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08.08.05 02:15

자기 변명




자기 변명

-언어의 독점 권력

신문을 볼 때마다 참으로 모르는 세상에 살고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보잘것 없는 한 개인과 신문사이에 얼마나 큰 벽이 가로 놓여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신문 속의 언어는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불가시적(不可視的)으로 존재하는 거대한 힘을 느낀다.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변화고 있다는, 그리하여 소외되고 있다는 절망감을 느낀다. 한 보잘 것 없는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은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모르는 언어들의 홍수. 도무지 그 언어들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에 스키마타(Schemata)도 형성되지 않는다. 그 언어들이 세상을 어떻게 뒤바꾸어 놓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세상 좋아지고 있다는 감탄사만 토해놓고 있다. 무식한 한 개인으로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특히 ‘물질적 생산 수단’으로 까지 공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컴퓨터 관련 언어들과 정보 기술 관련 언어들은 독점적 권력을 행사하면서 타 언어들을 소외시키고 인간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자본마저도 독점할 기세다.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인터넷의 사이버 세상을 보라. 저들이 독점적 권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정보 기술언어들이 얼마나 인간들을 소외시키고 있는지. 오직 소수의 지식층만이 독점적 권력의 실체와 운동 매카니즘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는 어차피 그렇게 진행되어왔고 또 그렇게 진행될 것이지만 그저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오늘 신문 속에서 한 보잘 것 없는 개인을 소외시키는 지배권력(?) 언어들을 보면서 가슴은 답답해진다. 몇 몇 엘리트들에게 독점되는 저 알 수 없는 언어들에 비감(悲感)을 느끼면서 그저 헛돌아 가는 바퀴처럼 살고 있는 자신을 다독거린다. 언어는 뼈다귀가 아닌가. 삶이야말로 진정한 살코기가 아닌가. 살코기를 보지 못하는 자들을 그저 웃어주자고.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생각 돌아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와대와 소맥 파티  (0) 2008.08.08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폐지하자!  (0) 2008.08.07
자기 변명  (2) 2008.08.05
그 참을 수 없는 본능의 질주  (2) 2008.07.17
인간의 굴레  (0) 2008.07.09
양심적인 보수주의자들에게 고함  (1) 2008.07.02
Trackback 0 Comment 2
2008.05.12 18:34

[패러디] 'The King Salt' 폐하의 후한 beef 인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지출처:http://www.flickr.com/photos/davichi/234989757/

 

패러디 기사 원문: http://news.joins.com/article/3142575.html?ctg=1003
기사 워문을 읽어보시고 패러디 기사를 읽으시면 더욱 좋아요

다우너 도축관련 노컷뉴스 기사


[Ssangnom Ji's Blue Hut 단신] ‘The King Salt ’ 님의 후한 beef 인심


Juding Daily |기사입력 2009.05.12 01:24|최종수정 2010.05.12 10:30



[주딩일보 지쌍연] Blue House Secretary Wing(=Chicken Wing) 엔 10일부터 자정만 되면 2 hours 동안 쌍들리제가 at the same time by force 꺼진다. 사진 현상과 전기 절약이 그 reason인데 한정 없이 임기 내내 계속될 예정이다. 원망하는 secretaries 에게는 "커텐을 걷으면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있을 수 없다. 달빛이 밝아 업무보는데 아무런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질책이 거울에 반사된 것처럼 돌아온다. The King Salt 님의 사진 현상과 전기 절약을 강조하는 애국심에 따른 step 이다.


The King Salt 님은 오일 달러로 전세계의 부를 쓰레기통까지에도 채워놓던 시절 Main dish 가 McDonald's Burger였다. The King's SALT(The King Salt 님의 개인 회사)의 최고경영자(C대) 땐 Sultan 들의 재촉에 마지못해 Hotel Bar를 자주 찾았다. 술자리가 끝난 뒤 "술 한 잔이 a gallon of crude oil의 pirce 인데 (then 1500 US dollar)인데 왜 호텔 바에서 그렇게 비싼 술(100 year-old Valentine )을 마시자 하는지 도통 상식적으로 이해 할 수가 없다"며 for a long time 꼽씹었다고 한다. The King Salt 님의 과거의 모범적인 습관 탓인지 Blue House's Main Hall 에서 held 되는 banquet에서 almost always 선보이는 alcohol 은 사케 나 빼갈 , 또는 그 둘을 섞은 '사빼'이다. after King's Inauguration  멸치 하나 없이 고추장과 돤장만으로 안주를 삼으며 서민적으로 술을 마신 첫 family function story 도 sensational topic 이었다.


King's Palace 의 Main Buliding의 pillar의 높이는 35m이다. Ceiling이 high해서 한 floor이 nearly 3 floors에 almost equal 하다. 에스컬레이트가 있는데, The King Salt 님은  2층 Office 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exercise를 병행한 것이지만 습관화된 '사진 현상정신'이 more strng reason이라고 한다. In the past, The King's SALT 자신의 office도 stairs를 very often use했다고 한다. However, The King Salt 님에게 관대하고 크게 선심쓰는 게 있다. 바로 소고기 선심이라고 한다.


*신문 기사와 전기, 또는 허구의 차이를 지적으로 보여주는 Juding Daily

시간과 정력(energy) 절약상 기사 전문은 생략



한국에도 유사한 권력자가 있다고 하는데 비슷한 기사를 참조하세요^^

http://news.joins.com/article/3142575.html?ctg=1003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0
2008.05.11 19:04

[꽁트] 방구알 회장, 똥 바가지 덮어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방구알 회장, 똥 바가지 덮어쓰다


자네는 이 사실을 알고 있나? 종이는 나무로 만들지만 똥은 동물이 만든다는 사실을 말이야. 종이인 신문은 식물성인 셈이고, 똥은 섭취한 식물에도 불구하고 동물이 배출한다는 면에서 동물성인 셈이지.


그런데 말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신문을 똥 보다 더 더럽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있으니 말이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놈이네. 신문을 한갖 똥보다 못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은 인간의 문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신문에는 인간이 생산한 모든 문화와 문명이 집적되어 있지 않나 말야. 편집에 이용되는 최첨단 기술은 물론이고 인간의 사고와 행동들이 소개되고 있지 않나. 이런 의미에서 말야, 신문 한 페이지를 본다는 것은 종잇조각 하나가 아니라 총체적인 인류의 역사를 본다는 것과 별 다르지 않은 셈이지. 자네도 고개를 끄덕거리는군.


그런데 신문을 똥 보다 못한 존재에 비유한다는 것은 점잖게 말해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네. 자네가 웃는 걸 보니 점잖지 않게 말한다면 어떤 표현을 사용할까 상상을 하나 본데, 허허, ‘납득‘ 이란 말 정도로는 아주 부족한 정도라네. 하지만 이쯤하세. 내 입이 더러워 질테니 말야, 허허. 품위있게 놀아야 하지 않겠나, 허허. 아니 세상에 어떻게 신문이 똥 보다 더럽다는 말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거리 아무 곳에서 나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더라도 똥이 더 냄새나고 더럽다고 말할 걸세, 그렇지 않나? 자네도 고개를 끄덕이는군. 내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인간이 어디에 있겠나. 거리에다가 신문과 똥 둘을 놓아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본다고 해보세. 사람들은 똥을 보고 역겨운 표정을 지으며 피해가지 않겠나. 그런데 신문은, 오늘자 따듯한 신문이라고 하세, 사람들이 다 주워서 보려고 할 걸세. 이러한 행동에는 예외가 없을 것이네. 그래 이번에는 자네가 고개를 심하게 끄덕이는군. 혹 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 아니, 농담일세. 어떻게 진지한 자네가 내가 말하는 동안 졸기야 하겠나. 무안해 하지 말게, 그냥 농담이었으니. 아무튼 말야, 신문이 똥보다 더 깨끗하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사실이네. 아니 진리이네. 예외적인 행위나 반응이 없으니 말이네. 신문 보다 똥이 더 더럽다는 말은 진리라는 이 말이네. 만약 똥이 신문 보다 더 깨끗할 수 있다거나, 신문이 똥보다 더 더럽다고 하는 인간이 있다면 진리를 부정하는 미친 인간인 셈이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신문을 읽지 않았군. 자네 오늘자 신문 좀 가져다주게. 조중일보와 중동신문만 가져오게. 그 신문들이 그래도 좀 세련된 신문 축에 들지. 안 그런가?



*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주식이 50이나 빠졌군. 니미럴, 언제나 똥이 나를 엿멋이는군. 뭐 유기농용으로 쓰이는 똥을 무취, 무균으로 재가공하는 주식회사 <유기농>이 신문 일면에 헤드라인으로 나왔군. 어쭈, 그기다, <유기농>이 전면 광고를 실었군. 똥이 참 잘 나가네. 아니, 아니, 이건 또 뭐야. 조동일보 회장이 똥바가지를 덮어썼다고! 아니 신문사 회장이 똥을 뒤집어쓴 이유가 무언가? 이런 변고가 있나! 자네, 이 기사 한 번 좀 읽어 봐 주게. 갑자기 눈이 침침해 지는데.


“조동일보 방구알 회장이 어제 저녁 7시 30분 경 모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승용차에 타려는 순간 신원을 알 수 없는 괴한으로부터 오물 세례를 당했다. 현장에서 잡힌 괴한은 67세의 M씨로 밝혀졌다. M씨는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과정에서 방구알 회장의 조동일보가 자신을 똥보다 못한 인간으로 사회적인 매장을 시켰다고 항변했다.”


허허, 참, 방구알 회장 무슨 이유로 똥바가지를 덮어썼는지 궁금하군 그래. 자네도 고개를 끄덕거리는군. 정말 궁금해 죽을 지경이네. 그리고 M이라는 작자는 똥보다 못한 취급을 당했다는데 무슨 일인지 궁금해 미치겠군. 조동일보로부터 똥보다 못한 인간으로 사회적인 매장을 당했다고 판단하고 있다면 다소 문제가 복잡해지겠군. 경찰 조사과정에서 ‘사회적인 매장’ 의 이유가 밝혀지겠군.



*


M씨가 분노한 조동일보 똥 관련 문제의 기사 발췌:

똥을 마셔버린 M씨, 음주 운전 단속 피하기 위해 차에서 똥 누고 바카스와 섞어 마시다. 음주 단속을 하던 경찰관은 M씨의 입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추궁한 결과 음주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똥을 마신 사실이 밝혀졌다.


M씨의 항변:

“치아와 목이 좋지 않아 입에서 항상 똥 냄새가 난다. 입에서 똥냄새가 나자 경찰과 기자가 황당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어 사진과 함께 기사를 실어 결과적으로 본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내게 술이 원수라면 원수이지만, 어떻게 술냄새를 없애기 위해 차 안에서 똥을 누고 음료수에 타서 마실 수 있다는 말인가! 펜으로 정의와 진리,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기자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또한 그런 기사를 쓴 기자말고도 편집 과정상의 기자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조동일보의 방구알 회장의 방관적 자세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묻고 싶었다. 고개를 들고 다니지를 못했고 직장에서도 실직되었다.”


*


허허, 이번엔 신문이 똥 보다 더 더러운 짓을 했구만, 아마도 기자가 술에 만취해 기사를 쓴 모양이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똥을 마셨다는 허황된 기사를 쓸 수가 있겠나 말이야, 허허, 참. 우리나라의 정론지 조동일보가 실수를 했구만 실수를, 쯧쯧. 자네도 고개를 끄덕거리는군. 앞으로 조동일보 방구알 회장과 만날 때는 똥을 마셨단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구취 제거제를 하나 구입해야 겠어, 허허. 그렇지 않나? 자네도 필요하면 구입하게나. 아무튼 방구알 회장 똥 때문에 한 동안 똥냄새 제법 풍기겠는 걸, 허허. 

(2008.5.7.02:20)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0
2008.05.07 22:44

[꽁트] 신문이 아주 가끔 똥 보다 더러운 이유(4)





 
신문이 아주 가끔 똥보다 더러운 이유(4)

나는 신문으로 똥을 닦는다. 신문으로 똥을 닦는 이유는 실용과 분노의 해소이다.

나는 가난하다. 그러나 휴지를 살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 솔직히 휴지를 사느니 다른 생필품을 하나라도 더 사는 것이 실용적이다. 휴지를 사느니 라면이나 노란 무를 사는 것이 더 실용적이란 말이다. 내 처지에 실용적으로 놀아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똥 닦고, 코푸는데 휴지 따위 구입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이렇게 투덜거렸다.

“어휴, 이젠 당신도 좀 휴지로 똥 닦아요.”

이게 아내의 유언처럼 되어버렸다. 그래도 지금 나는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실 아내의 말은 과장이었기 때문이다. 내 궁색함에 대한, 아니 고집에 대한 원망이었던 거다. 나는 사실 가끔씩 휴지로 똥을 닦았다. 누워있던 아내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신문으로만 똥을 닦는다. 나는 몸 져 누워 있던 아내를 위해 휴지를 대량으로 구입해 놓았었다. 아내가 죽자 나는 휴지를 어떻게 처리 할지 고민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내가 쓰지 않는다면 주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휴지를 공중 화장실 여기저기에 놓아두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휴지를 사회에 헌납한 셈이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이 휴지가 돈이라면, 내게 아무 쓸모도 없는 휴지가 돈이라면 가난하고 불행한 자들에게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하고 말이다.

휴지로 똥을 닦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솔직히 널려있는 게 휴지다. 종이를 수입하는 나라지만 널려 있는 것이 종이라는 사실은 좀 괴상하다. 심지어 부드러운 휴지조차도 식당의 화장실이나 은행의 로비에 널려있다. 이런 휴지 좀 빼다가 똥을 닦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문으로 똥을 닦는다. 두 손으로 신문을 비벼서 부드럽게 만든 뒤 똥을 닦는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나 사진이 있으면 두 손으로 더욱 힘껏 비벼서 닦는다. 신문을 비벼서 똥을 닦으면 그렇게 마음이 시원 할 수가 없다. 특히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특정한 신문들을 좍좍 찢어서 비벼서 똥을 닦으면 더 좋다. 변기에 앉아 비벼댄 신문지 조각을 펴서 가끔씩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상상하곤 한다.

‘수백억 재력가가 실용 운운하며 니미럴 뒷구멍에서는 술값으로 수백만원을 뿌려댄다면, 수백억 정치가가 니미럴 뒷구멍에서는 자신의 홍보로 수억, 수십원을 뿌려댄다면 그 뒷구멍은 뭐로 닦는가? 가난하고 불행한 자들을 위해 헌신해야할 종교인들이 입으로는 예수의 희생과 사랑을 전도하지만 뒷구멍으로는 호의호식 한다면 그 뒷구멍은 금박지를 입힌 뒷구멍인가? 입으로는 내세우는 게 우리같은 서민이지만 뒷구멍으로는 서민이 안중에도 없는 짓거리라면 그 뒷구멍은 도대체 뭐로 닦아야 하나.’

‘기자들 개**들도 마찬가지야. 신문 기자들은 죄다 홍보 요원들이야. 빌어먹을 타락하고 저속한 인간들을 고귀한 인간들로 만들다니. 궤변론자들이지. 뒷구멍을 혀로 핥는 자들이지.  똥고물을 핥는 거지. 너희들도 뒷구멍은 부드러운 휴지로 닦겠지.’

이러다 너무 감정에 빠져든 자신을 추스리라는 은은한 소리가 들려온다.

‘어이, 자네 뭐 그리 흥분하나. 세상사 다 그런 것 아닌가? 재력, 권력이 아무에게나 오는 건가? 하늘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그들이 그렇기 소니 뭐 그리 흥분 할 것이 있나! 감정 풀라구! 세상 적당하게 타락하고, 저속하게 살다 가는 거야. 권력자들이란 위선적이어야 한다구. 요사이 세상 발칵 뒤집고 있는 광우병을 보라구. 광우병 걸리는 것은 그저 재수가 없을 뿐이라네. 세상 다 그런거네. 소고기 싸게 공급해 준다는데 무슨 불만이 있나. 숭례문 불 났을 때도 책임진 놈 누구 있었나. 아무도 없지. 세상 그런거라구. 광우병으로 누가 죽더라고 자네가 걱정할 일은 아닐세.  ’그냥 재수가 없어 죽는 거라구. 또 책임질 놈도 없고 말야. 뭐 세상을 그렇게 어렵게 사냐구. 배고픈 소크라테스 그건 옛말이라구. 배푸른 돼지가 훨씬 세상에 부합하는 존재라네. 또 실용적인 존재라네. 실용적으로 살자구.‘

이런 상상을 하다가 간혹 밖에서 노크 소리라도 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체로 이러한 상상의 뒤끝은 좋지가 않기 때문이다. 우유부단한 나 자신을 한 없이 원망하기 시작하면서 분노가 치솟아 주체 할 수 없는 심정으로 십중팔구 술집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똥을 닦을 때는 상상을 자극하는 정치기사들이나 가식적인 연예기사들은 피하는 편이다.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나 기사를 똥구멍에다 대고 똥칠을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감정이 다소 누그러진다. 그러나 이내 슬픔이 몰려온다. 고작 이러한 짓거리나 해야 분노가 풀리는 무능한 늙은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똥이나 닦으며 분노를 삭여야 하는 누구에게 말하기조차 거북스런 더러운 방식에 자신이 슬프지는 거다.

그러나 더욱 슬픈 건 내 똥구멍에도 그 더러운(?) 잉크 냄새, 먹물 냄새가 베여드는 것이다.  그래서 신문으로는 똥도 닦기가 조금씩 불편해 지는 것이 사실이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0
2008.04.27 01:19

[꽁트] 신문이 아주 가끔 똥보다 더러운 이유(3)


 


 
 
신문이 아주 가끔 똥보다 더러운 이유(3)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캐럴이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형형색색 반짝이는 전구들이 가장 무도회의 화려한 조명등처럼 거리를 수놓고 있다. 세상은 신에 의해 축복받은 듯이 한 없이 아름다워 보이기만 한다.

새벽 2시경 압구정동 고급 레스토랑 나폴리 앞에서 지나가던 모 주점 웨이터 변강쇠(가명)씨에 의해 한 구의 아이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는 10세에서 13세로 추정되나 나이에 비해 체구가 작고 골격이 가늘었다고 한다. 치명적인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약물 중독이나, 심장마비, 영양실조 등이 직접적인 사인(死因)으로 추정되었는데 정밀 검시를 위해 아이의 시신은 국립과학 연구소로 옮겨졌다고 한다.

변강쇠씨에 의하면 아이의 시신은 여러 장의 신문지로 덮여있었다고 전해진다.

25조원을 스위스의 비밀계좌로 빼돌린 딸락 그룹 김딸락 회장이 그리스 나폴리의 한 호화 별장에서 초호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 부실 경영에 대해 책임지기는커녕 호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딸락 그룹의 노동자들에게는 쥐약을 먹인 꼴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조속한 시일 내에 김 회장을 체포해 적절한 사법적 조치를 취하고 은닉해 놓은 25조원의 재산을 환수할 것을 천명하였다. (세계 타임즈)

정부는 재정 자금을 풀어 빚을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미 1백 40조원을 투입했고 그 부담이 엄청나다. 200X년까지 갚아야할 정부보증채의 이자와 국채, 국내외 차입금이 각각 26조원에 달한다. 또 공적자금 원리금 상환이 본격화하는 200△년과 200♡년에는 그 규모가 39조 5천억과 33조 8천억으로 늘어난다. 여기에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의 시행 등으로 돈 쓸 곳이 많은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무튼 지금까지 투입한 공적자금이 약발을 받아 순조롭게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고작 몇 마리의 쥐들이나 죽이는 쥐약 꼴이 되지 않도록 온 국민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중앙신보)

최근 쥐약이 품귀현상이라고 한다. 쌀소비가 줄어들고 있는 일반 시민들의 부엌에서 쥐가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지만 오히려 쥐약 소비는 증가하고 있다고 하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을 알아보니 쥐약을 먹고 자살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왜 하필 쥐약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국제경제)

두 정치인들의 쥐약논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얼마 전 한민족당의 박동개 의원이 [쥐를 죽이는 데는 쥐약이 최고]라는 주장에 대해 새밀레니엄당의 김쥐동 의원이 [쥐를 죽이는 데는 농약이 최고]라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의 논쟁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쥐약업계와 농약업계로 쥐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시아신문)

한 농부가 세상에 쥐들이 너무 판을 친다고 하면서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끔직한 사건이 있었다. 늘어나는 쥐들이 자신의 농작물을 파손해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입자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 농부는 정부청사 앞에서 쥐약을 뿌려대며 농성을 하다 경찰이 몰려오자 농약을 마셨고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일요뉴스)

올해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1~2 억을 호가하는 수입차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문을 연 S 수입업체의 경우 12월 한 달 동안 120여대의 수입차 판매 실적을 올렸다. 올해 150대 판매를 무난히 넘길 전망이다. (조선만보)

아이의 검시결과가 나왔다. 국립과학 연구소 소장인 나 천재 박사의 공식적인 발표에 의하면 사인은 위에서 다량 검출된 쥐약이었다고 한다. 쥐약은 볶음밥과 함께 섞여있었다는데 나폴리 식당 지배인에 따르면 식당 주위에서 틈틈이 식당으로 들어와 설쳐대는 쥐들을 잡기 위해 놓아둔 미끼였다고 한다. (*)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꽁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꽁트] Breakthrough  (1) 2008.05.01
[꽁트] 러브 레터  (4) 2008.04.29
[꽁트] 신문이 아주 가끔 똥보다 더러운 이유(3)  (0) 2008.04.27
[꽁트] 잠자는 거북  (0) 2008.04.25
[꽁트] 사랑은 아프다  (0) 2008.04.20
[꽁트] 두더지 모텔 403호, 고호의 그림  (0) 2008.04.18
Trackback 0 Comment 0
2008.04.09 01:18

[공트] 신문이 아주 가끔 똥보다 더러운 이유(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문이 아주 가끔 똥보다 더러운 이유(2)


자넨 오늘자 모 월간지에 ‘신문, 더 높아진 신뢰지수’ 라는 기사를 읽어 보았나. 바로 여기 이 책일세. 한 번 읽어 보게나. 신문의 날을 맞아 신문 독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가지고 신문의 신뢰 지수가 높아졌다고 대서특필을 하고 있네. 이제야 알 것 같군, 자네도 짐작이 가지 않나? 내가 이토록 지금의 종교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바로 이 빌어먹을 신뢰지수란 것 때문이었네. 맞아, 바로 이 높아진 신뢰 지수 때문일세.  신문에 대한 신뢰지수가 너무 높아진 결과 때문이란 말일세. 신뢰 지수가 높아져 나에 대한 평가가 계속 왜곡되어 왔던 것이네. 내가 신문에 쏟아 부은 돈이 얼마인데. 자네도 알지, 중앙지, 일간지 통 털어 전면, 반면 광고로 뿌린 돈이 얼마인가 말이야. 내가 이토록 나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굳어지기를 원치 않았다나는 건 자네도 잘 알걸세. 적당하게 선량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적당하게 애국자인 척 하면서 정치인의 입지를 굳히려고 했던 것 아닌가 말야! 그런데 지금 도대체 내가 어떤 인간이 되어 버렸냐 말일세! 


도대체 내가 예수야? 부처야? 살아있는 신이야? 내가 정치적인 입지를 굳히기 위해 사회와 민족을 위한답시고 약자들에게 베푼 위선적이고 계산적인 일들이 오히려 내게 멍에가 되고 있으니 말야. 이 죽일 놈들의 기자 새끼들이 얼마나 나를 진실하고 거룩한 인간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해놓아버려 이제 이 이미지를 벗어날 수조차 없으니 말야. 진실하다, 양심적이다, 선량하다, 움직이는 법전이다 어쩌니 마구 구라를 치는 바람에 도대체 정치계에 입문조차 할 수가 없어져 버렸으니 말야. 도대체 나를 예수에 비유한 기자 놈은 또 뭐냐 말야! 부패 정치 정화를 위해 삭발 단식을 했을 때 나를 성철 스님에 비유한 기자 놈은 또 뭐냐 말야. 그런 건 정치쑈나 이벤트로 적당하게 보아 넘겨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말야. 내가 이렇게 고귀하고 숭고한 인간이 되어버린 건 바로 쥐새끼들 같은 기자놈들 때문이야, 기자놈들! 내가 정치 쪽에 목이라도 내밀라 치면 ‘이 인간 이거 정치 말아먹을 인간일세’ 하는 의혹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닳고 닳은 정치인들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단 말야. 나도 댁들과 같은 인간이야, 하고 농담삼아 큰소리를 내질러도 보고 진지하게 음흉한 시선과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여도 보곤 하지만 당최 나를 믿어야 말이지. 넌 정치를 너무 깨끗하게 할 놈이야! 뭐 이런 눈으로 보거든.


‘넌 예수 같은 존재야. 넌 너무 진실해. 넌 너무 양심적이야.’


자네도 알잖아? 내가 얼마나 더러운 놈이란 것을 말야, 껄껄. 암 더러운 놈이지. 난 더러운 정치를 위해 태어났거든. 종교를 위해 태어난 놈이 아니거든. 그런데 이 빌어먹을 기자 새끼들이 나를 너무 깨끗한 영혼으로 만들어 버렸단 말이야, 개새끼들! 도대체 그 닳고 닳은 정치인들에게 조차 나에 대한 이미지를 굳히게 한 건 바로 빌어먹을 기자 새끼들, 그 새끼들이 써대는 신문기사들 때문이지. 아무리 기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기자 새끼들이라도 도대체 나를 예수로, 부처로, 살아있는 신으로 만들어 버린 건 너무 한 것 아냐,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하게 말해보게? 이제 더 이상 신문에 대한  신뢰지수가 높아지면 안되네. 그렇지 않은가? 나처럼 선량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야 하네. 나처럼 타락하고 더럽고 추악한 인간이 어떻게 예수가 되고 부처가 되고 살아있는 신이 될 수가 있단 말인가 말야. 이건 신문의 죄악이네, 진실의 왜곡이고 폭력이네. 난 정말 정치인이 되고 싶단 말이네! 정치에 몸담아 보려고 위선적인 자선을 베푼 것이 부활한 예수니 자비로운 부처의 환생이니 하는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야, 쳇! 나같이 ‘깨끗한 인간’ 이 정치를 하면 국민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 같은 이러한 상황에서 난 살아가기가 버겁네. 신문이 만들어 버린 예수, 부처, 살아있는 신의 이미지 때문에 난 그렇게 가식적이고 위선적으로 선한 척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버리고 말았네. 도대체 이런 비극이 어디에 있나 말인가. 이건 정말 악의적인 피해일세. 기자 새끼들에게 똥이라도 퍼붓고 싶은 심정이네. 뭐라고,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정치에 미련을 버리고 종교계로 나가보라고? 나 원 참 자네도……(2008.4.9.0:45)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꽁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꽁트] 우아한 인생  (0) 2008.04.16
[꽁트] 어떤 탈옥  (0) 2008.04.13
[공트] 신문이 아주 가끔 똥보다 더러운 이유(2)  (1) 2008.04.09
[꽁트] 어떤 일출  (1) 2008.04.08
[꽁트] 이혼 날의 연가  (0) 2008.04.06
[꽁트] 몰래 카메라 대소동  (0) 2008.03.29
Trackback 0 Comment 1
2008.01.31 10:50

[생각돌아보기] 영어광고, 과장인가 사실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어 광고, 과장인가 사실인가?

요즈음 신문 지면을 보면 영어회화 광고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다. 학원 광고와 학습 교재는 물론 영어 학습 관련 서적을 비롯해 각종의 다양한 학습법들이 선보이고 있다. 정말이지 눈이 어지러울 정도이다.

대부분의 광고가 그렇듯이 영어 광고 또한 긍정적으로는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준다고 할 수 있겠지만 부정적으로는 오히려 절망감과 좌절을 안겨주지 않을까 걱정이다. [영어회화를 단기 완성]하고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될 것]처럼 떠벌리고 [최고의 학습법이라 단언]하는 광고들이 과연 과학적으로, 아니 양보를 해서 현실적으로 사실일까.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만약 광고대로 라면 필자는 절망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단기]와 [저절로]와 [최상의 학습법]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필자 자신의 지능에 대한 절망감이며 투자한 시간들에 대한 절망감이다. 도대체 [나는 지금까지 무얼 했는가] 하는 절망감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대개의 영어 광고들이 진심으로 영어회화의 [습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 [돈]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과장이고 실현성이 희박하다면 어느 정도 안도가 되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에겐 그러한 광고들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것을 밝혀낸다면 자신의 지능에 대해 절망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무슨 수로 과장임을 밝혀 낼 수 있는 것인가? 솔직히 학습이란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증명해낼 도리가 없을뿐더러 혹 결과가 광고의 사실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다른 요소들에 핑계를 댄다면 어쩌겠는가. 이를테면 영어에 흥미가 없다거나 성격상의 문제 등 심리적인 측면으로 말이다. 이것 또한 증명해 낼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만약 학문적으로 이론적으로 광고의 내용을 뒤엎고자 한다면 두루 이론을 섭렵해야 하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 또한 완전할 수 없을 것이다.

언어 습득이론 자체가 완전히 객관화시킬 수 있는 과학이 아니라 추론과 가설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머릿속에서 언어를 습득하는 것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실험 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렵다. 필자의 절망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것만 같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추론과 가설은 어느 정도 해석상의 유연함이 가능하기에 터무니없는 논리만 아니라면 과장이라 지적한들 논박을 받을지언정 거짓이라 손가락질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종의 능력 없는 자신의 위안으로서 필자 혼자만이라도 이렇게 단언하는 것이다.   

과장 광고에 대한 문제가 심심찮게 보도되기도 하지만 영어광고는 과장의 지적은 커녕 시류에 편승해서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광고의 규모도 신문의 한 모퉁이가 아니라 전면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회화의 학습 광고가 때대로 마치 신문의 광고면을 점령한 듯 보이기도 해 영어의 중요성이 얼마나 파괴력이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혹 이것은 영어 공용화가 공론(c�의 대상이 되게 한 정부의 세계화 정책과 상응하기 때문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과장 광고라고 지적한다면 세계화 전략에 차질을 빗을 것을 염려해서 일까. 과장이라 했다가 영어 학습 열기에 찬물이라도 끼얹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일까(돈도 많이 날아가겠지). 그렇다면 지나친 아부이지 싶다.

지금의 과열되고 맹목적인 영어 학습열을 살펴볼 때 학부모들은 이성을 잃은 듯(?)하다. 사이비 종교에 맹목적으로 빠지는 것과 같이 과장의 여부를 확인조차 않고 교육이란 이름으로 자녀들을 맡겨버리니 이 어찌 사이비 종교에 대한 맹신과 다를 수 있겠는가. 학부모들은 영어회화라는 사이비 물신에 빠진 정신나간 신도들은 아닐까. 고작 해댄다는 것이 학교에서 공부 제대로 안시키고 교사들 안이함만 타박하니 정작 자신들의 잘못은 보이는지 안보이는지. 그저 영어 하나에 사생결단으로 뛰어들어 학생들의 재능과 자질은 무시하고 수백에서 수천 만원까지 하는 유학이나 연수를 보내거나 좀 못한 경우는 수 십만원하는 국내의 학원에 보내니 이것이 진정한 교육인지 이기주의고 탐욕인지는 구분하지 어려울 정도다.

또한 사회는 영어를 통한 돈벌이에 혈안이 된 듯한 느낌이다. 세계화의 고상한 겉옷을 입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교육과는 거리가 먼 상업주의가 도사리고 있는 느낌이다. 공권력도 정치의 눈치를 살피는 것과 같이 팽배한 영어회화의 폐해에 대해 학부모들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장이라고 지적하므로써 이러한 과열과 맹목과 이성상실을 완화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작은 좀도둑 보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가치관을 싹트게 하는 큰 문제인지를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도 못하는 듯하다. 누군가가 [벌거숭이 임금님]이라고 소리쳐 주길 바란다. (*)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2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