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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8 12:47

음식의 역사(3):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1.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2.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3.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4.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5.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6.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유목민들에게 왜 비타민 결핍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7.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8.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9. 통조림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몇 달씩 배위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0.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11. 20세기초 영국의 징병검사에서 41%의 청년들이 병역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12. 식품판매업자들의 사기행위와 불량식품에 정부와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13. 외국에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이 과연 자국의 식량 상황과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14. 식량 생산과 환경 파괴, 과식으로 인한 질병과 굶주림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 일까?

요리법의 발달은 인간의 건강을 비롯한 생존방식의 전반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가져왔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특히 인간이 날 것으로 먹을 수밖에 없었던 질긴 고기는 인간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수명을 단축시켰을 것이다. 이와 위의 손상, 또는 신경과 조직의 손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생존을 위해 먹은 음식이 사실상 생존을 단축시키는 아이러니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날것을 먹어야 했던 우리의 선조들이 불을 발견하고 우연하게 익힌 고기를 접하게 되면서 요리를 할 수 있게 된 역사적 사실은 실제 어떠한 역사적인 발견보다도 우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리법의 개발은 기원전 500,000년경과 네안네르탈인이 선사시대의 무대에 모습을 나타낸 어느 시기에”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사시대에 요리법에 관한 정보는 거의 찾을 수 없다 불을 사용해 음식을 익혀 먹기 시작해 토기를 발명하기 까기 수 만년 동안 요리의 변화상은 단순히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부언하는 말 같지만 『음식의 역사』의 내용을 따라 추측의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불의 발견은 곧 굽는다는 행위와 직결된다. 즉 구이가 인간들에겐 최초의 요리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이는 고온으로 인해 그 양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타다 남은 불에서 구운 고기가 손실이 적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타다 남은 불에서 단단한 뿌리식물을 요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다음의 변화에 대해서는 고고학자들은 진전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요리법은 고고학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기에 확인해 볼 수도 없는 일이다.

기원전 6000년경에 토기가 발명되었는데, 그 발명의 영감은 흙투성이 돼지새끼를 진흙덩이 위에 놓고 구웠을 때 깨끗한 상태로 구웠을 때 보다 수분이 더 많이 남고 맛있다는 것을 알고부터였을 것이다. 토기와 관련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돌니 베스토니체(Dolni Vestonice)에서 기원전 2500년으로 추정되는 화덕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는 2천여개의 불에 구운 점토덩어리들이 들어 있었다. “이 점토들은 동물의 머리, 몸통, 발 등의 형상을 한 작은 모형들이었다.“(p.50) 우크라이나에서도 화덕이 작은 구덩이 같은 형태로 존재했으리라 추측된다. 이 작은 구덩이들에는 ‘예열된 뜨거운 숯이나 조약돌‘ 로 채워져 음식을 익히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런 구덩이 요리법은 선사시대의 부족이 광활한 지역을 거쳐 이동할 때 소란스러운 모닥불로 요리하는 방법을 피하고 불꽃을 숨기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불을 피우는 방법을 개발 했을 것 같다.

굽는 것과는 달리 끊이는 방법에 대한 정보는 더욱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불이나 굽는 방법은 우연의 결과라고 할 수 있으나 뜨거운 물은 자연적인 현상으로는 접하기 어려우며 특히 불과 물에 견딜 수 있는 용기의 발명은 우연에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요리법은 증거가 발견된 기원전 5000년경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이전에 삶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도처에 있다. 거북의 창자를 잘게 다져 만든 아마존의 요리인 사라파텔은 거북의 오목한 등껍질을 그릇처럼 이용하여 끓여졌다. 아시아에서는 대나무를 사용하였는데 인도네시아는 아직도 이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 또한 기원전 7000년경 중앙아메리카의 테우아칸 계곡에서 돌그릇과 돌냄비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토기와 청동기 이전에 널리 사용된 것은 동물의 위였다. 유목민인 스키타이족은 기원전 5세기에 위 속에서 음식을 요리했다고 한다. “기원전 13000년경에는 가죽 가공기술이 대단히 진보하여 가죽이 예전의 여러 가지 용기를 대처하게 되었다고 한다.”(p.53)

곡물요리의 경우는 단순히 불에 굽는 사냥한 동물의 원시적인 요리와는 달리 까다로운 곡물 처리로 인해 동물에 비해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이 필요했다. 그 이유는 야생곡식 자체가 실제로 인간이 먹는 배를 배유라는 전불질 속에 들어있고, 이것을 다시 얇고 거친 까끄라기가 감싸고 있고 다시 전체적으로 왕겨로 싸여있었기 때문이다. 야생 곡식은 그 왕겨를 제거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인간은 이삭을 구워주면 왕겨를 제거하기가 쉬워진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고대 시리아의 무레이바트(Mureybat)에서 구덩이에 가열한 돌을 깔아놓고 이삭들을 탈곡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탈곡도 까끄라기나 왕겨가 잘 없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는 탈곡법이 발명되었는데 이집트의 콤 옴보(Kom Ombo), 나일강 상류의 사하바(Sahaba) 퇴적평원, 요르단 계곡의 말라하, 이라크의 자위 케미 샤니다르(Zawi Chemi Shanidar)에서 발견된 절구와 비벼대는 돌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곡식을 두 개의 돌 사이에 두고 비벼대는 방법이 그것이었다.

밀과 보리를 탈곡한다고 하더라도 날곡식과 인간의 소화기관은 잘 맞지 않아 곡식을 요리하는 방법이 개발되어야 했을 것이다. 동물요리와는 달리 작은 낱알들로 이루어진 곡물의 요리는 용기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곡물을 불 위에 직접 굽기가 어려웠고, “뜨거운 바닥돌은 종자의 양이 한두 줌 보다 많으면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 문제를 무시해도 좋을 곡식 요리법이 한 가지 있었다.“(p.60). 이것은 실수(?)에 의한 발견으로 탈곡을 위해 가열한 돌바닥에서 왕겨가 떨어져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과열로 인해 밀이 구워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발견되어 돌바닥에서 탈곡이 되면서 구워진 밀은 소화하기에도 좋고 그 자체가 요리가 되었고 맛이 좋았지만 너무 건조해서 먹기에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이것의 해결방법으로 발명된 요리법이 탈곡하고 구워진 밀에 물을 붓고 그 혼합물을 주물러 반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렇게 반죽한 곡물반죽 덩어리는 그야말로 곡물 요리의 혁명적인 발명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것은 그 맛에 있어서는 고대 식사의 기본적 품목이었던 곡물 반죽인 그리스의 마자(maza)나 로마의 풀스(puls)와 거의 비슷한 것이었으며, 질감에 있어서는 오늘날에도 티베트에서 즐겨먹는 트삼파(tsampa)와 비슷했을 것이다.”(p.61)

곡물 반죽의 발명 또는 발견은 음식의 역사에서 곡물을 인간이 가공한 효율적인 요리법으로 오늘날까지 이용되고 있다. 이렇게 발명된 선사시대의 밀가루 반죽은 기원전6,000 진정한 토기의 발명으로 그 보존과 응용이 가능해졌을 것이다.

“마침내 토기가 사용되기 시작하자 요리사의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방열, 방수용기들이 원활하게 공급되어 용기들이 쉽게 깨어지더라도 손쉽게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따라 곡식에 다량의 물을 넣고 끓이기, 소량의 물을 가하여 부글부글 삶기, 고기와 곡식으로 스튜 만들기, 납작한 빵을 더욱 맛있게 굽기 등등 여러 가지 새로운 요리법을 개발하고 이전의 음식들을 개선하는 일들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토기가 깨지지 않는 금속용기로 대체되면서 현대적인 요리가 발달하기 시작했다.”(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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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7 23:49

독재자들

                                                    사진출처: http://kr.news.yahoo.com/servi


독재자들을 생각하며......

인간의 사전에 비극이란 단어는 사라질 수 있을까?

일회적인 역사를 특정한 방향으로 가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지만, 인간이 만든 그 문명에 대해서는 그 폐해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 혜택에 대해서도 늘 감사를 해야 할 것 같다.

만약 나 자신이 로마시대의 검투사로 태어나거나 노예로 태어났다면 그 잔인한 운명에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만약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지 못한 네안네르탈인 이나 크로마뇽이었다면 또 어떻겠는가?

21세기, 법과 도덕이 인간의 잔인함을 다소나마 아니면 엄청나게 순화시키고 있는 지금에 태어났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인간의 문명에 대해 감사 정도로는 부족하지 않는가? 나의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만 할까? 문명에 대한 고마움은 곧, 문명을 이룩한 인간들에 대한 고마움과 다름이 아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이 공간에 태어나게 한 어떤 힘에 대한 고마움이기도 하다. 그 힘이 그저 우연이란 이름으로 불리던지 노력이고 필연이란 이름으로 불리던지 아니면 운명이고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던 간에 나는 무조건 나라는 존재의 세포 하나하나에 심어진 축복에 감사해야 한다. 만약 그것을 전적으로 비판하려면 자신의 존재의 전적인 부정이 그 전제가 되어야만 한다.

그런 까닭으로 오직 문명에 대한 제한된 일부의 비판만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일부분의 비판이라는 것도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면 오랫동안 문명이 내재되어온 자신의 세포 하나하나를 살상하는 일이다. 자기 존재의 일부를 부정하는 것이 그래도 가능한 것은 미래 때문이다. 미래는 더 나은 문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희망과 믿음 때문이다. 나의 존재에 주어진 축복 중에 다소 불순한 것, 불편부당한 것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미래의 존재를 염두에 두어야 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미래의 그들이 진정으로 더 더욱 축복받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불순하고 불편부당한 것이란 왜곡으로 변질된 문명이다. 광기와 전쟁과 기아와 증오이다. 그것에 근거한 문명이다.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든 문명의 왜곡들이다. 왜곡된 문명, 우리는 이것을 우리에게 축복을 주는 참된 문명 속에 깃든 불순물로 걸러내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나 자신이 나를 인간답도록 해준 이 문명에 참으로 감사하는 길은 문명의 왜곡된 부산물을 걸러내려 노력하는 것이다. 세상을 개화시켜온 인간들처럼 지금, 현재 우리가 또한 개화시켜할 세상이 있고 그 세상을 개화시키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문명에 감사하는 길이다.

그러나 현실은 참으로 어렵다. 역사라는 체계 속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고 또 그렇게 단단한 체계로 움직이면서 끊임없는 쇠뇌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을 잉태하는 인간은 너무도 완고하고 잔인하다. 현실에 얼룩져있는 비극을 잉태하는 불순함과 불편부당함이 스며들어 있는 문명의 일부와 인간의 일부로 부터 다수의 선량한 인간이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 될 것이다. 인간에게 내려진 축복에 불순물과 같은 불행이 언제나 있다는 것은 끝없는 슬픔을 자아낸다.  인간들의 수많은 노력에 의해 무수한 불행들이 예방되고 막아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인간에게 무자비한 불행을 주는 인간들 또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것을 당연한 현실이라고 자위해야만 할까? 인간들 사이에 왜 이러한 비극이 생겨야 할까? 그것은 수많은 인간들의 인식이고 또 노력의 근거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들은 인간들로 해서 축복만이 아니라 불행과 비극의 굴레를 짊어지고 있다. 

인간은 죽어야 하는 비극적 운명의 존재이다. 죽음이라는 비극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인간들이 서로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될 수는 없을까? 인간의 사전에 인간이 자초하는 비극이란 단어가 사라질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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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20:25

말 할 수 있는 죽을 동물

"말 할 수 있는 죽을 동물": 아리스토 텔레스는 이 술어를 인간의 가장 고유한 본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본다(아리스토텔레스, P.23, A.E. 테일러, 이정우 역, 종로서적, 1986)


도대체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이유로 "말 할 수 있는 죽을 동물" 이란 말을 인간의 가장 고유한 본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았을까? 여기에서 몇 가지의 개념을 추출해 보면 말, 죽음, 동물일 것 같은데 말은 미래의 죽음을 알게 한다는 의미에서 미래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동물임을 강조한 것일까? 말이 없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무엇이 다를까? 따지고 보니 말과, 죽음, 그리고 동물이라는 사실만큼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표현도 없을 것 같다.

인간의 문명과 문화는 말의 또다른 형태일 것이고,  역사는 죽음의 기록이며, 동물은 생존이며 번식으로 이어가야 하는 존재, 바로 현실속에 실존하는 생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죽을 동물은 현실 속을 살아가고 있다.

어제는  한 지인의 부모의 화장을 위해 화장장을 방문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죽음은 내 속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마치 나와는 동떨어진 것처럼 고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죽음을 의식적으로 애써 회피하고자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 앞에서의 침묵은 참으로 무거웠다. 죽음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인간들에게 말은 정말 필요할 것인가 자문해 보았다.

이제, 역전이 되어,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이 고역이 아니라 말을 한다는 것이 참 고역이 되어버렸다. 참 역설적이다. 죽음을 잊기 위해 숱하게 많은 말을  지껄이지만 죽음 그 자체는 너무나 조용하다. 죽은 자의 그 침묵, 죽음을 거부하기 의해 말은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인간은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죽을 동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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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19:26

음식의 역사

음식의 역사
Food in History

래이 테너힐의 Food in History(음식의 역사, 손경희 옮김)를 읽으면서 음식이 단순한 인간 문명의 부산물이거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인간의 역사에 상호 영향을 끼쳐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가 과거와 미래의 대화’ 라는 카의 명언에 음식의 역사를 적용해보면 인간의 역사가 생물적인 한계와 관습을 가지는 보다 유기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역사의 모습을 제공해 주는 듯하다. 단순히 ‘대화’ 라는 유기적인 역사인식 보다 더 나아가 마치 역사가 우리의 식탁위에 놓여있다는 일상성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러한 느낌은 음식이 갖는 친밀감 때문일 것이며 삶의 현장이 곧 음식을 제공해주는 자연, 곧 현재의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그 공간과 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우리가 체험하지 못한 과거의 거대한 정치적인 사건이 학습과 이성으로 그 심각성과 교훈이 전달되는 것과는 다른 이치이지 싶다. 단순이 요리의 레시피와 조리과정을 소개하는 요리책과는 다른 재미였다. 과장된 예가 되겠지만, 인간이 영양실조에 빠져 침대에 누워있다면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물로서의 인간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그 에너지의 충족 여부에 따라 행동이 유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음식의 역사가 여러 인간 역사의 한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은 진실일 수밖에 없다.

특히 식량(음식)이 인간의 생존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시기에 식량의 획득이야말로 인간 생존의 본질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인간의 역사가 음식의 역사와 동질적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좀 더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하고 삶이 풍요로워지면서 다양한 생존 요소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음식이 차지하던 절대적인 중요성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음식이 인간 생존의 수단인 이상 그 관계는 여전히 변함이 없으리라고 본다.

이렇듯 인간의 역사에 있어 음식이 미친 영향은 곧, 인간의 생물적인 조건이나 환경이 인간의 역사를 해석하는 여러 단서들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목격한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저자의 말」의 서두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음식의 역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간단한 주제를 다룬 선구적인 저작이다. 이 책을 쓴 목적은 인류의 3만 년 역사를 통하여 식생활의 특성을 형성해 온 영향 요인들을 조사하고, 보다 많은 양질의 음식에 대한 추구가 역사의 진행 방향에 때로는 결정적으로 또 대개는 미묘하게 작용하게 되는 경로를 쉽게 설명하려는 데 있다. 요컨대, 어떤 면에서는 음식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임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 방법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은 글을 읽는 내내 참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를테면, 쟁기와 십자군 원정의 관계, 흑사병과 동물 쓰레기의 불법 투기, 인도인들이 암소를 신성시하는 원인등등 음식이 “역사의 진행 방향에 때로는 결정적으로 또 대개는 미묘하게 작용하게 되는 경로” 를 접하는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인간의 역사에 음식이 “때로는 결정적으로 또 대개는 미묘하게 작용해왔다면” 오늘날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의 역사가 진행형이듯이 음식의 역사 또한 진행형이다. 저자의 말대로 “미래의 식량의 역할이 과거보다 덜 결정적이지는 않을 것”이기에 음식이 인간의 역사의 진행방향에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작용을 하기를 바라지만, 음식과 관련하여 인간이 처한 현실은 다소 비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식량의 문제는 과거의 부족사회와 같은 국지적인 성격이 아닌 국가, 대륙, 지구적인 차원에서 발생하고 있다. 인종과 국가간의 교류가 증대함에 따라 그 규모는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후진국의 영양부족과 선진국의 비만이라는 극단적인 대비와 환경의 파괴에서 뚜렷이 볼 수 있다. 음식의 부패와 오염, 그리고 저장의 문제 같은 것이 아니라 음식 자체를 생산할 수 없는 어두운 현실에 직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래의 인간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그 변화의 저변에는 음식이 어떻게 자리할 것인지,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 아닐까 한다.

책의 뒷표지에는 독자들의 시력을 측정하기라도 할 듯이 까만 바탕에 흰색으로 깨알같이 써놓은 아래의 질문들이 있다. 이에 대한 답은 앞으로 해 나가고자 한다.


1.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2.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3.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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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식량 생산과 환경 파괴, 과식으로 인한 질병과 굶주림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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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8 16:09

내게 남는 것 3가지



1.신은 일종의 인간의 한계, 즉 동물적 본성과 인간성(이성)의 모순적인 갈등을 극복하려는 변증법적인 현상 또는 이상태가 아닐까? 따라서 신은 인간 존재의 모순 자체가 그 존재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닐까? 

2.무한한 우주를 보면 인간을, 인간에게서 나온 모든 것들, 어떠한 종류의 표현을 초월한 어떤 힘, 실체, 또는 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의심하기 힘이 든다.

3.이 정신적인 혼란을 떨쳐버리기란 너무나도 힘들고 어렵다.  이 혼란 속에서 나는 삶이란 것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남는 것은 의심 또는 변명, 확신 또는 두려움, 그리고 삶이다. 이래서 삶은 혼란스럽다. 그래서 단순해 지고자 하고, 단순해 지고 싶다. 삶은 모든 모순, 혼란을 안고 죽음의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그렇게 이어져 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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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7 18:29

유대인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된 이래, 적어도 16세기까지 유럽에서 유대인은 악마와 동일시 되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유대 민족은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먹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저주 받은 민족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유대인의 위상은 크게 향상되어 악마의 지위에서 탈피했다. 그러나 유럽인의 반 유대 감정은 너무나 뿌리가 깊어서 16세기 종교 개혁의 선봉자였던 마틴 루터조차도 그의 저서 <악마론>의 서문에서 "악마를 제외하고 가장 흉측하고 광포한 우리의 적은 유대인이다." 라고 서슴치 않고 단언할 정도였다. (이슬람, p.218. 이희수/이원상, 청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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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6 18:52

주술 풀기와 걸기

이미지 출처: www.flickr.com  mark.os님


"서구적 합리성, 서구 과학의 패러다임과 자유의 개념은 모두 이 의존성을 극복하고 초월하려는 데에, 자연을(남성) 의지에 종속시키고 자연의 모든 주술적 힘을 풀어버리려는 데에 바탕을 둔다. 이런 맥락에서 영성은 '어머니 대지를 치유' 하고 세계에 다시 주술을 걸고자 노력한다. 막스 베버(Max Weber)가 유럽 합리성의 진전 과정의 필연적 소산이라고 본 주술 풀기(disenchantment) 과정을 무위로 돌려 놓자는 것이다. " (에코 페미니즘, 반다나 시바/마리아 미스, 창작과 비평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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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5 22:14

삶의 시기 구분

흔히 위대한 존재들의 삶의 기록을 대하다 보면 전기, 중기, 후기니 하는 시기적인 구분을 하는 것을 접하게 된다. 만약 나의 삶을 연대기상의 시기로 구분한다면 그 시기의 구분은 어떻게 가능할 것일까? 그러한 구분의 근거는 무엇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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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5 21:50

자연은 슬픈 목격자

나무를 보면 부끄럽다. 꽃을 보면 부끄럽다. 산을 보면 부끄럽다. 그들이 보는 가운데 인간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으며 살아왔던가? 문명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얼마나 거만하게 살아왔던가? 자연은 역사의 슬픈 목격자다. 나무에 가만히 기대어 그 슬픈 목격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미지 출처는 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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