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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2 01:28

만약 한글이 없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만약 한글이 없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고 있을까? 참 궁금한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창조했기에 오늘날 우리는 우리말을 가지고 의사소통을 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한글이 창조되기 이전에 오랜 동안 중국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한자가 우리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로 존재해 왔고 또 우리말을 우리글로 적지 못하고 한자로 표현하는 처지였다. 오늘날 쓰기에 있어 한글과 함께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한글 창조 이전의 한자 문화권의 영향이 얼마나 강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한자와 함께 중국말도 함께 공용어로 이용했다면 지금 우리는 중국의 한 성으로 전락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한국말이란 우리말을 광범위하게 사용하였기에 한국말을 지킬 수 있었으며 동시에 우리말 발음에 맞는 한글이라는 우리 글이 만들어 진 것이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켜 올수 있었던 힘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일제 36년이란 식민지 지배하에서도 한국말과 한글이 탄압을 받았지만 일본어가 광범위하게 퍼지지 못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19세기, 20세기초 유럽의 식민지화 된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이 오늘날 그들을 지배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언어를 그대로 공식어로 사용하는 것과 무척 대조를 이룬다 하겠다. 

영어를


영어와 프랑스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왼쪽이 프랑스어, 오른쪽이 영어)


스페인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국가들




비록 한자와 일본어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는 있으나 우리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독창적인 한글이 존재했기에 우리는 아프리카 같은 언어의 식민지화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몰입식교육과 지나친 영어교육의 강조, 그리고 이와 함께 기러기 아빠와 같은 가족들의 생이별은 이상한 현상히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영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을 살펴보면 식민지배를 겪은 후진국가들과 영국에서 분화된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들

  

전세계적으로 영어를 공식어(official language)로 사용하는 국가들은  영국과 미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  후진국가들과 필리핀, 인디아등이 대분이다. 그외 우리가 선진국이라 일컫는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이며 위의 지도상에는 표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유럽 여러 국가들이 공용어나 제 2 외국어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영어의 실용성을 평가할 때 영어의 영향력이  그다지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프리카 국가들과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의 경우를 보더라도 영어로 인해서 경제력이 월등히 높아졌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요인들, 이를테면, 의식적인 측면이 더욱 영향력을 많이 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즉, 양심과 진실이 가장 중요한 사회 간접 자본이 되다고 본다. 예를들면 덴마크와 함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국가 경쟁력은 영어에서 보다 양심과 진실이 경제력을 튼튼하게 만드는 강력한 사회 간접 자본을 형성한다고 판단된다. 

이렇듯 영어를 경제력의 가장 우선 순위에 놓는 교육목표의 설정은 잘못된 방향일 수 있는 것이다. 필리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만연된 부패와 정치인들의 타락이 경제력과 관련하여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라틴어 문자인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남미국가들의 경우도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진실됨의 문제가 더욱 큰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면,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 한자의 영향으로 글(문자)에서 한자가 쓰여지고 있지만 보편적이고 독자적인 한글문화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한글문화가 민족적인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만의 언어가 존재하는 국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홍콩의 경우가 이러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한글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우리말을 사용하고 의사소통을 할 지 참으로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중국어, 영어, 일본어를 공식어로 상용하면서 우리말 표기를 영어로, 한자로, 일본어로 하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수있다. 이러한 예를 인도네시아어와 베트남어에서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어 분포도. 짙은 초록색이 인도네시아어이며 연한 초록색은 자바어를 비롯한 지방어이다.

인도네시아 공식어로 쓰여진 야후 인도네시아 사이트 캡처 화면. 라틴어로 쓰여진 인도네시아어. 예를들면 김치가 맵다는 표현을 'Kimch Ga Mapda' 는 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베트남인의 86%정도가 사용하고 있는 베트남어(프랑스 식민치하에서는 Annamese 로 알려졌음)는 라틴 알파벳을 차용하여 표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공식어가 인도네시아이다. 이 인도네시아어는 말로써는 존재하지만 그 표기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베트남 또한 마찬가지이다. 라틴 알파벳을 차용하고 있다(이 언급에 대해서는 아주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미리 이것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에 감사 드린다).  따라서 라틴어 알파벳을 차용해서 말을 표기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바로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김치가 맵다는 표기가 'Kimchi Ga Mapda' 하는 식이 되는 것이다. 만약 베트님어와 인도네시아어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었다면 어떨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우리의 한글은 너무나도 자랑스런 언어이다. 잘 모르는 처지이지만, 라틴어 표기도 아니며 한자표기도 아닌 아랍어와 함께 독자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물론 소수 언어들은 제외하고)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언어인 것이다. 어찌이런 언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한글을 사용하는 인구가 전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바로 이런 한글이다.

한글의 분포도. 따지고 보면 한국어가 전세계적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이러한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이점을 잘 활용하여 한글의 세계화에 노력해야 한다



아랍어 분포도.


만약 한글이 없다면 우리는 한국말을 한자, 라틴어 알파벳, 아니면 일본어로 표기하는 불행한 일을 겪고 있지 않을까. 마치 베트남어나 인도네시아어의 운명처럼......

*위 이미지들의 출처는 위키피디아와 yahoo! Indonesia, vietna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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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9 18:34

[꽁트] 몰입 가족






 

몰입 가족

― 몰입의 양상들


내가 영어 학원을 운영하고 숱하게 많은 아이들을 보아왔지만 초등학교 5학년인 K 만큼 영어에 몰입하는 아이를 본 적이 없다. 학교를 마치고 곧장 학원으로 달려와서는 수업 시작하기 한 시간 전쯤부터 어학실 TV에서 CNN 방송을 틀어 몰입하는 것이다. 주위에는 시선 한번 두지 않고 아무 말도 없이 오직 TV 스크린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K의 모습이 어떠하리란 것을 쉬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학실의 격리된 부스에 앉아 구부정한 자세로 입을 벌린 체 TV 스크린에 몰입해 있는 모습을. 말도 없고 웃음도 없다. 그냥 앉아 TV에만 몰입하는 것이다.


하루는 내가 너무 궁금해서 원장실로 K를 불렀다. K의 그런 모습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몰입식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K의 행동은 결코 비정상적이지 않았다. 아니 아주 바림직한 자세였다. 그러나 어학원의 원장으로서 학부모들에게 언제나 몰입, 몰입하고 강조해 오긴 했지만, K의 그런 모습을 보자니 나도 K의 그런 모습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약간 몰려왔다.


“너무 영어에만 몰입하는 게 아니니?”

“당연한 거잖아요. 저 영어 몰입하지 않으면 아빠한테 맞아 죽어요. 아빠는 영어가 밥 먹여 준데요.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굶어 죽는데요. 영어가 사람을 잡아먹는데요. 아빠처럼 된데요.”

“아니 아빠가 그런 말씀을 하셔? 영어가 밥 먹여 준다거나 영어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말은 영어가 아주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겠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아빤 제가 영어에 몰입하지 않으면 정말 절 때려요. 아빤 영어 때문에 직장을 쫓겨났다고 했거든요. 그 놈에 영어라고 영어를 저주하면서도 저에겐 영어를 하라고만 하세요.”

“네 아빠가 영어 때문에 직장을 쫓겨났다는 말은 꼭 영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이를테면, 회사를 그만둘 나이가 되었다거나, 건강상의 이유라거나, 아빠가 개인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다거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단다. 이 원장 선생님도 말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이 어학원을 시작했단다. 영어를 못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는 없단다. 아빠도 만찬가지란다. 네가 영어를 잘해 주었으면 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나는 K와 이런 대화를 이끌 가면서 서글픔을 느꼈다. K에겐 아니라고 부인을 했지만 실상 영어가 사람을 잡아먹고 있다는 말은 사실 같았다. K의 아버지가 영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이나, 영어가 밥 먹여준다는 사실은 나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나 또한 영어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고 영어 어학원을 운영하며 밥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몰입이 어학원의 운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달고 있는 간판이 <영어 몰입식 전문 어학원>이라고 적혀있으니 말이다.


비록 먹고 살기 위해 그럴싸한 <영어 몰입식 전문 어학원>이란 이름으로 영어를 가르치고는 있지만, 왜 영어에 이토록 발악에 가까운 몰입을 해야만 하는지 여전히 이해하지도 못한다. 영어가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 진실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잘하면 좋긴 하지만 그렇게 모두들 잘하면 정말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일까? 경쟁력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일까? 그건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나는 그저 돈을 벌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 ‘몰입’이란 단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부끄럽기까지 하다.


“아빤 술에 몰입해 있어요. 매일 매일 술이에요.”

“아빠에게 괴로운 일이 있나보구나?”

“엄마 때문이에요.”

“엄마 때문이라구?”

“예, 엄마 때문이에요. 엄마는 지난주에 집을 나가버렸거든요. 연락도 없구요. 아빠 말로는 애인에 몰입하고 있데요. 돈 없는 아빠보다 돈 많은 애인이 더 좋아 나가버렸데요. 아빤 그런 말을 하면서 또 화를 내세요. CNN만 계속 들으래요. 영어 모르면 굶어 죽는데요.”


K의 엄마를 몇 번 본적이 있다. 밀린 학원비를 내기위해 몇 번 학원을 찾아왔었고 날마다 전화를 해서 K의 진도나 성취도에 대해 직접 체크를 했다. 정말이지 귀찮을 정도였다. 어제도 통화를 했다. 그런데 가출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K의 엄마는 K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방학 때 마다 해외 어학연수를 보냈고, 전화영어를 했고, 수십만원씩을 투자해서 영어 동화 교재와 CD들을 구입했다. 몰입식 영어교육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았다. 자식의 교육에 몰입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인지상정이지만 K 엄마는 더욱 그랬다. 그런 K의 엄마였기에 가출이니 애인이니 하는 말은 의외였던 것이다. 그녀에겐 자식인 K가 모든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엄마가 집을 나갔다니, 그게 사실이냐. 네가 잘못 알고 있겠지. 할머니 집이나 친구집에 가 계시지 않을까?”

“절대 아니에요. 아빠가 그랬어요, 이제부터 둘이 같이 살자구요. 엄마가 보고 싶어 죽겠어요. 아빠 그러던데요, 내가 영어를 잘해서 유명한 사람이 되면 엄마를 찾을 수가 있데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영어에 몰입해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게 되면 엄마를 찾을지도 모르겠구나.”


나는 영어를 잘하면 엄마를 찾을 수 있다는 어이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K가 입을 열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몰입해 있어요. 아빠는 술에요, 엄마는 애인에요, 난 영어에요. 우린 몰입가족이에요.”    

(2008.07.07.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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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8 15:25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내가 처음 영어 몰입식 교육이란 말을 들었을 때 막혔던 길이 확 열리는 것처럼 눈부신 희망의 빛을 보았다. 공식적으로 몰입이 인정된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나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DUJNBgbVmAD/Bdc7MzoMOB+YzuoNPPjUz9ZJCKHGIUM=


나는 20살, 대학교 1학년이다. 내 삶의 약 3분의 1 정도는 영어라는 신성한 제단위에 바쳐졌다고 해도 그리 과장은 아니다. 부모부터 발 벗고 나서서 영어 공부를 시켰다. 방학이면 어학연수다 특별과정이다 해서 영어와 살도록 했다. 그런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사실에 자신의 지적인 능력에서부터 언어감각에 이르기까지 원망하고 또 원망을 했다.


내가 영어와 더불어 살아 온 삶은 동시에 분노와 절망과 실의의 나날이기도 했다. 왜 유창하게 안 되는가? 이 질문은 그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하는 처절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무엇을 남겼는가?  


영어 몰입식 교육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몰입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에도 불구하고 내게서 부족했던 것은 바로 영어에 대한 몰입이었던 것이다. 몰입! 나는 진정으로 영어에 몰입했던 적이 있는가? 답은 아니오였다. 방학 때의 어학연수도, 특별과정도 진정한 몰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답은 몰입에 있었다. 오랜 동안 지쳐있던 내게 몰입은 구원이고 희망이었다. 동시에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몰입하지 않았던 나, 이제 몰입하자! 나는 이렇게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나는 내 삶에서 한국말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말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건 기본적인 상식이 아닌가. 넌센스일리도 없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몰입이란 단어를 보통명사화 하고 있지 않은가. 몰입을 위해 영어 외에는 당분간 모든 것들을 몰수하기로 한 것일 뿐이다. 몰수! 그렇다 바로 몰수였다.


누가 무어라 하던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는 자기 최면을 하루에도 수십 번 씩 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언어는 영어 밖에 없다. 영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I am not Korean. I am not Korean. I can just speak English. I couldn't live without English!)’ 나는 이렇게 철저하게 한국인인 자신을 지우고 부정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 모국어는 영어다.


몰입을 하려면 이토록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마저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몰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몰입이란 단어가 보통명사화 되어가는 마당에 그렇게 영어에 몰입하는 삶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줄 것이라고 자기 변병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물론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이다.


‘People around me will understand me speaking only Enlgish in my daily life! 오렌지 wrong, 오뤤지 right!’


가족들은 대체로 나를 이해해 주는 입장이었다. 부모님은 영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알고있기에 나의 이러한 몰입에 대해 가끔씩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지지해주었다. 아버지는 카튜샤 출신으로 미군들로부터 영어 못한다고 수모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욕과 일상적인 언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욕을 들어도 흰 이를 드러내 놓고 히죽거리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사진관을 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가끔씩 사진을 찍으러 오는 미국인들과 손짓 발짓을 하며 의사소통을 하려고 했다 한다. 그러면서 영어에 호기심이 생겼고 카튜샤 출신의 아버지와 만났다는 것이다.  


나의 형은 더욱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형은 미국 LA 유학시절 슬럼가에서 흑인들과 몰려다니면서 흑인영어를 배웠다. 형은 LA 코리아타운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인들을 무시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지, 영어를 배우지 않고 한국말만 하는 태도는 미국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그렇지,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위대한 영어를 마다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다니!’ 형은 언제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형은 한국을 증오했다. 한국말이 촌스럽다고 했다. 한국의 문화가 쪽팔린다고도 했다. 형이 왜 이런 삐뚤어진 생각을 갖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단지 형은 유학시절 한국에 남아있던 여친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적이 있고, 방학 중에 귀국해 한국에서 마리화나와 LSD를 하다 불구속 입건이 된 적이 있고, 영어를 뒈지게 못하면서도 잘난척하는 인간들을 자주 욕했던 것으로 판단해 보면 그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가족 외의 주위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기에는 수준 차이가 났다. 그들은 몰입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을 테지만, 진정한 몰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의 진정성을 이해하기에 그들이 나와 영어로 소통하기란 불가능 할 것 같았다. 동네 이발소 최씨 아저씨나 정육점의 박씨 부부, 패밀리 마트의 아르바이트생이 어떻게 몰입에 대해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있겠는가. 


' Please, understand me! I am not Korean. I can't speak Korean. Please try to speak in Enligsh. '


이런 말이 입속을 맴돌았지만 침묵해야 했다. 단지 나는 그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영어로만 말을 했다. 이발소 최씨 아저씨는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거려주곤 했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리고는 입을 딱 닫아버렸으니 말이다. short cut 정도에서 멈춰버리는 것이다.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정육점 박씨 아저씨: 어서와 오랜만이네!

나: How's everything ?

정육점 박씨 아저씨: 만사형통

나: Can you speak English?

정육점 박씨 아저씨: 물론이지

나: What is your favorite movie?

정육점 박씨 아저씨: 오케이, 오케이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가장 이상적이다. 의도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접근을 하여 가능하면 많은 영어를 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한가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다. 흑인이나 백인을 가릴 필요도 없다. 나의 몰입에는 인종적인 편견이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영어만 하면 되지 흑, 백 따질 필요가 없다. 또한 빈부귀천, 학벌도 따질 필요가 없다. 영어에만 몰입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사 오케이인 것이다. 본국에서 노숙자를 했던, 마약자던, 전과자던, 범죄인이던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나 그녀가 미국인이면 되고, 영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면 되는 것이다. 오로지 영어에 몰입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10일 후에는 3개월째 영어에만 몰입한 100일이 된다. 하늘에 두고 맹세코 말하지만 단 한 번도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건 영어만 했다. 진정한 몰입의 실천이라고 자신한다. 진정한 몰입! 앞으로도 나에게서 모든 한국적인 것을 몰수해 버리고 오직 영어에만 몰입할 것을 다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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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5 01:57

[꽁트]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몰입은 구원이요 희망이다


내가 처음 영어 몰입식 교육이란 말을 들었을 때 막혔던 길이 확 열리는 것처럼 눈부신 희망의 빛을 보았다. 공식적으로 몰입이 인정된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나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20살, 대학교 1학년이다. 내 삶의 약 3분의 1 정도는 영어라는 신성한 제단위에 바쳐졌다고 해도 그리 과장은 아니다. 부모부터 발 벗고 나서서 영어 공부를 시켰다. 방학이면 어학연수다 특별과정이다 해서 영어와 살도록 했다. 그런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사실에 자신의 지적인 능력에서부터 언어감각에 이르기까지 원망하고 또 원망을 했다.


내가 영어와 더불어 살아 온 삶은 동시에 분노와 절망과 실의의 나날이기도 했다. 왜 유창하게 안 되는가? 이 질문은 그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하는 처절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그 엄청난 돈과 시간들은 무엇을 남겼는가?  


영어 몰입식 교육이 공식적으로 발표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몰입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그 엄청난 돈과 시간에도 불구하고 내게서 부족했던 것은 바로 영어에 대한 몰입이었던 것이다. 몰입! 나는 진정으로 영어에 몰입했던 적이 있는가? 답은 아니오였다. 방학 때의 어학연수도, 특별과정도 진정한 몰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답은 몰입에 있었다. 오랜 동안 지쳐있던 내게 몰입은 구원이고 희망이었다. 동시에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몰입하지 않았던 나, 이제 몰입하자! 나는 이렇게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나는 내 삶에서 한국말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말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건 기본적인 상식이 아닌가. 넌센스일리도 없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몰입이란 단어를 보통명사화 하고 있지 않은가. 몰입을 위해 영어 외에는 당분간 모든 것들을 몰수하기로 한 것일 뿐이다. 몰수! 그렇다 바로 몰수였다.


누가 무어라 하던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는 자기 최면을 하루에도 수십 번 씩 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언어는 영어 밖에 없다. 영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I am not Korean. I am not Korean. I can just speak English. I couldn't live without English!)’ 나는 이렇게 철저하게 한국인인 자신을 지우고 부정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내 모국어는 영어다.


몰입을 하려면 이토록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마저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몰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몰입이란 단어가 보통명사화 되어가는 마당에 그렇게 영어에 몰입하는 삶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줄 것이라고 자기 변병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물론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이다.


‘People around me will understand me speaking only Enlgish in my daily life! 오렌지 wrong, 오뤤지 right!’


가족들은 대체로 나를 이해해 주는 입장이었다. 부모님은 영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알고있기에 나의 이러한 몰입에 대해 가끔씩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지지해주었다. 아버지는 카튜샤 출신으로 미군들로부터 영어 못한다고 수모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욕과 일상적인 언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욕을 들어도 흰 이를 드러내 놓고 히죽거리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미국 대사관 근처에서 사진관을 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을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가끔씩 사진을 찍으러 오는 미국인들과 손짓 발짓을 하며 의사소통을 하려고 했다 한다. 그러면서 영어에 호기심이 생겼고 카튜샤 출신의 아버지와 만났다는 것이다.  


나의 형은 더욱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형은 미국 LA 유학시절 슬럼가에서 흑인들과 몰려다니면서 흑인영어를 배웠다. 형은 LA 코리아타운에서 한국말을 하는 한인들을 무시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지, 영어를 배우지 않고 한국말만 하는 태도는 미국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그렇지,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위대한 영어를 마다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다니!’ 형은 언제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형은 한국을 증오했다. 한국말이 촌스럽다고 했다. 한국의 문화가 쪽팔린다고도 했다. 형이 왜 이런 삐뚤어진 생각을 갖게 됐는지는 잘 모른다. 단지 형은 유학시절 한국에 남아있던 여친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적이 있고, 방학 중에 귀국해 한국에서 마리화나와 LSD를 하다 불구속 입건이 된 적이 있고, 영어를 뒈지게 못하면서도 잘난척하는 인간들을 자주 욕했던 것으로 판단해 보면 그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가족 외의 주위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기에는 수준 차이가 났다. 그들은 몰입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는 했을 테지만, 진정한 몰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의 진정성을 이해하기에 그들이 나와 영어로 소통하기란 불가능 할 것 같았다. 동네 이발소 최씨 아저씨나 정육점의 박씨 부부, 패밀리 마트의 아르바이트생이 어떻게 몰입에 대해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있겠는가. 


' Please, understand me! I am not Korean. I can't speak Korean. Please try to speak in Enligsh. '


이런 말이 입속을 맴돌았지만 침묵해야 했다. 단지 나는 그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영어로만 말을 했다. 이발소 최씨 아저씨는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거려주곤 했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리고는 입을 딱 닫아버렸으니 말이다. short cut 정도에서 멈춰버리는 것이다. 대화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정육점 박씨 아저씨: 어서와 오랜만이네!

나: How's everything ?

정육점 박씨 아저씨: 만사형통

나: Can you speak English?

정육점 박씨 아저씨: 물론이지

나: What is your favorite movie?

정육점 박씨 아저씨: 오케이, 오케이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가장 이상적이다. 의도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접근을 하여 가능하면 많은 영어를 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한가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이다. 흑인이나 백인을 가릴 필요도 없다. 나의 몰입에는 인종적인 편견이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영어만 하면 되지 흑, 백 따질 필요가 없다. 또한 빈부귀천, 학벌도 따질 필요가 없다. 영어에만 몰입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사 오케이인 것이다. 본국에서 노숙자를 했던, 마약자던, 전과자던, 범죄인이던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나 그녀가 미국인이면 되고, 영어를 하면 되는 것이다.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면 되는 것이다. 오로지 영어에 몰입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 10일 후에는 3개월째 영어에만 몰입한 100일이 된다. 하늘에 두고 맹세코 말하지만 단 한 번도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건 영어만 했다. 진정한 몰입의 실천이라고 자신한다. 진정한 몰입! 앞으로도 나에게서 모든 한국적인 것을 몰수해 버리고 오직 영어에만 몰입할 것을 다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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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6.25.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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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4 18:29

[꽁트] 몰입은 너의 운명



 



몰입은 너의 운명


난 지금 굉장히 심각하다. 이렇게 심각한 적이 별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때 “내게 왜 엄마가 없냐” 는 질문에 할머니가 “너를 낳다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참 심각했었다. 할머니는 너무 솔직하셨다고 생각한다. 그냥 ‘죽어다‘ 라는 표현보다는 좀 더 인간적이긴 하지만 나를 너무 사실적으로 개입시킨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의 판단으로는 별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겠으나 나에게는 크나큰 슬픔이었고 절망이었다.   


그리고 아빠가 중 2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난 또다시 참으로 심각했었다. 나에게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아빠의 죽음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게 아빠가 있었다니! 한 밤중에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외할머니는 아빠의 존재를 확인했다. 길바닥에서 얼어 죽은 아빠! 엄마가 죽기 전에 이미 내게서 죽음보다도 더 하얗게 지어져 버린 아빠의 존재. 그렇게 아빠의 죽음으로 아빠의 존재를 알았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당신의 죽음으로 내게 다시 살아났던 것이다. 세상에 죽음과 삶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잇닿아 있다는 생각을 그 어린 시절부터 했던 것이다.


외할머니와 외삼촌과 함께 살아온 지 이제 4년, 내게 또 다른 위기가 찾아 들었다. 연세가 많이 드신 할머니는 경제적으로 어렵다. 외삼촌을 부양하기에도 힘이 드신다. 외삼촌이 머리가 비상해서 경제적인 부담보다는 도움을 많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삶은 고달프시다. 당신은 손녀 용돈이라도 쥐어주려고 봄이면 시장통 구석진 한 모퉁이에 앉아 상추를 팔곤 하시고, 여름이면 바닷가에서  환경정화 활동으로 젊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버린 오물이나 휴지를 처리하거나 주우시고, 가을에는  각종 스티커나 광고물들을 나누어 주신다. 추운 한겨울도 예외는 아니다. 연말연시 대목을 맞은 식당에서 청소도 하고 주방에서 일당으로 일을 하시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위기가 할머니 때문은 아니다.


외삼촌은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라고 이미 말했다. 과외 한 번 시킨 적도 없고, 좋은 책 한 번 사준 적이 없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혼자서 척척 잘해서 외할머니가 입에 댄 적이 단 한번 도 없다고 하셨다. 지금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곳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나도 외삼촌 같은 사람이 되어 외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 그러나 나의 위기가 또한 외삼촌 때문은 아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전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의 위기는 영어 때문이다.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그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대해 나는 어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당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어에 몰입해야 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알지도 못하는 영어의 웅웅거림에 스스로 최면상태처럼 몰입해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고역이 아닐 수 있겠는가? 내게 들리는 것이라곤 한국의 지명이나 인물의 이름들, 그리고 숫자들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사실  남들에게는 대수로운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심각하다. 나는 국문학자나 사학자가 되는 것이 장래의 꿈이다. 국문학자가 되기 위해 영어권 대학으로 유학갈 일이 있을까? 나는 또한 학자가 아니라면 멋진 한정식 식당 주인이 되고 싶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영어가 정말 필요한 것일까?  


내가 생활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두 가지의 상반되는 경우가 나를 심각한 딜레마로 빠지게 한다. 어쩌면 아이러니인지도 모르겠다. 영어 몰입에 몰 자도 모르고 살아오신 외할머니를 보면 영어는 필요 없는 것 같은데, 오히려 할머니는 “앞으로 니가 이 할미처럼 고생 안할라믄 영어는 꼭 유창하게 해야 하닌기라, 알겠나! 니 외삼촌을 바라, 영어 잘하니까 유학도 가고 얼매나 좋아.” 하고 마치 영어의 필요성을 간절하게 느끼시고 있는 것처럼 강조를 하신다. 언젠가는 영어 몰입교육이 무엇인지를 교회에서 듣고 오셨다고 하시면서 “몰입 거, 좋은 거라더라! 니는 영어에 몰입해서 영어 그거 콱 아작을 내비리야 하는 기라. 알겠나! 한국말은 몰라도 영어는 유창하게 해야 되는 기라, 알겠나!” 나는 할머니께서 살아오신 삶을 되돌아보면서 할머니가 몰입되어온 신산스러운 삶이 나를 영어 몰입으로 내 모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당신께서는 어려운 삶을 살아오셨지만 내게 만은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리라.


할머니와는 달리 국비 유학을 떠나 작년에 영국 옥스포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빋고 교수생활을 시작한 외삼촌은 영어 몰입 교육에 조소를 보내기만 한다. 삼촌의 빈 방 책꽂이에 꼽혀있는 영문 원서들하며, 논문 자료들, 각종 서류들을 보면, 또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 외삼촌은 영어 몰입식 교육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외삼촌은 영어 몰입식 교육에 조소를 보내면서 “모든 국민들이 영어를 다 유창하게 할 필요가 어디에 있냐? 할머니를 봐라, 할머니가 영어가 필요하냐? 영어가 없이도 잘 살아 오지 않으셨냐? 삶에는 영어보다 더 필요한 가치들이 너무나도 많은 데 모든 사람들을 영어에 몰입시킬 필요가 어디에 있겠냐. 심지어 영어 공용어를 주장하는 분들도 있더라. 가슴 아픈 건 내가 존경하시는 분이 영어 공용어를 주장하시는 거야. 몰입도 안되고 영어 공용어도 안되는 거야. 영어 때문에 좀 불편은 하겠지만 말이야. 그건 말이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기독교인으로 전도하려는 생각과 같은 거야, 알겠냐.” 외삼촌의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외삼촌이 영국에서 보내 온 편지가 맞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할머니와 외삼촌의 영어 몰입에 대한 상반된 생각 사이에서 혼란스럽다기보다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그 상반된 생각들이 할머니와 외삼촌사이에서 뒤바껴 주장된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했던 것이다. 즉, 할머니야 말로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영어 없이도 다 살아가는데 뭐 필요한가하고 비판을 했어야 하고, 외삼촌이야 말로 외국물 먹은 경험으로 봐서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적극적인 수용을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반대였던 것이다.


사실 나는 몰입식이니 비몰입식이니에 관심이 없었다. 나라에서 한다면 할 수 밖에 없고 뭐 별수 있나 하는 식의 체제와 정책에 순종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런데 자꾸만 주위에서, 특히 할머니와 외삼촌의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한 상반된 생각에 몰입에 가까운 강요를 당하면서 그것의 타당성에 대한 나 자신의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호기심은 무학의 할머니에서부터 최고지식층이랄 수 있는 외삼촌에 이르기까지 커지면서 다양한 의견으로 폭발하고 있는 것이기에 이제 나 자신도 국가와 민족을 떠나 나 자신을 위해 과연 영어 몰입식 교육이 필수적인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영어를 배우신 적이 없다. 영어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오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영어 몰입식 교육을 찬성하신다. 이러한 할머니의 태도는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자신은 영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삶을 살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영어 몰입식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을 손자에게는 시켜보겠다는 그 한의 읊조림일까?


또 외삼촌은 어떤가? 외삼촌은 누구보다도 영어가 필요한 사람이다. 영어가 외삼촌의 삶의 근거마저도 지탱하는 일부가 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외삼촌은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해 비판하고 심지어 조소를 보내기까지 한다. 삼촌의 그 태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깊이 안자의 깊이 있는 통찰의 결과일까?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충분히 들었다. 그렇다면 영어 몰입교육이 외국에 여행 몇 번 하면서 영어가 필요하더라, 의사소통이 필요하더라는 피상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일까? 오렌지가 아니라 오뤤지로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 몰입식 교육은 정말 필요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와 외삼촌의 상반된 주장은 우습기까지 하다. 영어가 절실히 필요한 외삼촌은 몰입이라는 단어에 조차 알레르기와 스트레스를 보이고, 영어가 전혀 불필요한 외할머니는 몰입이라는 단어 하나가 벌써 나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듯이 찬사를 보내시니 말이다.


나는 외할머니와 외삼촌의 생각을 블렌딩하기로 했다. 그리고 쉐이킹하고 스티어링해서 내어 놓기로 했다.


할머니는 영문도 모른 체 당신의 삶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영어를 죽어라고 하라는 것이다. 할머니에겐 놀랍도록 영어가 도구화 되어 있는 것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너무나 순박한 생각을 하고 계신거다. 즉, 할머니는 영어의 가치를 너무 일방적이고 맹목적으로 성공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삼촌은 달랐다. 비록 나의 생각 속에 할머니의 생각과 외삼촌의 생각을 뒤섞여 놓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외삼촌의 생각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영어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던지는 것이다. ‘내게 영어는 무엇인가?’ ‘나는 왜 영어를 배우는가?’       삼촌에게도 영어가 수단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할머니와 다른 것은 영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목적인 경우에까지 영어를 수단화하고 도구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영어가 필요 없는 할머니의 삶에서 영어는 그야말로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할머니처럼 삶에 대한 간절하고 절실한 의지를 보일 것. 그러나 맹목적이지는 말 것! 

외삼촌처럼 삶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수단들을 생각해 볼 것. 영어가 정보화 세계화의 도구로 긍정적으로 작용하긴 하겠지만 인간의 삶은 정보화 세계화가 다가 아니라는 것! 실용화가 다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나의 영어 몰입식 교육에 대한 가치 판단은 상대적이라는 것! 민족과 국가이전에 나의 외할머니와 외삼촌의 생각이 나의 생각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 몰입을 절대적인 가치처럼 주장하는 인간들과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중이 절을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 몰입을 강요하더라도 몰입하지 않을 것임!

그러나 나는 내 수동적인 독백에 불만스러워 이렇게 덧붙인다
몰입은 그저 니 운명이라고, 내 삶에 몰입을 강요하지 말라고!(*)

(2008.6.22.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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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2 20:39

[생각 돌아보기] 영어 몰입교육과 'Korea State'


                         


                                        영어 몰입교육과 Korea State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어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로드맵


요즘 영어 몰입식 교육이니 공용어니 하는 논의가 활발하게 일고 있다. 그 와중에 대통령까지 뛰어들어 몰입식 영어교육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자기주장을 피력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왜 이러한 주장을 피력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영어교육 전문가도 아닌 대통령까지 몰입식 영어교육 운운하는 것을 보면 영어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임을 실감하게 된다. 미국인의 시각에서 한국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아마도 아프리카의 어느 빈곤국 국가가 한국어 몰입식 교육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한국민이 느끼는 실망감과 가히 다르지 않는 감정을 느끼리라 추측된다. 그러나 실상은 영어에 대한 의식은 ‘몰입식 영어교육‘ 이전에 이미 보다 더 강력하게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보이지 않는 유령으로 존재해온 터라 미국인들은 그다지 섭섭하다거나 아쉬움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끼어들어 다소 복잡(?)해 지긴 했으나 몰입식 영어교육이고, 공용어이고 간에 이러한 문제에 관한 찬, 반의 주장들이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서로 맞서 있는 형국이다. 대체로 지식인들이 내놓는 논의, 주장이고 보면 정말이지 일관된 논리를 견지하고 있다. 이런 사이에서 일반 서민들은 어느 하나의 주장을 선택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까지 끼어들었으니 더욱 그리하리라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욱 어리둥절한 것은 대통령이 언급한 ‘현실적’ 이란 말의 의미이다. 몰입식 영어교육이 가능해 지는 ‘현실‘ 은 어떤 모습일까?  


일반 서민의 한사람으로서 이러한 판단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몰입식 영어교육이 가능한 ‘현실‘ 이 도대체 어떠한 현실인지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몰입식 영어가 가능한 현실을 생각해 본다. 


첫째, 영어 몰입식 교육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필요성을 절실하게 주장한다. 글로벌 시대의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좀더 솔직히 경제적인 이익을 가장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이 영어라는 판단이다. 단언하건대 이러한 주장은 분명히 틀렸다. 경제적인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몰입식 영어교육이나 영어 공용어화는 겨우 차선이거나 실패작일 수 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교체해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즉, 소프트웨어로서의 ‘영어’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로서 대한민국이란 ‘국가’ 자체를 미국의 주(state)로 편입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란 생각이다. 미국화 된 푸에르토리코의 경우가 바로 그 그 좋은 예이다. 차라리 미국의 주(州)인 Korean State의 탄생이 영어 몰입식 교육의 가장 현실적인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 글로벌 시대에는 경직되고 폐쇄적인 민족주의는 글로벌 시대의 경제 전쟁에 적합치 않다고 주장한다. 민족주의의 울타리에 안주한다면 글로벌 시대의 혜택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일민족을 포기하고 백인과 흑인을한국민과 더불어 제2의 민족이나 ‘공용인화’ 해야 한다고 본다. 백인이 내 민족이요, 흑인이 내 민족이 되는 혼합민족 구성이 몰입식 영어 교육의 가장 최고의 현실적인 조건이라고 상상해 본다. 


셋째, 영, 미인들이 전혀 사용하지 않는 한국어는 글로벌 시대에 의사소통 수단으로 무의미하다고 여겨진다. 특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한국어는 필요 없는 지엽적인 언어에 불과하다. 몰입식 영어교육과 영어 공용어를 찬성하는 지식인들은 직접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러한 전제를 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글로벌 시대에 올바른 영어 구사에 장애가 되는 한국어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도록, 아니면 부분적으로 금지하는 법령을 실시하는 것이 몰입식 영어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현실적인 조건이 아닐까 판단된다.


차선책을 주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일류선진 국가, 실용주의 국가, 경제적인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국가라면 굳이 한국이란 국가로 남아있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미국의 주로 편입하여 영어문제 뿐만이 아니라 사교육 문제까지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최고의 실용이 아니겠는가?


대통령이 언급한 현실이 너무나도 궁금하다. 대한민국을 미국의 연방에 편입하고, 단일민족을 포기하고, 다인종국가를 주장하며 효과적인 실용영어의 구사를 위해 영어 알파벳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어서 영어습득을 저해하는 한국어를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사용 제한하는 현실일까?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실상은 이것이 가장 실용적이고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현실임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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