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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0 03:18

부산 광복동 PIFF광장





얼마 전에는 해운대 동백섬의 해안 산책로 따라 걸으면서 찍은 사진들을 올렸는데요, 5월 3일 함께 찍은 사진들로 이번에는 광복동 PIFF광장을 사진으로 담아보았습니다. 



지하철 자갈치역에서 내려 출구로 올라가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검은 실루엣으로 보이는 노숙인의 모습과 밝은 하늘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PIFF광장을 알리는 아치 조형물과 자갈치 시장의 아치 조형물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자갈치 역에서 걸어서 PIFF광장으로 들어 가기 직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PIFF광장의 군것질 거리, 오징어와 쥐포. 개인적으로 이것의 인상은 좋지 않습니다. 우선 포장이 되어 있지 않고, 유통기한이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에 까지 인정 많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관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 데...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생이나 유통의 측면에서 얼마든지 더 개선된 방식으로 팔 수 있을 것 같으며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매상을 올리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PIFF광장의 바닥에는 배우들의 핸드 프린팅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 데 깜빡 잊고 사진으로 남기지를 못했습니다.



PIFF광장의 먹거리 고구마 튀김과 옥수수. 간판에 적힌 '현장 튀김' 이 신조인것 같습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은 때문인지 일본어도 보입니다.





최근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떡볶기와 어묵&고기 꼬지 



어묵과 군만두, 그리고 떡볶기


PIFF광장의 군것질 거리, 오징어와 쥐포. 개인적으로 그다지 인상은 좋지 않습니다. 우선 포장이 되어 있지 않고, 유통기한이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조리된 것이 아니라 더욱 그렇구요. 이러한 것에 까지 인정 많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관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 데......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생이나 유통의 측면에서 얼마든지 더 개선된 방식으로 팔 수 있을 것 같으며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매상을 올리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아래 사진들은 찍지 못한 핸드 프린팅 참고한 사진들입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PIFF 광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PIFF 광장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DSK_1157
DSK_1157 by titicat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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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3 02:45

비빔밥 VS 한정식



위의 글은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쓴 글로써 서두를 진지하게 시작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씨의 크기를 조절하는 편집 가정에서 서두 부분이 날아가 버렸더군요. 그래서 이상하게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그대로 두렵니다^^


이미지 출처:http://www.flickr.com/photos/15093326@N03/1574662583/


먹도널드교와 새로운 신분 제도 에서 본 것 처럼 한쪽에선 비만으로 건강을 잃고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기아로 목숨을 잃고 있는 참담한 실정이다. 이러한 비극은 도대체 왜 발생하는 것일까? 

얼마 전 식당을 소개하는 TV 프로를 보았다. 식사에 딸려 나오는 반찬의 가지수가 무려 15가지를 넘는 식당을 소개했다. 한 상  가득 접시들이 놓여지고 손님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또 칭찬 일색이었다. 손님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정성껏 반찬을 마련하고 그 맛을 대접하는 것은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많은 손님들이 식당을 찾게 될 것이고 식당도 번창할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려스러운 것은 그렇게 많이 나온 반찬이 얼마나 버려지느나 하는 것이다. 만약 적정한 반찬이 나와서 버려지는 것이 거의 없다면 이런 우려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한끼의 식사를 위해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지수가 많은 반찬들이 나온다면 아깝게 버려지는 음식들이 없다고 말하기 어려워 진다. 그렇다면 낭비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미지 출처:http://www.dkbnews.com/?mn=news&mode=read&nidx=4017&dom=1


우리의 음식 문화에 대해 제고해 보아야 한다. 더우기 이러한 제고의 시간을 가져야 할 방송 매체에서 오히려 그러한 방송을 버젓을 내 보낸다는 것은 음식을 그저 방송의 호재로만 취급하는 얄팍한 사고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 번 생각해보라, 한끼에 십 수가지의 반찬이 제공되는 현실이 말이다. 우리의 비빔밥과 한정식의 극단적인 모습에 언제나 마음 한 편이 무거워 지지만 말이다. 언제가 필자도 우리 음식의 한 그릇 운동을 벌이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고, 그러한 선상에서한 그릇으로 먹는 음식 을 포스팅하기도 했다. 산업 폐기물과 쓰레기로 가득한 21세기에 우리의 비빔밥 만큼 유용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이 없다고 생각한다. 음식물 찌꺼기가 나올 여지가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정식은 음식 쓰레기를 발생시킬 확륭이 대단히 높다.

우리는 광우병 소고기 문제로 촛불 시위를 하고 건강에 대한 국민의 권리 주장하고 보호하고자 했다. 국민들은 건강에 대해 무시하고 신중하지 못한 MB정권에 대해 분노까지 일었다. 그러나 이 광우병 소고기 문제 못지 않게 우리 스스로에게도 '식량 낭비' 에 대한 자기 비판을 냉철하게 할 시점이라고 본다. 식당에서 나오는 그 많은 가지수의 반찬에 대해서 무턱대고 좋다고 한 것은 아닌지......좋은 식당의 기준으로 그런 식당을 생각해온 것은 아닌지......냉정하게 바라보았으면 한다. 필요없이 많은 음식이 대접되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맥도날드나 KFC, 롯데리아를 건강에 해롭고 자연 파괴적인 패스트 푸드라고 비판하지만 사실 음식 낭비는 그다지 없다. 이와는 반대로 채소가 많이 있는 우리 음식이 건강에는 좋지만 한정식의 음식 낭비는 심각한 지경이고 무언가 대안적인 비판이 있어야만 한다. 오랜 전통처럼 굳어져 고쳐지기 어렵겠지만 반드시 지나친 음식 낭비는 막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 쪽에서는 비만으로 건강을 잃고, 다른 한 쪽에서는 기아로 비참하게 죽어가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죄악이라는 생각까지도 든다. 부처님 오신날에 채식을 하는 불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았으면 한다. 부처님 오신날에 한정식이 아니라 왜 산채 비빔밥을 공양 받는지도 한 번 꼼꼼히 되새겨 볼 일이다


사찰 음식에 대한 정보 참조: http://buddhistnews.net/archive/72655/200608081154996141.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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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4 00:28

삼겹살 데이를 맞이하여.....

삼겹살 데이를 맞이하여 이전에 올렸던 [삼겹살의 세계화를 위하여]를  다시 한 번 더 올립니다.



삼겹살 예찬론


이 삼겹살 구이는 뉴욕 맨하탄의 슬럼가의 흑인들, 히스패닉계들과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만약 맨하탄의 흑인, 히스패닉 거주 구역에 삼겹살 구이집들이 생긴다면 범죄율도 덩달아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얼마전에 찍어 놓고 이제야 올리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제때에 정리를 안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네요^^ 삼겹살을 오랜만에 구워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군요. 이상할 정도로 말입니다. 배가 고파서 그랬을까요? 소주 한 잔 걸치고 싶었는데 참았습니다. 최근에 몸이 영 시원찮아서요. 밥 반찬으로 만원어치를 샀는데 양으로 만족하기에는 어림도 없더군요. 다음에는 한 2만원 정도 구입해야겠습니다.

삼겹살 구이는 정말 예찬할 만한 서민들의 음식입니다. 사실 서민들의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누구에게나 일반화된 음식입니다. 문제는 이 삼겹살의 맛을 알면서도 서민적인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슬프긴 하지만 말입니다. 도대체 그들은 누구일까요? 어떤 뇌구조를 가지고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삼겹살 구이를 먹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바로 삼겹살 구이의 글로벌화가 그것입니다. 이 삼겹살 구이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될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베이컨 등 비슷한 음식이 있긴 하지만, 상추, 김치, 파조래기, 고추장 등의  부가적인 재료들이 곁들여저  맛은 한국적인 맛을 발산할 것입니다. 음식만이 아닙니다. 그기다가 소주 한 잔 결들이면 또 어떻습니까? 녹녹치 않는 세상사를 벗어나 삼겹살에 소주에 이런 저런 이야기는 어느새 구름위에서 노니는 쾌락으로 전이되면서 가슴에 쌓인 근심 걱정 눈 녹듯 사리지는 체험을 서민들이라면 누구나 해보지 않았습니까?

대부분의 한국 음식이 그렇지만, 삼겹살을 먹는 자리 또한 개방적이고 격식이 파괴되는 공간입니다. 누구나가 함께 불판에 마늘과 버섯을 집어 넣고, 함께 뒤집고, 불판 위에서 소주 잔이 맞 부딪칩니다. 빙 둘러 앉아 먹는 가운데 서로 몸을 부딪기고, 어깨를 맞대고 격의와 허레를 털어냅니다. 얼마나 좋은 자리입니까?




한 번 상상해 봅시다.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에 있는 삼겹살 프랜차이즈 점에서 소주와 곁들여 삼겹살을 먹는다고 말입니다. 참 유쾌해 지지 않습니다. 불판에 익는 삼겹살과 마늘, 버섯,두부등을 올려놓고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말입니다. 생각만 해도 유쾌해집니다.  저는 오바마 대통령이 삼겹살과 소주가 참 잘 어울릴 것 같이 여겨집니다.

아니 사실 이 삼겹살 구이는 뉴욕 맨하탄의 슬럼가의 흑인들, 히스패닉계들과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만약 맨하탄의 흑인, 히스패닉 거주 구역에 삼겹살 구이집들이 생긴다면 범죄율도 덩달아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왁자지껄한 웃음 소리와 함께 흉가가 되다시피한 범죄의 온상이 되어버린 흑인 거주 구역에 생동감이 넘치지 않을까요. 저는 이 발상을 언제가 꾸었던 제 꿈에서 얻어왔습니다(이 꿈 이야기는 좀 따로 적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맨하탄에는 한국인 식당들이 많습니다. 저는 한 갈비집에서 갈비탕을 한 번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뉴욕의 맨하탄의 서민들이 집중되어 있는 슬럼가들에 삼겹살집들이 들어서서 흑인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제공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서민들은 전세계적으로 있지 않습니까.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부유층을 공략해야하기도 하겠지만 서민들을 공략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맥도날드나 KFC 등이 그런 것이 아닙니까? 어디 삼겹살과 햄버거를 비교할 수 있을까요. 특히 미국의 중심인 뉴욕의 맨하탄의 흑인들과 히스패닉을 그 맛과 분위기로 녹여버린다면 전 세계적인 서민 음식으로 등장하지 않을까요. 미국을 사로 잡아 버리면 전세계를 쉽게 사로 잡을 수 있겠지요. 이것이 언젠가 제가 꾸었던 꿈이기만 할까요?

뉴욕 맨하탄의 흑인들과 히스패닉들이 삼겹살 구이판에 둘러 앉아 삼겹살을 함께 구우며 소주잔을 돌리는 이 서민적인 모습은 아무리 상상해도 즐겁기만 합니다. 상추에 잘 읽은 삼겹살을 올리고 그 위에 양념장과 파조래기, 그리고 마늘 한쪽을 더해 입으로 삼키는 뉴욕 맨하탄의 서민들의 모습들......맛에 녹고 분위기에 취하는 삼겹살의 그 진미와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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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3 00:48

11.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1.음식의 역사 개괄

2.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3.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4.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5.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6.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7.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유목민들에게 왜 비타민 결핍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8.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9.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10. 통조림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몇 달씩 배위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1.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12. 20세기초 영국의 징병검사에서 41%의 청년들이 병역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13. 식품판매업자들의 사기행위와 불량식품에 정부와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14. 외국에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이 과연 자국의 식량 상황과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15. 식량 생산과 환경 파괴, 과식으로 인한 질병과 굶주림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11.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이미지출처는 여기입니다


“칠면조가 어떻게 ‘turkey' 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는 무성한 추측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가사의한 일로 남아있다. 가장 그럴듯한 대답은 동부 지중해 연안으로 무역여행을 하면서 항해 중에 스페인의 세비야 항에 늘 기항했던 ’터키 상인들‘ 에 의해 칠면조가 유럽에 처음 도착했고(1523-1524년경), 이후에 곧바로 영국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그것의 멕시코 이름인 ’uexolotl' 을 알지 못했거나, 단지 발음하기가 여의치 않아서 그냥 ‘터키새(turkey-bird)' 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것 같다.”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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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3 18:16

야끼 만두, 그 정체성을 아십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만두(Mandu)라는 용어는 어원상으로는 중국의 만토우(Mantou)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음식으로는 우리의 만두는 만토우 보다는 바오지(baozi), 쟈오지(Jaozi) 또 쟈오지에서 유래한 교자(Gyoja:일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이름만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처럼 왜 쟈오지에서 교자로 변형된 것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우리나라에는 만두로 그 용어가 정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궁금증이 앞선다.


우리나라의 군만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만두의 기원이 중국이란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송나라 이전에는 이 만토우는 속이 비거나 속이 찬 빵을 의미했다. 그러나 송나라에 바오지(baozi:주로 찐만두)가 속이 찬 빵을 의미하면서 중국의 만토우는 점차적으로 중국어로는 속이 차지 않은 빵을 지칭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에서 만토우의 의미는 속이 차지 않는 빵을 의미한다.  즉, 만두 보다는 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래 사진 참조). 그러나 약간은 혼락스럽게도 이러한 구분이 지역에 따라서는 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들면, 상해에서는 속이 찬 빵이라 하더라도 상해 만토우라고 불리고 있다. 또한 사오롱 만토우가 다른 곳에서는 샤오롱바오라고 구분하지 않고 쓰이고 있다. 아무튼 이 만토우가 몽고와 중앙아시아에 전해져 몽고에서는 mantuu로 그리고 몽고가 지배하던 중앙아시아, 즉 투르크에는 만티(manti), 카자흐에는 만티(manty), 우즈벡에는 만토우(mantou) 로 용어가 변형되어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중앙아시아의 manti, manty, mantou는 빵(bun) 보다는 우리의 만두(dumpling)에 가깝다)




몽고의 buuz(몽고의 경우는 mantou에서 유래된 mantuu가 중국과 마찬가지로 속이없는 빵으로 정착되어 있다. 우리의 만두(중국으로 치면 baozi나 jiaozi, 일본으로 치면 교자, gyoza)에 해당되는 것은  buuz라고 할 수 있다)




몽고의 Khuushuur




그러나 여기에서 애매한 분화가 일어나는 것이 몽고에서도 mantuu의 의미가 속이 차지 않은 빵을 뜻한다는 사실이며, 우리의 만두와 거의 같은 것은 Buuz로 불린다는 사실이다. 이와는 달리 투르크, 카자흐, 페르시아 등 중앙아시아에는 속이 찬 빵을 의미하는 mantou 가 굳어져 manti, manty, mantou는 속이 찬 빵, 즉 우리의 만두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Classic white mantou(중국)



튀긴 Montou



그렇다면 mantuu가 몽고를 통해 전해질 당시에 중앙아시아처럼 속이 찬 빵(bun 보다는 dumpling)의 의미로 정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만두를 지칭할 때 manti, manty, mantou(우즈벡) 처럼 속이 찬 빵을 의미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르메니아식 manti




카자흐나 우즈벡식의 manti(우리의 찐만두와 흡사하다)




Khinkali(그루지아식 만두)



pelmeni(러시아식 만두 )



pierogi (주로 동유럽)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경우, 분명히 중국의 mantou가 직, 간접적으로 일본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와는 달리 mantou가 manju로 변형되면서 만두와는 관계없는 과자가 되었다. 같은 mantou가 우리에게는 만두로, 일본에게는 과자(manju)로 정착된 것이다. 

 
일본의 manju(중국의 mantou에서 유래되었다). mantou가 우리나라에서는 만두가 된 것 과는 달리 일본에서 과자(manju)되었다


그런데 일본에는 송나라 훨씬 이전인 동한시대에 만들어 졌다는 쟈오지(jiaozi)가 그대로  교자(Gyoja)로 어원만 변형되어 들어갔다는 것은 의문을 제기한다고 할 수있다. 왜냐하면 중국의 문화가 대체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들어가는 통례를 따른다면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지 않는 쟈오지가 왜 일본에서 교자로 등장하는 가의 문제인 것이다.



Jiaozi(만두)



Shuijiao( 물만두)





guotie (주로 북 아메리카. Peking ravioli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군만두와 같다. 일본에서는 야끼만두가 된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두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쟈오지가 일본에 들어간 것이 아주 최근의 시기이거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몽고의 100년간에 걸친 한반도 지배에 의해 mantuu가 jiaozi를 대체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둘 중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이 아니며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하다.


아무튼 우리의 만두는 용어상 중국 송나라 이전의 montou의 의미중에 속이 찬 빵을 의미(baozi, jiaozi, gyoja에 가깝다) 하며,몽고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manti, manty, mantou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montou는 manju로 전혀 이질적인 음식으로 변형되었고, jiaozi 가 그대로 들어가 gyoja로 정착한 것이다(gyoja는 칠리소스와 참기름, 마늘향이 많이 난다). 

그렇다면 야끼만두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야끼(yaki)라는 일본말, 중국에서 기원한 음식(mantou), 몽고를 통해 유래되었다는 사실! 야끼 만두가 일본 36년 지배와 몽고 100년 지배, 그리고 중화 사대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음식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만두, 참 맛있긴 한데, 또 동시에 정체성이 애매한 음식이 아닐까. 뭐 어쨌던 맛있기만 하면 될까? 

 
 
아래의 사진들은 다른 만두들의 사진입니다.

더보기




*위 글의 이미지들은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한그릇 맛있는 음식]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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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9 18:07

맛있는 카레우동 & 비빔우동



어제 부터 거의 면으로 끼니를 채우고 있습니다. 라면에, 우동에......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밥지을 쌀이 없다는 루머가..... 2년 전 일본 후쿠오카로 여행을 가서 우연하게 처음 먹어 본 카레 우동. 일본말을 몰라 손가락으로 짚은게 카레 우동이었던 겁니다. 카레우동을 제 앞에 받자마자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걸 어떻게 먹나 하면서......그런데 실망과는 달리 의외로 카레와 우동면발의 조화가 좋았던 것 같더군요......참 오래 걸렸네요. 그 이후로 카레 우동 한 번 해먹어 보자고 했는데 이제야, 2년만에 카레우동을 한 번 해먹어 보았습니다.















비빔우동입니다. 이런게 있는지 모르겠지만......참기름 붓고,  깨소금 뿌리고, 야채가 없어 당근만 올렸습니다.  고명은 취향에 따라 곁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전의 관련없는 음식 포스트도 함께 봐 주세요^^

2008/08/01 - [음식과 건강] - [한그릇]카레 양념삼겹살
2008/07/29 - [음식과 건강] - [한 그릇] 카레 낙지 볶음
2008/07/23 - [음식과 건강] - 카레 삽결살
2008/07/18 - [음식과 건강] - 카레 토스트
2008/07/06 - [음식과 건강] - 후쿠오카에서 먹은 도시락 &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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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21:17

음식의 역사(5):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1.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2.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3.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4.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5.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6.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유목민들에게 왜 비타민 결핍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7.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8.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9. 통조림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몇 달씩 배위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0.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11. 20세기초 영국의 징병검사에서 41%의 청년들이 병역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12. 식품판매업자들의 사기행위와 불량식품에 정부와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13. 외국에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이 과연 자국의 식량 상황과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14. 식량 생산과 환경 파괴, 과식으로 인한 질병과 굶주림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유럽 전체와 아드리아 해와 지브롤터 해협 사이에 살고 있던 모든 야만 민족들은 일체가 되어 이동했다…… 온 가족을 이끌고 유럽의 모든 나라를 가로질러 행진하면서…… 그들은 어깨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열광적이고 열정적으로 모든 도로에 모여들었다. 이 전사들과 함게 많은 민간인들이 왔으며, 그 숫자는 바닷가의 모래알과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았다.”
 


1차 십자군 원정 중 안티오크 포위 공격, 중세 세밀화.(The Siege of Antioch, from a medieval miniature painting, during the First Crusade.)
 
 
 

비잔틴 황제의 딸인 안나 콤네나는 최초의 십자군에 참여한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p.224)

안나 콤네나의 묘사는 십자군을 야만 민족이라 비웃고 있지만 ‘열광적이고 열정적으로‘ 란 표현에서는 어떤 두려움이나 심지어 경외감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어떻게 유럽의 ’야만족들‘ 은 십자군과 같은 ’모험적인 계획’ 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십자군 원정은 대단히 힘들고 심지어 무모하달 수 있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계획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생겼을까?



휘어진 보습이 달린 중국 철제 쟁기, 1637
(Chinese iron plough with curved mouldboard, 1637.)

 




소들이 끄는 보습 쟁기. 브리티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6세기 초 중세 영시 원고의 삽화 ( Ploughing with oxen. A miniature from an early-sixteenth-century manuscript of the Middle English poem God Spede ye Plough, held at the British Museum)





바로 이 힘이 쟁기에서 생겨났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중세의 농업 혁명을 구체화한 도구는 평범하게도 새로운 형태의 쟁기였다.“(p.230). 수메르 시대 이래로 쟁기는 그 기능과 모양이 꾸준히 개선되어 왔지만 실제적으로 땅을 갈기에 힘든 막대기에 지나지 않았다. 16세기경에 북동부 지역의 슬라브족은 이전의 쟁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쟁기를 개발했는데, 바로 이것이 '보습 쟁기(moldboard plow)' 였다. 이 보습 쟁기로 인해 땅의 깊은 부분을 파내면서 경작지의 면적을 획기적으로 넓히면서 식량의 증가를 가져왔고 이어 인구의 증가를 불러왔다. 예를 들어, 17세기 말엽에 독일의 한 지역의 인구는 로마 시대에 비해 4배나 증가하였다. 보습 쟁기의 출현은
북부 지방에서 단순히 식량과 인구의 증가뿐만이 아니라 생산성이 높은 3부작을 가능하게 하였고 더 많고 더 질좋은 곡물을 생산할 수 있었다. “단백질 섭취의 증가는 건강 증진, 열량 섭취 증가, 정력의 강화를 의미했다. 3부 윤작을 하는 토지 - 예컨대 샤를마뉴 대제의 프랑크 왕국 - 에서는 사회 자체도 더 부강해졌다. 한 과학기술 역사가가 표현한 대로, 북부의 민족들은 곧 모든 면에서 ‘원기왕성(full of beans)' 해졌다 ”(pp. 232-233) 이렇게 무역과 농업혁명에 따른 식량의 증가와 영양의 섭취는 유럽인들의 수적인 증가와 함께 더 정력적이고 활동적으로 되었다. 이렇게 쟁기에 의해 촉발된 인구의 증가와 육체적인 힘의 활동력의 증가가 십자군 원정을 가능하게 한 이유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위 그림들의 출처는  모두 위키피디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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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00:07

음식의 역사(4) :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1.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2.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3.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4.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5.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6.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유목민들에게 왜 비타민 결핍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7.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8.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9. 통조림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몇 달씩 배위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0.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11. 20세기초 영국의 징병검사에서 41%의 청년들이 병역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12. 식품판매업자들의 사기행위와 불량식품에 정부와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13. 외국에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이 과연 자국의 식량 상황과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14. 식량 생산과 환경 파괴, 과식으로 인한 질병과 굶주림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음식의 역사(4) :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기원전 10,000를 전후한 신석기혁명과 함께 인간의 농경과 목축이 발전하고 농경지를 중심으로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식량의 생산량은 급속하게 증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농경지를 중심으로 한 정착은 토지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목축 또한 목초지를 고갈시키게 되어 농경지를 중심으로 한 정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을 것이다. 화전민이나 반 유목적인 생활을 영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경과 목축에 의한 식량의 증가와 음식 요리법의 발달은 인구의 증가와 인간의 문명을 형성하는 계기 되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 초기의 수천 년은 발견과 확장 그리고 파괴의 기간이었다. 곡식의 새싹이 돋아나는 넓은 들판은 해충의 번식을 부추겼고,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들은 설치류를 급증시켰다. 농경은 단지 토양으로부터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져가는 데만 급급했고, 그 대가로 되돌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토지를 소모시키는 데는 2~3년 밖에 안 걸리지만 그 땅이 재상되는 데는 50년이나 걸린다. 신석기시대의 중심지역에서는 우선 대지의 나무와 잡목들을 다 베어버리고, 그 다음 지나치게 땅을 혹사시키고, 또 가축들이 풀을 뜯어먹게 했다. 그러자 대지는 점차 사막으로 변해갔으며 경작할 수 있는 땅은 자꾸 줄어들었다. 신석기 혁명은 현대문명의 기초를 쌓았지만, 20세기의 인간을 괴롭히는 여러 가지의 절박한 생태학적 문제들의 원인을 낳기도 했다.”(p.67)

농경이 최초로 발달한 중동의 경우 기원전 5000년 경, 현재의 페르시아 만 위쪽에 있는 쿠지스탄(Khuzistan)이라고 알려진 지역에서 제방을 터서 물을 공급하는 작은 수로 기술을 개발했다. 이 수로의 개발로 강의 양쪽 3마일에 걸친 토지에 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이러한 관개기술의 발달은 몇 가지의 결과를 낳았는데, 첫째로, 수확량의 증가, 둘째로 도시가 형성되고 수메르와 같은 문명을 탄생하는 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중동의 사막화를 초래한 사막화를 불어왔다. 관개에 의존하여 형성된 국가들은 국경을 넘어서 새로운 토지를 찾아야 했으며 이것은 제국의 등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경우는, 신석기 혁명들의 결과들이 기원전 5000년경에 중동으로부터 수에즈의 지협을 건너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밀과 보리가 잘 자란 덕택에 단지 몇 세기 동안 인구가 100배 이상 증가했다.” (p.72)기원전 3000년경에 이집트의 농부는 가족들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식량보다 3배나 많은 식량을 생산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잉여 생산물의 대부분은 홍수를 통제하는 사업, 대규모 공공건축사업, 피라미드 등을 건설하는 데 사용되었다.

아메리카의 경우는, 혁명의 흔적들이 많이 발견되지 않았다. 기원전 7,000~9,000년에 멕시코 타마울리파스 산맥의 둥굴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채집과 더불어 작물들을 배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6,000년경에는 테우아카 계곡에서 옥수수를 재배한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아시아는 아메리카 대륙보다도 신석기 혁명에 관한 기록이 전무한 실정이다. "선사시대 아시아의 음식에 관한 정보의 결여는 인도와 중국의 경우에 특히 불행한 일이라고 하겠다. 인더스강과 황하유역의 위대한 문명들이 역사의 무대에 돌연히 그리고 장엄하게 등장했는데, 이들은 선례가 없을 만큼 충분히 발전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식습관에 대해서는 만족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p.75)

특히 기원전 3,000 ~ 기원후 1,000년에 걸쳐 중동, 이집트, 중국, 유럽의 문명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수메르와 이집트는 기원전 3,000년경에 장거리 무역을 시작했다. 2000년 후 그리스도 식량 공급을 위해 페니키아인들을 앞세워 지중해의 대부분의 국가와 무역을 해야만 했다. “로마 역시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수세기 동안 밀의 공급이 행정, 경제에, 국제적 정책을 수립하는 데 지배적 역할을 했다. 로마 제국의 대부분 국경지방은 고대 세계의 밀 재배지역들의 경계와 거의 일렬로 접해 있다.“(p.83)

신석기 혁명이 시작되고 인간의 문명이 형성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국가와 국가 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식량의 무역과 함께 팽창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이후 수세기의 발전을 서술함에 있어 세계의 지역적인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중세 이전의 아시아와 아랍을 거친 후 이 책이 도달하는 시대는 1,000 ~ 1,500경의 중세 유럽이다. 이후 세계의 확장편(1,500 ~ 1,800)에서 다시 아메리카, 인도, 중국이 등장하지만 유럽이 중심이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인구의 증가와 도시의 팽창을 이 책의 행간을 통해 지속적으로 암시받고 추측하고 해석할 수 있으나 좀 더 꼼꼼하고 확신적인 정리를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보여 진다. 따라서 음식과 관련된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의 기술은 중세 유럽에서 발전한 농업 혁명 이후 급속하게 증가한 인구와 도시의 팽창을 중심으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16세기 북동부 지역에서 시작한 중세의 농업 혁명은 식량의 공급를 획기적으로 증가시켰고, 이 결과로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가져왔다. 또한 “새로운 농업 체계는 간접적으로도 마을과 도시의 부활에 기여했다. 이전에 토지를 경작하던 농부들은 자신의 다리나 느릿느릿 움직이는 가축 이외에 다른 운송 수단이 없었다. 그러나 귀리가 새로운 윤작 시스템에서 중요한 작물이 된 것은 말을 더 많이 이용하게 된 부분적인 이유가 되었다. 말은 농사일이나 짐을 나르는 일 외에도 유용한 교통수단 역할을 했다. ...... 이제는 말을 들에서 떼어 놓을 수 있을 때면 언제든지 더 빨리, 그리고 더 자주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p.225)

이렇게 기동력이 원활해지면서 시장을 자주 이용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시장의 규모도 대규모화 되었다. “한 도시의 번영은 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강도 및 폭력조직의 협박에 대항하여 노점상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엄중한 경계를 취해야 했다. 그 결과 고대 그리스와 유사한 ‘시장 평화’ 가 확립되었는데, 이 새로운 기독교 세계에서는 시장에 세워진 십자가에 의해 상징화되었다.”(p.235) 시장의 확대는 도시 자체에 활기를 불어 넣으면서 콘스탄티노플이나 베네치아 같은 대도시들이 형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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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8 12:47

음식의 역사(3):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1.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2.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3.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4.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5.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6.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유목민들에게 왜 비타민 결핍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7.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8.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9. 통조림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몇 달씩 배위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0.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11. 20세기초 영국의 징병검사에서 41%의 청년들이 병역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12. 식품판매업자들의 사기행위와 불량식품에 정부와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13. 외국에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이 과연 자국의 식량 상황과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14. 식량 생산과 환경 파괴, 과식으로 인한 질병과 굶주림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 일까?

요리법의 발달은 인간의 건강을 비롯한 생존방식의 전반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가져왔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특히 인간이 날 것으로 먹을 수밖에 없었던 질긴 고기는 인간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수명을 단축시켰을 것이다. 이와 위의 손상, 또는 신경과 조직의 손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생존을 위해 먹은 음식이 사실상 생존을 단축시키는 아이러니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날것을 먹어야 했던 우리의 선조들이 불을 발견하고 우연하게 익힌 고기를 접하게 되면서 요리를 할 수 있게 된 역사적 사실은 실제 어떠한 역사적인 발견보다도 우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리법의 개발은 기원전 500,000년경과 네안네르탈인이 선사시대의 무대에 모습을 나타낸 어느 시기에”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사시대에 요리법에 관한 정보는 거의 찾을 수 없다 불을 사용해 음식을 익혀 먹기 시작해 토기를 발명하기 까기 수 만년 동안 요리의 변화상은 단순히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부언하는 말 같지만 『음식의 역사』의 내용을 따라 추측의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불의 발견은 곧 굽는다는 행위와 직결된다. 즉 구이가 인간들에겐 최초의 요리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이는 고온으로 인해 그 양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타다 남은 불에서 구운 고기가 손실이 적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타다 남은 불에서 단단한 뿌리식물을 요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다음의 변화에 대해서는 고고학자들은 진전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요리법은 고고학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기에 확인해 볼 수도 없는 일이다.

기원전 6000년경에 토기가 발명되었는데, 그 발명의 영감은 흙투성이 돼지새끼를 진흙덩이 위에 놓고 구웠을 때 깨끗한 상태로 구웠을 때 보다 수분이 더 많이 남고 맛있다는 것을 알고부터였을 것이다. 토기와 관련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돌니 베스토니체(Dolni Vestonice)에서 기원전 2500년으로 추정되는 화덕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는 2천여개의 불에 구운 점토덩어리들이 들어 있었다. “이 점토들은 동물의 머리, 몸통, 발 등의 형상을 한 작은 모형들이었다.“(p.50) 우크라이나에서도 화덕이 작은 구덩이 같은 형태로 존재했으리라 추측된다. 이 작은 구덩이들에는 ‘예열된 뜨거운 숯이나 조약돌‘ 로 채워져 음식을 익히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런 구덩이 요리법은 선사시대의 부족이 광활한 지역을 거쳐 이동할 때 소란스러운 모닥불로 요리하는 방법을 피하고 불꽃을 숨기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불을 피우는 방법을 개발 했을 것 같다.

굽는 것과는 달리 끊이는 방법에 대한 정보는 더욱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불이나 굽는 방법은 우연의 결과라고 할 수 있으나 뜨거운 물은 자연적인 현상으로는 접하기 어려우며 특히 불과 물에 견딜 수 있는 용기의 발명은 우연에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요리법은 증거가 발견된 기원전 5000년경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이전에 삶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도처에 있다. 거북의 창자를 잘게 다져 만든 아마존의 요리인 사라파텔은 거북의 오목한 등껍질을 그릇처럼 이용하여 끓여졌다. 아시아에서는 대나무를 사용하였는데 인도네시아는 아직도 이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 또한 기원전 7000년경 중앙아메리카의 테우아칸 계곡에서 돌그릇과 돌냄비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토기와 청동기 이전에 널리 사용된 것은 동물의 위였다. 유목민인 스키타이족은 기원전 5세기에 위 속에서 음식을 요리했다고 한다. “기원전 13000년경에는 가죽 가공기술이 대단히 진보하여 가죽이 예전의 여러 가지 용기를 대처하게 되었다고 한다.”(p.53)

곡물요리의 경우는 단순히 불에 굽는 사냥한 동물의 원시적인 요리와는 달리 까다로운 곡물 처리로 인해 동물에 비해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이 필요했다. 그 이유는 야생곡식 자체가 실제로 인간이 먹는 배를 배유라는 전불질 속에 들어있고, 이것을 다시 얇고 거친 까끄라기가 감싸고 있고 다시 전체적으로 왕겨로 싸여있었기 때문이다. 야생 곡식은 그 왕겨를 제거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인간은 이삭을 구워주면 왕겨를 제거하기가 쉬워진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고대 시리아의 무레이바트(Mureybat)에서 구덩이에 가열한 돌을 깔아놓고 이삭들을 탈곡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탈곡도 까끄라기나 왕겨가 잘 없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는 탈곡법이 발명되었는데 이집트의 콤 옴보(Kom Ombo), 나일강 상류의 사하바(Sahaba) 퇴적평원, 요르단 계곡의 말라하, 이라크의 자위 케미 샤니다르(Zawi Chemi Shanidar)에서 발견된 절구와 비벼대는 돌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곡식을 두 개의 돌 사이에 두고 비벼대는 방법이 그것이었다.

밀과 보리를 탈곡한다고 하더라도 날곡식과 인간의 소화기관은 잘 맞지 않아 곡식을 요리하는 방법이 개발되어야 했을 것이다. 동물요리와는 달리 작은 낱알들로 이루어진 곡물의 요리는 용기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곡물을 불 위에 직접 굽기가 어려웠고, “뜨거운 바닥돌은 종자의 양이 한두 줌 보다 많으면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 문제를 무시해도 좋을 곡식 요리법이 한 가지 있었다.“(p.60). 이것은 실수(?)에 의한 발견으로 탈곡을 위해 가열한 돌바닥에서 왕겨가 떨어져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과열로 인해 밀이 구워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발견되어 돌바닥에서 탈곡이 되면서 구워진 밀은 소화하기에도 좋고 그 자체가 요리가 되었고 맛이 좋았지만 너무 건조해서 먹기에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이것의 해결방법으로 발명된 요리법이 탈곡하고 구워진 밀에 물을 붓고 그 혼합물을 주물러 반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렇게 반죽한 곡물반죽 덩어리는 그야말로 곡물 요리의 혁명적인 발명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것은 그 맛에 있어서는 고대 식사의 기본적 품목이었던 곡물 반죽인 그리스의 마자(maza)나 로마의 풀스(puls)와 거의 비슷한 것이었으며, 질감에 있어서는 오늘날에도 티베트에서 즐겨먹는 트삼파(tsampa)와 비슷했을 것이다.”(p.61)

곡물 반죽의 발명 또는 발견은 음식의 역사에서 곡물을 인간이 가공한 효율적인 요리법으로 오늘날까지 이용되고 있다. 이렇게 발명된 선사시대의 밀가루 반죽은 기원전6,000 진정한 토기의 발명으로 그 보존과 응용이 가능해졌을 것이다.

“마침내 토기가 사용되기 시작하자 요리사의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방열, 방수용기들이 원활하게 공급되어 용기들이 쉽게 깨어지더라도 손쉽게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따라 곡식에 다량의 물을 넣고 끓이기, 소량의 물을 가하여 부글부글 삶기, 고기와 곡식으로 스튜 만들기, 납작한 빵을 더욱 맛있게 굽기 등등 여러 가지 새로운 요리법을 개발하고 이전의 음식들을 개선하는 일들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토기가 깨지지 않는 금속용기로 대체되면서 현대적인 요리가 발달하기 시작했다.”(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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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역사

음식의 역사
Food in History

래이 테너힐의 Food in History(음식의 역사, 손경희 옮김)를 읽으면서 음식이 단순한 인간 문명의 부산물이거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인간의 역사에 상호 영향을 끼쳐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가 과거와 미래의 대화’ 라는 카의 명언에 음식의 역사를 적용해보면 인간의 역사가 생물적인 한계와 관습을 가지는 보다 유기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역사의 모습을 제공해 주는 듯하다. 단순히 ‘대화’ 라는 유기적인 역사인식 보다 더 나아가 마치 역사가 우리의 식탁위에 놓여있다는 일상성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러한 느낌은 음식이 갖는 친밀감 때문일 것이며 삶의 현장이 곧 음식을 제공해주는 자연, 곧 현재의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그 공간과 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우리가 체험하지 못한 과거의 거대한 정치적인 사건이 학습과 이성으로 그 심각성과 교훈이 전달되는 것과는 다른 이치이지 싶다. 단순이 요리의 레시피와 조리과정을 소개하는 요리책과는 다른 재미였다. 과장된 예가 되겠지만, 인간이 영양실조에 빠져 침대에 누워있다면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물로서의 인간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그 에너지의 충족 여부에 따라 행동이 유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음식의 역사가 여러 인간 역사의 한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은 진실일 수밖에 없다.

특히 식량(음식)이 인간의 생존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시기에 식량의 획득이야말로 인간 생존의 본질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인간의 역사가 음식의 역사와 동질적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좀 더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하고 삶이 풍요로워지면서 다양한 생존 요소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음식이 차지하던 절대적인 중요성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음식이 인간 생존의 수단인 이상 그 관계는 여전히 변함이 없으리라고 본다.

이렇듯 인간의 역사에 있어 음식이 미친 영향은 곧, 인간의 생물적인 조건이나 환경이 인간의 역사를 해석하는 여러 단서들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목격한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저자의 말」의 서두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음식의 역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간단한 주제를 다룬 선구적인 저작이다. 이 책을 쓴 목적은 인류의 3만 년 역사를 통하여 식생활의 특성을 형성해 온 영향 요인들을 조사하고, 보다 많은 양질의 음식에 대한 추구가 역사의 진행 방향에 때로는 결정적으로 또 대개는 미묘하게 작용하게 되는 경로를 쉽게 설명하려는 데 있다. 요컨대, 어떤 면에서는 음식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임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 방법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은 글을 읽는 내내 참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를테면, 쟁기와 십자군 원정의 관계, 흑사병과 동물 쓰레기의 불법 투기, 인도인들이 암소를 신성시하는 원인등등 음식이 “역사의 진행 방향에 때로는 결정적으로 또 대개는 미묘하게 작용하게 되는 경로” 를 접하는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인간의 역사에 음식이 “때로는 결정적으로 또 대개는 미묘하게 작용해왔다면” 오늘날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의 역사가 진행형이듯이 음식의 역사 또한 진행형이다. 저자의 말대로 “미래의 식량의 역할이 과거보다 덜 결정적이지는 않을 것”이기에 음식이 인간의 역사의 진행방향에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작용을 하기를 바라지만, 음식과 관련하여 인간이 처한 현실은 다소 비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식량의 문제는 과거의 부족사회와 같은 국지적인 성격이 아닌 국가, 대륙, 지구적인 차원에서 발생하고 있다. 인종과 국가간의 교류가 증대함에 따라 그 규모는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후진국의 영양부족과 선진국의 비만이라는 극단적인 대비와 환경의 파괴에서 뚜렷이 볼 수 있다. 음식의 부패와 오염, 그리고 저장의 문제 같은 것이 아니라 음식 자체를 생산할 수 없는 어두운 현실에 직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래의 인간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그 변화의 저변에는 음식이 어떻게 자리할 것인지,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 아닐까 한다.

책의 뒷표지에는 독자들의 시력을 측정하기라도 할 듯이 까만 바탕에 흰색으로 깨알같이 써놓은 아래의 질문들이 있다. 이에 대한 답은 앞으로 해 나가고자 한다.


1.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2.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3.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4.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5.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6.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유목민들에게 왜 비타민 결핍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7.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8.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9. 통조림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몇 달씩 배위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0.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11. 20세기초 영국의 징병검사에서 41%의 청년들이 병역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12. 식품판매업자들의 사기행위와 불량식품에 정부와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13. 외국에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이 과연 자국의 식량 상황과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14. 식량 생산과 환경 파괴, 과식으로 인한 질병과 굶주림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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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18:21

주방이 아름다운 나라





주방이 아름다운 나라


얼마 전 식당의 위생문제를 고발한 블로그 포스트가 눈에 띄었습니다. 남은 음식 재탕, 삼탕하는 음식점 충격! 이라는 글로 혀나 겅주님 께서 KBS1의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을 근거로 쓴 포스트였습니다. 기성 언론 보다 더 성실하고 가슴으로 쓴 진실한 글이라 판단됩니다. 이번 고발 프로와 관계없이 식당의 위생문제는 공공연하게 떠돌았고 추측은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고발 기사나 프로그램이 과거에도 끊이지 않고 있어왔으니까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식당에서 불쾌한 장면들을 직접 여러번 목격하기도 했으니까요. 식당의 비위생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번 식당 위생에 대한 TV의 심층적인 문제 제기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안전하고 위생적인 먹거리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합니다.  



참고로 아래의 링크는 식당의 비위생적인 현실을 지적한 블로그입니다. 많은 곳을 찾지 못해 두 곳만을 링크해 놓았습니다.  

gundown의 식유기 비위생적인 냉면집들
더시크릿 불만제로 중국산 불량 갈비탕 통조림, 통조림 갈비탕 -식당, 예식장 갈비탕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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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고발에서 특히나 충격과 경악을 느낀 것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광우병 사태와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미국산 소고기의 유통을 실질적으로 육류업자들에게 맡겼고 유통과 거래를 투명하게 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정부의 단호하고 엄격한 정책 시행의 의지를 보여주려는 듯 총리가 세관의 검역소에서 소고기의 냄새를 맡는 사진과 어느 식당을 방문하여 원산지 표시판을 걸기도 했습니다. 이벤트라는 의심을 받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소비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요구했습니다. 사먹지 안으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러고 대통령은 시위하는 사람들도 "소고기를 먹지 않을까 싶다" 고 비아냥거렸습니다.(click!)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무책임한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였습니다. 국민의 건강과 보건, 영양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보장을 해주는 세계적인 추세와 역행하는 처사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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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oasis.seoul.go.kr/wow/



그런데 이런 식당 음식의 재탕, 삼탕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사회가 미국산 소고기의 검수와 유통과 보존 등을 철저히 수행하는 체계가 사회적으로  확립되어 있는지 참으로 참담한 느낌이었습니다. 정부의 여러 조치들이 혹 임기응변식 떼우기가 아닌지 걱정스러워졌습니다. 원산지 표기에서 부터 검역상의 허점, 위법 행위에 대한 조치나 범법행위 등과 관련된 부정과 부패, 또는 탈법과 위법이 얼마나 횡행할지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위법이나 관리 소홀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겠지요.

식당의 위생은 식당 주인의 양심이 1차적인 문제이겠지만 정부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국가나 지자체 차원에서 위생을 생활화하는 시스템과 공무원들이 철저하게 식당의 위생문제를 관리하고 감독한다면 위생상의 문제가 많이 개선 될 것입니다. 물론 주방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비양심적인 행위까지 제재할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식당주인의 의식개혁과 양심 회복을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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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blog.empas.com/stragus/read.ht



식당은 곧 주방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들어진 음식을 보고 먹는 곳은 식당이지만 주방에서 그 음식들이 만들어집니다. 아무리 푸짐하고 먹음직스럽게 보여도 그 음식의 조리과정이나 재료에 비위생적이고 비양심적인 행위가 개입이 되어있다면 그 음식은 보기와는 달리 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식당은 위선적인 공간이 되고맙니다. 푸짐하게 차려 내놓으면서 웃는 웃음 뒤에 비양심이 똬리를 틀고 있으니 말입니다. 속과 겉이 다르다는 표현이 바로 이러한 식당에 그대로 적용이 될 수 있습니다. 주방은 양심적인 공간이 되어야만 합니다. 위생적인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내 가족을 먹인다는 자세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식당주인의 의식개혁과 양심 회복을 호소합니다. 또한 정부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대책을 촉구합니다. (*)

 대통령은 시위하는 사람들도 "소고기를 먹지 않을까 싶다" 고 비아냥거렸습니다.(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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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1 02:07

발우공양: 개인의 자각으로써의 생태주의




 발우공양:개인의 자각으로써의 생태주의


발우공양 체험하는 일본 관음성지 순례단 출처:NEWSIS

발우공양 체험하는 일본 관음성지 순례단 출처:NEWSIS

인간의 음식문화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육식은 육식대로 채식은 채식대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전제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다. 육식은 사냥감의 사냥을 위해 칼과 창을 필요로 했을 것이고, 그 조리나 보관을 위해 여러 식물들과 향신료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음식의 보관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에게도 절실한 문제였다. 고기를 익혀 먹는 것은 네안네르탈인의 불의 이용 시기와 어느 정도 일치 한다. 음식을 끊여먹기 시작한 시기도 기원전 5000년 경에 이르서야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관의 문제는 상당히 복잡한데 육식을 위주로 하는 유럽인들은 단순히 소금이나 훈제로 고기를 보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천문학과 항해술의 발달로 동양으로 진출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고기를 장기간 정장할 수 있는 향신료의 획득이었다. 유럽인이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동양으로 항해하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 바로 인도, 곧 신대륙이기 하다. 결국 고기의 장기간 보관이나 저장을 위해 우연하게도 신대륙을 발견했고, 그들 탐욕의 충족을 위해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살육을 당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역사의 비극은 우연의 결과라는 생각도 든다.


다양한 현상들을 일반화하고 논리를 심하게 비약한다는 걱정이 앞서지만, 역사상의 비극을 초래했던 유럽의 육식 위주의 음식문화와 달리 불교의 발우공양은 자연과 인간 자신들에게 가한 비극을 돌아보고 그 비극을 잉태한 서구화된 오늘날의 음식 문화를 성찰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확신한다.

"발우공양이란 스님들의 식사를 말한다. 스님들의 식사는 일반사람들의 식사방법과 다르다.

발우공양은 식당작법(食堂作法)을 따라 하게 되는데 이 식당작법을 살펴보면 한끼의 식사까지 불교의 수행정신이 스며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흔히 발우공양은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어 낭비가 없으며, 음식을 남기지 않아 설거지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설거지로 인해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러한 특징은 지혜의 반영일 뿐이다. 식당작법을 통해 스님들의 식사란 수행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출가 수행자가 음식을 매개로 중생과 함께하는 지혜의 정신이 숨어있는 것이다.

식당작법 중에 공양할 때 반드시 관상(觀想)하는 오관게(五觀偈)가 있다. 오관게를 오관상념게(五觀想念偈)라고도 하는데 다섯 시귀의 내용을 관상하여 염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공양이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와 땀의 고통이 배어있는가를 헤아리고(計功多少 量彼來處) 자기의 덕행이 공양을 받기에 부끄럽지 않는가를 생각한다.(忖己德行 全缺應供) 마음을 악으로부터 보호하고 허물을 여의는 것은 탐·진·치 삼독(貪·瞋·癡 三毒)을 버리는 것이 으뜸이니,(防心離過 貪等爲宗)이 음식을 약으로 알아 육신의 고달품을 치료하여,(正思良藥 爲療形枯)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爲成道業 應受此食)

이러한 오관게를 통해 발우공양의 불교적 정신를 되새겨보면 첫째 시귀는 은혜, 둘째 시귀는 음식을 받을만한지의 자격, 셋째 시귀는 음식을 받는 이유, 넷째 시귀는 육신의 건강을 위해 음식을 받는 것으로 수행의 조건인 건강한 육체, 다섯째 시귀는 수행하기 위해서 음식을 받는 것, 즉 수행은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을 일상생활에서 적용시켜보면 불교의 음식에 대한 지혜를 그대로 응용할 수 있다.

발우공양의 불교정신이 사회에 지속되려면 오관게를 관상하는 운동이 불자들의 실천을 통해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관상하여 잊어버리지 않으면 몸에 배여서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이제 발우공양의 정신을 일반화하여 각 가정에서 직접 실천해 보면 절약하는 습관과 음식의 소중함을 깨닫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저절로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확대되면 환경오염을 예방하고 경제적인 이득을 얻게 됨은 물론이다."
인용글 출처: 현대불교미디어 센터 



우연이긴 하지만 유럽의 육식문화가 어메리칸 인디언의 대학살과 유럽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와 직접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한 현대의 기아와 비만과 음식으로 인한 질병은 곧 인간의 탐욕과 탐식의 결과라는 사실을 볼 때는 과연 인간의 탐욕이 인간 스스로를 옥죄는 쇠사슬이 되고 있다. 과거의 비극을 통해, 음식에 대한 탐욕 앞에서 평화로움과 자비와 사랑은 무용지물일 뿐이었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하며, 또한 오늘날의 비극을 통해  음식은 사랑이고 자비이고 평화롭게 함께 공유하는 정신임을 자각하는 통절한 반성이 요구된다.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이며 환경운동가 그리고 <희망 밥상>의 저자인 제인 구달 박사가 2006년 우리나라 화계사를 방문하여 발우공양을 1시간에 걸쳐 체험하였다. 짐작컨대 구달 박사는 발우공양에서 본질적인 생태주의 운동을 목격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음식을 먹는 행위를 생태계 순환의 일부로 여길 수 있을 만큼 자연과 동식물에 적대적이며 않으며 음식의 질과 건강을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의식조차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제인 구달 박사와 불교와의 만남은 동서양 함께 20세 이념과 민족과 국가이기주의를 넘어 21세기는 기아와 비만, 음식으로 인한 질병이 사라지는 것에서부터, 생태계의 보호와 보전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대한, 자연에 대한, 생태계에 대한 근본적인 자각이 일어나는 녹색 생태주의로 나아가는 조화와 화해와 평화의 큰 걸음이 아닐까도 싶다.


이 지점에서 육식이나 채식을 떠나, 또한 종교를 떠나서,  인간이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누리고 있는 경제적인 풍요라는 것이 생태계의 파괴를 기반하고 있는 인류 위기에 다름 아니라는 진지하고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하며, 이러한 고민 속에서 발견하는 발우공양의 정신은 우리 인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참고  제인구달 박사의 화계사 발우공양 체험
         희망은거창한 구호에서가 아닌 개인의 작은 실천에서 오는 것   
         외국인들의 발우공양 체험 동영상
         제인 구달, "환경문제는 자연과 동떨어진 삶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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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 찌개 비빔면 & 덮밥

                       
순두부 찌개 비빔면 & 덮밥


제가 이런 음식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는 아주 단순합니다. 반찬 없이 한 그릇으로 먹고 음식물 지꺼기를 없애자는 취지입니다. 이것은 음식 지꺼기가 없어 환경 보전에 도움이 되면서 간편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들은 [한 그릇 음식]이란 코너 아래에 묶을 생각입니다.

한 그릇 음식 운동으로 확산되는 것이 저의 작은 꿈이기도 합니다.
한 그릇 음식이란 말은 우리 한정식의 그릇이 너무 많은 것에 대한 약간의 반발로 지어진 용어입니다.  한 그릇으로 간단하게 먹지만 엄마의 손 정성이 담겨있고 영양가도 있는 음식을 지향합니다. 여기에 실린 인스턴트 재료들은 편의상 사용한 것이며 실제 가정에서 직접 만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순두부 찌개소스로 활용해서 순두부 찌개 비빔면순두부 찌개 덮밥 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찌개를 소스로 활용하여 다수의 그릇을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앴습니다.  찌개를 떠먹는 다는 제약에서 벗어나 순두부 양념찌개를 라면 사리나 밥 위에  곁들이는 비빔소스로 이용했습니다. 순두부찌개 비빔면과 더불어 다른 음식들도 구경해 보세요. 삼겹살 시리즈( 카레 삼겹살, 카레 양념 삼겹살 )와 카레 시리즈(카레 삼겹살, 카레 양념 삼겹살, 카레 토스트,카레 낙지볶음), 그리고 초밥시리즈(베이컨 초밥, 족발 초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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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부찌개 양념 1봉지, 파, 양파,ㅖ란,순두부,라면사리 1봉지, 밥, 김치(옵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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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를 넣고 잠시 뒤 파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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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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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 찌개 비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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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 찌개 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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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 찌개 비빔면과 덮밥


시식후기

먹을 만한 맛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찌개를 먹다가 사리를 넣어 먹는 것과 비슷합니다만, 주요리로 만든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면 위에 순두부 찌개를 올려 비벼 먹는 것 보다는 처음부터 순두부 찌개에 라면 사리를 넣고 순두부 찌개 라면을 만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사리에 순두부 양념이 배여들면서 더욱 맛갈스럽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는 순두부 찌개 라면을 만들어 봐야 겠습니다.  순두부 찌개 덮밥은 밥에 찌개를 올려 비벼 먹는 것과 다를 게 없지만 하나의 독립된 음식으로 만들어 진것에 의의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다.


검색후기

검색을 해보니  비슷한 음식으로 이미 순두부찌개 라면이 있었습니다.  비숫한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거의 같았습니다. 시식 후기에서 이미 밝혔던 것 처럼 순두부 찌개 라면 이 오히려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제 마음을 읽고 있었다는 듯이 순두부찌개 라면을 꽤 오래 전에 만들어 놓으셨네요.  

올림픽 선수들에게 만들어 드리고 싶네요. 괜찮을 것 같네요^^;;
대한민국 선수단 파이팅!!!

관련 사이트
jiwooangelos :http://blog.daum.net/jiwooangelos/4837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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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벌거벗은 임금님(2)




신 벌거벗은 임금님(2)

누드우스, 그리고 로라 리웬스키의 음모




“음식이 권력을 뒤엎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또 음식이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는 이 현실 앞에서 그저 먹고만 있자니 가슴이 아프다.”

― 어느 무기력한 귀족의 넋두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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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임금님인 누드우스 임금님은 소의 통 바비큐를 참 좋아했다. 소의 통 바비큐는 소를 통째로 구운 바비큐로써, 줄여서 소통바비큐라고 불렸다. 특히 몬타넬로산 소통바비큐를 제일 좋아했다.


몬타넬로는 수도 조덴스덴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구 15만의 소도시로써 해발 1500m의 에스틸뇨 산이 중앙을 차지하고 이 산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져있다. 이 초원에 15만의 인구보다도 더 많은 30만 마리의 소와 15만 마리의 양들이 방목되고 있으나 또한 737만 마리의 쥐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쥐들이 서식하는 이유는 몬타넬로가 왕국의 그 어느 곳보다도 인공적인 것이 하나도 없는 원형의 자연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박멸도구와 쥐약을 피해 전국의 쥐들이 몰려들어와 서식하게 된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은 몬타넬로산 소통바비큐를 일주일에 4일, 그러니까 월, 수, 토, 일요일마다 보르도산 포도주와 함께 먹기를 즐겼는데 언제나 축제에 가까운 만찬을 베풀었다. 누드우스 왕은 왕궁의 정원에서 몬타넬로산 소통 바비큐를 즐기며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몬타넬로 산 소고기를 백성들은 결코 맞볼 수가 없었다. 가격이 엄청 비쌀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귀족용 가축으로 제한하면서 일반 시중의 유통을 철저하게 막았기 때문이었다. 소고기뿐만이 아니었다. 소의 각종 내장과 유제품과 양털 또한 마찬가지였다.


백성들이 소통 바비큐를 먹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목숨을 무릎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50m의 담벼락을 넘거나 암석층을 뚫고 땅굴을 파서 몰래 훔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먹어보는 것이 그야말로 일생의 소원이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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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http://kr.blog.yahoo.com/openb



이런 이유로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둘러싸고 언제나 소동이 벌어졌다. 담벼락을 넘다 추락사하는가 하면, 땅굴을 파다 매몰되기도 했다. 또한 몬타넬로산 소고기라고 속이고 비싼 값에 가짜 고기를 유통시킨다거나 일반 유제품을 몬타넬로산으로 둔갑시켰다. 귀족들의주변에서는 언제나 썩은 생선 냄새 같은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귀족들이 암암리에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유통시키면서 막대한 부의 축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몬타넬로산 소고기로 인해 민심은 흉흉해지고, 귀족들은 타락해 갔다.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의 실정으로 백성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설상가상 몬타넬로산 소고기까지 그러한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것은 왕국의 존재까지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귀족들 사이에서는 몬타넬로산 소고기 개방이 심각하게 고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누드우스 왕은 단호했다. 그에게 몬타넬로산 소고기 개방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몬타넬로산 소고기 한 번 먹는 것이 소원인 백성들에게 누드우스 왕은 “그까짓 몬타넬로산 소고기 안 먹으면 그만 아닌가! 안먹으려고 노력해라!” 하고 심장에 불사르는 짓까지 하니 백성들의 분노는 조젠스덴의 흐릿한 하늘을 찔러 갈라지게 할 정도였다.


누드우스 왕에게 백성들이란 신하의 확대된 의미에 불과했고 그들의 분노나 원망이란 한낱 이성을 잃은 개망나니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누드우스는 백성이란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일방적인 지시, 명령의 대상일 뿐이었고, 그런 그들에게 소통바비큐 따위는 사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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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치란 자신과 귀족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한이었다. 백성들이 왕에게 고개를 쳐들고 ‘임금님이 옷을 벗고 있다느니, 옷을 입으라’ 느니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먹고 싶다는 소동에 있었으랴.


이렇게 하루하루 심기가 불편한 일을 당하면서 아무리 똥배짱이 강한 누드우스 왕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누드우스 왕이 마음을 둘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리웬스키 밖에 없었다.


리웬스키는 서글서글한 눈망울에 풍만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리웬스키는 몬타넬로 시 출신으로 얼마 전 죽기 전까지 왕궁에서 집사로 근무했던 우엥 리웬스키의 딸이었다.


우엥은 왕궁에서 빼돌린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로라가 어렸을 때부터 물리도록 먹였던 탓인지 로라 리웬스키는 몸매가 육중하고 가슴과 엉덩이가 엄청난 글래머였다. 누드우스는 이런 리웬스키의 넒고 깊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들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리웬스키는 누구보다도 권력과 부에 대한 욕심이 강했다. 옷을 벗은 채 흉포하고 잔인하고 엽기적인 짓을 하는 누드우스 왕과는 달리 그녀는 밝은 미소로 예의를 갖추고 남을 배려하는 척을 했다.

누드우스왕이 리웬스키에게 의지하면서 거의 집착에 가까운 신뢰와 애정을 보이자 리웬스키의 권력과 부에 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욕심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탐욕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돌변에는 그녀에 대한 귀족들의 태도도 한 몫을 했다. 누드우스왕이 리웬스키에게 완전히 빠져버리자 리웬스키에게 온갖 아첨과 아부를 하는 귀족들이 하나 둘씩 늘어갔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베게머리 송사가 완전히 먹혀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욕심 많은 리웬스키가 어떻게 제정신을 차리고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자태를 뽐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누드우스 왕이 빠져버린 리웬스키라는 탐욕의 항아리는 그 좁은 입구와는 달리 깊고도 넓었다. 누드우스 왕이 그 좁은 입구를 거슬러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리웬스키라는 항아리는 깊은 늪처럼 끈적끈적했다.


리웬스키는 고고한 척 하면서 몬타넬로산 소통바비큐를 굽는 바비큐 대를 돌리듯 누드우스 왕을 가지고 구워삶기 시작했다. 리웬스키는 누드우스 왕에게 몬타넬로산 소들에 대한 규제를 풀어줄 것을 눈물로 호소하는 척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신뢰하는 리웬스키라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귀족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리웬스키는 이런 점까지 꿰뚫고 있었다. 백성들의 신뢰를 받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었다.


리웬스키는 영향력있는 귀족들을 협박과 회유로 한 사람 한사람씩 그녀의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얼마 뒤 귀족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게 됨으로써 리웬스크가 실질적인 권력의 핵심으로 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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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웬스키는 몬타넬로에 살고 있는 삼촌 오르겐 리웬스키와 오빠 나발 리웬스키에게 자신은 몬타넬로 소의 규제를 풀고자 하지만 누드우스 왕이 완강하게 막고 있다는 사실을 백성들 사이에 퍼트리도록 사주했다.


누드우스 왕에게 분노하고 있던 백성들이 리웬스키의 그러한 숭고한 노력에 감동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입으로 사실들이 전해지던 시대에 오르겐과 나발의 소문 확산은 효과적이었다. 백성들 사이에서 리웬스키는 졸지에 왕국을 지키는 잔다르크가 된 것이다.


백성과 소통 자체를 원하지도 않는 누드우스 왕이 이러한 소문을 접할 리가 없었다. 귀족들 중에 이러한 사실을 왕에게 직언하는 경우도 없었다. 귀족들은 이미 누드우스 왕에 대해 체념한 상태였다.


그저 목숨만이라도 부지해야했다. 누드우스 왕과 함께 벌거벗고 있어야 하는 처지에 대해서조차 벙어리처럼 말 한 마디 못하는 현실에서 그러한 직언은 불가능 일이었다. 또한 리웬스키의 막강한 파워가 현실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게 누드우스 왕을 둘러 친 인의 장막은 ‘누드우스의 담벼락’ 보다도 더 높아만 갔다.


리웬스키가 퍼트린 또 다른 소문은 그녀가 끊임없이 누드우스에게 옷을 입어라고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들불처럼 소문이 퍼져나갔다.

“리웬스키가 누드우스를 인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군.”

“벌거벗은 누드우스에게 옷을 입힐 인간들이 그렇게도 없다니, 리웬스키보다도 못난 인간들이군.”

“저 왕궁에 벌거벗은 짐승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왕국의 수치가 아니겠나. 왕궁이 아니라 인간 동물원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듯하네. 그나마 리웬스키가 동물원의 조련사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군 그래.”


백성들은 ‘누드우스의 담벼락’ 과 ‘인의 장막’ 에 둘러싸인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에게 리웬스키가 옆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나날이 리웬스키에 대한 칭송은 늘어갔고 이와 반비례해서 누드우스 왕은 몰락해갔다.


리웬스키에 저항하던 귀족들조차  마침내 흔들리면서 그녀에게 손바닥을 비비기 시작했다. 누드우스는 허물뿐인 존재였고 리웬스키는 실제적인 권력자가 되었다. 심지어 누드우스의 친위대가 리웬스키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하기까지 했다.이로써 누드우스 왕의 수족은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이러한 과정에 이르기까지 누드우스 왕은 완전히 무기력했는데 이것은 리웬스키가 몬타넬로산 소통 바비큐에 섞어 넣은 약 때문이었다. 그 약은 누드우스의 판단력을 마비시켰다.


정치적으로 백성들과 귀족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육체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누드우스 왕은 이렇다 할 변변한 저항 한 번 하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거나 습관적으로 집무실에서 엽기적인 행위들로 소일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 보잘 것 없는 시녀 로라 리웬스키의 사사로운 음모가 왕국의 권력을 교체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이름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는 개인들 각자의 몫이다. 그것은 단일한 의미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나도 다의성을 갖는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세계사에 로라 르웬스키의 음모와 왕위식이 기록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평가의 다의성에 기인하는 듯하다.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은 이렇게 리웬스키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백성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그들의 삶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시적인 분노와 원망의 감정 해소였을 뿐이었다.


얼마간 야만과 흉포의 시대가 사라진 듯이 보였으나 더욱 교할하고 위선적이며 가식적인 로라 리웬스키, 자칭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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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의 탄생과 함께 유일하게 백성들에게 돌아간 혜택이 있다면 몬타넬라산 소들을 가두고 있던 담과 철망들이 제거되고 몬타넬라산 소통바비큐가 백성들에게 일상적인 음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이 개인적으로 소고기에 물려 더 이상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이러한 몬타넬라산 소고기의 규제 완화 조치는 고도의 정치적인 음모가 깔려있었다. 그것은 몬타넬라산 소통 바비큐에 신경 완화제를 주입하여 백성들의 정치적인 의식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몬타넬라산 소고기와 소통 바비큐가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 또한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의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이 사실을 백성들은 모르고 있었다.


백성들은 오늘도 힘든 노동 뒤에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집으로 돌아와 무표정한 모습으로 식탁 위에 놓여진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먹었다.
(2008.8. 7.07:14)
 
*제일 위 사진 출처: http://kr.n2o.yahoo.com/NBBS

신 벌거벗은 임금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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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7 08:41

족발 초밥



                        
                            족발 초밥


족발로 초밥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초밥을 꼭 해산물로만 만드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돼지족발을 이용했습니다. 밥에 돼지발을 올리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지만 이러한 조합은 음식에서 얼마던지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원래는 삼겹살 시리즈(카레 삼겹살, 카레 양념 삼겹살  베이컨 초밥)와 카레 시리즈(카레 삼겹살, 카레 양념 삼겹살, 카레 토스트,카레 낙지볶음)를 지속적으로 만들면서 양념 삼겹살 초밥 을 만들고 싶었으나 베이컨 초밥과 족발 초밥 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어제 베이컨 초밥과 함께 만든 것으로 여기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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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초,설탕,소금,깨소금 약간을 뿌리고 골고루 섞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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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크기로 밥을 뭉쳐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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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위에 양념장을 적당하게 올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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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족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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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족발을 올려줍니다. 족발 연골이나 껍질 부위를 올려도 괜찮습니다. 살보다는 연골이나 껍질 부분이 더 고소하고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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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겨장 간장을 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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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족발 초밥입니다.



시식후기

초밥 본래의 맛을 잃은 단순히 초밥을 닮은 모양만 하고 있다고 하면 되겠습니다. 새콤하면서도 해물의  상큼하고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아니라, 덥덥하고 건조한 맛이 났습니다. 그러나 밥에 뿌리는 식초의 양을 조절하면 밥에서 씹히는 새콤한 맛과 양념장, 그리고 겨자간장 소스의 맛이 섞이면서 독특한 맛을 낼 것 같습니다. 김치나 젓갈을 함께 곁들이면 더욱 좋을 것 같구요.  이건 일종의 원시적인 형태 또는 아이디어차원에 불과해 앞으로 좀 더 개선된다면 괜찮은 퓨전음식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검색후기

처음에는 양념 삼겹살로 하려고 했었는데 족발(베이컨도 함께)을 이용해 보았습니다. 삼겹살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잘 한 일이었습니다. 삼겹살 초밥이 이미 소개되어 있었더군요 (달콤한 살림꾼의 everyday food삼겹살 초밥). 너무 멋지게 만들어져 먹음직스럽게 보였습니다. 저의 족발 초밥도 좀 더 다양한 재료와 정교한 조리 과정을 거친다면 멋과 맛에서 손색이 없는 음식이 될 것 같았습니다.

(시식 후기와 검색 후기는 베이컨 초밥 의 후기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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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00:10

베이컨 초밥




                         베이컨 초밥


베이컨으로 초밥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초밥을 꼭 해산물로만 만드는 한계에서 벗어나 베이컨을 이용했습니다. 원래는 삼겹살 시리즈(현재까지 카레 삼겹살, 카레 양념 삼겹살 만들었음)의 일부로 양념 삼겹살 초밥을 만들고 싶었으나 시간과 기술의 문제로 베이컨으로 대체하였습니다. 베이컨도 일종의 삼겹살의 딴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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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식초,설탕,소금,깨소금을 넣고 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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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크기로 밥을 뭉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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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을 구워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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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컨을 밥 위에 올리고 살짝 눌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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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에 담긴 소스는 태국산 해물용 소스로 맛의 배합이 어떨지 이용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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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것을 보니 문어 초밥 같아 보인다


시식후기

초밥 본래의 맛을 잃은 단순히 초밥을 닮은 모양만 하고 있다고 하면 되겠습니다. 새콤하면서도 해물의  상큼하고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아니라, 덥덥하고 건조한 맛이 났습니다. 그러나 김치를 곁들여 입맛을 들이면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기도 합니다.



검색후기

삼겹살로 하려고 했었는데 베이컨으로 바꾼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겹살 초밥이 이미 소개되어 있었거든요(달콤한 살림꾼의 everyday food삼겹살 초밥)너무 멋지게 만들어져 먹음직스럽게 보였습니다. 저의 베이컨 초밥도 좀 더 다양한 재료와 정교한 조리 과정을 거친다면 멋과 맛에서 손색이 없는 음식이 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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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3 00:43

식사에 대한 단상(1)



                             식사에 대한 단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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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blog.yahoo.com/lkwha

한국인의 공동체적인 인간미와 인정, 그리고 동시에 두리 뭉실한 적당주의는 대체로 식탁의 중앙을 차지하는 ‘탕‘이나 ’찌개‘를 먹는 방식에서 드러난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공동체적인 인정과 두리 뭉실한 적당주의는 그 선후(先後)나 경중(輕重)을 가릴 수 없는 문제이지만 후자에 이 글의 초점을 맞추려고 하기에 조금은 비판적인 글쓰기가 되겠다.

매운탕, 해물탕, 된장찌개, 김치찌개등은 큰 냄비에 담겨 주로 식탁의 중앙에 놓여진다. 수저를 함께 담그며 더불어 먹는 대표적인 음식인 까닭이다. 가족 외에는 다소 배타성이 강한 한국인들에게 타인들과 함께 침을 나누며(?) 탕과 찌개를 떠먹는다는 것은 자못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어쩌면 공동체적인 미덕이 깨어지고 가족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공동체적인 의식의 흔적이 아닌가도 싶다.

그러나 동시에 적당주의의 음식문화의 대표적인 형태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적당히 허기(虛飢)만 해결하면 되는 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손에 닿을 수 있는 적당한 공간에 놓고 적당한 양을 먹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서로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인간적인 정으로 볼 때 흐뭇한 일이지만 21세기 이제는 먹고 살만한 시대에는 지양해야할 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공중위생의 관점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밥상의 김치나 약방의 감초같이 항상 중요하게 부르짖고 있는 세계화의 수준에도 아무리 양보해도 걸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상(床)과 관련하여 이어령님은 <우리문화 박물지>라는 자신의 책에서 “봉건윤리로 민주적인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계속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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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blog.empas.com/stragus/read.ht



“무엇보다도 서양의 식탁은 하나라 할지라도 막상 먹는 음식접시는 각자의 것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겸상은 모든 반찬을 동시에 차려놓고 여럿이서 함께 먹는다. 서로 양보하고 상대방과 협력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 식사는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밥상을 받을 때마다 서로 억제하고 양보하면서 함께 같은 음식을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 민주적인 훈련을 쌓게 된다.” (우리문화박물지,pp.144-145. 이어령, 디자인하우스)

이러한 언급을 접하고 있노라면 적당주의를 언급하기가 무안해 질 정도다. 그러나 솔직히 이어령님의 언급에 동의하지 않기에 무안하지는 않다. 만약 동의한다면 초원의 사자들이 무리를 지어 먹이를 뜯어먹는 것도 민주주의의 트레이닝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해를 하시지는 말기 바란다. 우리의 식사법이 사자의 그것을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시절에 함께 먹던 그 슬픈 식사법을 너무나도 안일하게 민주주의 트레이닝으로 보는 그 시각이 좀 지나치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직도 하루 세끼를 꼬박 함께 식사를 하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양의 식습관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란 말인가?

‘탕’과 찌개의 공유는 음식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데 ‘너‘와 ’나‘의 것이 구분되지 않기에 적당히 남을 배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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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자신의 양을 조절하게 된다. 이것은 이어령님의 말대로 긍정적인 측면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 원리인 나의 권리를 찾는 동시에 남의 권리도 존중하는 개인주의를 불가능하게 하며 나의 권리/책임과 남의 권리/책임이 명확치 않아 대충 대충의 어림짐작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풍성하게 음식을 차려야 하며 혹 남는 경우에는 가족의 경우는 예외라 하더라도 다시 먹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함께 먹었던 음식이었기에 찌꺼기에 대한 책임 의식도 그만큼 작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혹 성숙되지 않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시민의식 수준에 대한 한 암시인 것은 아닐까?

서로 적당하게 나눠먹는 이러한 탕과 찌개의 공유에서 우리는 어떤 부정과 부패의 만연한 사회상을 읽을 수는 없을까? 적당하게 사는 것을 튀지 않게 사는 획일주의와 동일시하고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는 암묵적인 공범의식을 읽을 수는 없을까? 작은 그릇을 가지고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양만큼 덜어서 먹을 경우에는 책임의식이 커질 것이며 혹 음식이 남는 경우에도 다시 먹기가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추세가 확산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정‘ 에만 비중을 두는 음식문화가 퍼져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우리사회를 위기라고 한다. 이러한 시점에 함께 ‘탕’ 과 ‘찌개‘를 떠먹으며 긍정적으로(?) 공범의식을 느끼는 것은 어떤가? ’나’ 들, 즉,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생각 말이다. 수저를 모두 함께 담갔으므로 아무도 면죄(?) 받을 수 없다는 공범의식이 “다들 그런데, 뭐. 나 하나 그런 게 아니데 뭐” 하는 식의 책임회피와 적당주의를 낳아왔다면 이제 위기의 시점에는 함께 책임을 지며 부끄러워하는 책임의식을 가졌으면 한다.(*)

맨 아래 사진 이미지 출처:www.kr.com/photos/me2f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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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1 23:37

[한그릇]카레 양념삼겹살

                       
                         카레 양념삼겹살

이번에는 카레와 양념삼겹살을 합쳐 만든 카레 양념삼겹살입니다. 이전에 만들었던 카레 삼겹살이 사실한 그 느끼함으로 개선의 여지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그냥 삼겹살보다는 고추장을 이용한 양념 삼겹살을 이용하면 맛의 배합이 괜찮치 않을까 생각하고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밥과 비빈 카레 양념삼겹살 밥 도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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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하나)양념을 약식으로 한 탓에 모양새가 좋지 않습니다. 양파, 파, 당근, 버섯등을 넣어면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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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둘)프라이팬이 영 시원찮아서 보기 좀 그렇습니다. 프라이팬 보다는 석쇠에 굽는 것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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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고 나니 기름이 많이 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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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셋)양념이다 보니 잘 타는데 약한 불로 천천히 굽는 것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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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드디어 카레와 양념 삼겹살이 만났습니다.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아주 조화가 잘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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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카레와 양념 삼겹살이 뒤섞입니다. 역사적인 순간. 좀 지저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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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섞인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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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와 양념 삼겹살이 사랑에 빠진 듯한 모습처럼 보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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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위에 소스를 올려야 하는데 편의상(?) 밥을 위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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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 양념삼겹살과 밥을 비벼서 카레 양념삼겹살밥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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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분 해서 죄송합니다. 서로 뒤섞이는 순간의 리얼리티를 살리다보니 좀 지저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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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모습입니다. 먹을만 했습니다.



시식후기

자화자찬 같습니다만 충분히 퓨전음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맛이 꽤 괜찮았습니다. 농담이 아니구요. 좀더 자극적이고 맵다고 알고있는 인도의 전통카레인 경우에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익숙하지 않는 맛인데도 좋았습니다. 고소하게 볶은 김치를 고명으로 올리면 더 좋을 듯 합니다. 또 와인을 곁들이면 멋스럽기까지 할 것 같기도 하구요. 맛이 괜찮아 사진도 좀 많이 올렸습니다. 한 번 시도해 보세요.


검색후기

검색해 보니 일단은 같은 이름의 음식은 없습니다. 다만 비슷한 음식(카레소스 돼지고기 볶음) 이 있긴한데 다르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을 듯 합니다. 잠정적으로 최초의 음식이라 생각하고 계속 검색을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혹 인도에 이런 요리는 없겠지요. 고추장이 없을테니까요


참고로 이 음식 코너는 [한그릇 음식]이란 이름으로 계속 해 볼까 합니다. 한그릇은 우리 한정식의 그릇이 너무 많아 이것에 대한 약간의 반발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한그릇으로 간단하게 먹지만 엄마의 손 정성이 담겨있고 영양가도 있는 음식이면서 한 그릇이라 깨끗이 비워 음식물 찌꺼기를 없애자는 취지입니다. 이 걸 한 그릇 운동 이라고 부르고 싶은 데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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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9 23:20

[한 그릇] 카레 낙지 볶음



                       
                      카레 낙지 볶음

카레 삼겹살을 소개한 적이 있죠. 느끼한 맛에 개선의 여지가 있는 요리(?)였습니다. 느낌상 양념 삼겹살과 카레가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이번에는 양념 삼겹살 카레를 준비하기로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였는데......오늘 낙지 볶음을 먹을 기회가 있어 카레와 한 번 섞어보기로 하였습니다. 낙지 볶음이라면 카레와 제법 어울릴 법 해서  시도해 보았습니다. 카레를 낙지볶음의 매운맛을 순화시키는  소스로 말입니다.(카레는 시간과 비용관계상 3분 카레를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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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가 해서 구운 두부도 올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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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식후기

기존의 익숙한 미각의 입장에서 보면 카레의 맛과 낙지 볶음의 맛을 동시에 잃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미각의 차원에서보면 아주 새롭고 독특한(?) 맛이었습니다.  카레도 아닌 것이 낙지 볶음도 아닌 것이 요상스런 맛이었습니다. 상상이 가시죠. 생각컨데, 낙지 볶음의 매운맛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부드러운 맛으로 전해 질 듯 합니다.


검색후기

설마 카레 낙지 볶음이 있을까 하고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검색을 했는데, 허걱~~ 카레 낙지 볶음이 있네요. 또 허탈 합니다. 새로운 음식 한 번 만들어 보려고 발악(?)에 가까운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라니  @@

서연맘님 블로그 (http://blog.naver.com/8292ilsun/80023448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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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3 00:09

카레 삽결살



카레 삽결살 

얼마전 카레와 토스트를 섞어서 카레 토스트를 만들면서 카레를 더 다양한 소스로 이용할 수 없을까 하고 생각했고 삼겹살과 카레를 합쳐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나라의 음식 문화는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음식 찌꺼기가 너무 많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삼겹살 카레라이스나 비빕밥과 같이 반찬이 필요없이 한 그릇으로, 한 접시로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이 많이 개발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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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 삼겹살을 완성하고 나서 밥을 곁들여 삼겹살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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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식후기

한마디로 실패였습니다. 삼겹살의 고소한 맛이 사라지면서 카레와 섞여 느끼한 맛이 났습니다. 그러나 의미있는 실패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추장으로 버무린 불고기 양념 삼겹살을 이용한다면 느끼한 맛을 가시게 하면서 고기의 맛이 살아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서 카레 소스의 향도 유지하는... 아무튼 그릇 하나에 한끼의 맛있는 식사가 될 수 있는 퓨전 음식이 탄생했으면 좋겠습니다.  



검색후기

블로그에 이 글을 올리고 나서 카레를 검색하다가 나자빠지고 말았습니다. 더욱 더 리얼한 카레 삼결살이 있었거든요. 그것도 한 4개월이나 먼저 말이에요. 삼겹살 3종세트(블로그명:오늘도 행복합니다. 열산성님)라는 글인데 너무너무 좋은 요리라 제가 완전히 삶이 허무하고 허탈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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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8 00:18

카레 토스트





                          카레토스트

블로깅을 하면서 네티즌 분들에게 무언가 관심을 끌만한 아이템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약간은 강박(?)이 되어 버린 듯합니다.  직장 그만두고 광고도 실고해서 블로깅으로 먹고 살기로 결심을 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광고 클릭 횟수는 블로그의 질과 비례하겠죠. 길을 가다가도, 자다가도, 화장실에 앉아서도......블로그에 올릴 만한 게 뭐 없나 찾게 되었습니다.

이 카레토스트도 그러한 노력(?)의 결실입니다. 토스트를 먹다가 남아있던 카레를 토스트 위에 부어 보았거든요. 시중에 이런 음식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솔직히 순수한 저의 독창적인 푸전 음식입니다.  제법 먹을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만들어 드셔보세요.

이렇게 해서, 카레를 좀 더 다양하게 이용할 수 없나 고민중에 있습니다. 다음에는 삽겹살 위에다가 양껏 쏟아 부어 볼까 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좋은 아이디어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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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0 19:09

한우, 참 오랫만이다





한우, 참 오랫만이다

7월 6일 일요일 참 오랜만에 한우를 먹었습니다(너무 오래되어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네요.) 입에서 살살 녹는게 별미였죠. 경제적인 사정때문에 원껏 먹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랄까요. 사진을 보니 또 먹고 싶네요.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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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0 17:13

추억의 호두과자






추억의 호두과자 사진입니다. 겉모습 생긴 건 호두처럼 생겼는데 딱딱한 호두과는 달리 부드럽고, 달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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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6 00:21

후쿠오카에서 먹은 도시락 & 음식





                        후쿠오카에서 먹은 도시락&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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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텐보스 행 열차 안에서 먹은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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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텐보스 에서 먹은 나가사키 짬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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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리 공원 가는 길에 먹은 어묵(맛이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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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찌란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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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주로 먹었던 도시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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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5 21:12

후쿠오카 자유여행(7.마지막날)







             후쿠오카 자유여행(7.마지막날)


이틀 동안 참 바빴습니다. 하우스텐보스와 다자이후 뗌만구도 다녀오고 후쿠오카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니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컸습니다. 그랬던 탓인지 마지막 날 아침에야 비로소 민박집의 실내를 찍었습니다. 민박집은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는데 낡은 전통 가옥에 그다지 아늑하고 편리한 곳은 아니었지만 깨끗했으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그 때가 비수기였던 탓인지 그 넓은 민박집에 손님이라고는 우리 가족이 전부였습니다. 정말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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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과 관련하여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비수기에 일본을 여행할 경우에 굳이 한국에서 예약을 미리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후쿠오카로 출발하기 직전 한국에서 민박집을 예약했지만 막상 후쿠오카에 도착하니 하까다항에 명함만한 숙박 안내지들이 널려 있더군요. 현지에서 찾아가는 것이 좀 불편하겠지만 자유여행이라면 그렇게 찾아가는 것도 재미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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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에서 먹은 음식은 주로 도시락이었습니다. 도시락의 나라답게 다양한 도시락들이 있더군요.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하까다역 내의 쇼핑가에 도시락 코너가 있었는데 다양한 도시락들을 전시해놓고 있었습니다. 직접 주문을 해서 도시락을 만들 수 있기도 하구요. 한국에서 가져간 육개장이 국물이 없는 도시락을 먹는데 도움이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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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도시락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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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는 좋은데 맛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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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을 나오면서 근처의 모습들을 찍었습니다. 한국과는 가까운 거리라 언제 또 오겠나하는 아쉬움은 덜했지만 그래도 짧은 일정과 근처를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은 남더군요. 하까다역으로 가는 도중에 거리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후쿠오카에 오기 전 한국에서 숙박지를 예약할 때 주로 소개되어있던(여행 동아리 카페, 여행사 정보 등등) 호텔들이 일대에 모여 있더군요. 아마 역 주변의 호텔이라는 편리성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민박보다는 호텔을 이용해서 다른 경험을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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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바로 옆을 흐르는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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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Boy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데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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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정문 앞에 붙어있는 교육목표 같은데 해석 좀 댓글로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우스텐보스와 다자이후 뗌만구를 가기위해, 또 이런 저런 이유로 자유여행의 가장 큰 이정표가 되어주었던 하까다역은 아쉬움과 함께 정겨움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하까다역내의 식당가는 식사를 하고 도시락을 구입하는 편리성을 제공해주었습니다. 다시 한 번 하까다역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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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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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가 맞은 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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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과 커피, 빵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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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다역 역내를 가로질러 맞은 편 출구로 나가 하까다항 행 버스를 탔습니다.(또 사진이 없네요. 분명히 버스 정류장이며 버스 노선도며 하까다역 주변의 이런 저런 사진들을 찍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아까다 항 사진도 없구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바로 선실에서 찍은 사진이 등장하네요, 이런!) 선실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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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선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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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다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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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여행의 기록치고는 너무 엉성합니다. 사진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우스텐보스, 다자이후에서 너무 서둘렀던 기억, 후쿠오카의 커낼시티 등을 둘러보면서 남긴 사진들을 소개하지 못했다(사진들이 다 날아가 버린 것인지 원인을 모르겠네요)는 점은 너무나 부족했던 부분입니다. 여건만 된다면 다음에는 나가사키로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하우스텐보스에서 나가사키는 거리상으로 후쿠오카와 거의 비슷합니다. 하우스텐보스에서 나가사키로 가서 일박하고 후쿠오카로 갈까 생각도 했지만 일정이 너무 빠듯해 포기했던 기억이 나는 군요.


지금까지 이 자유여행기를 보아주신 분들에게는 많은 것들을 못 보여준 것이 아쉽네요. 뭐, 다들 다녀오셨는데 괜한 말 같다구요?  아무튼 감사하구요, 좋은 여행들 하세요.(끝)

후쿠오카 자유여행 다시보기

1.선상에서 
2.후쿠오카에서 첫째날 
3.하우스텐보스 로 
4.하우스텐보스
5.다자이후 로  
6.다시 후쿠오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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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2 01:30

후쿠오카 자유여행(6.다시 후쿠오카에서)





                        후쿠오카 자유여행(6.다시 후쿠오카에서)

다이자후 뗌만구와 큐슈국립박물관을 둘러보고 난 뒤 갑자기 텐진 지하상가 사진이 등장합니다. 이후로의 사진들은 불완전하기는 하나 다소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텐진 상가를 둘러본 후 하까타 리버레인으로 갔습니다. 아마도 그 일대를 둘러보고 쿠시다 신사로 향한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구입한 일본여행 책자 일본 100배 즐기기 (랜덤하우스 중앙)와 Just go 세계여행가이드북, 후쿠오카,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스(시공사)을 참고했는데 후자의 책 운명은 기구한데 일본에서 한 번 잃어버렸다가 하까다역 안내소의 한국인 안내원이 보관해서 찾았던 책입니다. 후쿠오카 시내 도보여행은 일본 백배즐기기소개된 코스를 따라 계획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행책자에 나온 순서를 그대로 따라했던 것입니다. 쿠시다 신사로 가는 도중에 작은 절과 그곳에 부속된 묘지를 지났고 편의점 어묵을 사먹었습니다. 쿠시다 신사는 참 아기자기한 신사였습니다. 신사 곳곳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사실은 도보여행으로 지쳐 신사 내 의자에 앉아 쉬는 동안 할 일이 없이 찍어대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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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진 지하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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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다 리버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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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시다 신사로 가는 길에 본 묘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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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시다 시사로 가는 도중에 본 작은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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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먹은 어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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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시다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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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시다 신사 후문으로 나오자 놀랍게도 커낼시티가 있었습니다. 커낼시티가 쿠시다 신사와 바로 붙어있었다니 참 무모한 도보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노정을 더욱 효율적으로 짰을 텐데......아무튼 그 때 목적지는 커낼시티가 아니고 오호리 공원이었다는 것이 다소 위안이 되었습니다. 오호리 공원으로 가는 길에 하까다마찌야 후루사또관을 지나쳤습니다. 시간 관계상 내부를 둘러보는 것은 생략했지만, 인력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오호리 공원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오호리 공원역에서 내렸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자전거 보관소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호리 공원은 그다지 볼 것 없는 평범한 호수였습니다. 단 하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뭍에서 이어져 호수 가운데 서있는 정자 하나가 인상적이었는데 이러한 구조는 중국의 시후(西湖)를 모방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일본의 중국과 문화적인 교류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이 호수는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던 후쿠오카성의 해자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둘레가 2km인 호숫가를 따라 산책로가 있고 보트를 탈 수 있는 공원으로 개조되어 있습니다. 이 오호리 공원에 앉아 호수 속 고기들과 비둘기에 먹이를 주면서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호리 공원내에 있는 공중 화장실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대변기가 거꾸로 되어있는 것이 아닙니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호기심을 자아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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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시다 신사 후문으로 나오자 커낼시티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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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세사리 가게 같은데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 포스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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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다마찌아 후루사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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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오호리공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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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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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리공원으로 가는 길에 본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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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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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적인 색채와 성격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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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리공원내 공중화장실(구조가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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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리 공원앞 도로



다시 또 시간과 공간이 끊어져 토막나 버렸네요. 오호리 공원에서 나올 때쯤은 저녁이었고 배가 좀 출출해지던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이찌란 라면가게 사진이 등장하는 것은 배고픔에 가게를 찾느라 사진 찍는 것을 잊었던 탓이었을까요? 이찌란 라면 가게를 찾는 노정에서 찍은 사진이 없어 아쉽기만 합니다. 솔직히 이찌란 라면 가게를 어떻게 찾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번화가에서 빙빙 돌다 어느 작은 가게에서 이찌란이 어디 있는지 물었고(일본말은 전혀 못합니다. 그냥 웃으면서 이찌란하고 물었던 거죠.), 다행히 바로 근처에 이찌란이 있어주었기(?) 때문에, 가게를 찾았다기 보다는 가게가 와주었다는 표현이 더 타당할 듯도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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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나타난 이찌란 라면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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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 마치 독서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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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맛은 느끼하지 않고 깔끔한 편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다 커낼시티까지 가게 되었고 다시 하까다 역에 도착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참 미안했죠. 일본이라는 이국적인 모습만 아니었다면 그토록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긴 도시 도보여행 끝에 하까다 역 근처 스타벅스에 들러 피곤을 풀었습니다. 커피 맛과는 달리 사진은 참 멋없죠? 고작 찍은 것이라고는 테이블에 올려 진 커피 두잔 뿐입니다. 일본에서 찍은 것이 아니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네요. 분명 역 근처의 스타벅스에서 찍은 사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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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를 나와 곧 바로 민박집으로 가기에는 일본에서의 시간이 너무 아쉬워 하까다 중심지를 구경하기로 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나갔습니다. 한국에서의 이마트나 신세계같은 대형 마트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지하철 안내소에서 월마트 같은 대형 쇼핑 센타가 어디 있는지 물었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 때 시간이 10시를 넘어 있었지만 한국에서의 기준에서 24시간 하는 대형 쇼핑센터가 영업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던 차에 아마도 문을 닫았다는 대답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잘못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다소 의아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가게들의 문이 거의 닫혀있었고 말입니다. 사람들도 별로 없었구요.(소통의 부재로 정보를 정확히 수용하지 못했거나 그러한 문화적인 차이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쇼핑센터 가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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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내에 있는 도시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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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한국의 경우) 사람이 발길이 뜸하고 열려있는 가게가 드물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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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있어 보이던 거리의 포장마차


지하철을 이용해 오가면서 역 내에 노숙자들이 몰려들어 자고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어느 나라고 사회의 구조에 의해, 또는 개인적인 이유로 아니면 또 다른 이유들로 어두운 이면은 있게 마련이라는 현실을 실감했습니다. 세계 경제 대국 일본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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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지하철을 타고 하까다역에 내려 민박집으로 향해 출발할 시간입니다. 하까다 역에 내려 다음날 아침 먹을 도시락을 구입했습니다(사진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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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까다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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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하철 역의 방어벽과 자동문


*이제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 날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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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9 13:10

[음식]즉석 토스트피자



                   즉석 토스트 피자 만들기

만드는 법은 돼지고기 피자 만드는 법 참고하세요. 밀가루 반죽 대신 토스트로 바꾸기만 하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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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9 02:58

정통 이탈리안 스파게티(?) 만들기




스파게티를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그 성격이 좀 모호하네요. 인스턴트라고 해야 할까요? 정통 이탈리안(?) 스파게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달리 뭐라 할까요?

            1)면을 삶고 물을 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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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액체와 분말 스프를 준비합니다 (특정 상표 홍보가 아닙니다. 편집을 못해서
              요^^ 다른 제품도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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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준비한 야채와 베이컨을 약한 불로 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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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준비해 놓은 면에 양념장(스프?)를 뿌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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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그 위에다 볶은 야채와 베이컨을 올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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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마구 비비네요 (위 사진이 예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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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비비고 나니 별로 먹음직스럽게 보이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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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식후기>
그냥 먹는 것보다 느끼한 맛은 덜 하네요. 먹을 만 합니다만 정통식 일탈리안  스파게티를 먹고싶네요. 그걸 앞에 놓고 왠 슬데없는 소리냐구요?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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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0 02:22

오늘 문득......

문득, 내 삶의 흔적들을 담아 놓고 싶을 때가 있다(아래 사진들은 2월의 사진들이다.) 2월말쯤으로 기억된다.  나는 먹는 욕심이 별로 없다. 아니 먹는 욕심이 참 많다. 나의 상상 속에는 음식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럴듯한 식당에서 그럴듯하게 식사를 즐기려는 욕망이 반영된 상상이 아닐까.

내게 올 해 2월은 참 잔인한 달이었다. 1, 2월 내내 꽁트만을 썼기 때문이다. 사실 꽁트라고 해봤자, 알아주는 독자들도 없거니와 평해주는 평자들도 없는 꽁트 축에도 들지 못하는 잡글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꽁트라는 쟝르를 계속 붙잡고 싶다. 그리고 또한 누군가 읽어주고 평해주었으면 하는 것도 솔직한 바램이다. 변변찮은 외출, 외식, 여행 한 번 해보지 못했다. 아마 시티 투어 버스를 타고 별 의미없는 도시 관광을 한 것외에는.....

아침 늦게 일어나니 밥이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반찬꺼내 먹어라는 아내의 말을 이행하기도 전에, 밥상(밥상인지 책상인지 아니면 테이블인지 구별이 안되지만) 위에 전날 아이가 먹다 남은 정체불명의 밥을 발견하고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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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밥인지, 김치 복음밥인지 구별이 안되는 퓨전 요리



요상한 요리에 그래도 참기름은 많이 부은 탓인지 고소하기는 했다. 나는 참기름을 참 좋아한다. 이유는 알수 없지만 고소한 맛이 참 좋다. 그래도 기름은 기름인지라 또 커피를 타서 마셨다. 언제나 똑같은 버릇이지만 커피가 빠질 수가 없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잔에 탄 일회용 커피인데 허연 프림기름(?)이 둥둥 떠있다. 커피는 참 좋다. 이 순간이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다. 항상 그랬다. 그러다 시계 바늘이 돌고 돌아 4~5시쯤이 되면 갑자기 우울해 지면서  센티멘탈 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콕족의 비극적인 운명(?)을 닮은 저녁무렵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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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퓨전음식을 먹은 후 배에 낀 기름기를 씻어내어야 한다.


기억이 좀 흐릿하다. 아래의 식단이 아내가 차려준 것인지 내가 차려먹은 것인지. 몇일 밖에 지나지 않은 사진인데도 기억이 정확하지가 않다. 조명조차 단서가 되질 않는다. 넙치 조림에 비친 조명이 사진을 찍기 위해 켜 놓은 것인지 아니면 저녁이라서 켜 넣은 것인지 불분명하다. 아무튼 그건 별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넘어가기로 하고, 한가지 분명한 것은 넙치 위를 무우로 가린 이유는 분명히 기억을 한다. 밥을 두어 숫가락을 떠 먹고 넙치도 살을 발라 먹고 나서 갑자기 사진을 찍고 싶어 넙치의 드러난 맨살을 무우로 덮었던 것이다. 좀 이상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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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치 조림과 국물에 비친 형광등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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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치와 콩나물을 담고 있는 그릇은 모 인터넷 사이트 쇼핑물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사은품으로 얼마전에 받은 것이다. 식기들이 각각 다로 놀고 있다. 밥그릇, 반탄통들이 제각각들이다. 사은품 접시들이 빛을 잃은 모습이다.


그릇 모양이 달라 이상해 사진의 이름(날짜로 되어있다)을 보니  날짜가 다르다. 제일 빠른 사진이 2월 21일 늦은 사진이 2월 29일이다. 하루에 다 찍은 사진이라 생각했는데 기억이 영 사실을 벗어났다. (위 커피 사진이 2월 29일 찍은 사진이니, 식후 마신 커피라는 것은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아무튼 용서해주시고, 그때의 커피는 아니나 커피를 마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래 넙치 조림 사진이 2월 26일로 되어있고 위의 넙치 조림 사진이 2월 21일이라 같은 넙치 조림인지 확인 할 수 없다. 만약 같은 넙치 조림이라면 냉장고의 성능이 참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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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넙치 조림과 같은 넙치 조림인지 참 궁금하다.



상추인지를 버무려 내놓았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 하다(계속 빌어 먹을려면 이런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다.) 솔직한 말이지만 아내의 음식 솜씨는 좀 떨어진다. 그러나 질은 높다. 건강을 생각하는 채식, 상추와 콩나물, 그리고 무우가 더 많은 넙치 조림을 부면 건강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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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에서 버무린 상추조림


음식 사진들이 참 그럴 듯하단 생각이 든다. 사진 찍는다고 식탁을 닦고 가리고 치우고 위장을 하니 그럴 듯하게 보인나 보다. 이렇게 속여서는 안되는데, 뭐 음식을 위한 코디라고 생각하니 별 양심의 가책을 받지는 않는다.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하는 것이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먹고 사라진 음식인데 무슨 탄로(?)가 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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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먹은 멸치 조림이다. 태워서 좀 쌉살한 맛이 나긴 했지만 지나간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멸치였다. 사진으로 보니 뜨거운 불에 사정없이 볶였을 멸치들이 왠지 애처로워진다. 말라 비틀어진 멸치의 모습에서 인고의 흔적, 뜨고 있는 작은 눈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다. 집단 학살된 멸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은 밤이다. 멸치의 비극이 인간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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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기는 저녁의 간식으로 해 준 것이 분명하다. 날짜를 보니 2월 29일이다. 무슨 일로 떡볶이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가끔씩 떡볶이를 하는데 맛은 그런대로다. 싱겁게 하는 이유는 건간상의 이유이다. 색깔이 그렇게 곱지는 않지만 간식거리로는 괜찮다. 나 떡보다는 어묵을 좋아한다. 아내와 딸은 떠을 더 좋아하고 아들 녀석은 나처럼 어묵을 더 좋아한다. 찍은 사진이 좀 그렇다. 먹음직스럽게 확대를 해놓을 걸 후회스럽다. 떡이 대부분인걸 보니 어묵을 다 먹고 나서 찍은 것 같다. 음식이란 음식 자체보다 주변의 꾸밈새가 음식을 더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하는 것 같다. 숫가락은 좀 빼고나 찍지,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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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에 담긴 떡볶기도 멸치의 모습처럼 애처로워 보인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마음이 여유가 없고 활기가 없고 의기소침해 있었던것 같다. 정말 떡볶기가 주인을 잘못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했다. 떡볶기에게 용서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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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빵과 커피 사진의 날짜를 보니 2월 24일이다. 이건 분명 기억하고 있는데 아내가 전날 친구를 만나고 사가지고 온 빵이다. 뒷 날의 저녁인지 낫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지만 간식으로 먹은 것 같다. 커피는 딸내미가 타 준것이다. 아내나 나나 커피잔에 물만 부어 수저로 대추대충 젓어 마시기 때문이다. 커피 잔도 사용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가 이렇게 한다. 하루는 자기가 꼭 커피를 타보고 싶다기에 그래라고 했더니 요렇게 정성스럽게 탔다. 이렇게 탈 줄은 생각도 못했다. 커피 맛도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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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사 온 빵이다. 맛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말레이지아의 빵가게에서 산 것이라고 하는데 빵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이 빵을 파는 가게가 이 빵 하나만을 판다는 것이다. 아무튼, 씹을 때 기름이 짜르르 빠져나오면서 입속에서 감돌았다. 맛이 좋았다. 빵모양을 보면서 이제부터는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꼭 먹고 나서 사진 찍을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식탐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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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케익을 찍은 날짜는  2월 21일이다. 아들 녀석의 초등학교 졸업식날이 맞을 것 같다. 밤이다. 이 케익도 초를 다 끄고 나서 찍은 사진이다. 예쁜 모양이라고는 없다. 데크레이션이 거의 폭격을 맞은 상태이다. 올리기도 민망하지만 흔적이란 느낌에는 이미지가 맞는 것 같다. 다음에는 꼭 예쁜 케익을 예쁘게 찍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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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나간 시간들의, 음식들에 깃든 삶의 흔적들을 남겨놓고 나니 부끄러움이 반을 차지한다. 그래도 이것은 삶의 기록으로 계속되어야 할 작업이 아닐까 한다.

댓글도 좀 남겨주시고 트랙백도 좀 해주시고 그러면 멋없는 주인 대신에 악조건에서 모델이 되어 준 음식들에게 커나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읽어 주시고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3.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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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15:04

[꽁트]청국장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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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

 

청국장의 맛


이 간단한 진리를 부모들은 왜 이다지도 모르는지 몰라. 식빵에 이렇게 치즈와 햄을 놓고 다시 식빵 한 조각을 올려먹는 것이, 포크로 돌돌 말아 쪽쪽 빨아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를 말야. 악취(?)가 나지도 않고 얼마나 좋아. 그리고 먹으면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설거지 따위의 노동이 필요 없어 시간을 유용할 수 있고 말야.


그런데도 우리나라 음식의 위대성만을 주입하려는 그 얼빠진 부모들이, 아니 모든 한국인들이 난 정말이지 싫어. 아주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음식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지고 케케묵은 것인지 몰라.


밥과 국그릇을 비롯해서 그 많은 반찬그릇들이 얼마나 공간적, 시간적으로 비효율적인가 말이야. 자원의 낭비는 물론이고, 이동성이라고는 전혀 없으며 부수적으로 따르는 노동의 양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야. 제사를 예로 떠올려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이동성이라는 말을 하면 혹 김밥이 우리나라 음식이라고 주장하는 얼빠진 인간들은 없겠지. 이왕 김밥이란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스시도 얼마나 좋으냐 말야. 이 세계화의 시대에, 일분 일초도 아까운 이 속도의 시대에 밥과 국, 반찬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그 정신 사나운 장면을 상상해봐. 갓 쓰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것 같지 않니.


이렇게 본다면 또한 우리나라 음식문화는 야만의 상징이 아닐 수 없어. 허위의식과 권위주의는 물론이고 자원낭비와 환경파괴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음식문화는 종적으로 횡적으로 많은 부작용만을 잉태하고 있으니 말야.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런 음식 문화 하나만 봐도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다른 문화들이 갖는 성격들을 고스란히 짐작해 볼 수 있지 않겠니. [빨리 빨리 문화]가 그런 것 아니겠어. 그 많은 밥과 국과 반찬에 여유롭게 반응할 수 있겠니. 빨리 빨리 먹어야 모든 반찬을 한 번씩이라도 먹을 수가 있지 않겠니. 귀신은 뭐하고 있는지 몰라. 이런 음식 문화를 개혁하지 않고 말야. 무슨 무슨 개혁들이다 말들이 많은데 도대체 왜 우리나라 음식문화 개혁은 안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난 밥이 정말 싫어. 국이 정말 싫어. 김치가 무지하게 싫어. 청국장이나 된장찌개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난단 말야. 한국 사람인 나에게도 구역질이 날 정돈데 뭐 김치가 세계인들의 음식이 되고 있다고 떠드니, 나 원 참. 김치에 들어있는 젓갈의 효능과 발효를 과학이란 이름을 빌려 두리 뭉실하게 신비화시키기 전에 좀 더 냉정하게 김치의 실용성과 김치에 대한 세계인의 의식을 알아 볼 수는 없을까.


아직도 지동설처럼 대한민국을 세계의 중심에 놓으려는 한심한 인간들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이라니. 가관인 것은 한국 사람은 김치 아니면 못산다는 그 얼토당토않은 세뇌공작이지. 민족의 동질감이니 공동체 의식이니 하며 음식부터 내세우는데 정말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어. 내 부모들이 매일 똑같은 밥에 국과 반찬을 식탁에 올려놓는 것은 이런 세뇌의 결과인지도 모르지.


도대체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밥과 김치가 주식이 되어야만 하고 국이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다녀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어. 다른 것들은 다 바뀌는데 왜 이 식탁 위의 음식들만은 바뀌지 않는지 말야. 정보의 시대에 인터넷이 가정에 속속 들어와 앉아있는 이 마당에 패스트푸드나 일식이나 양식으로 식사를 할 법도 하잖아.


세계화의 시대에, 개방의 시대에 식탁에 수저 대신에 나이프와 포크를 올려놓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구. 부모들은 언제나 밥과 김치와 된장찌개를 왜 주식으로만 고집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야. 난 집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미쳐버릴 것만 같아.


특히 아빠가 즐겨먹는 청국장과 젓갈이 식탁에 오르기라도 하면 구역질을 참지 못해 화장실로 뛰어가기가 일쑤였지. 언젠가는 엄마가 임신으로 오해한 적이 있었지 뭐야. 구역질을 하며 뛰쳐나가는 나를 보고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어. 한참을 화장실에서 토하고 나서도 여전히 콤콤하고 썩은 듯한 냄새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했지.


그날 난 엄마에게 모진 취조(?)를 당해야만 했어. 요즘 신세대론을 쉴 새 없이 내뱉어대지 뭐야. 하지만 그런 잔소리는 청국장 냄새보다는 쉽게 참을 만 했어. 나는 엄마의 잔소리가 끝나자 청국장 때문에 구역질을 했다고 말했지. 나의 그런 말에 엄마는 의심을 쉬 뿌리치지는 못했지만 임신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안도하는 듯 했어. 하지만 청국장 때문에 구역질을 한다는 그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지.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어. 아마 대한민국의 청국장 옹호론자들은 내게 벼락이라도 내리고 싶겠지.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던 거지.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엄마는 막무가내로 나를 나무라기만 하셨어.


“망할 년, 넌 한국 사람이 아니냐?”


그런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의 식성은 조금도 고려하지도 않고 청국장이다 젓갈이다 된장 등을 식탁에 꾸준하게 올려댄 건 두말할 나위가 없어.


한참 사춘기의 예민함으로 고민하는 나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어. 물론 엄마는 간혹 샐러드나 햄, 샌드위치나 포크커틀릿을 해주시기도 했지만 영 엉성하기만 했지. 샐러드 옆에 된장찌개가 놓이고 샌드위치와 함께 김치를 올려놓고 포크커틀릿에 미역국을 함께 먹어야했으니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었겠니.


난 집에서 밥을 먹을 때면 언제나 다이어트를 핑계로 양을 줄이곤 했는데 이유는 바로 우리의 위대한(?) 주식 때문이었다는 걸 눈치는 챌 수 있겠지. 내가 제일 행복할 때는 말야,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햄버거나 닭고기를 먹으며 천천히 맛을 음미하는 것이지. 물론 스테이크에 와인을 곁들여 먹는 다거나, 아니면 스시에 샤브샤브를 먹거나 이탈리안 식당에서 스파게티나 피자를 먹는 것은 더 행복한 일이지만 흔치 않은 일이라 안타까울 뿐이지. 마치 탈옥한 죄수가 세상의 공기를 호흡하듯이 말야.


난 이런 음식들을 진정으로 사랑해. 찌꺼기가 남아도니, 아니면 밥그릇이다 국그릇이다 반찬그릇이다 하며 그 많은 그릇들이 필요하니. 그러니 설거지가 없어 물이 절약되고 환경에 해로움을 덜 미치지 않니. 이렇게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음식 문화를 난 진심으로 사랑해. 패스트푸드라고 하며 아주 눈을 깔고 대하는 우리나라 음식 옹호 골수분자들은 도대체 이러한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건지 말야. 그저 콜레스테롤 타령이나 하면서 비만이다 고혈압이다 위협과 협박을 해대기만 하고 말야. 무식해도 너무 무식하단 생각이 들어.


대한민국이란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고 그 한국 사람은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나와 있는 법이니. 물론 외식집들이 번창하고 있긴 하지만 가정에서의 한국 음식 집착은 여전하기만 하지. 한국 음식만을 고집하는 고리타분한 부모들의 혓바닥하고는......


어쩌면 난 대한민국이란 땅을 떠날지도 몰라. 그 지긋지긋한 음식문화 때문에 말야. 난 정말이지 청국장 냄새나 된장 냄새, 젓갈 냄새나 김치냄새 따위와는 함께 살수가 없어. 한국 사람 운운하며 동일한 미각을 가질 것을 강요하는 넓게는 대한민국이, 좁게는 부모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니 솔직히 말하면 증오스럽기까지 해.


하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식들과 음식문화를 나 하나 저항한다고 해서 바꿀 수 없는 일이고 보면 개인적인 선택으로 한국 음식을 피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것이 나의 한계이며 우리 10대들의 한계가 아니겠니.


내가 집을 뛰쳐나온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어. 가출이 유일한 대안이었어. 내가 이 나라를 떠나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지. 난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어. 진정으로 말야. 난 패스트푸드를 위해 내 가족을 버렸어.


남들은 내 가출의 이유를 이성문제다 학업문제다 연예인 문제다 뭐 그런 것 따위에 초점을 맞추나 본데 결코 그런 것 때문은 아니었어. 지긋지긋한 밥과 김치와 청국장과 된장과 젓갈 때문이었지. 무엇보다도 청국장이 결정적인 음식이었어. 가출을 하던 날도 말야, 그 역겨운 청국장 냄새를 정말이지 참을 수 없었거든.


이제 그런 지옥으로부터 도피를 했으니 내 마음대로 음식을 선택해서 먹을 수 있어 너무나도 행복해. 다시 말하건대 가출 이후에는 이 나라를 미련 없이 떠날 거야. 청국장과 된장과 김치가 없는 세계로 말이야.  


이랬던 그녀였다. 패스트푸드의 나라 미국으로 이민 후 청국장과 김치와 고추장과 젓갈이 먹고 싶어 거의 미쳐버린 그녀는 한국 음식 예찬론자가 되어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다시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 기회에 그녀의 한국 음식 예찬론을 들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http://kr.blog.yahoo.com/qkrgudwns01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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