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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0 08:44

목욕탕의 추억(5)



이미지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011732355&code=210000



지금 내가 사는 작은 서민 아파트에서 보면 강 너머로 거대한 최신식 리조트 건물이 보인다. 이전에는 파라다이스 사우나였던 그 건물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아니 단 둘 밖에 없다. 나와 때밀이 이모 단 둘 밖에.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서민 아파트는 오래 전에는 달동네였다. 슬레이트 지붕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던 작은 동네였다. 바로 지금의 최신식 리조트 건물인「복합 리조트 단지」는 1980년대초에는 우리 집이 있던 산 중턱에서 멀리 바라보면 주위의 나지막한 건물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우뚝 솟아 있는 건물 — 사실 건물은 4층 밖에 되지 않았고 굴뚝이 무척이나 높았기 때문에 그런 인상으로 남아있을 것인데 — 인 파라다이스 사우나였다. 즉 파라다이스 사우나는 「복합 리조트 단지」의 전신인 셈이다. 그 부근에서는 하나 밖에 없던 기존의 목욕탕을 확장 개수해 세련된 파라다이스 사우나란 이름으로 재개업을 한 것이다. 밤에 보면 그 파라다이스 사우나는 너무나도 화려해서 마치 아이들의 놀이동산을 연상시켰다. 당시에는 공중목욕탕이 꽤 호황을 누리던 때였다. 그리고 한 몇 개월 뒤쯤에 우리 동네에도 낙원탕이란 공중목욕탕이 생겼던 걸로 기억한다.


두 목욕탕은 이름부터가 희한하기도 해서 한 동안 동네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동네를 가로 질러 흐르는 작은 하천의 남쪽에 파라다이스사우나가, 하천의 북쪽에 낙원탕이 서로 마주하고 자리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천지남(川之南) 사우나, 천지북(川之北) 탕이라고 불렀다. 또 그 형세가 서로 마주하고 으르렁거리는 기세라 하여 사우나 ‘사’ 자와 탕의 ‘탕’ 자를 따서 사탕지기세라고 부르기를 즐겨했다. 하지만 이것은 동네사람들이 재미삼아 붙여 준 것일 뿐 워낙 동네 인구에 비해 목욕탕의 숫자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가정 내의 목욕이나 샤워 시설이 일반화 되지 않아 서로간의 과다한 경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남의 사우나나 천북의 탕이 서로 상업적인 과다 경쟁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보이지 않는 갈등의 자력권을 형성했다. 그것은 천남 지역과 천북 지역의 경제적, 교육적, 문화적 차이를 ‘사우나’ 와 ‘탕’ 이란 말이 대변해 주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동네는 고래로부터 천의 북은 산이 많아 토질이 척박한데다 전쟁 피난민들이 산기슭 곳곳에 정착하면서 판자촌을 형성했다. 이와는 달리 천의 남은 평야지대로 농사를 지으며 천석꾼, 만석꾼들이 많았다. 그래서 천남에는 농사일을 돕는 천북 사람들이 많이 옮겨가 살았다. 설상가상으로 평지에다 천(川)을 끼고 있는 천남은 대규모 위락단지와 주거단지가 들어서면서 알토란 같은 돈을 챙기는 주민들이 부지기수로 생겨났던 것이다. 파라다이스 사우나는 바로 이런 변화와 더불어 리모델링된 것이다.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주인은 상호와는 달리 기독교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반쪽의 기독교인이라고는 할 수 있었다. 그가 사우나의 이름을 파라다이스로 붙인 이유는 세계에서 제일 큰 「대망교회」가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주일마다 뻔질나게 교회를 드나들면서 형제, 자매, 자녀 같은 단어들을 불러대는 것도 파라다이스 사우나가 세례의 장소로 이용되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그는 예수의 존재는 믿지 않았지만 천국은 믿었다. 신은 믿지 않았지만 파라다이스는 믿었다. 즉 그는 사후에 그 자신이 가야할 천국의 존재만을 믿었을 뿐 그 외의 것들은 깡그리 부정하는 단세포적인 위인이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그는 원래 외지인으로 패밀리를 거느리고 천남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사업적인 역량을 발휘해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사장에 이르게 된 것이다. 패밀리에 대한 오해가 있을 것 같아 조금 부가하면 그들은 여자라고는 한 명도 없는 모두 건장한 사내들로 구성된 검은 선글라스에 검은 양복을 즐겨 입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약간은 혐오스러운 사람들이었다. 등짝에 그려진 용문신이 인상적이었다.


이와는 달리 천북의 낙원탕 주인은 전쟁 피난민으로 판잣집에서부터 슬레이트집 다시 시멘트, 콘크리트 집으로 이어져 마침내 낙원탕의 굴뚝을 우뚝 세움으로서 성공의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천북 지역으로 국한해서만 가능한 표현이었다. 천의 남 파라다이스 사우나와 비교를 한다면 그 초라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낙원탕의 주인은 반쪽짜리 종교인이 상대조차 할 수 없는 진실한 불교신자였고 선량한 위인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식솔에서 차이가 났다. 선량한 얼굴의 아내와 부모의 마음을 항상 헤아리고 이웃들을 공경하는 착한 두 남매가 그들이었다.


물론 나는 천북 지역에 살았다. 판자집이나 천남지역에서 일품을 파는 집은 아니었지만, 경제적으로 그다지 풍족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외항선을 탔고 엄마는 천남 지역에 있는 작은 가내공장에서 일했다. 그 공장은 파라다이스 사우나와 낙원탕, 그리고 숙박업소들의 목욕용 타월을 세탁했다. 당시에는 세탁기가 일반화 되지 않아 엄마는 그곳에서 타월 손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정리를 했다.


엄마는 나를 낙원탕에 자주 맡겼다. 낙원탕에는 엄마 친구가 때밀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를 ‘때밀이 이모’ 라고 불렀다. 때밀이 이모는 천남에 살았다. 원래부터 천남에 산 것은 아니고 천남 사내와 결혼을 해서 천남으로 이주를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천남에 사는 부자 집안에 시집을 간 것은 아니다. 결혼할 당시 때밀이 이모의 남편은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전신인 천남탕 보일러실에서 일했다. 이후 파라다이스 사우나로 재개업을 하면서 보일러실의 책임자가 되었지만, 말이 책임자지 여탕, 남탕 각각 두 명씩 있는 보일러실의 고참 사원격이었을 뿐이었다. 때밀이 이모도 원래 천남탕에서 때밀이를 하다가 파라다이스 사우나로 바뀌면서 낙원탕으로 옮겨왔다. 외모와 학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보일러실과는 달리 때밀이 이모는 때밀이가 요구하는 학벌과 용모에 적합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벼락부자들과 벼락 부자들인 외지인들이 모여들면서 천남탕의 고객들과는 달리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고객들의 수준이 벼락의 진원지처럼 높아진 탓이었다고 한다. 때밀이 이모에게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마치 불가촉 천민이기라도 한 것처럼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고객들이 때밀이 이모를 경원시 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괴로워 하던 때밀이 이모는 다행이도 천남탕에서의 경력을 발판 삼아 낙원탕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때밀이 이모가 낙원탕으로 옮겨 온 이유에는 외모와 학벌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것은 때밀이 이모 대신에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때밀이로 취업이 된 여자가 박사 학위 소유에 출중한 미모를 가진 20대의 아가씨라는 사실이 입증하는 것이다.


사실 때밀이 이모는 낙원탕으로 옮기기 전 한 달 정도 파라다이스 사우나에서 계속 일했다. 당장 때밀이가 구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고달픈 나날들이었다고 한다. 그 한 달 동안 때밀이 이모는 천남 귀부인들로부터 갖은 설움과 수모를 받은 모양이었다. 때밀이로 대우해 주기 보다는 하녀처럼 부려 먹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설상가상 그녀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죄다 때밀이 이모와는 다른 별 세계의 이야기들로 가득하였으니 참으로 참기 어려운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재력이나 명예에 대한 이모 자신의 열등감 또한 속으로 삭이기 힘들 정도로 컸을 것이다.


때밀이 이모가 겪었던 이런 다른 세상(파라다이스 사우나)을 그녀는 마치 갈 수 없는 동화나라라도 되는 것처럼 내게 들려주었다. 일하러 나가는 엄마가 나를 때밀이 이모에게 맡겨 놓을 때면 때밀이 이모는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고 마치 동화를 이야기 하듯이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한 것 같았다. 그것은 어린 나의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반복되어 아직도 생생한 영상처럼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때 때밀이 이모는 이렇게 말했다.


“파라다이스 사우나에는 악어들이 많이 산단다. 욕탕은 아주 넓어서 악어들이 느리게 헤엄을 치고 논단다. 악어들은 말을 할 수 있는 데 목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단다. 주인님, 어디를 밀어 드릴까요? 그러면 목욕하는 사람들, 아니 악어의 주인들은 이렇게 말한단다. 황금 이쑤시개 2개를 줄 테니 등껍질로 등을 좀 밀어봐! 그러면 옆에 있는 또 다른 주인이 이렇게 말하지. 난 말야, 발바닥을 네 꼬리로 좀 문질러죠. 황금 물고기 세 마리를 주마. 그런데 악어는 그 주인의 냄새, 즉 황금의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잡아 먹어 버린단다.”


그리고 또 이런 이야기를 했다.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체중계의 숫자와 발판은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단다. 귀여운 원숭이들이 체중계의 발판을 항상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하게 닦는 단다. 원숭이들은 말할 수 있는 데 이렇게 말한단다. 주인님, 갈수록 몸매가 날씬해 가시네요. 그러면 주인들은 원숭이에게 황금 과일 꾸러미나 황금으로 된 소고기를 준단다. 원숭이들은 그 주인의 냄새, 즉 황금의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들은 ‘흥’ 하고 무시를 해버린단다.”


때밀이 이모가 내게 왜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저 추측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마치 동화를 이야기 하듯이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한 것이라고 말이다. 때밀이 이모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본적도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화책 하나 없는 내게 들려준다고 한 게 그렇게 지어낸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모의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다. 파라다이스 사우나에 악어와 원숭이가 있고 황금물고기와 황금 이쑤시개, 그리고 황금 과일 꾸러미와 황금 소고기가 있다는 것은 정말 신기했다. 황금을 던져주는 그 주인들도 어떻게 생겼을지 정말 궁금했다.




이모는 내게 이런 사실을 아무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를 하면 엄마, 아빠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때밀이 이모가 그렇게 내게 겁을 준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제거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때밀이 이모의 그런 말만 없었더라도 나는 엄마에게 파라다이스 사우나에 대해 물었을 것이고, 드물게 보는 아빠이지만 파라다이스 사우나에 데려달라고 생떼를 섰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내게는 크나 큰 고통이었다. 6살 밖에 되지 않는 꼬마에게 말하는 악어와 원숭이는 함께 놀아야 될 대상이었다. 가슴 설레는 동화나라였다. 지금도 그 감정은 너무나도 강렬하다. 파라다이스 사우나에 대한 호기심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갔다. 세상에, 내가 사는 마을 산 중턱에서 멀리 보이는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거대한 건물에 말하는 악어와 원숭이가 있다니!


내가 모험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악어와 원숭이와 말하고 싶었다. 모험을 떠난 첫날로 그 모험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그 모험은 참담한 실패였다. 우리 마을에서 바라보던 손에 잡힐 듯한 그 건물이 내가 막상 찾아 나서는 순간 어딘가로 사라지고 보이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어둠이 밀려왔고 방향감각은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그 화려하던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불빛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좁은 골목길의 전봇대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잠이 들고 말았다.


깨어보니 때밀이 이모의 무릎 위에 머리를 배고 누워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랐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시간이 흐물거리는 듯한 느낌이었고 뒤죽박죽 혼돈된 느낌이었다. 이 이해하지 못할 현상은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 놓은 무뎌진 내 기억 탓인지는 모르겠다. 이제 이 기억 속을 다시 헤집고 들어가기에는 지나온 시간이 너무나 긴 듯하다.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그 말하는 악어와 원숭이를 만나 함께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파라다이스 사우나의 기억은 그렇게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말하는 악어와 원숭이와 함께.


사족: 2010년에 파라다이스 사우나는 최신식 리조트, 즉 「복합 리조트 단지」로 재개발 되었다. 그 건물의 21층에 있는 아이들의 놀이시설인 「Children's Playground 」에는 말하는 악어와 원숭이가 있다. 아니 말하는 자동차와 로봇도 있다. (*)

(2009.5.9.01:30)

위의 사진 모든 이미지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011732355&code=2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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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주부를 마치고 나면 녹색 운동가가 되겠다






전업 주부를 마치고 나면 녹색 운동가가 되겠다


며칠 전 7, 8년쯤 된 낡은 구식 휴대폰을 공짜폰으로 교환을 했다. 순전히 아내가 나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낡은 휴대폰을 구입할 때도 그랬다. 나는 휴대폰을 가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때까지 휴대폰 없이 잘 생존해왔고 잘 생존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홈쇼핑으로 신청한 휴대폰이 도착했을 때 아내에게 투덜거렸다. 왜 이렇게 괜한 짓을 하느냐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된 폰이었다.

그걸 새로운 휴대폰으로 바꾼 것이다. 내 의견을 무시하고 커플폰 휴대폰이 생활의 필수품이니 어쩌니 하는 아내의 잔소리에 인상만 한 번 찡그렸을 뿐이다. 어차피 사용해야 할 것이라면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았다. 7, 8년 동안 그 낡은 휴대폰은 별 유용하게 사용되지 않았다. 휴대폰 자체는 유용한 것이고 나 자신이 그것의 유용성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한 달에 몇 통화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휴대폰 요금은 꼬박고박 2만 원 이상씩 청구되었다. 차라리 이 돈으로 적금을 드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휴대폰을 없애지도 적금을 들지도 못했다.

아내는 직장을 다닌다. 매일 아침 7시에 고등학교 1, 2학년 연년생인 큰 딸,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선다. 아내는 아이들을 학교에 실어다 주고 자신의 직장으로 간다. 아내는 인터넷 포탈 업체에서 애니메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벌써 10년째이다. 그 사이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만 두었다기보다 쫓겨났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10년째 살림을 도맡아 왔으니 전업 주부(主夫)인 셈이다. 그러나 전업주부 답지 않게 일탈적인 주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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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 2009, 강철중에게 묻는다.


목욕탕의 추억(4)

― 공공의 적 2009, 강철중에게 묻는다


가끔씩 늦게 목욕탕을 가서 혼자서 목욕을 하는 경우가 있다. 목욕탕 문을 닫는 시간이 가까워져 마지막으로 혼자 남거나, 이상하게 목욕탕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그날도 그런 경우였다. 한 사람 두 사람 빠져 나가면서 나 혼자만 남았다. 혼자일 때는 부담스러웠다. 마칠 시간도 아니고 나가야 할 이유도 없건만,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이 괜히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벗겨내어야 할 몸의 때는 많이 남았는데 이런 경우가 생기면 때에 대한 집착 보다는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텅 비어 있어야 할 곳에 불필요한 존재처럼 혼자 있어야 한다는 몹쓸 생각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다행이었다. 내가 머리를 감고 있는데 욕탕문 여닫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면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렸다. 비록 욕탕문을 등지고 앉아 머리를 감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내게 마치 구원소리처럼 들렸다. 순간 나는 마음이 편해져 왔다. 다시 때를 편하게 벗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희망에 다시 부풀었다. 내가 머리를 두 번 감고 있는 동안 그는 잠시 몸에 비누칠을 하고는 탕 속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발길질로 생긴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내가 머리를 들고 뒤로 힐긋 돌아다보니 그는 욕탕에 머리만 내놓고 굵은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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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의 추억(3)


참 오랜만에 목욕탕을 갔다. 보일러가 고장 나 온수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참석해야할 행사가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오전에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여동생을 전송하고, 오후에는 사촌의 결혼식과 대학원 논문 프레젠테이션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물론 뒷풀이까지도...... 굳이 목욕을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목욕을 의무감처럼 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오랜 기간 동안 보지 못할 여동생에 대해서는 내 몸을 씻지 않고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우울함이 큰 작용을 했다. 물론 결혼식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결백증이라는 것일까, 하고 생각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작은 웃음이 나왔다.


평일 날이었는데도 그날은 이상하게 목욕탕이 만원이었다. 도시 변두리 작은 마을에 하나 밖에 없는 공중목욕탕이었지만, 그렇게 만원인 적은 없었다. 갑작스런 만원이 어떤 복선이었을까? 귀중품을 카운트에 맡기지 않은 나의 잘못이 현실화 되고 말았다. 목욕을 하고 나오니 사물함이 열려있었고 양복의 안주머니 속 지갑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내 지갑에서는 적지않은 현금과 신용카드 2장이 들어 있었다. 그런 것은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나 내가 오랜 동안 간직해 온 내 첫사랑의 징표만큼은 꼭 되찾아야만 했다. 바로 잃어버린 지갑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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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20.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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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31 02:25

목욕탕의 추억(2)




이미지의 출처는 http://kr.news.yahoo.com/servi

터키목욕탕(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vsv12






목욕탕의 추억(2)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목욕탕 가는 것이 두려웠던 때가 있었다. 그 두려움은 뜨거운 물에 대한 두려움이라거나, 피가 나도록 까칠한 때밀이 타월로 등껍질이 벗겨지도록 박박 문질러대던 시력 나쁜 엄마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라거나, 욕탕에서 물속으로 머리를 강제로 밀어 넣곤 하던 삼촌의 잔인성에 대한 두려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런 것들은 목욕탕 자체에 대한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아버지가 하던 작은 떡집이 망하고 말았다. 사업이 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보증을 잘못 선 탓이지만, 그 이전부터 아버지의 가게는 내리막길이었다. 떡에서 쥐꼬리가 나왔을 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은 이해해주었다. 그러나 두 달 뒤 바퀴 벌레가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세 마리가 나오자 동네 사람들은 발길을 다 돌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빚보증까지 뒤집어쓰고 만 것이다. 우리 가족은 길바닥에 한 동안 나앉아 있어야만 했다. 나는 바퀴 발레가 한 없이 원망스러웠다. 아버지는 어디 한적한 시골 마을의 외양간에라도 정착할 수 있을 만 한 돈을 구하려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셨다. 아빠의 그런 노력으로 길바닥에서의 생활을 그나마 일찍 끝낼 수가 있었다. 다행히도 여름이었기에 비록 짧은 기간이라도 견딜 수가 있었다.

이사를 간 곳은 북쪽으로는 폐광이 있고 남쪽으로는 6.25때 미군의 오폭으로 마을 주민들이 몰살되어 이제는 지명조차 사라진 곳으로 대규모 개사육장이 있었다. 동으로는 높은 산들로 막혀있고 서로는 큰 사과 과수원이었다. 나는 사과 과수원이 있는 마을 학교로 매일 아침 30분을 걸어 다녔다. 그 곳에서 정착하고 아빠와 엄마와 누나는 개사육장과 과수원으로 일하러 나갔다. 아빠와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포기한 체 개 사육장에서 개밥과 오물을 처리하는 누나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것이 생계를 위한 수단 전부였다. 물론 계절에 따라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사는 마을은 집이라고는 나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서로 외떨어진 10호의 초가와 슬레이트집들이 전부였다. 작은 마을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이런 곳에 공중목욕탕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이상했다. 하지만 물이 귀한 작은 마을에서 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온천수가 솟아나는 곳이었다. 그 온천수 위에 지어진 목조의 목욕탕이었다.

그 때 목욕탕은 내게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제는 그런 목욕탕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음산하고 을씨년스러운 외관을 하고 있었다. 방금이라도 쓰러질 듯한 목조벽에 슬레이트 지붕이 덩그러니 놓여 진 단층 구조물이었다. 그 구조물을 정면에서 보면 시골의 여느 재래식 화장실의 문짝처럼 사개가 맞지 않아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삐거덕, 삐거덕거리며 을씨년스런 소리를 내는 두 짝의 볼품없는 나무문이었다. 그 문에는 붉은 페인트로 각각 남, 녀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었다. 욕실 안에는 나무 바닥에 온천수가 퐁퐁 솟아나는 작은 샘이 있고 그 샘 주위의 편편한 돌 위에 두 개의 비누와 그 옆으로 목욕용 수세미 바가지가 몇 개 놓여져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마을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공중목욕탕이었다니! 그나마 공짜로 목욕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목욕다운 목욕을 하기 위해서는 그곳이 아니면 1시간을 걸어서 읍내로 나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불편을 감수하지는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곳은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산중의 음산한 폐가보다도 나에겐 더욱 무서웠다. 도대체 나는 그런 목욕탕을 한 번도 본적도 없거니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런 그곳에서 나는 혼자 목욕을 해야만 했다. 엄마는 저녁을 먹은 후 누나와 나를 거의 강제적으로 목욕탕으로 쫓아내곤 했다. 그것은 아빠 때문이었다.

처음 산골 마을에 정착을 하면서 아빠는 새로운 의욕을 가지고 사과 농원에서 잡일을 도맡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빠는 술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방에서 하루 종일 나오지 않고 술만 마셔대었다. 엄마와는 언쟁이 끊이지 않았다. 알콜 중독에 무능력해진 아빠와 생활력이 강했던 엄마 사이에 고요한 샘물이 솟아날 수는 없었다. 사나운 물살에 누나와 나는 휩쓸려가지 않으려고 매일 매일 안간힘을 다해야 했다. 아빠는 술 만 마시면 신세 한탄에 엄마와의 언쟁에 폭언에 폭행을 일삼았다. 그 해 겨울, 아빠는 삶을 포기한 것 같았다.

그렇게 엄마에게 떠밀려 밖으로 나가면 사방은 흰눈으로 덮여있었고 목욕탕 외에는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 불행이었다. 목욕하는 것도 싫었지만, 이미 말한 것처럼 목욕탕 그 자체가 정말 끔찍이도 싫었던 나로서는 너무나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목욕탕까지 흰 눈을 밟으며 누나와 함께 걸어가면서 나는 누나에게 같이 목욕하자고 졸라대기도 했다. 그러면 누나는 내가 사내답지 못하다고 타박했다. 나와는 9살 터울인 누나는 내게 언제나 부드럽게 대해주었지만 목욕을 함께 하자는 말에는 완고하게 거절했다. 또한 마을 주민이라고는 10여명이 전부다 보니 나는 혼자서 목욕을 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가끔 누군가가 먼저와 있으면 내 마음이 그렇게 편해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너무나 드물었다. 아무도 없는 음산한 욕실에서 혼자 목욕하는 어린 아이의 심정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목욕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목욕이 부수적인 활동이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몸에 물을 끼얹고, 머리를 감는 동안 오싹해지는 등짝을 몇 번이나 추슬러야 했는지 모른다.

바로 그런 곳, 나의 육신과 정신을 사납게 물어뜯던 그 음산한 공중목욕탕을 떠나는 것은 내 기도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마침내 그토록 시달리던 공포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왔다. 2년 후 그 산골 마을을 떠나 한 작은 도시 변두리로 이사를 하였다. 정말 너무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허물어진 폐가 같던 공중목욕탕을 떠나게 되었을 때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그 마을을 떠날 무렵 그 공중목욕탕은 전국에서 제일 큰 온천으로 변했고, 그 산골 마을은 한 순간에 벼락 부자촌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는 누울 수 있는 손바닥만한 작은 땅 한 평조차 없었다. 어쩌면 개발이 가져다온 더 커나 큰 불행이었는지 모른다. 더해, 아빠는 죽음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변하는 산골 마을을 보면서 떠나야 했던 것이다. 그 산골 마을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온천파크가 될 지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도대체 그들이 슬퍼해야 할 이유를 나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소중한 자식의 해방감에 대해서 무관심한 그들이 그저 못마땅할 뿐이었다. 오직 내가 그토록 무서워했던 공중목욕탕을 떠나는 것이 그저 다행스럽기만 했다. 나는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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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14:47

목욕탕의 추억(1)



 

순결한 수산나, 헤너


목욕탕의 추억

어린 시절 목욕탕은 놀이터와도 같은 곳이라 생각할 것이다. 오늘날의 수영장을 대체하는 의미가 있었다거나, 엄마와 함께 여탕으로 가던 추억이나, 목욕후 아빠가 사주던 짜장면에 대한 추억들 따위로 어린 시절과 목욕탕을 낭만적으로 연결 지으려고도 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런 추측은 9할 정도는 맞을지도 모른다. 목욕탕이 낭만적인 곳이었다는 생각은 보편적인 생각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목욕탕에 대한 기억이 그리 낭만적이지 못하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엄마와 함께 여탕을 이용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간혹 여탕에서 목욕하기도 했다. 이건 내겐 낭만이 아니라 차라리 악몽이었다. 엄마의 편리를 위해 희생된 비극적인 결과였다. 빈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심지어 나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도 엄마와 함께 여탕을 들락거렸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애가 여탕에 가기에는 좀 커지 않나 하는 소리를 듣기도 하면서도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여탕으로 향했다. 엄마는 억척같고 생활력이 강한 여자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상하게 내가 엄마 손을 잡고 여탕의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 순간부터 같은 반 여학생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나의 초등학교 1, 2학년 여학생들은 나의 나신에 꽤 익숙해 있을 것이다. 남자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드물게 보았기에 나는 여탕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 더욱 부끄러웠다. 그 아이들은 어디에서 목욕을 할까? 아빠를 따라 남탕으로 가겠지? 여자 아이들을 볼 때면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고추가 뻣뻣해져 얄궂은 수치심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탈의실에서부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여자 아이가 있는가부터 살폈던 것이다. 만약 여자 아이가 있으면 아예 등을 돌리고 후다닥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욕실에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참 단순한 행동이었다. 작은 욕실은 더욱 더 피할 곳이 없었으니 말이다. 공간의 제약이 더욱 심해서 함께 나란히 앉아야 할 경우도 있었다. 작은 목욕탕은 가끔 악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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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9 20:25

벌거벗은 여인들의 정체





벌거벗은 여인들의 정체


사진출처: http://kr.blog.yahoo.com/pete_.



세상에는 수많은 만남들이 존재하지만 만남에 대한 희망에 비해서는 그 수가 적을지도 모른다. 원하지 않는 만남들이 수많은 만남들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세상은 또 그런 만남을 거품처럼, 아니 윤활유처럼 해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꼭 원하는 만남을 가슴 속 깊이 묻어 둔 채로 원하지 않는 만남으로 지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떤 이유로 투덜거리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택배가 올 것이라는 것을 전화로 알고 있었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문을 열었다. 택배회사 로고가 붙은 모자나 옷을 입은 택배회사 사원이 아니라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있는 여자였다. 상상하지도 못한 광경이었다. 나는 급하게 문을 닿으려고 했지만 이미 그녀가 몸을 반쯤 안쪽으로 헤집고 들어 온 상태였다. 그녀는 숨을 조금 허덕이고 있었지만 그다지 다급한 움직임은 없이 침착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안에서 문을 닫고는 돌아서서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나는 그녀에게 남자 옷이긴 했지만 청바지와 셔츠를 건네주었고 그녀는 미안한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는 옷을 입었다. 그녀는 음료수를 한 잔 마시고는 쇼파에 누워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서 너 시간 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머리를 쓰러 넘기며 내게 말했다.

“고마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을 뿐이다. 그녀는 들어왔던 문으로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졌다.

*

세상에는 수많은 죽음이 존재하지만 어느 누구도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는 없다. 살아있는 자가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일 것 같은 어떤 것’ 에 불과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 강하기에 죽음일 것 같은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조차도 우리에겐 강한 호기심 일으킨다.

교통사고였다. 나는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이었고 길에는 벌거벗은 여자의 시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누워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있던 그녀의 얼굴과 중첩이 되었다. 그러나 같은 여자는 아니었다. 이번의 누드의 여자는 이전의 여자보다 머리칼이 짧았다. 그녀는 왜 벌거벗은 몸으로 도로로 뛰어든 것일까? 그녀가 쓰러져 있는 곳은 횡단보도가 아니었다. 불가사의였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나 차에서 내려서 보고 있는 사람들이나 인도에 서있는 사람들이나 모두들 놀란 표정이었다. 그녀는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아무도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가던 장례식장으로 다시 향했지만 이 일은 오래 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

그 교통사고가 있고 몇일 뒤 나는 맛선을 보았다. 부모의 재촉 때문이었다. 나의 부모는 삼십대 중반이란 나이를 넘긴 내가 아직도 결혼하지 않고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언제나 걱정했다. 맞선을 본 상대 여성 O는 부모가 함께 나온 맞선 장소인 호텔 카페에서는 다소곳했다. 그러나 부모들이 물러나자 O는 내게 이색적인 제안을 했다. 결혼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다. O는 과감하게도 나이트클럽에서 함께 춤을 추자고 제안을 했던 것이다. 나도 결혼이란 것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지 않던 터라 O가 그다지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그날 밤의 시간을 O와 함께 즐기기로 했다. 정말 신나게 춤을 추었다. 술도 꽤 마셨다. 그런데 이상한 헤프닝이 발생했다. 무대 스테이지 위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을 부르던 악단도, 무희들도, 아래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던 한 무리의 남녀들도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3분 정도 나신으로 몸을 흔들어대다 조용히 무대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아무도 그녀를 다시 보지 못했다. 그런 이상한 일에도 불구하고 그날 참 흥겨웠다. 세상 근심 떨쳐내려는 듯이 춤을 추었고 현실을 잊기라도 하듯이 술을 마셨다. O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O와 나는 나이트 클럽에서 흥겨운 시간을 보낸 뒤 헤어졌다. O는 나이트 클럽에서 만난 친구들과 더 흥겨운 시간을 가졌고 나는 나이트 클럽을 나와 정적이 기다리고 있는 나의 원룸으로 향했다.

*

세 명의 벌거벗은 여자들! 쇼파 위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첫 번째의 여자, 도로에 쓰러져 있던 두 번째의 여자, 나이트 클럽에서 춤을 추던 세 번째의 여자. 나는 그녀들의 존재가 환영이라고 한동안 생각했지만 결코 그녀들은 환영이 아니었다. 내가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 것은 얼마 전 달이 바뀌면서 넘겨놓은 달력의 그림 때문이었다. 그림 속에는 벌거벗고 있는 세 여인이 그려져 있었는데, 알고 보니 루벤스란 화가가 그린 <파리스의 심판>이란 그림이었다. 그 여자들도 인간이 아니라 여신들이었다. 바로 아테나, 아프로디테, 헤라였다. 내가 현실에서 본 여신들의 이름이 일치되지는 않지만 내가 본 여자들이 <파리스의 심판>에서 튀어나온 여신들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 여신들이 그 그림 속으로 다시 들어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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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 기행




변소기행(便所奇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녀가 한데 모여 있어야 돌아가는 이 세상에는 그와는 반대로 남자와 여자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하는 공간들이 있습니다. 바로 공중목욕탕과 화장실이 그러한 공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대체로 우리와 마찬가지라 봅니다. 이렇게 남녀를 구분하는 이유가 사회적인 금기로 관습화된 것은 나라마다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원천적으로 이성을 허용하지 않는 목욕탕과는 달리 사실 화장실은 목욕탕처럼 남녀 구분이 엄격하지는 않습니다. 너무 급한 경우에 여자가 남자 화장실로, 남자가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남자가 여탕으로 뛰어들었다고 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또한 화장실이 이성에 관한한 목욕탕에 비해 아주 너그럽다고 해도 상습적으로 남자가 여자 화장실을 들락거린다면 그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내가 있었습니다. 들락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 사내는 여자 화장실에 상주하면서 인기척이 끊어지는 새벽이나 늦은 밤에 아무도 모르게 살짝 빠져나와 화장실 주위를 어슬렁거리고는 다시 여자 화장실로 살며시 들어갔습니다. 사내는 끼니도 대변기 위해서 소리 없이 해결했습니다. 끼니라고 해봤자 미숫가루 한 숟가락을 입으로 털어 넣고는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이 다였지만 말입니다. 화장실의 내벽은 온갖 음란한 낙서들과 그림들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배설물의 냄새도 고약했습니다. 사내는 하루 종일 조용히 앉아 화장실의 벽면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 움직임을 극도로 자제하고 정물처럼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간혹 몰려오는 낮잠을 깨우느라 대변기에 앉아 심호흡을 크게 하거나 사지를 뻗는 정도가 움직임의 전부였습니다. 밀폐된 공간을 좋아하는 인간 같았습니다. 어떻게 밀폐된 공간이 그 사내에겐 아주 평온하고 아늑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내의 생활공간이 마치 여자 화장실이 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http://kr.image.yahoo.com/GALL


만약 사람들이 이러한 사내의 행동을 알게 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요?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이며 엽기적인 짓이라 경악할 것입니다. 사회의 일탈 행위로 격리되거나 수감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연구 대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사내가 그런 사실을 알 만큼 정상적이기에 아무에게도 띄지 않으려고 아주 은밀하게 화장실을 드나드는 것이겠지만 사실 그의 행동이 알려지고 공개가 되는 경우 사건의 심각성은 커지는 것입니다. 하이에나 같은 언론과 방송은 줄기차게 반복적으로 이 사내를 집중적으로 발가벗겨 놓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그 사내가 그러한 사실을 더 잘 알 것입니다. 그 사내는 사회 통념상 변태성욕자나 성도착자나, 파렴치범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여자 화장실에서 머무르는 고약한 짓을 하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 사내의 기괴하고 엽기적인 행동의 이유가 드러났습니다. 그 사내의 친구들, 다시 말해 도반승 둘이 화장실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화장실 밖에서 둘 중 키 작은 스님 한 분이 이렇게 소리쳤던 것입니다.


“청송스님, 동안거의 처소(處所)치고는 퍽이나 황홀경(怳惚境)이요, 화계대택(花界大宅) 이외다! 참으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구려! 오탁(汚濁)의 연(蓮)이요, 진세(塵世)에 열반(涅槃)이로군요! ”      


이제 사내라는 단어 대신에 스님이란 단어를 쓴다면 이러한 엽기적인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스님이 동안거를 위해 여자 화장실을 선택했다면 이 사회의 인식은 어떠할까요? 비록 범부의 생각으로는 그 경지를 헤아릴 수는 없겠지요. 그랬던 것입니다. 동안거를 여자 화장실에서 끝마치며 그 사내, 아니 청솔 스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일갈(一喝)했습니다. 남녀분별 분별지생, 분별계교 변태자생(男女分別 分別智生, 分別計巧 變態者生). 남녀동인, 변소위인(男女同人, 便所爲人).


*이전 올렸던 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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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3 22:24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아내는 비행기를 내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탈 때는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아내는 버스를 타기만 해도 심한 멀리를 하는 체질이었다. 공항에서 멀미약을 사서 마신다, 멀미 방지용 테입을 귀밑에 붙인다 하고 부산을 떨었다. 가족들의 마중을 뒤로하고 비행기를 탈 때까지 아내는 아들을 만난다는 기쁨보다도 멀미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대장부 같은 아내도 멀미 앞에서는 꼼짝을 못했다. 그런 그녀였기에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내심 덩달아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이륙할 때 소스라치게 놀라며 한 동안 눈을 감고 나의 목을 꽉 잡는 것을 끝으로 그녀의 멀미에 대한 근심이 막을 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멀미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멀미의 걱정에 가리어졌던 기대감과 흥분감을 천진난만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긴한 걱정을 했시유. 멀미는키녕 기부니 허버러지게 상쾌해 지구먼요.”

아내는 마치 놀이터의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기내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의 눈총 같은 것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아내는 언제나 그랬다. 주위 눈치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기내의 신기함이 그녀의 호기심을 더욱 강하게 일으킨 탓도 있지만 땅위에서도, 물위에서도 언제나 장소를 가리고 않고 나서길 좋아했다. 오죽하면 그녀의 별명이 이웃들 간에 꼴깝댁이고,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망둥이년으로 통했을까. 원래 아내의 기질이 그런 식이었다. 남편인 나로서도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꼴갑짓과 망둥이짓 만큼이나 순수하고 악의가 없었다. 아무튼 땅에서의 버릇이 하늘에서 달라지지는 않았다. 기내를 돌아다니면서 아들 자랑을 늘어놓기도 하고 외국인들에게는 ‘알라뷰‘ 하고 손을 흔들어 대기도 했다. 같은 또래의 노인네들에게는 노래 한가락 뽑아보라고 청하기도 했다. 아내는 승무원들에게 몇 번 제지를 당하고 경고를 받고는 조금 시들해지기는 했지만 경미한 변화였을 뿐 기내를 활개치고 돌아다니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들내미 만내러 미국가구먼요. 하바든가 히바든가 하는 시계에서 치고로 조은 디학서 공부하고 있시유. 갸는 마 허벌나게 공부만 했구먼유.”

거머리 달라붙듯 척척 달라붙어 아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승무원들이 재차 아내를 만류했지만 아내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교양이나 공중도덕적인 관점에서는 작은 흠(?)이 될 수 있으나 승무원이 강제할 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안전벨트 착용과 화장실 앞에서의 질서 등 승객으로서의 의무들을 충실하게 수행했으니 말이다. 나는 처음 몇 번 아내를 잡아 좌석에 앉히고 할 때마다 참 많이도 민망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시간이 약이라는 생각에 심호흡 크게 한 번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미운 구석, 정겨운 구석 그것이 사람 살아가는 냄새가 아닌가, 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오히려 가슴 한 구석으로 무료함과 허전함이 몰려왔다.

젊었을 때 중동 건설현장에서 뛰던 나는 비행기를 타보기도 했고 바깥세상을 호흡해 보았지만 아내는 사정이 달랐다. 남편이 부재하는 동안 아내는 악착같이 돈을 벌기위해 재래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했다. 중동에서 송금해 주는 돈으로는 자식교육이나 미래의 삶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내는 오직 자식과 남편을 위해 자신의 삶을 유보하거나 포기했다. 내가 중동에서 귀국하고 그런대로 편안해질 쯤엔 막내아들 녀석이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의대로 편입 하면서 아내의 삶이 다시 신산해지기 시작했다. 그기다 졸업 후 유학을 가면서 또 다시 아내의 등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시장 모퉁이에서 붕어빵 장사를 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도무지 피핍한 삶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아내가 이 치료와 틀니를 포기한 것도 바로 그맘때였다. 두 개의 윗니와 한 개의 아랫니가 없이 뻥 뚫려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내는 주위의 눈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군데군데 빠져 있는 이를 드러내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 웃노라면 희화화된 인물 같았다. 8년 동안 그렇게 불편하게 생활해왔다. 이제는 이 없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편하다고 치료나 틀니 말만 꺼내도 손을 내젓는 아내다.

아내는 마치 제비 새끼처럼 엉거주춤 반쯤 일어난 자세로 손을 들어 비행기승무원이 제공하는 다과와 음료수를 수시로 주문했다.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승무원을 부르는 아내의 모습이 추상화처럼 어렵고 당혹스러워 보인다. 포도주를 마시다가 맥주를 주문하고, 콜라를 마신 후에 오렌지쥬스도 마셨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옆 좌석의 외국인의 무릎위에 음료수를 쏟는 실례를 범하기도 했다. 그가 영어로 무슨 말을 했지만 아내는 그저 웃기만 했고 나는 연신 쏘리, 쏘리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국인들이 대다수인 국내 항공사 비행기라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또 한 번은 화장실에서 손찌검을 하며 언성을 높이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화장실 앞에서 줄서 기다리던 아내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한 사내에게 대뜸 욕을 해댄 것이다. 사내에게서 나는 담배연기 냄새 때문이었다. 그 사내는 한국 사람이어서 다행히 아내의 욕이 섞인 한국말은 효과가 있었다. 그런 요란한 싸움에 앞서 화장실 센서가 작용해 비상벨이 울렸고 승무원들이 화장실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 사건은 그나마 아내의 공헌으로 평가되었다. 승무원들은 아내에게 미소를 지으며 기내 흡연에 대한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욕설은 자제하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난 혹 이러다가 기내 바닥에 앉아 화투판을 벌이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지경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멀미에 대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고 오히려 다른 승객들이 멀미를 일으키게 했다. 망나니 칼춤 추는 꼴이었다. 막 죽어가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기내를 휘저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내가 승무원들을 가끔 곤혹스럽게 하긴 했지만, 기내를 휘저었다는 식의 나의 표현은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는 않았다. 아내에 대한 다른 승객들의 반응이 그다지 불쾌하다거나 나쁘게 여겨지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들은 비행기가 도착지에 가까워오자 오히려 아내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비행기를 내리면서는 모두들 맑고 유쾌한 웃음을 아내에게 보내주었다.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건 오전 11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뉴욕에서 마중 나온 막내아들과 함께 자동차편으로 보스턴으로 갈 예정이었다. 한국에서 보냈던 전날의 오전 11시를 여기 또 뉴욕에서 맞이한 것이다. 아내도 시간이 이상타며 퀭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미리 미국에는 아침에 도착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아침이란 사실에 신기해하기만 했다.

“이상쿠먼유. 이짝은 밤인지 알았는디 아참이구먼유. 시계 바닐을 꺼구러 돌리났다 봐유.”

아내와 함께 여권과 입국허가증을 들고 수하물 검사대로 갔다. 검사대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아내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거나 미소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막내 아들에게 보낼 물건은 이미 보낸 터라 우리에게는 작은 수하물 가방 두 개가 전부였다. 둘 다 하드 케이스의 가방이 아닌 일반 천 가방이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검사대에 작은 가방 두 개를 올리자 무슨 콤콤한 냄새가 나는 듯 했다. 나는 그때서야 둔한 코를 원망했다. 김치 냄새였다. 나는 검사대에서 재빨리 가방을 내리려고 했으나 직원이 이미 가방 지퍼를 열어 놓은 상황이었다. 손쓸 틈이 없었다. 자극적인 신김치의 냄새가 심하게 코로 전해져 왔다. 검사대의 직원이 잠깐 미간을 찌푸렸지만 금세 다시 미소를 띠며 가방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었다. 잡동사니들이 튀어나왔다. 터진 신김치 봉지, 김치 국물에 저려진 양말들, 수저, 화투, 된장, 고추장……예상하지도 못한 돌발적인 상황이었다. 곁눈질을 하니 나와는 달리 아내는 뒤에 있는 한국 사람과 히히거리고 있었다. 가방에서는 신김치 냄새가 더욱 진동을 했다. 터진 신김치 봉지에서 흘러나온 국물이 검사대에 흥건하게 고였다. 그래도 직업의식 탓인지 검사대 직원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미소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김치, 김치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검사대 직원은 미소를 띠었지만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쥐구멍에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었다. 그때 아내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아내는 신김치의 포장지를 더 크게 찢더니 김치 죽지 하나를 꺼내 두 손으로 쭉쭉 찢어 검사대의 아가씨에게 내미는 것이 아닌가. 검사대 직원이 뒤로 주춤 물러서자 아내도 김치를 들고 팔을 더 쭉 뻗었다. 요렇게 먹는 거다는 식으로 아내는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내밀고 김치를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한 입 가득 우물거렸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주위의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고 파안대소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개인적인 인상은 김치가 세계화되기에는 이렇게 어려운 고비가 많아야 하리라는 것이었다.

출국심사대를 통과하고 출구쪽 공항 로비로 나가자 막내아들 녀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막내 아들를 안고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등을 다독이고 두 손을 꼭 잡고 뺨을 문질러 댔다. 아내를 안고 있던 막내아들이 코를 컹컹거렸다.

“이거 신김치 국물 냄샌데? 엄마 김치 포장지 터졌지? 와우 엄마, 고생 좀 했겠네.”

막내아들 녀석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연방웃기만 했다.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미국 처음 올 때 김치 포장지 터져서 난처했었어. 김치 때문에 망신 많이 당했지. 그런데 말야, 여기서 공부하면서 보니까 미국사람들이 김치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더라구. 비만의 나라 미국이 날씬해지려면 김치가 딱이지 싶어, 엄마. 그리니 엄마는 미국인들에게 경종을 울려준 거라구요. 김치 국물 세례를 해준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엄마. 엄마한테 좋은 말이야. 정말 잘했어, 엄마.”

엄마를 위로하려는 막내아들이 살갑게 느껴지긴 했지만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아내의 모습은 분명 지나친 데가 있었다. 아니 지나쳤다. 그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다소 화난 표정으로 오랜만에 만난 기쁨도 저만치 젖혀두고 막내 아들에게 쏘아 붙였다.

“세례긴 이놈아! 망신도 그런 망신은 없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였는데 넌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런 말장난이냐? 어디 이래 가지고 널 다시 만나러 올 수나 있겠냐. 검사대에 새어나온 흥건한 신김치 국물하고, 냄새는 또 어떻고. 거기다 더해 네 엄마가 김치를 쭉쭉 찢어서 검사대 직원에게 내밀었으니 …… 세계적인 망신이 아니고 무엇이냐. 도대체 망신스러워 혼났구나.”

그런데 막내아들 녀석이 하는 말이 걸작이다.

“김치 세례가 맞는데 아빠도 참. 그럼, 엄마에겐 고통스러운 통과의례였다고 해줄께. 아빠, 통과의례 그거 중요한 거 아니냐구? 이제 세계일주 해도 되겠다, 그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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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8 00:51

사랑은 아프다

사랑은 아프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 날은 비극적이면서 동시에 희극적이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나를 떠났고 나는 그녀와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녀는 막 비행기를 탔다고 휴대폰에 메일을 남겼다. 퇴근 후 나는 그녀에게 나오라고 한 카페의 화장실에서 똥을 누면서 그녀가 남긴 메일을 읽고 말았으니, 운치 없고 분위기를 모르는 휴대폰이었다.

남녀 사이에 흔히 벌어지는 결말의 한 방식일 뿐이었지만 나는 가슴속에 마침표를 찍고 나서도 몇 방울의 눈물을 더 떨어뜨려야만 했다. 나는 치질이 심했고 그 통증은 참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치질의 쓰라림. 그녀와 나란히 앉아 어렵게 영화를 보던 시간들, 나의 속사정도 모르고 똥침을 놓던 그녀의 천진난만함, 공원 벤치에서 그녀가 내 허벅지에 앉아 하늘의 별들을 세며 꿈과 사랑을 이야기하던 그 기나긴 시간들, 돼지고기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날이면 몰래 화장실에서 여성용 생리대를 차야만 했던 기억들...... 이렇게 그녀는 깊은 고통의 흔적을 남기고 떠났던 것이다. 변기 속을 내려다보니 붉은 핏물이 포도주처럼 진하 디 진했다. 악화 일로를 걷는 치질! 나는 물 내림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꾹 눌렀다.

내가 아파트에 도착한 시간은 9시. 나는 카페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술을 한 잔 더 하려다 그만두었다. 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비극적 사실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서글펐다. 사랑하는 그녀는 떠났고 나는 밤새 술이라도 들이키며 슬픔을 달래는 작별의 의식을 거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현실적인 생각으로 나 자신을 설득했다. 치질 따위 생각하지 말자, 내일 업무관련 보고가 있으면 어때......하면서도 내 이성은 현실을 직시하라고 나를 유혹했던 것이다.

나는 힘없이 아파트 입구 계단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입구 왼쪽에 있는 경비실 창으로 창백하게 굳어있는 초로의 경비원 김씨 아저씨와 고개를 떨구고 있는 동년배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나는 목례를 하고 그들을 지나치면서 그들에게 서려있는 이상한 슬픔의 기운을 감지하고 말았다. 김씨 아저씨도 치질일까?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 10층 버튼을 부드럽게 눌렀다. 버튼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나는 신경질을 꾹 참았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 카펫 위에 대자로 엎드렸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밀려왔다. 잊으려, 잊으려 해도, 후끈거리는 치질 덩어리가 느껴졌다. 아침에 차고는 시간이 없어 갈지 못한 축축해진 생리대가 불결한 느낌을 자아내었다. 아, 이런 상태 위에 더해진 처절한 사랑의 비극이라니! 이런 고통 위에 그녀와의 작별의 슬픔이라니! 그녀는 이런 착잡한 나의 심정을 알기라도 할까! 그녀는 모를 것이다. 그녀가 남긴 메시지는 얼마나 건조했던가, 철없었던가!

“나를 치질 같은 존재라 생각하고 그냥 니 머리 속에서 지워버려. 아니, 잘라버려. 나 보다 좋은 여자 만나.”

나는 카펫 위에 엎드려 고통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뺨을 타고 흐르며 카펫 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 거실 벽면에 부착된 인터폰으로 혀가 꼬부라진 김씨 아저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떤 실수로 인터폰의 전원이 켜진 것 같았다. 김씨 아저씨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신세 한탄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아, 끝내 당신은 떠나는구나! 나이 들어 혼자서 살고 싶다고 하더니...... 자식들 다 컸겠다, 임자도 이제 자유를 누려야지, 암. 나 같은 사람 만나 고생만 실컷 하고는......젊어선 술에 절여 사는 남편한테, 늙어선 애먹이는 자식들 때문에 호의호식 한 번 못해 보고......딱(탁자 위에 병 같은 것이 부딪치는 소리.) 카~~. 아이구, 처량하구만. 그래, 뭐 혼자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뭐! ”

아저씨의 한탄은 마치 힙합처럼 흘러나왔다. 나는 아저씨의 힙합이 정말 좋았지만 아파트 입주자들은 황당했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김씨 아저씨의 황당한 행동에 짜증을 내었을 것이다(구체적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반응을 상상해 본다는 것은 재미있을 것이다. 나는 좀 더 구체적인 상상력을 발동해 보고 싶지만 치질의 고통이 워낙 깊어 그만두련다.) 사람들은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려는 아저씨의 모습, 그 모습을 아름다웠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을까! 이 후로 나는 아저씨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나는 그날로부터 3일 뒤에 있었던 반상회에서 아저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가 있었는데, 비난과 질책과 황당함과 짜증과 욕설과 매도가 반응의 전부였다. 그리고 아저씨는 해고가 되었다. 그의 해고나 나의 이별이 어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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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6 23:22

운수 나쁜 날

운수 나쁜 날

김 교수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의 차를 타고 학교로 가는 것이었다. 구입한 자가용을 운전하는 첫날이었다. 김 교수는 문명의 이기(利器)라는 차를 여태껏 구입하지 않았다. 면허증은 오래 전에 발급 받았지만 왠지 차를 구입하는 것이 그리 마음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교통 문화에 대해 너무 회의적이었고 지하철이 편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닦달과 아이들의 성화를 견뎌낼 수가 없었다. 사실 어디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차가 없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다. 마침 이름 있는 자동차 회사에서 ‘왕창 파격 세일’ 이란 이름을 걸고 승용차를 판매했기에 내친김에 구입을 했던 것이다.

일주일 간 도로 연수를 했지만 혼자서 차를 몰고 도로를 나선 김 교수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차들을 신경쓰랴 신호등과 보행자들을 주의하랴 정신이 없었다. 학교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로터리에서는 택시와 간발의 차로 충돌을 모면하기도 했고 뒤에서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보지 못하고 우회전을 하기도 할 뻔했다. 정말이지 끔찍한 순간들이었다. 하늘이 도와 준 탓에 김 교수는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그 위험천만했던 로터리를 지나고 무사히 학교에 도착했을 때 김 교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 숨을 내 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너무 일찍 내 쉰 것일까. 자신의 학과 건물 앞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 순간 얼얼한 충격과 함께 쿵하는 굉음이 그의 귀로 전해졌다. 조심스럽게 후진을 한다는 것이 그만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왼쪽에 주차해 있던 흰색 그랜저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들이박고 만 것이었다. 그는 침착하게 자신의 차를 다시 주차시키고 흰색 그랜저 쪽으로 다가갔다. 박 교수의 차였다. 박 교수는 김 교수와는 앙숙이었다. 국내파인 박 교수는 유학파인 김 교수를 견제했다. 교수 세계의 학벌과 파벌 같은 것이었다. 비록 나이가 젊은 박 교수였지만 이미 오염되어 버린 늙은 교수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김 교수는 전혀 그런 걸 의식하지 않았지만 박 교수는 출세 지향적인 사고에 빠져 김 교수를 장애물로 간주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난감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박 교수를 찾아가 사고의 전말을 이야기하고 보상을 해야만 했다.

박 교수의 연구실 문을 노크했다. 박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김 교수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박 교수의 얼굴색이 달라졌다. 그를 찾아올 김 교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김 교수가 사고의 전말을 이야기하자 그제서야 박 교수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일었다.

“조심하지 않고선. 김 교수 어제 고사를 지내지 않았지. 오늘 사고야 액땜이라고 하겠지만 앞으로 계속 그런 사고를 낼 수는 없잖은가 말야. 당장이라도 고사를 지내야 될 걸세.”

“고사는 무슨......앞으로 조심하면 되겠지”

김 교수가 그렇게 말하자 박 교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쏘았다.

“자네 그런 생각이 화를 불러들이는 거네. 고사를 미신만으로 볼게 아냐. 내가 잘 아는 곳이 있으니 그곳에서 성대하게 고사를 지내자구, 알겠나.”

김 교수는 피해자인 박 교수가 그렇게 떠드는 바람에 미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후회가 되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김 교수는 보통 고사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사거리나 로터리 등의 도로변에서 지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박 교수는 자신을 데리고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도로 지점으로 데리고 갈 것이라 생각했다.

2시쯤 수업이 끝나고 김 교수는 학교 앞 가게로 가서 막걸리 한 통과 종이 컵, 실, 초, 마른 명태를 구입했다. 그것들을 차의 트렁크에 싣고 박 교수의 연구실로 전화를 했다. 박 교수가 전화를 받았다.

“어이, 김 교수. 어딘가?”

“학교 앞이네.”

“아직 좀 이른 시간인데......연구실에 학생들이 찾아와 있거든. 면담이 끝나려면 넉넉히 한 시간 정도는 필요할 텐데 어쩌지? 아, 그리고 말야, 차를 정비소에 맡겼는데 견적이 70 만원이더 구만. 새차였는데 어쩔 수가 없지 뭐.”

“미안하네......새찬데 말야. 연구실에 가 있을 테니. 그리로 연락해 주지 않겠나?”

“자네 차가 더 새차 아닌가. 그래 자네 차 견적은 얼마나 나왔던가.

“......”

“그래, 연구실로 연락을 하지. 조금 있다가 보세.”

김 교수는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싶었다. 차를 구입한 것도 괜한 허영이다 싶었다. 사고가 나고 바로 보험 처리를 하고 조치를 다 취했지만 마음은 편하지가 않았다. 새차를 뽑고 첫날의 사고라니,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위로해 주었지만 후회는 깊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사를 지내면서 앞으로 사고가 더 이상 없기만을 빌어야 할뿐이었다.

5시쯤 박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 교수, 이제 슬슬 나가 보지.”

김 교수는 전화를 끊고 연구실을 나섰다. 박 교수가 이미 자신의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 교수 옆에는 2명의 여학생이 서 있었다.

‘고사를 지내는 데 학생까지 필요는 없을 텐데......’

김 교수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김 교수의 속마음을 알아 차렸는지 박 교수가 입을 열었다.

“고사를 지내려면 필요한 게 있잖은가. 그래서 애들을 불렀지. 학과에선 참 모범적인 여학생들이지.”

헌데 김 교수에게는 낯선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의 숫자가 많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이미 준비 할건 다 준빌 했지. 학생들까지는 필요 없을 걸세”

“어, 그래. 준비를 다 해놓았다는 거지. 그럼 애들은 보내야겠군.”

김 교수가 학생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미 박 교수의 말을 들은 학생들이 인사를 했다. 아주 눈치가 빠른 학생들이었다. 그 중 머리가 길고 얼굴이 가냘프게 생긴 여학생 하나가 작별 인사 치곤 과감한 인사를 했다.

“교수님, e-mail 보낼게요. 교수님, 지방에서 학술회 할 때 꼭 함께 가셔야 해요.”

박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학생들이 총총히 멀어져 갔다.

그들이 탄 차는 아침에 김 교수가 무지 고생한 그 로터리를 돌고 있었다.

“박 교수, 여기가 어떤가?”

“고사 말인가? 이젠 그 고사 이야긴 그만 하세. 그냥 해본 소리라네. 사실은 말야, 자네와 함께 있고 싶었지. 정말 오랜만이 아닌가. 그리고 총장 선거가 내일 모레잖아. 겸사겸사 자네와 만나고 싶었어.”

“그랬군.”

“CNN 단란주점에서 몇 몇 교수들이 모이기로 했어. CNN 알지? 제일 서적 뒤쪽 술집 골목 말야. 거기로 가.”

김 교수는 속은 느낌이었다. 고사가 어찌 이렇게 변질이 될 줄이야. 그기다 어제가 스승의 날이지 않았는가. 김 교수는 정말이지 한 숨이 나왔다. 피해자의 요구였기에 고사라고 따라나섰지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교수 혼자 내리게. 난 오늘 일이 있어서.”

“어어, 자네 왜 이러나 여기까지 와서. 자네가 참석한다고 했는데 그럼 인사만이라도 하고 나오면 되잖아.”

불행하게도 어둠이 대기를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차가 문제였다. 밤길을 혼자서 차를 몰고 갈 자신이 없었다. 박 교수는 난감했다. 이런 자신의 심정을 알아챘는지 박 교수가 입을 열었다.

“차는 여기 주차장에 박아 놓으면 될텐데 뭘. 자, 같이 가서 기분내자고. 아침에 있었던 일일랑 훌훌 떨쳐버리고 말이야”

그렇게 나오는 박 교수의 애원을 야속하게 떨쳐버릴 수도 없었다.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의 방향을 돌릴 수밖에.

“정 그렇다면 난 곧바로 나올 거네. 인사 정도만 하고 말이야.”

김 교수는 그들과 함께 앉아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았고 쓸데없는 오해를 사고 싶지도 않았다. 여러 교수들이 있을 테니 그냥 인사만 하고 나오리라 다짐했다.

단란 주점은 2층에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서 자동문 앞에 서자 스르륵 유리문이 열렸고 김 교수와 박 교수는 함께 실내로 발을 내디뎠다. 단란주점의 실내는 참으로 호화로웠다. 자동문의 바로 오른쪽 카운터에 중년의 여자가 앉아있었다. 박 교수를 보자 반가운 표정으로 박 교수를 향해 돌진해 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실내를 진동했다.

“이게 누구예요, 박 교수님. 자주 좀 들리지 않구요. 교수님들께선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박 교수를 안내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룸은 제법 큼직하고 고급스러웠다. 이미 테이블에는 예약된 손님들의 숫자대로 포크와 스푼, 물수건, 생수와 음료들이 놓여져 있었다. 박 교수에게 그녀가 거의 안기다시피 달려들면서 오랜만의 회포를 푸는 듯 했기에 김 교수는 눈치 없이 앉아 있을 수 만은 없었다. 마침 아랫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면서 뒤가 마려워 왔다. 박 교수는 룸을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은 룸에서 왼쪽 끝에 있었다. 김 교수가 변기에 앉자 말자 물기 많은 변(便)이 소리를 내며 변기 속으로 떨어졌다. 김 교수는 오늘 하루라는 시간도 이렇게 빠져 나가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변은 꽉 막힌 듯한 느낌과 함께 아무리 힘을 주어도 나올 기색이 없었다. 변(便)과의 싸움으로 제법 시간과 힘을 들이고 있을 때 갑자기 타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화장실로 스며들면서 다급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날카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순간 화재가 났다고 생각했다. 화장실까지 연기가 가득하다면 이미 화재는 실내의 가연성 소재들과 함께 빠르게 번지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김 교수는 재빨리 나와 화장실의 창문을 열었다. 바로 아래는 조금 전 자신의 차를 주차한 주차장이었고 자신의 차가 있었다.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화장실로 연기가 더 차 올랐다. 내실로 가서 누구를 구할 수도 없을 정도로 유독성 냄새가 금방이라도 자신을 질식시킬 것만 같았다. 위기감을 느낀 김 교수는 어쩔 수 없이 창문을 통해 자신의 차 위로 뛰어내려야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 교수가 뛰어내렸을 때 강한 충격이 그의 양쪽 발에 전해졌고 의식을 잃고 말았다.

김 교수가 눈을 떴을 때 박 교수와 다른 교수들이 그의 시선으로 들어왔다. 모두들 한마디씩 했는데 약 기운 때문인지 그들의 말을 생생하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김 교수는 어찌된 영문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 위기 속에서 자신은 황망히 2층에서 뛰어 내렸건만 박 교수를 비롯해서 다른 교수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넨 너무 성급하게 뛰어내렸네. 불이 커지기 전에 다행히도 스프링 쿨러가 잘 작동해 주었다네. 자네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오신 교수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네. 물론 유독성 가스 때문에 고통스러웠긴 했지만 말야.”

박 교수의 말이 끝나자 정치학과의 마기아(馬基亞) 교수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부재자 투표도 가능하지, 그렇지.”

양 쪽 발목뼈가 부서진 김 교수는 응급실에 누워 ‘참 운수 나쁜 날’ 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멋진 시승식(試乘式)이었다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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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4 20:05

콘돔 논쟁은 없다

콘돔 논쟁은 없다
-제목과 읽기의 현혹

사실 이 글은 콘돔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글입니다. 따라서 콘돔이란 단어와 관련된 것들을 상상하고 클릭해 들어왔다면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글을 무시하고 바로 나가셔도 됩니다. 그리고 속았다는 모욕감과 부푼 기대에 대한 실망스러움, 욕구가 드러난 수치심 때문에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고귀한 입으로 저질스런 욕설을 퍼붓거나 증오의 댓글을 달아도 상관없습니다. 기꺼이 받아드리겠습니다.

이 글이 콘돔과는 관련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 물건으로써 '콘돔' 이 아니라 글의 제목으로써 '콘돔' 과는 아주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의도되고 계획되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해야겠습니다.

우선, 제목(기호)의 성격과 우리의 인식이 연결되는 경직성과 확정성에 대한 관찰입니다. 다시 말해, 콘돔이란 단어의 의미를 확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나아가서는 이 글의 내용을 확정적으로 추측하려는 태도에 대한 관찰입니다. 추측이란 다의미성을 뜻함에도 하나의 확정된 의미만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즉, 콘돔의 ‘성적의미‘가 글의 내용을 전적으로 규정하리라는 추측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둘째로는 콘돔이란 단어의 현혹에 빠져 쉽게 지나쳐버렸을 ’논쟁’ 이란 단어는 이 글을 논쟁적으로 보는 독자들의 관점에서는 아주 중요한 제목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움베르코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같은 소설은 그 제목의 의도가 아주 상징적이고 모호합니다. 에코 자신의 말대로 “제목은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어야 하지, 독자를 조직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에코는 의미가 소외되지 않고 풍성한 의미를 제공해주는 ‘장미’ 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심오하게 에코는 윌리엄 수도사의 시종인 아드소를 통해 ‘장미’ 를 종교적, 심미적, 감정적인 차원등을 포괄하는 논쟁의 핵심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미를 수도승을 유혹하는 사탄적 의미나 콘돔을 성적 의미만으로 보는 경직성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예 <김밥 부인 옆구리 터졌네>와 같은 단선적인 제목으로 상상력과 의미를 확정하고 경직시키는 것은 바람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이제 이 글을 쓰는 실제의 의도가 드러났습니다. 부제처럼 제목에 현혹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콘돔논쟁은 없다>라는 제목만을 보고 야릇한 내용을 상상했다면 그것은 진지한 읽기의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제목이 아주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것만을 찾으며 소설이나 영화나 만화를 편식하는 것은 진지하지도 않거니와 정신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제목을 가진 소설과 영화와 만화가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제목이 가치 기준이 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러한 것들만 ‘편식’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화의 영역은 다양합니다. 그 다양성을 체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진지와 경쾌, 순수와 감각, 정신과 육체 등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문화적 경험들을 균형 있게 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해 당혹스러웠던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스시 대혈투>라는 일본영화가 음식과 요리 실력을 겨루는 요리사들의 경쟁과 관련된 가족 영화라고 판단하고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가 낭패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에는 스시는커녕 노란무 한 조각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일식집에서 일어난 잔인한 살인사건과 스시칼을 휘두르는 살인자와 형사간에 벌어지는 엽기적인 대혈투를 다룬 영화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12세용이었습니다. 폭력물에 너그러운 것은 알고 있지만 스시칼을 휘두르며 형사를 죽이고 잔혹한 폭력을 행사하는 영화가 12세 관람가라는 것은 폭력에 대한 너무 관대한 태도가 아닌가 합니다.

한 달 전 일입니다. 일요일 날 아내가 친구와의 약속으로 외출을 하고 제가 아이 둘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할 일도 없어 인터넷으로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무튼 제목도 유아틱한 인형극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처음 얼마를 아이들과 함께 보다가 잠이 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아이들만 남겨놓고 안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아이들을 보는 데는 인터넷처럼 좋은 것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컴퓨터에 달라붙어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영화를 보니까 말입니다. 방에 누워있자니 신음 소리같은 것이 간간히 들려왔지만 사람이 아파도 그런 소리를 내지 않습니까. 인형극인데 뭘, 하면서 그냥 잠을 청했습니다. 너무 무딘 겁니까? 이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편리를 위해 자주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났습니다. 보통 인형극하면 전체관람가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의 경우도 전체관람가로 알고 아이들에게 보도록 하고 잠을 잤던 것입니다. 그런데 뒤에 알고 보니 그 인형극이 성인용이었던 것입니다. 관습화된 생각을 완전히 벗어났던 것입니다. 인형극이라는 형식(제목, 겉) 만을 보고 내용(속)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응당 인형극이란 전체관람가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며칠 뒤 아이들이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해서 다시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 번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빠가 그러니 7살과 5살짜리 아이들은 그 영화를 당연히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세 번을 보고나서 아이들에게 영화에 관해 물었지요. 아뿔싸, 인형들이 옷을 너무 자주 벗고 같이 붙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직접 확인해 보니 성인용이었던 것입니다. 참 황당했던 일입니다. 콘돔논쟁이란 이 글이 실망스러운 경우와는 반대의 경우가 되겠네요.

자, 이렇게 제목 또는 관습에 의해 내용을 판단하고 영화를 보게 될 때 황당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별 충격이 없다고요? 도처에 널린 것이 그런 것들이니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고요? 아무튼 정작 자신은 내용 확인이나 정보도 없이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은 실수라고 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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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6 21:33

K를 위한 변명


K를 위한 변명, 그 마을 모퉁이 작은 도서관



아마 이십년도 더 넘은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 사건이 일어난 곳은 B라는 도시 근교의 작은 마을로 반쯤 도시화된 아직은 농촌의 풍경이 남아있던 곳이다.

그 곳은 묘하게도 삼각형의 지형을 하고 있었는데 그 꼭지점에 해당하는 지점들에 각각 동쪽으로는 도서관, 서쪽으로는 나이트 클럽, 그리고 북쪽으로는 은행이 위치해 있었다. 이곳에서는 그 도서관, 그 나이크 클럽, 그 은행이 가장 두드러진 이정표가 되었다. 도서관 옆 어디, 나이크 클럽 뒤쪽 어디, 은행에서 한 정거장 가서 어디 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은 추억거리에서나 이야기 되는 지나간 시간 속에 남아있는 사실들이다. 현대식 도시가 되어버린 이곳에 이제는 도서관이 무려 20곳 , 은행이 100여 곳, 나이트 클럽이 200여 곳이 난립하고 있다. 작은 농촌 마을이 이렇게 산전벽해가 되리라고는 이십년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옛날 이곳의 도서관과 나이트클럽과 은행은 유명한 이정표라 일종의 홍보 효과 또한 컸다. 별다르게 놀이시설이 없던 곳이라 학생들은 도서관에 모여들었고 마을의 유지들은 은행을 비롯해 은행 주변에 형성된 다방촌 근처에서 커피와 쌍화차를 앞에 놓고 노닐기 일쑤였으며, 나이트클럽은 주로 외지에서 관광 온 젊은이들이나 마을의 논다는 놈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이렇게 단순했던 곳이 이제는 누구도 그 지역의 성향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도서관과 은행과 나이트 클럽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도서관에서도 놈팽이들이 지랄을 하고, 은행 근처에는 오락실과 사채업자들이 난리를 치고 나이트클럽은 학원가와 술집들이 뒤섞여 번쩍거리고 있다.

이제 이 도시에서 낭만이라고는 찾아 볼 수도, 찾을 수도 없다. 수 많은 인간들은 쉴 새 없이 지나다니고 있지만 인간성이 상실되었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고 있다.


*

이십년 전 그 사건의 주인공은 K이다. 은행에서 큰돈을 털어 아버지의 수술비로 쓰려던 K는 조여 오는 경찰의 포위망에 밀려 도서관으로 뛰어들었던 사건이다.

그 당시 신문의 한 모퉁이에 작게 취급된 K의 강도 사건은 동시에 참 황당한 사건이기도 했다. 교회나 절로 도망간 범인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도서관으로 뛰어 들어 간 범인은 믿거나 말거나 K가 세계 최초가 아닐까 한다. K 또한 머리에 머리털이 나고 처음으로 들어 간 도서관이었다.

경찰도 이런 K의 사정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K가 도서관에 숨어있다고는 추측조차 않고 나이트클럽과 다방가 일대를 포위하고 은행에서 도시로 나가는 도로들을 차단하는 등 헛된 부산을 떨기만 했다.

만약 K가 도서관에서 나와 도서관 뒤쪽 야산으로 도망을 쳤다면 분명 K는 이 마을을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작은 마을이었기에 경찰도 예상하지 못한 경우였다.

K는 도서관으로 들어가 4층 자유 독서실내에 있는 캐비넷에 돈 가방을 넣었다. 도서관내 어디에서도 K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유 독서실은 숨어있기에는 주위가 너무 트여 있다는 생각이 들어 K는 아래층 자료 열람실로 내려갔다. 바깥에서 기웃거리다 보니 높은 책꽂이들이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 숨기에 알맞은 장소처럼 보였다.

K는 자료 열람실로 들어가 책꽂이 사이를 천천히 거닐었다. 28년이란 힘든 삶을 살아오면서 책은 단 한 번도 K의 손에 잡혀있던 적이 없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초등학교의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K는 아버지가 한글 정도는 배워라고 하면서, 쓰레기통에서 주워 가져다 준 초등학교 우리말 교과서가 전부였다.

이후 책은 K로부터 완전히 멀어졌다. 그 속사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가슴이 아프지만 여기에서 다두기는 좀 적절치가 않다.

이런 K가 비록 숨어있는 곳이기는 하나 책의 오솔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건 삶의 수 없이 많은 경험들 중에서 단 한 번의 경험이었다. 수많은 책들을 보면서 그 향기를 맡으면서 천천히 걷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K가 책꽂이 사이를 걷고 있을 때 K의 시선으로 들어 온 한 아리따운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K가 걸어가는 방향에서 K를 마주보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피해 K를 지나치면서 가벼운 눈인사를 보내었다. 순간 K는 참을 수 없는 가슴의 고동소리를 들었다. K도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녀가 지나쳐 가면서 뿌려준 그녀의 체취는 도피의 불안감에 빠져있는 K에게는 마취와도 같은 것이었다. 감미롭기 이를 때가 없었다. 막다른 모서리에 몰린 쥐처럼 도피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K에게 이상하게 찾아 온 여자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었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감정이었다. 책의 향기와 여자의 체취에 취한 K는 가슴 속 깊이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무언가에 그 자신의 육신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동시에 도피라는 극단적인 상황과 사랑이라는 애틋한 감정이 중첩되면서 K는 절규할 것만 같은 고뇌에 휩싸여들었다. K는 뒤돌아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책꽂이 앞에서 문득 문득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그녀는 책꽂이 쪽으로 목을 쭉 빼고 한 참을 들여다보기를 되풀이 했다. 그러다 책을 빼는 그녀의 긴 손가락은 너무나도 희고 가늘었다.

그녀가 저만치 멀어지고 이내 그녀의 모습은 오른편 책꽂이 쪽으로 사라졌다. K는 서있던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책꽂이는 더욱 높아져 보였고 책들이 더욱 아득히 보였다.

별 필요도 없을 듯 한 수많은 책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이 이상한 곳이 K에겐 이상할 정도로 편안해졌다. 그리고 K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들은 왜 이토록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일까? 이 책들을 써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책을 쓴 사람들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 K는 앉아있는 자리에서 무심히 책꽂이를 보았다. <슬픔없는 이별>이라는 어느 소설가의 자전 소설이었다. K는 <슬픔 없는 이별>을 책꽂이로부터 빼서 한 페이지를 넘겼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나는 이 도시를 떠납니다. 그녀와의 이별이라기보다는 이 도시와의 이별이라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비록 그녀를 떠나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을 거두어 들인 건 아니니까 말입니다. 이 도시에 남겨진 사랑이 있는 한 이 도시 또한 영원히 나의 마음 속에서 살아있을 것입니다. 안녕!”

K에게는 뜻하지 않게 찾아든 한 소설가의 느닷없는 작별의 인사였던 것이다. 은행에서 돈을 훔쳐 죽어가는 아버지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했던 K이지만, 세상에 대한 원한과 원망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사랑도 무의식 깊은 곳에 깃들어 있었던 것일까? K의 머릿속에 ‘안녕’ 이란 단어가 메아리쳤다. 안녕, 안녕, 안녕! K의 눈이 촉촉이 젖어갔다.



*

K는 호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볼펜으로 이렇게 써내려갔다.

“전 참 나쁜 인간입니다. 은행을 턴 강도입니다. 도서관에 숨어 들어와 있습니다. 돈가방은 4층 자유 독서실내에 있는 캐비넷에 넣어두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도서관을 나가 바로 자수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제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한 아버지입니다. 돈가방에서 수술비만 빼서 아버지 수술을 하게 해주시면......제가 감옥을 나온 후에라도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제 집 주소는......”

K는 그녀를 찾기 위해 책꽂이들 사이를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걸었다. 그녀는 K가 앉아 있는 책꽂이에서 2블록 떨어진 책꽂이 앞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K는 조용히 그녀에게로 다가가 그녀 앞에 섰다. 그녀는 K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가만히 서있는 K의 모습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K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경계심이 서려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K는 가만히 접은 메모지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녀의 표정은 경계심에서 의아함으로 변했다. 그녀가 멈칫거리며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K는 그녀에게 머리를 깍듯이 숙이고는 자료 열람실 문 쪽으로 달려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녀는 K의 그런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www.flickr.com/photos/86946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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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1 17:56

[꽁트] 신문팔이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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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팔이 소년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떠올린 것은 녀석의 몰골과 그러한 몰골을 가능케 해주는 추운 날씨와 간간이 날리는 눈발과 약간의 취기(醉氣)때문이었다.

‘아마 성냥팔이 소녀도 저러했겠지.’

녀석은 신문 꾸러미를 옆구리에 끼고 벤치 위에 앉아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고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도 무관심하게 녀석의 옆을 총총 걸음으로 지나쳐가기만 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녀석에게 액수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지폐 두 장과 함께 가지고 있던 라이터를 녀석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라이터는 어쩌다 한 번 갔던 단란주점에서 받은 것으로 겉에 상호와 전화번호가 큼직하게 새겨져있었다. 그땐 그런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성냥팔이 소녀처럼 불이라도 피워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손에 쥐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이터를 녀석에게 준 것은 실수였다. 혹 불장난이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해,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 라이터의 뒷면에는 여자의 적나라한 나체가 그려져 있었기에 라이터를 열 서너 살 안팎의 그 철없는 소년에게 쥐어주고 나서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다음날 나는 라이터 때문에 무척이나 걱정을 했다. 어떤 면에서는 나의 생활의 무절제(?)함의 때가 묻어있는 라이터를 그 순수한 아이의 손에 쥐어준 것이 내내 마음이 걸렸고 더해,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이 자꾸만 불길한 생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성냥불이 다되어 동사한 소녀처럼 녀석도 라이터 불을 피워놓고 잠이 들어 얼어 죽거나 불이 신문이나 옷에 붙어......”

나의 불길한 상상은 그렇게 이어지면서 차마 끝말을 잇지 못한 기억이 났다. 일요일이었기에 나는 윗도리를 걸쳐 입고 전날의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고 거리로 달려 나갔다. 그곳 벤치에는 녀석의 흔적조차 없었다. 나는 벤치 위에 검은 재의 흔적이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기도 했다. 라이터만이라도 어딘가에 떨어져있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실망스럽게 돌아서려다 벤치아래 돌멩이 틈 사이에서 바람에 나풀거리는 검게 탄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순간 녀석이 무언가를 태웠다고 생각하고 벤치 아래로 고개를 쑥 내밀고 보니 의외로 타다 남은 복권 조각이었다. 복권 위에 가능성을 품고 있던 숫자란 숫자들은 모조리 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다 타버린 복권을 들고 인도 위를 서성거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힐긋힐긋 보기도 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좀체 복권을 태운 녀석의 심리상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난삼아 복권을 태웠단 말인가? 거액의 당첨금을 가져다주지 못한 얄미운 복권을 증오로 가득 찬 손길로 태웠단 말인가?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고자 일확천금을 꿈꾸는 소년. 소년은 평소 손으로 찢어버렸을 복권을 라이터로 체념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오는 혼란스런 심정으로 태웠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소년과 복권과 라이터가 좀 더 명확해 지는 듯도 했다. 나는 성냥팔이 소녀의 이미지를 몰고 왔던 그 신문팔이 소년의 허황된 믿음과 발버둥이 못내 안타까웠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침 준비를 했다. 직장 근처의 연립아파트였다. 30대 초반인 나를 결혼의 유혹에 빠트리는 것은 언제나 밀려드는 가사노동이었다.

“독신으로 남겠다고......빨리 장가나 갈까.”

나는 세탁기나 냉장고, 진공청소기 보다는 여자 한사람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여자들이 들으면 맞아죽을 소리겠지만). 총각 행세야 단란주점이 좋았지만 가사노동이 버티고 있는 현실에서는 총각의 꼬리를 떼고 싶었다.

나는 TV를 켜고 창문을 활짝 열고 실내를 환기 시켰다.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비명을 지르며 외쳐대던 퀴퀴하고 느끼한 그 노총각 냄새를 약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창문으로 실내와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겨울의 찬 기운이 들어와 무언가 새로운 각오를 용솟음치게 했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특히 복권 추첨이 있는 일요일 오전에는 더욱 그러했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소파에 앉아 복권 추첨을 조용히 시청했다. 복이 들어오려면 창문은 활짝 열려있어야만 했다.

나는 전날 밤에 구입한 복권을 소파 옆 옷걸이에 걸려있던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었다. 그런데 내가 분명 3장을 구입한 복권이 두 장밖에 없었다. 전 날 밤 확인하지 않고 소년에게 주었던 지폐 두 장에 한 장의 복권이 끼어있었던 것이다.

복권 추첨이 끝나고 나는 나의 가장 큰 실수는 그 복권을 녀석에게 준 것이란 걸 알았던 것이다. 나는 녀석에게 엄청난 돈을 보시했던 것이다. 무려 오억이나. 내가 가지고 있던 복권 두 장 모두 1등 번호를 가운데 두고 있는 번호들이었기 때문이었다(그 복권들은 1등 하나만 당첨되는 복권이었기 때문에 나의 충격은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 아니 나는 완전히 미쳐버렸다.

“억, 억, 억, 재로 변해버렸어, 재로!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녀석은 또 무슨 짓을 한 거지? 제기럴.”

나는 온갖 욕과 저주를 녀석에게 퍼부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일어날 수도 없는 대사건이었다. 도대체 5억원을 태워버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제 과거가 되어버린 그 일을 이렇게 완곡과 완곡을 거듭하며 무덤덤히 표현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열려진 창문 밖으로 획하고 자신을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 자신이 저주스럽고 증오스러웠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던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도 나는 여전히 오랜 동안을 악몽 속에 시달려야만했다. 나는 거의 1년 동안을 5억을 되새기며 살았고 엄청난 스트레스와 신경증으로 신경과를 찾기도 했다. 재로 변한 5억은 두고두고 나의 가슴에 한으로 맺힐 것 같았다.

이제 20년이 지난 지금, 녀석을 찾은 지금, 불로소득인 5억은 내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녀석의 삶은 교훈으로 전해주었다. 그 5억짜리의 복권은 재(灾)가 되었지만 노골적인 여자의 나신이 새겨져있던 라이터는 녀석의 삶에 엄청난 재(財)를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 밤에 녀석은 손을 녹이기 위해 돈이 아닌 그 복권을 근처에서 주워 모은 나무가지들과 함께 태웠고, 잠깐 신문에서 본 한 벤처기업가의 성공 기사를 보면서 성공의 의지를 불태웠던 것이다. 그렇게 타다 바람에 날려 버려진 복권 조각이었던 것이다.

그때 불태운 복권은 재(灾)로 사라졌지만 불태운 성공의 의지는 비록 신산(辛酸)하기는 했지만 20년 동안 녀석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그 라이터에 새겨져있던 여자의 나신(裸身)은 녀석의 성적인 타락이나 유혹보다는 도덕적 무장을 촉발한 특이한 정신적 효과를 가져왔던 것은 차라리 이상할 정도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녀석이 나를 찾은 것은 내게 외관상 라이터를 돌려주기 위함이었지만 라이터가 자신에게 가져다준 의미를 고마움으로 표시하고 싶었던 것이다(그러나 사실 나는 부끄러웠다).

나를 찾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엄청난 재력가가 되어버린 녀석은 반복해서 언론매체를 이용했고 나 또한 그 엄청난 복권 소각(?)에 얽힌 그 녀석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라도 꼭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라이터는 아주 특색 있는 것이었고 라이터를 주고받던 상황이 우리 둘에겐 어떤 극적인 장면으로 남아있었기에 서로의 만남은 어렵지가 않았던 것이다.

"......전 그 라이터를 보면서 여자와 단란주점을 멀리하였습니다. 단란주점에 여러번 전화를 해서 누나들 좀 놓아주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도덕적 타락은 저의 성공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 성공의 의미가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는 도덕적이고 사회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저는 그 작은 라이터에서 부의 사회적 환원이란 거대한 교훈을 얻었던 것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오."

그때 나는 복권 소각 사건을 이야기하려다 그만 두었다. 우리들의 이런 따뜻한 인간관계는 그 라이터의 교훈과 복권의 재(灾)가 있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코 나약한 신문팔이 소년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지출처: blog.empas.com/jeongsg21/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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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벌거벗은 임금님(2)




신 벌거벗은 임금님(2)

누드우스, 그리고 로라 리웬스키의 음모




“음식이 권력을 뒤엎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또 음식이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는 이 현실 앞에서 그저 먹고만 있자니 가슴이 아프다.”

― 어느 무기력한 귀족의 넋두리 중에서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벌거벗은 임금님인 누드우스 임금님은 소의 통 바비큐를 참 좋아했다. 소의 통 바비큐는 소를 통째로 구운 바비큐로써, 줄여서 소통바비큐라고 불렸다. 특히 몬타넬로산 소통바비큐를 제일 좋아했다.


몬타넬로는 수도 조덴스덴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구 15만의 소도시로써 해발 1500m의 에스틸뇨 산이 중앙을 차지하고 이 산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져있다. 이 초원에 15만의 인구보다도 더 많은 30만 마리의 소와 15만 마리의 양들이 방목되고 있으나 또한 737만 마리의 쥐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쥐들이 서식하는 이유는 몬타넬로가 왕국의 그 어느 곳보다도 인공적인 것이 하나도 없는 원형의 자연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박멸도구와 쥐약을 피해 전국의 쥐들이 몰려들어와 서식하게 된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은 몬타넬로산 소통바비큐를 일주일에 4일, 그러니까 월, 수, 토, 일요일마다 보르도산 포도주와 함께 먹기를 즐겼는데 언제나 축제에 가까운 만찬을 베풀었다. 누드우스 왕은 왕궁의 정원에서 몬타넬로산 소통 바비큐를 즐기며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몬타넬로 산 소고기를 백성들은 결코 맞볼 수가 없었다. 가격이 엄청 비쌀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귀족용 가축으로 제한하면서 일반 시중의 유통을 철저하게 막았기 때문이었다. 소고기뿐만이 아니었다. 소의 각종 내장과 유제품과 양털 또한 마찬가지였다.


백성들이 소통 바비큐를 먹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목숨을 무릎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50m의 담벼락을 넘거나 암석층을 뚫고 땅굴을 파서 몰래 훔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먹어보는 것이 그야말로 일생의 소원이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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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http://kr.blog.yahoo.com/openb



이런 이유로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둘러싸고 언제나 소동이 벌어졌다. 담벼락을 넘다 추락사하는가 하면, 땅굴을 파다 매몰되기도 했다. 또한 몬타넬로산 소고기라고 속이고 비싼 값에 가짜 고기를 유통시킨다거나 일반 유제품을 몬타넬로산으로 둔갑시켰다. 귀족들의주변에서는 언제나 썩은 생선 냄새 같은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귀족들이 암암리에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유통시키면서 막대한 부의 축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몬타넬로산 소고기로 인해 민심은 흉흉해지고, 귀족들은 타락해 갔다.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의 실정으로 백성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설상가상 몬타넬로산 소고기까지 그러한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것은 왕국의 존재까지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귀족들 사이에서는 몬타넬로산 소고기 개방이 심각하게 고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누드우스 왕은 단호했다. 그에게 몬타넬로산 소고기 개방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몬타넬로산 소고기 한 번 먹는 것이 소원인 백성들에게 누드우스 왕은 “그까짓 몬타넬로산 소고기 안 먹으면 그만 아닌가! 안먹으려고 노력해라!” 하고 심장에 불사르는 짓까지 하니 백성들의 분노는 조젠스덴의 흐릿한 하늘을 찔러 갈라지게 할 정도였다.


누드우스 왕에게 백성들이란 신하의 확대된 의미에 불과했고 그들의 분노나 원망이란 한낱 이성을 잃은 개망나니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누드우스는 백성이란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일방적인 지시, 명령의 대상일 뿐이었고, 그런 그들에게 소통바비큐 따위는 사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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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치란 자신과 귀족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한이었다. 백성들이 왕에게 고개를 쳐들고 ‘임금님이 옷을 벗고 있다느니, 옷을 입으라’ 느니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먹고 싶다는 소동에 있었으랴.


이렇게 하루하루 심기가 불편한 일을 당하면서 아무리 똥배짱이 강한 누드우스 왕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누드우스 왕이 마음을 둘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리웬스키 밖에 없었다.


리웬스키는 서글서글한 눈망울에 풍만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리웬스키는 몬타넬로 시 출신으로 얼마 전 죽기 전까지 왕궁에서 집사로 근무했던 우엥 리웬스키의 딸이었다.


우엥은 왕궁에서 빼돌린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로라가 어렸을 때부터 물리도록 먹였던 탓인지 로라 리웬스키는 몸매가 육중하고 가슴과 엉덩이가 엄청난 글래머였다. 누드우스는 이런 리웬스키의 넒고 깊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들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리웬스키는 누구보다도 권력과 부에 대한 욕심이 강했다. 옷을 벗은 채 흉포하고 잔인하고 엽기적인 짓을 하는 누드우스 왕과는 달리 그녀는 밝은 미소로 예의를 갖추고 남을 배려하는 척을 했다.

누드우스왕이 리웬스키에게 의지하면서 거의 집착에 가까운 신뢰와 애정을 보이자 리웬스키의 권력과 부에 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욕심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탐욕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돌변에는 그녀에 대한 귀족들의 태도도 한 몫을 했다. 누드우스왕이 리웬스키에게 완전히 빠져버리자 리웬스키에게 온갖 아첨과 아부를 하는 귀족들이 하나 둘씩 늘어갔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베게머리 송사가 완전히 먹혀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욕심 많은 리웬스키가 어떻게 제정신을 차리고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자태를 뽐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누드우스 왕이 빠져버린 리웬스키라는 탐욕의 항아리는 그 좁은 입구와는 달리 깊고도 넓었다. 누드우스 왕이 그 좁은 입구를 거슬러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리웬스키라는 항아리는 깊은 늪처럼 끈적끈적했다.


리웬스키는 고고한 척 하면서 몬타넬로산 소통바비큐를 굽는 바비큐 대를 돌리듯 누드우스 왕을 가지고 구워삶기 시작했다. 리웬스키는 누드우스 왕에게 몬타넬로산 소들에 대한 규제를 풀어줄 것을 눈물로 호소하는 척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신뢰하는 리웬스키라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귀족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리웬스키는 이런 점까지 꿰뚫고 있었다. 백성들의 신뢰를 받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었다.


리웬스키는 영향력있는 귀족들을 협박과 회유로 한 사람 한사람씩 그녀의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얼마 뒤 귀족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게 됨으로써 리웬스크가 실질적인 권력의 핵심으로 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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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웬스키는 몬타넬로에 살고 있는 삼촌 오르겐 리웬스키와 오빠 나발 리웬스키에게 자신은 몬타넬로 소의 규제를 풀고자 하지만 누드우스 왕이 완강하게 막고 있다는 사실을 백성들 사이에 퍼트리도록 사주했다.


누드우스 왕에게 분노하고 있던 백성들이 리웬스키의 그러한 숭고한 노력에 감동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입으로 사실들이 전해지던 시대에 오르겐과 나발의 소문 확산은 효과적이었다. 백성들 사이에서 리웬스키는 졸지에 왕국을 지키는 잔다르크가 된 것이다.


백성과 소통 자체를 원하지도 않는 누드우스 왕이 이러한 소문을 접할 리가 없었다. 귀족들 중에 이러한 사실을 왕에게 직언하는 경우도 없었다. 귀족들은 이미 누드우스 왕에 대해 체념한 상태였다.


그저 목숨만이라도 부지해야했다. 누드우스 왕과 함께 벌거벗고 있어야 하는 처지에 대해서조차 벙어리처럼 말 한 마디 못하는 현실에서 그러한 직언은 불가능 일이었다. 또한 리웬스키의 막강한 파워가 현실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게 누드우스 왕을 둘러 친 인의 장막은 ‘누드우스의 담벼락’ 보다도 더 높아만 갔다.


리웬스키가 퍼트린 또 다른 소문은 그녀가 끊임없이 누드우스에게 옷을 입어라고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들불처럼 소문이 퍼져나갔다.

“리웬스키가 누드우스를 인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군.”

“벌거벗은 누드우스에게 옷을 입힐 인간들이 그렇게도 없다니, 리웬스키보다도 못난 인간들이군.”

“저 왕궁에 벌거벗은 짐승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왕국의 수치가 아니겠나. 왕궁이 아니라 인간 동물원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듯하네. 그나마 리웬스키가 동물원의 조련사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군 그래.”


백성들은 ‘누드우스의 담벼락’ 과 ‘인의 장막’ 에 둘러싸인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에게 리웬스키가 옆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나날이 리웬스키에 대한 칭송은 늘어갔고 이와 반비례해서 누드우스 왕은 몰락해갔다.


리웬스키에 저항하던 귀족들조차  마침내 흔들리면서 그녀에게 손바닥을 비비기 시작했다. 누드우스는 허물뿐인 존재였고 리웬스키는 실제적인 권력자가 되었다. 심지어 누드우스의 친위대가 리웬스키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하기까지 했다.이로써 누드우스 왕의 수족은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이러한 과정에 이르기까지 누드우스 왕은 완전히 무기력했는데 이것은 리웬스키가 몬타넬로산 소통 바비큐에 섞어 넣은 약 때문이었다. 그 약은 누드우스의 판단력을 마비시켰다.


정치적으로 백성들과 귀족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육체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누드우스 왕은 이렇다 할 변변한 저항 한 번 하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거나 습관적으로 집무실에서 엽기적인 행위들로 소일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 보잘 것 없는 시녀 로라 리웬스키의 사사로운 음모가 왕국의 권력을 교체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이름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는 개인들 각자의 몫이다. 그것은 단일한 의미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나도 다의성을 갖는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세계사에 로라 르웬스키의 음모와 왕위식이 기록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평가의 다의성에 기인하는 듯하다.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은 이렇게 리웬스키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백성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그들의 삶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시적인 분노와 원망의 감정 해소였을 뿐이었다.


얼마간 야만과 흉포의 시대가 사라진 듯이 보였으나 더욱 교할하고 위선적이며 가식적인 로라 리웬스키, 자칭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이 탄생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http://kr.blog.yahoo.com/openb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의 탄생과 함께 유일하게 백성들에게 돌아간 혜택이 있다면 몬타넬라산 소들을 가두고 있던 담과 철망들이 제거되고 몬타넬라산 소통바비큐가 백성들에게 일상적인 음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이 개인적으로 소고기에 물려 더 이상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이러한 몬타넬라산 소고기의 규제 완화 조치는 고도의 정치적인 음모가 깔려있었다. 그것은 몬타넬라산 소통 바비큐에 신경 완화제를 주입하여 백성들의 정치적인 의식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몬타넬라산 소고기와 소통 바비큐가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 또한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의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이 사실을 백성들은 모르고 있었다.


백성들은 오늘도 힘든 노동 뒤에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집으로 돌아와 무표정한 모습으로 식탁 위에 놓여진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먹었다.
(2008.8. 7.07:14)
 
*제일 위 사진 출처: http://kr.n2o.yahoo.com/NBBS

신 벌거벗은 임금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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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3 20:49

잡글 인간







잡글 인간

“인간들은 엉덩이에 눈이 붙어 있다. 하의(下衣)는 언제나 큰 구멍이 두 개가 뚫어져 있다. 그 구멍으로 큰 두 눈이 깜빡거린다.” 꽁트<뒤로 걷는 사람들> 중에서

그의 별명은 잡글 인간이다. 그의 삶이 잡글처럼 잡스럽기만 해서 그가 쓰는 글도 장르불명의 잡글 처럼 잡스럽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 별명은 다른 사람이 붙여준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붙인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서다. 그에게 유감인 점은 자신이 꽁트라고 생각하는 글이 소설, 더 나아가 웅대한 서사소설로 확대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더 축소되어서 꽁트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잡글이나 쓸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인식과 사고의 얄팍함에 대한 자조인 셈이다. 즉, 그에게 잡글 인간이란 말은 그렇게 잡글 밖에 쓸 수없는 운명과 동격인 것이다.

그의 삶이 잡글 처럼 잡스럽기만 하다는 말은 서사보다는 단편적인 에피소드, 아니 에피소드라 하기에도 좀스러운 짓들로 삶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과 같다. 깊이가 없고 무게 없이 살아왔다는 것이기도 하다. 인과의 꼬리를 물고 무는 삶의 이야기, 즉 서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단편적인 파편들로 흩어진 삶이었다는 것이다. 항상 우연적인 삶에는 인과가 반드시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인과로 엮으려는 상상력을 발동해 보지만 잡글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고, 그는 결심을 했다. 잡글인간을 긍정하는 것이다. 삶의 편린들을 인과로만 연결시키지 말자. 삶에는 우연성이 인과의 고리를 맺은 필연성 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고. 특히 그의 삶을 언급하고자 한다면 우연을 개입시키지 않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삶을 되돌아보면 지나간 사건들이란 반드시 그러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필연으로 받아들여지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사실 잘못되었다. 순전히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너무 관용적인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사건과 사건, 인간과 인간을 인과로 맺어주는 어떤 실재란 존재하지도 않고 따라서 동시에 필연 또한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필연이란 이름을 고상하게 달고 있는 것들 ― 필연적인 만남이니 필연적인 사랑이니 필연의 인연이니 운명이니 하는 따위의 말들 ― 은 단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필연처럼 보이는 것은 그저 일시적이거나 자의적인 해석의 결과일 뿐이다.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그는 비록 잡글이 될망정 그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꽁트를 쓰기 시작했고 자신의 삶과 의식을 단편적으로 반영하는 꽁트들과 꽁트들간의 인위적인 연결 고리를 찾아 이어 꽁트를 다시 모방적으로 확대재생산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두기로 하고 그저 그의 우연 한 토막을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

내 삶 전체가 그렇지만 그 날은 특히 잊을 수가 없어. 아침에 잠에서 깨었는데 말야, 낯선 장소가 아니겠어.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신 날에도 이런 일은 없었거든. 그런데 전날은 술도 마시지 않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 침대에서 잠을 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거든. 그런데 낯선 곳이라니 말이 안 되잖아! 정말 기가 막혔어. 마법이나 꿈도 아닌데 말야.

놀란 중에서도 방안을 둘러보았지. 벽에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난 기절을 할 뻔했어. 그 액자 속의 인물이 말야, 내가 쓴 꽁트 속의 인물과 똑 같지 않겠어. 뒤통수가 담겨있는 사진 액자였거든. 그래서 창가로 달려가 거리를 내다보니 사람들이 다 뒤로 걷고 있는 거야. 이게 바로 내 꽁트 <뒤로 걷는 사람들>의 세팅과 똑 같았어. 이제야 내가 쓰고 있는 꽁트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인간들은 엉덩이에 눈이 붙어 있다. 하의(下衣)는 언제나 큰 구멍이 두 개가 뚫어져 있다. 그 구멍으로 큰 두 눈이 깜빡거린다. 눈의 형태는 같지만 그 기능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눈알이 360도 회전이 가능하다. 바깥은 물론이고 몸의 내부도 볼 수 있다.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알 수 있다. 음식물이 식도를 따라 위로 내려와 위액과 뒤섞이고 다시 대장 소장을 통해 똥이 되는 과정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눈이 엉덩이에 붙어있다 보니 입으로 음식을 먹고 똥을 눈다. 항문은 없다. 식도와 분뇨도가 입을 통과하므로 입에서는 언제나 악취가 난다. 그들은 너무 익숙해져 악취라는 인식자체가 없다......”<뒤로 걷는 사람들, p.1>

한 인간이 이런 세상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의 육체가 그야말로 터무니없이 비실용적으로 설계된 구조에 당황하지 않겠니. 아니 당황할 정도 그 이상이겠지.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지지 않겠니. 음식과 똥이 입으로만 들락거리는 것을 어떻게 참을 수가 있어. 음식물과 똥이 뒤섞이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물적인 구조는 그야말로 너무나 고역이고 최악이야. 상상만 해도 최악이야. 오직 꽁트 따위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다행스럽게도 거울을 보니 얼굴은 그대로였어.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어. 상상조차도 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현실적인 행동이 가능할 수 있겠니. 내가 쓴 꽁트 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었어. 그래서 내린 결론이 자살이었어. 나를 너무 비관론자로 생각지는 말아. 자살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글의 감옥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가 말야.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겠니. 또한 이 지옥 같은 곳에서의 삶 자체가 죽음이 아니겠니. 너라도 나와 마찬가지 결론에 이르렀을 거야

나는 자살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어. 침대의 카버를 찢어 연결해 방 천장에 연결하고 침대에 앉아 마지막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았지. 나의 행동이 너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에 말야. 이게 과연 나의 자유의지인가고 혼란스러워 진 것이지. 꽁트 속의 등장인물이 된 내가 스스로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가 하고 말야. 이 꽁트를 쓴 작가로서, 아니 내가 쓴 꽁트의 등장인물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짜증스런 고함 소리와 함께 갑작스러운 충격이 뒤통수로 전해져 왔어.

“이런 글을 꽁트라고! 완전히 잡글이구만! 에이~~.

이어서 충격은 뒤통수를 거쳐 머리로 다음에는 어깨로 그리고 배로 점점 아래로 전해서 발가락에 이르러 멈추었어. 책이 덮이면서 나는 책 속에서 압사당하고 만 것이지. 자살만이 아니었어. 압사도 있었던 거지. 나는 한 편으로는 행복했어.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러나 나는 눈을 감으며 생각했지. 어떤 꽁트 작가도 자신이 쓴 꽁트 속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단 걸 말야. 독자가 꽁트가 아니라고 하면서 책을 덮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거든. 행복감이 사라지면서 슬픔이 몰려왔지. 그러나 또 한편으론 희망이 엿보였어. 우연이란 그 사실 때문이었지. 내가 이렇게 우연하게 압사당하리라고 어떻게 생각했겠어. 결국 꽁트는 내가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이란 놈이 쓰고 있었어.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 따위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일이 일어 날 수 있는가 말야. 이것에는 어떠한 필연성도 인과성도 이성이니 과학적인 합리성이니 객관성도 없어. 그래서 분명하게 한 마디 하고 싶은 건, 내 꽁트에서 깊이나 진지함 따위를 잊어 달라는 것이지. 형식 따위도 너무 따지지 말란 것이지. 우연이고 파편이고 그저 똥이나 누면서 시간이나 때울 수 있는 존재로 보아 달라는 것이지. 좀 더 친근한 존재였으면 더 좋고 말이야.

그는 그렇게 죽었다. 아무도 그를 찾지 못했다. 그는 행방불명되고 만 것이다. 이 처럼 그의 꽁트는 필연이나 인과와는 거리가 먼 우연에 불과한 파편일 뿐이었다. 그의 죽음조차도.(*)

*이전 글 약간 수정해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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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0 14:17

[꽁트] 신 벌거벗은 임금님




신 벌거벗은 임금님

-모두들 거짓이 보이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과거였으나 그다지 오래전 과거가 아닌 어느 적(2456년경)에,  한 임금님이 살고 있었다. 그 임금님은 젊은 시절 방탕하게 생활하였다.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여자를 탐했고 심지어는 아편과 마약을 하고 혼몽한 상태에서 온갖 종류의 엽기적인 일을 자행했다. 이를테면 인간을 똥통에 빠트린후 득실거리는 쥐들 사이에 밀어 넣기도 하고, 기름에 튀겨 벌레들의 먹이로 던져대기도 했다. 그는 이런 엽기 짓을 하면서 항상 괴성을 내질러댔는데 마치 쥐들이 찍찍거리는 소리와 흡사했다. 그렇게 방탕하고 엽기적인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나 보니 임금님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로 누드우스 시바르호모우스 14세다. 애칭으로 누드 시발노르 왕으로 불린다.

죽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의 아버지, 시발리우스 시발리네 3세(재임기간 2398-2455)는 무척이나 혈기왕성했다. 갑작스런 죽음이 그를 덮치리라고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시종들에 따르면 시발리우스 시발리네 3세는 아침부터 꽥꽥거리면서 폭식을 하고 마리 포르노네트 왕비와 씩씩거리며 정사를 즐겼고 이웃의 작은 나라로부터 거둬들인 조공을 허허거리며 둘러보았다고 한다. 그 조공의 80%가 왕실의 품위와 시설 유지비로 사용되었다. 그 항목 중에 하나를 들자면 150여 마리의 애완동물의 배설물 처리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150여 마리 애완동물은 왕궁 건물들의 서쪽 왕궁 전체를 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별채를 따로 이름 지어 딴나리아라고 불렀다. 10%가 그 나라의 수도 조덴스덴에 있는 중앙정신병원에 지원되었으나 서민들의 치료비가 아니라 실상은 왕족들의 요양비나 치료비로 사용되었고 5%가 감옥의 유지비로, 남은 5%가 군대의 지원금으로 하사되었다. 시발리우스 시발리네 3세의 사망원인은 추측들이 난무하기는 하였으나 끝까지 밝혀지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시발리네가 마리 포르노네트의 배위에서 코를 박고 죽었다는 사실 뿐. 또한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 신음 같기도 하고 모호한 대답 같기도 한 ‘으흐~~으으응‘ 소리였다는 것 뿐.


왕비 마리 포르노네트는 시발리우스 시발리네 왕의 시해 혐의를 덮어쓰고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녀가 마지막 남긴 말은 “시발리네는 죽지 않았다. 그는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내 속에 영원히 살아있으며 나는 시발리네의 천국이다.” 그녀의 이러한 말은 끝까지 왕의 시해 혐의를 거부함과 동시에 자신의 신성을 주장하는 것이기도 했다. 만약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죽어서도 아니 되고 죽여서도 아니 되었다. 그녀가 곧 시발리우스 시발리네였으니 말이다.


마리 포르노네트는 시발리네 왕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의 누이이기도 한 따따날리아 황후였다. 말하자면 마리 포르노네트는 시발리네와 남매사이인 것이다. 마리 포르노네트는 거둬들인 국민 세금의 15%를 그녀의 품위 유지비에 충당할 정도로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다. 백성은 그녀의 시종시녀들에 불과했다.


이런 시발리우스 시발리네와 마리 포르노네트 사이에서 태어난 임금님이 바로 누드우스 시바르호모우스 왕이다. 시바르호모우스 왕은 아버지의 저속하고 야비함에 어머니의 허영심과 호색기의 유전자를 물려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기에 더해 엽기적인 잔혹함까지 더해졌던 것이다. 조덴스덴의 10%를 차지하는 왕궁에 머물면서 그가 하는 짓들이란 엽기적인 행각들이었으며 백성들과의 접촉이나 대화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에게 백성들이란 왕궁을 유지하는 일꾼들에 불과했다.


임금님이라고 하면 위엄있고, 근엄한 모습을 연상할 것이지만 시발리네나 마리와는 달리 누드우스는 전혀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야만에 가까웠다. 아무리 시발리네나 마리가 왕과 왕비로서 자격을 상실하고 있었지만 위엄과 근엄함만은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척은 했다. 그러나 누드우스는 위엄과 근엄함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생긴 것도 그에 걸맞았다. 다람쥐와 하이에나를 합쳐놓은 듯한 이상야릇한 동물을 연상케 했다. 누드우스는 마치 아프리카의 부시맨처럼 옷을 훌렁 벗고 왕궁의 실내나 정원을 돌아다녔으며 맨손으로 밥을 먹고, 팬티만 입고 집무실에 앉아 집무를 보거나 벌거벗고 바닥에서 자기도 했다. 심지어는 홀딱 벗고 찬란한 햇살이 드는 창가에서 춤을 추거나 자위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왕비인 까따리나 꼴리넬 몰래 근처에 있는 시녀들을 불러들여 부적절한 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근처있는 귀족이나 시종시녀들 아무도 누드우스가 벌거벗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도 함께 벗고 있어야 했으니 말이다.


잠시 왕비 까따리나 꼴리넬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겠다. 왕비 까따리나 꼴리넬은 마리처럼 사치스럽기는 하나 무기력한 여자였다. 까다리나는 더 넓은 왕궁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왕비의 방에 머물면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침대에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뒤척거렸다. 그녀의 육중한 육체에서 가장 활기 있게 살아 움직이는 부분은 입이었다. 그녀는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지껄여댔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그녀가 엄청난 비만의 상태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체중은 300kg에 가까웠고 살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혼자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녀의 침실 공기는 언제나 혼탁했다. 입으로 쉴새 없이 침을 튀기며 솟아내는 말들과 아래로는 빈번하게 뿜어내는 방구가스와 트림으로 침실은 악취로 진동했다. 그럼에도 까따리나는 마치 삶을 포기한 흉측한 동물처럼 창문을 열어 공기 소통이나 햇빛 한 번 들여보내지 않았다. 삶을 포기한 한 마리의 거대한 그러나 불쌍한 야생동물 같았다. 이런 그녀에게 색녀라는 말이 붙은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 또한 누드우스 몰래 시종들을 침실로 불러들였고 시종들은 초죽음이 되어 나왔던 것이다. 심지어 몇 몇의 시종들이 질식사나 압사 당했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누드우스 왕이 거구의 왕비 까따리나 꼴리넬 몰래 시녀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저지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 부적절한 행위를 한 시녀 중에 로라 리웬스키라는 러시아 출신의 시녀가 있었다. 리웬스키는 누드우스와 아주 잘 어울리는 시녀였다. 리웬스키는 개인적인 야심이 남달랐다. 그기다 까따리나 왕비에게 압사당한 한 젊은 시종과 내연관계였던 리웬스키는 왕비에 대한 복수의 염을 품고 있었다. 실제적인 권력과 애인의 복수가 동시에 리웬스키의 깊은 감정의 골속에 꼭꼭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하던 왕비의 자리에 오르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리웬스키의 모의와 관련해서는 독립된 글 을 써는 것으로 하고 여기에서는 멈추어야 겠다.


누드우스 왕의 기행은 성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기행이 아니었다. 누드우스 왕은 집무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각종 서류들로 똥을 닦거나 코를 풀어 그것을 시종에게 씹어 먹도록 했다. 그런 서류들 중에는 서민들의 호소문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런 이유로 귀족들 사이에서는 백성과의 소통을 넘어 소화를 시키는 정도라는 우스개가 떠돌았다. 누드우스 왕에게 백성 따위는 그의 왕국을 지탱하는 부속물이거나 기계 장치에 불과했기에 형식상 백성들의 호소를 들어주는 척을 했지만 그 호소문들은 주로 화장실의 휴지로 사용되었다.


백성들은 화가 났다. 쇠락해가는 왕국을 지켜보면서 최악의 왕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횃불을 들고 왕궁의 담벼락 아래에서 “벌거벗은 임금님 옷을 입어라!” “야만의 임금님, 옷을 입어라!” 하고 목이 쉬도록 외쳐대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화살과 창이었다. 때로는 뜨거운 물을 붓기도 했다. 성의 담벼락은 점점 더 높아져 감옥 같은 모습이었다. 이것에 백성들은 누드우스의 담벼락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항의도 위축이 되었다. 누드우스 왕의 막강한 친위대가 조덴스덴 전역을 돌며 불평 불만자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들였다. 이것을 백성들은 쥐도 새도 모르는 조덴스덴의 비극으로 불렀다. 조덴스덴은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당시 조덴스덴의 인구가 120만이었으나 누드우스의 친위대가 휩쓸고 간 바로 직후에는 인구가 892,560명으로 줄어들었다. 감금과 추방과 행방불명이 그 주된 원이들이었다. 때문에 분노를 행동으로 표출하지는 못하고 화병이 되거나 아니면 생각을 포맷해 버리는 체념과 자조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왕실을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누드우스 왕에게 옷을 입히려는 백성의 가련하고 안타까운 기대는 먼 하늘을 나는 불길한 블랙 버드가 되고 말았다. 파랑새는 아예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전 세계로부터 ‘누드우스의 왕국은 벌거벗은 임금님이 지배하는 벌거벗은 왕국’ 이라 놀림을 받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조롱하거나 희화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지배하는 벌거벗은 나라의 벌거벗은 백성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누두우스 왕은 벌거벗고 있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딴청을 피웠다. 그는 진정 벌거벗은 자들은 비록 옷을 걸치고 있지만 사실상 옷 같지도 않는 옷을 걸치고 있는 타인들이며 그들이야 말로 야만인들이라는 궤변을 토해내었다. 그는 인간만이 걸치고 있는 그 위선의 옷을 벗어버린 것이 뭐 잘못되었냐고 항변까지 했다. 그래 벌거벗었는데 배 한 번 째보시지! 하는 투였다.

“너희 가련한 백성들에게는 내가 벌거벗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가? 마음의 문을 열어라! 본능의 문을 열어라! 진실의 문을 열어라! 양심의 문을 열어라! 그러면 이태리의 고급 원단보다도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용의를 입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

“너희들이야 말로 벗고 있다. 옷을 입고 있되 옷 같지도 않은 옷을 입고 있다. 그런 따위의 옷을 입고 입었다고 말하지 말지어다! 벗어라! 벗어라! 벗어라! 그리고 크게 웃어라! 그러면 입을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벌거벗은 임금님, 옷을 입으세요! 하고 아무리 외쳐보아도 되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공허한 메아리, 그 현란한 궤변뿐이었다. 누드우스 왕은 위선의 옷을 벗어던졌다고 강변하지만 같이 벗고 있는 귀족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백성들은 야만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한탄했다.(*)  (2008.7.30.12:45)

이미지출처: http://kr.n2o.yahoo.com/NBBS/1

신 벌거벗은 임금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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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이혼, 그 욕망의 그늘







이혼, 그 욕망의 그늘


존재가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머리가 부서질 정도로 괴롭다면 생각을 멈추는 것이 낫다.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고 해서 존재가 아닌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주장할 작정이다.


‘나는 잠시 생각을 멈춘다. 그래도 나는 존재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머리는 너무 작다는 자책은 언제나 나를 괴롭힌다. 사실 ‘할 일’ 이라고 표현했지만 주로 정신적인 노동(?)에 국한된다. 이를테면,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갈까, 하는 생각에서부터 콩트 습작에만 미친 듯이 빠져들거나, 주식 투자로 수지를 맞거나, 놀면서 먹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거쳐 결국 무능력을 인식해야 하는 작은 머리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지는 그런 공상들 말이다. 또한 작은 머리에도 화가 치미는데 거느리고 있는 식솔들이 작은 머릿속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이런 족쇄를 효과적으로 분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더해지는 것이다. 이런 꿍꿍이속을 알기라도 하는지 마누라는 마누라대로 절묘한 타이밍으로 바가지를 긁어대고 쌍둥이는 쌍둥이대로 공상의 자유로움에 앙앙거림을 투하해대니 하루하루가 불협화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직장 일을 핑계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방구석에 앉아 사각의 천장을 그저 말똥말똥 쳐다보거나 컴퓨터를 켜고 콩트랍시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노라면 도피인지 바램인지 공상은 시작되는 것이다.


[직장을 때려치워......그럼 무슨 돈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려......인생은 이래도 저래도 굴러가는 것 아냐......자유롭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거야, 박제는 자유의 상실이지, 날아오르는 거야......헌데 콩트는 아무나 쓰는 게 맞아, 아냐......뭐 지금부터라도 습작을 시작하는 거지......콩트는 내 체질에 맞는 것 같아. 그다지 심각한 무게에 눌리지도 않고 스케일에 억압당하지도 않고......난 말초적인 인간인가......그래도 대하 꽁트나 꽁트 전집 만드는 거사를 한 번 시작해 보는 건 어때, 만들면 되는 거 아냐......시장에서 붕어빵을 파는 건 어때......자유가 있어 좋지 않아......그리고 밤엔 미친 듯이 콩트를 습작하는 거지......재미있지 않을까......콩트의 소재도 더 얻을 수 있을 거고......글이란 게 그저 머리 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잖아 발로 뛰어야지. 헌데 난 지금껏 발로 뛰어 쓴 글이 하나도 없잖아......헌데 붕어빵 장사는 잘 될까.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우유값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이런 식이다. 이러면서 현실과 공상 사이에서 마누라와 쌍둥이의 채찍질이 더 보태져 삐꺼덕 소리는 커져만 가는 것이다. 현실과 공상사이의 이빨은 어긋날 대로 어긋나 이럴 때면 돈 많은 과부나 하나 낚아 놀고먹으면서 살고 싶은 욕구도 커지고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 의, 식, 주 구애받지 않으면서 살아가고도 싶어지는 것이다.


더욱이 불면증까지 얻어 시달리다 보니 마누라의 은근한 재촉에도 지친 심신 탓에 무관심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고 아이들의 보챔이나 투정에는 짜증을 앞세우고 직장에서는 토끼 눈처럼 빨갛게 해 가지고는 졸기가 일쑤이니 단골 지적 대상으로 정리해고 1순위이고, 뻔한 일이지만 일의 능률은 더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바닥을 친지가 오래건만 상승 기류는 전혀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인생은 선택이다는 말은 누군가의 말장난이란 걸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이 나는 현실과 공상의 끼인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못난 인간이라고 되뇌어보기도 하고, 미친놈이라 입 주먹질을 해보기도 하지만 바람난 년 작심삼일이듯 허파에 든 바람은 빠져나가질 않는 것이다.


           

설상가상 마누라가 떠난 것이다. 종이쪽지 한 장과 쌍둥이와 나만을 남겨 놓은 채 말이다. 그것은 설거지가 나의 독차지임을 의미하고 현실과 공상의 줄타기를 하던 내가 현실 쪽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쌍둥이를 먹여 살려야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인 셈이다. 나의 공상 속에 이런 류의 공상이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마누라가 언제나 나를 견뎌 주리라는 기대는 참으로 이기적이었다. 관찰컨대, 마누라는 잘 견디는 듯 했다. 나의 무기력한 공상 놀음에도 잘 적응하면서 그녀 자신은 현실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 의, 식, 주의 가사일과 허드렛일, 때로는 부업에 이르기까지 현실적인 삶 속에서 무언가 이루어 놓으려 발버둥치는 듯 했다. 간혹 마누라와 대화를 하는 경우, 그녀는 미래의 장미 빛 목표를 위해 어떻게 현실적인 계획을 설계하고 통제해야 하는지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듯 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돈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마누라는 효율적인 돈의 소비를 통해 저축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다. 미래를 담보한 최선의 전략이었다. 한 가정을 지키고 책임져야 하지만 엉뚱한 공상에 젖어있는 가장인 나에 대해 마누라는 현실적인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랬기에 마누라가 마지막 남긴 종이쪽지 보다 더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건 나 자신이 나의 세계에 빠져있을 때 간간이 울려대던 그녀의 목소리이다.


“여보, 설거지 좀 해요.”


설거지. 나는 멍하니 마누라의 설거지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식기들의 기름때를 씻으면서도  나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공상들이 가득 차 있었다. 주말 가족나들이나 생일 파티에서조차도 나의 작은 머릿속에는 잡다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여보, 설거지 좀 해요.”


나는 마누라가 왜 떠났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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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9 18:34

[꽁트] 몰입 가족






 

몰입 가족

― 몰입의 양상들


내가 영어 학원을 운영하고 숱하게 많은 아이들을 보아왔지만 초등학교 5학년인 K 만큼 영어에 몰입하는 아이를 본 적이 없다. 학교를 마치고 곧장 학원으로 달려와서는 수업 시작하기 한 시간 전쯤부터 어학실 TV에서 CNN 방송을 틀어 몰입하는 것이다. 주위에는 시선 한번 두지 않고 아무 말도 없이 오직 TV 스크린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K의 모습이 어떠하리란 것을 쉬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학실의 격리된 부스에 앉아 구부정한 자세로 입을 벌린 체 TV 스크린에 몰입해 있는 모습을. 말도 없고 웃음도 없다. 그냥 앉아 TV에만 몰입하는 것이다.


하루는 내가 너무 궁금해서 원장실로 K를 불렀다. K의 그런 모습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몰입식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K의 행동은 결코 비정상적이지 않았다. 아니 아주 바림직한 자세였다. 그러나 어학원의 원장으로서 학부모들에게 언제나 몰입, 몰입하고 강조해 오긴 했지만, K의 그런 모습을 보자니 나도 K의 그런 모습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약간 몰려왔다.


“너무 영어에만 몰입하는 게 아니니?”

“당연한 거잖아요. 저 영어 몰입하지 않으면 아빠한테 맞아 죽어요. 아빠는 영어가 밥 먹여 준데요.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굶어 죽는데요. 영어가 사람을 잡아먹는데요. 아빠처럼 된데요.”

“아니 아빠가 그런 말씀을 하셔? 영어가 밥 먹여 준다거나 영어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말은 영어가 아주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겠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아빤 제가 영어에 몰입하지 않으면 정말 절 때려요. 아빤 영어 때문에 직장을 쫓겨났다고 했거든요. 그 놈에 영어라고 영어를 저주하면서도 저에겐 영어를 하라고만 하세요.”

“네 아빠가 영어 때문에 직장을 쫓겨났다는 말은 꼭 영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이를테면, 회사를 그만둘 나이가 되었다거나, 건강상의 이유라거나, 아빠가 개인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다거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단다. 이 원장 선생님도 말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 어학원을 시작했단다. 영어를 못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는 없단다. 아빠도 만찬가지란다. 네가 영어를 잘해 주었으면 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나는 K와 이런 대화를 이끌 가면서 서글픔을 느꼈다. K에겐 아니라고 부인을 했지만 실상 영어가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는 말은 사실 같았다. K의 아버지가 영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이나, 영어가 밥 먹여준다는 사실은 나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나 또한 영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고 영어 어학원을 운영하며 밥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몰입이 어학원의 운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달고 있는 간판이 <영어 몰입식 전문 어학원>이라고 적혀있으니 말이다.


비록 먹고 살기 위해 그럴싸한 <영어 몰입식 전문 어학원>이란 이름으로 영어를 가르치고는 있지만, 왜 영어에 이토록 발악에 가까운 몰입을 해야만 하는지 여전히 이해하지도 못한다. 영어가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 진실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잘하면 좋긴 하지만 그렇게 모두들 잘하면 정말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일까? 경쟁력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일까? 그건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돈을 벌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 ‘몰입’이란 단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부끄럽기까지 하다.


“아빤 술에 몰입해 있어요. 매일 매일 술이에요.”

“아빠에게 괴로운 일이 있나보구나?”

“엄마 때문이에요.”

“엄마 때문이라구?”

“예, 엄마 때문이에요. 엄마는 지난주에 집을 나가버렸거든요. 연락도 없구요. 아빠 말로는 애인에 몰입하고 있데요. 돈 없는 아빠보다 돈 많은 애인이 더 좋아 나가버렸데요. 아빤 그런 말을 하면서 또 화를 내세요. CNN만 계속 들으래요. 영어 모르면 굶어 죽는데요.”


K의 엄마를 몇 번 본적이 있다. 밀린 학원비를 내기위해 몇 번 학원을 찾아왔었고 날마다 전화를 해서 K의 진도나 성취도에 대해 직접 체크를 했다. 정말이지 귀찮을 정도였다. 어제도 통화를 했다. 그런데 가출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K의 엄마는 K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방학 때 마다 해외 어학연수를 보냈고, 전화영어를 했고, 수십만원씩을 투자해서 영어 동화 교재와 CD들을 구입했다. 몰입식 영어교육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았다. 자식의 교육에 몰입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인지상정이지만 K 엄마는 더욱 그랬다. 그런 K의 엄마였기에 가출이니 애인이니 하는 말은 의외였던 것이다. 그녀에겐 자식인 K가 모든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엄마가 집을 나갔다니, 그게 사실이냐. 네가 잘못 알고 있겠지. 할머니 집이나 친구집에 가 계시지 않을까?”

“절대 아니에요. 아빠가 그랬어요, 이제부터 둘이 같이 살자구요. 엄마가 보고 싶어 죽겠어요. 아빠 그러던데요, 내가 영어를 잘해서 유명한 사람이 되면 엄마를 찾을 수가 있데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영어에 몰입해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게 되면 엄마를 찾을지도 모르겠구나.”


나는 영어를 잘하면 엄마를 찾을 수 있다는 어이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K가 입을 열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몰입해 있어요. 아빠는 술에요, 엄마는 애인에요, 난 영어에요. 우린 몰입가족이에요.”    

(2008.07.07.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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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8 15:25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내가 처음 영어 몰입식 교육이란 말을 들었을 때 막혔던 길이 확 열리는 것처럼 눈부신 희망의 빛을 보았다. 공식적으로 몰입이 인정된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나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DUJNBgbVmAD/Bdc7MzoMOB+YzuoNPPjUz9ZJCKHGIUM=


나는 20살, 대학교 1학년이다. 내 삶의 약 3분의 1 정도는 영어라는 신성한 제단위에 바쳐졌다고 해도 그리 과장은 아니다. 부모부터 발 벗고 나서서 영어 공부를 시켰다. 방학이면 어학연수다 특별과정이다 해서 영어와 살도록 했다. 그런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사실에 자신의 지적인 능력에서부터 언어감각에 이르기까지 원망하고 또 원망을 했다.


내가 영어와 더불어 살아 온 삶은 동시에 분노와 절망과 실의의 나날이기도 했다. 왜 유창하게 안 되는가? 이 질문은 그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하는 처절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무엇을 남겼는가?  


영어 몰입식 교육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몰입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에도 불구하고 내게서 부족했던 것은 바로 영어에 대한 몰입이었던 것이다. 몰입! 나는 진정으로 영어에 몰입했던 적이 있는가? 답은 아니오였다. 방학 때의 어학연수도, 특별과정도 진정한 몰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답은 몰입에 있었다. 오랜 동안 지쳐있던 내게 몰입은 구원이고 희망이었다. 동시에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몰입하지 않았던 나, 이제 몰입하자! 나는 이렇게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나는 내 삶에서 한국말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말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건 기본적인 상식이 아닌가. 넌센스일리도 없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몰입이란 단어를 보통명사화 하고 있지 않은가. 몰입을 위해 영어 외에는 당분간 모든 것들을 몰수하기로 한 것일 뿐이다. 몰수! 그렇다 바로 몰수였다.


누가 무어라 하던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는 자기 최면을 하루에도 수십 번 씩 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언어는 영어 밖에 없다. 영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I am not Korean. I am not Korean. I can just speak English. I couldn't live without English!)’ 나는 이렇게 철저하게 한국인인 자신을 지우고 부정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 모국어는 영어다.


몰입을 하려면 이토록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마저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몰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몰입이란 단어가 보통명사화 되어가는 마당에 그렇게 영어에 몰입하는 삶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줄 것이라고 자기 변병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물론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이다.


‘People around me will understand me speaking only Enlgish in my daily life! 오렌지 wrong, 오뤤지 right!’


가족들은 대체로 나를 이해해 주는 입장이었다. 부모님은 영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알고있기에 나의 이러한 몰입에 대해 가끔씩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지지해주었다. 아버지는 카튜샤 출신으로 미군들로부터 영어 못한다고 수모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욕과 일상적인 언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욕을 들어도 흰 이를 드러내 놓고 히죽거리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사진관을 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가끔씩 사진을 찍으러 오는 미국인들과 손짓 발짓을 하며 의사소통을 하려고 했다 한다. 그러면서 영어에 호기심이 생겼고 카튜샤 출신의 아버지와 만났다는 것이다.  


나의 형은 더욱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형은 미국 LA 유학시절 슬럼가에서 흑인들과 몰려다니면서 흑인영어를 배웠다. 형은 LA 코리아타운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인들을 무시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지, 영어를 배우지 않고 한국말만 하는 태도는 미국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그렇지,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위대한 영어를 마다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다니!’ 형은 언제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형은 한국을 증오했다. 한국말이 촌스럽다고 했다. 한국의 문화가 쪽팔린다고도 했다. 형이 왜 이런 삐뚤어진 생각을 갖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단지 형은 유학시절 한국에 남아있던 여친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적이 있고, 방학 중에 귀국해 한국에서 마리화나와 LSD를 하다 불구속 입건이 된 적이 있고, 영어를 뒈지게 못하면서도 잘난척하는 인간들을 자주 욕했던 것으로 판단해 보면 그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가족 외의 주위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기에는 수준 차이가 났다. 그들은 몰입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을 테지만, 진정한 몰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의 진정성을 이해하기에 그들이 나와 영어로 소통하기란 불가능 할 것 같았다. 동네 이발소 최씨 아저씨나 정육점의 박씨 부부, 패밀리 마트의 아르바이트생이 어떻게 몰입에 대해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있겠는가. 


' Please, understand me! I am not Korean. I can't speak Korean. Please try to speak in Enligsh. '


이런 말이 입속을 맴돌았지만 침묵해야 했다. 단지 나는 그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영어로만 말을 했다. 이발소 최씨 아저씨는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거려주곤 했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리고는 입을 딱 닫아버렸으니 말이다. short cut 정도에서 멈춰버리는 것이다.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정육점 박씨 아저씨: 어서와 오랜만이네!

나: How's everything ?

정육점 박씨 아저씨: 만사형통

나: Can you speak English?

정육점 박씨 아저씨: 물론이지

나: What is your favorite movie?

정육점 박씨 아저씨: 오케이, 오케이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가장 이상적이다. 의도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접근을 하여 가능하면 많은 영어를 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한가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다. 흑인이나 백인을 가릴 필요도 없다. 나의 몰입에는 인종적인 편견이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영어만 하면 되지 흑, 백 따질 필요가 없다. 또한 빈부귀천, 학벌도 따질 필요가 없다. 영어에만 몰입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사 오케이인 것이다. 본국에서 노숙자를 했던, 마약자던, 전과자던, 범죄인이던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나 그녀가 미국인이면 되고, 영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면 되는 것이다. 오로지 영어에 몰입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10일 후에는 3개월째 영어에만 몰입한 100일이 된다. 하늘에 두고 맹세코 말하지만 단 한 번도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건 영어만 했다. 진정한 몰입의 실천이라고 자신한다. 진정한 몰입! 앞으로도 나에게서 모든 한국적인 것을 몰수해 버리고 오직 영어에만 몰입할 것을 다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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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5 01:57

[꽁트]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내가 처음 영어 몰입식 교육이란 말을 들었을 때 막혔던 길이 확 열리는 것처럼 눈부신 희망의 빛을 보았다. 공식적으로 몰입이 인정된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나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20살, 대학교 1학년이다. 내 삶의 약 3분의 1 정도는 영어라는 신성한 제단위에 바쳐졌다고 해도 그리 과장은 아니다. 부모부터 발 벗고 나서서 영어 공부를 시켰다. 방학이면 어학연수다 특별과정이다 해서 영어와 살도록 했다. 그런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사실에 자신의 지적인 능력에서부터 언어감각에 이르기까지 원망하고 또 원망을 했다.


내가 영어와 더불어 살아 온 삶은 동시에 분노와 절망과 실의의 나날이기도 했다. 왜 유창하게 안 되는가? 이 질문은 그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하는 처절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무엇을 남겼는가?  


영어 몰입식 교육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몰입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에도 불구하고 내게서 부족했던 것은 바로 영어에 대한 몰입이었던 것이다. 몰입! 나는 진정으로 영어에 몰입했던 적이 있는가? 답은 아니오였다. 방학 때의 어학연수도, 특별과정도 진정한 몰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답은 몰입에 있었다. 오랜 동안 지쳐있던 내게 몰입은 구원이고 희망이었다. 동시에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몰입하지 않았던 나, 이제 몰입하자! 나는 이렇게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나는 내 삶에서 한국말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말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건 기본적인 상식이 아닌가. 넌센스일리도 없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몰입이란 단어를 보통명사화 하고 있지 않은가. 몰입을 위해 영어 외에는 당분간 모든 것들을 몰수하기로 한 것일 뿐이다. 몰수! 그렇다 바로 몰수였다.


누가 무어라 하던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는 자기 최면을 하루에도 수십 번 씩 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언어는 영어 밖에 없다. 영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I am not Korean. I am not Korean. I can just speak English. I couldn't live without English!)’ 나는 이렇게 철저하게 한국인인 자신을 지우고 부정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 모국어는 영어다.


몰입을 하려면 이토록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마저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몰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몰입이란 단어가 보통명사화 되어가는 마당에 그렇게 영어에 몰입하는 삶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줄 것이라고 자기 변병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물론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이다.


‘People around me will understand me speaking only Enlgish in my daily life! 오렌지 wrong, 오뤤지 right!’


가족들은 대체로 나를 이해해 주는 입장이었다. 부모님은 영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알고있기에 나의 이러한 몰입에 대해 가끔씩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지지해주었다. 아버지는 카튜샤 출신으로 미군들로부터 영어 못한다고 수모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욕과 일상적인 언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욕을 들어도 흰 이를 드러내 놓고 히죽거리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사진관을 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가끔씩 사진을 찍으러 오는 미국인들과 손짓 발짓을 하며 의사소통을 하려고 했다 한다. 그러면서 영어에 호기심이 생겼고 카튜샤 출신의 아버지와 만났다는 것이다.  


나의 형은 더욱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형은 미국 LA 유학시절 슬럼가에서 흑인들과 몰려다니면서 흑인영어를 배웠다. 형은 LA 코리아타운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인들을 무시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지, 영어를 배우지 않고 한국말만 하는 태도는 미국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그렇지,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위대한 영어를 마다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다니!’ 형은 언제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형은 한국을 증오했다. 한국말이 촌스럽다고 했다. 한국의 문화가 쪽팔린다고도 했다. 형이 왜 이런 삐뚤어진 생각을 갖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단지 형은 유학시절 한국에 남아있던 여친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적이 있고, 방학 중에 귀국해 한국에서 마리화나와 LSD를 하다 불구속 입건이 된 적이 있고, 영어를 뒈지게 못하면서도 잘난척하는 인간들을 자주 욕했던 것으로 판단해 보면 그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가족 외의 주위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기에는 수준 차이가 났다. 그들은 몰입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을 테지만, 진정한 몰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의 진정성을 이해하기에 그들이 나와 영어로 소통하기란 불가능 할 것 같았다. 동네 이발소 최씨 아저씨나 정육점의 박씨 부부, 패밀리 마트의 아르바이트생이 어떻게 몰입에 대해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있겠는가. 


' Please, understand me! I am not Korean. I can't speak Korean. Please try to speak in Enligsh. '


이런 말이 입속을 맴돌았지만 침묵해야 했다. 단지 나는 그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영어로만 말을 했다. 이발소 최씨 아저씨는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거려주곤 했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리고는 입을 딱 닫아버렸으니 말이다. short cut 정도에서 멈춰버리는 것이다.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정육점 박씨 아저씨: 어서와 오랜만이네!

나: How's everything ?

정육점 박씨 아저씨: 만사형통

나: Can you speak English?

정육점 박씨 아저씨: 물론이지

나: What is your favorite movie?

정육점 박씨 아저씨: 오케이, 오케이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가장 이상적이다. 의도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접근을 하여 가능하면 많은 영어를 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한가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다. 흑인이나 백인을 가릴 필요도 없다. 나의 몰입에는 인종적인 편견이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영어만 하면 되지 흑, 백 따질 필요가 없다. 또한 빈부귀천, 학벌도 따질 필요가 없다. 영어에만 몰입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사 오케이인 것이다. 본국에서 노숙자를 했던, 마약자던, 전과자던, 범죄인이던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나 그녀가 미국인이면 되고, 영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면 되는 것이다. 오로지 영어에 몰입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10일 후에는 3개월째 영어에만 몰입한 100일이 된다. 하늘에 두고 맹세코 말하지만 단 한 번도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건 영어만 했다. 진정한 몰입의 실천이라고 자신한다. 진정한 몰입! 앞으로도 나에게서 모든 한국적인 것을 몰수해 버리고 오직 영어에만 몰입할 것을 다짐한다. (*)

몰입과 관련된 또 다른 꽁트: 몰입은 너의 운명
 

(2008.6.25.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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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4 18:29

[꽁트] 몰입은 너의 운명



 



몰입은 너의 운명


난 지금 굉장히 심각하다. 이렇게 심각한 적이 별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때 “내게 왜 엄마가 없냐” 는 질문에 할머니가 “너를 낳다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참 심각했었다. 할머니는 너무 솔직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냥 ‘죽어다‘ 라는 표현보다는 좀 더 인간적이긴 하지만 나를 너무 사실적으로 개입시킨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의 판단으로는 별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겠으나 나에게는 크나큰 슬픔이었고 절망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중 2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난 또다시 참으로 심각했었다. 나에게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아빠의 죽음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게 아빠가 있었다니! 한 밤중에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외할머니는 아빠의 존재를 확인했다. 길바닥에서 얼어 죽은 아빠! 엄마가 죽기 전에 이미 내게서 죽음보다도 더 하얗게 지어져 버린 아빠의 존재. 그렇게 아빠의 죽음으로 아빠의 존재를 알았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당신의 죽음으로 내게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세상에 죽음과 삶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잇닿아 있다는 생각을 그 어린 시절부터 했던 것이다.


외할머니와 외삼촌과 함께 살아온 지 이제 4년, 내게 또 다른 위기가 찾아 들었다. 연세가 많이 드신 할머니는 경제적으로 어렵다. 외삼촌을 부양하기에도 힘이 드신다. 외삼촌이 머리가 비상해서 경제적인 부담보다는 도움을 많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삶은 고달프시다. 당신은 손녀 용돈이라도 쥐어주려고 봄이면 시장통 구석진 한 모퉁이에 앉아 상추를 팔곤 하시고, 여름이면 바닷가에서  환경정화 활동으로 젊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버린 오물이나 휴지를 처리하거나 주우시고, 가을에는  각종 스티커나 광고물들을 나누어 주신다. 추운 한겨울도 예외는 아니다. 연말연시 대목을 맞은 식당에서 청소도 하고 주방에서 일당으로 일을 하시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위기가 할머니 때문은 아니다.


외삼촌은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라고 이미 말했다. 과외 한 번 시킨 적도 없고, 좋은 책 한 번 사준 적이 없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혼자서 척척 잘해서 외할머니가 입에 댄 적이 단 한번 도 없다고 하셨다. 지금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곳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나도 외삼촌 같은 사람이 되어 외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 그러나 나의 위기가 또한 외삼촌 때문은 아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전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의 위기는 영어 때문이다.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그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대해 나는 어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당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어에 몰입해야 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알지도 못하는 영어의 웅웅거림에 스스로 최면상태처럼 몰입해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고역이 아닐 수 있겠는가? 내게 들리는 것이라곤 한국의 지명이나 인물의 이름들, 그리고 숫자들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사실  남들에게는 대수로운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심각하다. 나는 국문학자나 사학자가 되는 것이 장래의 꿈이다. 국문학자가 되기 위해 영어권 대학으로 유학갈 일이 있을까? 나는 또한 학자가 아니라면 멋진 한정식 식당 주인이 되고 싶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영어가 정말 필요한 것일까?  


내가 생활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두 가지의 상반되는 경우가 나를 심각한 딜레마로 빠지게 한다. 어쩌면 아이러니인지도 모르겠다. 영어 몰입에 몰 자도 모르고 살아오신 외할머니를 보면 영어는 필요 없는 것 같은데, 오히려 할머니는 “앞으로 니가 이 할미처럼 고생 안할라믄 영어는 꼭 유창하게 해야 하닌기라, 알겠나! 니 외삼촌을 바라, 영어 잘하니까 유학도 가고 얼매나 좋아.” 하고 마치 영어의 필요성을 간절하게 느끼시고 있는 것처럼 강조를 하신다. 언젠가는 영어 몰입교육이 무엇인지를 교회에서 듣고 오셨다고 하시면서 “몰입 거, 좋은 거라더라! 니는 영어에 몰입해서 영어 그거 콱 아작을 내비리야 하는 기라. 알겠나! 한국말은 몰라도 영어는 유창하게 해야 되는 기라, 알겠나!” 나는 할머니께서 살아오신 삶을 되돌아보면서 할머니가 몰입되어온 신산스러운 삶이 나를 영어 몰입으로 내 모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당신께서는 어려운 삶을 살아오셨지만 내게 만은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리라.


할머니와는 달리 국비 유학을 떠나 작년에 영국 옥스포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빋고 교수생활을 시작한 외삼촌은 영어 몰입 교육에 조소를 보내기만 한다. 삼촌의 빈 방 책꽂이에 꼽혀있는 영문 원서들하며, 논문 자료들, 각종 서류들을 보면, 또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 외삼촌은 영어 몰입식 교육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외삼촌은 영어 몰입식 교육에 조소를 보내면서 “모든 국민들이 영어를 다 유창하게 할 필요가 어디에 있냐? 할머니를 봐라, 할머니가 영어가 필요하냐? 영어가 없이도 잘 살아 오지 않으셨냐? 삶에는 영어보다 더 필요한 가치들이 너무나도 많은 데 모든 사람들을 영어에 몰입시킬 필요가 어디에 있겠냐. 심지어 영어 공용어를 주장하는 분들도 있더라. 가슴 아픈 건 내가 존경하시는 분이 영어 공용어를 주장하시는 거야. 몰입도 안되고 영어 공용어도 안되는 거야. 영어 때문에 좀 불편은 하겠지만 말이야. 그건 말이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기독교인으로 전도하려는 생각과 같은 거야, 알겠냐.” 외삼촌의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외삼촌이 영국에서 보내 온 편지가 맞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할머니와 외삼촌의 영어 몰입에 대한 상반된 생각 사이에서 혼란스럽다기보다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그 상반된 생각들이 할머니와 외삼촌사이에서 뒤바껴 주장된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했던 것이다. 즉, 할머니야 말로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영어 없이도 다 살아가는데 뭐 필요한가하고 비판을 했어야 하고, 외삼촌이야 말로 외국물 먹은 경험으로 봐서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적극적인 수용을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반대였던 것이다.


사실 나는 몰입식이니 비몰입식이니에 관심이 없었다. 나라에서 한다면 할 수 밖에 없고 뭐 별수 있나 하는 식의 체제와 정책에 순종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런데 자꾸만 주위에서, 특히 할머니와 외삼촌의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한 상반된 생각에 몰입에 가까운 강요를 당하면서 그것의 타당성에 대한 나 자신의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호기심은 무학의 할머니에서부터 최고지식층이랄 수 있는 외삼촌에 이르기까지 커지면서 다양한 의견으로 폭발하고 있는 것이기에 이제 나 자신도 국가와 민족을 떠나 나 자신을 위해 과연 영어 몰입식 교육이 필수적인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영어를 배우신 적이 없다. 영어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오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영어 몰입식 교육을 찬성하신다. 이러한 할머니의 태도는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자신은 영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삶을 살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영어 몰입식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을 손자에게는 시켜보겠다는 그 한의 읊조림일까?


또 외삼촌은 어떤가? 외삼촌은 누구보다도 영어가 필요한 사람이다. 영어가 외삼촌의 삶의 근거마저도 지탱하는 일부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외삼촌은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비판하고 심지어 조소를 보내기까지 한다. 삼촌의 그 태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깊이 안자의 깊이 있는 통찰의 결과일까?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충분히 들었다. 그렇다면 영어 몰입교육이 외국에 여행 몇 번 하면서 영어가 필요하더라, 의사소통이 필요하더라는 피상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일까? 오렌지가 아니라 오뤤지로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 몰입식 교육은 정말 필요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와 외삼촌의 상반된 주장은 우습기까지 하다. 영어가 절실히 필요한 외삼촌은 몰입이라는 단어에 조차 알레르기와 스트레스를 보이고, 영어가 전혀 불필요한 외할머니는 몰입이라는 단어 하나가 벌써 나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듯이 찬사를 보내시니 말이다.


나는 외할머니와 외삼촌의 생각을 블렌딩하기로 했다. 그리고 쉐이킹하고 스티어링해서 내어 놓기로 했다.


할머니는 영문도 모른 체 당신의 삶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영어를 죽어라고 하라는 것이다. 할머니에겐 놀랍도록 영어가 도구화 되어 있는 것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너무나 순박한 생각을 하고 계신거다. 즉, 할머니는 영어의 가치를 너무 일방적이고 맹목적으로 성공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삼촌은 달랐다. 비록 나의 생각 속에 할머니의 생각과 외삼촌의 생각을 뒤섞여 놓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외삼촌의 생각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영어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던지는 것이다. ‘내게 영어는 무엇인가?’ ‘나는 왜 영어를 배우는가?’       삼촌에게도 영어가 수단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할머니와 다른 것은 영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목적인 경우에까지 영어를 수단화하고 도구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영어가 필요 없는 할머니의 삶에서 영어는 그야말로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할머니처럼 삶에 대한 간절하고 절실한 의지를 보일 것. 그러나 맹목적이지는 말 것! 

외삼촌처럼 삶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수단들을 생각해 볼 것. 영어가 정보화 세계화의 도구로 긍정적으로 작용하긴 하겠지만 인간의 삶은 정보화 세계화가 다가 아니라는 것! 실용화가 다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나의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한 가치 판단은 상대적이라는 것! 민족과 국가이전에 나의 외할머니와 외삼촌의 생각이 나의 생각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 몰입을 절대적인 가치처럼 주장하는 인간들과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중이 절을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 몰입을 강요하더라도 몰입하지 않을 것임!

그러나 나는 내 수동적인 독백에 불만스러워 이렇게 덧붙인다
몰입은 그저 니 운명이라고, 내 삶에 몰입을 강요하지 말라고!(*)

(2008.6.22.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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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1 15:31

[꽁트] 전어



 

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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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2.hani.co.kr/board/ns_world

나는 그 늦가을의 전어를 잊을 수가 없다. 맛 때문은 아니다. 그런 잊혀지지 않는 인상 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부조리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한 사건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고 부조리적이라 이름 붙였지만, 다른 이름을 달아주어야 하는 건 아닐런지 모르겠다.


흔하게 지나치는 자잘한 일상 속에서 역시나 흔하고 자잘한 일이 왜 그토록 돌발스럽게 내 가슴속에 각인 되었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주위에는 부조리한 일들이 언제나 넘쳐나는데도 말이다. 인간인 나의 눈에 비치는 세상 속에는 수많은 부조리들로 우글거린다. 이를테면 전쟁에서 학살되는 인간들이나 도살장에서 도살되는 동물들의 운명 같은 것들이 그렇다. 부조리의 경우로 말한다면 도살되는 동물들이 그러한 경우에 가깝다. 전쟁이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에 의해 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도 피할 수 있는 전쟁이었다(피할 수 있는 것임에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부조리한 사실일까.) 그러나 인간의 식욕은 끊임없는 육고기를 원하고 끊임없이 동물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기 위해 죽여야 하는 이 모순! 삶과 죽음이 서로를 집어  삼키는 이 순환의 부조리함.


내가 그 늦가을 어느 횟집의 수족관 속의 전어를 보면서 평화롭고 낙관에 가득 찬 이 세상에도 불구하고, 느닷없는 세상의 어찌 할 수 없는 부조리에 대한 강한 인상과 회의와 무기력은 이상할 정도로 강한 것이었다. 내가 전어의 세계를 인간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전어로 <변신>이 되어 수족관에서 <이방인>의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었을까? 이전의 무수한 부조리 앞에서도 무감각하게 지나쳐 온 나 자신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친구와 함께 전어회를 먹고 출입문 밖으로 나와 커피를 홀짝이며 수족관에 있는 전어를 보면서 친구가 내게 한 말이 그러한 감정을 촉발시켰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친구의 말은 그다지 대수로운 것도 아니었다.


“저 놈들은 저들의 운명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얼마나 큰 공포에 휩싸여 있을까? 모를 꺼야! 모르는 게 약이란 이런 경우에는 딱 어울리지 않을까.”


그 친구의 그 말을 듣고 나는 강한 전류에 휩싸인 듯 전율했던 것이다. 나는 저 놈들의 어미나 새끼들을 맛있게 먹고 나왔을지 모르며 저 놈들의 눈에 비친 현실은 얼마나 부조리하며 나의 모습이 얼마나 가증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던 것이다. 불고기집, 보신탕집, 곰장어집, 횟집 등등의 앞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않았던 그러한 감정이었다. 친구는 계속해서 수족관의 전어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불쌍한 자식들. 한 치 앞 제 운명도 내다보지 못하는 구나. 하지만 그게 낫지. 이렇게 유유한 것이 나아. 저 유유함에 은근히 화까지 나는데.”


나는 그때 전어들이 ‘살육 청부업자‘ 인 나와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전어가 한다고 한들 뭐 대수냐! 전어가 그 따위 철학적인 생각을 해, 제기럴! 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괜한 감상이려니 생각했다. 나는 애써 그러한 병적인 감상을 막으려 먹이사슬이나 생존 욕구 따위의 단어들을 들먹거렸다. 그러자 내 마음도 조금 위안이 되었지만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전어들 앞에서 뱃속에 한 가득 전어회를 채우고 포만감에 만족하며 커피를 홀짝이는 나 자신이 구토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기력하고 무각감하다는 생각은 완전히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주위의 자그마한 부조리한 현실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어에게 나의 존재처럼 나에게 세상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란 무기력과 무능력과 더 나아가 무감각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수족관을 보고 있는 친구 옆에 나란히 서서 초조(?)하게 유영하는 전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는 괜한 감정 따위를 떨쳐낼 요량으로 친구에게 말했다.


“야, 2차 노래방 가야지! 뭐 그리 쓸데없는 소리를 주절거리고 있냐, 너는!”


친구는 계속 전어에 시선을 드리운 채 입을 열었다.


“야, 정말이지 모르는 게 약이야, 약!”


나는 친구에게 다시 한 번 모르는 게 약이다, 약 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대고는 친구의 팔짱을 끼고 근처의 노래방으로 향했다. 노래방에서의 이야기는 노래를 계속 불렀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언급할 것이 없다. 허전한 김에 한 가지 언급한다면, 나는 서툴긴 했지만 팝송을 연속으로 불렀고 친구는 평소와는 달리 센티멘탈한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 될 것이다. 마흔에 이른 우리는, 제목을 [마흔 즈음에]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마지막으로 함께 목이 터져라 부르고 난 뒤 노래방을 나왔다. 그 날 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부고가 날아들었다. 그 친구의 부고였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정말이지 모르는 게 약이었을까? 아무 준비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에게 모르는 것이 정말 약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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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5 11:34

[꽁트] 그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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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www.flickr.com/photos/petervan

 
 
        그 나무


어느 외국 시인이 노래했던가.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를 결코 본적이 없다고...... 그렇다,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를 그 어디서 볼 수 있으랴. 봄, 여름, 가을, 겨울, 흙 속에 서러움 쥐어뜯듯 애잔히 뿌리 붙박은 체, 상처 같은 헐벗은 몸뚱이 하나로 고독의 기나긴 시간들을 묵상하듯 숨쉬어 가는 나무가 어찌 아름다운 시의 모습이 아닐 수 있을까. 그런 나무를, 가볍게 업신여기는, 인간은, 시를 파괴하는 어리석은 미물. 시를 파괴하는 인간은 잔인한 시간을 견뎌내지 못할 테지. 시를 파괴하고 묵상을 압살하는 인간은 시간의 손에 들린 비수에 심장을 찔리고 말테지. 그런데도 인간은 어리석은 앞날의 꿈을 꾼다니. 그 타락한 꿈을 아름다울 것이라 하다니.


한 그루 나무만큼 위대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저 위대한 인간은 나무를 닮았을 뿐이다, 라고 할 수 있을 뿐. 그러기에 나무를 한낱 인간 주위 흔해빠진 미물이나 인간을 위한 도구로 본다면 그건 인간의 가치를 너무 과대하게 평가하는 짓이다. 오히려 나무는 아름다움으로 그런 인간들을 사랑하고 있으니. 나무가 없어진 세상을 상상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상상은 인간의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가슴을 상실하고 죽음에 몸을 내맡긴 괴물 같은 인간의 모습. 그런 상상 말라고, 나무는 인간을 사랑한다. 그토록 고요하고, 무던하고, 희생적인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시가 있을 수 있을까.


그 나무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 나무가 사랑한 인간들 중에 한 노인이 있었다. 그 나무가 노인을 사랑했다는 사실에, 무슨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 사실이다.


모년 춘 사월의 어느 날이었다. 환하게 피어오르는 생명의 계절과는 달리 노인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생명을 거스르는 죽음의 징후였다. 노인은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노인은 죽음만이 그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결론을 내리고는 산을 올랐다. 노인은 나무에 목을 매달아 이 세상을 떠나고자 산을 올랐던 것이다. 노인이 산으로 오르자 그 차가운 공기를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그 나무였다.


노인이 그 나무에 다다라 굵은 가지 아래 돌을 놓고 서서 밧줄을 묶는 동안 그 나무는 슬픈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 방울이 노인의 얼굴에 떨어졌다. 하지만 노인은 밤새 고인 이슬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밧줄 묶기를 계속했다.

그 나무는 더욱 슬퍼 스스로 가지를 꺾었다. 그 가지에 밧줄을 묶던 노인은 조금 놀랐지만 밤  사이 심했던 바람이 마른 가지를 꺾어 놓았다고 생각했을 뿐 밧줄을 풀어 다른 가지에 묶기 시작했다. 그 나무는 자신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안타까움에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노인은 산 속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로 생각했다.

그 나무는 낙담했다. 한 인간의 죽음을 막을 수 없는 그 나무의 고통은 너무나도 깊고 깊었다. 어떻게 할거나, 어떻게 할거나!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몸이 한스러웠다. 죽음의 도구로 쓰이는 자신의 가지가 안타까웠다. 그 가슴 아픈 무기력에 그 나무는 절망 속에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 나무는 그 깊은 고통 때문에 순식간에 꽃이 시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노인의  마음이 조금 동하는 듯 했다. 노인은 그 나무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도 잠시였다. 그 자신의 슬픔을 그 나무에 이입시킨 것일 뿐 정말로 그 나무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고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노인은 그 나무의 꽃들이 시든 것은 메마른 땅과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주위 나무들의 생동하는 꽃들을 보고서 잠시 눈가에 눈물이 맺혔으나 자신의 추측을 거두어들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가 목을 매달기에 안성맞춤의 나무라 여겼다. 꽃잎 지고, 가지 부러진 그 나무가 자신의 처지와 어쩌면 이토록 흡사할 수 있는가 생각하면서 말이다.

노인은 가지에 밧줄을 다 묶고는 튼튼한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몇 번을 잡아당겼다. 그 나무는 밧줄의 차갑고 거친 감촉에 찢어지는 슬픔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밧줄을 찢어 버릴 수만 있다면, 찢어 버릴 수만 있다면......노인은 자신의 목을 둥근 밧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순간 나무는 파르르 떨었다. 그저 바라 볼 수밖에는 없는, 이겨낼 수 없는 슬픔과 참담한 무기력함과 애절한 안타까움의 몸부림이었다. 죽음을 막으려는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노인은 잠시 나무의 떨림에 멈칫했지만, 다시 죽음의 유혹에 이끌려 갔다. 


노인은 죽었다. 노인이 죽은 바로 직후부터 이상하게도 그 나무는 더욱 싱그러워졌다. 누가 보더라도 탐스러워 보였다. 가지에 매달린 노인의 주검을 애도하면서 그 나무는 발악하듯 생기를 발했다. 주위의 나무들 보다 그 나무는 더욱 자신을 뽐내고 과시하는 듯 우람하게 서있었다. 다른 나무들은 그 나무가 노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미쳐버렸다고 생각했다. 다른 나무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가 죽은 그 직후부터 그 나무는 슬픈 얼굴로 햇빛을 받아들이고 식욕 잃은 뿌리로 물을 빨아들였으니 말이다.


미친 듯한 사랑 바로 그것이었다. 그 나무는 노인의 관으로 쓰이거나 상주(喪主)들의 상장(喪杖)으로 쓰이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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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9 20:29

[꽁트] 기억의 교차



 

기억의 교차


떠오를 듯 말 듯한 기억으로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아무리 기억하려 하여도 기억에 가려진 사물이나 사실의 실체가 떠오르지 않을 때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비등점에 도달하곤 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본 듯한 사람 인 듯한데 도무지 기억할 수 없을 때 그 호기심은 의외로 질기게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하지만 그럴 경우 기억하고 싶지 않는 무의식적 억압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호기심의 끈을 끊어버린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때 그것은 참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런데 참 우스운 것은 애써 기억하려는 노력을 그만 둔 순간에 느닷없이 떠오르는 기억이다. 기억은 긴장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긴장이 풀려 있을 때 잘 떠오르는 것일까? 기억에 관한 한은 이렇듯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이도 일어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여자가 그의 머릿속에 잡스러운 생각들을 떠오르게 하고 있다. 그는 지금 강릉으로 가는 기차의 좌석에 앉아 그 여자의 뒤통수를 보며 기억을 더듬고 있다. 그는 기차가 강릉에 도착할 때까지 그 여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고 무척 애썼다. 무려 2시간 가까이나. 때로 자유연상기법이란 황당한 짓까지도 해보기도 했고 하느님께 기도도 해보았다. 하지만 도통 기억을 할 수가 없다.


그는 좌석에 앉아 조용히 자는 척을 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과 단어들과 장소들과 인간들과 사건들과 사물들이 어지럽게 맴돌았다. 그러다 여자에 관한 한 그는 좋은 기억들이 없어 술이나 마시고 잠에나 곯아떨어지자고 작정하고 통로를 지나다니는 카트 상인에게 캔 맥주 두 개와 마른 오징어를 사가지고는 마시기도 했지만 잠은커녕, 정신이 더욱 말똥말똥 해지면서 기억해 보자는 각오가 더욱 샘솟는 것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막상 기억을 해낸다고 해도 기억을 해낼 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가 아닐 것은 분명하다. 그런 여자가 그의 삶 속에 존재하는가 생각해 보면 그런 여자는 없었다. 그에게 여자들은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망각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도대체 어디서 본 듯한 저 여자 얼굴은 떠오를 듯 말 듯 기억의 언저리를 맴돈다.


그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강릉에 도착하기 까지 달아난 기억을 다잡고 싶다.  그는 여자에게 다가가 직접 물어보려고 한다. 취기가 한 몫을 하고 있다. 별 대수롭지 않는 일이 때로 뻥튀기처럼 커질 때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이러다 보니 기억을 돌이키려 고민하느니 차라리 당사자에게 직접 다가가 기억을 환기시키고 싶다. 아주 쉬운 길이 있음에도 우회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그녀 앞으로 가 선다. 그리고 더듬더듬 입을 땐다.


“저, 죄송하지만......구면이 아닌가요?”


그의 갑작스런 말에 그녀는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누구신지......”


그는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심 망설이면서도 이왕 내친김이라 말을 잇는다.


“어디서 뵌 듯 하거든요. 제 기억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요.”

“전 기억에 없는데요. 죄송하군요.”


그녀는 등받이에 고개를 기대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는 죄송하다고 말하고는 자리로 돌아와 앉지만 갑작스런 충격이 밀려든다. 그는 충격 속에서 중얼거린다.


‘죽은 여자, 죽은 여자.’


그의 머릿속에 여자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의 차에 치여 죽은 바로 그 여자가 분명하다. 그녀가 다시 살아나 그의 앞에 앉아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그녀가 그의 옆으로 다가와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서 그의 옆자리에 앉는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제겐 죽은 언니가 하나 있었지요.”

“쌍둥이였나요?”

“그래요. 그런데 저도 당신을 보는 순간 너무나도 놀랐어요.”

“놀랐다구요?”

“당신도 쌍둥이시죠?”

“그걸 어떻게......?”

“전 타살된 당신 쌍둥이 형을 죽인 당사자이니까요. 전 언니를 죽이고 뺑소니를 친 인간을 꼭 죽이고 싶었거든요. ......당신으로 착각하고 당신의 형을 죽였지만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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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9 22:26

[꽁트] 영재를 위한 몰입식 교육법 특강






 

영재를 위한 몰입식 교육법 특강


나는 한 번도 글자와 숫자를 배운 적이 없었다. 2살 밖에 되지 않은 내가 글자와 숫자를 배울 수 있으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글자 읽기는 물론이거니와 숫자 읽기는 아주 쉽게, 덧셈 뺄셈은 가뿐하게, 구구단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익힐 수 있었다.


하루는 아빠와 엄마 앞에서 신문 사설을 줄줄 읽고, 숫자를 읽고, 더하기 뺄셈을 하고, 구구단을 외었고, 그런 나를 지켜보던 아빠와 엄마는 입에 거품을 물고 거의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2살이었으니 말이다. 모르긴 해도 영재의 탄생이라고 흥분하셨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겐 아주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었을 뿐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흥분으로 몸을 떨면서도 평소 글자와 숫자 공부를 시키지 않은 자신들이 미안스럽다는 표정이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아빠와 엄마처럼 숫자 공부를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준 사람들도 이 세상에 없지 싶다. 그러니 지금 아빠와 엄마에게 말하건대 정말 고맙다는 말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말한다. 내가 참으로 고맙다고. 과외를 시키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좋은 학습지 한 권 제대로 사주지도 않았는데 숫자를 익히고 글을 익혔다는 것을. 경제적인 손익을 따져보더라도 그 엄청난 투자의 생략이야말로 그 만큼 가계부담을 줄이는데 기여했음에 고마움을 표했던 것이다.  


내게 최적의 학습 조건은 무엇보다도 아빠와 엄마의 자유방임에 가까울 정도의 개방적 태도였다. 내가 2살이 되던 그 해 겨울에 아빠와 엄마는 좋게 말하자면 냉전(冷戰)중이었다. 서로에게 무관심했고 그들 사이에 대화는 차단되었다. 그러니 그 냉기(冷氣)같은 침묵이야말로 우선 기본적인 학습조건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침묵과 학습효과와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모범적인 사례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냉전은 나에게는 크나큰 배려였고 관심이었다는 것을 아직도 그들은 모르지 싶다.


다음으로 냉전의 기류를 사이에 두고 있던 아빠와 엄마의 참호를 오갈 수 있던 나는 그들이 언제나 중독처럼이나 똑같은 일에 빠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빠는 신문 읽기와 컴퓨터에 엄마는 텔레비전 드라마와 잡지에 열중해 있었다. 탁월한 반복 학습이 잘 이루어졌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참호에서는 물론이고 쉬리가 헤엄치며 노는 어항이 있는 거실과 해제된 무기들이 놓여있는 부엌을 포괄하는 공동경비구역(JSA)이나, 비무장지대에서 조용한 분위기의 휴식과 함께 무언가에 빠져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집중력은 물론이고 인내와 성실함 같은 덕목들도 함께 체득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집중해서 어떤 일을 성취해낸다는 침묵의 교훈을 배웠던 것이다. 그랬기에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풍부한 학습 교재와 자료였다. 무엇보다도 아빠의 컴퓨터 시디에서 반복해서 흘러나오는 뽕짝의 가사와 텔레비전 드라마의 대사를 듣고 감동적이고 살아있는 언어를 익혔는데 동시에 이것은 나를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주 조숙한 인간으로 변화시킨 이유들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 신물 나도록 들은 뽕짝의 가사 때문이었는지 멜로 드라마의 대사 때문인지 사랑의 상처나 이별의 아픔 같은 것을 일찍이 경험했던 것이다. 뽕짝 노래와 가사집(歌詞集)과 텔레비젼 드라마의 대사는 내가 글자를 익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엄마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흘러나오는 표준말을 익힌 것은 엄마의 큰 배려였다는 것을 지금에야 느끼고 있다. 뽕짝과 드라마를 통해 글자를 듣고 외웠다면, 집의 곳곳에 흩어져있는 신문과 가사집과 잡지를 통해 듣고 외운 글자들을 복습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영재적인 재능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언어감각도 한 몫을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후천적인 환경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글자는 그렇거니와 숫자에 대해서 말하자면 신문 한 장으로 충분했다. 아빠가 즐겨 읽던 스포츠 신문을 통해 수많은 숫자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 아시겠지만 스포츠 신문에는 수많은 전화번호들이 벌레처럼 우글거렸는데 아마도 스포츠에 전화 통화 종목 - 이를테면 누가 빨리 전화를 걸고 내리나, 얼마나 빨리 말할 수 있나 하는 서부시대의 총잡이처럼 손과 입의 재빠름과 속사를 측정하는 종목-의 추가를 주장이라도 하는 듯 했다.


물론 농담이지만, 그 전화번호들이 하필이면 스포츠 신문에 그토록 많아야 하는지는 4, 5년이 지나서 다시 호기심을 부추겼고 그 스포츠 신문을 사서 밤낮 없이 전화번호를 돌려댄 것도 바로 그때였다. 조숙함을 넘어 완숙함으로 변화했다고 할까.


그랬기에 내게 스포츠 신문의 영향은 지대했던 것이다. 숫자들의 기능적이고 산술적인 의미를 익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숫자들의 상징적이고 이면적인 의미와 함께 성적으로도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사족은 떼버리고, 숫자는 그렇게 쉽게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영재 교육법을 스스로 발견, 터득하여 실천했고 그런 나를 지켜보며 아빠와 엄마는 그들의 의무를 다했다는 듯이 그 이듬해의 첫 달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던 것이다. 이후 나의 삶의 크나 큰 부분에서 다시 참고하고 활용할 수 있었고 이제 <바부자모>, 즉 <바람났던 부모의 자녀들 모임>의 회원들인 여러분들 앞에서 <영재를 위한 몰입식 교육법 특강>이란 다소 늦어버린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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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5 03:20

[꽁트] 만숙, 우리들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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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ww.lythastudios.com/swarovski

 



만숙, 우리들의 천사


21세기도 7년이나 지났다. 올 것 같지도 않던 21세기였다. 그러나 7년은 21세기에 누적된 시간이 아니라 2000년이란 긴 세월을 한 순간에 폭발, 분열, 그리고 융합시키면서 스며든 변화의 시간이었다. 이러한 폭발로 사회, 정치 문화적으로 소외되어온 주변부와 타자가 파편처럼 떠오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한 개인에게는 어떠한가? 개인의 이성과 합리성이 오히려 억압되고, 테크놀로지와 멀티미디어가 양산하는 고상한 이름으로 포장된 유행, 트렌드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온갖 욕망들의 부유가 개인의 정체성 해체, 곧 자아 해체라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의 중심은 뻥 뚫려버리고 그 구멍 속에는 온갖 타자의 욕망들만이 채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초상에 덧붙여 자아를 빼앗긴 현대인의 초상화라 말해도 될까?


진정한 자아의 의미란 타인과의 의미 있는 관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억압되는 이성과 합리성을 회복하고 상업주의에 의해 인위적으로 강요되는 욕망을 벗어난 자리에 진정한 자아, 즉 타인을 존중하고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는 개인이 탄생하지 않을까? 그러한 개인들이 모일 때 바람직한 공동체가 만들어 지지 않을까?


그러나 모두들 제 잘난 맛에, 제 기분 꼴리는 대로 아주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착각 속에 오만한 콧대를 세우고 있다. 어떤 거대한 것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는 줄인형이란 사실을 모른 체 말이다. 이제 텅 빈 구멍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자아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우연히 알게 된 만숙의 이야기는 빠질 수 없지 싶다.


만숙이가 나를, 아니 내가 근무하고 있는 <청소년 문제 상담소>를 찾은 건 작년 가을이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몇 가지 경우에 한해서는 너무 늦어있었다. 그녀의 목에 찍힌 ‘이빨’ 자국이나 양팔에 새겨진 온갖 문신들과 약물 중독은 없애거나 치료하기에 늦지 않았지만 그녀의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는 어쩔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술과 담배에 찌들고 약물에 중독 된 상태로 보아 만숙이의 뱃속 아이는 기형의 가능성이 아주 높았지만 막상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해 본 결과 다행히 기형은 아니었다. 하지만 낙태를 하기엔 늦어 있었다.


만숙이에게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물었을 때 만숙이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기만 했다. 그러면 인생이 더욱 불행해진다는 말에도 그저 넋이 나간 모습으로 “몰라“ 라는 버려진 짐승의 신음 같은 단음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불행하게도 만숙이가 모르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본명은 물론이고 나이, 주소도 몰랐다. 그러니 그녀 부모의 얼굴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목욕탕에 한 번도 안 가 보았는지 자신의 몸무게도 몰랐다. 그녀가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만숙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녀의 부풀어 오르는 뱃속에 아이가 들어있다는 그 단 하나의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그녀가 아는 것이 있다면 내가 임신한 것 외엔 아무 것도 모른다는 명언 같은 그 사실 하나 밖에 없는 셈이었다. 마치 나 , 만숙이를 알기 전에 너 자신을 알라는 항변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만신창이가 된 만숙이에게 그 자신의 존재는 ‘죽은 시체‘ 아니 ’살아있는 시체’ 와도 같은 모순적인 존재였을까? 어쩌면 그렇게 만숙이는 자신의 존재조차도 잊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인간과 세상에 대해 한없는 원망과 저주를 퍼붓기도 할 법 했지만 오히려 ’몰라‘ 라는 말만을 반복해 대던 만숙이는 텅 빈 구멍 바로 그것이었다. 새 생명이 자라고 있는 그녀의 자궁과 불러오는 배의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만숙은 마치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검은 구멍 같이만 여겨졌다. 


무엇이 만숙이를 그토록 공허와 자학으로 몰아가게 했는지 누구나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만숙이의 육체에 가해진 폭력의 검은 손길이 누구의 것인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욕망의 성격을 쉬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숙이의 정신에 검은 얼룩을 드리운 자들이 누구인지도 또한 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검은 손길의 실체들을 짐작에만 근거해 털어 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검은 실체들은 도처에 검버섯처럼 퍼져 또 다른 만숙이를 잉태하겠지만 어찌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이었다. 만숙이의 상처와 고통과 공포는 그녀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역설을 잉태했다. 인간의 관계가 인간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비극, 만숙이의 모습이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이해하고, 이해받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면 차라리 그것은 비극이었다. 만숙은 그것을 증거했다.   


그러나 끝까지 만숙이가 붙잡은 것은 그녀가 잉태한 아이였다. 그녀의 공허한 검은 가슴에서 잉태된 밝은 생명이기라도 하듯 만숙은 어린 생명을 꼭 붙잡고 놓지를 않았다. 그녀의 가슴으로 꼭 보듬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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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1 19:04

[꽁트] 방구알 회장, 똥 바가지 덮어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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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알 회장, 똥 바가지 덮어쓰다


자네는 이 사실을 알고 있나? 종이는 나무로 만들지만 똥은 동물이 만든다는 사실을 말이야. 종이인 신문은 식물성인 셈이고, 똥은 섭취한 식물에도 불구하고 동물이 배출한다는 면에서 동물성인 셈이지.


그런데 말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신문을 똥 보다 더 더럽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있으니 말이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놈이네. 신문을 한갖 똥보다 못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은 인간의 문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신문에는 인간이 생산한 모든 문화와 문명이 집적되어 있지 않나 말야. 편집에 이용되는 최첨단 기술은 물론이고 인간의 사고와 행동들이 소개되고 있지 않나. 이런 의미에서 말야, 신문 한 페이지를 본다는 것은 종잇조각 하나가 아니라 총체적인 인류의 역사를 본다는 것과 별 다르지 않은 셈이지. 자네도 고개를 끄덕거리는군.


그런데 신문을 똥 보다 못한 존재에 비유한다는 것은 점잖게 말해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네. 자네가 웃는 걸 보니 점잖지 않게 말한다면 어떤 표현을 사용할까 상상을 하나 본데, 허허, ‘납득‘ 이란 말 정도로는 아주 부족한 정도라네. 하지만 이쯤하세. 내 입이 더러워 질테니 말야, 허허. 품위있게 놀아야 하지 않겠나, 허허. 아니 세상에 어떻게 신문이 똥 보다 더럽다는 말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거리 아무 곳에서 나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더라도 똥이 더 냄새나고 더럽다고 말할 걸세, 그렇지 않나? 자네도 고개를 끄덕이는군. 내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인간이 어디에 있겠나. 거리에다가 신문과 똥 둘을 놓아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본다고 해보세. 사람들은 똥을 보고 역겨운 표정을 지으며 피해가지 않겠나. 그런데 신문은, 오늘자 따듯한 신문이라고 하세, 사람들이 다 주워서 보려고 할 걸세. 이러한 행동에는 예외가 없을 것이네. 그래 이번에는 자네가 고개를 심하게 끄덕이는군. 혹 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 아니, 농담일세. 어떻게 진지한 자네가 내가 말하는 동안 졸기야 하겠나. 무안해 하지 말게, 그냥 농담이었으니. 아무튼 말야, 신문이 똥보다 더 깨끗하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사실이네. 아니 진리이네. 예외적인 행위나 반응이 없으니 말이네. 신문 보다 똥이 더 더럽다는 말은 진리라는 이 말이네. 만약 똥이 신문 보다 더 깨끗할 수 있다거나, 신문이 똥보다 더 더럽다고 하는 인간이 있다면 진리를 부정하는 미친 인간인 셈이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신문을 읽지 않았군. 자네 오늘자 신문 좀 가져다주게. 조중일보와 중동신문만 가져오게. 그 신문들이 그래도 좀 세련된 신문 축에 들지. 안 그런가?



*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주식이 50이나 빠졌군. 니미럴, 언제나 똥이 나를 엿멋이는군. 뭐 유기농용으로 쓰이는 똥을 무취, 무균으로 재가공하는 주식회사 <유기농>이 신문 일면에 헤드라인으로 나왔군. 어쭈, 그기다, <유기농>이 전면 광고를 실었군. 똥이 참 잘 나가네. 아니, 아니, 이건 또 뭐야. 조동일보 회장이 똥바가지를 덮어썼다고! 아니 신문사 회장이 똥을 뒤집어쓴 이유가 무언가? 이런 변고가 있나! 자네, 이 기사 한 번 좀 읽어 봐 주게. 갑자기 눈이 침침해 지는데.


“조동일보 방구알 회장이 어제 저녁 7시 30분 경 모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승용차에 타려는 순간 신원을 알 수 없는 괴한으로부터 오물 세례를 당했다. 현장에서 잡힌 괴한은 67세의 M씨로 밝혀졌다. M씨는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과정에서 방구알 회장의 조동일보가 자신을 똥보다 못한 인간으로 사회적인 매장을 시켰다고 항변했다.”


허허, 참, 방구알 회장 무슨 이유로 똥바가지를 덮어썼는지 궁금하군 그래. 자네도 고개를 끄덕거리는군. 정말 궁금해 죽을 지경이네. 그리고 M이라는 작자는 똥보다 못한 취급을 당했다는데 무슨 일인지 궁금해 미치겠군. 조동일보로부터 똥보다 못한 인간으로 사회적인 매장을 당했다고 판단하고 있다면 다소 문제가 복잡해지겠군. 경찰 조사과정에서 ‘사회적인 매장’ 의 이유가 밝혀지겠군.



*


M씨가 분노한 조동일보 똥 관련 문제의 기사 발췌:

똥을 마셔버린 M씨, 음주 운전 단속 피하기 위해 차에서 똥 누고 바카스와 섞어 마시다. 음주 단속을 하던 경찰관은 M씨의 입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추궁한 결과 음주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똥을 마신 사실이 밝혀졌다.


M씨의 항변:

“치아와 목이 좋지 않아 입에서 항상 똥 냄새가 난다. 입에서 똥냄새가 나자 경찰과 기자가 황당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어 사진과 함께 기사를 실어 결과적으로 본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내게 술이 원수라면 원수이지만, 어떻게 술냄새를 없애기 위해 차 안에서 똥을 누고 음료수에 타서 마실 수 있다는 말인가! 펜으로 정의와 진리,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기자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또한 그런 기사를 쓴 기자말고도 편집 과정상의 기자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조동일보의 방구알 회장의 방관적 자세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묻고 싶었다. 고개를 들고 다니지를 못했고 직장에서도 실직되었다.”


*


허허, 이번엔 신문이 똥 보다 더 더러운 짓을 했구만, 아마도 기자가 술에 만취해 기사를 쓴 모양이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똥을 마셨다는 허황된 기사를 쓸 수가 있겠나 말이야, 허허, 참. 우리나라의 정론지 조동일보가 실수를 했구만 실수를, 쯧쯧. 자네도 고개를 끄덕거리는군. 앞으로 조동일보 방구알 회장과 만날 때는 똥을 마셨단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구취 제거제를 하나 구입해야 겠어, 허허. 그렇지 않나? 자네도 필요하면 구입하게나. 아무튼 방구알 회장 똥 때문에 한 동안 똥냄새 제법 풍기겠는 걸, 허허. 

(2008.5.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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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8 23:36

[꽁트] 낙원으로 가는 길




낙원으로 가는 길



소풍날의 아침 하늘은 참 깨끗합니다.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눈을 부시게 합니다. 날씨 탓인지 아이들이나 아이들을 따라나선 부모님들의 발걸음도 가벼운 듯 합니다.


소풍의 목적지는 유치원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공원입니다. 작고 아늑한 공원으로 지상 위의 천국이란 뜻인 '지상낙원'이란 푯말이 정문에 걸려있습니다. 아이들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공원입니다.


하지만 아쉬움이라면 아이들이 걸어야 할 그 20분 거리의 길이 약간은 번화한 곳이란 것입니다. 도시의 한 모퉁이 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지상낙원’으로 가는 길의 이미지와는 약간 걸맞지 않다고나 할까요.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입니다. 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이고 보면 질주하는 차들은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보고 상어 같다고 한 찬현이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오늘 아침 차들을 보니 찬현이의 비유가 실감이 납니다. 아마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의식 같은 것 때문이겠지요. 질주하는 자동차들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부모님들이 함께 따라 나선 길이니 크게 걱정은 안됩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참석했지만 항상 예외는 있기 마련이죠. 부모님과 함께 참석하지 못한 아이들이 2명 있는데 엄마가 없는 희천이와 주말에도 맞벌이를 하는 영미가 그들입니다. 저는 부모를 대신해 그들의 손을 꼭 잡고 있습니다. 다들 부모들의 손을 잡거나 곁에 있으니 질투도 하지 않으니까요. ‘지상낙원’으로 가는 아침의 발걸음은 너무나도 가볍습니다.


유치원 정문을 나와 도로가로 들어설 무렵 게시판에 붙은 영화 포스터를 보고 희천이가 물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원색적 본능>이었고 제목 밑에는 <도발적인 섹스>란 선전용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선생님, 섹스라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현명한 대답을 준비해 놓지 못하고 있던 터라 약간 당황했지만 대답을 해주어야 했습니다.


"희천아, 영어로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식스 알지? 그 식스의 사투리란다. 알겠니?"


여섯 살 난 아이에게 이런 터무니없는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순간 머리 속에 떠오른 말은 러브란 말이었지만 괜히 말꼬리만 잡힐 것 같아 그만두었죠. 일단은 위기의 모면이 중요했으니까요. 내일 다시 설명해 주리라 생각했던 겁니다. 유치원에서만 생활하던 우리들에게 의외의 복병이 나타난 셈이지요.


"선생님, 영어에도 사투리가 있어요? 영어는 다 영어잖아요?"

"사투리가 있지. 희천이 네가 쓰는 사투리도 다 한국말이지 않니."


희천이는 잘 알았다는 표정으로[섹스에 대해선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이번엔 그림이 이상했나 봅니다. 남녀가 벌거벗고 함께 끌어안고 있는 그림이었으니까요.


"왜, 사람들이 벌거벗고 있어요?"

"응, 그건 말야. 좋아하기 때문이지."


순간 희천이가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고 옷을 벗으려고 했습니다.


"선생님도 옷 벗으세요. 절 좋아하잖아요?"


희천이의 행동은 장난이었지만 희천이의 모방이 아주 창의적(?)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포스터를 보고 바로 응용을 하는 희천이가 어찌 창의적이지 않겠습니까? 나는 녀석의 윗도리를 입혀주며 생각했습니다.


‘이 녀석아! 아직 지상낙원은 멀었단 말야! 벗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곳 말이야, 요 녀석아!’


"선생님은 부끄러운 거죠?"


그렇게 말하고 히히덕거리는 녀석이 왠지 천진난만함을 잃고 있는 듯 했습니다. 저의 마음을 모두 다 읽고 있다는 듯한 음흉한 목소리 같았으니까요. 사소한 것을 크게 보는 제 성격 탓이겠지만 벽에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 하나가 아이들을 많이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엔 영미의 차례였습니다. 참으로 예상하지 못한 질문의 공세였던 겁니다. 영미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기 러...브...호...텔이 뭐예요?"


현실 도피적인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빨리 아이들을 ‘지상낙원’에서 뛰놀게 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섹스 보다는 쉬운 질문이었지만 그래도 만만찮은 질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쉬는 곳이라 간단하게 대답하려 했지만 너무 두리뭉실한 듯해 사람들을 여행객들로 바꾸어 놓았죠.


"응, 여행객들이 쉬었다 가는 곳이란다."

"선생님 그럼 저기 알...프...스...모...텔...이 뭐예요?"


당황하게 만들기 위해 미리 준비해둔 질문 같았습니다. 조금 전 대답에 여행객으로 바꾼 것이 자기 함정을 파고만 꼴이 되었습니다. 약간의 시간을 끌기 위해 영미를 보고 웃으며 대답해주었습니다.


"응 그건, 여행객들이 쉬는 곳인데 말야 피곤한 차들도 함께 쉬는 곳이란다."

영미가 고개를 꺄우뚱거리며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럼 선생님, 러...브...호...텔...에는 차들이 쉴 수는 없어요?"


영미가 예리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음 그건 말야......"


다행히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던 건 희천이의 도움 때문이었습니다.


"계집애, 그것 두 몰라? 알프스는 멀리 있잖아, 멀리! 그래서 차들도 쉬어야 하는 거야, 이 바보야."


또 위기가 찾아들었습니다. 급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잠깐만요."


뒤돌아보니 이번에는 뒤 따라 오던 방귀 대장 방규 녀석이었습니다. 방규 녀석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있었습니다. 작은 카드 같았습니다.


‘방규 이 녀석아, 또 카드냐.’


방규 녀석은 카드 만들기에 소질이 있습니다. 자기가 만든 카드를 방귀를 뿌리듯이 온 동네에 뿌리고 다니는 녀석입니다. 참 순박한 녀석입니다. 헌데 이번에 건네 준 것은 카드가 아니라 명함 만한 크기의 광고물이었습니다.


<책임출장. 아가씨들 항시 대기. 맛사지로 싱그러운 하루를......>


낯이 뜨거운 광고물이었습니다. 여자들의 사진과 함께 전화번호가 큼직하게 적혀있었습니다. 길에 뿌려진 광고물을 주워 온 것입니다.


‘녀석, 엄마에게 가진 않고......’


선생님이란 존재를 신뢰했기에 옆에 있는 엄마를 제쳐두고 방규 녀석이 달려왔겠지만 기쁨보다는 원망이 앞섰습니다.


‘녀석아 엄마가 옆에 있잖아. 엄마가 때론 더 훌륭한 선생님이시란다.’


이렇게 한탄을 하며 퍼부을 질문에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평소에 이것저것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 후회되기도 했죠. 역시 방규의 입에서는 은밀한 방귀와는 달리 날카로운 질문이 흘러나왔던 겁니다.


"선생님, 맛사지가 뭐예요."


정말이지 거리에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상야릇한 것들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방규의 뺨을 두 손으로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습니다.


“음, 그건 말야. 뭉쳐있는 몸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거지. 요렇게 말야.”


정말이지 모두들 세계화에 걸맞은 질문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들 영어지 않습니까. 러브 호텔, 알프스 모텔, 맛사지. 또 어떤 녀석이 어떤 질문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영어임이 분명하리라 생각했죠. 비록 질문은 아니었지만 영어라는 추측은 적중했습니다. 영미가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파라다이스예요, 파라다이스."


영미는 ‘지상낙원’을 파라다이스로 영역(英譯)했던 것입니다. 뭐 어떻습니까. ‘지상낙원’을 파라다이스라고 한 게 말입니다. 아이가 그렇게 말했다면 얼마나 재치있고 애교있는 행동입니까. 하지만 이번만은 비록 한자이긴 하지만 지상낙원이란 표현을 양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 그렇구나. 지상낙원이로구나. 너희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곳이니, 자, 어서 달려가 마음껏 뛰어 놀아라, 애들아!"


이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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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7 22:44

[꽁트] 신문이 아주 가끔 똥 보다 더러운 이유(4)





 
신문이 아주 가끔 똥보다 더러운 이유(4)

나는 신문으로 똥을 닦는다. 신문으로 똥을 닦는 이유는 실용과 분노의 해소이다.

나는 가난하다. 그러나 휴지를 살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 솔직히 휴지를 사느니 다른 생필품을 하나라도 더 사는 것이 실용적이다. 휴지를 사느니 라면이나 노란 무를 사는 것이 더 실용적이란 말이다. 내 처지에 실용적으로 놀아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똥 닦고, 코푸는데 휴지 따위 구입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이렇게 투덜거렸다.

“어휴, 이젠 당신도 좀 휴지로 똥 닦아요.”

이게 아내의 유언처럼 되어버렸다. 그래도 지금 나는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실 아내의 말은 과장이었기 때문이다. 내 궁색함에 대한, 아니 고집에 대한 원망이었던 거다. 나는 사실 가끔씩 휴지로 똥을 닦았다. 누워있던 아내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신문으로만 똥을 닦는다. 나는 몸 져 누워 있던 아내를 위해 휴지를 대량으로 구입해 놓았었다. 아내가 죽자 나는 휴지를 어떻게 처리 할지 고민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내가 쓰지 않는다면 주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휴지를 공중 화장실 여기저기에 놓아두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휴지를 사회에 헌납한 셈이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이 휴지가 돈이라면, 내게 아무 쓸모도 없는 휴지가 돈이라면 가난하고 불행한 자들에게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하고 말이다.

휴지로 똥을 닦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솔직히 널려있는 게 휴지다. 종이를 수입하는 나라지만 널려 있는 것이 종이라는 사실은 좀 괴상하다. 심지어 부드러운 휴지조차도 식당의 화장실이나 은행의 로비에 널려있다. 이런 휴지 좀 빼다가 똥을 닦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문으로 똥을 닦는다. 두 손으로 신문을 비벼서 부드럽게 만든 뒤 똥을 닦는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나 사진이 있으면 두 손으로 더욱 힘껏 비벼서 닦는다. 신문을 비벼서 똥을 닦으면 그렇게 마음이 시원 할 수가 없다. 특히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특정한 신문들을 좍좍 찢어서 비벼서 똥을 닦으면 더 좋다. 변기에 앉아 비벼댄 신문지 조각을 펴서 가끔씩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상상하곤 한다.

‘수백억 재력가가 실용 운운하며 니미럴 뒷구멍에서는 술값으로 수백만원을 뿌려댄다면, 수백억 정치가가 니미럴 뒷구멍에서는 자신의 홍보로 수억, 수십원을 뿌려댄다면 그 뒷구멍은 뭐로 닦는가? 가난하고 불행한 자들을 위해 헌신해야할 종교인들이 입으로는 예수의 희생과 사랑을 전도하지만 뒷구멍으로는 호의호식 한다면 그 뒷구멍은 금박지를 입힌 뒷구멍인가? 입으로는 내세우는 게 우리같은 서민이지만 뒷구멍으로는 서민이 안중에도 없는 짓거리라면 그 뒷구멍은 도대체 뭐로 닦아야 하나.’

‘기자들 개**들도 마찬가지야. 신문 기자들은 죄다 홍보 요원들이야. 빌어먹을 타락하고 저속한 인간들을 고귀한 인간들로 만들다니. 궤변론자들이지. 뒷구멍을 혀로 핥는 자들이지.  똥고물을 핥는 거지. 너희들도 뒷구멍은 부드러운 휴지로 닦겠지.’

이러다 너무 감정에 빠져든 자신을 추스리라는 은은한 소리가 들려온다.

‘어이, 자네 뭐 그리 흥분하나. 세상사 다 그런 것 아닌가? 재력, 권력이 아무에게나 오는 건가? 하늘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그들이 그렇기 소니 뭐 그리 흥분 할 것이 있나! 감정 풀라구! 세상 적당하게 타락하고, 저속하게 살다 가는 거야. 권력자들이란 위선적이어야 한다구. 요사이 세상 발칵 뒤집고 있는 광우병을 보라구. 광우병 걸리는 것은 그저 재수가 없을 뿐이라네. 세상 다 그런거네. 소고기 싸게 공급해 준다는데 무슨 불만이 있나. 숭례문 불 났을 때도 책임진 놈 누구 있었나. 아무도 없지. 세상 그런거라구. 광우병으로 누가 죽더라고 자네가 걱정할 일은 아닐세.  ’그냥 재수가 없어 죽는 거라구. 또 책임질 놈도 없고 말야. 뭐 세상을 그렇게 어렵게 사냐구. 배고픈 소크라테스 그건 옛말이라구. 배푸른 돼지가 훨씬 세상에 부합하는 존재라네. 또 실용적인 존재라네. 실용적으로 살자구.‘

이런 상상을 하다가 간혹 밖에서 노크 소리라도 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체로 이러한 상상의 뒤끝은 좋지가 않기 때문이다. 우유부단한 나 자신을 한 없이 원망하기 시작하면서 분노가 치솟아 주체 할 수 없는 심정으로 십중팔구 술집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똥을 닦을 때는 상상을 자극하는 정치기사들이나 가식적인 연예기사들은 피하는 편이다.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나 기사를 똥구멍에다 대고 똥칠을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감정이 다소 누그러진다. 그러나 이내 슬픔이 몰려온다. 고작 이러한 짓거리나 해야 분노가 풀리는 무능한 늙은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똥이나 닦으며 분노를 삭여야 하는 누구에게 말하기조차 거북스런 더러운 방식에 자신이 슬프지는 거다.

그러나 더욱 슬픈 건 내 똥구멍에도 그 더러운(?) 잉크 냄새, 먹물 냄새가 베여드는 것이다.  그래서 신문으로는 똥도 닦기가 조금씩 불편해 지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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