찰칵. 사진에 보이는 배는 까멜리아호가 아님




*일본으로 가는 까멜리아 호 선상에서


당시 후쿠오카 자유여행은 우연하게 계획되었습니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부산, 후쿠오카간 까멜리아 특등석 무료 승선의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게는 일생일대 다시 올 수 없는 원스 인어 라이프 타임한 행운이었지만 그래도 가기가 마뜩찮았습니다. 그래도 큰 마음 먹고 자유여행을 떠났던 거죠.  


                                      까멜리아 특등실 내부 사진들

컴속의 나 http://conteworld.tistory.com

까멜리아 특등실 내부

컴속의 나 http://conteworld.tistory.com

까멜리아 특등실 내부

컴속의 나 http://conteworld.tistory.com

멀리 영도대교가 보이네요

컴속의 나 http://conteworld.tistory.com

컴속의 나 http://conteworld.tistory.com

컴속의 나 http://conteworl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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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실 밖의 테라스

컴속의 나 http://conteworld.tistory.com

테라스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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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이 독일 월드컵 개막일 맞는가요?

컴속의 나 http://conteworl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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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월드컵 개막식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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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하고 테라스에서 찍은 바다


구석구석 좀 자세하게 찍어두었어야 하는 건데 아쉽습니다. 사실 특등실이라 해서 잔뜩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다지 고급스럽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고급 모텔 정도라고 할까요......단지 배의 앞쪽에 위치해 있어 전망이 좋다는 것뿐.


정확치 않지만 제 기억으로는 출항하기까지 배에서 서너 시간을 대기해 있었던 걸로 생각됩니다. 대기 시간 동안 저녁밥도 먹고 바다 구경, 배 실내 구경을 했습니다. 다소 의아한 것은 아무리 찾아봐도 갑판에서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컴속의 나 http://conteworl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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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후쿠오카 항에 도착해서 시작되는 일본에서의 첫째날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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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1 14:10

백댄서즈(バックダンサ-ズ, 2006)




이미지 출처는 여기입니다.



백댄서즈(バックダンサ-ズ, 2006)


젊음은 방황의 시기다. 수긍할 수 없는 기성세대에 대한 실망이나 분노에서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지만 조여 오는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사회의 구속에 반항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질풍노도의 시기이고, 주변인의 시기이며, 이유없는 반항기라 낙인 아닌 낙인이 찍히는 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백지에 가까운 시기이기도 하며 순수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상에 목말라하며 현실의 속됨에 야유를 보낸다. 아무리 불완전하고 비현실적이며 하찮은 사색의 결과에서 싹텄다고 하더라도 이상이야 말로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러한 현실과 기성세대, 다른 무엇들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배출구 없는 막막함으로 다가올 때 그 막막함은 폭력이나 환각이나 환상, 그리고 예술이 되곤 한다. 마약이나 섹스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수단이 되고, 혁명안 파괴가 분노를 잠재우는 도구가 된다. 또한 예술을 통해 기성의 가치관에서 이탈하려는 노력을 한다. 예술은 환각과 결합하는 경우가 흔하다.


백댄서즈는 바로 이런 젊음이들의 영화이다(사실은 이런 젊음을 가장한 영화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상업주의의 스타 탄생의 경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대한 상업주의와 자본주의에 비록 달걀을 던지는 격이지만 그런대로 의미있는 몸부림처럼 보인다. 상업주의라는 바위가 워낙 견고하다 보니 이 정도도 가상하지 않을까?). 이런 젊음만이 아니다. 또한 나이를 초월해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늙은 젊은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느 사회에서나 기성세대의 대오에서 낙오한 늙은 젊은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젊은 백댄서들에게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미지 출처는 여기입니다.



이 애 젊은이들과 늙은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영화의 제목이 <백댄서즈(Backdancers)>이므로 이 영화는 백댄서들을 구성하는 젊은 멤버들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록밴드를 구성하는 늙은 멤버들 또한 한물 간(?) 밴드라는 의미에서 영화의 제목과 상응할 수 있다고 보여 진다. 그들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교류하고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고 서로 이해하는 것은 바로 예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며, 또한 더 나아가 백(back) 이라는 ‘중심에서 벗어나거나’ ‘한물 간’ 존재라는 사실이다. 누구로부터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특히 백대서들의 멤버들이 춤이라는 예술을 선택한 것은 자유로움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의지에 의한 삶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따라서 이런저런 이유로 백댄서인 자신들의 존재 가치가 위축되고 상실되는 것은 그들의 자유로운 삶과도 밀접하게 관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그들의 자유라는 것이 도덕이나 선, 악 등의 사회 관습적인 가치판단에서 볼 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라 할 수 있을 지라도 그것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한 개인이 자유롭고 싶다는 그 사실 자체는 개인이 처한 상황의 맥락이 좀 더 더해진다면 그 자유의 추구가 더욱 구체화 될 것이다. 그들이 가출을 하면서, 호스티스 생활을 청산하면서, 사회로부터 받는 개인적인 수치심에서 모델을 그만두면서 선택한 춤을 더 이상 추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의 선택과는 관계없는 부자유한 삶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현실적으로 판단해 볼 때, 그들에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기를 누리고,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그들의 사적인 자유에도 제약이 올 것은 분명하니까 말이다. 이것은 늙은 젊은이들이 젊은 시절 인기의 절정에서 음악을 그만 둔 사연을 추측해 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자유로서의 예술(춤)이 너무 상업주의와 결합되는 것도 자유의 성격을 회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들이 진정으로 좋아서, 바래서 하는 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그것은 영화를 보는 감동이나 의미의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 이 영화의 인상을 두루뭉술하게 적어 보았다. 이 글이 너무 자의적인 생각에 근거해 적었다거나 찬사 일변도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이나 상업주의 영화라고 해도 맞는 말이다. 또한 작품성 자체에도 야박한 점수를 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회의 변두리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살아가야하는 삶보다, 비록 백댄서이기는 하나 자신이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적어도 이 영화가 우리의 일상과 우리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미덕 정도는 있지 않을까? 특히 우리의 교육과 우리의 부모들에게도 의미있는 교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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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3 18:16

야끼 만두, 그 정체성을 아십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만두(Mandu)라는 용어는 어원상으로는 중국의 만토우(Mantou)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음식으로는 우리의 만두는 만토우 보다는 바오지(baozi), 쟈오지(Jaozi) 또 쟈오지에서 유래한 교자(Gyoja:일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이름만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처럼 왜 쟈오지에서 교자로 변형된 것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우리나라에는 만두로 그 용어가 정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궁금증이 앞선다.


우리나라의 군만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만두의 기원이 중국이란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송나라 이전에는 이 만토우는 속이 비거나 속이 찬 빵을 의미했다. 그러나 송나라에 바오지(baozi:주로 찐만두)가 속이 찬 빵을 의미하면서 중국의 만토우는 점차적으로 중국어로는 속이 차지 않은 빵을 지칭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에서 만토우의 의미는 속이 차지 않는 빵을 의미한다.  즉, 만두 보다는 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래 사진 참조). 그러나 약간은 혼락스럽게도 이러한 구분이 지역에 따라서는 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들면, 상해에서는 속이 찬 빵이라 하더라도 상해 만토우라고 불리고 있다. 또한 사오롱 만토우가 다른 곳에서는 샤오롱바오라고 구분하지 않고 쓰이고 있다. 아무튼 이 만토우가 몽고와 중앙아시아에 전해져 몽고에서는 mantuu로 그리고 몽고가 지배하던 중앙아시아, 즉 투르크에는 만티(manti), 카자흐에는 만티(manty), 우즈벡에는 만토우(mantou) 로 용어가 변형되어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중앙아시아의 manti, manty, mantou는 빵(bun) 보다는 우리의 만두(dumpling)에 가깝다)




몽고의 buuz(몽고의 경우는 mantou에서 유래된 mantuu가 중국과 마찬가지로 속이없는 빵으로 정착되어 있다. 우리의 만두(중국으로 치면 baozi나 jiaozi, 일본으로 치면 교자, gyoza)에 해당되는 것은  buuz라고 할 수 있다)




몽고의 Khuushuur




그러나 여기에서 애매한 분화가 일어나는 것이 몽고에서도 mantuu의 의미가 속이 차지 않은 빵을 뜻한다는 사실이며, 우리의 만두와 거의 같은 것은 Buuz로 불린다는 사실이다. 이와는 달리 투르크, 카자흐, 페르시아 등 중앙아시아에는 속이 찬 빵을 의미하는 mantou 가 굳어져 manti, manty, mantou는 속이 찬 빵, 즉 우리의 만두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Classic white mantou(중국)



튀긴 Montou



그렇다면 mantuu가 몽고를 통해 전해질 당시에 중앙아시아처럼 속이 찬 빵(bun 보다는 dumpling)의 의미로 정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만두를 지칭할 때 manti, manty, mantou(우즈벡) 처럼 속이 찬 빵을 의미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르메니아식 manti




카자흐나 우즈벡식의 manti(우리의 찐만두와 흡사하다)




Khinkali(그루지아식 만두)



pelmeni(러시아식 만두 )



pierogi (주로 동유럽)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경우, 분명히 중국의 mantou가 직, 간접적으로 일본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와는 달리 mantou가 manju로 변형되면서 만두와는 관계없는 과자가 되었다. 같은 mantou가 우리에게는 만두로, 일본에게는 과자(manju)로 정착된 것이다. 

 
일본의 manju(중국의 mantou에서 유래되었다). mantou가 우리나라에서는 만두가 된 것 과는 달리 일본에서 과자(manju)되었다


그런데 일본에는 송나라 훨씬 이전인 동한시대에 만들어 졌다는 쟈오지(jiaozi)가 그대로  교자(Gyoja)로 어원만 변형되어 들어갔다는 것은 의문을 제기한다고 할 수있다. 왜냐하면 중국의 문화가 대체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들어가는 통례를 따른다면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지 않는 쟈오지가 왜 일본에서 교자로 등장하는 가의 문제인 것이다.



Jiaozi(만두)



Shuijiao( 물만두)





guotie (주로 북 아메리카. Peking ravioli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군만두와 같다. 일본에서는 야끼만두가 된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두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쟈오지가 일본에 들어간 것이 아주 최근의 시기이거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몽고의 100년간에 걸친 한반도 지배에 의해 mantuu가 jiaozi를 대체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둘 중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이 아니며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하다.


아무튼 우리의 만두는 용어상 중국 송나라 이전의 montou의 의미중에 속이 찬 빵을 의미(baozi, jiaozi, gyoja에 가깝다) 하며,몽고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manti, manty, mantou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montou는 manju로 전혀 이질적인 음식으로 변형되었고, jiaozi 가 그대로 들어가 gyoja로 정착한 것이다(gyoja는 칠리소스와 참기름, 마늘향이 많이 난다). 

그렇다면 야끼만두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야끼(yaki)라는 일본말, 중국에서 기원한 음식(mantou), 몽고를 통해 유래되었다는 사실! 야끼 만두가 일본 36년 지배와 몽고 100년 지배, 그리고 중화 사대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음식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만두, 참 맛있긴 한데, 또 동시에 정체성이 애매한 음식이 아닐까. 뭐 어쨌던 맛있기만 하면 될까? 

 
 
아래의 사진들은 다른 만두들의 사진입니다.

더보기




*위 글의 이미지들은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한그릇 맛있는 음식]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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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9 16:29

일본에서 부끄러운 한국인 동영상



일본말을 몰라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동영상으로는 공공질서와 관련된 문제 같습니다. 일본을 관광하는 한국인들이 늘어만 가는데 좀 더 문화적으로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일본 백 번 욕하는 거 보다 단 한 번이라도 말과 행동에서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너그럽고 여유있으며 공공질서를 지키는 모습이 바로 극일하는 자세일 것 같습니다. 
 





동영상 출처: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3137639
위 동영상의 원 출처는 티스토리 블로거 LuxCozy님 입니다(http://luxcoz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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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3 10:59

인기 있는 남성용 브라자


인기절정의 남성용 브라자(동영상 출처:Reuters.com)


남성용 브라자가 일본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서 가장 인기있는 남성용 속옷 품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남성용 속옷 착용의 장점에 대해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이러한 현상이 열띤 온라인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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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과 집시

 

일본의 전후( 2차 유럽 대전후) 처리에 대해 그 피해 당사자인 우리는 유대인들에 대한 독일의 피해 보상, 역사적 인식 등을 비교하면서 일본 정부의 비인간적이고 몰역사적인 태도에 강한 분노를 표출한다. 전후 일본의 터무니 없는 피해 보상과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 왜곡, 성노예 할머니들에 대한 인격적인 모독 등 반성은 커녕 자국의 역사를 오히려 미화하는 짓을 서슴치 않고 있다.

독일의 경우 전대미문의 유대인 대학살을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측면에서 그들 스스로도 유대인들에 대한 보상과 전범 처리, 역사인식등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인류에게 유대인 대학살은 살아있는 역사이며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독일이 근본적으로 일본의 전후 태도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니요이다. 독일 또한 일본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무엇이 독일과 일본의 태도를 다르게 했을까?

우선 하나의 실례로 유대인과 한국인(피해 당사국을 한국으로 국한)이란 차이를 들 수 있다. 유대인은 어떤 민족인가? 올해 5월 14일로 건국 60주년을 맞이한 이스라엘을 세운 민족이 아닌가? 유대인의 선조 헤브라이 인이 B.C. 15세기 경에 팔레스티나에 나라를 세운 후 분열과 박해와 추방을 당하며 전세계를 떠돌다 19세기말 시오니즘 운동이 전개되면서 다시 팔레스티나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국과 미국의 정계를 움직일 수 있었던 그들의 경제력과 시오니즘이라는 종교적인 결집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미국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의 영향력은 미국의 대 이스라엘 정책을 보면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전세계적인 유대인 리스트



Ruth Bader Ginsburg







Henry Kissinger

Jon Stewart



Steven SpielbergBarbra StreisandJon Stewart
Norman MailerMichael BloombergAlbert Einstein
Scarlett JohanssonRuth Bader GinsburgMel Brooks
Louis BrandeisHank GreenbergMilton Friedman




이에 비하면 한국은 가난한 아시아의 변방국에 불과했다. 유대인들과 비교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약소국의 현실을 안고 있었던가? 비유하자면 팔레스티나 아랍인들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과 영국이 팔레스티나 아랍인들에게 했던 처사와 일본이 우리에게 한 천후의 태도의 본질은 곧 강자의 약자에 대한 잔인한 태도 인 것이다.

독일인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피해 보상과 깊은 뉘우침은 실상은 유대인이 강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판단되며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일본이 우리에게 아직도 역사왜곡을 일삼는 비상식적인 태도는 바로 우리가 약소국이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역사적인 인식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박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유대인이 강했던 어떻던 독일은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충분한 보상과 역사적인 인식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근본적으로 일본이 전후 보상과 역사인식은 독일과는 근복적으로 다르고 양심적이라고.

 그러나 전후 보상에 대한 독일인의 양면성을 알게 된다면 독일 또한 일본의 태도와 다르지 않으며 유대인들에 대한 피해 보상은 유대인의 능력이 유발한 것이지 독일인의 근본적인 반성에서 나왔다는데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집시들에 대한 독일인들의 전후 보상으로 볼 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주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유대인과 집시에 대한 독일의 야누스적인 전후 보상과 태도는 독일의 뻔뻔스러움을 여지 없이 보여준다.

Gypsy costumes



우선 집시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유럽에서 집시에 대한 명칭의 유래는 세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이집트 인(Egyptian)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영어의 gypsy, 프랑스어의 gitan, 에스파냐어의 gitano(히타노) 등을 들 수 있다. 두번째는 중세 그리스어의 아팅가노이(이교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독일어의 치고이네르, 프랑스어의 치가느(tsiganes) 등이 그 예이다. 세번째는 15세기 보헤미아 왕이 집시에게 영내 통행권을 부여한 것에서 보헤미안(bohemian)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정작 집시 자신들은 스스로를 롬(Rom) 이나 로마(Roma)로 부른다.

이 로마들이 나치스에 의해 학살된 숫자가 50만에서 70만에 이른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아마도 600만명 이라는 상상하기 끔찍한 유대인 학살이 이러한 숫자를 가리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50~70만명이라면 실제로 상상하기 끔찍한 숫자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집시에 대한  보상은 유대인들에 대한 피해 보상에 비해서 터무니 없다. 독일의 전후 보상법은 유대인들을 중점에 두었으며 그 보상액도 유대인들에게 집중되었다. 1981년에 집시와 동성애자등을 대상으로 하는 '비유대계 피박해자 특별기금' 으로 약 1억 마르크, 우리나라 돈으로 500억원이 조성되었는데 이 액수는 1991년까지 1월까지 유대인 희생자들에게 지급된 864억 마르크에 비하면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였다. 이러한 집시에 대한 독일의 태도가 곧  전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태도와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독일의 전후 보상이나 역사인식이라는 것은 일본과 비교해도 오십보 백보에 불과한 것이다.

독일의 유대인 보상의 전례를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전후 보상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로 들먹인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독일 또한 일본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일의 태도는 집시 학살에 대한 독일의 태도가 분명하게 입증하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어느 나라던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으로, 군사력으로 강하고 보아야 한다. 



*이 글은 이전 히틀러와 집시라는 글로 소개한 글이지만 이번 이스라엘의 팔레스티나 침공을 목격하면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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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원숭이 웨이터들


일본의 식당에서 웨이터로 활동하는 원숭이들(얏- 찬과 후쿠-찬)이 참 이채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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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8 19:07

젊은 날의 초상, 하나와 앨리스

 

이미지 출처:  http://kr.n2o.yahoo.com/NBBS/1


 


하나와 앨리스




☞하나와 앨리스 영화 음악 감상하러 가기☞


‘우정’ 과 ‘사랑’ 은 젊은 날의 추억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말들입니다. 아마 젊은 날을 지탱하는 두개의 큰 기둥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과의 우정과 이래저래 알게 되는 여학생(남학생)들과의 풋풋한 사랑은 감수성 예민한 그 시기에 가슴 설레게 하는 감정들입니다. 이성(理性)이나 이해(利害)보다는 감성과 맹목이 처녀림처럼 오염되지 않은 시기에 마음과 마음으로 투명하게 교감하는 우정과 소름 돋도록 황홀해 하던 순수의 사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보석들이라 할만 합니다. 하늘에 떠있는 별들과도 같은 존재들입니다. 이러한 추억들은 지금은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지만 그 이면에는 서툴고 어눌했기에 생긴 부끄러운 일들이 시행착오들처럼 동시에 얼룩으로, 그림자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별들이 반짝이는 것은 어두운 밤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성(異性)에 관한한, 젊은 시절의 고통은 처절(?)할 정도였습니다. 별을 출산하기 위한 의례적인 통과였겠지만, 육체적인 감정과 죄의식 사이에서의 갈등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처절하다는 표현이 정말이지 적당합니다. 내부 깊숙한 곳에서는 성적 본능이 솟구치는데 이 본능을 순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아무도 제공해 주지 않았습니다. 단지 가정과 사회나 학교가 만들어 놓은 도덕적 규율과 죄의식이 거의 다였습니다. 만약 이 시기에 누군가 이 성적 욕구를 예술이나 다른 창조적인 것으로 승화시켜주거나, 본능에 솔직하도록 죄의식을 부수어주었다면 아마도 저는 양극단의 삶 중 어느 하나로 나아갔을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상황이다 보니 분열되고 깨어진 자아는 사회에 대해서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깨어진 유리의 날이 날카롭듯이  신경질적이고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기성의 제도나 가치에 대한 젊은 세대의 비판과 저항도 이런 맥락일까요? 비판과 저항이 낭만적이거나 환상적인 건 이런 때문이 아닐까요?

이미지 출처:  http://kr.image.yahoo.com/GALL

 

이러한 분열된 자아를 그나마 위로해 준 것이 친구였습니다. 우정이었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몇몇 친구가 왜 그토록 힘이 되고 위안이 되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공유하는 생각이 비슷했기 때문이었겠죠. 우정은 제가 순화되는 유일한 출구 중에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하나를 더 들자면 도스토예프스키(Fedor Dostoevsky)와 비틀즈(The Beatles)입니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중학교 2학년 때 저에게 아주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집 근처의 서점에서 ‘이중인격’ 이란 제목의 문고판(‘삼중당’ 문고인 듯한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책을 샀는데 그 작가가 도스토예프스키였습니다. ‘이중인격’ 이란 책 제목이 저를 완전히 압도했는데 바로 제가 이중인격자라는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중인격’ 이란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둡고 분열된 심리를 반영하는 책 제목을 주로 골랐습니다. 어둡고 부적응적인 정신 상태를 잘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그 이후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의 책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밤을 새워 가며 읽었던 ‘죄와 벌’ 은 너무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은 읽긴 했지만 음산한 분위기와 인물들에 막연히 공감했을 뿐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도스토예프스키 외에는 접한 작가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왜 이토록 하나만 우상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비틀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집 근처의 골목 어귀 레코드 방에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촘촘히 꽂혀있는 카세트테이프 중에서 흰 와이샤츠에 까만 넥타이를 매고 까만 양복을  입은 4명의 젊은이들이 훈장을 들고 있는 사진이 저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은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또 훈장들이 호기심을 자아내었습니다. 그 테이프를 꼭 사야만 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음악이 있는가?  그 테이프는 복사판으로 20곡 정도의 곡이 들어있었고 듣자마자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도스토예프스키와 비틀즈는 내게 작은 아니 큰 위안으로 찾아온 것입니다.(아집의 탄생이라고 할까요? 우상의 탄생이라고 할까요? 도스토예프스키와 비틀즈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들은 제게 작은 축복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저주였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마음은 황량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kr.image.yahoo.com/GALL


이제 ‘하나와 앨리스‘ 의 얘기를 해볼까요? ’하나와 앨리스’ 는 10대들의 우정과 사랑과 상처의 치유를 다룬 영화입니다. 아라이 하나(스즈키 안)와 앨리스[아리스가와 테츠코](아오이 유우), 그리고 미야모토(카쿠 토모히로)가 펼치는 순수한 우정과 사랑과 고민과 관용과 이해를 담은 젊은 날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명랑하고 쾌활하고 낙천적인 분위기가 마냥 부러웠던 것은 아마도 칙칙하기만 했던 제 개인사에 기인할 것입니다. ‘하나’와 ‘앨리스’는 왜 이토록 성숙하고 어른스러운지! 아마 젊은 세대가 이토록 낙천적이고 밝기만 하다면 이 세상에는 문제가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나와 앨리스는 그들이 가진 문제들을 스스로 잘 극복해갔으니까요.


또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하나와 앨리스’ 는 10대들의 ‘역할 모델’ 영화로 적합하다고 여겨집니다. 아직 여물지 않은 머리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문제와 더불어 살아야하는 사춘기의 10대들에게 여유와 낭만과 관용이란 삶의 방식을 선사해주는 것은 교육적으로 소중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 시기의 사랑과 우정이 너무나도 가슴시리도록 뭉클한 것은 자기 한계에 대한 질곡이 너무나도 깊기 때문입니다. 정신적, 육체적, 환경적 변화와 불안정에 따른 자기 혼돈의 시기인 것입니다. 이럴 때 자신과 동질적인 누군가를 발견한다는 것은 커나큰 기쁨입니다. 또한 혼란스런 가운데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천국처럼 특별하고 아름답습니다. ‘하나와 앨리스’는 이러한 사랑과 우정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과 우정에 대한 따스한 시선, 만담(발레, 사진) 등의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활동들을 통해 극단적인 방식들이 순화된 성숙한 10대의 모습들, 그 모습들에 아와이 순지 감독의 10대들에 대한 애정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영화의 끝부분에 발레의 장면 이 지루하게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영화가 교육적으로도 힘든 작업을 대신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10대들과 관련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영화들(두사부일체,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동갑내기 과외하기, 우리형 등)은 과연 이러한 방식들이 순간의 감정 분출을 의도한 것 외에 무엇일까 하고 회의하게 합니다. 인간성 상실과 삭막한 사회 현실을 고발하기 보다는 혹 일조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시인인 유하 감독이 만든 ‘말죽거리 잔혹사’ 의 경우 ‘과거 향수의 향유’ 라는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지만 이 영화가 15세 이상 등급이란 면에서는 그 잔인한 폭력으로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것인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빨간딱지가 붙는 18세 이상 관람 등급이 주로 에로 영화에 국한되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파괴적이고 충동적인 10대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문제의 접근이나 해결의 측면에서 더 깊이 있고 진지하다고 주장한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물론 ‘하나와 앨리스’ 류를 전적으로 두둔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영화들에도 10대들과 관련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영화들은 존재합니다. 아니 더하다면 더할지도 모릅니다. (최근에 본 일본 영화 ‘바운스’ 가 그랬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는 ‘폭력적’ 이거나 ‘부정적‘ 이라기보다는 ’고발적‘ 인 성격이 강합니다.) 그러나 폭력이 상업성과 결합되면서 마치 영화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소재라는 데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폭력을 비판한다는 미명하에 폭력을 이용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차라리 폭력을 연구하려 했다거나 상업성을 고려했다고 좀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과연 10대의 학창 시절이, 보편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 시기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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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6 13:12

사토라레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미지 출처:www.koreafilm.co.kr/movie/revi





사토라레



한 인간의 머릿속 생각이 타인들에게 들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또 타인들의 머릿속 생각이 한 인간에게 들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이러한 상상을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상상은 상상으로서 끝나버립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나아가 왜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일까, 하고 그러한 상상의 의미와 관련된 질문은 던져 볼만 합니다. ‘사토라레’ 라는 영화가 이러한 상상을 조금 더 진전시켜 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은 호기심이 참 많은 존재입니다. 인간의 호기심이 미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 자신들에 대한 호기심도 그 예외가 아닙니다.

인간의 호기심이 인간 스스로에게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당연한 것입니다. 도대체 인간(우리)은 무엇인가? 인간(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가? 인간(우리)은 왜 전쟁을 할까? 인간(우리)은 선한가, 악한가? 이러한 질문들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들이 이 지구상에서 좀 더 진지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3박4일의 일본 후쿠오카로 팩키지 여행과 이후 자유여행을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이 두번에 걸친 관광을 떠나기 전까지 일본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일본에 대한 제 머릿속 생각과 태도는 관광 전과 후를 비교하면 전혀 다릅니다.

일본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이 능동적인 노력으로 형성되었다기보다는 다소 민족주의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늦게나마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제 식민지 과거사와 독도문제에 빠져 극일, 혐일이라는 일본에 대한 경직된 생각이 다소 바뀐 것입니다. 최근 일본 영화를 자주 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바로 이러한 불일치에 대해 좀 더 일치된 생각을 갖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미지 출처:http://blog.naver.com/caek22?Redirect=Log&logNo=20028909648



 

일본과 일본인에 관련한 또 하나의 경험은 일본인들은 속과 겉이 다르다는 선입관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친절한 척을 해도 속으로는 이를 갈고 있다는 식의 생각이 왜 일본인들에게만 그토록 집요하게 강요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다르게 표현하면 그것은 좀더 성숙한 인간의 자세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일본인들을 대하면서 그들의 속마음이야 어떻던, 형식적으로라도 친절과 예의가 몸에 박힌 태도에 차라리 호감이 갔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인간의 생각과 말의 불일치는 일치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생각을 철저하게 숨기는 것이 오히려 불일치를 극복하는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일치 할 수 없는 것을 굳이 일치시키려 하기 보다 불일치를 철저히 숨기는 것 말입니다.


이렇듯 생각과 말이 불일치하는 인간 자신의 한계를 인간들은 부단히 일치시키려고 하거나 철저하게 숨김으로서 극복하려고 합니다. 이 일치와 숨김의 노력들은 우리 삶의 도처에서 보이는 형태로 또는 보이지 않는 형태로 강렬하게 또는 어렴풋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이러한 숨박꼭질 같은 인간 삶의 모습은 때론 우습기도, 절망스럽기도, 슬프기도, 역겹기도, 기쁘기도 한 여러 감정들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러한 감정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간들의 피할 수 없는 삶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어떠한 방식으로 바라보느냐는 우리의 태도이겠지요.   


인간의 안과 밖, 즉 생각과 말이 모순적이고 불일치하는 인간의 한계를 다루는 경우, 제가 접한 최근의 영화들은 그 모순이나 불일치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대체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 안과 밖의 불일치는 끝까지 극복하지 못한 채 비극적으로 오히려 그 한계로 인한 비극적이고 파국적인 인간을 드러내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기려고 노력하는 듯 합니다.(물론 간절한 의도는 일치를 지향하고 있겠지만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미지 출처: daiquiri.egloos.com/1641885



일치는 가능하지도 않으며 인간은 생각과 말의 불일치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모순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듯 합니다. 많은 영화에서 한 인간과 현실의 불일치는 메워지기보다는 끝까지 어긋나면서 비극적 파국을 맞이합니다. 예술의 도덕적, 교훈적인 역할이 약화 된 것은 오래전 일인 것입니다.

 



이제 사토라레로 돌아갑시다. ‘사토라레’ 는 생각이 타인들에게 들리는 기이한 특성을 가진 인간을 지칭합니다. 안(마음, 생각)과 밖(말, 언어)의 불일치와 모순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영화 ‘사토나레‘에서 이러한 안과 밖의 불일치를 접하는 시선들에는 비극적이라거나 진지함은 그다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왁자지껄하고 코믹하기까지 합니다. 사실 사토라레의 특이성은 놀랄만한 것이지만 생각과 말의 불일치는 당연한 것이니까 말입니다. 물론, 비극적 인식은 다소 드러나는 편이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성격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교훈적인 장면이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안과 밖 중에서 보이지 않는 것(마음)에 대한 애정이기 때문입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말보다 안에 갇혀 드러나지 않는 마음에 대한 애정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말만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마음이 더 소중하다는 교훈적인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의 생각(마음)이 외부로 들려 난처한 경우가 많지만 마음과 마음이 소통되는 것을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인상적이었던 마지막 대사입니다.         


“요즘 시대에는 말로서만 모든 일을 해결하려 하는 경향이 많아져서 도리어 다른 사람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일도 많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괴로워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이런 시대가 사토라레들을 태어나게 하는지도...... 우리 모두가 사토라레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우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 이제 여러분들도 우리의 머리 속이 투명해 진다면 - 우리의 생각이 타인들에게 들린다면- 어떻게 될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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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5 23:08

일본영화 음악 3곡(자토이치,사토라레,전차남)




일본영화 음악 3곡입니다. <자토이치>는 키타노 다케시 감독의 맹인무사 자토이치 기행적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토라레>는 타인들의 속마음이 들리게 된 사토라레(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청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차남> 은 일본 사회의 고독한 섬이 되어가고 있는 오타구와 그 세계를 이해 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자토이치
스즈키 케이지, Festivo





사토라레
Crystal Kay, Lost Child




전차남


전차남 trailer




전차남
Orange Range, Love Parade





*관련랑크: 자토이치 1        자토이치 2       자토이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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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8 02:35

피와 뼈



피와 뼈


낯선 삶이었다.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나 공간등 간과 할 수 없는 여러 주제들, 이를테면 광기의 역사적 상징성, 불행한 가족사의 부조리함, 개인의 병적 심리 등 역사라는 거창한 주제에서부터 가족사의 비극과 한 개인의 심리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감상의 자료를 제공해주었지만, 나의 생각은 인상적인 한 인간의 괴물 같은 삶(연기)에 주로 매달렸다. 아마도 낯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 내내 김준평(기카노 다케시)의 ‘괴물성‘ ’야수성‘의 근원이 어디에서 있는지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괴물성‘ 과 영화의 어디에도 그 인과성을 찾지를 못했다. 김준평의 괴물성을 일본 제국주의에 항의하는 메시지로 읽고자 했으나, 그것은  넌센스 같았다. 아니 관객인 내가 그렇게 해석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를 이해하기에는 김준평은 너무 속물적이었다.


그냥 다소 낯선 한 한인 가족사가 1920년대 초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이란 배경만을 달리하며 기록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해 보였다. 그냥 즐기면 되는데 괜한 헛수고를 한 듯했다. 가족들과의 관계조차도 파괴하는 가장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그 가장을 사실적으로 묘사를 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만 넘어가자니 어딘지 허전하고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미지 출처:http://www.slrclup.net/Common/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상처’ 라는 단어였다.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 트였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관계들이 엮어놓고 있는 인간들의 실존이었다. 역사도 이데올로기도 어쩔 수 없는 인간 실존의 모습이었다. 절망을 만들고, 절망에 순응하고, 절망에 저항하는 삶들은 깨어진 관계 속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비극적인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 절망들은 전 근대적인 인간관계 속에 처해진 실존들의 상처이고 절망들이기에, 과거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게 해준다. 특히 김준평으로 상징되는 억압적인 한국의 유교적인 가부장제와 그것에 얽힌 문제들에 대한 성찰이 그랬다.


그리고 죽음이 있었다. 죽음이 끝인 인간의 삶은 그 자체가 한 장의 유서일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제법 긴 유서를 쓰고 있다는 오싹한 느낌이 몰려왔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죽음들이 인상적인 까닭이기도 했다. 딸의 주검 앞에 김준평이 나타났을 때, 상가에는 큰 소동이 벌어지고 그 소동을 피해 딸의 시신을 이리저리 옮기는 장면은 현실의 고통을 피해 죽음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고통스런 현실은 죽음과 현실의 끊임없는 악순환을 느끼게 했다. 현실은 좀더 아름다운 곳은 될 수 없는가? 인간은 좀더 선한 존재가 될 수는 없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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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21:42

토니 타키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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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타키타니


단편소설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의 이 영화는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토니 타키타니>를 영상화한 것입니다. 다른 영화들에 비에 다소 짧은 편(76분)이지만 진지하고 무게감 있게 다가옵니다. 간결하고 경쾌한 문체에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주제를 담고 있는 하루키의 소설(읽는 것은 《상실의 시대(Norwegian Wood)》가 유일하지만)과 마찬가지로 경쾌하고 간결한 문체를 마치 눈으로 보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문장이 간결하면 경쾌해지고 또 스타카토의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단문과 단문사이의 여백은 ‘인상’을 만드는 유용한 공간으로 존재합니다. 선에 비유하자면, 점선이 완전한 선은 아니지만 더욱 인상적인 선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점과 점 사이의 공간 덕분입니다. 실선은 완전하나 점선보다 인상적이지 못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이런 이유로 점선이 끊는 선을 상징하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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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http://www.dvdactive.com/news/releases/tony-takitani.html

인생에 비유하자면, 인간의 인생은 마치 점선과도 같습니다. 여러 사건들의 인상들로 구성되어 있는 셈이지요. 지나온 시간들은 하나의 긴 흐름처럼 느껴집니까, 아니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여러 사건(장면)들이 인상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그림이나 사진처럼 파편으로 남아 인상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기억은 인상을 만들 뿐 그대로 재연하지는 못하죠.) 모래를 생각해 보면 될 것입니다. 하나하나의 알갱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모래를 이루고 있습니다. 알갱이들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소설의 문장들이 아니라 인간들의 관계로 생각해 보면 사실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들이 간결하고 경쾌한 관계들로만 구성된다면 ‘인상’ 은 만들어 내겠지만 끈끈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지는 못하겠지요.

단문들로 쓰인 소설들은 대체로 차갑고 냉정합니다. 단편인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단편소설이란 이름처럼 인간들의 ‘단편적인 관계’가 되겠지요. 이 영화에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아주 단편적인 접점만을 갖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 주인공 토니 타키타니(잇세 오가타)와 여자 주인공인 에이코(미야자와 리에)가 만나 이렇게 대화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에이코: 옷이란 자신의 내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제 멋

           대로에요. 게다가 굉장히 사치스러워요. 그래서 급료의 대부분이 옷을 사

           는 비용으로 사라져버려요.

토 니 : 나는 그림도구 외에는 어디에도 돈을 쓸 일이 없어.


이렇듯 그들의 만남에는 인간적인 공감이라기보다는 단편적인 접점으로서의 옷과 돈이 전제되고 있습니다. 토니와 그의 아버지의 대화에서도 인간적인 공감이 아니라 단편적인 접점만을 확인해 줍니다.


토  니:머랄까, 사랑에 빠져 버린 것 같아.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

          어.

아버지:그래서 어디가 마음에 든 거야?

토  니:뭐라 말해야 할까? 옷을 입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

아버지:그것 참 굉장하군.



이러한 인간의 단편적인 관계에는 서로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공감할 수 없다는 그 사실에 의해 어떤 막연하고 근원적인 고독이나 외로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토니 타키타니와 에이코는 운명에 순종하는 무기력한 인간처럼 여겨집니다. 마치 허수아비처럼 말입니다. 비록 함께 있지만 대책 없는 고독과 외로움이 그들 주위를 맴돌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외로운 존재인 것입니다. 그 무엇으로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인 것입니다. 단지 망각하는 것 밖에는 그것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어떠한 종류의 관계를 맺는다고 해도 일시적인 위로일 수는 있되 영원한 구원은 되지 못합니다. <토니 타키타니>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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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http://kr.image.yahoo.com/GALL

이렇게 보면 피상적인 관찰이기는 하지만 《상실의 시대》(1987)에서 우울하기는 하나 인간관계에 대한 희망이 단편 <토니 타키타니>(1997)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무기력으로 나타나는 것은 다소 안타깝습니다. 꼭 10년만입니다. 성숙인지 퇴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상실의 시대》에서는 하나가 되고자 하는(존재로서 공감하고 일체감을 갖는) 인간관계의 희망을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 <토니 타키타니> 를 보고나면 연민과 인간 실존, 그 자체에 대해서는 공감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소중한 체험입니다. 일본 영화라는 편견을 버리고 이러한 영화를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이제 이 영화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들을 몇 가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장면들 사이의 검고 두터운 벽들입니다. 이 벽은 인간을 가두고 차단시키는 외로움을 상징하고 있는 듯 합니다. ‘외로움은 감옥’ 이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장면들 사이에 놓여있는 검은 벽들이 창살처럼 여겨집니다. 고독은 우리 인간이 깨기에는 너무나도 큰 벽처럼 여겨집니다.


둘째는 인간들이 남긴 흔적들에 관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그다지 유쾌한 생각은 아닙니다만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오릅니다. ‘우리의 삶 뒤에 남게 되는 것은 흔적뿐’이라는 말 말입니다. 도대체 죽음 뒤에 우리가 남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종교는 우리에게 영생이 있고, 환생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죽음 뒤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직면합니다. 우리의 육체가 빠져 나간 자리에는 마치 뱀의 허물처럼 헐렁한 옷 몇 벌만이 덩그러니 남으리라는 상상은 쉬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남아있을 옷들에 발악적으로 집착하는 에이코에게 우리는 연민을 느낍니다. 에이코는 옷을 반품하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신호등에 걸려있는 중에 다시 그 옷이 생각나 차를 돌리다 사고로 죽습니다. 에이코를 죽인 것은 그녀의 옷인 셈입니다. 토니 타키타니의 아버지가 죽은 뒤의 흔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남긴 것이라고는 고작 낡은 레코드들이 전부입니다. 에이코의 옷들이 머물러 있던 텅 빈 방에 남겨진 그 레코드들은 에이코의 옷들과 함께 연민을 자아냅니다.


셋째는 인간에 대한 연민입니다. 토니 타키타니는 죽은 아내를 기억하고자 아내와 체형이 같은 여자를 비서로 채용해 아내의 옷을 입고 출근하도록 하는데, 바로 히사코가 그녀입니다. 히사코는 리에가 에이코와 함께 1인 2역을 맡습니다. 히사코는 에이코의 옷을 고르기 위해 에이코의 옷방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에서 그녀는 에이코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연민을 느끼고 눈물을 흘립니다.


몇 백 벌이나 되는 아름다운 옷이 그 곳에 쭉 늘어서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잔뜩 남겨 놓은 채 죽어버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 들까?”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옷도 구두도 마치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과 같이 정확히 사이즈가 맞았다.


그리고 그녀는 흐느껴 웁니다. 그녀의 눈물은 바로 연민의 눈물인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공감인 것입니다. 토니 타키타니는 아내의 옷 방에서 흐느껴 울던 히사코를 잊지 못합니다.


그는 때때로 아직껏 그 방안에서 아내가 남기고간 옷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잘 알지도 못한 여자를 떠올렸다. 그녀의 흐느껴 울던 소리가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이렇게나 많은 예쁜 옷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후에도 이상하게도 그 여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토니 타키타니 UK tra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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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00:33

일본영화 음악 3곡(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박치기, 아무도 모른다)




일본영화 음악 3곡입니다. <세상의 중심에서사랑을 외치다>은 카세트 테입에 담긴 젊은 날의 상처를 테입을 재생시키듯 다시 찾아가는 성찰의 영화이며 동시에 성장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박치기>는 일본영화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화입니다. 우리 민족을 다룬 영화이며 분단을 다룬 영화입니다. 우리의 슬픈 역사가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 교포들에게 한 처럼 맺혀있는 영화입니다. <임진강>으 너무도 감동적인 노래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입니다. 이 영화는 일본영화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보시면 어떨가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만난 것이 참 행운이었습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년)
瞳をとじて(눈을 감고)



                  히라이 켄(平井 堅,ひらい けん)의 원곡이 아닌 마사미 버전





박치기(2006년)
임진강



영화 <박치기> 중 한 장면


임진강




아무도 모른다(2005년)
보석

                                                 타테 다카코 <보석>




다른 일본영화음악 3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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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0 02:11

일본영화 OST 3곡(키쿠지로의 여름, 하울의 성, 러브레터)




일본영화 음악 3곡입니다. <키쿠지로의 여름>은 참 재미있게 본 영화였습니다. 잊고 있던 동심의 세계를 마구 일깨워 주더군요. 다음이 <하울의 성> 메인 테마곡이고, 마지막으로 이와이 순지 감독의 <러브 레터> MV입니다. 


 
키쿠지로의 여름(1999년)
히사이시 조, 메인 테마곡







하울의 성(2004년)
히사이시 조, 메인 테마곡







러브 레터(1995년)
Winter Story 메인 테마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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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8 17:32

무사의 체통(3)




무사의 체통(3)

― 누구의 사랑이고 명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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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士の 一分>의 영어 제목 <Love and honour>은 영화의 내용을 왜곡하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 제목 <무사의 체통>이 영화의 내용에 적확하다고 여겨진다. 영화의 내용으로 볼 때 사랑은 무사의 명예(체통)에 종속되기 때문에 그렇다. 일본의 전통적인 미덕을 love 와 honour라는 단어로 소개하려고 한 듯 하지만 기실 영어 단어 love와 honour의 의미를 변질시키고 왜곡시킨 일면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의 영제를 <Love and honour>라는 기만적인 미화보다는 일본어 제목과 마찬가지로 사무라이라는 한정사를 붙이는 것이 보다 솔직하다고 본다. 그것은 ‘사무라이의 사랑이고 명예’ 이지 인류의 보편적인 사랑이나 명예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이냐 무사의 사랑이냐를 떼어놓고 볼 때, ‘무사의 관점‘ 에서 보는 사랑은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좁게는 한 개인으로서 사무라이의 사랑과 명예에 대한 태도일 수 있으나, 좀 더 공간을 넓혀 보면 의미 또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완고한 계층질서에서 <남, 녀 간의 사랑>이란 감정이 주변으로 밀려난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또는 사랑과 명예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때 사랑이 무사의 명예에 종속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더욱 더 넓게는 국가주의에 부속화 되는 개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무력에 압살당하는 사랑(일본군국주의에 희생당한 위안부 할머니처럼)의 일그러진 모습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무사의’ 라는 한정사는 내용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영화 <색계>의 예를 잠시 빌려오면, 이 영화는 사랑과 애국이라는 선택에 흔들리는 한 개인의 감정, 특히 한 여자의 감정이 밀도 있게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이안 감독이 집단이나 국가 이전에 사랑이라는 한 인간의 감정을 유연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고 애국과 민족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매국을 두둔하는 것도 아니다). 애국(민족, 국가)라는 중력과 개인의 일탈적인 힘이 부딪히면서 동정과 이해, 공포와 용서, 사랑과 증오의 감정들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들의 약한 모습이고 단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무사의 체통>은 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명예가 존중되는 국가주의나 군국주의의 초개인적인 냄새만을 맡을 수 있다. 마치 심오한 무언가가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맹목적인 개인과 개인들이 집단(사무라이, 더 나아가 국가)의 중력에 흐물흐물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신파조의 사랑타령이 조금 등장하기도 하지만 양념일 뿐 오직 하나의 중심에 수렴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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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무사의 명예에 사랑을 주변적인 것으로 종속시켜버린 다는 것은 사무라이 영화의 당연한 특성의 일부로 전통적인 미덕이나 영화 자체로도 사무라이의 남성성을 멋지게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어딘지 무서운 일면을 뿌리 칠 수가 없다. 무사와 칼에 여성과 사랑이 종속된다는 것은 아무리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인류 보편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일본의 과거도 미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역사의 경우도 가족을 몰살하고 전쟁터로 나아가는 장군의 이야기나 다소 성격을 달리하긴 하나 남존여비의 유교사상이 그러한 예로 들 수 있다. 칼과 무사, 사랑과 여성을 좀 더 단순화해서 인류 보편적인 상징으로 표현한다면 여러 가지 추상적인 단어들과 구체적인 존재들과 조우할 수 있을 것이다. 남성중심주의, 가부장제도, 부자유와 복종 등의 단어들이 아닐까 한다.

장님이 되어버린 한 가난한 무사의 체통과 권위주의 아래에 사랑, 헌신, 봉사가 종속되면서 순수하고 희생적인 의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관계는 얼마나 삭막해질 것인가? 아니 삭막한 정도가 아니라 관계 자체가 두절되고 파괴되면서 비민주적이고 폭압적이며 비상식적인 어두운 통로들만이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닐까? 바로 남성중심주의요, 가부장제도이며 부자유와 복종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리 무사도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영화에 나타나는 남성중심주가 미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무사도는 일본 군국주의의 실체였으니 말이다. 이러한 무사도가 <love and honour>라는 이름으로 그럴듯 하게 포장되고 상품화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21세기의 일본 영화에 아직도 이러한 사무라이의의 전통적인 미덕이 칭송되고 있다는 것은 현대 일본인의 마음에 내재에 있는 의식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사랑보다도 사무라이의 명예를 추켜세우는 것은 결국은 국가에 종속되는 개인과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로 확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해석이고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최근의 독도 문제를 보면서 영화와 현실이 별개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미지출처: http://kr.blog.yahoo.com/iamji
                 http://kr.news.yahoo.com/ser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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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7 23:43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기이한 만남과는 달리 헤어짐의 담담함은 이 영화의 처음이자 끝이며 그 메시지가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예상치 않게 만난 예상치 않은 존재는 우리의 일상에서 벗어나 있지만(숭고함에 가까운 감정이던 호기심이던), 헤어짐은 이러한 만남과는 달리 우리 일상의 한 단면을 통속적으로 보여줄 뿐이다(일순간의 동정이었을뿐). 꿈에서 깨어나는 아쉬움이라고 할까? 끝까지 조제를 책임져 주길 기대하는 우리의 상상적인 기대를 여지없이 배신해버리기 때문이다. 숭고함(또는 호기심)이 일상의 것으로 추락할 때 우리의 실망은 얼마나 클 것인가? 그러나 또 우리가 인정해야할 우리의 일상이기에 우리는 씁쓸한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정의 변화에 솔직해 진다는 것은 일상으로의 귀환이며, 의지는 또 다른 숭고함인 것을...... 조제의 삶을 책임지리라는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코네츠의 조제에 대한 사랑은 휘발성이 강한 일시적인 사랑의 감정일 뿐이다. 아니면 동정이거나. 코네츠는 의지가 아니라 감정을 선택했다. 비통할 정도로 가슴 아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코네츠의 가슴처럼이나 이 둘을 지켜보는 우리들의 가슴도 마찬가지긴 하다. 이 영화의 결말과 ‘영화가 끝난다는 사실’은 함께 이제 우리는 과장된 감정을 훌훌 틀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것은 인간적인 감정의 솔직함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으로 불리울까.



1.사랑의 감정들


<오아시스> 와 <나쁜 남자>의 경우. 이 영화 내내 이창동의 <오아시스>가 떠올랐다. 아마 장애인의 사랑을 다룬 영화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물론 오아시스의 주인공들은  둘 다 사회로부터 정신적 육체적으로 소외된 인간들이다. 그들의 관계에 ‘사랑‘이란 진정성의 무게를 두고자 할 때, 그것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으로 작용한다. 영화 내내 보는 이들이 부끄러웠던 것도 그런 진정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잘 들어맞는 한 쌍이었고. 그것은 어느 일방의 동정심에 근거한 관계가 아니라 가식 없는 ’진정한 사랑‘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작 우리에겐 그런 진정성에 우리를 투신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위선적이고,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랑은 그 대상을 파멸시킬 수 있을까? 대상을 파멸시키는 <나쁜 남자>의 그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그 모든 것조차 초월하는 것을 김기덕 감독은 보여주는 것일까? 한 여자를 덫에 걸어 자신의 옆에 애완동물처럼 두고자 하는 것이 과연 사랑일 수 있을까? 아니면 나쁜 남자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영화임에도 내가 사랑이란 말을 잘못 갖다 붙이고 있는 것일까? 오아시스와는 달리 <나쁜 남자> 에서의 남녀의 관계는 부담스럽고 껄끄럽고 낯설기만 하다.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런 관계의 설정에서부터 <나쁜 남자>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하 <조제~>표기) 은 흡사하며 그 감정의 처리 방법에서도 흡사한 측면을 갖고 있다. 그것은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향은 극단적으로 다른데, 나쁜 남자가 감정을 폭력의 단계까지 극단적으로 과장하면서 끌어올리는 반면, <조제~’> 는 감정의 변화에 솔직히 반응하면서 감정의 가변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조제를 포기하는 것도 실상은 감정에 솔직해 지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조제~>에서는 감정이 가변적이고 일시적이며 자연스럽다는 전제에서 감정을 쉽게 놓아버리지만, <나쁜 남자>에서는 강렬한 일시적 감정의  절대성을 포착하여 그 감정을 극단으로 수렴하는 병적이고 집착적인 모습을 보인다.


우리가 감정에 솔직해 진다고 했을 때 <나쁜 남자>‘나 <조제~> 는 진실일 수 있다. 그리고 진정성일 수 있다. 그러나 <조제~>에서의 코네츠의 사랑의 감정은 동정심에 가깝고 의지적이다. 이러한 감정은 의지가 약해질 때 더불어 약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나 있다. <나쁜 남자>에서의 사랑의 감정 또한 강렬하며 의지적이긴 마찬가지다. 다른점이라면, <조제~>에서의 동정심에 가까운 의지적인 감정이 쉽게 포기되는 반면, <나쁜남자> 에서는 감정대로 이루려는 의지가 너무나 강력해 조금도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폭력과 억압에 가까운 감정이 되어 상대를 파멸시킨다(이것에 진정성이란 이름을 달기에는 왠지 끔찍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아마도 김기덕의 의도가 일반화된 사랑의 감정을 낯설게하기겠지만 이것은 일상적인 사랑의 진정성과는 솔직히 거리가 멀다. 낯설고 도발적인 사랑을 통해 인간에게 있어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별스러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겠지만......사랑은 이럴 수도 있다는...... 감정에 솔직해 진다는 면에서 <조제~’>와 ,나쁜 남자> 는 서로 극단의 방향이지만 동질성을 나타낸다. 



2. 사랑과 동정의 사이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사랑은 무엇인가? 일시적인 감정인가? 지속적인 감정인가? 아니면 감정을 초월한 어떤 것인가? 감정이 촉발시키는 행동인가? 그 어느 것에 사랑의 이름을 붙이던 개개인들의 정의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인간만큼의 사랑에 대한 정의들이 존재하는 것이니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랑의 정의는 불가능하다는 말과 같지 않을까? 사랑이란 전형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인 관계인 경우는 어떤가? 코네츠처럼 정상적이고 여자들에게 인기있는 대학생과 출생도 불분명한 뇌성마비인지 병명조차 모르는 장애인인 조제의 관계말이다. 코네츠의 조제에 대한 감정은 일시적인 감정일까? 지속적인 감정인가? 아니면 감정을 초월한 어떤 것인가? 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영화의 파국으로는 판단해 보면 분명 일시적인 감정이다.  그렇다면, 코네츠의 감정에 사랑의 라벨을 달아줄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사랑에 ‘일시적인’ 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주는 것으로 우리는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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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0 00:42

[일본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기쿠지로의 여름 (菊次郞の夏)


출      처|pcrc.hongik.ac.kr/~subcom3/Fav...



<기쿠지로의 여름>은 기타노 다케시(영화명은 비트 다케시)의 명성에 걸맞는 영화입니다. 역시 다케시라는 감탄사가 튀어나오게 합니다. 감독, 각본, 편집은 물론 마사오 역의 유스케 세키구치와 함께 주연을 맡아 열연합니다.

꼭 외형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 내용의 측면에서도 사무라이와 야쿠자 일색의 기존 다케시 영화와는 달리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놀라운 일이지만(이 말은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폭력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다케시가 만드는 영화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뜻에서입니다. 물론 이 영화는 폭력이 전혀 필요 없는 영화이긴 합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어린아이들이 보는 만화 영화만큼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 것도 없습니다. 폭력이 나쁘다고 하지만 만화영화의 폭력을 보면 오히려 폭력을 조장하는 느낌이 듭니다.) <기쿠지로의 여름>에서는 폭력이 거의 사라집니다.

물론 다케시의 ‘폭력’ 이 한, 두 군데 등장하고 있지만 그리 심각하지도 않고 인간적이기까지 합니다. 예를 들면, 트럭의 앞 유리창을 깨고 도망가지만, 뒤쫓아 온 기사와 싸우는 장면은 트럭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한 마을의 축제에서 야쿠자 일당과 맞서지만 폭력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얻어터진 키쿠지로의 모습만을 보여주어 싸움이 치열했음(?)을 대충 짐작케 할 뿐입니다. 야쿠자인 ‘기쿠지로‘ 에게서 완전히 폭력을 금지하기엔 불가능하겠지요.

아무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야쿠자에게서 폭력적인 요소를 배제했을 때 어떤 인물이 될까요? 예를 들면 야쿠자를 유치원의 보모 자리에 앉혀봅시다. 또 야쿠자를 전업주부로 만들어 봅시다. 사실 이러한 기발하고 의외적인 상상은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조폭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이유도 기발하고 의외적인 상상의 여지가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의 대상을 부조화/불균형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웃음이나 감동을 유발하는 것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두사부일체><조폭 마누라><달마야 놀자>등이 아닐까 합니다. 만약 야쿠자를 관광버스의 관광 안내원으로 내세운다면 이와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따라서 기쿠지로를 엄마를 찾는 마사오의 길 안내자로 만드는 것도 기발하고 의외의 상상이랄 수 있겠습니다.


출      처|pcrc.hongik.ac.kr/~subcom3/Fav...

만약 동화 속에 야쿠자가 등장한다면 그 야쿠자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것도 기발하고 의외적인 상상입니다. 좀 사내다운 관객이라면 “야쿠자가 그럴싸한 폭력물에나 어울리지, 무슨 이런 장난을 치나!“ 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전 제 경험상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 다소 유치한(?) 노래를 부를라 치면 분위기 깬다라는 냉소적인 표현(?)을 짓는 군자들이 꼭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부르는 노래들이란 설운도, 태진아, 조용필, 남진, 나훈아, 이미자 류의 그 애끊는 고상한 트로트들이었습니다. 분위기 띄우기의 정수를 보여주겠다는 자세였습니다.

사실 이러한 태도가 맞을 수도 있습니다. 트로트 일색의 노래방 분위기에서 갑자기 유치한 ‘마법의 성’ 이 등장한다면 분위가기 썰렁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야말로 마법에 걸린 듯 얼어붙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어떠한 종류의 분위기도 인정하는 노래방의 성숙한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달마야 서울 가자>의 노래방 장면이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만약 이렇게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객이라면, ”야쿠자가 백마를 탄 기사가 되었군. 아주 기발하고 의외적인 상상인데......“ 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동화 속에 등장한 야쿠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두 입장 중에서 여러분은 어떤 입장에 서고 싶습니까? 저는 후자의 입장에 서고 싶습니다.


출      처|pcrc.hongik.ac.kr/~subcom3/Fav...


제가 후자의 입장에 서고 싶은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부조화/불균형)을 비일상적으로 보는 관습적이고 경직된 태도, 즉 우리가 오랫동안 일방적으로 익숙해져온 편견이나 획일화된 사고를 지양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렇게 관습을 벗어난 기발하고 의외적인 상상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야쿠자가 리얼하게 폭력을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동화의 나라에서 백마 탄 기사가 되는 것은 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여러 관계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인간이란 말 자체에 그런 뜻이 있습니다. 관계는 지속적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다 그 관계들이 조금씩 사라집니다. 저를 나아준 부모의 존재가 사라지면 그 관계도 소멸합니다. 제가 자식을 낳으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 집니다.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사라질 때 인간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니 죽는다는 것은 모든 관계의 소멸을 뜻합니다. 마치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 관계들이 확정적이고 경직되는 것은 그다지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새삼 언급하면 잔소리로 들릴 정도로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는 달리 현실은 관습화되고 경직된 관계들로 구획되어 있는 듯 합니다. 영화는 기발하고 의외적인 상상을 통해 이러한 관습화되고 경직된 관계들을 변화시키는 측면이 아주 강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친구의 관계로 유연화 되기도 합니다. 유교의 경직된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으로서 말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비일상적인 남녀의 관계가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전도되기도 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인간의 여러 관계들이 일상적인 역할을 벗어나 작동합니다.그것은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려는 영화와는 달리 허구를 통해 현실을 허물려는 영화의 본질과도 상통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쿠지로와 마사오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영화 내내 느끼는 것이지만 도대체 누가 더 정신적으로 성숙한지? 도대체 누가 더 진정한 안내자인지? 도대체 누가 더 서로에게 감동을 주는지? 이 두 사람의 여행을 통해서 더 깊이 감동을 받고 정신적으로 변화한 존재를 우리는 알 수가 없지만, 이 영화의 제목이 <마사오의 여름>이 아니라 <기쿠지로의 여름>이란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마사오의 여름을 위해 기쿠지로가 떠밀려 동행을 했고 안내자와 보호자의 역할을 하지만 정작 여행을 통해 변화한 쪽은 기쿠지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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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강요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자의 입장, 즉 “장난치나!“ 같은 냉소적인 입장은 이 글을 읽으면서는 누그러트려 주었으면 합니다. 


<기쿠지로의 여름>의 구성은 여행의 시간 흐름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전개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서 보기가 편합니다. 이러한 단순함은 영화의 재미와도 연관되면서 지루하지가 않은데, 아이의 시선을 배려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이 영화는 소설처럼 각각의 장들이 존재하는데 마치 추억의 앨범이나 여행 기록 또는 일기장을 넘기는 듯한 효과를 줍니다. 각 장마다 영화의 압권이랄 수 있는 장면들이 숱하게 나옵니다. 여러 장으로 구성된 <기쿠지로의 여름>은 [할머니의 친구들]로부터 시작합니다.


마사오(유스케 세키구치)는 부모가 없이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9세 된 아이입니다. 여름 방학이 되었지만 갈 곳이 없습니다. 친구들은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고 축구 교실도 여름방학 동안은 활동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학교에 찾아갔다가 축구 코치로부터 “방학인데 바다에나 다녀오렴. 재밌을거야.”란 속 모르는 소리만 듣는데, 이 학교 신(scene)에서 헛발질을 하고 넘어지고 혼자 운동장에 서있는 마사오의 모습이나 혼자 남은 집에서 밥을 먹는 마사오의 뒷모습은 아이의 작은 어깨에 드리워진 무거운 외로움 느끼게 합니다.

외로운 마사오에게 어는 날 엄마의 소포가 찾아듭니다. 그리고 소포의 겉봉투에 적힌 주소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치 현, 토요하시 구’ 주소를 가방에 넣고 엄마를 찾아 떠나지만 불량배들에게 잡히는데 이때 나타나는 기쿠지로와 그의 아내가 할머니의 친구들입니다(할머니의 친구들 치고는 너무 젊은데......) 이런 인연으로 아내로부터 여행 비용으로 5만엔을 받은 기쿠지로와 마사오는 토요하시로 떠나게 됩니다. 이 장면의 압권은 유흥가와 경륜장에서의 해프닝으로 누가 어른이고 어린이인지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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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무서운 아저씨] 장에서는 유흥과 경륜으로 돈을 다 탕진해 버리고 주점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기쿠지로는 마사오가 없어진 것을 알고 근처 공원으로 찾아 나섭니다. 어린이 마사오를 전혀 고려치 않는 무지막지한 어른인 기쿠지로가 공원에서 목격하는 것은 마사오에게 이상한 짓거리를 강요하는 변태 대머리입니다. 변태 대머리는 무서운 세상의 암시로 이로서 마사오를 지켜야하는 기쿠지로의 필연적인 운명(?)이 시작된다고 할까요? 그 다음 날 아침 택시를 타고 ‘토요하시‘ 로 떠나게 됩니다. 이 후로 [이상한 아저씨][실패였다][천사의 종][아저씨가 놀아 주었다] 등의 장들이 이어집니다.



다 이야기를 해버리면 재미가 없겠지요. 자, 이제부터는 기쿠지로가 마사오와 함께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그 일기장을 직접 넘겨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재미있어 눈을 떼지 못할 것입니다. “장난치나!“ 같은 냉소적인 입장만 갖고 있지 않다면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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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6 00:21

후쿠오카에서 먹은 도시락 & 음식





                        후쿠오카에서 먹은 도시락&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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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텐보스 행 열차 안에서 먹은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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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텐보스 에서 먹은 나가사키 짬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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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리 공원 가는 길에 먹은 어묵(맛이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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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찌란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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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주로 먹었던 도시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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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5 21:12

후쿠오카 자유여행(7.마지막날)







             후쿠오카 자유여행(7.마지막날)


이틀 동안 참 바빴습니다. 하우스텐보스와 다자이후 뗌만구도 다녀오고 후쿠오카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니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컸습니다. 그랬던 탓인지 마지막 날 아침에야 비로소 민박집의 실내를 찍었습니다. 민박집은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는데 낡은 전통 가옥에 그다지 아늑하고 편리한 곳은 아니었지만 깨끗했으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그 때가 비수기였던 탓인지 그 넓은 민박집에 손님이라고는 우리 가족이 전부였습니다. 정말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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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과 관련하여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비수기에 일본을 여행할 경우에 굳이 한국에서 예약을 미리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후쿠오카로 출발하기 직전 한국에서 민박집을 예약했지만 막상 후쿠오카에 도착하니 하까다항에 명함만한 숙박 안내지들이 널려 있더군요. 현지에서 찾아가는 것이 좀 불편하겠지만 자유여행이라면 그렇게 찾아가는 것도 재미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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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에서 먹은 음식은 주로 도시락이었습니다. 도시락의 나라답게 다양한 도시락들이 있더군요.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하까다역 내의 쇼핑가에 도시락 코너가 있었는데 다양한 도시락들을 전시해놓고 있었습니다. 직접 주문을 해서 도시락을 만들 수 있기도 하구요. 한국에서 가져간 육개장이 국물이 없는 도시락을 먹는데 도움이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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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도시락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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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는 좋은데 맛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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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을 나오면서 근처의 모습들을 찍었습니다. 한국과는 가까운 거리라 언제 또 오겠나하는 아쉬움은 덜했지만 그래도 짧은 일정과 근처를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은 남더군요. 하까다역으로 가는 도중에 거리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후쿠오카에 오기 전 한국에서 숙박지를 예약할 때 주로 소개되어있던(여행 동아리 카페, 여행사 정보 등등) 호텔들이 일대에 모여 있더군요. 아마 역 주변의 호텔이라는 편리성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민박보다는 호텔을 이용해서 다른 경험을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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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바로 옆을 흐르는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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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Boy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데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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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정문 앞에 붙어있는 교육목표 같은데 해석 좀 댓글로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우스텐보스와 다자이후 뗌만구를 가기위해, 또 이런 저런 이유로 자유여행의 가장 큰 이정표가 되어주었던 하까다역은 아쉬움과 함께 정겨움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하까다역내의 식당가는 식사를 하고 도시락을 구입하는 편리성을 제공해주었습니다. 다시 한 번 하까다역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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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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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가 맞은 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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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과 커피, 빵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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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다역 역내를 가로질러 맞은 편 출구로 나가 하까다항 행 버스를 탔습니다.(또 사진이 없네요. 분명히 버스 정류장이며 버스 노선도며 하까다역 주변의 이런 저런 사진들을 찍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아까다 항 사진도 없구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바로 선실에서 찍은 사진이 등장하네요, 이런!) 선실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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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선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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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다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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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여행의 기록치고는 너무 엉성합니다. 사진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우스텐보스, 다자이후에서 너무 서둘렀던 기억, 후쿠오카의 커낼시티 등을 둘러보면서 남긴 사진들을 소개하지 못했다(사진들이 다 날아가 버린 것인지 원인을 모르겠네요)는 점은 너무나 부족했던 부분입니다. 여건만 된다면 다음에는 나가사키로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하우스텐보스에서 나가사키는 거리상으로 후쿠오카와 거의 비슷합니다. 하우스텐보스에서 나가사키로 가서 일박하고 후쿠오카로 갈까 생각도 했지만 일정이 너무 빠듯해 포기했던 기억이 나는 군요.


지금까지 이 자유여행기를 보아주신 분들에게는 많은 것들을 못 보여준 것이 아쉽네요. 뭐, 다들 다녀오셨는데 괜한 말 같다구요?  아무튼 감사하구요, 좋은 여행들 하세요.(끝)

후쿠오카 자유여행 다시보기

1.선상에서 
2.후쿠오카에서 첫째날 
3.하우스텐보스 로 
4.하우스텐보스
5.다자이후 로  
6.다시 후쿠오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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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9 15:24

후쿠오카 자유여행(5.다자이후로)



                    후쿠오카 자유여행(5. 다자이후로)


다음날(6월 11일) 아침 일찍(일찍이라고 해야 아마 10시는 넘었을 것 같습니다. 전날 하우스텐보스에서의 여독이 다소 심했기 때문이죠. ). 아침에
다자이후로 가기 위해 다시 하까다역으로 가는 도중에 비로소 사진을 몇 장 찍기 시작했습니다 민박집에서 하까다역까지는 걸어서 15-20분정도의 거리에 있었습니다. 거리의 풍경이 우리나라의 거리와 흡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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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앞에서(바로 뒤쪽이 민박집으로 들어가는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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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앞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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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다역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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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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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며 동상, 운동장이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와 너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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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로 가는 열차편은 하우스텐보스로 가는 열차편보다는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까다역에서 다이자후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어떤 종류의 노선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노선뿐만 아니라 찍어 놓은 사진을 보고서도 어디서 찍은 사진인지, 언제 찍은 사진인지, 뭘 하고 있는 사진인지 등등 도통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무튼 다자이후로 가는 열차는 개인석을 가진 하우스텐보스행 열차와는 달리 천장에 손잡이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서로 마주보고 앉는 우리나라의 지하철과 비슷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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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 가는 표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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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로 가는 열차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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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역에서 내려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다이자후로 올라가는 길 양쪽으로 다양한 가게들이 아기자기하게 들어 서 있는데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족사진조차 한 장 없네요. 다만 어느 가게에서 한국인 연예인 사진이 담긴 부채들을 몇 장 찍었네요. 다자이후 역에서 다자이후 뗌만구의 입구까지 이르는 길 양쪽으로 형성된 가게들을 보면서 일본인들의 상인정신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더 많은 사진 참조 : 블로그 창밖에 비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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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 역 근처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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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찍은 한류 스타들


다자이후 뗌만구에 들어가서는 그냥 사진을 막 찍었습니다. 학문의 신(스와가라 미찌자네)을 모시고 있다는데 아이들 공부 좀 잘하게 해달라고 부적하나 써서 걸어 놓지 못했습니다. 다자이후 뗌만구에서 꼭 찍어야할 사진이 있는데 당시에는 잘 몰라 찍지 않았네요. 다자이후 뗌만구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전설(아래 다자이후 뗌만구와 관련된 전설 참조) 속 소의 동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보니 정작 찍어야할 사진은 찍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네요(앞으로 여행에서는 이런 실수는 하지 않겠다는 각오!) 이곳저곳을 찍다가 결혼사진 찍는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또 자동차 무사고를 비는 고사(?)인지 시승식(?)인 듯한 장면도 찰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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뗌만구 본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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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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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 신사 뒷 편으로
큰 연못이 있었고 이름 모르는 꽃들(아마 창포같기도 한)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그 연못에서 위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큐슈 국립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으로 향하는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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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국립박물관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의 입구(처음에 박물관 입구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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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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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이렇게 타고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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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국립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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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전시실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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뗌만구내 식당가


또 사진 타령이지만, 어쩐 영문인지 큐슈 국립박물관과 다이자후 뗌만구를 둘러보고 나온 후와 다이자후에서 다시 하까다역으로 돌아오는 과정과 하까다 역에서 내려 후쿠오카 번화가로 가는 과정에서의 사진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텐데 그런 사진들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다자이후 뗌만구와 관련된 전설

다자이후 뗌만구는 일본 전역에 산재해 있는 1만 2000여개의 뗌만구(天滿宮)의 총본산인 신사입니다. 학문의 신으로 숭상되고 있는 스기와라 미찌자네를 모시고 있는 유명한 신사입니다. 이 신사가 세워진 유래에 대한 재미난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스기와라 미찌자네는 845년 교또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이미 5살 때 시조를 읊고, 11살 때 한시를 지을 정도로 보기 드문 신동이었습니다. 스기와라 미찌자네는 나이가 들면서 귀재를 더욱 발해 각종 관직을 맡으며 명성을 얻고 55살 때는 우대신(右大臣)에 임명되어 덕망있는 정치가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훌륭한 정치가로 서민들 사이에 명망이 높아 다른 정치가들의 질시가 심했습니다. 결국 스기와라 미찌자네는 정치적인 음모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901년 바로 다자이후로 좌천을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2년 뒤에 세상을 뜨고 맙니다. 장례식날 그의 유체는 우마차에 실려 장지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마차가 멈추면서 마차를 끌던 소가 꼼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쩔수 없이 그의 제자가 바로 이곳에 스기와라 미짜자네를 유체를 묻고 뗌만구의 전신인 안라꾸지(安樂寺)라는 절을 세웠습니다.


그 뒤 이상하게도 스가와라 미찌자네를 좌천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민 인물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사망하고 또한 교또 곳곳에 예기치 않는 재난들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스기와라 미찌자네가 하늘에서 내린 노여움으로 판단하고 그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을 안라꾸지에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다자이후 신사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좀 더 높은 신사로 격상되어 현재의 다자이후뗌만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일본 백배 즐기기, pp.590-591, 랜덤하우스 중앙 참조)



*다자이후에서 하까다역으로 돌아와 둘러 본 일정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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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0 23:27

후쿠오카 자유여행(3.하우스텐보스 로)




후쿠오카 자유여행
 

*후쿠오카 자유여행(하우스 텐보스로)


10일 오전(7시쯤?)에 하까다 항에 도착해서 그 날 오전 하우스텐보스로 간 것은 민박 집 주인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12일 오후에 출국이라서 시간이 촉박했기에 기왕 아이들과 함께 우선적으로 하우스 텐보스를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여행 계획을 세울 땐 하우스 텐보스는 생각지 않았고 후쿠오카 관광지들과 다자이후 정도를 둘러볼 작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민박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하우스텐보스를 향해 출발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소 무리가 있었지만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거의 한나절 걸려(시간을 기록해 놓지 않아 정확치 않지만 오전에 출발해 오후 8~9시 기차를 타고 늦게 돌아온 것으로 추측해 보건데) 둘러본 것에 대해 후회보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하우스 텐보스는 촉박하게 둘러 볼 것이 아니라 1박 2일 정도의 일정으로 좀 느긋하게 둘러보는 것이 그곳 방문의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밤하늘을 배경으로 불꽃이 피어오르는 등 야경이 만만찮은 매력을 발산하기도 하고 이국적인 정취 속에서 사색의 시간도 가져보기도 하고 다양한 놀이시설을 이용하면서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기에는 하루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 ハウステンポス)는 숲속의 집을 뜻한다고 합니다. 네덜란드 여왕의 별궁이라고 하는데 그 크기가 잠실 주경기장의 30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하우스텐보스는 10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40여개의 매력적인 구경거리가 있다고 합니다 (일본 100배 즐기기, p,610 랜덤하우스 중앙 참조). 그 10개의 구역(브루켈렌, 킨델다이크, 뉴 슈타트, 뮤지엄 스타트, 프리스란트, 유트레히트, 비넨 슈타트, 스파켄부르크, 포레스트 파크, 팰리스 하우스텐보스)을 차례로 둘러보는데 하루 만에 둘러보기가 무리일 정도라고 합니다. 비록 하우스텐보스 곳곳을 운행하는 클래식버스와 작은 유람선이 있긴 하지만 구석구석 둘러보는 데는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저도 클래식버스와 유람선을 타면서 전체적인 정취를 둘러보긴 했지만, 본 것보다는 보지 않은 것이 더 많은 것 같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네덜란드는 의미있는 국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 당시 네덜란드와 활발한 무역을 하고 있던 일본과는 달리 일본으로 가는 도중(1653년)에 표류하다 제주도에 상륙한 네덜란드인 하멜은 단순히 우리나라에서 14년 동안이나 억류되었다 탈출하면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하멜표류기>를 통해 유럽에 알렸다는 그 의미밖에는 없습니다. 또한 하멜이 히딩크로 부활했다는 정도일까요. 이에 반해 일본은 이미 1542년 포르투갈 선박이 표류에 들어와 개항으로 이어지고 포르투칼인이 전해준 조총은 임진왜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임진왜란을 생각해 보면 왜 일본은 총을 들고 달려드는 데 조선은 왜 창과 활밖에 없었는가 하는 의문도 바로 여기에서 불립니다. 바로 그것은 서양의 문화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인 일본과의 차이인 것입니다. 17세기 초에는 네덜란드와 활발히 접촉하면서 난학을 꽃피우던 일본과는 달리 우리는 네덜란드와 무역은커녕 문화적인 교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고의 폐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고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일본의 목판화는 곧 유럽에 전해진 일본 문화의 자존심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고호가 일본을 상기시키는 광고효과도 상당하겠죠. 만약 고호의 그림에 우리의 예술작품이 등장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우스텐보스는 일본과 네덜란드간의 역사적인 관계와 문화적인 교류의 기록인 동시에 일본인들의 개방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의미있는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조선이 얼마나 유학의 늪에 빠져 관념적이고 형식적인 전통에 얽매이고만 있었는가 하는 통절한 자기반성의 측면에서도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우스텐보스 가는 데 하까다 역 안내소의 한국인 여성 안내원의 도움이 컸다고 이미 적었습니다. 이외에도 고마운 일이 하나 더 있는데 한국에서 가지고 간 일본 여행 책자를 잃어버렸는데 알고 보니 안내소에 놓아두었더군요. 한국인이라 저를 알아 보셨던지 책을 보관하고 있다가 주시는 거 있죠.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일본인이었더라면 저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기억을 해도  하우스 텐보스로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표를 구입하는 것도 낯설었고 하우스텐보스행 플랫폼 입구도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 더 가면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책을 보니까 이렇게 되었네요. “하우스텐보스까지는 JR을 이용하는게 가장 편하고 빠릅니다. 후꾸오까에서는 약 1시간 간격으로 특급 하우스텐보스 ハウステンポス 호가 출발하죠. 나가사끼에서 갈때는 JR 쾌속, 보통 열차를 이용하세요. 역시 약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합니다.”(일본 100배 즐기기, p,610 랜덤하우스 중앙 ) 이러한 정보로 판단해 볼 때 분명히 하까다역에서 특급 하우스텐보스 호를 탄 것 같습니다. 다른 열차편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2층으로 올라간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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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텐보스행 열차 플랫폼. 시간이 11시 5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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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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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에 비친 카오스크(간이상점?)에서 도시락을 샀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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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하나만 찍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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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라 열차에서 먹기 위해 플팻폼에서 도시락을 샀습니다(이 때는 하까다역 내 식당가에서 도시락을 판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식당가가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런 것들을 미리 알고 갔어야 할 정보였는데 말입니다. 하까다역 내에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쇼핑몰이 있습니다. 식당가도 있습니다. 다양한 도시락을 팝니다.). 일본은 도시락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도시락이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도시락이란 그 자체를 이어령 선생은 축소지향의 한 전형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음식이나 문화란 측면에서 볼 때는 음식들의 배열과 미적인 디자인이 가져다주는 정성과 깔끔하고 단순함을 지향하는 일본인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서구사회의 햄버거와 같은 역할을 일본에서는 도시락이 하고 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햄버거가 역동적인 의미보다도 정크 푸드로 전락한 것처럼, 도시락 또한 과거에는 일본 사회의 경제적인 성장 상에 역동성을 가져다주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제는 하타쿠로 상징되는 개인주의 문화를 넘어 심지어 자아가 지워지면서 특정한 대상에 몰입하는 자아해체와 특정대상에 대한 병적인 몰입 현상의 특징을 대변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아니 약간은 벗어나서, 우리의 몰입식 영어 교육은 인간을 개방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동시에 영어에 다른 소중한 가치를 빼앗기는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몰입해서 영어를 하느냐, 소설이나 독서를 하고 여행을 떠나느냐는 문제도 아닌 문제를 잉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어라는 수단에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치들이 간과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정말 넌센스입니다. 우리의 삶, 아니 좁혀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어쩌면 대학교까지 영어에만 몰입한다는 것은 영어로 인해 얻는 것도 많겠지만 동시에 그 이상을 상실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시간쯤 달린 후 하우스텐보스 역이 보였습니다. 이국적인 모습의 역사였습니다. 다소 의외로 역사가 무척이나 작았습니다. 아마 교통편을 불편하게 해놓고 하우스텐보스 안에서 소비를 많이 하도록 의도한 것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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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텐보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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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텐보스로 가는 다리 위에서


이제 하우스 텐보스에 도착했습니다. 유람선도 타고 클래식 버스도 타고 하면서 곳곳을 둘러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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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킷팅 하기 전에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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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길어지네요. 하우스텐보스내 관람사진들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할께요.  
 다음은 하우스 텐보스 관람 사진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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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7 17:58

후쿠오카 자유여행(2.후쿠오카 첫째날)



후쿠오카 자유여행



*후쿠오카 첫째날


다음날(6월 10일) 아침 하까다 항에 도착해서 선실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하까다 항 국제 터미널입니다. 이제야 일본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하까다 항 국제 터미널은 지금 보니 스폰지 밥을 닮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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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다항 국제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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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福岡)는 ‘행복한 언덕’ 이란 뜻입니다. 후쿠오카는 16세기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상업 부흥책에 따라 상인의 마을 번성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쿠로다 나가마사가 후쿠오카성을 세우면서 도시 중심을 흐르는 나까가와를 경계로 동쪽에는 상인의 마을 하까다, 서쪽에는 무사의 마을 후쿠오카로 자리 잡으면서 지금과 같은 도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1889년에 시제도가 시행되면서 시의 이름을 후쿠오카, 역의 이름을 하까다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은행, 회사, 공항 이름에는 후쿠오카, 항구, 기차역, 기념품, 축제에는 하까다라는 이름이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일본 100배 즐기기, p,571 랜덤하우스 중앙 참조)



선실은 아직도 한 밤중입니다. 선실 밖의 바다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호기심에서라도 분주할 법도 한데 제 혼자서만 일어나 호들갑을 떨고 있는 듯 합니다. 한국이니 일본이니 별 생각 없다는 듯이 자고 있습니다. 선실의 내부도 다시 한 번 찍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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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중인 선실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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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 예약한 민박집이 하까다 역에서 걸어서 15~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하까다 역까지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하까다 항에서 하까다 역까지 가는 버스 안입니다.  버스가 참 깨끗했습니다.  요금 체계가 달라 다소 혼란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금세 익숙해진 듯 합니다. 버스 차창으로 펼쳐진 모습이 이국적인 것도 같고 한국과  비슷한 것도 같았습니다. 묘한 느낌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기사분도 참 친절했고요. 습관적으로 갖추어진 친절같았습니다. 기사분은 영어로 한국인냐, 일본은 처음이냐 하면서 친절하게 대해주면서 하까다 항까지 잘 안내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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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다 역에 도착해서 한 컷 했습니다. 그런데 하까다 역 전경 사진 한 장 남겨놓지 못했네요. 그땐 몰랐는데 이렇게 블로그에 올리려고 하니 아쉽네요. 하까다 역 앞이긴 한데 어느 위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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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다역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없네요^^;


하까다 역에서 민박집까지는 도보로 15~20분쯤 걸립니다. 기억으로는 민박집까지 가는 동안 사진을 찍은 것 같은데 착각인 것 같습니다. 사진이 한 장도 없으니 말입니다. 사진을 많이 찍지 않은 것이 또 안타까움을 몰고 옵니다.  후쿠오카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 한 장 남기지 못했네요. 민박집의 한국인 주인을 사무실에서 만나 돈을 지불하고 주지 사항을 듣고 걸어서 5분 거리쯤에 있는 민박집까지 안내를 받았습니다. 민박집에 도착(아마 오전 10이전으로 기억하는데)해서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짐을  풀어 놓고 바로 하우스 텐보스로 출발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그래도 그렇지) 하우스 텐보스로 가는 방법을 몰라 좀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책자가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책자보다는 하까다 역에 있는 관광 안내소가 더욱 더 도움이 되었습니다. 친절한 한국인 안내원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것이 참 아쉽네요). 한국인 안내원은 정말이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참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었으니까요. 다시 한 번 더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은 하우스 텐보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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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0 21:54

[일본영화] 자토이치(3)



                                         이미지출처: www.sung-ho.pe.kr

 

 

자토이치(3)

-마이너리티 리포트


맹인 자토이치는 로닌(浪人)이다. 로닌은 사무라이의 위계질서에 편입되어 정착하지 못한 사무라이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로닌은 소속된 조직이 없는 소속 외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바람처럼 이곳저곳을 떠도는 사무라이라고 하면 된다.


자토이치는 외관상 어떠한 조직에 소속되기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아주 현대적인 외관을 하고 있다. 머리는 노란 염색에 가깝고, 의복 또한 마찬가지이다. 머리모양과 의복만을 놓고 보면 자토이치는 21세기의 인물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자토이치의 외관은 격식을 파괴하고 있다.   


약간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자토이치를 만나 자토이치를 통해 대리 복수를 하는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하나같이 사회의 비주류들이다. 우선 가족을 죽인 살인자들을 복수하려는 남매는 부모를 잃고 정처 없이 살인자를 찾아 헤맨다. 그런데 그 남매에게는 자토이치 이상의 이질적인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사내인 남동생이 여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전도된 현상은 어린 시절의 충격(어른에 의한 아동 동성애, 경제적인 궁핍을 모면하기 위한 동성매매)에서 기인하고 있다. 이것은 소수 동성애자들의 문제를 제기한다고 할 수 있다. 가족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기 위해 여장하고 춤을 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이해를 호소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는 하층민이다. 집단화된 도적 패에게 언제나 폭력을 당하는 경제적, 계층적인 약자이다. 자토이치가 신세지고 있는 집의 여주인과 거리의 상인들이 그러한 존재들이다. 이들은 집단화된 도덕 패들에 의해 자릿세를 뜯기고 폭행을 당하면서 하루하루를 영위해 가는 존재들로 삶이 핍박하고 고달프다. 이들은 소수라는 측면보다는 약자라는 측면에 더 강조점이 두어져야 하지만 절대적인 빈곤층이란 의미에서 마이너리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칼을 쓰지 못한다는 면에서 자토이치와 다를 뿐 실제적으로 사회적인 이방인으로 도박과 술과 여자에 빠져 죽은 둥 사는 둥 살아가는 중독자들이다. 이들은 자의적으로 사회를 일탈한 존재로서 마이너리티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알콜 중독자, 마약 중독자 등도 이러한 사회적인 약자(사회로부터 냉대를 받는다는 의미에서)로서 동일한 부류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하지만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냉대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격리는 범죄자에 대한 동일한 인식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범죄자가 감옥에 격리되듯이 병원 따위에 수용이 되는 것이다.


넷째는, 셋째의 부류와 다소 동일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같은 부류로 분류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바로 미친자들이다. 미친자는 자의적이지도, 어떤 지향성(술, 마약, 여자)도 갖지 않는 존재라는 면에서 중독자들과는 다르다. 자토이치가 머물고 있는 집 주위를 함성을 지르며 도는 이웃집 아들이 바로 미친자이다. 영화 <자토이치>에서 왜 이 미친자가 등장할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만들어 낸 캐릭터는 결코 아니라고 본다. 하층민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들의 존재는 웃음만을 자아내기에는 서글픈 존재가 아닐 수 없으며 운명적으로 사회적인 냉대와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슬픈 존재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약자와 대척점에 있는 존재가 집단화된 도적 패거리이다. 이 집단화된 도적 패거리를 현재적인 시간에서 그 대응 집단들을 살펴본다거나 변화된 모습을 살펴본다거나 도적이란 본질을 위장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알레고리로 자리잡는 것이다. 자토이치의 시대 상황이 과거이지만 해석은 지금, 여기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는 언제나 현재에서 만들어지듯이 현재의 시점에서 하는 해석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대척적인 존재들(사회적인 약자 vs 집단화된 도적 패거리) 사이에 놓여있는 자가 자토이치라고 하면 어떨까? 이 자토이치가 도박을 즐기고, 여자를 즐기고, 관습을 무시한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다면 자토이치는 마이너리티에 관용적인 자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그 자신이 육체적으로 맹인인 약자라면 어떠한가? 판단은 영화를 보는 개인 각자의 몫이지만, 분명한 것은 자토이치의 몰골은 그 당시의 시점에서는 결코 보편적이거나 관용적일 수 없는 모습이었다는 사실이다. 자토이치가 칼을 휘두른 것은 집단화된 도적 패거리지만 어쩌면 그것은 사회적인 약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질성을 말살하려는 관습의 편견인지도 모른다. 분명 자토이치는 이질적인 것, 사회적인 역자들의 편에 서있다.


영화가 끝나면 사회적인 약자들집단화 된 도적 패거리가 함께 모여 춤판을 벌린다. 이 춤판은 두 가지의 있다고 본다. 하나는 영화내내 자행되는 칼질에 대한 살풀이의 마당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더욱 중요한 것으로써 사회적인 약자들의 신명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자유와 평등에 대한 염원이다. 나무를 자르고, 깎고, 다듬어 불탄 집을 다시 세우는 그 축제의 한마당은 바로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인 것이다.(*)    

(2008.4.20.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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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4 18:12

[일본영화] 자토이치(2)





자토이치(2)


서부 영화에서 맹인 총잡이를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상상이라고 하면 건방진 표현처럼 들린다. 아니 무지한 표현처럼 들린다. 세상에 불가능한 상상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거나, 이성적인 합리성을 신봉하는 서양의 인식에서 맹인이 총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식의 상상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상상의 한계라기 보다는 문화의 한계에 속한다.


사무라이 영화에서 맹인 검객을 상상한다는 것은 가능하다. 상상의 무한함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성격이 이것을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맹인 검객을 가능하게 하는 일본적인 문화의 성격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우선 <무사의 체통>이란 일본 영화에서 맹인이 된 미무라의 정신 상태를 살펴보는 것은 맹인 검객의 탄생과 관련하여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고 하겠다. 미무라가 맹인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바로 정신이었다.


“같이 죽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라. 승리는 그 가운데 있으니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산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러한 생즉사의 정신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 미무라가 스승의 도장을 찾아가 들은 이 말속에는 죽음을 무릎 쓴 결의 이상을 읽을 수는 없다. 이러한 결의가 실상 맹인 검객의 미묘한 신기를 설명해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즉 미무라에서 자토이치로 이어지는 미묘한 신기를 생즉사라는 정신력 하나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또는 복수심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불타오르는 복수심이 정신을 고취시킨다고 해도 맹인이 정상적인 검객을 당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분노가 정신을 혼란시키고 흐트러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기가 더 쉽다. 


그렇다면 맹인 검객 자토이치의 검의 신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일본의 긴장의 문화와 맥이 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일본 문화를 축소지향적인 문화라고 말을 하지만 이 축소의 지향은 긴장감을 동반한다. 상식적인 생각으로도 확대는 이완을 축소는 긴장을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작은 공간에서 긴장을, 넓은 공간에서 이완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우가 아니겠는가?


일본 특유의 긴장문화를 만들어 낸 모체로 이어령씨는 이치고이치에(一期一會)의 사상과 세이자(일본특유의 정좌법으로 무릎을 꿇고 않는 좌세)를 들고 있다. 이어령씨는 “시간의 축소지향인 이치고이치에의 문화와 공간의 축소지향인 세이자이 문화가 일상적인 생활어에 나타난 것인 ‘잇쇼켄메이’ 라는 말이다”(축소지향의 일본인,p.215) 라고 했다.


[잇쇼켄메이(一生懸命)는 한 곳을 생명을 걸고 지킨다는 뜻으로 일본인의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정신이다. 좋은 의미로는 자신의 맡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이지만, 일본의 침략주의와 맞닿아있는 정신이기도 하다.]


정신의 축소지향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이치고이치에의 사상을 이어령씨는 ‘다도’ 와 ‘죽음’ 의 예로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다도 문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넓은 공간을 축소해 다다미 4조 반의 좁은 공간으로 만든 ‘다실’ 은 두말할  것 없이 ‘공간적 축소지향’ 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대응하는 ‘시간적 축소지향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다도에서 말하는 ’이치고 이치에(一期一會)‘ 라는 정신이다. 시간을 축소하면 일순이 된다. 단 한 번 밖에 없는 시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창백한 번갯불. 다도란 그 일순의 빛 속에서 얼굴을 마주치는 만남이요, 그 마음이다.“(축소지향의 일본인, p, 210).


이치고이치에의 사상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이어령씨의 글을 좀 더 인용해 보기로  하자.


“다회의 만남이 일생에 단 한 번의 만남이라는 ‘이치고이치에’의 정신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죽음을, 곧 다실에 끌어들인다는 말이기도 하다. 죽음이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단절의 벼랑이며, 다시는 재현이 불가능한 일순간의 섬광이므로 그것을 느끼며 만나는 사, 람들은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축소지향의 일본인, p.212)


이러한 긴 인용은 다도와 마찬가지로 검도, 즉 자토이치의 검의 신기를 설명해 보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치고이치에의 정신만으로 자토이치의 검의 신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본다. 또한 검도 지식 외적인 것으로 검도를 논하는 우스운 꼴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어령씨의 글에서 받은 어떤 통찰이 자토이치의 검의 신기를 일부분 해석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또한 일본인의 정신을 이해하는 것으로 유용하다는 판단이다.   


자토이치의 검의 신기는 일본적인 긴장감 또는 비장감, 즉 이어령씨가 언급한 이치고이치에의 정신과 맞닿아 놓는다는 것은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고 본다. 다도(茶道)와 마찬가지로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검도(劍道)의 세계에서 이치고이치에의 정신은 더욱 더 정합성을 띈다고 할 수도 있다. <무사의 체통>에서 미무라의 생즉사의 정신이란 이치고이치에의 긴장인 것이다. 이러한 이치고이치에의 정신은 자토이치에서는 더욱 세련되게(영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검을 휘두르는 행위가 차를 마시는 행위처럼 이치고이치에의 정신 속에서 일순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축소된 시간, 즉 일순, “단 한 번 밖에 없는 시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창백한 번갯불‘을 응시하거나 마시는 행위가 아니라 검으로 ’베어내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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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 자토이치



                                         이미지 출처:http://kr.blog.yahoo.com/jesse




자토이치

-복수의 카타르시스


어느 곳이고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또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아주 큰 잘못이 아니라면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서로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러나 때로 그 관계가 크나 큰 상처를 만들어 관계된 상대자에게 깊은 원한을 품게 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어져 원한이 쌓여가기도 한다. 복수가 피할 수 없는 행위가 되고 만다. 법의 구속이 약하고 무력이 지배하는 계급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명예를 위해서든, 가족을 위해서든 복수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복수는 약한 자들에게는 참 어려운 결단이다. 오히려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약한자들의 증오는 대체로 체념이 되기가 싶다. 집단, 특히 사악한 집단에 대한 개인의 저항은 너무나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집단과 집단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원시부족사회, 고대 국가 들간의 정복과 약탈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렉산더나 징기스칸의 정복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약한자들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특히 여성, 노약자, 사회빈곤층 등의 약자들인 경우는 증오의 감정이 집단적인 힘으로 승화되지 않는 한 복수를 꿈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약자들이 집단화 되었기에  동학혁명이나, 스파르타쿠스의 난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경우라면, 복수는 동류나 강한자들에나 가능한 행위에 국한되고 만다. 


바로 여기에서 체념에 빠져버린 복수에 대한 무수한 상상들이 발동하게 된다. 정의로운 대리자가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자신이 영웅이 되기를 상상한다. 억울하고 비통한 감정을 대리자를 통해 상상적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들은 약자들의 한으로 응어리져 수많은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복수의 모티브는 영화의 영원한 소재이다. 아니 주제이기도 하다.


다소 벗어나는 이야기이지만, 문학의 경우, 20세기 모더니즘이 추구했던 주인공의 전형은 소외되고 고독한 개인이었다. 그것은 작가들의 예민한 시선이 근대화의 이면에서 고통 받는 소외된 인간들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도시를 떠도는 부랑자나 걸인이기도 했고 무기력한 남편이기도 했다. 고뇌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이상의 날개의 주인공이 바로 그러한 전형이었다. 그들은 복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무기력한 인간 군상들이었다. 집단화되지 않으면 무기력한 개인으로 남아있어야 할 뿐이었다. 우리의 경우 20세기의 수많은 집단적인 투쟁이나 혁명이 바로 이러한 경우를 설명한다. 참으로 극단적인 시대였다. 집단과 개인이란 아주 이질적인 관계로 존재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개인은 아주 강해졌다. 개인과 집단이 극단적이고 이질적인 성격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계가 모호할 정도로 상호작용이 쉬워진 것이다. 인터넷이란 막강한 매체 때문이었다. 최근에 등장한 블로그 또한 마찬가지이다. 권력의 형성이 개인들이 모인 인터넷에 의해 탄생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www.sung-ho.pe.kr/?p=17679



다소 벗어난 글의 흐름에서 다시 돌아와, 그렇다면 영화는 어떠한가. 개인적인 판단으로, 20세기의 고전적인 권선징악의 스토리는 21세기에도 여전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보편화 시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개인의 비극과 파멸을 다룬 영화도 많기 때문이다. <시민 케인>, 심지어 <람보>도 그런 부류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프랑스영화가 두드러진다. 아마도 실존주의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사회를 반영하는 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폭력과 살인이 난무한다. 이데올로기로 다소나마 제어되던 인간의 잔인한 본성이 출구를 찾았기 때문일까? <양들의 침묵><한니발>이 그렇다. 무슨, 무슨 살인사건이니, 사이코 영화, 새디즘이니, 메조히즘이니 하면서 폭력이 난무한다. 전쟁영화와는 그 폭력의 격이 다르다. 참 잔인하다.


한국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잔인한 폭력과 살인이 빠져버리면 성립하지 못하는 영화가 부지기수이다. 복수라는 용어는 무수하게 나타난다. <복수는 나의 것><올드보이>가 그렇다. 칸느 영화제에서 그렇게도 격찬한 <올드보이>의 폭력신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복수는 나의 것>의 경우 영화가 복수의 대중화를 선언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엄연히 법이 존재하는 민주주의의 세상에서 개인적인 복수를 용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용인할 수 없는 행동을 선명한 영상으로 목격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화는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것일까? 아니면 법을 조롱하는 것일까? 아마도 법이 존재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조차도 인간은 상상적인 복수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소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억울한 약자들을 위해 복수를 해주는 정의로운 개인, 정의의 대리자가 나타나 사악한 집단을 보기 좋게 쓸어버리는 것을 소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특히 약자들의 본성 속에 내재해 있는 특성이 아닐까 하며, 영화는 이러한 약자들의 소원인 복수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충족시켜준다. 이것은 문학적인 결말이나 여운과는 다소 다른 방향이다. 바로 이러한 방향이 현실에 대한 영화의 발 빠른 반응이며 대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자토이치는 바로 이 복수의 이야기이며 복수를 위한 대리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복수를 소원하는 자들은 대체로 약자들이다. 여자들이고, 무기력한 남편이고, 사회의 빈곤층이다. 그런데 약자들 중에 약자라고 할 수 있는 맹인 낭인, 자토이치가 정의의 대리자라는 것은 약자들의 복수의 소원을 가장 극화시킬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가장 약한 자가 가장 강한자로서 복수의 칼을 날려준다는 사실은 얼마나 통쾌한 쾌감,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주는가. 즉, 복수의 대리자가 장님이라는 사실, 그의 검도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운 신비에 가깝다는 데 복수의 대리 만족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복수는 자토이치의 것! 그는 우리보다 더 불운한 장님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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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7 15:53

[일본영화] 무사의 체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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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의 체통(2)


일본이 진정으로 무사의 체통을 찾는 길은 군국주의에 대한 참회라고 강조한 글을 썼다. 이것은 영화외적인 상황을 영화 해석의 수단으로 이용한 경우이다. 그러나 영화를 지나간 과거의 틀로만 해석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니 바람직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우리처럼 사무라이에 대한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는 나라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화 자체를 통해 일차적으로 영화를 해석할 것이다. 그러다 해석의 방법을 다양화해가다보면 일본의 군국주의와 대면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영화외적인 상황을 영화 해석의 근거로 삼든, 영화 자체를 해석의 근거로 삼든 보는 이의 다양한 시각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즉, 어떤 영화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혼돈에서 질서가 생겼듯이 한 편의 영화도 수많은 해석에 의해 의미들이 생산되는 것이다. 해석에 의해 의미가 명료해 질수도 있고 더욱 불명료해 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의 이론에 기반을 둔 난해하고 현학적인 영화 해석이 후자의 경우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다양한 여러 해석들, 심지어 난해하고 현학적인 해석조차 하나의 텍스트로 귀를 기울이는 개방된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어느 민족이고 타민족에게 너그럽지 않다는 것은 역사의 수많은 전쟁들과 분쟁들이 증명해 준다. 심지어 민족 간에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수없이 목격할 수 있다. 인간은 왜 같은 동족에게 칼을 들이대고 총부리를 겨냥하는가? 이 질문은 인류가 풀어야할 영원한 과제가 아닐까 한다.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도 결국은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정착한 것이다. 같은 동족에게 피를 요구하는 문화였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가 오랜 전통이 된 것은 그 시대적인 상황을 배우지 않고서는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사무라이를 있게 한 시대적인 상황에 대해서 언급하기에는 지식이 너무 짧다. 따라서 영화에 나타난 사무라이와 사무라이의 생활, 그리고 일반적인 일본 문화에 대한 몇 가지 인상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의 문화로 사무라이 문화를 이해하게 될 때 <무사의 체통>은 좋은 자료들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일본 문화에 대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우선 <무사의 체통>을 통해 사무라이의 생활이 대단히 절제 있고 금욕적임을 알 수 있다. 미무라가 먹는 음식이나 입는 옷, 행동과 말씨를 통해 사무라이의 생활이 금욕적임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미무라의 식사가 스님의 탁발을 연상시킬 정도다. 이러한 사무라이의 금욕주의는 가마쿠라 시대(1192~1333)의 금욕적인 군사규율과 무로마치(1336~1573) 시대에 불교의 영향을 받아 사무라이 문화로써 무사도의 경지로 정착되는데 <무사의 체통>은 그러한 사무라이의 무사도(武士道)를 잔잔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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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http://www.news365.com.cn/wxzt

대개의 사무라이 영화가 그렇지만 사무라이의 위계질서와 규율은 가혹할 정도로 엄격하다. <바람의 검>에서 사무라이의 그러한 엄격한 규율을 실감나게 볼 수 있다. 사무라이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의 작은 실수도 할복이란 극단적인 방법으로 만회한다. 주군의 식재료로 싱싱하지 못한 붉은 골뱅이를  선택한 식재료 담당자가 할복하는 것이 그렇다. 결과적으로 붉은 골뱅이를 먹은 독미역사인 미무라 신노조가 맹인이 되고 사무라이로서 처참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러한 실의는 전사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데서 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마다에게 복수를 불태우면서 비로소 사무라이로서 살아나는 듯하다. 맹인이지만 무사의 체통을 회복하려는 미무라의 모습에서 무사도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맹인 무사의 주제는 <자토이치>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또한 검도 도장에서 스승에게 가르침을 부탁하면서 스승과 나누는 대화에서 그리고 미무라가 되풀이 하는 과거 스승으로부터 들었던 말에서 무사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알겠냐. 미무라. 목숨을 주고받는 진검승부는 도장에서의 검술과는 다르다. 상대는 무엇을 할지 몰라. 칼끝을 피하지 마라. …… 너는 죽을 각오가 되었고 상대는 사는 것에 집착하고 있어. 그것 밖에 없다. 네게 기예를 전수할 때 전해줬던 말이 있었다. 기억하느냐?”

“같이 죽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라. 승리는 그 가운데 있으니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산다.” 


그리고 시마다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독미역사의 권태로움에서 깨어난 무사도의 외침이며 무사의 체통과 명예를 지키려는 사무라이의 전의인 것이다.


미무라에게는 토쿠헤(사사노 타카시)이라는 몸종이 있다. 토쿠헤이(천민)의 존재는 사무라이의 신분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세기초부터 사무라이는 지방귀족계급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농부, 장인, 상인들을 지배하는 계급으로 급부상한다. 실제로 부유한 상인이나 장인들이 사무라이와 혈연으로 맺어져 권력적인 기반을 닦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무라이 계급도 일반사병과 가신(家臣), 제후(諸侯)그리고 쇼군(將軍)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으로 분화되어 있긴 하나, 아무튼 사무라이가 존경의 대상이 된 것은 분명하다. <바람의 검>에서 몰락해가는 사무라이를 보게 되는데 사무라이의 몰락은 18세기 메이지유신으로 근대적인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 이르러서이다.


미무라는 주군으로부터 봉록을 받는 무사로 주군의 식사에 든 독을 감별하는 독미역사이다. 그런 하위 사무라이가 몸종을 이끌고 있는 것은 사무라이의 계급적인 위치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무사의 체통>에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절대적인 복종이 있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자의 위치는 분명하다. 아내 카요(단 레이)는 미무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듯이 보일 정도이다. 위계질서하의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카요의 바짝 엎드린 인사법을 통해 볼 수 있는 복종적인 여자의 이미지를 현대 일본 여성의 이미지와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사마다가 아내 카요를 성적으로 농락한 것은 맹인이 된 자신을 농락한 것과 같은 차원에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동시에 여자의 부정이 남편의 체통과 명예와도 관련이 되어 칼로 체통을 회복하는 것이 사무라이의 보편적인 방법인 것에도 무사도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또 하나의 것은 신사에서 발견한 스님의 존재이다. 카요가 남편의 건강을 위해 신사에서 기도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스님이다. 신사와 절이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는지 아니면 신사와 절이 공존하는 것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지만 토속적인 일본의 신앙과 외래 종교 불교가 만나 어떠한 형태의 종교를 만들어 내는지 호기심을 자아낸다.


지나쳐 버린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또한 이면의 의미를 통찰하기보다 표면의 인상만을 읽은 것이 안타깝고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이러한 호기심을 가지고 일본인과 일본 문화를 차근차근 알아보는 과정이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일본 영화를 보는 감동과 함께 재미중에 하나가 아닐까 한다. (*)


(2008.2.27.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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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7 00:10

[일본영화] 무사의 체통



 

무사의 체통

-일본이 진정으로 무사의 체통을 찾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http://kr.blog.yahoo.com/iamjina2000/

인간에게는 자신의 성격을 규정하는 명칭이 주어진다. 출생에서부터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지는 성별(여자, 남자)과 가문․신분(양반, 평민, 천민 등)에서부터 다소 변화와 상승이 가능한 학벌(명문대 여부)과 경제력․직업(부자, 빈자, 과장, 사장 등)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고정된 사회 계급(계층)이 사라졌다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차별적인 관습이 여전히 개인의 삶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면 사회적인 계급(계층)이 당연시되던 시대에는 그 엄격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계급(계층)에 따라 사회적인 역할이 규정되어 있어 그 계급(계층)적인 틀을 깨기라도 하면 사회 질서의 파괴로 간주되었다. 계급(계층)이 사회의 질서고 사회적인 질서가 곧 계급(계층)이기 때문이었다. 서자인 길동이 적자가 될 수는 없었고 천민이 과거에 응시할 수도 없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도 가문의 의지를 거스른 결과였다. 인도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남편과 함께 생매장 당하기도 한다.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잔존한다. 심지어 원시 사회에서도 제사장, 추장, 남자, 여자, 아이에 따라 사냥물의 부위가 다르게 지급되었다. 이러한 계급(계층) 사회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개인의 삶을 규정하고 의식을 지배했다. 따라서 계급(계층) 사회는 차이를 무시하는 차별적이고 비인간적인 사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역사는 차이에 따라 차별하는 비인간적인 계급 사회를 벗어나 개인이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해 온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무라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무사의 체통> 또한 그 내용을 떠나서 일본 사회의 전통적인 계급(계층)에 대해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일본의 사회의 계급(계층)에서 사무라이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임진왜란과 일제 시대로, 세계사적으로는 태평양 전쟁으로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다. 또한 그 성격이 얼마나 호전적인가는 사무라이를 반영하는 일본 군국주의의 전쟁 범죄를 통해 이미 주지하고 있는 바이다. 사무라이 영화를 보면서 그 잔인한 무력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당사국으로서 일본의 사무라이에 대한 특성이나 성격을 살펴보는 것은 이러한 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우선, 대개의 사무라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무라이는 정의롭다. 정의가 언제나 승리한다. 그러한 정의가 일본을 벗어나서는 왜 잔인한 악의로 돌변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크게 두 가지 이유일 텐데, 하나는 영화가 실제의 사무라이의 성격을 왜곡하고 미화했거나, 다른 하나는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이다.


첫째로, 만약 일본이 사무라이 영화를 통해 사무라이의 성격을 왜곡하고 나아가 미화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 군국주의의 과오에 대한 정당성과의 관계를 충분히 의심해 보아야 한다. 사무라이 영화의 폭력성은 결코 군국주의의 폭력성과 혼돈되거나 정당화 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순수하게 정의로운 폭력은 존재할 수 있을까? 사무라이 영화에서는 순수하게 정의로운 폭력(복수)이 존재하는 듯이 보인다. 서부영화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러나 순수하게 정의로운 폭력은 인간성을 좀 먹는 잘못 된 생산물(가치)이다. 영화 속의 허구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고작 정당방위 정도일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습은 정당방위조차도 아니었다.

  

둘째로, 일본의 경우 타 민족에 대한 배타성은 심각한 수준이다. 아마도 군국주의화된 사무라이의 가치보다도 어쩌면 타민족, 특히 한국인과 중국인에 대한 배타성이 일본 민족의 특이성을 잉태했는지도 모른다. 일본 근대화 시절의 탈아입구의 가치나 아시아 민족에 대한 야만적인 인식이 바로 그렇다. 아무리 민족주의라는 인류 보편적인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군국주의의 유래 없는 잔인성이 인류 보편적인 특성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만주에서 731부대의 생체실험이나 카미카제 특공대 그리고 북경 대학살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잔인성은 인류의 특이성이지 보편성으로 옹호되어서는 안 된다. 분명히 이러한 잔인성에서는 일본 민족만의 특이성이 존재하며 사무라이의 폭력성과도 이어지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http://www.kochinews.co.jp/cinema/06cinema35.htm

 


따라서 사무라이에 대해 일도양단이나 쾌도난마식의 명쾌하고 정의로운 측면만으로 무협의 재미와 복수와 정의의 감동만을 찾는다면 사무라이에 대한 미화에 전적으로 빠져드는 위험이 있다.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은 홋카이도의 아이누 족을 비롯해 재일 한민족에 대한 차별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일본은 독일을 배워야 한다.


무사의 체통은 일본적인 인식이다. 무사뿐만이 아니라  일본인은 체통이나 명예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무라이 영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할복은 체통이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극단적인 표현이다. 물론 체통이나 명예라는 가치는 모든 인간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이다. 할복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체통과 명예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에게는 더욱 숭고한 가치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무사로서의 체통, 아니 일본인으로서의 체통은 사실상 군국주의와 태평양전쟁으로 수치스럽게 상실했다. 체통뿐만이 아니라 인간성마저 상실해 버렸다. 아주 불의하고 잔인한 전쟁을 일으키고 인류에게 해악을 끼쳤다. 이제 일본인이 인류에게 체통을 지키는 것은 일본 민족에 한정된 배타적인 체통이 아니라 전 인류로 향하는 개방된 체통이다. 아직도 일본인의 체통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무사의 체통> 운운하는 영화를 버젓이 만든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슬픈 현실이랄 수도 있다. 일본은 역사적인 과오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참회하면서 잃어버린 무사의 체통을 회복하려고 진정으로 노력해야 한다. 


무사의 체통을 지키려는 미무라 신조(기무라 타쿠야)는 사실상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의 심정을 반영한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즉 사실상 강간당한 아내로 인한 무사의 체통을 지키려는 미무라의 의지는 36년 동안 침탈당한 한국인의 의지와 동일하다면 동일할 수 있다.  


“시마다는 카요를 가로에게 조언해 준다고 거짓말 하고 불쌍하게도…… 카요에게 강간이나 다름없는 일을 당하게 했다. 내 속은 아직도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만약 야마도 요지 감독이 수치스럽게도 무사의 체통을 잃어버린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으로 이 영화 <무사의 체통>을 만들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08.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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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3 18:25

[일본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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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3)

―마츠코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편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스런 내 딸, 마츠코!

마츠코, 세상의 어느 아비도 자식의 불행을 바라지 않는단다. 행복하기만을 바란단다. 세상 모든 부모의 심정이 그렇다. 자식의 불행을 지켜보아야 하는 그 사실 만큼 가슴 아프고 고통스런 일이 어디 또 있겠니.


그런데 마츠코, 난 널 지켜주지 못했구나. 불행하게 만들고 말았구나. 이 못난 아비로 인해 네가 불행해 지고 말았다니 나 자신이 용서되지가 않는구나. 이 아비의 부덕한 탓이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고통스런 일이다. 아비의 굳어버린 입장에서 새싹 같은 마츠코 너의 가슴에 피멍 맺히게 하고 말았구나. 그러나 믿어주렴. 처음부터 네 불행을 바란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이 아비의 가슴 깊숙이에 마츠코 너에 대한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네 동생은 병든 아이였다. 사랑과 관심이 특별히 필요한 아이였단다. 그러나 이 아비가 네 동생에게 보여준 사랑은 네게서 빼앗은 것은 결코 아니란다. 마츠코, 네 동생이 더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불쌍하고 가여웠기 때문이란다. 그 당시에 마츠코 네가 그렇게 생각했듯이, 결코 네 동생에 대한 편애는 아니었단다. 그러나 어린 네 마음에는 아비의 사랑이 그리웠고 외로움이 참기 어려웠겠지. 이 애비가 네 아픈 동생만 편애 한다는 오해는 어린 마츠코 너의 마음엔 지울 수 없는 상처였겠지. 이 애비가 네게 조금만이라도 더 따스하게 대했더라면 네 삶이 그토록 힘들게 되지는 않았겠지. 마츠코 네가 이 애비의 웃음을 얼마나 필요로 했는가를 진심으로 알았더라면 비극적인 오해는 생기지 않았겠지. 이 애비는 너의 그 깊은 슬픔을 안단다. 이 애비가 아픈 네 동생만큼이나 마츠코 너에게 사랑과 관심을 가졌다면 너의 삶은 얼마나 순탄했을까, 하고 생각하면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온단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별 대수롭지도 않는 일들이 당시에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란 걸 모르는 바 아니다. 이 아비도 어린 날의 삶의 과정을 거쳐 왔으면서도 미처 네게만은 이해의 따스한 손길을 내보이지 못했으니 인간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잊어버리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구나. 어린 내게는 아비의 무관심이 절대적인 고통이란 걸 미처 깨닫지 조차 못했다. 이 아비가 살아 온 방식으로 마츠코 너의 삶을 속박하려 했구나. 나에게는 살아온 시간이 더 많았고 너에겐 살아 갈 시간이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 지나간 과거의 방식으로 너에게 부단하게 영향을 끼치려고 했구나. 결국 아비의 굳어버린 머리 탓이었단다. 용서해 주렴 마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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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직에서 해고된 것이 이 아비의 무관심과 관련이 되어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단다. 이 아비의 웃음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이 아비를 웃기기 위해 익살스런 표정이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을까. 결국 그것은 이 아비의 굳어진 표정이 초래한 희극적인 동시에 비극적인 습관이라고 생각하니 아비의 무관심이 뼈에 사무치는 구나. 그 굳어진 익살스러운 표정이 네 학교에서의 사건을 더욱 악화시키고 마침내는 사표로 이어지는 불행과 그 이후의 비극을 초래하는 단초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아쉬움이 있다면, 마츠코야, 병들어 누워 있는 네 동생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마츠코, 네가 학교에 사표를 내고 동생을 저주하면서 목을 조르고 가출하는 행동도 충분히 이해를 한단다. 그러나 마츠코, 어린 시절의 너와는 달리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교사였던 너의 행동에 조금은 지나친 데가 있었다.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에 전적으로 지배받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너는 성인이 아니었니. 그런데 여전히 동생을 원망하며 동생의 목을 조르고 가출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마츠코야, 네 삶이 너무 가엾고 가슴이 아파 이 아비가 뒤늦게 하는 넋두리라고 생각해라. 너를 원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인데 지나쳐 온 시간들을 아쉬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니.     


마츠코, 이 세상 어느 누구가 너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넌 내 자식이다. 마츠코, 네가 이 아비를 탓해도 언제까지나 넌 내 자식이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어린 자식일 뿐이다. 마츠코, 너에 대한 이 아비의 사랑이 너무 가슴 깊숙이에 있어 서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오해였던 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감정을 쉬 내보이지 않으려는 이 아비와 너무 깊어 보이지 않던 이 아비의 사랑을 갈구하던 어린 마츠코 네가 서로 빗어놓은 어처구니없는 오해 말이다. 너무나도 긴 시간 후에 서로의 진실이 해후한다는 그 사실과, 그 오해와 해후 사이에 마츠코 네 비극적인 삶이 놓여 버렸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가 막히고 가슴을 찢는 고통으로 다가오는 구나. 늦었지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네가 이제는 이 아비의 사랑을 이해하듯이 이 아비 또한 네 진실을 알고 있단다. 이 아비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이 세상에 보여주려 했던 네 진실을 말이다.


마츠코, 이 세상엔 별 만큼이나 많은 오해들이 존재한단다. 그러나 이 애비와 너의 오해만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아야 할 오해들은 다 사라졌으면 좋겠구나. 마츠코 너로 인해 이 세상에 그런 오해들이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그런 작은 오해로 큰 불행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기 때문이란다.  아주 작은 오해 하나가 마츠코 너의 삶을 휘감는 큰 불행과 비극을 낳았다는 데 이 애비는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괴롭단다. 이제 긴 시간을 우회해서 우리의 오해도 풀렸지만 아직도 마츠코 네가 혐오스러운 존재라고 오해하고 그렇게 부르는 인간이 여전히 많은 듯하다. 작은 오해로 비롯된 네 삶을 빗대어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이 혐오스러운 마츠코라 불러도, 이제 더 이상 넌 결코 혐오스러운 마츠코가 아니란다. 이 아비에게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내 자식이란다.


마츠코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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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2 18:12

[일본영화]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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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blog.yahoo.com/donjuan0203/1.html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世界の中心で, 愛をさけぶ


감독:유키사다 이사오

주연:오사와 다카오, 시바사키 코우, 나가사와 마사미



1.앞에 붙인 사족

인간에겐 특별한 발명품이 있습니다. 잡을 수 없는 시간을 (일시적으로) 잡아두는 음성, 영상매체들이 그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매체의 발전은 기록의 발전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좀더 생생해지는 것입니다. 말에서 문자를 거쳐 음성 기록, 영상에 이르기 까지 생생해져가는 기록의 역사인 것입니다.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음악이 그렇고 영화가 그러하며 TV 프로그램들이 그러합니다. 인간들에겐 시간을 죽이거나 살리는 방식이 더욱 다양해진 셈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을 과거로 퇴색시켜버리는 시간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뉴스가 그렇습니다. 뉴스(News)는 새로운 것을 보는 듯하지만 사실은 과거의 지난 것(Olds)에 불과합니다. 사실 영상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들은 그 ‘시제’ 가 과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생방송이 그 예외에 속합니다). 그런데 뉴스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마도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의식을 깨우는 그 무엇‘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쳐 온 시간 속에는 놀랄만한 사건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뉴스란 우리가 이런 놀라운 사건과 놀라운 감정이 함께 공존하게 합니다. 한 개인에게 있어 이러한 뉴스들은 단순한 기억보다는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을 때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음성, 영상매체들은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듯 합니다. 과거를 다시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해주니까 말입니다. 사실 이러한 기술은 신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불경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기술이 긍정적이지 만은 않아 보입니다. 음성이나 영상으로 시간 한계의 폭을 넓혀주기는 했지만 사실 좀더 생생해진 과거에도 불구하고 돌아갈 수 없다는 그 애틋함은 더 커지는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음성이나 영상은 사진 몇 장으로 빠져드는 과거로의 추억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과거 그 자체에 빠져드는 감정’을 유발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가정을 해봅시다. 만약 한 인간을 방에 가두어 두고 죽은 자들의 소리들과 영상들만을 들려주고 보여준다면 그 인간은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이러한 상상은 여러모로 의문이나 의미를 만들어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음성이나 영상은 시간으로서의 과거가 아니라 유사 과거로서,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려는 인간의 강렬한 욕구를 다소 완화시켜줄 것인가? 아니면 더 큰 절망에 도달하게 할 것인가? 한 국가로 확대해 보아서 독일을 예를들어 생각해 본다면, 한 국가로서 독일이 히틀러나 유대인 학살에 집착만 한다면 독일 국민들의 정신 건강에 유익할 것인가? 유대인 학살에 관한한 ‘과거의 현재 진행형’이란 역사적 조명이나 성찰은 간과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쳐도 좋지는 않게 여겨집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인 것입니다.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개인으로도 국가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 조명이나 성찰은 학문으로 법으로 연구해서 그것의 재발을 막는 것입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실제로는 유대인들만이 아니고 동성연애자나 살인자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이나 폴포트의 학살들은 영상에 의한 전형적인 뉴스의 모습입니다. 혹 알렉산더 대왕이 히틀러 만큼이나 잔인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까? 징기스칸이나 네로 황제는 어떻습니까? 어쩌면 더 야만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기록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알렉산더 대왕, 징기스칸, 네로 황제의 이름만 남은 건 왜 일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뉴스화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등을 뼈에 사무칠 정도로 ‘현재 진행형화’ 할 수 있는 것은 영상 매체의 덕입니다. 인간은 영상 매체가 도달하는 범위내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아주 객관적인 듯 합니다. 하지만 영상 매체가 닿지 않는 범위내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주관적이고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영상매체의 한계로 의도적인 조작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기억에 의존하는 것과 영상으로 남겨진 것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을까요? 정말 기억해 두어야만 할 것들만이 영상에 남겨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선택된 것일까요? 평가하는 시점에서는 그 중요성이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생생한 영상이 오히려 사건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주관적이고 편협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한 개인에게 있어서’ 차라리 기억들에 의존하는 것이 좀더 공정하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억 속에 인상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이 좀 더 중요하고 의미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솔직히 공정한 게임이 되는 것입니다. 아니 공정하게 보인다고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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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영화 속으로

이 영화에서는 카셋 테이프 하나가 중요한 모티브가 됩니다. 이 테이프 하나가 구성과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씨에 비유하면 될 것입니다. 테이프는 과거를 반추케 하고 기억을 떠오르게 하니까 말입니까. 남자 주인공 사쿠(오사와 다카오)와 리츠코(시바사키 코우)는 애인 사이입니다.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사던 리츠코는 작은 분홍빛 스웨터에서 오래 된 카셋 테이프(1986.10.28)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단절하지 못한 그녀의 과거의 상처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테이프는 리츠코가 병원에서 언니로 알게 된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키(나가사와 마사미)[고교시절 사쿠의 여자친구]로부터 사쿠에게 전해주라고 부탁받고 학교 신발장에 테이프를 넣으러 가다 교통사고로 전해주지 못한 아키의 마지막 테이프였기 때문입니다. 리츠코는 이 테이프 때문에 부채감속에서 살아온 여자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듣고 있는 과거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과거를 ‘재생‘ 하는 것입니다. 리츠코는 태풍 29호가 몰아치는 밤 ’재생‘의 배경이 되는 시코쿠로 떠납니다. 사쿠는 이사를 가는 리츠코를 도와주려고 리츠코의 집에 들었으나 리츠코는 이미 떠나고 없습니다. 사쿠는 리츠코의 행방을 찾다가 친구 류가 일하는 카페에서 태풍 속보를 내보내는 텔레비전 뉴스 속에서 리츠코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순간 타카마츠 공항과 태풍 29호는 사쿠에게 아키와의 추억으로 맹렬하게 빠져들게 합니다. 테이프가 리츠코를 시코쿠로 떠나게 했다면 텔레비전 태풍 속보는 사쿠를 시코쿠(과거)로 떠나게 합니다. 여기서 음성과 영상 매체가 두 남녀 주인공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도구가 되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이후로는 사쿠와 아키의 ’뉴스’가 인상적으로 재생됩니다만 그들의 순수한 사랑이 아키의 백혈병과 죽음으로 인해 지속되지 못하는 슬픈 러브 스토리의 전형을 되풀이 합니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흔한 도식에 약간은 식상합니다만 젊은 날을 지탱하는 아기자기한 장식들과 슬픔의 감정은 영화를 의미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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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금속 이물질 ’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것을 좀 더 긍정적으로 좋게 말한다면 ‘창조적 모방‘ 이라거나 ‘창조적 시도’ 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저에겐 왠지 불필요한 것의 개입이 두드러져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남녀간의 고전적인 러브 스토리에  카세트의 녹음기술을 덧칠을 해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등장인물들의 기억에 근거한 회상들이 카세트(워크맨)에 의해 대체되고 매개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조용히 눈을 감고 회상하는 모습과 함께 과거의 추억들이 플래쉬 백 되는 것이 일반적인 영화의 양식인 것입니다. 서로 카셋 테이프를 녹음해 주고 받는 것도 그다지 자연스럽지도 않습니다(물론 영화에서는 자연스럽게 만들고 있지만.) 만약 이 영화에서 몇 몇 장면들을 제외하고는 굳이 카세트가 없더라도 기억에 근거한 회상으로도 얼마든지 스토리를 전개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매개도 대체로 기억이나 일기장, 그림, 음악, 사진 등입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감독은 과거를 좀 더 생생하게 현재와 공존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테이프속의 생생한 목소리가 좀 더 실감나는 감정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흐릿한 기억이 아니라 좀 더 현대적이고 좀 더 분명한 기억의 근거를 제공해주는 듯도 합니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 사쿠가 워크맨 헤드폰을 끼고 자신의 고향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재생 버튼을 누르는 모습은 사랑이란 서정적 감정에 금속 이물질이 끼어든 것처럼 어색해 보였습니다. 물론 저만의 느낌이겠지요. ‘금속 이물질‘을 창조적인 작업인지 불필요한 덧칠인지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겠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여러분의 판단과는 별개로 앞서도 말했지만 전통적인 러브 스토리에 금속 이물질이 끼었다고 했지만 ‘이러한 시도들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볼 필요는 있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영화 <연애사진>은 ‘금속 이물질’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진기나 워크맨이나 달리 볼 필요는 없을 듯도 합니다. ‘운영의 묘‘ 를 효과적으로 적용한다면 충분히 극복될 문제가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영화도 진화해야 되니까 말입니까? <연애사진>이 카메라와 사진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카세트 녹음기(워크맨)에 중심을 두고 있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영화감독 간에 교류가 있다면 이러한 흡사한 모티브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교류가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발명한 이러한 기계들을 가지고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들의 욕망입니다. 타임머신을 타던 영상을 보던 그 도구 외적인 의미의 공간에서 그 욕망은 크게 두 가지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현실 도피적인 욕망입니다. 다른 하나는 치유의 욕망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치유의욕망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사쿠가 찾아가는 과거라는 시간. 리츠코가 찾아가는 과거라는 시간. 그들은 과거라는 시간과 다시 ‘대화’ 를 하고자 합니다. 대화라는 말은 카셋 테이프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과거라는 시간 속에서 그들이 지키지 못했던 약속을 다시 지키기 위해 과거로 다시 돌아갑니다. 이러한 치유의 욕망은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만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성찰이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미래 지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미래 지향적인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지만 시간에 대해서는 냉정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깊은 감정에 빠져 워크맨 헤드폰을 쓰고 여기저기를 휘젖고(?) 다니는 사쿠와는 달리 <우평사진관> 주인 시게 아저씨의 존재는 우리가 우리의 과거(시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있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시게 아저씨의 가슴에는 젊은 날의 부글부글 끓는 열정이 사라지고 원숙한 냉정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진관의 존재가 마치 비현실적이고 신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시간을 잡아두는 사진관이지만 초월적인 시간의 존재를 관조하는 장소이기에 그렇습니다(종교적인 의미로 확대해도 될 것입니다.) 비록 시간을 사진 몇 장으로 잡아둘 수는 있겠지만 시간을 거스러지는 못하는 인간의 종속적 위치에 대해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냉정한 관조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시게 아저씨의 모습은 조금 차갑고 쌀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감독이 우리가 닮아가야 할 어떤 상징으로 제시했다면 이 시게 아저씨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백혈병으로 죽은 아키와 관련해서 잠시 언급하고 이 영화에 대한 감평을 끝맺기로 하겠습니다. 아키는 다재다능한 소녀입니다. 그녀에게는 소중한 꿈이 있습니다. 사쿠와의 순수한 사랑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사춘기 시절의 순수한 사랑의 감정은 절대적인 감정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들이 갖는 애틋한 감정을 유발시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불치병에 걸려 그 대상 중에 하나가 죽는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청소년기에는 자기 확장의 욕구가 큽니다. 자기 현실을 벗어나 꿈이나 이상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도 바로 자기 확장의 욕구가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키와 사쿠가 배를 타고 ‘꿈의 섬‘ 으로 가는 것이나, 그곳에서 발견한 카메라에 찍힌 호주 우룰루(호주 원주민들의 말로, 세상의 중심이란 뜻)의 사진을 보며 꼭 가보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기 확장의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렇게 자신의 세계가 조금씩 넓어지는 시기에 백혈병이 아키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문제는 백혈병으로 인해 이러한 자기 확장의 욕구가 꽉 막힌 아키의 존재입니다. 살아야 할 시간이 까마득한데 벌써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대사에 그러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호주로 가기 위해 시게 아저씨의 사진관에서 죽음을 앞둔 아키는 이런 말을 합니다: “전 잊혀지는 게 두려워요. 지금의 저를 사진에 담아주세요. 사진은 영원히 남잖아요.” 그리하여 사쿠와 아키는 결혼 사진을 찍습니다. 사쿠가 언제나 가슴 아파하는 것은 아키와 마지막 꿈인 호주 우룰루에 가지 못한 것입니다. 태풍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시코쿠에서 리츠코와 만난 사쿠는 아키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함께 우룰루로 떠납니다. 비록 차가 고장나 우룰루에는 오르지 못하지만(실제 우룰루로 설정하기에는 그곳이 너무 높았던 것 같음) 근처 둔덕에서 아키의 유골을 뿌려줍니다. 그들과 함께 아키의 영혼도 자유로워 집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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