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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7 06:54

♥ 비틀즈의 Abbey Road, 그리고 Zebra와 Pelican의 공통점은? ♥






비틀즈 Abbey Road와 횡단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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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bra crossing(흰줄 무늬 횡단보도)이 인상적인 비틀즈 Abbey Road 앨범 커버 사진




문제) Zebra, Pelican, Puffin, Panda, Pegasus 이 동물들의 공통점은?
         

*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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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Abbey Road 앨범 커버 사진은 Zebra crossing(이하 흰줄무늬 횡단보도로 표기) 이 인상적이다. 1969년 당시의 위치에서 약간의 이동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비틀즈 팬들(Beatlemaniac)에게는 성지 순례(?) 일부가 아닐까 한다. Abbey Road는 그처럼 비틀즈의 상징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흰줄 무늬 횡단보도는 영국에서 1949년에 시험적으로 1000 곳에서 실시가 된 후. 1951년에 표준이 정해지면서 법으로 정착이 되었다. 이때 흰색 줄의 Zebra crossing의 표준(이전에는 푸른색과 노란색이었다)이 정해진 것이다.

횡단보도와 관련해서 보행자들, 특히 어린아이들의 횡단 안전을 위해 1942년에 정해진 Kerb Drill 이 1971년에는 좀 더 정교해진 Green Cross Code 로 대체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러한 Code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 나라에서는 관행상 Kerb Drill이 사용되고 있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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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ww.flickr.com/photos/nanacomp




*Kerb Dr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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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en Cross 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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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들의 횡단을 위해서 등교 시간대에 lollipop man 이 횡단을 도왔는데 그들이 들고 있는 pole 이 롤리팝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원의 가장 자리에는 붉은 선으로 그려져 있고 가운데는 검은 사각형(bar) 이 있는데 여기에 신호를 위반한 차의 번호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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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llipop pole을 들고 있는 Lollipop lady



횡단보도는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를 하는데 영국에서는 Zebra crossing이 그러하듯 횡단 보도의 타입을 구별하기 위해 동물의 이름이 사용 되었다. Zebra crossing 이후 Pelican crossing이 등장한다. Pelican crossing의 공식적인 이름은 Pelicon crossing(PEdestrian LIght CONtrolled crossing을 줄여서) 이지만 동물 이름을 딴 다른 타입의 횡단보도와 구색을 맞추어 Pelican crossing 이라고 한다. 이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버튼을 작동하여 횡단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Panda crossing 의 실패 후, 1969년에 도입된 Pelican crossing 은 영국에서 최초로 신호등으로 통제되는 횡단보도였다. 신호등과 과련해서, Zebra crossing 도 신호등(Belisha beacons)이 있었으나 단순히 경고 신호로 사용되었을 뿐 통제용 신호는 아니었다. Puffin crossing은 대개의 보행자용 신호등이 맞은 편 쪽에 위치해 있는 것과는 달리 보행자가 있는 쪽에 통제용 버튼과 함께 위치하고 있고 보행자들이 대기하고 있거나 횡단할 때 보행자의 존재를 감지하는 센스가 작동한다. Toucan crossing(Since two-can, both pedestrians and cyclists, cross together, the name toucan was chosen.)은 보행자와 자전가가 함께 횡단할 수 있는 횡단보도이다. Pegasus crossing는 이름 그대로 보행자와 말을 탄 보행자를 위한 횡단보도이다.

이상은 영국과 연연방 국가들의 황단보도의 종류들이다.


아래는 북미 국가들, 미국과 캐나다의 횡단보도 표시 무늬들이다. 비록 Zebra란 이름이 존재하지만 영국의 Zebra crossing 은 북미의 Continental 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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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의 횡단보도 무늬의 종류들



*Pelican cro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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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 cro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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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ffin cro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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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can cro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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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gasus cro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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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과 사진들은 위키피디아 사전에서 인용하고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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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4 01:06

♥ 비틀즈 Abbey Road에 얽힌 수수께끼 ♥




비틀즈 Abbey Road에 얽힌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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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이 되는 오른쪽 인도(pavement)에 서있는 남자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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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윗 사진의 왼쪽에 있는 흰 딱정벌레(beetle:폭스바겐차)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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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흰줄이 그으져 있는 횡단보도의 영어명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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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bbey Road Studio 는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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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Abbey Road 앨범 커버 사진은 1969년 10월 12일 폴매카트니의 사망 음모설이 떠돌기 시작하고 사망설을 설명
    하는 자료로 제시됩니다. 어떤 이유가 담겨져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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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ey Road cover 패러디. 횡단보도에 그려진 사인이 위의 사진과는 다르다


자료는 위키피디아 한글, 영문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미지는 위키피디아와 이곳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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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3 18:19

♥ 비틀즈의 Abbey Road 패러디 ♥



비틀즈의 Abbey Road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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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은 내가 피던 담배의 브랜드명을 따서 Everest라는 타이틀을 붙이려고 했다“ 비틀즈와 함께                < Revolver><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The White Album>< Abbey Road> 앨범 작업을 한 것으로 잘 알려진 녹음실 오디오 엔지니어인 Geoff Emerick 이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한 말이다. 심지어 히말라야산맥에서 커버 사진을 찍자는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그룹이 사진을 찍어야 할 때 쯤, 비틀즈는 ‘Abbey Road’ 라고 부르기로 결정을 내리고는 1969년 8월 8일에 스튜디오 밖에서 사진을 찍었다.

커버 디자이너는 에플 레코드의 창의적인 연출가인 Kosh였다. 커버 사진은 사진사 Iain Macmillan 이 찍었다. Macmillan은 사진을 찍는 데 그날 아침 11:30쯤 겨우 10분이 주어졌을 뿐이다.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Abbey Road 커버 사진은 그 이후로 레코딩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모방의 대상이 되는 앨범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위키피아 영문판 참조)



Abbey Road Studio에서의 recording 모습. Abbey Road는 studio의 바로 밖에 있다


아래 이미지 출처: http://www.amiright.com/album-covers/abbey-road-paro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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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19:44

비틀즈의 'Penny Lane' 과 흑인 노예 수송로(2)




                    비틀즈의 ‘Penny Lane’ 과 흑인 노예 수송로(2)



앞 글에서 계속

2006년 7월에 한 리버풀 시의원이 특정한 도로명들을 개명할 것을 제안했는데, 그 이유는 그 도로명들이 노예무역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리버풀은 18세기 후반 노예선들을 위한 주요한 항구 였다. 아프리카에서 운반해온 흑인들을 다시 노예선으로 옮겨 싣고 미국으로 운반하는 노예선들의 중심항들 중에 하나였다. 그 당시 도시 경제의 상당 부분이 노예 무역에 의존하고 있었다. 18세기 노예선의 소유주이자 강경한 노예폐지 반대론자인 제임스 페니(James Penny)의 이름을 딴 Penny Lane도 이러한 도로들 중에 하나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강경한 노예폐지 반대론자들의 이름을 딴 도로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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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kr.news.yahoo.com/servi





도로 개명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었다. 에릭 린치(Eric Lynch)는 도로의 개명을 독일인이 아우츠비슈 수용소를 없애는 것에 비유하면서 ‘역사를 바꾸는 불명예스러운 시도’ 라고 반박했고, 이에 대해 제안자인 바바라 매이스(Babara Mace)는 역사를 다시 쓰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리버풀의 역사는 역사책에 존재한다고 맞섰다. 이 도로명들을 2006년 7월 10일, 최초의 제안은 Penny Lane을 제외하고 개명하자는 수정 제안으로 바뀌어 통과되었다.

말하자면 지금 리버풀의 노예 무역과 관련된 도로들은 인종 차별로 희생된 흑인의 이름이나 인종 차별을 폐지를 부르짖었던 활동가들의 이름을 따 개명이 되었지만 Penny Lane은 여전히 노예 페지 강경론자인 제임스 페니의 이름을 그대로 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틀즈에게는 수치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이미지는 진보적이고 자유적이며 반문화적인데 반해 그들이 읊었던 Penny Lane은 억압과 차별과 폭력의 상징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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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200여년이라는 시차가 있지만, 비틀즈가 정감어린 노래에 담았던 Penny Lane이 끌려가는 흑인 노예들에게는 어떠한 길이었던 가를 생각하면 노래<Penny Lane>은 그야말로 우리들을 당혹스럽고 고통스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흑인들은 목과 손과 발에 쇠사슬이 묶여 고통스러운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을 것이다. 쓰러져 죽기도하고 고통에 신음했을 것이다. 짐승처럼 끌려가면서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비틀즈의 흥겨운 노래 뒤에 이러한 흑인 노예들의 고통과 피와 절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비극적인 사실이다. 대영제국의 영광과 비틀즈의 모던한 음악의 이면에는 이렇게 어두운 역사의 비극들이 그림자처럼 길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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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02:28

비틀즈의 'Penny Lane' 과 흑인 노예 수송로(1)





비틀즈의 ‘Penny Lane’ 과 흑인 노예 수송로(1)

비틀즈(The Beatles)의 <Penny Lane>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Penny Lane>은 비틀즈의 멤버들이 태어난 도시 리버풀(Liverpool)의 어느 거리의 이름이다. Smithdown Road와 인접한 주변 지역을 일반적으로 Penny Lane 이라고 부른다. 위치상으로는 Penny Lane 이라는 말은 Allerton RoadSmithdown Road 그리고 그곳의 쇼핑지역 일대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The area that surrounds its junction with Smithdown Road is also commonly called Penny Lane. Locally the term "Penny Lane" was the name given to Allerton Road and Smithdown Road and its busy shopping area.)

<Penny Lane>은 그들이 어린 시절 생활하면서 보아왔던 노변의 정경과 인간들과 사물과 자연(하늘)을 노래하고 있다. 물론 당시에 유행하던 속어와 전후 현실의 기억도 포함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기억은 없을 것이지만 폭격의 굉음과 사람들의 비명이 무의식의 내상을 잉태했을 것이다.

그들이 태어나던 때(존과 링고가 1940년생, 폴이 1942년생, 죠지가 1943년생)는 2차 대전이 한창인 시기로 독일군의 폭격기가 영국 본토를 매일같이 공습하던 시기(Liverpool Blitz)였다. 런던을 집중적으로 공습하였지만 항구 도시들도 공습의 대상이 되었고 그 중에 Merseyside 자치주의 도시들 중에 하나인 리버풀도 해당이 되었다.

2차 대전 동안 Merseyside 자치주에 가해진 80차례의 공습으로 2500명의 시민들이 사망하고, 자치주 지역에 있는 거의 반정도의 집들이 손상을 입었다(During World War II there were 80 air-raids on Merseyside, killing 2500 people and causing damage to almost half the homes in the metropolitan area.) 따라서 리버풀의 곳곳에는 대피소(shelters) 가 있었다.

비록 나이가 어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무의식중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었을 것이고 또한 전쟁의 비극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정감이 넘치고 인정 많은 이웃들이 등장하고 아름다운 푸른 교외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상에 젖고 있지만 전쟁의 흔적 또한 지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노래속에 그 상흔들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에 깃든 정서는 고향에 대한 긍정적인 회상이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이렇듯 <Penny Lane>은 그들의 귀와 눈에 자리하고 있는(Penny Lane is in my ears and in my eyes) 리버풀의 고향 마을에 대한 한 폭의 풍경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는 Penny Lane의 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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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nny Lane 뮤직동영상
 


http://kr.youtube.com/watch?v=YHBKAyn17vw



매카트니(McCartney)에 따르면, 노래에 언급된 이발사는 비올레티(Bioletti) 씨로, 자신이 레논과 매카트니 죠지 해리슨이 어렸을 때 이발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빌소와 이발사의 기억은 고향의 추억에서 바질 수가 없는 것 같다.

노래에 등장하는 소방차(fire engine)Allerton Road를 따라 약간 걸어가면 나오는 Rose Lane 의 초입에 있는 소방서에 있었다. 소방차를 깨끗이 닦는 소방수의 모습과 깨끗한 소방차(hia clean machine) 가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소방서는 레논이 다녔던 Quarry Bank School에서 가까웠다.

모터카(a motorcar)
를 가진 은행원(a banker)은 Barclays Bank 의 Penny Lane 지점의 직원이었을 것이다.

A four of fish는 4페니 어치의 피쉬 앤 칩스(fourpennyworth of fish and chips)를 뜻하며, finger pie는 그 당시의 성적인 속어로, 흔한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던 대피소(shelter)에서 10대들이 행하던 친밀한 애무를 뜻한다(The mysterious lyrics "Four of fish and finger pies" are British slang. "A four of fish" refers to , while "finger pie" is sexual slang of the time, apparently referring to intimate fondlings between teenagers in the , which was a familiar meeting place.).

그리고 로터리(a roundabout) 한 복판에 있는 대피소 뒤에서 귀여운 간호사(The pretty nurse)가 쟁반에 양귀비를 올려놓고 팔고 있었다. 이날은 11월 11일로 우리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날로 양귀비꽃을 전사자들을 위한 헌화로 사용했기 때문에 Poppy Day라고도 불린다. (참고:Remembrance Day also known as Poppy Day, Armistice Day (the event it commemorates), or Veterans Day in the United States is a day to commemorate the sacrifices of members of the armed forces and of civilians in times of war, specifically since the First World War. It is observed on 11 November to recall the end of World War I on that date in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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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ny Lane(낙서가 된 푯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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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ny Lane sign은 언제나 수난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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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ber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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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anker'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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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about shelter(현재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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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about shelter




그러나 실제로 노래를 위한 홍보용 영상은 Penny Lane에서 촬영되지는 않았다. 비틀즈는 리버풀로 여행하는 것을 꺼렸고 London에서 촬영을 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Penny Lane은 노래의 실제적인 배경이 되는 그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리버풀의 Penny Lane으로 가기를 원치 않았을까?  아마도 고향 Liverpool에 낙인처럼 찍혀있던 다른 이미지, 부정할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역사적인 사실 이 그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위의 글 증 가사와 인명, 지명을 제외한 모든 영문 및 사진들은 영문 위키피디아 사전(http://en.wikipedia.org/wiki/Main_Page)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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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0 03:45

다시 비틀즈를 추억하며








                           다시 비틀즈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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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coolmristuff.wordpress

최근에 John Lennon Confidential 다큐 영화가 상연되고 호평 여론을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비틀즈(The Beatles)의 음악과 함께 했던 지나간 시간들이 새록새록 기억을 되새김질 하고 있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참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들의 음악이 아니었다면 삶이 조금은 우울했었을 시절이 있었다.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도 그런 행복이나 위안을 받지는 못했다. 그 시절 비틀즈라는 이름과 그들의 음악들이 가슴 속에 너무나도 강하게 각인되어서 오히려 음악적인 편식을 앓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1980년 12월 8일 존 레논(John Lennon)은 자신이 살고 있던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광적인 팬이 쏜 총탄에 맞고 사망했다. <Woman>의 레코딩을 끝내고 오노 요코와 함께 아파트에 막 도착하고 서였다. John Lennon은 뉴욕이 위험한 곳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John Lennon이 뉴욕을 떠나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1980년 그가 죽었을 때 뉴스위크지, 타임지에 표지 인물로 실린 레논의 모습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눈물을 참지 못했다. 바로 전 해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 되었을 때도 울지 않았던 나였다. 존 레논의 죽음은 나의 행복과 위안을 앗아갔기에 나는 슬펐고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런 상실감을 무엇으로 메워 갔는지는 기억나지가 않는다. 아마도 다른 무엇이기는 했을 테다. 아니면 그런 상실감 자체가 무엇이었거나.


혹 그들의 사진들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테입이나 앨범들은? 나는 비틀즈의 사진 한 장을 구하기 위해 내가 살고 있던 도시의 레코드점들과 헌책방과 백화점을 헤매고 다녔다. 그들의 사진 한 장을 발견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그 때 그들의 사진 한 장의 의미를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내 삶 속에 그들은 또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메카트니의 아내 린다가 1998년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어 죠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 2001년 페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 비극적인 사실들을 다 공교롭게도 라디오를 통해 알았다. 그들이 해체되고 멤버들과 가족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비틀즈는 점점 나로부터 멀어져 갔다. 아니 멀어져 갔다기 보다는 나의 일상이 비틀즈의 기억들을 조금씩 마모시켜 갔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시간은 망각을 부르는 마법사가 아닌가. 가끔씩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망각을 헤집고 나오곤 했다. 나는 그들의 공개 콘서트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그들 중에 누군가를 단 한 번도 직접 본적도 없다. 오직 그들의 음악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불행한 비틀즈의 팬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레논도 해리슨도 영영 볼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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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kr.news.yahoo.com/servi


조지 해리슨은 내게는 너무나도 각별한 존재였다. 내게 조지 해리슨은 비틀즈의 멤버들 중에서 가장 우수에 차고 우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지 해리슨은 내게 약간은 이율배반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Something>,<While my guitar gently weeps>은 (가사와 관계없이) 슬프게 들었지만, 한편으로 그의 <Here comes the sun>은 언제나 희망을 불러 넣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존 레논이야말로 가장 슬픈 존재였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일관되게 우울하고 무거웠으며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존 레논의 <Strawberry field forever><Julia> 속에는 어린 시절의 불행했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존레논의 노래에는 자신이 들어가지 못해 발버둥치는 듯한 격정이 녹아든 꿈과 환상이 있다. 그가 역시나 우울하고 심각하게 보이는 오코 요코와 만난 것도 예술가적 정서를 공유하는 운명적인 동지애였을 것이다. 존레논은 죽기 바로 직전 <Woman>이란 노래를 남기고 죽었다. 그와 동지애로 함께 헌신한 오노 요코를 위한 헌사가 아닐까 한다. 존 레논이 1970년대 평화 반전 운동을 할 당시 오노 요코는 바로 아내이자 동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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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www.slashgear.com/rumor


판단컨대 이렇게 무겁고 진지했던 존 레논과 낙천적이었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비틀즈를 이끌어 갔기에 불멸하고 위대한 음악들이 탄생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들을 비틀즈로 영원히 묶지 못했던 것 또한 그 둘의 상반된 개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음악에서는 조화를 가져왔지만 삶에서는 불화를 초래해 버린 아이러니가 아닐까? 시간은 죽음을 잉태하고 그 죽음을 아무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언제나 내게 젊음의 우상이었던 비틀즈의 멤버들은 기억속에서 조차 가물거린다. 레논과 해리슨의 영혼은 광할은 우주를 가로질러 떠돌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살아 남아있는 폴 메카트니(Paul McCartney)와 링고 스타(Ringo Starr)도 세월과 함께 늙어간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만큼은 영원히 젊음의 광채를 발하며 내 가슴 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비틀즈 관련 사이트:http://www.thebeatl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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