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09.06.01 11:00

쥐교(Ratholic) vs 야옹교(Catolic)




당신들은 아시나요? 쥐가 종교를 만들고 인간들이 그 쥐의 열성적인 신도가 되어가는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를 말입니다. 그 이름하야, Ratholic, 쥐교입니다. 이 쥐교는 인간에 대한 영적 구원보다는 쥐의 우월성을 증거하려는 세뇌적이고 이단적인 교리에 입각해 있는 비종교적 종교라는 논리모순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쥐가 교주임에도 쥐를 위한 종교적인 안식이나 구원과 메시아적인 성격은 찾아 볼 수 없는 하늘에 의해 소명되고 특권의 향유를 위임받은 소수의 특이한 쥐들과 쥐교에 동화되는 동물과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체들을 구원에서 배제하는 초율법적이고 소수파 쥐중심의 중독적이며 유아적인 종교입니다. 그들은 같은 동족인 쥐들에게는 어떠한 구원의 메시지나 손길을 내밀지 않은 체 오직 인간과 타 동물들을 위해서만 유아틱한 종교적인 마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동족인 쥐들은 굶주림에, 폭력에 비참하게 죽어 갈 뿐입니다.
 


쥐교(RATholic)의 교주. 쥐교의 교리중 삼존재 일체성 의 삼각형중 한 꼭지점을 차지하는 존재인 Michy Rat(미치 랫. 미치 마우스라고도 함). 나이가 50살을 넘었음에도 지나친 성형으로 가면을 뒤집어 쓸 수 밖에 없는 미치 마우스. 선량한 가면 뒤에는...
.
.
.
바로 이 모습이

더보기

 
 

어린 신자들의 확보를 위해 만들어진 사제복을 입고 마법을 부리는 쥐교, 미치 마우스 교주 캐릭터.





교주의 탄생지 뒤주니랜드( 또는 뒤쥐니랜드). 수 많은 쥐들이 희생과 인간 신도들에 의해  세워진 뒤쥐니랜드. 여기에 쥐교의 교주 미치 마우스가 살고 있다. 어린 나이에 여기를 방문하여 평생 쥐교의 신도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수 없이 많다.  
http://www.arqhys.com/hoteles/waltdisney-parks.html
 
 






선한 인간의 형상을 한 쥐교의 창조주 뒤쥐니(또는 뒤주니라고 발음).  쥐교의 교리중 삼존재 일체성 의 삼각형중 최고의 꼭지점을 차지하는 쥐교의 유일신이자 창조주이다.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거대한 쥐다.  
http://www.all-science-fair-projects.com/science_fair_projects_encyclopedia/Walt_Disney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간의 형상을 한 미치 마우스의 창조주이자 유일신 디쥐니의 원래 모습. MB(MOUSE OF THE BEST)






쥐교의 사제들 , 개와 오리도 보인다. 쥐교는 이렇게 귀여운 가면을 뒤집어 쓰고 유아틱한 성례를 행한다. 열광하는 어린 인간들은 마치 쥐가 된 모양으로 평생 신도로 살아간다.  
http://www.flickr.com/photos/wallyspam/1976781221/






쥐교의 교리중 삼존재 일체성 의 삼각형중 한 꼭지점을 차지하는 존재인 초인화된 나이트 마우스. http://www.barryejackson.com/?fa=character2&group=mouse
 
 
 
 


쥐교에 세뇌되어 쥐교의 사제가 되어 쥐처럼 행동하는 한 인간 신도의 모습
www.moveon21.com






쥐교와는 상관 없는 그냥 귀여운 한 여성
 http://www.flickr.com/photos/coletterochelle/2700452276/




교주, 미치 마우스를 둘러싼 은총과 은혜를 받으며 호의호식하는 주위의 쥐들과는 달리 쥐의 현실은 너무나도 비참하다. 쥐교의 가장 큰 특징은 동족인 쥐들을 배타적이고 이방적인 존재로 못 박아 버리고 쥐교에 의해 세뇌된 인간들로 하여금 억압하게 하는 반 쥐륜적인 종교집단이란 사실이다. 이 쥐교는 기타의 제 종교들과는 달리 방송 매체를 통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또한 책자, 영어교재, 교육용 보조 도구를 통해 끊임없이 성례를 행하면서 신도들을 진공청소기 처럼 빨아들인다.  


멀리 중앙에 교주 탄생 50주년을 알리는 꽃 장식물 위에 두 손을 펼치고 았는 교주 미치 마우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도 가까이서 찍지 못하도록 인간의 벽을 쌓고있다. 인간의 위에 군림 하는 선량한 쥐의 탈을 쓴 쥐새끼가 가증스럽다.
http://www.flickr.com/photos/happiestplaceonearth2005/231859192/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변종 쥐교의 부작용 까지 나타나고 있다. 위 사진은 진짜 쥐교라고 우기는 다담쥐교의 교주 매드 보이 2세(MB2)
http://www.flickr.com/photos/gsxrex/2655794199/




이런 사악한 쥐교에 대항하여 나타난 종교개혁의 선구자 가 있었으니 이 종교가 바로 Catolic(야옹교) 이다. 아래는 야옹교의 교주인 킹 마르틴 루터(King Martin Ruther)이다.  이 킹 마르틴 루터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흰 고양이가, 바로 캣뱅(Catbin)이다. 


쥐교 박멸을 위해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든 킹 마르틴 루터와 캣뱅. 킹 마르틴 루터는 젊은 시절  한 때 독실한 쥐교의 사제였으나 쥐교의 불합리성과 타락을 보고 과감히 쥐교와 투쟁하는 선봉에 서며 Catolic을 창시했다. 머리 위에는 쥐교를 교리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깨치는 정의의 사도 고양이 캣빙.
 http://www.flickr.com/photos/victius/411683060/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14
2009.05.24 20:25

살아있는 권력 수사하겠다는 검찰, MB 역풍 잠재우려는 수작이 아니길!


살아있는 권력 수사하겠다는 검찰, MB 역풍 잠재우려는 수작이 아니길!



이미지 캡처: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articleid=2009052417174676880&newssetid=1331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 운운하고 있다.  조은석 검찰 대변인이 앞으로 "검찰이 부패 수사를 해야 하며 하게 도와줘야 한다. 남은 수사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라고 검찰의 의욕을 대변하고 있는데 과연 이 말을 얼마만큼 신뢰할수 있을까? 살아있는 권력이라면 MB를 비롯한 그 주변의 실제 권력자들이 될텐데 과연 검찰이 얼마나 정의의 칼날을 부패와 부정의 심장에 겨눌수 있을까? 몇 몇 주변의 피라미들만 잡아들이고 수사 종료를 선언하겠지. 살아있는 권력 운운하는 기세가 요두사미격이 될 것이 틀림없을 것 같다.  낯 뜨거운 검찰의 생색이고 국민을 속이는 제스처처럼 여겨진다. 

하여튼 부끄러운 검찰이다. 이번 검찰의 살아있는 권력 운운하는 하는 기개가 MB역풍에 미리 생색용 꼬리를 쳐주는 검찰의 쇼가 아니였으면 좋겠다. 국민을 기만하고 속이고 한 순간을 모면하려는 시정잡배적인 모습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정의와 양심을 세우는 바른 모습이었으면 한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원하건데, 살아있는 권력 수사하겠다는 검찰, MB 역풍 잠재우려는 수작이 아니었으면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0
2009.05.23 18:57

경찰, 노 前 대통령 추모집회 봉쇄 물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2
2009.05.23 18:54

노무현 전 대통령 정치적 타살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0
2009.05.23 18:10

전두환-이명박, 이 한 장의 사진




이미지 출처:http://media.hangulo.net/831



전 재산이 23만원 이라는 전두환, 그는 여전히 이 세상을 활개치고 있다.  그는 여전히 대저택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다. 고작 23만원으로! 왜 이토록 진실과 정의가 사라진 세상이 되고 있는가? 이런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하는 정의가 바로 검찰의 몫이고 책임이 아닌가?

그런데 검찰은 지금 뭐하고 있나? 이게 진실인가?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의 진실이란 말인가? 이렇게 세상을 꼬아놓고만 있는 인간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진보고 보수고, 좌파고 우파를 떠나 부패와 타락에 대한 원칙은 전직 대통령이던 일개 소시민이던 그 적용의 원칙이 같아야 하지 않는가?

도대체 검찰은 무엇을 하고 있나? 검찰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정의로와야 할 검찰은 왜 이러한 전두환을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가? 전두환을 이토록 수수방관만 하려면 애당초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는가? 도대체 정의로와야 할 검찰을 이토록 부정의하고 타락하게 만든 세력이 도대체 누구인가? 도대체 누구인가?

희대의 독재자와 광주 원흉, 그리고 부정부패의 화신인 전두환이 활개치는 이 세상은 도대체 정상적인 사회가 맞을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9
2009.05.23 16:29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에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유서



1. www.newshankuk
2. http://kr.blog.yahoo.com/love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1 Comment 38
2009.05.14 01:37

악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악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여러분들 중에는 악플에 시달려 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웃 블로거 중에서도 악플로 인해 블로그를 그만둔 경우를 보았다. 아마도 악플 그 자체보다는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통을 표방한다는 블로그 스프어스가 한 순간에 허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글은 즉각적인 말보다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며 써야하기 때문에 진실에 더욱 가까운 표현 수단이다. 순수하게 진실을 내보이는 글에 돌아오는 악플로 인한 상처는 더 클지도 모른다.


이런 악플 여러분들은 어떻게 극복하는가?



비정상적인 댓글 하나

오늘 댓글 하나, 아니 댓글이 아니라 얼마 전에 어느 블로거의 글에 단 댓글에 대한 답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댓글에 대한 답글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매도와 험담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떤 이유로 답글을 그렇게 달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상 심각한 인격 모독이고  언어 폭력에 해당된다고 보며 정중히 사과해야 할 정도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런 걸 요구한다면 나도 똑같은 인간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댓글에 대해 비판하거나 무시할 수는 있겠지만 악플로 인격까지 무시한다면 그것은 비정상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의 비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무시하는 것이 최고의 방책

사실 이런 문제를 몇 차례 겪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저 무시하는 것이 최고의 방책' 이란 것도 스스로  체득하고 있다. 그리고 이상적인 사회니 소통이니 하는 말들이 블로그 공동체에서조차도 불완전한 언어의 유희일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별 개의치 않고 무시해 버린다. 현실은 이것보다도 더 추잡한 경우를 숱하게 보지 않는가. 무시의 경우,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단호하게 무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속앓이를 하거나 감정을 참지 못하고 분노하는 경우에 까지 그 감정의 스펙트럼이 꽤 넓을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도 잘 살아가고 있는 데 뭘! 사실 기분 나빠 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그것은 쌍방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악플을 단 인간의 정신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을 실어 악플을 쓰고 달았을 그 모습이 여간 우습지 않다. 오히려 불쌍하기 그저 없을 정도다. 가엾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감정도 일으키지 않는 편이 낫다. 이런 류의 이상스러운 인간은  온라인, 오프 라인을 불문하고 어디에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블로그 스피어스는 현실의 축소판

나는 세상을 다소 소심하게 살아 온 편이라, 가능하면 앞으로의 삶은 무덤덤히 살고자 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가능한 복잡한 것을 피하고 일방적인 관계조차도 너그럽게 수용하려고도 한다. 즉 의견의 개진보다는 상대의 주장이나 의견을 겸허하게 수용하고자 자박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실천은 무척 어렵겠지만 말이다. 때로 언어는 목을 혹사시키는 채찍이 되기도 한다. 언어가 만들어 내는 오해의 사슬들이 숨통을 틀어 막기도 한다.  블로그 스피어스는 현실을 빠져나온 이상적인 공간이거나 소통의 공간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의 축소판에 가깝기도 하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다 존재한다. 심지어 살인도 존재할 수 있다. 최진실씨의 사례가 입증한다. 비정상적인 댓글은 자극이나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동정과 염려의 대상이기에 마음의 평온을 깰 필요가 전혀 없다. 현실에서 살아가 듯이 블로그에서 살아가는 것도 이 또한 마찬가지 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3 Comment 22
2009.05.13 03:12

왜 일본에는 돔 야구장이 많을까?






이미지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41567548&ltype=1&nid=003&sid=0103&page=2


왜 일본에는 돔 야구장이 많을까?


최근 우리나라에 돔(Dome) 야구장 건립이 추진 되고 있다. 몇일 전 이승엽 선수의 도쿄돔 천장에 맞는 홈런성 타구로 돔 야구장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돔 야구장은 천장이 없는 일반적인 야구장에 비해 장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야구인들의 숙원 사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야 돔 야구장을 건립하는 우리이고 보면 이미 돔 야구장을 여러개 가지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현실이 부럽다. 물론 이 나라들은 프로야구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오랫동안 야구와 관련된 인프라가 축척된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 그 중에 하나가 돔 야구장일 것이다. 필요가 기발한 창조물을 낳은 셈이다. 아니 경제적인 이익이 낳은 작품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많은 수의 야구팬들을 수용할 수 있는 돔 야구장이야말로 야구를 통한 수익 창출의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한다.


1988년에 건립된 일본 도쿄 돔을 예로 들어보면, 단순히 야구장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문화 공간으로 여러가지 스포츠 레저, 관광, 예술, 쇼핑 등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것은 야구와 다른 산업들이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 산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돔 야구장 하나 없는 우리의 스포츠 산업과 비교하는 것은 넌센스같기도 하다. 또한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치로의 연봉이 우리나라 야구 선수들의 연봉을 다 합친 것보다도 많다고 하니 말이다. 
 

사실 이 포스트를 작성하면서 단순히 돔 야구장 건립 계획에 대해 적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따라서 이 포스트는 우리나라에 돔 야구장을 짓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아니다. 서두를 돔 야구장 건립으로 시작한 것은 '우리는 참 많이도 뒤쳐져 있구나' 하는 생각의 표현일 뿐이다.

도쿄돔


그렇다면 왜 이 글을 쓰고 있는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왜 일본에는 돔 야구장이 많을까?' 이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처럼 보인다, 지었으니까 많은 것이다. 바로 그게 정답니다. '그렇다면 왜 지었을까?' 라고 물으면 질문이 조금 질문 다워진다. 그래도 좀 어리석은 질문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야구팬에 대한 고려라거나 도시 미관이나 환경을 고려했다고 한다면 그건 좀 오버같다. 위에서도 이미 말했지만 최대한의 수익 창출이 돔 야구장 건립의 가장 주요한 동기가 아닐까 한다. 사람들이 몰려 들 수 밖에 없는 세련되고 멋진 옷 가게나 식당을 하나 차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니면 유명 블로그가 블로그를 세련되고 멋지게 블로그를 디자인해 수익을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돈 이야기하면 천박하게 여길지는 모르겠지만 돈이란 그다지 천박한 것은 아니다. 그 돈을 천박하게 쓰는 인간이 문제인 것이지.
 


얼마 전에 롯데와 SK전에서 롯데팬 한사람이 경기장에 난입 해서 소동을 일으켰다. 롯데팬의 한 사람으로서 이 소동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과거 야구장에서 보았던 달갑지 않은 추억들이 떠올랐다. 외야의 선수들에게 병을 던지고 쓰레기를 투척하고 심지어는 관중석에서 불을 피워 쓰레기를 태우는 소동들이었다. 승부에 불만을 품고 상대 선수들의 버스를 가로막고 욕설을 하고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도 목격했다. 야구 응원이랍시고 술에 취해 고성방가를 즐기는 것도 숱하게 목격했다.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스포츠 경기를 교육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끔찍할 정도이다. 아이와 함께 야구장을 찾는 것은 그야말로 끔찍하다. 그런데 왜 우리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야구장에 데리고 가서 이런 장면들을 대수롭지 않게 노출시킨다. 스포츠란 이름으로 말이다. 열성팬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정말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른다.
    


WBC에서는 일본의  이치로가 (정확치는 않지만) ' 한국이 일본을 이길려면 30년은 더 걸린다' 는 식의 도발을 서슴치 않았고 이후로도 우리를 자극하는 말을 가래 뱉듯이 토해 내었다. 상대에 대해 겸손하지 못하고 막말을 퍼붓는 이치로를 보면서 화가 나고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정치인들의 한국에 대한 망언을 많이 접한 우리로서는 프로 야구 하나에는 유명할지 언정 큰 권력이나 무력을 갖추지도 못한 프로야구 선수 하나가 한국 프로야구, 야구선수, 야구팬, 심지어 더 나아가 한국민 전체를 상대로 그런 막말을 하는 것은 의외였다. 이치로는 솔직히 '나쁜놈' 이다. 절대로 그런 망언을 해서는 안된다. 권투 선수들끼리의 개인적인 신경전이나 눈싸움과는 격이 다른 것이다. 일개 개인이 한 국가의 자존심을 뭉갠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그런데 분노와 자존심을 누그러뜨리고 이치로의 저 자신감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올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즉, 이치로의 망언을 비난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작은 원숭이 같은 이치로라는 선수가 왜 그토록 자신감이 있는지 좀 더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도 봐야 하는 것이다. 그 서슴치 않는 도발의 배경에 일본 야구의 저변에 흐르는 인프라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런 일본을 능가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36년 동안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지만 이제 우리가 일본을 압도하고 능가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어떤 의지를 품어야 하지 않을까? 단순한 일회적인 감정이 아닌, 한 풀이 식이 아닌......우리가 일본의 36년의 지배를 받았지만 아직도 일본보다 뒤처져있다는 것이 정말이지 가슴이 아프다. 이치로 같은 저런 망언이 나올 수 있도록 얕잡아 본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일본이 돔야구장을 세우고 야구 인프라를 확충하는 동안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자문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야구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돔 야구장이라는 가시적인 현상을 놓고 보니 우리가 얼마나 뒤뒤처져 있는가 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승엽 선수가 도쿄돔 구장의 천장에 맞는 타구를 치지 않았다면 나를 이런 생각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야구장 난입이라는 가시적인 현상을 목격하면서 우리의 야구 문화가 선진국 다운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미국이나 일본이라고 해서 야구장 소동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개인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적인 풍토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문화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복합 스포츠 단지로써의 야구 경기장, 야구와 관련된 관광 문화시설, 쇼핑시설, 여행등  시너지 효과라는 일반화된 현상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의 돔 야구장들을 보면서 그저 부러움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과 자질을 살리는 각오를 새롭게 하는 것이 어떤가? 물질적으로는 풍족하나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는 일본의 정치인들, 스포츠인들, 예술인들의 망언을 접하면서 그저 분노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본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앞서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도쿄돔


오사카 교세라 돔


나고야 돔


세이부 돔


세이부 돔 내부


후쿠오카  야후 돔



삿포로 돔


삿포로 돔



*위의 미이지들은 위키피디아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16
2009.04.28 00:59

먹도널드교와 새로운 신분 제도




 
먹도널드교와 새로운 신분 제도 




http://www.flickr.com/photos/anduze-traveller/411710187/
십자가 대신 노란 M 를 사용하는 새로운 신흥 종교 먹도널드교. M은 Money 또는
 먹도널드의 이니셜이다.
(위의 사진은 이 종교와는 무관함)
 


먹도널드교의 교주를 삐에로라 놀리며 세를 확장하고 있는 새로운 신흥교
프라이드FC교의 교주, 닭튀김 영감



이미지 출처:http://www.usj.com.my/usjXpress/details.php3?table=usjXpress&ID=171
먹도널드교의 교주 , 빨간 머리 M (일명 삐에로M)




http://www.flickr.com/photos/patnlewis/1388276804/
먹도널드교의 거대한 숭배탑.
 

http://www.dbtechno.com/images/child_obesity_US.jpg
먹도널드교의 열성적인 신도님들



http://www.thefatproblem.com/images/obesity5.jpg
먹도널드교의 열성적인 신도님




이미지출처: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2.htm?articleid=2009042709012144880&linkid=624&newssetid=1540&title=%C1%F6%B1%B8%C3%CC+%C7%B3%B0%E6
풍요로움을 즐기는 먹도널드교 평신도님들



이미지 출처:http://www.flickr.com/photos/ynysforgan_jack/2641532143/
풍요로움을 누리는 먹도널드 신도님의 애완용 개



http://www.flickr.com/photos/kioko/3061655892/
먹도널드교를 불신하는 이단적인 불신자들 
 
 

이미지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pramodh/2887379254/ 먹도널드교의 신은 말이 없다

이미지 출처: http://www.ens-newswire.com/ens/jul2005/20050726_cattlethin.jpg 먹도널드 교의 제물로 바쳐지려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28
2009.04.25 13:06

고 장자연씨를 생각하며...




내가 가슴 아파오는 건 지나친 감상 때문일까? 진실이 버림받고 있는 듯한 세상을 보면서, 이거 그저  별난 뉴스거리라 자위하면서,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야 하는 투의 일상적인 어투를 흉내내는 것으로 끝내어야만 할까? 과연 타인의 일이기만 할까? 그래, 장자연씨의 일이기만 할까? 편향되고 왜곡된 논리 앞에 철저히 뭉게지는 한 인간의 진실을 보면서, 그래 그건 한 순간의 뉴스 거리일 뿐이야 라고 자조섞인 웃음만을 띄고 있어야만 할까?  두렵다, 무섭다.  논리와 법이란 괴물이! 사유화 되는 만인의 권력이!

장자연씨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죽은 자의 진실을 위한 몫은 없다. 진실 따위 필요 없는 인간들에게 한낮 보잘 것 없는 사물에 불과하며 더 나아가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건 무자비한 폭력이며 인격의 말살이다. 장자연씨에게 진실을 돌려주어라! 그녀의 고귀한 인격을 회복시켜라! 

어둠 속에서 희희낙낙하고 있을 하이에나의 눈빛과 낄낄거림은 인간의 진실은 커녕, 작은 양심조차 냉혹하게 짖밟는 폭력일 뿐이다. 공권력조차도 그 폭력에는 무력할 뿐이다. 하늘 아래 진실은 이렇게 묻혀져 가고 세월도 흘러가고......그렇게 잊혀저 가는 것인가. 부끄러워라! 살아간다는 것이! 내가 낸 세금에 그 더러운 타액의 흔적을 남기는 하이에나들의 낄낄거림이! 부끄러워라! 무력한 개인의 바짝마른 입속이!

한강에 유람선이 뜨고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던 가질 수 있는 때가 있었지! 그게 우리들의 천국이고 낙원이었지. 지금의 바로 실용이란 것의 국극적인 도달점이지! 실용이라는 그 보이는 것들의 거짓에 보이지 않는 진실은 한낱 불필요한 치장에 불과한 것일테지! 내가 이렇게 외쳐보았자 뜬구름 잡는 잡소리에 불과하게 되어 버린 이 실용의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게 황사 보다 더 팍팍하고 고달프다! 왜 이래야 하는지!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고 장자연씨! 미안합니다! 우리를 지켜주어야할 권력이, 법이, 논리가 하이에나들을 지켜주고 있는 이 현실이 말입니다. 말 없이 비겁하게 무력하게 바보같이 이를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이 말입니다! 

장자연 수사 결과 뉴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2 Comment 7
2009.03.04 00:28

삼겹살 데이를 맞이하여.....

삼겹살 데이를 맞이하여 이전에 올렸던 [삼겹살의 세계화를 위하여]를  다시 한 번 더 올립니다.



삼겹살 예찬론


이 삼겹살 구이는 뉴욕 맨하탄의 슬럼가의 흑인들, 히스패닉계들과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만약 맨하탄의 흑인, 히스패닉 거주 구역에 삼겹살 구이집들이 생긴다면 범죄율도 덩달아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얼마전에 찍어 놓고 이제야 올리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제때에 정리를 안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네요^^ 삼겹살을 오랜만에 구워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군요. 이상할 정도로 말입니다. 배가 고파서 그랬을까요? 소주 한 잔 걸치고 싶었는데 참았습니다. 최근에 몸이 영 시원찮아서요. 밥 반찬으로 만원어치를 샀는데 양으로 만족하기에는 어림도 없더군요. 다음에는 한 2만원 정도 구입해야겠습니다.

삼겹살 구이는 정말 예찬할 만한 서민들의 음식입니다. 사실 서민들의 음식이라고 하기에는,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누구에게나 일반화된 음식입니다. 문제는 이 삼겹살의 맛을 알면서도 서민적인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슬프긴 하지만 말입니다. 도대체 그들은 누구일까요? 어떤 뇌구조를 가지고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삼겹살 구이를 먹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바로 삼겹살 구이의 글로벌화가 그것입니다. 이 삼겹살 구이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될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베이컨 등 비슷한 음식이 있긴 하지만, 상추, 김치, 파조래기, 고추장 등의  부가적인 재료들이 곁들여저  맛은 한국적인 맛을 발산할 것입니다. 음식만이 아닙니다. 그기다가 소주 한 잔 결들이면 또 어떻습니까? 녹녹치 않는 세상사를 벗어나 삼겹살에 소주에 이런 저런 이야기는 어느새 구름위에서 노니는 쾌락으로 전이되면서 가슴에 쌓인 근심 걱정 눈 녹듯 사리지는 체험을 서민들이라면 누구나 해보지 않았습니까?

대부분의 한국 음식이 그렇지만, 삼겹살을 먹는 자리 또한 개방적이고 격식이 파괴되는 공간입니다. 누구나가 함께 불판에 마늘과 버섯을 집어 넣고, 함께 뒤집고, 불판 위에서 소주 잔이 맞 부딪칩니다. 빙 둘러 앉아 먹는 가운데 서로 몸을 부딪기고, 어깨를 맞대고 격의와 허레를 털어냅니다. 얼마나 좋은 자리입니까?




한 번 상상해 봅시다.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에 있는 삼겹살 프랜차이즈 점에서 소주와 곁들여 삼겹살을 먹는다고 말입니다. 참 유쾌해 지지 않습니다. 불판에 익는 삼겹살과 마늘, 버섯,두부등을 올려놓고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말입니다. 생각만 해도 유쾌해집니다.  저는 오바마 대통령이 삼겹살과 소주가 참 잘 어울릴 것 같이 여겨집니다.

아니 사실 이 삼겹살 구이는 뉴욕 맨하탄의 슬럼가의 흑인들, 히스패닉계들과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만약 맨하탄의 흑인, 히스패닉 거주 구역에 삼겹살 구이집들이 생긴다면 범죄율도 덩달아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왁자지껄한 웃음 소리와 함께 흉가가 되다시피한 범죄의 온상이 되어버린 흑인 거주 구역에 생동감이 넘치지 않을까요. 저는 이 발상을 언제가 꾸었던 제 꿈에서 얻어왔습니다(이 꿈 이야기는 좀 따로 적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맨하탄에는 한국인 식당들이 많습니다. 저는 한 갈비집에서 갈비탕을 한 번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뉴욕의 맨하탄의 서민들이 집중되어 있는 슬럼가들에 삼겹살집들이 들어서서 흑인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제공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서민들은 전세계적으로 있지 않습니까.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부유층을 공략해야하기도 하겠지만 서민들을 공략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맥도날드나 KFC 등이 그런 것이 아닙니까? 어디 삼겹살과 햄버거를 비교할 수 있을까요. 특히 미국의 중심인 뉴욕의 맨하탄의 흑인들과 히스패닉을 그 맛과 분위기로 녹여버린다면 전 세계적인 서민 음식으로 등장하지 않을까요. 미국을 사로 잡아 버리면 전세계를 쉽게 사로 잡을 수 있겠지요. 이것이 언젠가 제가 꾸었던 꿈이기만 할까요?

뉴욕 맨하탄의 흑인들과 히스패닉들이 삼겹살 구이판에 둘러 앉아 삼겹살을 함께 구우며 소주잔을 돌리는 이 서민적인 모습은 아무리 상상해도 즐겁기만 합니다. 상추에 잘 읽은 삼겹살을 올리고 그 위에 양념장과 파조래기, 그리고 마늘 한쪽을 더해 입으로 삼키는 뉴욕 맨하탄의 서민들의 모습들......맛에 녹고 분위기에 취하는 삼겹살의 그 진미와 함께 말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생각 돌아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먹도널드교와 새로운 신분 제도  (28) 2009.04.28
고 장자연씨를 생각하며...  (7) 2009.04.25
삼겹살 데이를 맞이하여.....  (14) 2009.03.04
파워 블로그가 되고 싶습니까?  (15) 2009.02.16
유대인과 집시  (2) 2009.01.14
마음이 괴로울 땐...  (6) 2008.11.11
Trackback 0 Comment 14
2009.02.16 10:47

파워 블로그가 되고 싶습니까?



 
                                                                                                     스타가 되고 싶어,


그럼, 전화~~

 

 

 

 

 

 

 

 

 

 





전화하고, 틈새 시장을 노리고, 쉽죠라고 외치기만 하면 파워 블로거가 그저 될 수 있을까요.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저 농담일 뿐이죠. 그래서 조금은 답답한 마음에 생각해 보았죠.


블로그를 꾸려가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인기있는 글을 구상하고 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터득(?)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터득의 의미가 자신이 인기있는 글을 쉽게 쓰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보자면,  인기가 있다는 말에는 유용성과 유희성이 포함되며 그 척도는 방문자들의 숫자와도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죠. 유용성이란 정보, 가치, 이성적인 측면이 강한 글이라 할 수 있고, 유희성은 감동, 순수, 감정적인 측면이 강한 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물론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수용과 공감의 깊이가 더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될 수도 있죠. 따라서 인기라는 말도 주관적인 가치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인기가 유용성이나 유희성이 비례하는 것도 아닌 거죠. 인기가 없어도 더욱 유용하고 감정을 고무시키는 글은  존재한며, 또 인기있는 글이라고 해서 항상 유용하거나 감정을 고무시키지는 않죠. 

이미지 출처: www.segye.com




인기는 있는 것이 좋다. 유용성이든 유희성이든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공감을 얻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 말에는 대체로 동의하리라 봅니다. 그렇다면 인기있는 글들의 공통적인 내적 요인들을 추출해 보는 것은 아주 효과적일 방법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펴 본 요인들은 대체로 아래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인기를 끄는 글들의 공통적인 내적 요인들

1.속보성 : 신문이나 다른 언론 매체보다 더 발빠르게 뛴다.
2.오락성 : 독자를 끌어들이는 재미가 있다.
3.실용성 : 실생활에 유익하거나 경제적인 도움이 된다.
4.관계성(소통) : 인간적인 관계나 공감대 형성을 소중하게 여긴다.
5.비판성 : 어떠한 모순을 개선하려는 비판적이고 사고나 태도를 소중하게
               여긴다. 



이런 공통적인 요인들을 효율적으로 채택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이것은 단순하게 인기에 영합하는 자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도 하며, 행여 개인들의 생각이 다르다고 해도 스스로 공통적인 요인를 추출해 보고 그 요인들을 자신의 글에 적용해 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블로거님들이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파워 블로그가 되었으면 합니다.

쉽죠이~









*위의 이미지들 중 개별적으로 출처가 달리지 않은 이미지들의 출처는 일간스포츠 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생각 돌아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 장자연씨를 생각하며...  (7) 2009.04.25
삼겹살 데이를 맞이하여.....  (14) 2009.03.04
파워 블로그가 되고 싶습니까?  (15) 2009.02.16
유대인과 집시  (2) 2009.01.14
마음이 괴로울 땐...  (6) 2008.11.11
위키피디아, 무엇이 문제인가!  (9) 2008.11.02
Trackback 2 Comment 15
2009.01.14 20:21

유대인과 집시

 

일본의 전후( 2차 유럽 대전후) 처리에 대해 그 피해 당사자인 우리는 유대인들에 대한 독일의 피해 보상, 역사적 인식 등을 비교하면서 일본 정부의 비인간적이고 몰역사적인 태도에 강한 분노를 표출한다. 전후 일본의 터무니 없는 피해 보상과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 왜곡, 성노예 할머니들에 대한 인격적인 모독 등 반성은 커녕 자국의 역사를 오히려 미화하는 짓을 서슴치 않고 있다.

독일의 경우 전대미문의 유대인 대학살을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측면에서 그들 스스로도 유대인들에 대한 보상과 전범 처리, 역사인식등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인류에게 유대인 대학살은 살아있는 역사이며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독일이 근본적으로 일본의 전후 태도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니요이다. 독일 또한 일본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무엇이 독일과 일본의 태도를 다르게 했을까?

우선 하나의 실례로 유대인과 한국인(피해 당사국을 한국으로 국한)이란 차이를 들 수 있다. 유대인은 어떤 민족인가? 올해 5월 14일로 건국 60주년을 맞이한 이스라엘을 세운 민족이 아닌가? 유대인의 선조 헤브라이 인이 B.C. 15세기 경에 팔레스티나에 나라를 세운 후 분열과 박해와 추방을 당하며 전세계를 떠돌다 19세기말 시오니즘 운동이 전개되면서 다시 팔레스티나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국과 미국의 정계를 움직일 수 있었던 그들의 경제력과 시오니즘이라는 종교적인 결집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미국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의 영향력은 미국의 대 이스라엘 정책을 보면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전세계적인 유대인 리스트



Ruth Bader Ginsburg







Henry Kissinger

Jon Stewart



Steven SpielbergBarbra StreisandJon Stewart
Norman MailerMichael BloombergAlbert Einstein
Scarlett JohanssonRuth Bader GinsburgMel Brooks
Louis BrandeisHank GreenbergMilton Friedman




이에 비하면 한국은 가난한 아시아의 변방국에 불과했다. 유대인들과 비교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약소국의 현실을 안고 있었던가? 비유하자면 팔레스티나 아랍인들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과 영국이 팔레스티나 아랍인들에게 했던 처사와 일본이 우리에게 한 천후의 태도의 본질은 곧 강자의 약자에 대한 잔인한 태도 인 것이다.

독일인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피해 보상과 깊은 뉘우침은 실상은 유대인이 강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판단되며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일본이 우리에게 아직도 역사왜곡을 일삼는 비상식적인 태도는 바로 우리가 약소국이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역사적인 인식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박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유대인이 강했던 어떻던 독일은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충분한 보상과 역사적인 인식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근본적으로 일본이 전후 보상과 역사인식은 독일과는 근복적으로 다르고 양심적이라고.

 그러나 전후 보상에 대한 독일인의 양면성을 알게 된다면 독일 또한 일본의 태도와 다르지 않으며 유대인들에 대한 피해 보상은 유대인의 능력이 유발한 것이지 독일인의 근본적인 반성에서 나왔다는데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집시들에 대한 독일인들의 전후 보상으로 볼 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주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유대인과 집시에 대한 독일의 야누스적인 전후 보상과 태도는 독일의 뻔뻔스러움을 여지 없이 보여준다.

Gypsy costumes



우선 집시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유럽에서 집시에 대한 명칭의 유래는 세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이집트 인(Egyptian)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영어의 gypsy, 프랑스어의 gitan, 에스파냐어의 gitano(히타노) 등을 들 수 있다. 두번째는 중세 그리스어의 아팅가노이(이교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독일어의 치고이네르, 프랑스어의 치가느(tsiganes) 등이 그 예이다. 세번째는 15세기 보헤미아 왕이 집시에게 영내 통행권을 부여한 것에서 보헤미안(bohemian)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정작 집시 자신들은 스스로를 롬(Rom) 이나 로마(Roma)로 부른다.

이 로마들이 나치스에 의해 학살된 숫자가 50만에서 70만에 이른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아마도 600만명 이라는 상상하기 끔찍한 유대인 학살이 이러한 숫자를 가리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50~70만명이라면 실제로 상상하기 끔찍한 숫자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집시에 대한  보상은 유대인들에 대한 피해 보상에 비해서 터무니 없다. 독일의 전후 보상법은 유대인들을 중점에 두었으며 그 보상액도 유대인들에게 집중되었다. 1981년에 집시와 동성애자등을 대상으로 하는 '비유대계 피박해자 특별기금' 으로 약 1억 마르크, 우리나라 돈으로 500억원이 조성되었는데 이 액수는 1991년까지 1월까지 유대인 희생자들에게 지급된 864억 마르크에 비하면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였다. 이러한 집시에 대한 독일의 태도가 곧  전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태도와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독일의 전후 보상이나 역사인식이라는 것은 일본과 비교해도 오십보 백보에 불과한 것이다.

독일의 유대인 보상의 전례를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전후 보상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로 들먹인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독일 또한 일본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일의 태도는 집시 학살에 대한 독일의 태도가 분명하게 입증하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어느 나라던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으로, 군사력으로 강하고 보아야 한다. 



*이 글은 이전 히틀러와 집시라는 글로 소개한 글이지만 이번 이스라엘의 팔레스티나 침공을 목격하면서 다시 올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생각 돌아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겹살 데이를 맞이하여.....  (14) 2009.03.04
파워 블로그가 되고 싶습니까?  (15) 2009.02.16
유대인과 집시  (2) 2009.01.14
마음이 괴로울 땐...  (6) 2008.11.11
위키피디아, 무엇이 문제인가!  (9) 2008.11.02
젊음의 야성  (2) 2008.10.29
Trackback 1 Comment 2
2008.11.11 18:53

마음이 괴로울 땐...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gdy23



마음은 바다와 같아요. 언제나 잔잔하기만 할 수는 없거든요. 파도가 일기도 하고, 소용돌이 치기도 하고, 사납게 출렁이기도 하지요.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언제나 평온이하기만 할 수 있을까요? 나의 소망은 그렇습니다. 언제나 평온한 마음을 갖는 거지요. 하지만 그런 소망은 언제나 깨어지기 일쑤 입니다. 

호수에 던지는 작은 돌이 파문을 일으키 듯, 마음에 던져지는 작은 돌에 마음의 파문이 크져 가기도 하지요. 태연한 체, 아무렇지 않은 체 해도 마음은 작게나마 출렁이지요. 마음은 그런 겁니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그 관계 속에서 수 많은 오해들이 생기고 수 많은 갈등들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마음에 떨어지는 돌은 수도 없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관계를 끊고 살 수는 없는 거 잖아요. 관계를 끊는다는 말은 관계 속에 탄생하고, 관계 속에 놓여있는 모든 인간적인 조건을 거부한다는 것이지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성직자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수행승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관계를 벗어나기는 불가능 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관계를 마음에 띄우는 배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배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서로 배를 타고 잔잔한 마음의 물 위를 쉬엄 쉬엄 저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근본적인 삶의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배는 숭고한 관계로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이건 너무나도 어려워서 실천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또 있습니다. 시간에 맡기는 겁니다. 시간처럼 효율적인 약은 없다고 봅니다. 명상이나, 독서, 음악, 기도, 조용한 산책, 잠 같은 것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면서 바다는 잔잔해 지는 법이지요. 마음이 바다라면 그 변화를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에는 단서가 있습니다. 타인의 마음에 돌를 던지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비록 고독하고 외롭지만, 때론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조용히 마음을 시간에 맡기는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쾌락하니 무언가 성과 관련된 것으로 볼 것 같은 데 그것에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흥겨운 시간을 가지면서 망각하는 것입니다. 음악, 독서, 영화 같은 것들은 시간에 맡기는 수단들과 중복되는 부분도 있네요. 이것들도 쾌락을 주기도 하니까요. 아무튼 술이나 춤 같은 쾌락은 약간의 후유증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효율적인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단 중독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에 가장 충실한 방법이랄 수 있겠죠. 

  
이렇게 적고 있다는 것이, 아직도 삶이 혼란스럽다는 반증이겠지요. 마음이 괴로울 땐,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삶 속에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뒤섞여 있지요. 일관된 삶의 신념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세속을 초탈한 종교적인 신념이 아니기에 참 약하디 약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생각 돌아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워 블로그가 되고 싶습니까?  (15) 2009.02.16
유대인과 집시  (2) 2009.01.14
마음이 괴로울 땐...  (6) 2008.11.11
위키피디아, 무엇이 문제인가!  (9) 2008.11.02
젊음의 야성  (2) 2008.10.29
한글이 없다면?(2)  (7) 2008.10.18
Trackback 0 Comment 6
2008.11.02 18:19

위키피디아, 무엇이 문제인가!

위키피디아 열린 사전을 검색하다 보면 그 방대한 양과 질에 놀라게 된다. 인터넷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사이트 링크와, 꼼꼼한 참고 자료의 소개는 기존의 사전과는 다른 즉각적인 피드백이나 자료를 접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다. 그기다 지속적으로 업데이트가 되면서 책과는 달리 낡은 느낌은 커녕 오히려 새로운 느낌 마저 든다.
 
그러나  위키피디아의 방대한 양에 비해 비록 둘러 본 양은 그리 많지 않지만 좀 이상한 점이 목격되어 그 명성이 과연 이름 값을 하고 있는지 다소 의문이 들었는데 한글과 관련이 있어 약간 씁쓸하기도 했다.


전세계 베트남어 사용자수 분포지도 



위는 위키피디아에서 캡처한 베트남어의 전 세계 분포 지도이다. 언뜻 보면 색깔상 베트남어가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러나 곧 아래의 색깔에 따른 분포의 정도를 살펴보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이 분포 지도를 보면서 베트남어가 알래스카에 백만명 이상의 사용자(speakers)가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실상은 알래스카를 포함한 미국 전역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고작 십만명 이상에 불과한 북미 캐나다와 호주, 그리고 프랑스 등을 그 국가 전체에 색깔을 넣어 너무 과장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색깔에 따른 베트남어 사용자 수




알래스카의 총인구수와 인구밀도



미국의 베트남어 분포 정도의 표시에 한정하여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알래스카와 미국 본토를 합쳐 백만명 이상 사용자가 있는 국가로 표시하고자 하는 듯 하나 실제로는 알래스카에 베트남어의 사용자가 백만명 이상이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베트남어의 분포를 좀 더 구체적으로 도시로 표기하지 않아 생기는 혼란이랄 수 있다. 알래스카의 인구가 68만 여명임에도 이를 확인하지 않은 검색자들은 알래스카에 백만명의 베트남어 사용자가 있다는 착각을 하기에 충분하다.  


이와는 달리 아래 위키피디아에서 캡처한  한글의 전 세계 분포 지도는 국가 단위가  아니라 도시 단위로 표시되어 베트남어에 비해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그 사용자의 수에 있어서도 월등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세계 한글 사용자수 분포 지도. 도시 단위로 표시되어 있어 식별하기가 어렵다

 


베트남어 사용자수 분포 지도와는 달리 도시별로 작은 점만 찍어 놓고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위의 전세계 한글 분포도 지도는 어떻게 보이는가? 이미 살펴보았던 베트남어 분포도에 비해 그야말로 그 분포의 정도를 알아보기도 어렵다. 베트남어에 비해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글이 분포되어 있는 도시들을 작은 점으로 표시해 놓고 있을 뿐이다. 만약 이것을 베트남어식으로 국가별로 분포정도에 따라 색깔을 넣어 표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베트남어의 분포 지도가 상대가 될 수 있을까? 한글 분포 지도는 아무리 보아도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한국인이란 민족적인 편견을 버리고 보아도 이건 너무나도 불합리한 모양새다.

이러한 실수는 단일한 편집인이 단일한 체계를 가지고 표준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네티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생긴 실수 아닌 실수인 듯 싶기도 하다. 당연히 일어나는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내용, 즉 정보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형식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같은 범주(category)의 자료에 대해서는 동일한 표준을 설정하고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누가 보아도 이토록 불합리한 지도가 위키피디아에서 검색되고 자료로 사용된다는 것은 사전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작지만 큰 흠이 되는 것이다. 



*위의 이미지는 모두 위키피디아에서 캡처해 가져왔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생각 돌아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대인과 집시  (2) 2009.01.14
마음이 괴로울 땐...  (6) 2008.11.11
위키피디아, 무엇이 문제인가!  (9) 2008.11.02
젊음의 야성  (2) 2008.10.29
한글이 없다면?(2)  (7) 2008.10.18
만약 한글이 없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16) 2008.10.12
Trackback 0 Comment 9
2008.10.29 19:46

젊음의 야성

젊음의 야성(野性)


어느 시대나 세대간의 차이는 있게 마련이지만 요즘처럼 세대간의 단절이 심각한 적도 없지 싶다. 흔히 신세대와 구세대간의 공통적인 대화의 주제가 상실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급격한 사회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저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가 그렇고 인터넷  그렇고 컴퓨터 게임이 그렇다. 즉 급격한 사회의 변화와 함께 급격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세대와 구세대가 공존하는 사회의 최소 단위로서 가정은 이러한 차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파괴되는 가정 또한 얼마나 증가하고 있는가. 외견상 부모와 자식은 인륜, 혈연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로 서로 단단히 묶여있는 듯하지만 사회, 문화적 의식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 아닐까 한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기대는 다소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편향을 보여준다면 자식들은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편향에 저항한다. 비록 노골적인 저항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속 깊이에서 싹트는 저항의 감정은 강렬할 수 있다.

요사이 학교가 무너졌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가정이 무너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학교를 누가 무너뜨렸는지 모르겠지만 학생으로서의 신세대들이 책임의 일부를 면할 수 없다. 하지만 가정을 지키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신세대들은 자신들의 행위와 의식이 속박되기를 싫어한다. 이러한 속박에 대한 혐오증은 기성세대들이 끊임없이 교육시키고자 하는 속성으로서 야성(野性)이 아닌가 한다. 반항과 저항은 신세대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아닐 수 없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과 저항은 이성적인 판단이라기보다 맹목적인 불신에 가깝다. 이것은 동시에 기성세대들이 갖는 신세대들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과 함수의 관계에 있다. 서로 이해해 주지 않으려는 아집 때문이다. 아니 이해 할 수 없는 벽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모순의 충돌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세대차이의 벽을 허물 수 없다. 하지만 신세대들의 야성은 인간적인 특성이기 이전에 생물학적인 특성이다. 생물학적인 특성임을 이해한다면 기성세대의 아량이 더 필요하다. 곤충의 세계를 보면 그 어미가 자식들의 먹이가 되는 경우를 보지 않는가. 기성세대가 먼저 다가가 대화의 시간을 만들고 그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신세대들의 입과 마음을 열게 하고 궁극적으로 믿음을 싹트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비록 세대차이가 완전히 극복될 수는 없지만 소통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본다.

신세대들의 야성(野性)은 대체로 맹목적이다.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교육이란 이름으로, 사회제도의 관습과 전통이란 이름으로 그들의 목에 속박의 사슬을 묶는다면 신세대들의 야성(野性)은 더욱 사나워 질 것이다. 기성세대가 노력해야 한다. 먼저 아집을 꺾고 “전통은 단지 논증할 수는 없지만 정당성을 가진다” 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 중심이 아닌 주변의 문화에도 마음을 열 필요가 있다. 신세대의 야성을 누그러뜨리는 것은 속박이 아니라 섬세한 관심이며 보살핌인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병든 신세대들의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기성세대의 모습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그들의 모습을 말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생각 돌아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이 괴로울 땐...  (6) 2008.11.11
위키피디아, 무엇이 문제인가!  (9) 2008.11.02
젊음의 야성  (2) 2008.10.29
한글이 없다면?(2)  (7) 2008.10.18
만약 한글이 없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16) 2008.10.12
우리 시대의 역설  (0) 2008.10.10
Trackback 0 Comment 2
2008.10.18 14:45

한글이 없다면?(2)

세계 언어 지도상(지도1)으로 볼 때 많은 국가들이 라틴 알파벳으로 글을 표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메리카 대륙은 전부 라틴 알파벳을 사용하는 국가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면 이러한 일개 언어의 독식 현상은 인간과 인간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라틴 알파벳이 단일한 언어로 통일되었다는 것은 그 통일의 이면에는 인간의 잔인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기 이전에 다양한 언어가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라틴 알파벳의 언어 지배 현상이 그래도 차단된 곳이 아래 언어 지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대체로 러시아어와 아랍어, 한자어, 동남아시아 국가들, 그리스지역,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이 전부이다(회색부분). 이러한 국가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부족들과는 달리 일찌기 문명이 태동한 곳이고 국가 단위로 민족적인 동질성이 유지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 아랍권 국가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사실상 대륙이나  마찬가지이다. 라틴 알파벳의 영향을 벗어날 만한 역량을 가졌거나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사실은 인디아를 보면 알 수 있다. 문명을 잉태하고 거대한 대륙에 가까운 인디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것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지 않은 국가들에게는 행운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또한 독창적인 언어라기 보다는 한자의 파편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정도로 한자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이러한 대륙과 거대지역들과는 달리 우리는 한글이라는 한민족의 독창적인 언어를 창조해내고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한글의 면역력은 일본 지배 36년에서 살아남은 것으로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일본이 일본어 나마 지킬 수 있었던 것도 과장일지는 모르지만 독창적인 한글을 가진 한반도가 대륙의 일본 진출을 그나마 막아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만약 일본이 중국의 지배를 받았더라면 일본어는 어쩌면 일본내 소수언어로 전락하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도1. 라틴어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국가들




이러한 한글과 비숫한 역량을 가진 것이 그리스어가 아닐까 한다. 그리스는 라틴 알파벳이 지배하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그리이스 알파벳을 지키고 있는 유일한 국가(물론 그리이스 알파벳은 유럽연합국가들에서 사용되고 사이프러스에서는 공식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태리, 알바니, 터키의 지역에서도 소수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기 때문이다. 위의 지도에서 보고 알수 있듯이 그리이스와 대한민국은 위도상으로 참 비슷하게 보이며(실제는 어쩔지 모르겠다) 또한 반도국가라는 것도 흡사하다.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명을 가졌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지도2. 그리이스 국가 지도




이러한 라틴 알파벳 일변도의 지배적인 현상에서 그 고유적인 언어를 지키기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독창적인 언어를 발명하고 그 고유어를 민족적인 단위로 유지하면서 사용해왔다는 것은 그 자체의 민족적인 역량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이나 그리이스는 민족 국가 단위의 독창적인 언어로 자부심을 느낄만하다고 본다.

단일한 국가에서 단일한 민족이 독창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대한민국이 유일하 나라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러시아어권과 중국어권, 아랍어권등 거대한 지역들은 사실상 소수민족들로 구성되어 있거나(러시아권, 한자어권) 영향을 받기보다는 영향을을 주는 위치(러시아권, 한자어권) 에 있거나 종교적, 문화적인 동질성(아랍권)을 가진 국가들이다. 

 
지도3. 러시아어가 공식어로 사용되거나 러시아어로 말하는 지역들(짙은 청색이 러시아어가 공식어로 사용되는 지역이며, 초록색이 러시아어로 말하는 지역이다. 대제국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몽고는 러시아를 말하는 수단으로 상용하고 있다.)


 
 
지도4. 한자어권 지역들(방언들은 물론이고 티벳을 비롯한 소수민족어가 용광로처럼 녹아 있다. 언제 폭발할지 알수 없다.)




지도5. 아랍어권 사용지역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 동남아시아 지역이다. 이 지역도 라틴 알파벳 영향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족 단위의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라기 보다는 여러 방언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국가들은 라틴 알파벳을 표기법으로 차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방언의 표기법이 다양하고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라틴 알파벳으로 통일한 경우가 아닐까 한다(이와 관련해서는 추측이 아니라 베트남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있을 것이다) . 표기법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독창적인 글이 창조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베트남어로 된 Vietic어는 라틴 알파벳을 차용하여 표기되고 있고 Khmer어는 캄보디아의 공식어로 사용되고 있으나 그외의 말들은 소수 민족의 말로 이용되고 있다. 
 

지도6. 동남아 지역들에 흩어져 있는 Austro-Asiatic 언어들(대표적으로 베트남어, 캄보디아어가 이에 속한다.  캄보디아어는 태국어, 라오스어, 베트남어, 참어에 의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왔다)
 

 

지도7. 동남아 지역들에 흩어져 있는 Tai-Kadai languages(중국의 남부어, 태국어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사실과는 달리  한반도라는 작은 나라가 외래어의 큰 영향없이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한글을 발명하고 유지해왔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너무나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한글은 다른 어떤 표기법(특히 영향력이 강한 라틴 알파벳)과도 (말은 아니지만) 표기법은 아주 독창적인 인류의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는 모두 위키피디아 로 부터 가져왔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1 Comment 7
2008.10.12 01:28

만약 한글이 없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만약 한글이 없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고 있을까? 참 궁금한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창조했기에 오늘날 우리는 우리말을 가지고 의사소통을 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한글이 창조되기 이전에 오랜 동안 중국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한자가 우리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로 존재해 왔고 또 우리말을 우리글로 적지 못하고 한자로 표현하는 처지였다. 오늘날 쓰기에 있어 한글과 함께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한글 창조 이전의 한자 문화권의 영향이 얼마나 강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한자와 함께 중국말도 함께 공용어로 이용했다면 지금 우리는 중국의 한 성으로 전락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한국말이란 우리말을 광범위하게 사용하였기에 한국말을 지킬 수 있었으며 동시에 우리말 발음에 맞는 한글이라는 우리 글이 만들어 진 것이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켜 올수 있었던 힘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일제 36년이란 식민지 지배하에서도 한국말과 한글이 탄압을 받았지만 일본어가 광범위하게 퍼지지 못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19세기, 20세기초 유럽의 식민지화 된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이 오늘날 그들을 지배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언어를 그대로 공식어로 사용하는 것과 무척 대조를 이룬다 하겠다. 

영어를


영어와 프랑스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왼쪽이 프랑스어, 오른쪽이 영어)


스페인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국가들




비록 한자와 일본어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는 있으나 우리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독창적인 한글이 존재했기에 우리는 아프리카 같은 언어의 식민지화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몰입식교육과 지나친 영어교육의 강조, 그리고 이와 함께 기러기 아빠와 같은 가족들의 생이별은 이상한 현상히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영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을 살펴보면 식민지배를 겪은 후진국가들과 영국에서 분화된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들

  

전세계적으로 영어를 공식어(official language)로 사용하는 국가들은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  후진국가들과 필리핀, 인디아등이 대분이다. 그외 우리가 선진국이라 일컫는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이며 위의 지도상에는 표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유럽 여러 국가들이 공용어나 제 2 외국어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영어의 실용성을 평가할 때 영어의 영향력이  그다지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의 경우를 보더라도 영어로 인해서 경제력이 월등히 높아졌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요인들, 이를테면, 의식적인 측면이 더욱 영향력을 많이 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즉, 양심과 진실이 가장 중요한 사회 간접 자본이 되다고 본다. 예를들면 덴마크와 함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국가 경쟁력은 영어에서 보다 양심과 진실이 경제력을 튼튼하게 만드는 강력한 사회 간접 자본을 형성한다고 판단된다. 

이렇듯 영어를 경제력의 가장 우선 순위에 놓는 교육목표의 설정은 잘못된 방향일 수 있는 것이다. 필리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만연된 부패와 정치인들의 타락이 경제력과 관련하여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라틴어 문자인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남미국가들의 경우도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진실됨의 문제가 더욱 큰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면,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 한자의 영향으로 글(문자)에서 한자가 쓰여지고 있지만 보편적이고 독자적인 한글문화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한글문화가 민족적인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하는 국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홍콩의 경우가 이러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한글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우리말을 사용하고 의사소통을 할 지 참으로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중국어, 영어, 일본어를 공식어로 상용하면서 우리말 표기를 영어로, 한자로, 일본어로 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수있다. 이러한 예를 인도네시아어와 베트남어에서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어 분포도. 짙은 초록색이 인도네시아어이며 연한 초록색은 자바어를 비롯한 지방어이다.

인도네시아 공식어로 쓰여진 야후 인도네시아 사이트 캡처 화면. 라틴어로 쓰여진 인도네시아어. 예를들면 김치가 맵다는 표현을 'Kimch Ga Mapda' 는 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베트남인의 86%정도가 사용하고 있는 베트남어(프랑스 식민치하에서는 Annamese 로 알려졌음)는 라틴 알파벳을 차용하여 표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공식어가 인도네시아이다. 이 인도네시아어는 말로써는 존재하지만 그 표기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베트남 또한 마찬가지이다. 라틴 알파벳을 차용하고 있다(이 언급에 대해서는 아주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미리 이것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에 감사 드린다).  따라서 라틴어 알파벳을 차용해서 말을 표기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바로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김치가 맵다는 표기가 'Kimchi Ga Mapda' 하는 식이 되는 것이다. 만약 베트님어와 인도네시아어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었다면 어떨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우리의 한글은 너무나도 자랑스런 언어이다. 잘 모르는 처지이지만, 라틴어 표기도 아니며 한자표기도 아닌 아랍어와 함께 독자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물론 소수 언어들은 제외하고)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언어인 것이다. 어찌이런 언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한글을 사용하는 인구가 전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바로 이런 한글이다.

한글의 분포도. 따지고 보면 한국어가 전세계적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이러한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이점을 잘 활용하여 한글의 세계화에 노력해야 한다



아랍어 분포도.


만약 한글이 없다면 우리는 한국말을 한자, 라틴어 알파벳, 아니면 일본어로 표기하는 불행한 일을 겪고 있지 않을까. 마치 베트남어나 인도네시아어의 운명처럼......

*위 이미지들의 출처는 위키피디아와 yahoo! Indonesia, vietnam 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생각 돌아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젊음의 야성  (2) 2008.10.29
한글이 없다면?(2)  (7) 2008.10.18
만약 한글이 없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16) 2008.10.12
우리 시대의 역설  (0) 2008.10.10
최진실법(最眞實法) 꼭 필요하다!  (10) 2008.10.07
세계 최고령 락 밴드는?  (8) 2008.10.06
Trackback 1 Comment 16
2008.10.10 23:25

우리 시대의 역설


Paradox Of Our Times
우리 시대의 역설



We have taller buildings, but shorter tempers;
Wider freeways, but narrower viewpoints;
We spend more, but have little;
We buy more and enjoy it less.

우리는 더 높은 빌딩들을 가지고 있으나, 더욱 성미는 급해지고;
더 넓은 고속도로를 가지고 있으나, 더욱 좁아터진 견해를 가지고;
더 많이 소비하나, 아무것도 갖지 못하며;
더 많이 구입하고 덜 즐긴다.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dasol




We have bigger houses and smaller families;
More conveniences, but less time;
We have more degrees, but less common sense;
More knowledge, but less judgement;
More experts, but more problems;
More medicine, but less wellness.

우리는 더 큰 집을 소유하고 더 적은 가족을 가지며;
더 편리해졌으나, 여유는 더  없으며;
학위는 가지고 있으나, 분별력은 더 부족하며;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판단력은 더 미흡하며;
더 많은 전문가들이 있음에도, 더 많은 문제들이 생기고;
더 많은 약이 있음에도, 건강 상태는 더 좋지 않다.



이미지 출처 http://kr.news.yahoo.com/servi



We spend too recklessly, laugh too little,
Drive too fast, get too angry too quickly,
Stay up too late, get up too tired, Read too seldom,
Watch TV too much, and don't pray often enough.

우리는 너무 무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잘 웃지도 않으며,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쉽게 화를 내며,
너무 늦게 자고, 너무 피곤한 상태로 일어나고, 거의 독서를 하지 않으며,
TV를 너무 많이 보고, 기도를 잘 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jh3ch



We have multiplied our possessions, but reduced our values.
We talk too much, love too seldom and lie too often.
We've learned how to make a living, but not a life;
We've added years to life, not life to years.

우리는 소유물을 엄청 늘리지만, 우리 자신의 가치는 줄인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사랑하지 않으며, 너무 자주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생계를 꾸려가는 법은 배우지만,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는 않고;
우리는 몇 년을 더 살려고 하나, 삶의 의미를 생각지는 않는다.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leesa



We've been all the way to the moon and back,
But have trouble crossing the street to meet the new neighbor.

우리는 달을 다녀왔지만,
새로운 이웃을 만나기 위해 길을 건너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We've conquered outer space, but not inner space;
We've done larger things, but not better things;
We've cleaned up the air, but polluted the soul;
We've split the atom, but not our prejudice;
We write more, but learn less.

우리는 외부의 공간을 정복했으나, 내면을 정복하지는 못했으며;
더 거대한 일들을 하나, 더 좋은 일을 하지는 않으며;
공기는 정화시키려 하지만, 영혼을 오염시키며;
원자를 쪼갤 수 있으나, 편견을 쪼개지는 못한다;
우리는 더 많이 쓰지만, 적게 배운다.


이미지 출처http://kr.blog.yahoo.com/jinju



We've learned to rush, but not to wait;
We have higher incomes, but lower morals;
More food but less appeasement;
More acquaintances, but fewer friends;
More effort but less success.

우리는 성급히 달리는 것을 배우지만, 기다리는 걸 배우지 않으며;
우리는 더 많은 수입에도, 도덕은 추락하며;
더 풍족한 음식에도 덜 양보하며;
아는 사람은 많으나, 친구들은 더 적으며;
더 많은 노력에도 성공의 기회는 더 줄어든다.




We build better computers to hold more information,
Produce more copies than ever, yet have less communication;
We've become long on quantity, but short on quality.
These are the times of fast foods and upset stomachs;
More kinds of food, but less nutrition.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갖기 위해 더 좋은 컴퓨터를 만든다,
유례없이 많은 복사본들을 생산하지만, 소통은 줄어들고;
양적으로는 풍족하지만, 질적으로는 떨어지고 있다.
이 시대는 패스트 푸드와 메스꺼운 위의 시대이다;
더 많은 종류의 음식이 넘쳐나지만, 영양은 줄어든다.


이미지 출처http://kr.news.yahoo.com/servi



These are the times of world peace, but domestic warfare;
More leisure and less fun;

세계 평화의 시대이지만, 국지전은 사라지지 않고;
더 많은 여가와 더 작아지는 재미;




These are the days of two incomes, but more divorce;
Of fancier houses, but broken homes;
Tall men and short character;
Steep profits, and shallow relationships.

맞벌이 수입의 시대이지만, 이혼은 더 늘어만 가고;
더 멋진 집을 소유하지만, 가정은 풍지박산이 나고;
키큰 사람들과 더욱 혐소해진 성격;
수익은 많으나, 얕아진 관계들.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qrepo



These are days of quick trips, throwaway morality,
One-night stands, and pills that do everything from
Cheer, to quiet, to kill.

이시대는 여유없는 여행, 일회용 도덕
하룻밤 즐기기와, 기운을 돋구는 것에서부터, 침묵케하고,
죽음에 이르게 까지 하는 모든 것들을 가능케 하는 알약들의 시대.




It is a time when there is much in the show window,
And nothing in the stockroom.

진열장에는 많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으나 ,
창고는 텅빈 그런 때이다.




Think about it.

오역이 있을 것입니다. 지적해 주시면 사례  감사하겠습니다.

 
글출처: http://www.saddleback.edu/faculty/jfritsen/articles.html#paradox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0
2008.10.07 17:51

최진실법(最眞實法) 꼭 필요하다!

인간이 만든 세상은 부조리요 질곡이라도 하고, 낙원이요 신세계라고도 한다. 세상을 이토록 상반되게 보는 시선은 그들 자신이 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세상을 신세계라 한다거나 낙원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 부족한 것 없이 풍요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인간이 세상을 부조리하다거나  질곡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도 맞는 것은 아니다. 세계 각국의 행복지수가 이를 잘 설명해 준다고 할 수 있다. 행복지수가 꼭 경제력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http://kr.news.yahoo.com/servi

http://kr.news.yahoo.com/servi





이렇게 보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인간의 마음에 따라 세상은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을 질곡으로 보고 세속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스님이나 신부가 되는 강남의 졸부 자식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본다. 역으로, 세상을 신세계요, 낙원이라고 보는 인간들이라고 해서 그 처지가 풍족하기만 한 인간들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에게 세상의 질곡이라거나 신세계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물질적인 풍족함에 일정부분 의존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며 더욱 결정적인 것은 정신적인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비인간적이고 비정한,  양심과 진실이 사라진 사회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족하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이런 딜레머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이미지 출처: http://kr.news.yahoo.com/servi


정신적인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들이 속고, 속는 비정상적이고 비양심적인 관계의 끈들이 끊어져야 한다고 본다. 혼자만 고고하게 정신적인 평안을 누리기 보다 정신적인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물질적인 상황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상황, 즉 양심과 진실이 인간의 마음에서 활짝 꽃 피웠으면 한다.


이미지 출처: http://kr.news.yahoo.com/servi




아주 비약적이고 너무 감정적인 과정을 거쳐 이 글을 이끌어 왔다. 부족해서 그렇고, 마음이 너무 앞서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러나 결론은 간단하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세상의 부의 차이를 바로 잡는 것과 더불어 양심과 진실이라는 정신적인 공기를 정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이 맺는 모든 관계들이 양심과 진실만이 교류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이다. 비록 이상적이기는 하다 하더라도 말이다. 비웃는 자들에게 이르노니, 동화는 진정 성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고 최진실씨의 명복을 빕니다



진실과 양심이 회복되는 세상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진실과 양심을 회복하는 인간의 마음과 그것을 최소한 강제하는 법은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아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자발적인 양심회복과 진실추구, 즉최진실법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이 글에 언급하는  최진실법(最眞實法)은 현재 정부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려는 최진실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10
2008.10.06 02:11

세계 최고령 락 밴드는?

1.세계에서 최고령 멤버로 구성된 락 밴드의 이름은?
2.세계에서 멤버의 수가 가장 많은 락 밴드는?




비틀즈의 애비로드를 패러디 한 밴드들은 많이 있다. 그 중에서 The Zimmers 라는 영국의 밴드가 있다. 그 수 많은 패러디 앨범들 중에 The Zimmers의 앨범 커버 이미지는 참 인상적 것들 중에 하나이다. 아니 그 밴드를 인상적이게 하는 것이 단지 앨범 재킷 만은 아니다. The Zimmers 는 또 다른 이유로 아주 인상적인 그룹이다. 우선 밴드의 멤버수가 무려 40명이나 된다. 세계 최대의 락 밴드다. 그리고 더욱 더 인상적인 것은 밴드의 멤버들이 세계에서 최고령자들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40명의 총 나이의 합계가 3000세라고 하니 평균 80살에 이른다. 리더 싱어 Alf 가 90세이며, 최고령자인 Buster가 101세이다.

밴드의 이름은 Zimmer frame(walking frame 의 영국식 명칭으로 보조 보행기구를 뜻함)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밴드는 영국의 BBC 방송이 2007 5월 28일에 처음으로 방영한 다큐멘터리의 특집프로그램으로 조직이 되었다.

Tim Samuels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Tim Samuels(팀샤뮤엘스)는 BBC 방송의 다큐멘터이 "Power to the People" 시리즈의 일부로써 영국 노인들이 고통받고 있는 고독과 소외감을 조사하기 위해 영국 전역을 여행한다. 이 과정에서 팀 샤뮤엘스는 양로원과 고층빌딩에 갇혀사는 은퇴 노인들(pensioners)들을 모집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불만들을 방송으로 토로하는데, "그들을 소외시킨 사회에 불만을 토로하는" 그룹의 첫 싱글곡의 녹음으로 절정에 달한다.
 
 The Zimmers는 The Who의 "My Generation" 으로 리메이크(cover version,: a new rendition of a previously recorded, commercially released song)한 싱글을 발표하는데 2007년 5월 28일에 영국 싱글 챠트 26위에 오른다. 이것은 마마도 비틀즈의 미국에 대한 브리티시 인베이젼에 버금갈 수 있는 '노령자들의 영국사회 침공' 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노래는 Abbey Road에 있는 비틀즈 스튜디오 2(the Beatles Studio 2)에서 녹음이 되었다. 또한 4백만회 이상의 YouTube(유튜브) 조회를 기록했다.

 2007년 7월 13일, Richard & Judy(리차드 앤 쥬디)쑈에서, The Zimmers는 Prodigy(프라디지)의 "Firestarter" 를 리메이크(a cover)해 그들의 새로운 싱글을 발표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미지 출처: http://www.aboutmygeneration.com/




참고로 바로 위의 사진의 건널목 무늬는 비틀즈의 <Abbey Road>의 Zebra crossing과 같지만 횡단보도 가까운 곳에서 지그재그 선이 다르다. 이 지그재그 선은 Zebra crossing 이 가까이에 있다는 표시로 우리나라의 다이아몬드 표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지그재그 선이 zebra crossing 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The Zimmers My Generation @ Yahoo! Video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1 Comment 8
2008.10.01 20:12

돌하루방과 이스터 섬 모아이(2)

이스터 섬은 칠레령으로 Rapa Nui(라파 누이)섬이라고 합니다. 이스터 섬은 폴리네시아를 구성하는 큰 삼각형에서 하와이, 뉴질랜드와 함께 동쪽의 꼭지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Polynesian triangle). 폴리네시아의 여러 섬들 중에서 이스터 섬이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하와이와 뉴질랜드, 그리고 이스터 섬을 잇는 폴리네시아는 너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어 어떤 단일한 또는 공통적인 요소가 없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인상은 잘못된 것으로 아시아, 유럽, 남미라고 지칭하는 것처럼 폴리네시아라는 공통적인 특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에서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단 이 글과 관련하여 앞서 알고 싶으신 분들은 영문판 위키피디아  Polynesian triangle 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물론 다른 자료들을 참조하셔도 되겠습니다.)

아래의 이미지는 폴리네시아를 구성하는 삼각지역(Polynesian triangle)과 그 내외의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들입니다.     돌하루방과 이스터 섬 모아이(1) 바로가기




1. 폴리네시아 2.하와이주 3.뉴질랜드 4.이스터섬 5.사모아 6.피지 7.타히티







폴리네시아 지역의 국가들과 국가영토( the islands and island groups, either nations or subnational territories, that are of native Polynesian culture)


그러나 이스터 섬이 폴리네시아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아이(Moai)와 같은 석상을 발견할 수 있는 섬이 없는 것으로 추측됩니다(이 사실에 대해서는 좀 더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스터 섬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Pitcairn Islands(피트케언 군도)나 French Polynesia(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제도)에 속하는 Gambiers Islands(감비어 군도)에도 이스터 섬의 모아이와 같은 석상이들이 없다는 것은 바다의 영향으로 단절되어 있기는 하나 폴리네시아라는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판단해 보면 좀 의아하다 하겠습니다. 

이스터 섬의 서쪽, 즉 폴리네시아 쪽이 아니라 칠레쪽,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중남미 멕시코에는 그 유사성이 나 갯수는 다르지만 모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석상이 있습니다. 아래에 보이는 멕시코의 올멕 문명 석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미지출처:http://kr.dic.yahoo.com/search/enc/result.html?pk=16474400&type=encimage&field=id&img_name=16474400001

 

이미지 출처:http://en.wikipedia.org/wiki/Image:Sanlorenzohead6.jpg
 
 

그러나 이 올멕문명(Olmec Civilization)의 석상은 모양도 다를 뿐더러 환경의 유사성도 없습니다. 실제로 이 석상은 인종상 흑인으로 분류되고 있어 아프리카와 교류 또는 그 기원을 갖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터 섬의 모아이는 특이하게도 어느 쪽으로도 전파되지 않은 고립된 문명의 특성일까요? 

실제로 문명이란 것은 거리상의 원근과는 관계없이 그 교류에 의해 유사한 문명의 특징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위의 중앙아메리카의 올멕문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다신교적인 문명의 교류가 이러한 실례가 될 수 있고, 중국 문명의 일본과 동남아로의 전파도 그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터 섬의 모아이는 두드러지는 그 규모와 숫자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도 이스터 섬 문명에만 고독하게 존재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고립된 듯한 모아이가 신기하게도(작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제주도의 돌하루방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와 비슷한 석상인 돌하루방이 더 넓은 폴리네시아를 벗어나고 아메리카 대륙을 벗어나 동북아시아의 제주도라는 섬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은 참 재미있는 추측을 낳게 합니다.


 

제주도 돌하루방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scham

모아이 www.flickr.com/photos/monchan/





폴리네시아의 가장 동쪽 극단에 위치해 있는 이스터 섬의 모아이가 뉴질랜드도 아니고 하와이도 아닌 제주도에서 재탄생한 것이거나 그 기원을 갖는 다면 얼마나 재미있는 사실이 될까요. 돌하루방이 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모아이보다 좀 더 이후에 탄생한 석상이 아닐까 추측하게 하지만, 추상력이란 관점에서 보면 모아이가 더욱 진화한 석상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과연 제주도의 돌하루방과 문명의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그 연관성이 있다면 왜 하필 폴리네시아에서도 가장 거리가 먼 이스터섬인지 참 궁금해 집니다.


돌하루방과 이스터 섬 모아이(1) 바로가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4 Comment 8
2008.09.28 18:53

♥ 신문기사 그까이꺼, 대충 대충~~


영문판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보면 그 방대한 자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더불어 그 꼼꼼한 출처 표기와 관련 정보의 소개와 링크는 정말이지 신뢰를 갖게 한다. 어떠한 정보와 지식도 그러한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오류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오류를 잡아내고 업테이트를 해가는 모습에서 더한 신뢰를 갖게 된다.  

그 하나의 사례로 '한글'이나 '김치'에 대한 영문 위키피디아의 검색 내용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한글판 위키피디아를 능가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인정해야 할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의 입장에서 보면 그 만큼 치밀하고 정성을 다해 번역하고 자료를 모았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번역을 할 필요가 없는 '한글'이나 '김치' 의 한글판 위키피디아의 경우는 번역의 번거로움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1차 자료와 2차, 3차 자료의 양과 질은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미치지 못하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김치'나 '한글'의 경우도 이러한 현실에서 영문자료에 대한 번역 자료인 경우는 상황이 더욱 안타까운 지경이다. 영문판 위키피디아가 '김치'에 대한 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해 옮긴 정성만큼, 한글판 위키피디아가 미국의 칠면조 요리나 스테이크에 대해 상세한 번역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는 처럼 여겨진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내용의 양에서 뒤처진다고 하더라도 그 질에서는 어느 정도의 수준은 도달해야 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즉, 꼼꼼한 출처의 표기와 관련 정보의 소개나 링크를 하는 배려 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보를 아무렇게나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더욱 안타까운 사례들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특히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신문의 기사가 최소한의 기본을 갖추지도 않은 체 버젓이 기사화 되는 것을 보면서 기자들의 안일한 글쓰기가 곧 안일한 기자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각설하고, 미국에는 두개의 yahoo 사이트가 있다. 하나는 yahoo 본사인 yahoo.com 이며 다른 하나는 yahoo! telemundo(telemundo.yahoo.com)이 있다. yahoo! telemundo는 미국내의 스페인어 야후 사이트이다. 이 yahoo! telemundo가 어디에 있는 가하면 플로리다(Florida)의 하얄리아(Hialeah)라는 곳에 있다. 

그런데 이 하얄리아라는 지명이 부산에 있는 하얄리아 미군부대를 떠오르게 했다. 순간적으로 플로리다의 하얄리아가 부대의 명칭으로 쓰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야후 코리아에서 '하얄리아' 라는 단어로 검색을 하자  그다지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그중에 'DongA 디지털 스토리'(http://www.donga.com/fbin/output?rellink=1&code=af_&n=200506010331)가 하얄리아 부대에 대한 약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 아래는 바로 그 기사를 캡처한 화면이다.


 

위의 캡처 화면중에서 붉은 사각형 내 기사 부분을 보면 하얄리아의 부대명이 이 부대 초대 사령관의 고향 이름인 '베이스 하얄리아' 를 따서 지어졌다는 내용을 알 수 있다.

하얄리아(Hialeah)가 플로리다의 도시명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그와 유사한 '베이스 하얄리아' 가 있는지 약간은 의아했으나 'Base Hialeah' 'Vase Hialeah' 등으로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그러나 둘 다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 Base Hialeah로 검색을 하자 별 상관없는 자료들이 나타났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 Vase Hialeah로 검색을 하자 아예 자료가 검색되지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베이스 하얄리아' 라는 지명이 있을 지도 몰라 다음(daum)에서 '베이스 하얄리아'로 검색을 해보니 DongA.com 디지털 스토리의 그 연합뉴스 기사가 그대로 검색되어 나타났다. 잘못된 기사의 내용이 그대로 검색되는 것이 마치 불량식품이 수거되지 않고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다음에서 '베이스 하얄리아'로 검색한 결과를 보여주는 캡처 화면이다.


 
다음에서 '베이스 하얄리아'로 검색한 결과. 잘못된 내용의 기사가 그대로 검색되어 나타난다. 어디에도 베이스   하얄리아에 대한 정보가 없다(캡처 화면을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의 기사에 등장하는 '베이스 하얄리아' 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기자가 가장 기본적인 영문 표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정확한 정보를 버젓이 쓰고 있는 것이 언론의 현실이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런 사소한 것 하나에도 기본이 빠져있다면 다른 기사의 경우에는 어떠한지 미루어 짐작해 불 수 있지는 않을까? 만약 이 기사가 오류가 있다면 적어도 이 기사를 인용한 동아일보는 기사의 원래 작성자에게 기본적인 것을 물었어야 하고 그러고 나서 기사를 실어야 하는 것이 도리인 것이다. 기자와 언론에 기자 정신을 촉구한다! 


*아마도 추측컨데 '베이스 하얄리아' 는 '하얄리아 기지(미군부대)' 란 뜻인 것 같다. 이것을 기자가 '베이스 하얄리아' 라는 지명으로 쓴 듯 하다.

*실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실수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1 Comment 6
2008.09.28 02:17

MB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은 사주를 믿을까요?

아래의 월간중앙 기사는 MB를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딜레머가 아닐까요? 사탄의 사주에 나타나는 이명박의 운세가 과연 신의 뜻과는 어떻게 일치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이 기사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부정할까요? 아마 부정할 것입니다. 어떻게 철학관 원장이 예언한 사주를 하나님을 믿는 신의 양들이 믿을 수 있을까요?

대신, 아마도, MB 지지 기독교인들은 거룩한 하나님께서 지금은 MB를 시험함이요, 연단이며 시련을 내린 것으로 할 것이며 내일이라도 당장 MB에게 성령이 임할 것이며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뜻으로 인도 될 것이로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시련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사탄이 대한민국을 여전히 강력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교하리라고 추측합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이 망하면 사탄의 유혹 때문이며, 대한민국이 흥하면 하나님의 자녀 MB 장로의 순교적인 리더 때문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경우에도 MB의 잘못은 없게 되는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비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이 기사는 정치적, 사회적으로는 물론이고 종교적으로 상당한 연구 거리가 될 수 있는 자료처럼 여겨집니다. 또한 방송과 언론의 입장에서도 사례 연구로 가치있는 자료로 여겨집니다. 우선 이 기사를 쓴 오흥택 기자의 종교가 무엇보다도 궁금하고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그가 사주를 믿는지의 여부 또한 너무나도 궁금합니다. 

* 이 글은 그 관련된 자료들과 함께 계속 업데이트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주제들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개그의 주제나 술자리의 안주로도 유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기자와 정치권력과의 관계에 미치는 사주의 역할도 그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다. 심지어 정신분석학도 끼어질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손과 그 손을 맞잡고 있는, 그러나 또한 보이지 않는 정교하고 은폐된 권력 기생자들에 대해 그 휘황찬란한 무늬를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초라하게 작아지고 우리가 크지는 즐거움으로 고함도 한 번 쳐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기사에 분노와 더불어 약간의 고마움을 표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어쩐일인지 중앙일보 인터넷 판에는 유료로 볼 수있는 월간중앙 기사가 실려있습니다. 그것도 무단전재나 배포를 금지한다는 문구도 없이 올려져 있습니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입니다. 캡처를 하고 올리려고 하다가 기사 출처만 올립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3314155.html?ctg=1200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1 Comment 3
2008.09.28 01:19

MB, 내년까지 삼재...그래서, 뭐?

월간중앙 10월호에 참으로 기상 천외, 엽기적이며, 괴상망측한 기사가 올랐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MB 내년까지 ‘三災’2010년부터 빛 볼 운세” 로 조성우 삼공명리철학원장이 MB의 사주를 통해 MB정부의 앞날을 정밀하게 예언한 사주 결과를  월간중앙 오홍택 기자가 전해주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불후의 기사입니다. 아래는 월간중앙 인터넷판 캡처 화면입니다(아래 캠처 화면의 기사출처는 http://magazine.joins.com/monthly/article_view.asp?aid=275964 입니다)
 

월간중앙의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기사 일부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2
2008.09.27 17:55

MB, 내년까지 삼재...그래서?

국가를 개인사유화시키려는 발상도 아니고 이명박이라는 한 개인의 사주(점)에 의해서 대한민국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말인데 정말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그래 MB가 삼재를 벗어나면 대한민국은 그냥 쭉 쭉 뻣어나간다 이 말씀인가!  

한 철학원장의 운세 풀이가 중앙월간의 고품격 기사가 되고 또 나아가 조선일보의 기사가 되는 꼴을 보면서 참 이것이 언론인가 한심스러울 지경이다. 화가 너무 치민다. 아직도 이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가 부끄럽고 언론 아부쟁이들이 부끄럽고 이런 저속한 기사에 속아 넘어가는  일부의 국민들이 불쌍하다.


*무단 전재나 배포를 금한다기에 제목 언저리 조금만 캡처했습니다. 직접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5
2008.09.24 23:04

♥ 뒤죽 박죽 야후코리아



이미 이전의 글들 야후가 더 사랑스런 이유야후와 야후 코리아 비교에서 살펴보고 확인해 본 바와 같이 야후 코리아는 yahoo.com에 비해서 그 구성이 많이 난삽하고 혼란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yahoo.com보다 난삽하고 혼란스러운가 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아마 야후 코리아 관계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월치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워낙 현재의 구성에 네티즌들이 익숙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야후 사이트는 yahoo.com의 자회사로써 아무리 경영의 지역화를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yahoo.com의 체계적인 구성을 통해서 유익한 정보, 전문적인 기사, 오락을 균형감있게 동시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yahoo.com과의 비교가 아니라 야후 코리아 자체의 구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난삽하고 혼란스러운 야후 사이트에 익숙해왔는가를 확인해보고, 그러한 경계가 무너져버린(때로는 경계가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난삽하고 혼란스러운  야후 코리아 더 체계적이 되기를 바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야후 코리아의 가장 주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붉은 사각형 속의 탭들을 하나씩 클릭하면서 그 구성의 난삽함과 혼란스러움을 살펴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주요뉴스,맞춤뉴스, 스포츠, 연예, 재테크라는 용어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말장난처럼 여겨진다. 주요뉴스와 맞춤뉴스의 차이가 무엇인지, 또 스포츠와 연예 등은 뉴스에 포함이 되지 않는 것인지 아무리해도 알 수가 없다. 이미 이러한 용어상의 혼란에서부터 어지러움을 느낀다. 설상가상으로 위의 주요뉴스 탭에 마우스를 가져가면 아래의 캡처 이미지처럼 느닷없이 뉴스홈으로 바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 캡처 이미지의 주요뉴스 탭에 마우스를 가져가면 느닺없이 '뉴스홈' 으로 바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맞춤뉴스 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맞춤뉴스의 탭을 클릭하면 아래와 같은 맞춤뉴스 설명화면이 나오는데 이용패턴을 자동으로 추출하여 맞춤화 해놓은 뉴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주요뉴스와 맞춤뉴스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미디어에서 주요하다고 선별한 뉴스들과 네티즌들의 관심에 기반한 뉴스를 차별화시켜놓았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왜 이런 시도를 하는 지는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맞춤뉴스 탭을 클릭하면 맞춤뉴스 설명이 화면이 나타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맞춤뉴스 탭을 클릭하고 나타난 맞춤뉴스 설명화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예탭의 경우는 더 난삽하고 혼란스럽다. 위의 붉은 사각형의 연예탭을 클릭하면 아래의 캡처 이미지가 나타난다. 연예가 소식들이 어수선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위의 캡처 이미지에서 야후 연예 소식들이 뒤섞여 있다. 특히 '야후 콘텐츠 순위' 섹션은 언제나 연예뉴스로 도배가 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연예뉴스들이 콘텐츠의 상위에 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러나 아무리 양보해도 포털 사이트가 정보, 오락의 균형이 잡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니 반복하는 것이지만, 야후 코리아의 구성은 난삽하고 혼란스럽다. 또 중복되고 반복되어 낭비적인 부분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낭비들은 좀 과장되게 이야기 하자면 상업적인 의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야후 코리아는 대대적인 사이트 수술을 통해 비교해 보았듯이 Yahoo.com의 체계적 구성을 야후 코리아에도 적용해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14
2008.09.21 19:01

♥ 고흐의 유일한 누드화 <슬픔>



고흐의 유일한 누드화 <Sorrow)>(슬픔)



<Sorrow>(슬픔), 헤이그, 1882.검은 분필, 뮤지엄& 아트 갤러리


고흐(Gogh)하면 아마 <해바라기> 나 <별이 빛나는 밤> 등의 그림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아마도 고흐가 각고의 노력끝에 완성한 화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고흐는 풍경화를 많이 그렸지만 실제로 그의 작품들 중에는 서민들의 삶과 서민들의 모습을 그린 인물화 또한 많습니다.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이렇게 서민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감정들로 채워지던 그림들이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은 몽환적이고 화려한 풍경화와 <해바라기>같은 정물화와 <무도회장>의 화려한 인간군상 (인물화는 예외로 하고)으로 다소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그 중심에는 바로 고흐의 정신병이 자리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예를들면, <감자먹는 사람들>(1885)과 <별이 빛나는 밤>(1889)은 미술의 기법이나 작가의 심경 변화가 아무리 급격하게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4년이라는 시간 사이에 이토록 극과 극의 그림이 그려질 수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됩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변화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고흐의 정신병적인 이유 와 관련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떻게 보면 상반된 성격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가난한자, 불쌍한자들을 위한 기독교 정신과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찬미는 동시에 하나가 아닐까 해석해 보게도 됩니다. 프랑스 남부 아를르의 생제레미 병원에서 요양하면서 보기만 해도 미쳐버린다는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 그린 풍경들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고흐는 성직자가 되기 위해 보리나주의 광산에서 석탄을 캐내면서(1878.12 ~ 1879.7) 탄부들의 삶을 직접 체험합니다. 예수의 희생을 볻받는 삶을 살면서 고흐는 데생 습작을 절제합니다. 그러나 1879년에서 1880년 사이에 성직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데생 연습에만 몰두합니다. 1880년 7월에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렇게 성직자에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접어 들어 자살할때 까지 10년동안은 성에서 속으로 서서히 변화해 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리나주에서 브뤼셀로 떠나는 10월까지 고흐는 주로 광부들과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그립니다. 비록 고흐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지만 고흐의 마음 깊이에 흐르던 기독교의 복음주의와 박애의 정신은 이후 그의 그림의 기저에서 강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네델란드의 누에넨에 머물던 1884년에서 1885년에 이르는 겨울동안 농부들의 초상화 40여점을 그립니다. 이것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 여겨집니다. 이 그림들 중에 너무나도 유명한 <감자 먹는 사람들> 이 있습니다. 고흐 자신은 이 작품이야 말로 자신의 최초의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이 <감자 먹는 사람들>은 '관습적인 미화를 피하고 투박한 모습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또한 <씨뿌리는 사람>(1888)<낮잠>(1890)등의 농부들의 모습이나 <세켤레의 구두>(1886-1887, 고흐가 파리에 머무르면서 그린 5점의 구두 그림중 하나) 등 농부들의 낡은 구두 정물화들 또한 낭만주의적인 관습에서 벗어난 사실적인 투박성을 강조한 작품입니다.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은 네델란드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이후 1886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갑니다. 이 파리 시대와 함게 고흐의 미술사적인 중요성이 취급되고 있고 고흐의 진정한 탄생이라 일컫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1880년에서 1885년 사이의 기간도 나름대로 고흐에게는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기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특히 1882년 헤이그에서 고흐가 그린 <Sorrow>는 그의 성과 속이 미분화된 혼돈의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빈센트반 고흐는 1882년 1월에 정착한 헤이그에서 클라시나 호르니크 시엔(1850-1904)을 만납니다. 시엔은 창녀로 고호와 동거시에는 딸이 하나있었고 임신중이었습니다. 고흐는 그녀와 동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모델로 60여점의 데생과 수채화를 그립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위의 작품 <Sorrow>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 하단에는 "어찌하여 이 땅 위에 한 여인이 홀로 버려진 채 있는가?" 라는 미슐레의 글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시엔을 모델로 한 60여점의 데생이나 수채화 중에 누드화가 있겠지만 <Sorrow>가 유일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고흐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엔과 결혼하고자 했는데 비참한 상황에 처한 그녀를 구하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Sorrow>는 고뇌와 여성 순교자에 대한 진귀한 알레고리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880년에서 1885년 <감자먹는 사람들>까지가 네델란드의 시기로 성직자로서의 고흐와 화가로서의 고흐가 정신적으로 여전히 미분화의 상태로 남아있다면, 1886년 파리 입성에서부터 1890년 자살하기까지 기간은 화가로서의 고뇌와 정신병으로 인한 파탄으로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은 몽환적인 그림이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참고도서: 창해 ABC북 반고흐, 창해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어빙스톤, 까치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1 Comment 10
2008.09.04 21:56

야후(Yahoo.com)가 더 사랑스러운 이유




야후와 야후 코리아 첫인상 비교



순수한 맨 메인 vs 짙고 화려한 화장발 메인

가끔씩 야후(Yahoo.com)을 둘러볼 때마다 인상적인 것은 메인이 화려하지 않은 것이다. 색채도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어떤 확고한 원칙하에서 운영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 확고한 원칙이란 열린 공간의 지향이라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클릭을 통해 열고 들어가다 보면 그 내부는 폐쇄되고 제한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을지는 모르지만 메인이라는 첫인상은 상업주의보다는 적어도 정보와 교육을 배려하는 태도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인터넷 포털은 모든 세대에 노출된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다.

이러한 야후의 메인은 수많은 자극적인 사진들과 선정적인 제목들로  덕지덕지 도배가 되어있는 야후 코리아, 아니 야후 코리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포털 사이트들과는 품격이 다른 느낌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야후(yahoo.com)의 메인 이미지(미국 시간으로 9월 3일 메인중 하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야후 코리아(yahoo.co.kr)의 메인 이미지(9월 4일 메인 중 하나)



위에서도 이미 언급했듯이, 또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야후의 경우 메인 화면 자체가 모든 연령대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왼쪽에 세로로 나열되어 있는 카테고리 부분에 따로 아이들을 위한 '꾸러기' 카테고리가 없다. 그러나 야후 코리아의 경우 거기로 시작하는 카테고리 부분에 꾸러기라는 카테고리를 두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곧 꾸러기 카테고리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야후 코리아의 내용이 선정적이고 상업주의라는 것이다.

아래 이미지는 메인 화면의 왼쪽 상단의 카테고리 박스를 비교한 것이다. 야후 코리아에는 꾸러기 카데고리가 독립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야후와 야후 코리아의 상단 왼쪽 카테고리 박스를 비교한 이미지. 야후에는 꾸러기 카테고리가 따로 없다. 야후 코리아에는 꾸러기 카테고리가 따로 있다.

*다른 야후 사이트들의 경우

more..




야후와 야후 코리아의 메인을 비교한 첫인상은 여성의 얼굴에 비유한다면 야후는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이라면 야후 코리아는 성형은 물론 짙은 색조 화장을 진하게 한 모습이었다. 좀 더 속되게 이야기 하자면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유혹의 윙크를 날려대는 거리의 여자같은 첫인상이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첫인상은 야후가 훨씬 좋다.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5
2008.08.29 23:51

원정화, 탈북 간첩인가 섹시걸인가?




원정화 탈북간첩인가 섹시걸인가?



탈북 간첩 원정화 사건을 보도기사로 접했다. 이 사건은 안보공백에 대한 우려와 함께,  또 한편으로는 보도기사가 너무 일방적으로 성을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사건 자체를 선정적으로 다룬 것은  불만스러웠다.

따라서 사건을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원정화의 성로비, 성접촉에 촛점을 맞추면서 선정성이 사건의 본질처럼 변질 될 정도였다. 이것은 간첩으로 퍼진 위기의식의 조성과 더불어 선정성이 더해져 안보와 성산업이 합쳐진 듯한 이상한 사건처럼 보였다.
 

아래 원정화 사건 발표 기사는 그나마 차분하면서 균형감을 갖추고 있다. 만약 보도 기사를 쓸려면 이러한 공식적인 사건 발표의 내용을 근거로 차분하고 객관적이고 균형감있게 보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보도 기사들은 하나 같이 선정적인 제목을 붙이면서 원정화의 '성을 이용한 간첩 활동' 을 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파이낸셜 뉴스 8월27일자 <'성로비 간첩'...어떻게 활동했나>보도 기사 내용에 따르면 이번 간첩사건의 특징이 첫째, 위장 탈북 간첩 활동, 둘째, 성로비 포섭 활동, 셋째, 경제적 자립형 간첩이라고 열거하고 있지만 실제로 제목은 '성로비' 라는 단어로 장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제목을 단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성산업(섹스 산업)의 단맛을 보려거나 보고있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래 기사들의 제목들은 예외없이 성적인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나마 파이낸셜 뉴스 8월 27일자 <'성로비 간첩'...어떻게 활동했나>는 분석적 내용 마저도 거의 사라지고 없다. 간첩 보도는 차분하고 객관적이고 균형있게 보도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객관적인 대책이 나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행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도덕 불감증이나 섹스산업이 번창을 반영한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혹 이러한 행태가 우리 국민들의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비판적이고 자각적인 의식을 무디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공인인 기자로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선정적인 제목 더 감상하기

more..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4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