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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23:20

청와대에는 쥐가 있을까요?


Q.청와대에는 쥐가 서식할까요?


A.본사람 만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청와대에 쥐들이 서식한다면 국가와 국민을  상징하는 그 신성한 곳을 위하여 대책이 세워져야 하겠죠. 대통령님과 영부인의 건강을 위해서도 말이지요.







아주 어렸을 적 나는 참 궁금했답니다. 대통령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그땐 대통령이 별난 사람인줄 알았답니다.  청와대에는 목욕탕이 있는지. 또 이발소는 있는지. 그리고 대통령이 무엇을 먹는지. 옷은 어디에서 사서 입는지, 심지어 대통령의 화장실은 어떻게 생겼는지......하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궁금했었지요.

어린 시절의 추억입니다. 그런데 막상  청와대를 보여주는 한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청와대에도 쥐가 있을까 하는 어린 시절의 호기심 같은  궁금증이 몰려왔답니다. 문득 청와대의 정원인가요? 잔디밭인가요? 사실 시청앞  잔디 광장처럼 펼쳐저 있는 잔디밭에 쥐들이 있다는 건 좀 넌센스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청와대에서 쥐를 본 당사자가 아니라면 우리는 청와대에 쥐가 있을 것이라는 축측을 하기가 좀 어려워 집니다.



이미지 출처: http://cafe.daum.net/purunsanak/2i78/1536?docid=wrsH|2i78|1536|20081002214754
밤이면, 아니 낮이라도 저 잔디밭에서 쥐들이 뛰놀고 있을까?


만약 특급 호텔의 로비에 쥐가 나타났다면 난리가 나겠죠. 아니 객실의 침대 밑에서 쥐가 나온다면 이건 예사가 아닙니다.  그 특급호텔의 이미지는 실추할 것이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특급 호텔쯤 되면 쥐가 서식하기에는 아주 어려운 조건을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특급 호텔을 예로 들었지만,어쩌면 청와대에 쥐가 있다는 사실과 특급 호텔에 쥐가 있다는 사실과는 차별화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청와대는 잔디가 깔린 널직한 정원이 있어 쥐가 서식하기에는 안성맞춤입니다. 이렇게 숲에서 자란 쥐가 청와대의 넓은 문들을이나 창들을 통해 청와대 내부로 들어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청와대의 구석 어두 컴컴한 한 켠에서 보금자리를 틀어 새끼를 낳으며 번식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만약에 이러한 가정이 현실화 된다면 청와대에는 쥐가 득실거릴 것입니다. 쥐가 득실거리는 청와대는 상상하기 조차 어렵습니다. 국민을 대표하고 국가를 상징하는 청와대의 구석 구석에 쥐들이 서식하고 있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심각한 일일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는 달리 평소 위생 시설이 철저히 갖추어져 있다면 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국가의 상징이며 국민을 대표하는 청와대에 만약 쥐가 서식하고 있다면 이건 상징적인 의미에서 실망스럽습니다. 이렇듯 청와대에 쥐가 서식하지 못하도록 만반의 대책이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동화같은 호기심, 참 별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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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1 11:37

쥐잡기 운동 대책회의


과거엔 이런 회의도 있었군요. 이름하여 쥐잡기 운동 대책회의! 추억의 그 시절, 지나간 빛바랜 사진입니다. 너무나도 인상적인 쥐잡기 운동 대책회의 모습입니다. 쥐에 대한 자료들을 보고 필기까지 하는 참석자들의 진지한 모습에서 반드시 쥐잡기 운동을 성공시키려는 강한 결의가 묻어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쥐잡기 운동 대책회의 이미지 출처:http://wow.seoul.go.kr/wow/pho


http://kr.blog.yahoo.com/ekfvoddl2002/362.html

1953년 쥐잡기운동



50, 60, 70년대의 쥐잡기 운동이 다시 부활하여, 40여년만에 서울 한복판, 그것도 정치의 1번지라는 종로에서 쥐잡기 운동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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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0 11:28

다시 보는 쥐잡기 운동




http://www.flickr.com/photos/happiestplaceonearth2005/231859192/

멀리 중앙에 쥐교(Ratolic) 교주 탄생 50주년을 알리는 꽃 장식물 위에 교주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도 가까이서 찍지 못하도록 인간의 벽을 쌓고있다. 인간의 위에 군림 하는 선량한 쥐의 탈을 쓴 쥐새끼가 가증스럽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쥐는 아주 악착같은 동물입니다. 집의 천장을 뚫고 침대로 뚝 떨어진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천장에 붙어있는 플라스틱 환풍기를 갉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설마 그걸 뚫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너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두 이빨로 무언가를 한 번 갉기 시작하면 아주 끝을 보는 특성이 있습니다. 쥐의 앞 이빨은 평생동안 자라기 때문에 갉지 않으면 입 천장을 뚫게 되어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되기 때문입니다. 경계심과 겁이 많은 동물이지만 더럽고 지저분한 환경에서 인간과 더불어 살아오다 보니 생존의 기술 만큼은 탁월합니다. 황량한 사막에서 조차 생존할 수 있는 모래쥐가 그렇습니다. 또한 남극에서 쥐를 보았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쥐의 생존력은 추위 마저도 극복하지 않을까 합니다(난파선에서 옮겨진 듯.) 남극에서 천적이 없이 살아간다면 머지 않는 미래(?)에 괴물로 진화하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북극에서는 레밍이라는 쥐가 서식합니다. 실제로 실험용 동물로 쥐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번식력뿐만 아니라 쥐의 DNA가 인간과 유사한하기 때문입니다. 집쥐의 경우 인간과 함께 살아가다 보니 인간에 대한 정보가 탁월하게 축척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래의 포스트는 이전에 올린 것을 다시 올립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과거에 쥐는 주식을 축내는 도둑이었고,
의약품이 부족하던 과거에 쥐는 역병을 돌게하는 더러운 존재였다.

경제가 발전해 먹을 것 걱정없는 이제,
의학이 발달해 쥐가 옮기는 전염병이야 쉬 고쳐지는 이제.
문득 쥐들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쌀뒤주를 갉던 그 쥐들 사라졌지만
그 유전자를 고스란히 이어 받은 오늘날의 쥐들은
여전히 세상속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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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잡기 포스터 그리기 대회 입상자 수상 이미지 출처:http://wow.seoul.go.kr/wow/pho[원출처:서울시 언론담당관, 촬영일:197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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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잡기 운동 대책회의 이미지 출처:http://wow.seoul.go.kr/wow/p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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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http://kr.fun.yahoo.com/NB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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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http://kr.fun.yahoo.com/NB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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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kr.fun.yahoo.com/NBBS/n


쥐는 쥐덫, 쥐끈끈이,쥐약 심지어 방망이로 잡았다. 학생들은 쥐를 잡아 그 증거로 쥐꼬리를 잘라 학교에 가져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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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를 잡던 방망이의 이미지가 없어 야구방망이 이미지를 사용했다.(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미지출처:스포츠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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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눈에 보이는 실리를 위해 조심없이 덤비다 화를 자초한 쥐들. 눈에 보이는 실용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가치들도 아주 중요하다는 교훈을 깨우쳐 준다. 이미지출처:http://kr.fun.yahoo.com/NB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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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http://kr.blog.yahoo.com/kim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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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kr.fun.yahoo.com/NB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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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www.HANK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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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들이 큰소리를 쳐대는 요상한 세상 이미지출처:한겨레 신문



이제 쌀 뒤주도 옛 것으로로 사라진 지금 뒤주 대신 쥐들은 무엇을 노리고 있을까요.
이제 뒤주를 대신하는 것들이 무엇이던 간에 우리 마음 속 뒤주를 꼭 쥐들로 부터, 수퍼 쥐들로부터,
인간의 모습을 한 신종 변형 쥐들로 부터 지켜야 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지 출처:http://kr.blog.yahoo.com/kimho



소중한 우리의 마음 속 뒤주 옛날의 그 소박한 쥐들이 아닌 교묘하고 영악한 쥐들로부터 우리가 지켜야 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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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19:34

세계의 누드 비치


여름을 맞아 피서 특집입니다. 찾다 보니 사진을 그다지 많이 모으지 못했습니다. 시간되는 대로 성별(?), 국가별, 대륙별 등등으로 누드 비치를 업데이트 하고 싶지만......



http://www.greece-nudist-beaches.com/
 


http://www.greece-nudist-beaches.com/skiathos-beaches/



*위의 사진중 출처가 있는 외의 사진들의 출처는 영문판 위키피디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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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03:00

해운대 해수욕장 vs 누드 비치



요즘 여름이 다가온 듯 무덥습니다. 계절의 여왕 5월도 이 때이른 무더위에 어디론가 훌쩍 피서를 떠난 듯 합니다. 아마 그녀의 목적지가 바다일 것 같습니다. 아니 산일 것 같습니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여왕 대접 제대로 받지 못하는 슬픔에 궁전에 틀어 박혀 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부터 파리 모기까지 극성이니 여왕의 품위가 말이 아닙니다. 


아무튼 이제부터 해운대 해변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합니다. 7월, 8월에서 대통령, 국회의원 투표에도 항상 기권했을 사람들을 포함하지 않으면 그토록 많은 성원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군중이 형성됩니다. 하지만 이 해변의 인파들은 촛불이나 집회와는 별 상관이 없는 자연에 몸을 내던지고 싶어하는 예술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교양있고 세련된 행위 예술가들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경찰 병력이야 주차 단속이나 야간 음주 운전 때로는 수상 안전과 미아 예방 및 분실 신고에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소매치기나 폭행등의 범죄 예방 정도일 것 같습니다.


혼자 만의 생각입니다만, 해운대 해수욕장을 해운대 누드 비치 로 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아래 사진으로 오해할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말하는 누드 비치는 자연 그대로의 해변을 의미합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길. (낚기셨다구요.) 참 로맨틱한 생각이긴 합니다만, 받아들이는 분들의 취향에 따라서 로맨틱이 아니라 황당하고, 엽기적이고, 기분 나쁘고 재수 없는 생각으로 추락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혹 제가 좀 이상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Fuerteventura, Spain. 사람은 누드지만 해변은 사람들을 털어내고 싶을 것입니다.



스페인의 한 누드 해변. 이 정도라면  사람과 해변이 함께 누드로 일체가 된 모습. 과연 여자는 몇 사람 일까?



Praia do Abricó, Brazil. 거의 파라다이스의 수준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해운대 해수욕장은  매년 여름만 되면 전국에서 몰려드는 피서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마치 거대한 공중 목욕탕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또 거대한 쓰레기통 같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재차 말씀 드리지만 순전히 제 개인적인 인상입니다. 저렇게 사람들이 많아 불편하고 짜증내는 곳을 왜 사람들이 모여들까 하고 해 마다 생각합니다만, "그건 니 생각이고" 하고 반박할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틈새에서 부대끼는 재미, 그리고 물로 뛰어드는 시원함과  바다의 확트인 느낌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틈새에서 부딪기는 사람들의 살가움과 바다에서의 자유로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빗어내는 희열을 "네가 아냐"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거의 누드에 가까운 해운대 백사장
 


해운대 해수욕장의 체모에 해당하는 해운대 해수욕장 뒷편에 있는 송림공원의 소나무들
 


거의 누드로 싱그러운 모래 살깣을 드러내고 있는 해운대 해변. 멀리 달맞이 언덕이 보입니다
 

이렇게 여름이 지나고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마치 이제는 바다가 신물 나게 싫다는 듯 아니면 아쉬운 마음으로 태양에 탄 얼굴에 하얀 이가 드러나는 완소를 지으며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이러한 대형 공중 목욕탕이나 쓰레기통의 인상은 조금은 가시겠지만, 여전히 해운대 해변의 뽀얀 살갗에는 수많은 상처들이 남습니다. 온갖 피부병으로 고생합니다. 해운대 해변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고역스럽겠습니까? 어휴, 불쌍한 해운대 해변 " 언제 허락했다고 추잡한 알몸들을 비벼대고 x랄들이냐!" 하고 고함을 내지를지도 모릅니다.



백사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해운대 해수욕장
이미지 출처: [한겨레] 2008년 08월 03일(일) 오후 10:16http://kr.news.yahoo.com/servi




중국의 풀장 또는 해수욕장?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 이건 해수욕장이 거의 압사 직전입니다.
이미지 출처:http://www.joystart.com/24029
 


곧이어 9월 해운대 해변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갈 때쯤 부산 비엔날레가 열리면서 해운대와 광안리 백사장 위에 세계적인 미술가, 조각가들의 설치 작품들이 전시를 위해 찾아옵니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 자리에 예술 작품들이 그 백사장에 자태를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참 역설적입니다. 상처받은(?) 해운대 해수욕장(광안리 해수욕장도 포함해서)을 위안하고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예술적인 안정제인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수십만 수백만의 인파가 몰려든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의 찌는 여름이 서서히 지나가면서 선선한 가을 바람과 함께 그 작품들이 백사장을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올해는 어떤 작품들이 설치 될지는 모르지만 기대가 됩니다. 이렇게 바다는 약간 쓸쓸하고 조용해 집니다. 자연의 제자리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겨울 바다가 좋은 이유도 바로 이래서 일겁니다.


부산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예술축제로 재작년 2008년도의 대회 주제는 <낭비>였습니다. <낭비>라는 말을 되돌이켜 보니 왠지 쓸쓸한 해운대의 바다가 더 쓸쓸해지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해운대 자체가 쓸쓸함을 잉태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러한 감정은 자조 띤 쓸쓸함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데, 밤낮 흥청망정 불야성을  이루는 인간들의 소비에 둘러싸인 자연으로써의 해운대 백사장과 푸른 바다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낭비>는 좀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런 괜한 감정은 털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광안리 해변에 설치된 비엔날레 출품 조형물
이미지 출처:http://cafe.daum.net/yunyang31/AkRs/172?docid=16CI7|AkRs|172|20081007230301



자 이제 쓸데 없는 사설은 그만두고, 과연 해운대 해수욕장을 해운대 누드 비치로 탈바꿈 하는 것이 어떤가에 대한 생각으로 자판기 키보드를 방향 전환하고자 합니다. 해운대 누드 비치화가 가능할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제가 말하는 누드 비치는 자연 그대로의 해변을 의미합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길. 확신컨대, 현실적으로 올해도, 내년도 앞으로 지구가 멸망할때까지 불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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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4 01:31

정화의 배와 남해 대원정




유럽의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가마, 그리고 마젤란등의 이름에 익숙한 이들에게 명 성조의 환관으로 1405년부터 1433년까지 '남해 대원정'를 이끌었던 정화(鄭和,Zhèng Hé 1371년~1434년)는 낯선 이름인지 모르겠다. 정화를 기억하는 이들도 콜롬버스나 바스코 다가마, 마젤란 처럼 위대한 항해가나 신대륙의 발견자 같은 별칭을 붙이는데 주저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역시 역사란 그 결과를 중시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화가 아무리 27년 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동남아시아와 인도, 그리고 페르시아까지 항해했으며 심지어 그의 분견대는 아프리카의 케냐 말린디까지 항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가져다 준것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가려져 버리고 만다.  


정화의 대원정 루트들: http://www.lcsd.gov.hk/ce/Museum/History/en/rteachingkits_route_zhenghe.php


만약 정화가 신대륙을 먼저 발견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 역사가 못내 안타깝다. 서구 문명의 식민주의에 점철된 동양의 역사이고 보면 더욱 그런 아쉬움이 남는다. 신대륙에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세력이 존재했더라면 서구의 식민주의와 대량의 학살과 문명 파괴, 그리고 착취가 존재했을까?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럴 개연성은 높다고 볼 수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이나 남미의 원주민들에게 중국인들이 백인들에 비해서는 그다지 이질적이도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필자의 추측일 뿐이다. 



우선 정화의 함대와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가마, 그리고 세계 일주를 한 마젤란의 함대의 규모를 비교해 보면 정화의 함대가 얼마나 큰 규모 였던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정화의 함대는 27,000명 내외의 승무원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선박의 수도 60여척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콜럼버스의 함대는 3척의  배에 승무원이 120명(88명이라고도 함)에 불과했다. 바스코 다가마의 함대도 배 4척(3척 이라고도 함)에 170명이었다. 마젤란의 함대의 경우는 배 5척에 265명의 승무원이 전부였다.  이러한 규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화의 함대는 왜 세계를 제패하는 힘의 원천이 되지 못했을까?


정화의 배와 콜럼버스의 산타 마리아호의 비교. 정화의 배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Zheng_He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주제로 한 <1492년>이란 영화를 보면 콜럼버스는 대단한 모험가였음을 알 수 있다. 영화에 의하면 이미 이 시기에 콜럼버스는 지동설을 믿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1520~1530년경에 집필이 되는 데 이것은 종교적인 엄격함 때문에 늦추어진 것인지도 모르며,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은밀하게 지동설이 신봉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기는 또한 지동설과 더불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을 잉태하는 새로운 종교 운동의 기운이 팽배하고 있을 즈음이다. 또한 과학적인 혁명이 싹트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영화 <1492년>에 의하면 콜럼버스가 기존의 종교적인 세계와 상당히 많은 마찰과 갈등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콜럼버스의 항해는 천문학, 합리적인 과학 지식, 지동설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가능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개인적인 모험 및 상업적인 이익이 큰 동기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 당시 몽고 제국과의 교역을 통한 막대한 이익이 많은 대상들과 항구, 무역 도시의 팽창을 가져오고 있었다. 즉, 지구가 둥글다는 지동설에 대한 믿음과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통한 상업적인 이익에 대한 기대가 유럽의 항해를 촉발시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당시 원나라와 그 뒤를 이은 명나라의 중앙 통제적인 경직된 무역과는 달리 유럽은 개인이 중심이 되어 이익을 추구하는 과장되게 말해서 독점적 자본주의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개인적인 이익 추구가 능동적이고 끈질기다는 측면에서 유럽의 여러 항해들의 성격을 규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flungingpictures/2045333854/


유럽과는 달리 중국 명나라 정화의 '남해 대원정' 은 그 엄청난 규모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정화의 대원정은 정치적임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고 지동설과 같은 합리적인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았다. 물론 개인적인 이익 추구라는 동기도 희박했다. 또한 몽골의 원나라를 이은 명나라는 원의 코스모폴리탄적인 개방성과는 달리 민간인들의 대외 무역을 금지하고 무역을 정부의 조공무역으로 제한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항해에 치명적인 조치는 해금령이었다. 이 해금령이야 말로 동양과 서양의 무역을 급격하게 줄이며 중국을 페쇄의 대륙으로 이끌어 갔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한계에서 이루어진 정화의 대원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화의 배
http://www.flickr.com/photos/thevortext/66122999/



정화에 대한 정보 참조:http://ko.wikipedia.org/wiki/%EC%A0%95%ED%99%94_(%EB%AA%85)
                               http://en.wikipedia.org/wiki/Zheng_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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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6 23:05

극과 극, 돼지 올림픽 VS 젖먹이 돼지 요리





돼지 올림픽


돼지 올림픽은 특별하게 사육되고 훈련된 새끼돼지들에 의해서 조직된 스포츠 행사입니다. 2005년 대회는 중국에서, 2006년 대회는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열렸으며 2009년도에 다음 대회가 열릴 예정입니다(2007,2008년 대회에 대한 언급은 없어서 이건 좀 알아봐야 할 듯...) 대회의 종목들은 돼지 달리기(장애물 코스를 넘는), 돼지 수영(2006년 돼지 올림픽에 채택되었음), 축구와 흡사한 돼지볼(pigball 또는 swineball)이다. 게임에 참가하는 새끼돼지들은 식용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대신 다음 세대의 돼지 경기자들을 위해 사육된다.


이미지 출처:http://en.wikipedia.org/wiki/Pig_racing



이미지 출처:http://www.flickr.com/photos/chinapix/98687777/



이미지출처:
http://news.bbc.co.uk/media/images/41224000/jpg/_41224087_pigball4_ap.jpg





젖먹이 돼지 요리


젖먹이 돼지는 어미의 우유를 먹고 있는 어린 돼지로  이 어린 새끼 돼지가 요리로 사용된다. 2주에서 6주 된 새끼 돼지를 잡는데 요리된 새끼 돼지는 특별한 행사에 준비가 된다. 젖먹이 돼지의 살은  색이 옅고 부드럽다. 껍질은 바삭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린 돼지에 있는 콜라겐의 양 때문에 고기의 조직이 다소 젤리처럼 느껴진다. 아래 사진은 젖먹이 돼지를 통채로 요리한 것으로 몇가지 예에 불과하다



lechón, 젖먹이 돼지를 통채로 구운 필리핀의 요리
 
 


중국요리에 쓰인 젖먹이 돼지



어린 돼지를 놀이의 도구로, 심지어 젖먹이 돼지를 요리해 먹는 인간이 잔인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살아서 귀여움을 받는 올림픽 출전 돼지들과 요리되어 있는 젖먹이 돼지의 삶은 참 극과 극 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위의 글 내용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Pig_Olympics 
위의 이미지들 중에 개별적인 출처가 달려있지 않는 것은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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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9 01:16

골프(Golf)의 기원은 중국?







골프의 기원은 12세기 스코틀랜드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골프와 같은 게임이 네델란드에서 1297년 2월 26일 치러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집트의 상형문자에 골프와 흡사한 형태의 기록이 있다고 학자들이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골프가 중국에서 기원했을 지도 모른다는 최근의 증거와 논쟁입니다. 란조우 대학(Lanzhou University)의 링 홍링 ( Ling Hongling )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골프가 중국으로 부터 유럽으로 전해졌으며 이후 중세 말엽에 몽골 여행자들에 의해 스코틀랜드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중국에 존재했던 골프 같은 게임에 대한 최근의 증거

2005년 4월에 골프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란조우 대학의 링홍링 교수에 의해 밝혀진 최근의 증거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보다 500년 앞서 현대의 골프와 유사한 게임이  남당(
Southern Tang Dynasty) 이래로 중국에서 행해졌다고 합니다.

추환(chuíwán)을 즐기는 명나라 황제 선덕제
 
 


이미지 출처: http://www.associna.com/modules.php?name=News&file=article&sid=375



송나라의 동헌록(東軒錄, Dōngxuān Records )에 따르면, 추환(捶丸, chuíwán ) 이라고 불리는 게임을 묘사하고 있으며 또한 그 게임의 그림들을 싣고 있습니다. 이 골프와 유사한 추환은 드라이버, 2번 우드, 3번 우드에 해당하는 쿠안방(cuanbang), 푸방(pubang), 샤오방(shaobang)을 포함하는 10개의 클럽(골프에서의 클럽에 해당)을 가지고 진행이 됩니다. 중국의 고문서는 한 남송의 관리가 그의 딸에게 목표지점으로써 홀들(holes)을 파라고 했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골프와 유사한 이 추환이 유럽으로 전해지고, 또 몽고인들을 통해 스코틀랜드로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xabusiness.com/china-stamps-1986/t113.htm




이미지 출처:http://www.chine-informations.com/guide/la-chine-aurait-elle-invente-le-golf_1588.html



이 주장은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 됩니다. 중국을 통해 종이와 인쇄술, 화약등이 유럽으로 전해지고 몽골을 통해 미술, 천, 향로, 심지어 마르코 폴로에 의해 <동방견문록>이 쓰여지고 그 동방견문록을 콜롬버스가 항해의 자료로 사용하면서 신대륙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등으로 판단해 보면 중국에서 기원한 골프가 유럽으로 전파되었다는 주장이 전혀 터무니 없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골프의 기원이 중국이라면 유럽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일까요?
 

출처가 표시되지 않은 위의 이미지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golf
참고 사이트: http://ko.wikipedia.org/wiki/%EA%B3%A8%ED%94%84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golf
                  http://www.golf-information.info/asian-origin-of-golf.html
                  http://www.la84foundation.org/SportsLibrary/ASSH%20Bulletins/No%2014/ASSHBulletin14c.pdf
                  http://www.seattlepi.com/othersports/255299_sportsbeat12.html
                  http://en.wikipedia.org/wiki/Chui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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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5 00:14

처형 도구로 쓰였던 코끼리





처형 도구로 쓰였던 코끼리, 처형된 코끼리들


코끼리를 이용한 처형은 수 천년 동안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특히 인도에서 처형의 흔한 방법이었습니다. 아시아 코끼리들이 공개적으로 죄수를 짖누르고, 사지를 절단하고, 고문하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코끼리들은 즉시 죄수를 죽이거나 긴 시간에 걸쳐 천천히 고문하는 하도록 훈련을 받았습니다.  왕족에 의해 이용되면서, 코끼리는 절대적인 권력과 야생 동물을 통제할 수 있는 지배자의 능력을 상징했습니다. 성질이 온순한 인도 코끼리를 처형의 도구나 권력의 상징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안쓰럽습니다.



실론(Ceylon)에서 코끼리에 의해서 사지가 찢기고 있는 죄수의 그림. Robert Knox (1681)의 책  An Historical Relation of the Island Ceylon 에서 발췌한 그림
 
 



1868년에 여행과 모험을 다룬 프랑스의 저널지 Le Tour du Monde 에 실린 Louis Rousselet 의 그림
 




처형된 코끼리들


처형의 도구로 사용된 코끼리와는 반대로 처형을 당한 코끼리들도 있습니다. 주로 동물원이나 서커스의 코끼리들로 사육사나 조련사를 죽여 처형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메리는(Mary) 는 서커스에서 공연하는 5톤 무게의 아시아 코끼리입니다. 메리의 죽음은 20세기 초 동안 서커스의 동물 학대에 대한 교훈적인 이야기(a cautionary tale )로 종종 해석이 되고 있습니다.

1916년 9월 11일에, 레드 엘드리지( Red Eldridge)라는 호텔 종업원이 서커스단에 코끼리 조련사 보조로 고용이 됩니다. 9월 12일 저녁에 그는 메리를 근처의 연못으로 데리고 가는 도중에 테네시 주, 킹스폴트( Kingsport, Tennessee )에서 살해 됩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이 있는데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설명은  그가 메리를 심하게 학대했다는 것입니다.  






탑시(Topsy) 는 서커스단에서 사육된 암컷 코끼리입니다. 이 탑시 또한 조련사로 부터 심하게 학대를 받습니다. 탑시는 (불이 붙은 담배 꽁초를 먹이려고 한 학대를 일삼는 조련사를 포함해서) 3명의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위협으로 간주되어 1903년 1월 4일에 전기처형을 당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이 이 처형 장면을 필름에 담았습니다. 에디슨은 코끼리 전기처형( Electrocuting an Elephant) 이라는 제목으로 그 해 말에 그 필름을  공개했습니다

처음 탑시를 처형하기 위해 논의된 수단은 교수형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물들에 대한 잔혹한 행위 예방을 위한 미국 협회(American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가 항의를 했고 다른 방법이 고려되었습니다.  당시 에디슨은  1890년 이래로 인간들의 처형 도구로 사용되던 전기처형을 제안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the.honoluluadvertiser.com/dailypix/2004/Aug/20/ln19a.jpg

타이크(Tyke)는 1994년 8월 20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서커스 공연중 공포에 질린 수백명의 관객들 앞에서 그녀의 조련사인Allen Campbell 을 죽이고  그녀의 짝을 심한 상처를 입혀 피로 물들게 했습니다. 타이크는 공연장을 뛰쳐나가 30여분 동안 카카아코(Kakaako) 도심지를 활보했습니다.  경찰은 타이크에게 86발의 총격 을 가했고 타이크는 마침내 쓰러져 죽었습니다.






이미지출처: http://www.upali.ch/bilder1/ziggy.jpg



이미지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8396406@N03/1309159772/

지기(Ziggy) 는 1936년에서 1975년까지 시카고 외곽 브룩 필드 동물원(Brookfield Zoo )에서 살았던 숫컷 인도 코끼리입니다.  지기는 6톤의 무게에 10피트 이상의 크기였습니다. 1941년에 그의 조련사를 공격해 거의 빈사 상태에 빠트린 후에, 지기는 폐쇄된 공간의 벽에 사슬로 묶여 거의 30년을 그곳에 갇혀 지냈습니다.  지기의 속박은 1960년대 말 유명한 재판 사건(cause célèbre)이 되었습니다. 당시 어린 학생들과 동물 애호가들(enthusiasts)지기의 석방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지기는 1970년에 잠깐 외부로 나가도록 허용이 되었고, 1년 뒤 브룩필드 동물원은 지기를 위해 특별하게 고안된 새로운 옥외 시설을 완공했습니다. 그러나 지기는 단지 몇 년 간의 자유만을 누린 채 1975년 숨을 거두었습니다. 






처니의 죽음을 묘사한 익명의 만화(1826년)



처니(Chunee or Chuny) 는 1809년 혹은 1810년, Regency London[<英역사〉 (Prince of Wales의) 섭정 시대(1811-20)] 시기의 영국으로 건너 온 인도 코끼리입니다. 처니는 원래 코벤트 가든 극장(Covent Garden Theatre) 에 전시되었으나,  서커스의 소유주 스테파니 폴리토(Stephani Polito)에 의해 런던 스트랜드가( the Strand )의 엑세터 익스체인지(Exeter Exchange )에 있는 서커스용 동물 사육소로  옮겨집니다. 1817년에 에드워드 크로스( Edward Cross)가 서커스용 동물 사육소를 인수합니다. 그 후 처니가 1826년에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유명한 재판 사건(cause célèbre)이 되었습니다. 처니는 말년에 조련사조차도 다루기 힘들 정도로 흉포하게 되어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 이유는 썩은 상아로 인한 치통으로 악화된 1년간의 발작 때문이었습니다. 조련사가 독을 탄 먹이를 주어 독살하려고 하였지만 먹지 않고 실패하자, 결국 군인들이 사살합니다. 이 사살에 사용된 무기가 구식 소총(musket)입니다. 처니는 152발의 머스킷 탄환을 맞고 죽지 않아 마침내 조련사가 작살 또는 칼로 찔러 숨을 끊습니다.



*위의 글 내용은 위키피디아 영문판을 참조하였으며 이미지들 중에 출처가 적힌 것을 제외한 모든 이미지들의 출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Crushing_by_elephant
http://en.wikipedia.org/wiki/Chunee
http://en.wikipedia.org/wiki/Mary_(eleph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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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30 18:04

우리나라에는 소련제 탱크가 있다?




우리나라에 소련제 탱크가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1990년 소련(USSR)이 붕괴되면서 이전에  빌려주었던 13억 달러 차관을 대신에 돌려받은 현물인 셈입니다. 1996년과 1997년 사이에 받은 33대의 T-80U MBT 와 2005년에 받은 2대의  T-80UK 가 바로 그것입니다. 원래는 80대의 T-80U MBT를 받기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소련제 T-80U
이미지 출처: http://fofanov.armor.kiev.ua/Tanks/MBT/t-80.html



이미지 출처:http://www.armyrecognition.com/Russe/vehicules_lourds/T_80U/T-80U_Russie_description.htm



T-80UK 이미지 바로가기:http://www.military-today.com/tanks/t80u_images.htm

 


참고로 현재 1000기에 달하는 천마호(원형이 T-62)와 함께 북한이 제조한 주력 탱크는 300여대에 달하는  '폭풍호' 로 1990년대에 개발된 북한군 특유의 기종입니다. 이 폭풍호는 T-72 핵심적인 기술을 근간으로 T-80, T-90의 기술과 중국의 기술력(Type 88 탱크로부터 얻었다고 알려진)을 사용하여 T-90에 상응하는 탱크를 제조하려는 목표로 제조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1990년 소련의 해체 후 상당히 많은 수의 T-72 가 사용 중지되면서 고철용으로 해체되었는데 이 고철이 된 T-72를 구입해 분해작업을 통해 '폭풍호' 제작에 사용하는 핵심적인 기술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2001년 8월에 김정일이 러시아를 방문하는 동안 T-90을 생산하는 옴스크 트랜스매쉬 방위 공장(the Omsk TransMash defense plant )을 들러 T-90S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기간에 T-90 1대를 들여 온 것으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북한은 T-90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T-72를 개량하기 위해 T-90S를 사용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천마호의 원형이 되는 소련제 T-62
이미지 출처:http://en.wikipedia.org/wiki/File:T62.jpg
 
 
 


소련제 T-72 북한의 '폭풍호' 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제 T-90. 폭풍호의 외관이 이와 흡사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미지출처:http://en.wikipedia.org/wiki/P%27okpoo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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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6 23:14

역사에 흔적을 남긴 배들




정복의 역사를 이야기 하자면, 기동성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칭기즈 칸의 제국은 기병의 기동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몽골제국의 쇠락은 유목민의 삶에서 정착을 택한 삶의 방식 변화에서 이미 그 싹을 잉태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원나라, 킵착한국, 일한국 등은 유목민의 기동성을 상실하고 정착을 선택함으로써 숫적으로 열세인 몽골의 몰락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의 전격전(Blitz)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히틀러의 전격전(Blitz)은 몽골군의 군사전술에서 차용한 것으로 용어의 뜻 그대로 기동성괴 집중성을 의미합니다. 몽골군의 전술과 관련하여 또 재미있는 것은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침공에 쏘련이 보여준 전술, 즉 점령지를 태우고 후퇴하는 전술도 일종의 몽골군의 '작전상 후퇴' 전술의 변형이랄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진격에 대한 쏘련의 전술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몽골군의 경우 적을 침공할 때 중앙을 가장 약한 자들과 외국인들을 배치하고 양쪽으로 정예군을 배치하여 중앙이 뚫려 후퇴하는 척 하면서 양쪽의 정예군이 추격하는 적을 포위하는 식이었습니다. 또한 달리는 말에서 뒤로 돌아 화살을 쏘는(배사) 기술이 능란한 것도 이러한 전술을 아주 효율적으로 기능하도록 했습니다.

이후 기병에 의한 기동성은 또 다른 기동성을 상징하는 화포에 의해 대체가 됩니다. 화포는 말이나 화살보다 훨씬 더 빠른 기동성과 함께 파괴력을 갖습니다. 이러한 화포가 배로 운반되어 대륙을 정복하는 무서운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유럽인들의 배와 화포를 통한 대륙의 정복과 약탈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이 바로 배로 운반된 화포의 위력 앞에 식민지 정복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과거 칭기즈 칸이 이루어 놓았던 제국이 유럽의 수많은 화포와 배들에 의해 하나의 시대적인 현상으로 '제국주의'를 잉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화포와 배는 인류의 문명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배가 정복의 역사와 관련된 것만은 아닙니다. 위에서 배를 언급한 것은 대륙과 대륙을 이어주는 수단과 함께, 동시에 화포를 운반하는 수단, 즉 기동성 그 자체이며 기동성(화포)을 운반하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정복의 역사와 함께 배를 언급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정복의 역사라는 한계를 넘어 배의 다른 기능과 용도의 관점에서도 배에 대해 알아 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일 것입니다. 타이타닉, 인듀어런스 등의 배들이 그렇습니다. 이 포스트는 이러한 흥미있는 배들을 임의적으로 소개해 보자는 의도에서 만들어 본 것입니다.


거북선 모형



16세기 거북선 묘사도
 
 



콜럼버스의 산타 마리아호(the Santa Maria) 모형


Santa Clara(The Niña)

La Pinta


 
콜럼버스의 산타 마리아호와 함께 했던 두 대의 배들
 
 
 



정화(Zheng He)의 보물선 모형



정화의 보물선과 산타 마리아호의 크기 비교. 큰 배가 정화의 보물선이다.
 
 



마젤란의 빅토리아호(The Victoria)
 
 
 



노예선 아미스타드호(The Amistad)



아미스타드 호에서의 흑인의 의거. 이 의거는 흑인 노예 해방의 기폭제가 된다.
 
 
 



노예선 브룩호의 흑인 노예 배치도



비글호(HMS Beagle). 찰스 다윈이 승선했던 역사적인 배

 




타이타닉호(The RMS Titanic)

 




인듀어런스호(The Endurance). 남극의 빙하에 갇혀 2년에 가까운 고통스런 기간 동안 그 선원들은 모두 살아남은 기적을 이룬 쇄빙선









 
로르망디 상륙 당시의 LCVP(Landing Craft, Vehicle, Personnel)
 





미국대륙 최초의 이민자들인 청교도들의 메이 플라워. 플리머스 항의 메이플라워호(Mayflower in Plymouth Harbor by William Halsall, 1882)






The SS Savannah호의 그림.  대서양을 횡단한 최초의 증기선(비록 증기선이기는 했지만 돛으로 운행한 부분이 압도적으로 컸다)





U-Boat. 제 1,2차 대전 당시에 사용된 독일 잠수함
 





Great Western . 최초로 대서양 횡단선이라는 특정 목적을 가지고 건조된 대형 증기선


2008/04/10 - [생각 돌아보기] - 인듀어런스호와 새클턴
2009/03/16 - [영화] - 포스터로 보는 타이타닉
2009/03/15 - [여행] - 후쿠오카 자유여행(1.선상에서)
2009/03/04 - [알아봅시다] - 다시 듣는 타이타닉 밴드 & 음악


 
*위 이미지들의 출처는 영문판 위키피디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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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8 18:23

돼질라를 아시나요?

2009/03/18 - [알아봅시다] - 돼질라를 아시나요?
2009/03/09 - [분류 전체보기] - 수염난 돼지를 아시나요?




돼질라는 Pigzilla, Hogzilla 라는 말을 재미 삼아 바꾸어 본 말입니다. (Pigzilla, Hogzilla는 아래 사진들 중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돼지에 대해서 이렇게 흥미를 자극하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는 있지만 사실 돼지라는 동물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안쓰럽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거의 전적으로 인간들의 식용을 위해 사육되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또 대량 사육, 생산, 공급을 위해 종이 단일화 되면서 자연의 모습이 상실되고 있고요......






King Neptune (May 16, 1942 – May 14, 1950)은 1942-1946년 사이에 미국의 전함인  USS Illinois 의 건조를 위해서 발행한 전쟁채권(war bonds) 로 19,000,000 달러를 조성하기 위해서 한 미해군 신병 모집자에 의해 이용된 돼지이다. 미해군의 마스코트 돼지가 되었다.(이미지 찾지 못했습니다






Tirpitz 는 1914년에 포클랜드 아일랜드 전투(the Battle of the Falkland Islands )에 이어 발생한 해상 충돌 후에 독일 해군으로부터 포획된 돼지이다. 이 돼지(Tirpitz)는 이후 영국 해군의 순양함인 글래스고우( HMS Glasgow)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이미지 출처:http://www.gclooney.com/photos/max-the-pig.htm


Max (1987 — December 1, 2006)는 미국 영화 배우 죠지 클루니(George Clooney)의 베트남산 애완용 돼지이다. 죠지 클루니가 "Max the star" 라고 부른다. 맥스는 클루니의 헐리우드 저택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심지어 침대까지도 함게 사용하고 있다. 그의 거대한 덩치로 인해 클루니의 인터뷰에 까메오로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맥스는 1994년 1월 16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지진 직전에 클루니를 깨워서 목숨을 구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지 출처:http://www.porkopolis.org/pigcity/pigasus-the-immortal/

불행하게도, Pigasus의 후보직은 오래가지 못했다. 루빈과 피가수스등이 체포되었기 때문에 제리 루빈(Jerry Rubin)은 피가수스의 첫 기자 회견에서 공식적인 소개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Pigasus는 1968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히피족들(1960년대의 반전주의 hippie 급진파)에 의해 지지를 받은 조롱섞인 미국 대통령 경선 후보이다.  






 
이미지출처:http://www.iomguide.com/manx-films/tamworth-two.php


 
 
이미지 출처:http://www.bamfield.eu/tamworth.php

The Tamworth Two(각각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Pig)는 1998년 1월에 윌트셰어(Wiltshire)의 Malmesbury 라는 마을에 있는 도살장에서 로리로부터 내려지는 동안 달아난 두 마리의 탐워스 진저 돼지들(Tamworth Ginger pigs)이다.  이 돼지들은 일주일간에 걸쳐 도망을 다녔고 그들을 잡는 소동으로 인해 영국과 해외에서의 대중적인 관심 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Monster Pig (or Pigzilla)는 제미니 스톤(Jamison Stone) 이라는 11살 난 소년에 의해 2007년 5월 3일에  a canned hunt 동안 사살된 거대한 사육용 돼지이다.






더보기







Ton Pig 는 900kg 이 나가는 수 창진(Xu Changjin )이란 사람이 소유한 중국산 사육용 돼지이다. 톤은 2004년 2월 4일에 비만에 의한 활동 부족으로 죽었다.


*위의 이미지중 출처가 있는 것을 제외한 이미지들의 출처는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pigs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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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1 19:08

재미있는 모양의 전차들(Hobart's Funnies)



Hobart's Funnies는 영국의 79 기갑 사단(the United Kingdom's 79th Armoured Division 또는 영국 육국 공병대(the Royal Engineers)에 의해 2차 대전 중에 사용된 많은 수의 유별나게 변형된 전차들입니다. 주로 처칠 전차( the Churchill tank ) 나 샤먼 전차(the Sherman tank) 를 변형하여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변형된 전차들은 주로 전차의 형태와 용도를 대체로 갖추고 있는 것과 공병용이나 요새 파괴용등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영국 79기갑 사단 배지



차 례

1. AVRE(Armoured Vehicle, Royal Engineers )
   1) with Bobbin
   2) with
Fascine
   3) with The Small Box Girder (SBG)
   4) with Bullshorn Plough

2. Crocodile
3. ARK(Armoured Ramp Carrier)
4. Centaur Bulldozer
5.
Armoured Bulldozer
6.
LVT "Buffalo"
7. Crab
8.
DD tank
9.
BARV


 




1.AVRE

AVRE(Armoured Vehicle, Royal Engineers )은 독일군의 방어요새를 공격하기 위해 변형된 처칠 탱크입니다. 승무원은 두명의 영국군 공병들이었는데, 그들은 AVRE의 양측면의 해치를 통해 쉽게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AVRE는 주포(main gun)가  Petard Spigot Mortar 로 대체되었습니다. 이것은 사정거리 150야드(137m), 무게 40파운드(18kg)의 고성능 폭약이 장착된 포탄( Flying Dustbin 이라고 별칭됨). 'Dustbin' 은 노상 바리케이트나 벙크와 같은 콘크리트 장애물들을 파괴할 수 있었습니다. 이 무기는 외부에서 재장전 - 잠금쇠를 열고 전차의 차체로부터 포신( the mortar tube ) 안으로 포탄을 넣음으로써 - 되어야 했기에 특이했습니다. AVRE는 또한 다른 도구들을 운반하고 작동하는데 사용되었다. AVRE 운반하면서 사용한 기구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Bobbin(얼레)
상륙시 차량들이 진흙 등에 바지지 않도록 길을 내어주는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보빈을 부착한 처칠 AVRE (Churchill AVRE with a bobbin)




Fascine
와이어로 묶은 한 묶음의 막대들이나 나뭇가지들. 고랑을 채우거나 받침대를 만들어 물을 건널 수 있도록 해준다.


Fascine을 실은 AVRE




The Small Box Girder (SBG)
최대 30도 경사에 놓을 수 있는 작은 기습용 다리


The Small Box Girder (SBG)의 실전 예(An SBG (used as ramp, centre) and Churchill AVRE (right) at 'Nan White' Beach at Bernières-sur-Mer during the Battle for Caen)




Bullshorn Plough
일종의 지뢰 파괴용 쟁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아래의 사진은 최초로 개발된 영국 79 기갑 사단의 AVRE가 아닌, 자료 사진으로 미군의 지뢰 게거용 쟁기를 장착한 전차입니다.

미군 M1A1 Abrams 전차(U.S. Army M1A1 Abrams tank with mine plow from 1995 or earlier)




2.Crocodile: 차체의 기관총을 대신에 화염방사기를 탑재한 처칠 전차


Churchill Crocodile

 



3. ARK(Armoured Ramp Carrier): 전차의 양끝에 확장할 수 있는 경사로를 가진 터렛이 없는 처칠 전차







4.Centaur Bulldozer:  크롬웰 전차에 블로저 날이 장착된 터렛이 제거된 장애물 제거용 전차









5. Armoured Bulldozer : 해안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파편을 치우고 폭격으로 생긴 웅덩이를 채워서 길을 만드는 입무를 수행합니다.







6. LVT "Buffalo" : 미군의 LVT4의 영국식 버전. 수륙양용 상륙용 차량

 






7. Crab : 대지뢰 전차

 

 


 

8. DD tank:   수륙양용 쎄먼 전차 또는 발렌타인 전차. 해안에서 몇 마일 떨어진 상륙 선박에서 내려진 후 해안으로 이동하여 해안을 공격하는 보병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9. BARV (Beach Armoured Recovery Vehicle): 방수가 되어있고 포탑이 높고 무장된 큰 구조물로 대체되어 있는 쎄먼 M4A2( Sherman M4A2 tank) 전차.  9피트(2.7m) 깊이 물 속에서  파손되거나 진흙에 빠지거나 해안으로의 접근을 방해하는 차량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셰먼 BARV는 79기갑 사단이 아니라 the Royal Electrical and Mechanical Engineers 에 의해서 개발되고 작동되었기 때문에 "Funnies'라고 할 수 없습니다.

  




* 내용 참고 및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Hobart%27s_Funn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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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0 19:49

2MB와 DDR, 그리고 닌텐도



2MB와 DDR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그런데 DDR 이 무엇이냐구요? DDR은 Dance Dance Revolution의 약자라는 건 삼척 동자도 다 잘 알겁니다. 괜히 띨띨한 놈이라거나 3D를 잘 못 썼다거나 하는 농담은 삼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DDR은 쓰나미가 아닌 일본의 코나미(KONAMI)사의 댄싱 무대를 제공해 주는 오락 기기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댄스 관련 게임기기(아래 사진) 라는 건 다 아실 겁니다.
 

 
DDR 로고




2MB 의 음악적인 혼이 담긴 DDR



이 코나미사의 DDR 음악을 맡은 사람들 중에 2MB, 즉 유이치 아사미가 있는데, 그의 음악이 DDR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천재적인 음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MB는 Yuichi Asami 가 곡을 발표할 때 쓴 가명입니다. 아래의 캡쳐이미지는 DDR 과 2MB의 깊은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DDR 하면 2MB 가 무조건 반사적으로 떠오를 정도입니다.





정말 DDR 하면 2MB가 자동적으로 떠오를 정도입니다.




2005년에 닌텐도의 GAMECUBE용 비디오 게임용으로 코나미와 닌텐도가 손을 잡고 공동 개발한 Dance Dance Revolution with Mario 가 첫 선을 보입니다. 그런데 2MB는 이 Dance Dance Revolution with Mario의 음악 제작에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왜, 2MB는 이 마리오 버전에는 참여하지 않았을까요? 오 마이갓~~ !2MB가 코나미 - 닌테도 간의 합작 프로젝트인  Dance Dance Revolution with Mario에 참가하지 않다니요~~. 자신의 음악적인 영역을 닌텐도로 넓히는 데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붉은 색깔과 흰색의 코나미와 닌텐도 로고는 일본의 국기를 상기시킨다.



혹 2MB가 닌텐도와 코나미의 Dance Dance Revolution with Mario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어쩌면 2MB는 유치한 닌텐도 게임기에 자신의 음악을 싣는 것이 싫었을 지 모릅니다. 적어도 DDR 정도가 되어야지, DDR 정도로 스케일이 커야지, 닌텐도사의 아이들 게임기에 음악을 부수적이고 장식용으로 넣는 다는 것이 영 마뜩찮았을 지도 모릅니다. 한마디로 닌텐도가 유치했던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만약 2MB가 마리오가 등장하는 게임기용 음악을 유치하다는 이유로 작곡을 거부했다면 적어도 음악적인 소신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음악 제작에 참여했다고 해도 음악적인 소신을 버린 것은 아니겠지요.

 아무튼 DDR의 2MB가 Dance Dance Revolution with Mario with Mario의 음악 제작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 참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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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4 23:07

다시 듣는 타이타닉 밴드 & 음악


타아타닉호 하면 아마도 셀린 디옹이 부른 주제가와 디카프리오가 떠오를 것입니다. 이 중에서도 그 잘 생긴 디카프리오 보다는 주제가가 더 인가가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타이타닉의 침몰이라는 비극보다도 오히려 이상할 만치 연인들에게는 아주 달콤한 사랑의 연가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비극을 초월하는 애틋한 사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www.sarimuseum




그러나 영화라는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는 타이타닉호의 침몰과 함께 떼놓을 수 없는 음악이 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도 이 음악이 연주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었습니다. 바로 타이타닉호 밴드 또는 오케스트라이며, 그들이 연주한 Nearer, My God, to Thee 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상충되는 추측이 존재하지만 말입니다(아래의 글에서 이러한 추측들을 언급하고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타이타닉호의 밴드




타이타닉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이야기들 중에 하나는 밴드에 대한 것이다. 1912년 4월 15일에 월리스 하틀리(Wallace Hartley)가 이끄는 타이타닉호의 8인조 밴드(8인조 밴드라고 하지만 사실은 완전히 분리된 두 그룹이었으며,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대에 5인조, 3인조로 연주를 했다)는 승객들을 차분하고 밝게 하려고 일등급 라운지에 모였다. 후에 그들은 배 갑판의 앞쪽으로 나아갔다. 밴드는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을 때도 음악을 계속해서 연주했다.




Wallace Hartley, 밴드의 리더






밴드 멤버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고, 그들의 마지막 노래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많은 추측들이 있었다. 일등급선실의 캐나다 승객인 베라 딕 여사(Mrs. Vera Dick)는 연주된 마지막 노래가 찬송가 “"Nearer, My God, to Thee." 였다고 주장했다. 하틀리는 만약 침몰하는 배 위에 있다면 "Nearer, My God, to Thee." 가 그가 연주하게 될 노래들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고 한 친구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워터 롤드(Walter Lord)의 책 A Night to Remember이 배가 침몰하기 직전 "Autumn"을 들었다는 무선 교환원 해롤드 브라이드의 설명을 대중화시켰다(popularized). 브라이드는 "Autumn" 이라고 불리는 찬송가이거나 또는 그 당시에 인기곡인 "Songe d'Automne" 둘 중 어느 하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브라이드는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순간에 밴드에 가까이 있어서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이다. 딕 여사는 1시간 20분 일찍 구명보트로 떠났기 때문에 밴드의 마지막 곡을 듣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최후의 연주곡(swan song)으로 "Nearer, My God, to Thee"을 연주한 사연은 아마도 1906년에 캐나다에서 광범위한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SS Valencia호의 난파로부터 기원한 신화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 이 신화가 딕 여사의 회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된다. "Nearer, My God, to Thee." 에 대한 두 가지의 다른 음악적인 곡들이 있다는 것이 또한 주목되어져야 한다. 하나는 영국에서 인기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서 인기가 있었는데, 그 둘은 아주 유사했다. 크리프톤 웹(Clifton Webb)이 주연한 1953년작 Titanic은 미국 곡을 사용한 반면, 1958년에 제작된 영화 A Night to Remember은 영국의 곡을 사용했다.




Nearer, My God, to Thee(영국 곡) 1958년 A Night to Remember 중에서





Nearer, My God, to Thee(미국곡), 1997년 타이타닉


*위의 이미지들은 영문위키피디아와 http://www.titanic-titanic.com/titanic_band.shtml 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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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7 00:12

리비아의 국기는 왜 초록색일까?





리비아 국기는 왜 초록색만으로 되어 있을까요? 초록색이 리비아에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그럴까요?
초록색이 리비아에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초록색은 이슬람교에서 굉장히 신성시 되기 때문에 리비아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에게 있어서 초록색은 특별한 의미가 있으며, 전통적인 색깔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슬람교에서 예언자 무하마드의 부족이 초록 깃발을 가지고 다녔고 초록색이 오아시스에 모여있을 때 사막 거주자들인 베두인들에게는 파라다이스(정원을 뜻하는 페르시아어)를 상징했기 때문에 이슬람교는 초록색을 경배하며 파라다이스가 초록색으로 가득한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초록의 의미는 유목민으로 사막이라는 자연적인 환경에서 물과 휴식을 제공하는 풍성한 자연에 대한 기대와 바램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하마드는 "물과, 푸른 나무,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 세 가지의 우주적으로 선한 것들이라고 말한 것으로 하디스(hadith)에 인용되고 있고, 코란의 Al-Insan장에서는 파라다이스에 있는 신을 믿는 신자들이 훌륭한 초록색 비단 옷을 입고 있습니다. 또한 Al-Khidr("The Green One")는 모세를 만나 함께 여행하는 코란의 인물입니다. 오늘날 이란의 국기 뿐만 아니라 하마스의 국기도 이슬람주의를 상징하는 초록색입니다.   

자 이제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 또는 기들에서 초록색의 의미가 두드러져 보입니까?


사우디 아라비아의 국기입니다.



하마스 조직의 상징기 입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이라크의 국기에서 보이는 것 처럼 초록색을 포함해서 검정, 흰색, 빨간색입니다.



이슬람회의기구( Organisation of the Islamic Conference; OIC)의 기입니다.



이라크의 국기 입니다



전통적으로 초록색을 포함해서 검정색, 흰색, 빨간색도 중요시되고 있으며 현대의 이슬람 국기나 상징에서 이 네 가지 색깔들의 조합으로 이루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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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4 02:27

블로그가 이상합니다. 도움 부탁드립니다.

제 블로그가 좀 이상합니다. 오늘 올린 새글들이 사이드 바에 있는 글목록(recent articles)에 표시되지 않고 계속해서 이전의 블로그 홈 화면이 계속 뜹니다.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혹 해킹이나 바이러스 감염등의 원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도움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림1) 처음 들어가면 블로그 홈의 사이드 바 중에 recent comment, recent article 에 새 댓글, 새 글이 기록되지 않고 이전의 사이바 내용 그대로 나타납니다. 심지어 비공개로 작성해 놓은 글의 제목까지 나타납니다.



그림2) 저의 블로그 홈에서 항목 하나를 클릭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이드 바의 변화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새 댓글과 새글이 나타납니다.  비공개글의 제목은 사라집니다.



그림 3)은 붉은 선 안은 오늘 새글 인데 그림1) 제일 처음 들어간 블로그 홈에서는 나타나지가 않습니다.


정말 이상하네요. 왜 이런지 이미 경험하신 분들께서 도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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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4 01:25

착시 현상: 여자가 돌고 있는 방향은?



다양한 착시현상입니다
.



Trompe-l'œil(눈속임, trick the eye)으로 착시 현상을 유도하려는 미술의 기법입니다. 이것은 착시현상이라기 보다는 눈속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로선이 다 평행한데 기울어져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카페 벽 착시현상(The café wall illusion)입니다.아래 사진의 세인트 미첼 언덕( St Michael's Hill, Bristol )의 끝에 있는 한 카페의 타일 모양을 보고 발견했다고 하는 군요.





영국 브리스톨의 성 미첼 언덕에 있는 한 카페. 이 카페의 벽 타일을 보고 이 착시 현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카페벽 착시현상(The café wall illusion)을 이용해 지은 호주 멜번의 Port 1010 building.
 
 



시계 방향, 시계 반대방향 양 방향으로 돌고 있습니다. 만약 바닥을 딛고있는 발이 왼쪽발로 인지된다면, 무용수은 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오른쪽 발이라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 처럼 보입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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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9 20:49

무기 그림이 그려진 국기를 아시나요?





세계에는 나라 수 만큼의 국기들이 있습니다. 이 국기들 중에는 재미있는 국기들이 있습니다. 그런 국기들을 만나 봅시다.



1. 무기 그림이 그려진 국기는?


모잠비크의 국기입니다. 국기에 그려진 총은 소련제 AK-47입니다.







2.사각형이 아닌 국기는?


네팔국기 입니다.

 



3.정사각형인 국기는?

스위스바티칸 시티 국기입니다.



스위스 국기





바티칸 시티 국기





4. 단색만으로 된 국기는?


리비아 국기입니다.


초록색으로만 구성





4, 국가의 모양이 그려진 국기는?


사이프러스코소보의 국기입니다.


사이프러스 국기




코소보 국기


코리아 단일기는 국기는 아닙니다.





5. 앞 뒤면이 일치하지 않는 국기는?


몰도바, 파라과이, 사우디 아라비아 국기입니다.




몰도바 국기(위로부터 앞면, 뒷면)






파라과이 국기(위로 부터 앞면, 뒷면)





사우디 아라비아 국기
(글씨로 구성되어 있어 앞,뒤면의 글씨가 비대칭적이다)





6.상황에 따라 위 아래를 바꾸어 사용하는 국기는?


필리핀 국가


평상적인 상황에서 게양한 모습




국회가 전시 상황을 선포하거나, 전시인 경우에 게양한 모습(위 아래를 뒤 바꿈)



*내용및 이미지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National_f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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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8 00:50

세계의 다양한 2MB, MB들을 만나봅시다



MB는 우리에게는 낯익은 용어입니다. 데이타의 저장 용량으로 Giga가 나오기 전까지 어깨에 힘이나 주던 용어였습니다. 이제는 Giga가 보편화 되어서 MB라는 용어 자체가 점차 사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도 2012년 쯤에는 MB라는 말이 사라질 것이라 추측이 됩니다. 사실 MB에 해당하는 용량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보다 대용량이 보편화 되면서 용량의 단위가 Giga로 통일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0.2Giga, 3Giga으로 말입니다. 아무튼 Giga가 보편화되고 있는데 MB가 깝죽댄다는 것은 시대와는 걸맞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www.bodybuildin.
한 때 멜라딘 함유로 문제가 되었던 수입 초코렛(이 초코렛은 특정 초코렛과 무관합니다)



위 사진의 이미지 출처는 여기 입니다.
 
더 넓은 GIGA BITE 식당. 만약 이 식당의 이름을 MEGA BITE로 했다면 좁고 작은 듯한 이미지에
손님들이 그다 많이 찾아 오지 않을 것 같다.



현재 100MB를 단위를 해서 900MB까지의 용어들은 보기 어려운 용어는 아닙니다. 영화 파일 하나의 용량도 아직 Giga 단위는 드물고 700MB, 800MB 전후의 용량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2MB니 3MB하는 용어를 마치 고유명사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자주 목격됩니다. 아마도 역설적인 이유에서 그런 철지난 용어를 사용하리라 생각합니다면, 만약 낡고 전통적인 방식에 대한 집착때문이거나 아니면 Giga에 대한 반항이라면 좀 고려해 볼 문제입니다. 아니, Giga로 넘어가는 마당에 MB라니요. 아니 2MB라니요!



이미지 출처는 여기입니다.
 
영화 한편을 볼 수 있는 DVD의 경우도 800 MB ~900MB의 용량이다.



자, 이제, 용어의 선택이 다소 역설적이라 짐작되는 한 음악가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의 가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2MB입니다. 정말 2MB입니다. 음악 파일 하나가 3~5MB 하는데 그의 가명 2MB는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그가 왜 그의 가명을 2MB라고 지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의 이름은 놀랍게도 2MB입니다. 정말 2MB입니다. 

 
그러나 트렌드에 걸맞지 않고 협소하고 부족한 의미를 연상시키는 2MB라는 용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그의 창조성과 상상력의 용량은 그야말로 Giga를 뛰어넘어 테라, 페타에 이를 정도입니다. 그의 창조력과 상상력은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의 음악은 그의 창조적인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Dance Dance Revolution EXTREME, 2MB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의 본명은 유이치 아사미( Yuichi Asami, 浅見祐一), 코나미 회사에 소속된 음악가로 알려진 바로 유이치 아사미입니다. 그의 가명이 2MB 입니다. 이 2MB는 DDR(Dance Dance Revolution )시리즈의 가정용 버전의 탄생에 공헌했고, 2MB라는 가명으로 나오키 마에다(Naoki Maeda's) 곡들을 리믹싱하고 있습니다. Dance Dance Revolution SuperNOVA  가 출시된 후에는, 아케이드 버전을 위한 곡을 작곡했습니다.


놀랐을 것입니다. 2MB라는 가명이 그의 작업의 결과에 비해 협소한 느낌을 뿌리칠 수가 없군요. 아사미가 왜 하필이면 2MB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그러나 2MB, 아니 유이치 아사미와는 달리 창조력과 상상력은 대단하지만 가득이나 협소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MB를 가명으로 사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극단적인 가명을 사용한 다른 MB도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바로 그 MB 가  직접 만든 자신의 자화상입니다. 정말 이상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려 놓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본명은 Maurizio Bianchi(1955-   , 마우리지오 비안치)입니다. 그는 왜 자신의 자화상를 이렇게 이상하게 비틀어 놓았을 까요?

Maurizio Bianchi의 자화상


비안치는 밀란에서 싹턴 노이즈 음악( noise music )의 선구자입니다.1979년에 음악을 제작하기 시작해서, 1980년 이후로는 기술적인 사운드( technological sounds) 를 만들어 내고 그러한 방식으로 현대적 퇴폐성(the modern decadence)을 완벽하게 재현하려고 전자 기구(electronic equipment )들을 사용해 왔습니다.

초기에 그는 Sacher-Pelz라는 가명으로 테입들을 발행했습니다. 당시는 CD나 DVD 없었던 때입니다. 1981년에, 와이트 하우스 밴드의 리더이자 브리티쉬 Come Org. 라벨(the British Come Org. label)을 탄생시킨 윌리엄 베넷(William Bennett) 이 비안치와 녹음 계약을 하였습니다. 테입을 수령 후 윌리엄 베넷은 나찌 지도자들의 연설을 그 테입에 편집해 넣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센세이셔널한 MB 대신에, 그 테입은 아돌프 히틀러의 보위대로 활동했던 SS 단의 이름을 따서  Leibstandarte SS MB 라는 가명으로 으로 발매가 되었습니다. 윌리엄 베넷이 편집해서 넣었긴 하지만 왜 이러한 극단적인 가명을 사용했는지 궁금합니다. 추측컨대, 극단적인 나찌와 히틀러에 대한 극단적인 사고와 퇴행적인 향수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1984년까지, 비안치는 MB라는 가명이나 Maurizio Bianchi 라는 본명을 사용한 라벨로 앨범이나 테입을 발매했습니다. 1998년에는 EEs'T Records 라는 라벨을 달고서 앨범들을 발매했습니다 .



MB가 라스베가스에 있는  Mandalay Bay Resort and Casino 의 이니셜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MB보다는 이웃하고 있는 Mandalay Bay Convention Center 가 더 유명합니다. MB와 함께 MGM Mirage 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개인 소유의 컨벤션 센터 중의 하나이며 복싱, UFC의 MMA, 연주회 등을 주최하고 있습니다. 이런 빌딩 하나 있으면 평생 먹고 살기에는 걱정이 없을 것 같습니다.


 


MB는 애니매이션 The Simpsons 에 나오는 안티 주인공(적대자) 몽고메리 번즈(Montgomery Burns) 의 이니셜이기도 합니다. MB는 스프링필드 원자력 발전소(Springfield Nuclear Power Plant)의 소유주이며 호머 심슨의  상사입니다.




MB 몽고메리 번즈(Montgomery Burns)의 동영상

 
 
*개별적으로 출처를 밝힌 사진들을 제외한 위 사진들은 영문판 위키피디아에서 가지고 왔으며
글 내용 또한 전적으로 그것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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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7 08:29

2MB는 일본인? 맞다, 아니다!




일본인 2MB가 있을까요?
  




있다가 정답입니다.

우선 한 음악가을 소개합니다. 그의 가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2MB입니다. 정말 2MB입니다. 음악 파일 하나가 3~5MB 하는데 그의 가명 2MB는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그가 왜 그의 가명을 2MB라고 지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의 이름은 놀랍게도 2MB입니다. 정말 2MB입니다. 

 
그러나 트렌드에 걸맞지 않고 협소하고 부족한 의미를 연상시키는 2MB라는 용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그의 창조성과 상상력의 용량은 그야말로 Giga를 뛰어넘어 테라, 페타에 이를 정도입니다. 그의 창조력과 상상력은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의 음악은 그의 창조적인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Dance Dance Revolution EXTREME, 2MB



그의 본명은 유이치 아사미( Yuichi Asami, 浅見祐一), 코나미 회사에 소속된 음악가로 알려진 바로 유이치 아사미입니다. 그의 가명이 2MB 입니다. 이 2MB는 DDR(Dance Dance Revolution )시리즈의 가정용 버전의 탄생에 공헌했고, 2MB라는 가명으로 나오키 마에다(Naoki Maeda's) 곡들을 리믹싱하고 있습니다. Dance Dance Revolution SuperNOVA  가 출시된 후에는, 아케이드 버전을 위한 곡을 작곡했습니다.


놀랐을 것입니다. 2MB라는 가명이 그의 작업의 결과에 비해 협소한 느낌을 뿌리칠 수가 없군요. 아사미가 왜 하필이면 2MB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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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5 14:17

동물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

 
 
 
위의  그림들 중에 동물이 그린 그림은 어느 것일까요?
 
 
 







위의 그림들은 모두 침팬지가 그린 그림입니다. 위 세 그림들은 Congo(콩고,1954–1964) 라는 침팬지가 그린 그림들입니다. 정말 예술입니다! 동물학자이자 초현실주의 화가인  Desmond Morris 는 Congo가 2살 때 연필을 쥐어준 후 재능을 알아보고 그림을 그리도록 했고, 그렇게 재능을 표현하기 시작한 콩고는 4살때까지 400여점의 그림들을 그렸다고 합니다. 콩고의 스타일은 서정적인 추상적 인상주의( lyrical abstract impressionism) 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카소(Picasso )는 콩고의 작품 하나를 소장했고, 미로(Miro)는 그의 그림 두 점과 콩고의 작품 한 점과 바꾸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살바돌 달리 (Salvador Dali) 같은 경우는, 콩고의 캔버스에 너무나도 매료되어, " 그 침팬지(콩고)의 손은 유사 인간의 손이지만, 잭슨 폴락의 손은 완전히 동물의 손" 이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참고: http://bestuff.com/stuff/congo-chimpanzee



콩고의 작업 모습

비록 긍정적이고 관심을 받긴 했지만, 콩고의 예술적 재능에 대한 미디어의 반응은  상반되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경우는, 콩고 그림의 팬이었으며, 콩고의 그림 한 점을 선물로 받고 자신의 화실 벽에 걸어 두었습니다.

2005년 6월 20일에 콩고의 작품들은 르느와르(Renoir )와 워홀(Warhol)의 작품들과 함께 본햄즈(Bonhams)에 있는 한 경매에 올려졌는데, 르느와르와 워홀의 작품들은 팔리지 않은 반면 콩고의 작품들은 예상한 가격 이상으로 팔립니다. 미국의 수집가 하워드 홍( Howard Hong )이 26,000여 달러로 콩고의 작품 3점을 구입했습니다.
(참고:http://en.wikipedia.org/wiki/Congo_(chimpanzee))






 



위의 두 그림은  Tillamook Cheddar(1999 -  ) 라는 개가 그린 그림들입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성공한 현존하는 동물 화가입니다. 그녀는 1999년 이래로 줄곧 벨기에, 네델란드, 버뮤다는 물론이고 미국 전역에 걸쳐 16번의 개인전을 열고 있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2,150달러에 판매되었습니다.
(참고:http://en.wikipedia.org/wiki/Tillamook_Cheddar_(dog))



 


Tillamook Cheddar의 똑똑하고 예술가적인 용모
 
 


Tillamook Cheddar의 첫 번째 전기의 표지. 도대체 몇 권의 전기가 더 나올 것이가.
 
 

그녀의 첫 공식적인 전기인 바우맨 해스티 3세 (F.Bowman Hastie III) 가 쓴 젊은 예술가 개의 초상(Portrait of the Dog as Young Artist)이 2006년에 출판되었다. (참고: http://www.tillamookcheddar.com/bio.htm)





이 그림은 Jackson Pollack이 1948년도 그린 <No. 5>라는 작품입니다.
잭슨 폴락에 대한 설명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잭슨 폴락은 살바돌 달리가 Congo와 비교하면서 " 그 침팬지(콩고)의 손은 유사 인간의 손이지만, 잭슨 폴락의 손은 완전히 동물의 손" 이라고 했던 바로 그 유명한 잭슨 폴락입니다.



이 그림은 밀턴 레스닉(Milton Resnick)의 1963년도 무제(Untitled) 라는 작품입니다.
밀턴 레스닉의 그림은 여기에서 갖고 왔습니다.

 




*위 이미지들의 출처는 참고로 표시된 사이트들과 링크되어 있는 사이트들입니다. 사이트에서 이 화가들의 더 많은 작품들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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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5 01:08

9.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9.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
    했을까?

1.음식의 역사 개괄

2.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3.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4.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5.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6.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7.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유목민들에게 왜 비타민 결핍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8.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9.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10. 통조림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몇 달씩 배위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1.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12. 20세기초 영국의 징병검사에서 41%의 청년들이 병역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13. 식품판매업자들의 사기행위와 불량식품에 정부와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14. 외국에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이 과연 자국의 식량 상황과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15. 식량 생산과 환경 파괴, 과식으로 인한 질병과 굶주림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미션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스페인의 선교사들이 남미 원주민들을 교화하는 희생적인 모습을 아주 스텍터클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남미의 문명은 식인이 보편화 되어 있었고 야만적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인 정복자들이 그들의 학살과 문명 파괴를 ‘신의 벌‘ 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도 이러한 원주민들의 식인풍습과 야만성에 근거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The Sacred Cow and the Abominable Pig : The Riddles of Food and Culture,1985)에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목격한 부족 원주민들의 식인 풍습의 많은 사례들이 인용되어 있다. 이 식인풍습의 목격담은 심장이 서늘해 질 정도다. 이러한 인용들 가운데 하나를 좀 길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예수회 신부였던 주앙 데 이스필쿠에타 나바로(Juan de Aspilcueta Navarro)가 1549년에 오늘날의 살바도르 시 근처의 한 마을에서 본 목격담이다.

“……내가 도착하자 그들은 그들이 이제 막 한 소녀를 죽이는 일을 마쳤다고 말하면서 나에게 그 집을 보여주었다. 그 안으로 들어 간 나는 그들이 그 소녀를 먹기 위해 요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그 머리가 나무에 걸려 있었다. 나는 이러한 혐오스러운 일과 이렇게 자연에 위배되는 일에 대해 그들을 꾸짖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런 뒤 나는 다른 집으로 갔는데 거기서 나는 사람의 발과 손과 머리들이 연기 속에서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19세기 후반 식인풍습의 분포도

이미지 출처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이러한 목격담들은 그 사실을 반박하기 힘들도록 만들고 있다. 따라서 ‘미션’ 이 보여주는 선교의 의미는 상당히 의미있는 백인들의 자기희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사냥에 나섰던 유럽의 ‘정복자’들은 식인 풍습 이상의 잔혹한 짓을 또한 했음을 숨겨서도 부정하거나 부인해서도 안된다. 신대륙의 발견에 대해 백인들이 부여하는 의미는 실상 수많은 학살과 문명의 파괴를 가리는 경우가 많다.

『음식의 역사』(Food in History) 이 책에는 질문에 대한 답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지는 않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과 문명 파괴의 구체적인 원인들과 그 역사적인 기록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단지 이 책의 내용의 행간을 통해 답을 구성하기는 좀 어려웠다. 단지 한 군데 적절한 답을 발견할 수 있어 그 나마 다행이었다. 그 내용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코르테스 시대 이전에는 중부 멕시코의 주민이 2,500만 명 정도로 추산되었으나, 30년 후에는 600만명 남짓으로 줄어 들었다. 그리고 1605년경에는 단지 107만 5천명 밖에 남지 않았다. 전쟁, 경제적 대변동, 착취, 새로운 질병들에 대하여 중앙아메리카의 주민들은 아무런 저항력이 없었고, 이 모든 요인들이 결합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재난의 하나를 초래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냉혹하게도 ‘신의 벌’ 이라고 말했다.(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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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3 15:36

치솔, 연필, 말발굽,바다코끼리, (자전거)핸들, 염소의 공통점은?




*치솔, 연필, 말발굽,바다코끼리, (자전거)핸들, 염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아래는 힌트 사진들과 그림들입니다
.




사진출처: http://candyapplecostumes.com/cc70487.html




딩~동~댕~동~  수염, 맞습니다.

제일 위로 부터 toothbrush moustache(칫솔 수염), pencil moustache(연필 수염), horseshoe moustache(말발굽 수염),  walrus moustache(바다코끼리 수염), handlebar moustache(핸들 수염), goatee beard(염소 수염)입니다.

*참고로 moustache 는 콧수염이며, beard는 턱수염입니다. 그러나 beard가 넓은 의미로 얼굴 위의 모든 수염, 즉 moustache, sideburn 를 포괄적으로 지칭하기도 합니다.

*출처가 없는 위사진들의 출처는 영문판 위키피디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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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1 00:08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


 

이번 경기 서남부 강호순의 연쇄 살인 사건은 가득이나 어려운 경제 때문에 어깨가 쳐저있는 국민에게 절망과 분노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용산 철거민과 경찰의 참사에 또 이런 비극적 사건이 터졌으니 왜 이토록 어려운 시기에 여러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일으나는 지 정말 참담할 지경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건만 터지면 항상 그래온 사실이지만 이제 신문이나 방송은 이 사건에 대한  보도를 무차별적이고 경쟁적이고, 심지어 센세이셔날하게 접근하는 것을 중단하고 차분하게 접근하는 태도를 견지해 주었으면 한다.
 




위 사진들은 오마이뉴스가 캡처한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사진을 입니다.

혹 이러한 범죄를 일으키는 사회적인 요인은 없는지, 우리나라 교육의 방향성에 문제는 없는지, 정부의 사회 안전망등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등등 진단과 예방의 자세로 접근했으면 한다.

이번 연쇄 살인 사건에서 사이코패스(psychopath(y))라는 용어가 유별나게 난립하는 것을 보면서 혹 우리사회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들이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좀 더 섬세한 성찰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런 연쇄적인 살인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사이코패스를 외쳐 댈 것이 아니라 사이코패스를 부르른 가정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문제점들은 없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 체크리스트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좀 더 높이자는 의미에서 우리말로 옮겨보았다. 무엇보다도, 이 체크리스트는 범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체크리스트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이하의 내용은 영문판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대부분 발췌 해석하였습니다.



현재의 정신병 연구와 임상적인 실례로써, 로버트 D.헤어(Robert D. Hare)의  Psychopathy Checklist-Revised (PCL-R)가 가장 일반적으로 사이코패스를 측정하는 정신병 진단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체크리스트는 정신분석의나 다른 전문가들에 의해 측정되는 20목의 임상치료상의 평가척도(a clinical rating scale). 이 체크리스트상의 각각의 항목들은 파일 정보와 반 한정 응답식 면접(a semi-structured interview)을 통해 특정한 기준에 따라 3점 척도로 점수화 된다. 항목이 해당되지 않으면 0점이고, 다소 해당이 되면 1점, 그리고 완전히 일치하면 2점이다. 생활방식이나 범죄 행위를 포함해서, 체크리스트는 말이나 표면적인 용모, 허세(grandiosity), 자극을 위한 욕구 등을 측정한다. 점수는 재범의 위험이나 재활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이용된다.  

PCL-R에 근거헤 측정되는 사이코패스는 중독성 물질 남용 장애들을 제외한 모든 DSM-IV Axis I 의 장애들과 음성적으로 상호 관련되어 있다. 사이코패스는  DSM-IV 의 반사회적인 인격장애와 가장 강력하게 상호 관련되어 있다.

Psychopath Checklist Manual



사이코패스는 빈번하게 행동을 통해 위해를 가하기 때문에, 해를 가하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애착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체크리스트(PCL-R Checklist) 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또한 자신들의 처신에 신중하지 않다.

이 체크리스트는 공식적으로 4 가지 평가 요인(1.a, 1.b, 2,.a, 2,b)으로 목록화되어 있고, 이 4개의 요인들은 요인분석을 통해 다시 20개의 측정 영역으로 요약된다. 제1 요인은  "타인들을 이기적이고, 냉혹하고 무자비하게 이용하는 것"으로  분류되고, 제 2요인은 "만성적으로 비안정적이고, 반사회적이며 사회 일탈적인 생활방식"으로 분류된다. 비록 치료 연구가 진척되고 있지만, 평가를 위한 매뉴얼에 있는 PCL-R 평가에 근거해서 "정신병"을 가진 것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인 경우 높은 재범 가능성과 재활 확률이 낮다.   


제1a 와 제 1b 요인들은 자기 과시적 인격 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와 연기성 인격장애(histrionic personality disorder) 와 사호 관련성을  갖는다. 그것은 외향적이고  적극적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이른바 사이코패스의 핵심적인 인격 특징인 제 1요인은 (비일탈적인 사회적 기능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이코 패스에게는 유익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제 2a 와 제 2b 요인들은 특히 반사회적인 인격 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와 범죄성(criminality )와 아주 강하게 상호 관련을 맺고 있으며 반응성 분노, 범죄성, 그리고 충동적인 폭력성와 연관되어 있다. PCL-R 체크리스트 척정을 위한 대상 그룹(target group)은 유죄판결이 난 죄수들이다. 측정의 질은 많은 배경적인 정보들이 유효하고 평가받는 사람이 정직하고 솔직한 경우에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체크리스트를 살펴보도록 하자.

◆ Hare's Checklist and other mental disorders

제 1요인: 인격 "공격적인 자기중심주의"

▶ 달변/표면적인 용모
▶ 병적 거짓말 
▶ 교활/속임수
▶ 죄책감의 결여 
▶ 천박한 정서적 반응 
▶ 무감각과 감정 이입의 부족 
▶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음 
▶문란한 성적 행동


제 2 요인: 개인 경력" 사회적으로 일탈적인 생활방식"

▶ 자극을 위한 욕망/권태를 쉬 느끼는 경향 
▶ 의존적 생활방식 
▶ 약한 행위 통제력 
▶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목표의 부재 
▶ 충동성
▶ 무책임함 
▶ 청소년 범죄 
▶ 유년기 행동 문제들 
▶ 조건부 석방의 파기

 
 위 두 요인과 상호 관련되지 않는 특성들

▶ 여러 차례의 짧은 결혼 생활
▶범죄적 소질



더보기


 *잘못된 번역이나 오류는 지적을 통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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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30 16:02

음식의 역사 (8):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음식의 역사 (8) :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1.음식의 역사 개괄
2.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3.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4.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5.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6.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7.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유목민들에게 왜 비타민 결핍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8.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9.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10. 통조림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몇 달씩 배위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1.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12. 20세기초 영국의 징병검사에서 41%의 청년들이 병역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13. 식품판매업자들의 사기행위와 불량식품에 정부와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14. 외국에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이 과연 자국의 식량 상황과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15. 식량 생산과 환경 파괴, 과식으로 인한 질병과 굶주림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이 책의 3부에는 중세(AD1,000 ~ 1,500)가 시작하기 이전까지의 아시아와 아랍의 음식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중국의 고대 음식의 역사는 서구의 그것에 비해 그 시대적인 구분이 훨씬 더 모호하고 요리법의 기원은 분명하게 규명되어 있지도 않다. “기원전 1천년기 이전의 문헌자료도 없으며, 금세기에 일어난 중국의 정치적 대변동은 최근까지도 과학적인 고고학을 심히 저해해왔다”(p.176) 이 책이 1973년에 초판이 나오고, 2002년에 재재판이 나온 걸로 보아 현재의 중국의 상황과는 다른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임으로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자 하며, 이후 수정된 부분은 따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또한 이 책에서 작가가 참고로 하고 있는 중국의 문헌자료 또한 상당히 제한적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최고의 문헌으로 기원전 1100~600년경의 전통민요를 중심으로 모아놓은 시가집인 『시경(詩經)』과 『도덕경(道德經)』 『논어(論語)』, 그리고 제의에 관한 지침서로 한나라 때 편찬된 『예기(禮記) 』가 거부 전부이다. 이것은 수천 년 음식역사에 대해 불충분한 서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인으로서 중국 음식역사에 대해 겸손하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그 깊이도 얕지 않음에 감탄하게 된다.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란 질문에 대해서는 길기는 하나 질문에 대한 적확한 답이 되는 긴 문장들을 인용하고자 한다. 인용이 길지만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중국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농사짓는 사람들이 봄에 전부 마을을 떠나 9월이나 10월경의 추수 때까지 들판의 임시적인 오두막에서 사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비록 필수품들 공급해 주는 몇몇 공동조직이 있긴 했어도 비교적 고립된 이 시기 동안 농부들은 제한된 물자에 의존해야 했다. 연료는 큰 문젯거리였다. 완전한 농업경제가 발전했을 때 황하유역의 들판에는 단지 제방에 의해 나누어진 논밭들만 쭉 펼쳐져 있었을 것이다. 여름에는 둑 위에 난 덤불과 관목들이 너무 싱싱하고 물기가 많아서 연료로는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며, 벌판의 일꾼들은 먼 곳에서 가져온 나무나 숯 또는 몇 마리 안 되는 견인용 동물들의 마른 똥에 의존해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리 시간이 짧고 연료가 적게 드는 요리법인 팬을 흔들면서 센불로 재빨리 볶는 방법이 개발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 요리법에 의해 채소나 고기의 얇은 조각들, 거칠게 간 기장가루나 밀가루로 만든 부침개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요리되었을 것이다.” (pp.180 - 181)

*위 사진들의 이미지 출처:http://kr.blog.yahoo.com/ur2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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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8 05:56

헐리우드의 유명인 불교도들





오늘날 티벳 불교는 티벳 고원, 네팔, 부탄, 몽고, 칼미키아(러시아 연방 자치 공화국으로 카스피해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음), 시베리아, 그리고 티바(Tyva)에 걸쳐 신봉되고 있다. 또한 인도 지역인 시킴과 라다크에 티벳 불교 인구가 밀집해 있다. 현재 티벳 불교는 서구와 전세계적으로 신도의 수를 넓히고 있는데 미국과 유럽에서만 수만명의 신도들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헐리우드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리처드 기어를 비롯해 샤론 스톤, 안젤리나 졸리, 스티븐 시걸 등 유명 연예인들이 티벳 불교 신도 또는 다른 방식으로 티벳 불교와 관계를 갖고 있다. 


스티븐 시걸(Steven Seagal)


영성주의(Spiritualism)와 불교는 스티븐 시걸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티벳 불교의 라마인 페놀 린포체(Penor Rinpoche)에 의해서 환생한 Tulku(Chungdrag Dorje)로 인정을 받았다.2006년 11월의 한 인터뷰에서 시걸은 " 나는 영성을 가진 치료사로 다르게 태어났다" 고 했다( "I was born very different, clairvoyant and a healer".)

Tulku(Chungdrag Dorje): 티베트 불교의 경전상, Tulku는 일반적으로 깨달음을 얻은(득도한) 불교 스승의 육적인 존재를 언급한다 (In the context of Tibetan Buddhism, tülku is used to refer to the corporeal existence of enlightened Buddhist masters in general.)



리처드 기어



리처드 기어는 감리교 신자인 부모에 의해 양육되었지만 1978년 브라질의 화가 실비아 마틴스(Sylvia Martins)와 네팔을 여행하면서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불교신자로 달라이 라마의 적극적인 지지자이도 하다. 기어는 또한 티벳의 인권에 대한 지속적인 옹호자이며 Tibet House의 공동 창시자이며, 기어 재단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리처드 기어는  the Tibetan Independence Movemen 단체를 열렬히 지지하기 때문에, 영국적으로 중국 입국이 금지되고 있다. 2007년 9월에는 티벳 독립을 위해 중국에 압력을 넣기 위해 2008 베이징 올립픽을 보이콧을 요구하기도 했다.   


Adam Yauch(아담 야츠)



유대인의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불교도이다. 프리티벳 운동(Free Tibet movement)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Jet Li(이연걸)


이연걸( 리롄제, Jet Li)은 티벳 불교 신도이다



Sharon Stone(샤론 스톤)


Sharon Stone(샤론 스톤)

  스톤은 동료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로부터  달라이 라마를 소개받고 티벳 불교로 개종했다. 샤론 스톤은 중국인들이 그녀의 좋은 벗인 달라이 라마에게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2008년도에 중국에서 일어난 쓰촨성 대지진이 악령(bad karma)의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Ginsberg(긴즈버그)

 Ginsberg는  뉴욕에서 택시 승객으로 우연히 Chögyam Trungpa Rinpoche( the Vajrayana schoold의 티벳 불교 명상 스승) 만나는데 Chögyam Trungpa 는 그의  친구이자 일생의 스승이 된다.




안젤리나 졸리

Angelina Jolie(안젤리나 졸리)

 이미지 출처: www.flickr.com  ElvisTR님

언론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졸리가 불교도라고 하나, 그녀 자신은 불교가 그녀의 아들 Maddox(Maddox는 졸리가 2000년에 입양한 캄보디아 남아이다) 의 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하기에 그에게 불교를 가르친다고 말했다. 졸리는 신을 믿는지의 여부를 명확하게 언급하지는 않았다.  


 

Philip Glass(필립 글라스)

그는 자신을 , 유대교, 도교, 힌두교, 톨텍 숭배, 불교도인이라 표현하였다. 티벳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Jim Carrey(짐 캐리)


짐 캐리과 불교와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단지 그가 채식주의자이며 버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를 자신의 영웅으로 추앙하면서 버마의 정치적인 상황과 인권에 대해 관심을 보여왔다. 불교도의 여부나 관련성에 대해서는 추후 업그레이드를 통해 전달코자 한다. 




Goldie Hawn (골디 혼)


혼(Hawn)은 1972년에 동양철학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유대교인으로 양육되었으나 지금은 불교신자이다. 그녀의 자녀들을 불교도와 유대교의 전통속에서 양육해왔다. 그녀는 래리 킹 쇼(Larry King Show )에서 유대인 불교도라고 말했다. 

 


*위 사진중 출처가 적혀있는 사진을 제외한 모든 사진들의 출처는 영문판 위키피디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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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7 20:57

음식의 역사(6):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6.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에 대한 가단한 언급을 하고자 한다.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인류의 음식 문화에 대한 서구적인 편견 벗기‘ 라고 할 수 있다.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서구 문화의 관점에서 특정한 인류의 음식문화를 야만적이라거나 이해 할 수 없는 ’수수께끼‘ 라고 단정 짓는 것은 오만이라는 것이다. 서구인의 눈에 비치는 그 야만성이나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는 사실 환경과 생태에 적응하려는 이해할 만한, 또한 설득력 있는 행동이나 생각에 근거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야만적이고 납득할 수 없듯이 보이는 음식문화는 서구적인 문화에서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일뿐 음식 문화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합리적이고 냉철하게 풀어야 할 이해 가능한 ‘수수께끼’ 임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레이 태너힐의 이 책<음식의 역사> 또한 마빈 해리스의 저작의 관점과 상당히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물론 마빈 해리스의 저작이 문화생태학적이고 문화유물론적 입장에서 인류의 음식문화를 인종과 민족, 그리고 생태학적 환경에 근거해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면 레이 태너힐은 생태학, 사회학, 역사 전반을 아우르며 음식의 역사를 보다 개괄적으로 관찰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아무튼 그들에게 음식의 역사에 관해 관찰하는 태도에 대한 하나의 속담을 적용해 보자면 그것은 아마도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는 속담이 아닐까 한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인도의 소 숭배는 참으로 기막히게 여겨질 것이다. 그렇다고 인도의 소를 아프리카로 보낼 수는 없다. 인도인에게 소는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지 굶주림을 채우는 식량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사실 이 말은 잘못되었다. 인도 내에서 소의 밀도살을 통한 식용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의 상황처럼 굶주려 죽는 이들이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실을 말해준다. 오히려 소의 신성화가 소의 값을 상승시키지 않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빈자들에게 은밀하긴 하지만 싼 값으로 유통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아프리카인의 입장에서 인도인의 소 숭배는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인도인들은 왜 소를 신성시 할까, 라는 질문 자체로 돌아가 보자.

힌두교에서는 소는 부, 건강, 풍요의 상징이다.

소고기를 먹는 이슬람교에 대항하는 반 이슬람 팜플렛



기원전 2,000년경에 아리아인들은 소를 몰고 인도로 들어왔다. “인도 토착민들은 유제품을 아주 열렬히 받아들였기 때문에, 소비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시기도 있었던 것 같다."(p.192). 아리아인들이 인도에 정착한 후 종교적 율법을 강화하면서 소를 도살하는 것보다, 소를 통해 유제품을 얻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아리아인의 종교적인 율법인 『리그베다(Rigveda)』에 따르면 양, 말, 염소, 물소 등은 음식물로 기록되어 있으나 소는 예외적인 동물이었다. 또한 암탉의 계란처럼 소의 젖을 소 그 자체를 도살해 먹는 것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생각한 듯하다. 인도의 열대 기후에서 염소나 물소가 젖을 제공해 주기는 했지만 기름지고 독특한 냄새가 나는 녹색의 액체를 싫어했을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염소나 물소의 젖은 환영받지 못한다. 기원전 1,000년 인도의 또 다른 문헌인『아타르바베다(Atharvaveda)』에는 고기를 먹는 행위를 조상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면서, 소를 먹는 것이 더욱 강력하게 금지되었다.

대개의 법이 그렇듯이 시대상의 변화와 함께 법의 적용이 사람들의 의식, 현실적인 삶과 괴리를 보이게 된다. 인도의 『리그베다(Rigveda)』나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기원전 700년경에 이르러 소 식육에 대한 금지는 현실적으로 사문화되면서 손님접대와 제사을 위해 가축 도살이 일반적으로 허용되었다. 브라만 사제들은 희생제의를 위해 지역사회에 더 많은 가축을 요구하게 되었다. 농업에 유용하게 이용되고 유제품의 공급원인 소들의 수가 줄어들자 반란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혼란은 불교와 자이나교의 위대한 지도자인 석가모니와 마하비라 등장의 사회적인 역사적인 출현의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이나교와 불교는 아리아인의 카스트 제도와 짐승도살에 반대하는 것을 그 교리로 삼았다. 석가모니는 살생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고, 자이나교는 야채, 과일에 들어있는 곤충을 엄격하게 가려내어서 먹었다. 이러한 채식주의적인 발상은 생태학적인 인식이나 단순한 종교상의 교리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배타적 계급 제도인 카스트와 제의적 희생에 대한 반대의 산물이었다.”(p.193) 이처럼 불교와 자이나교가 채식주의를 교의화하면서 소 도살은 종교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인식되었고 이전의 소 살 금지에 대한 인식을 다시 일어나게 했다. 두 종교는 정통 베다신앙에도 영향을 미쳐 기원전 100년경에는 브라만 사제들이 동물 희생을 제의 포함하지 않는 규정을 세웠다. 이렇게 해서 인도의 세 종교인 불교, 자이나교, 베다는 소를 신성시하게 되었다.

*위의 사진들은  영문판 위키피디아 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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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4 04:52

개콘 달인의 수염은 무슨 수염일까?



수염(facial hair)은 우리가 흔히 보고 지나치면서도 그 모양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관심을 갖지 않는 부분처럼 여겨집니다. 물론 인상적인 수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기도 하지만 동시에 별 인상적이지 않는 경우는 그냥 지나치리라고 봅니다. 아니 관리하지 않은 덥수룩한 수염을 보면 개성있다는 생각보다는 깔끔하게 깎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지요. 그 한 예로 만약 개콘의 달인 김병만씨의 수염이 무슨 수염인가 라거나, 달인의 조수의 수염은 어떤가? 라고 물어보면 약간은 당황해하거나, 황당해하거나 아니면 무시해버리기도 할 것입니다. 그냥 기르거나 또 기르다 보면 그런 스타일로 정착되는 것이리라  여기면서 무슨 다양한 스타일이나 종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수염에는 그 종류가 다양하고 수염과 관련된 재미있는 사실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제 우리가 항상 대하면서도 무심하게 지나쳐왔던 수염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위의 달인 김병만씨의 수염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트레이닝복을 입고있는 달인 조수의 늘어진 저 수염은 무슨 수염일까요?



우선 기본적으로 수염(facial hair) 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턱수염(beard)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beard는 사람의 턱, 뺩, 목, 그리고 윗입술 위에 기르는 모든 수염을 통칭합니다. 그러나 윗 얼굴 수염(upper facial hair)과 아래 얼굴 수염(lower facial hair)으로 구분할 경우, beard는 윗입술과 그 주위의 수염인 moustache 를 제외하고 턱의 아랫 부분에 기르는 수염(facial hair)를 특정적으로 지칭합니다. 둘째로는, 코밑수염(moustache)이 있으며 셋째로,  구레나룻(whisker, sideburn)로 나누어 집니다. 이 세가지 스타일의 수염은 다시 각각 하위 스타일로 구분이 됩니다. 단 구렛나루의 경우는 beard와 연결되어 주로 beard의 범주에 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A be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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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위 두 개의 질문에 먼저 답하고 이어 글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달인의 수염은 moustache로 그 종류의 하나인  Pencil moustache(연필형 콧밑수염)입니다. 수염이 좁고 가늘며 코와의 간격이 넒습니다.  Mouthbrow 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입눈썹이란 뜻입니다. Pencil moustache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가 드물고 외국인들 중에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John Waters

 

이것도 Pencil moustache라고 할 수 있을라나?

 



그런데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달인의 조수(?)의 수염은 무슨 수염일까요? 이 수염은 수염을 감식할 수 있는 아마추어의 감식으로서는 판단하기가 힘듭니다. 비대칭적인 데다가 너무 무성의하고 관리가 소홀해서 스타일리쉬한 수염의 범주에 포함하기에는 수염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가장 안전한 대답이 프리스타일(Free style)이라고 하면 되지만, 대충 판단해보면 아마도 오른쪽은 Chinese(Fu Manchu)이며, 왼쪽은  The GG 스타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1991년부터 격년으로 세계 수염 챔피언대회(The World Beard and Moustache Championships)이 열리고 있습니다. 대회 명칭처럼 구렛나루(Whiskers)[구렛나루 단독 부문은 없지만 구렛나루가 Beard 의 두 부문에는 포함이 된다]는 제외하고 턱수염과 콧수염을 기른 남성들이 그 우아함을 겨루는 대회입니다. 독일의 호벤-엔츠(Höfen-Enz)에서의 제 1회 대회를 시작으로 올해 2009년 5월 20일에서 24일까지 알래스카의 앵커리지에서 제 9회 대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대회의 심사 분야는 크게 세개의 영역입니다. Moustache와 Full Beard, 그리고 Partial Beard 이렇게 세 분야로 나누어 집니다. Moustache 는 윗입술 위에 있는 수염을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국제적인 대회에서는, moustache는 윗입술의 끝에서 최대 1.5cm정도에서 부터 기릅니다.(Moustache is the word for the facial hairs on the upper lip. At international contests, it is agreed that moustache hairs can start growing from up to a maximum of 1.5cm beyond the end of the upper lip.) Full Beard는 자연적이거나 면도한 틈이 없이 윗입술과 아랫입술, 턱, 뺨에 있는 수염과 sideburns로 이루어져 있습니다(A full beard is considered hairs on the upper and lower lip, the chin, the cheeks, and the sideburns, without any natural or shaven gap.). 마지막으로 Partial Beard 는 Full Beard도 아니고 Moustache도 아닌 수염을 지칭합니다(A Partial Beard is any facial hair that is neither a full beard or a moustache.). 정리해 보면, Moustache 는 콧수염을 의미하며 Full Beard는 얼굴상에 기를 수 있는 있는 모든 수염을 빈 공간 없이 빼빽하게 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Partial beard는 Full Beard에서 어느 하나가 빠지거나 빈 공간이 생겨있는 상태의 수염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약간 애매한 점이 있습니다. 위키디피아에서 Moustache 로 분류되어 있는  Fu Manchu 가 세계 대회에서의 분류에서는 Partial Beard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 각각의 Moustache, Full Beard, 그리고 Partial Beard 분야는 다시 5-6종류의 카테고리로 해서 총 17개의 분야로 나누어 집니다. 올해 앵커리지 대회에서는 대회 분야가 18개로 약간의 변화가 있습니다 (참고: http://www.akbeardclub.com/judgingcategorie.html) 2007년 대회의 심판들은 배우이자 가수인 Nick Cave, 영국 시인 Billy Childish등 수염을 기르고 있는 유명인들이 맡았던 것과 같이 올해도 멋진 수염을 기른 유명인이 초청되리라 생각됩니다.



2007년 대회 Imperial Partial Beard 부문 우승자

2007년 대회 Partial Beard Free Style 분야 우승자



 
이제 콧수염(Moustache)과 턱수염(Beard)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moustache는 The World Beard and Moustache Championships 는 6개의 분야로 나누어지는 데 대회에 채택되지 않은 더 많은 종류의 moustache가 있다.

 
1. Moustache
 
1)Natural Moustache:  이 콧수염은 스타일리쉬하나 보조적인 도움 없는 경우가 많다. 수염은 윗입술의 끝을 넘어 최대 1.5cm 부터 기르는 것이 허용된다
 

죠지 해리슨


 
 


2)Hungarian Moustache:  윗입술의 중앙에서 시작해서 크고 덥수룩하다.  수염은 윗 입술 끝을 넘어 최대 1.5cm 부터 기르는 것이 허용된다. 보조적인 기구가 허용된다.
 
 
 
 

3) 
Dalí Moustache:  좁고 긴 끝이 가파르게 윗족으로 휘어져 있다. 입의 모서리를 지나친 부분은 면도가 되어져야 한다. 인공적인 보조기구가 필요하다. 콧수염의 끝으로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살바도로 달리의 이름을 땄다. 
 
 

 

4)
English
Moustache: 영국식 콧수염으로 윗입술의 중간에서 시작해서 가늘어 지며 약간 휘어져 옆으로 길에 당겨져 있다. 끝이 뾰족하고 약간 위로 향해있다.  입의 모서리를 지나는 부분은 보통 면도를 한다. 인공적인 보조기구가 필요하다.
 
 
 
 
 
5) Imperial Moustache:  윗입술과 뺨에서부터 자라 위로 휘어져 올라간다.
 
 
 
 
 
6) Freestyle Moustache:  분류와 일치하지 않는 모든 콧수염들을 지칭한다. 수염은 윗입술 끝을 넘어 최대 1.5cm 정도에서 부터 기르는 것이 허용된다. 보조기구들도 허용된다.



위의 6번까지가 세계 수염 챔피언대회(The World Beard and Moustache Championships)의 moustache 분문에 포함되는 수염의 종류들이다.  이 대회에 포함되지 않는 Moustache 종류는 아래와 같다.

 

7). Fu Manchu : 콧수염이 일반적으로 턱아래까지 길에 늘어져 있다.
 




8) 'Pancho Villa' Moustache : Fu Manchu와 흡사하나 좀 더 두텁다. droopy moustache(늘어진 콧수염)로 알려져 있는데, 역사적인 인물인 판포 빌라( 
Pancho Villa)의 수염보다 훨씬 더 처져있다.
 




9)
Handlebar Moustache: 뽀죡한 끝이 위로 향하고, 덥수룩하다. 야구 선수 롤리 핑거즈( Rollie Fingers) 참조. 또한 이탈리아 남성들의 전형적인 연상 때문에 스파게티 콧수염(spaghetti moustache)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10) Horseshoe Moustache :  종종 Fu Manchu 와 혼돈이 되지만 다르다. 이 수염은 대체로 현대의 카우보이들에게 인기가 있다. 두 입술의 모서리에서 부터 턱선 아래까지 수직으로 늘어진 완전 콧수염(a full moustache)이다. 거꾸로 해놓은 말꿉과 흡사하다.  




11) Pencil Moustache : 연필과 같이 좁고,  곧고,  가는  수염으로  윗 입술의 윤곽을 따라 다듬어져 있다. 코와 간격이 넓다. Mouthbrow로 알려져 있다. 




12) Chevron Moustache: 두텁고, 넓은데 일반적으로 윗입술의 윗부분을 덮는다.

 

NASCAR driver Richard Petty



13)
Toothbrush Moustache: 아주 유명한 콧수염이다. 두텁고, 중앙에서 1인치(2.5cm)정도를 남겨놓고 면도가 된다.  ( Adolf Hitler, Charlie Chaplin, Oliver Hardy, and Robert Mugabe. )

아돌프 히틀러

찰리 채플린




14)
Walrus Moustache: 털이 덥수룩하고 입술을 아래로 드리워지고 종종 완전히 입을 덮는다.( Wilford Brimley and Jamie Hyneman )




15) The GG Moustache: 중앙은 면도가 되고, 입의 모서리에서 덥수룩하게 길러진다. GG Allin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이 수염은 징기스칸(Ghengis Khan)의 수염의 축약형(a shortened version) 이다.
 

GG Allin

징기스 칸

 


2. Full Beards

1) Verdi: 
10cm를 초과하지 않는 길이로 짧고 둥글다. 반드시 꾸며져야 하고 보조기구는 선택이다.

베르디





2)Garibaldi: 넓고 둥글며, 길이가 20cm를 초과하지 않는다. moustache와 합쳐지며 보조기구는 선택적이다.

가리발디





3)
Natural Full Beard:  Asmoustache와 함께 자라며 보조기구가 허용되지 않는다.

프리드리히 엘겔스




4)
Natural Full Beard with Styled Moustache: Natural Full Beard 와 같으나 단지 차이는 moustache가 보조기구로 꾸며질 수 있다. Moustache는 윗입술부터 난 수염으로 간주되며 beard 에 포함되지 않는다.




5)
Freestyle Beard:  위의 스타일들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full beards.



3. Partial Beards



1) Musketeer : Moustache 가 길고 가늘다. 수염은 윗입술의 끝에서 최대 1.5cm 정도 넘어서부터  기르는 것이 허용된다.  Beard는 작고 뾰족하며 보조기구는 허용되지 않는다.
 



2)Chinese(Fu Manchu):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moustache로 분류되어 있으나 세계대회에서는 Partial Beard 부문에 포함되어 있다

John Lennon

 



3) Natural Goatee : Goatee는 우리나라 말로 염소수염이라고 하는데, 단지 턱, 윗아래입술 부근에만 기른다. 보조기구 없이 꾸며질수도 있다.




4) Alaskan Whaler : 전통적인 알래스카 수부의 수염(seafarer's beard)이다. 뺨과 턱, 그리고 아랫입술 아래쪽으로 기르고 덥수룩하다. 윗입술 위쪽에는 기르지 않는다(moustache는 기르지 않는다) 보조기구가 허용되지 않는다. 







5)Sideburns - Mutton Chops : 반드시 Sideburn 이어야 하며 귀 아래로 자연적이거나 면도를 한 틈이 없어야 한다. 턱 부분은 면도가 되고 윗입술위의 수염(moustache)은 선택적이다.  보조기구는 허용된다.






6)Imperial Partial Beard (Imperial Moustache와 다름):  단지 뺨과 윗입술 위에서 기르며 moustache와 합쳐진다. 끝은 위쪽으로 향해야 하고 완전히 굽어져서는 안된다. 보조기구가 허용된다.

 





7) Freestyle Partial Beard : 위의 스타일들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partial beards.

링컨


*Chin Curtain Beard


*위의 모든 사진과 영문의 출처는 위키피디아 및  ttp://www.akbeardclub.com/judgingcategorie.html
  그리고 flicker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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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21:17

음식의 역사(5):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1.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2.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3.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4.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5.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6.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유목민들에게 왜 비타민 결핍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7.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8.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9. 통조림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몇 달씩 배위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0.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11. 20세기초 영국의 징병검사에서 41%의 청년들이 병역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12. 식품판매업자들의 사기행위와 불량식품에 정부와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13. 외국에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이 과연 자국의 식량 상황과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14. 식량 생산과 환경 파괴, 과식으로 인한 질병과 굶주림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유럽 전체와 아드리아 해와 지브롤터 해협 사이에 살고 있던 모든 야만 민족들은 일체가 되어 이동했다…… 온 가족을 이끌고 유럽의 모든 나라를 가로질러 행진하면서…… 그들은 어깨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열광적이고 열정적으로 모든 도로에 모여들었다. 이 전사들과 함게 많은 민간인들이 왔으며, 그 숫자는 바닷가의 모래알과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았다.”
 


1차 십자군 원정 중 안티오크 포위 공격, 중세 세밀화.(The Siege of Antioch, from a medieval miniature painting, during the First Crusade.)
 
 
 

비잔틴 황제의 딸인 안나 콤네나는 최초의 십자군에 참여한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p.224)

안나 콤네나의 묘사는 십자군을 야만 민족이라 비웃고 있지만 ‘열광적이고 열정적으로‘ 란 표현에서는 어떤 두려움이나 심지어 경외감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어떻게 유럽의 ’야만족들‘ 은 십자군과 같은 ’모험적인 계획’ 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십자군 원정은 대단히 힘들고 심지어 무모하달 수 있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계획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생겼을까?



휘어진 보습이 달린 중국 철제 쟁기, 1637
(Chinese iron plough with curved mouldboard, 1637.)

 




소들이 끄는 보습 쟁기. 브리티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6세기 초 중세 영시 원고의 삽화 ( Ploughing with oxen. A miniature from an early-sixteenth-century manuscript of the Middle English poem God Spede ye Plough, held at the British Museum)





바로 이 힘이 쟁기에서 생겨났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중세의 농업 혁명을 구체화한 도구는 평범하게도 새로운 형태의 쟁기였다.“(p.230). 수메르 시대 이래로 쟁기는 그 기능과 모양이 꾸준히 개선되어 왔지만 실제적으로 땅을 갈기에 힘든 막대기에 지나지 않았다. 16세기경에 북동부 지역의 슬라브족은 이전의 쟁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쟁기를 개발했는데, 바로 이것이 '보습 쟁기(moldboard plow)' 였다. 이 보습 쟁기로 인해 땅의 깊은 부분을 파내면서 경작지의 면적을 획기적으로 넓히면서 식량의 증가를 가져왔고 이어 인구의 증가를 불러왔다. 예를 들어, 17세기 말엽에 독일의 한 지역의 인구는 로마 시대에 비해 4배나 증가하였다. 보습 쟁기의 출현은
북부 지방에서 단순히 식량과 인구의 증가뿐만이 아니라 생산성이 높은 3부작을 가능하게 하였고 더 많고 더 질좋은 곡물을 생산할 수 있었다. “단백질 섭취의 증가는 건강 증진, 열량 섭취 증가, 정력의 강화를 의미했다. 3부 윤작을 하는 토지 - 예컨대 샤를마뉴 대제의 프랑크 왕국 - 에서는 사회 자체도 더 부강해졌다. 한 과학기술 역사가가 표현한 대로, 북부의 민족들은 곧 모든 면에서 ‘원기왕성(full of beans)' 해졌다 ”(pp. 232-233) 이렇게 무역과 농업혁명에 따른 식량의 증가와 영양의 섭취는 유럽인들의 수적인 증가와 함께 더 정력적이고 활동적으로 되었다. 이렇게 쟁기에 의해 촉발된 인구의 증가와 육체적인 힘의 활동력의 증가가 십자군 원정을 가능하게 한 이유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위 그림들의 출처는  모두 위키피디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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