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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2 20:52

낡은 것은 사라진다, 휴대폰 교환



휴대폰을 바꾼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습니다. 일상의 흔적쯤으로 남겨놓자 하고 사진을 찍어 놓았었는데 미루고 하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까지 겹쳐 이제야 포스팅을 합니다. 별 영양가 없는 포스트로 이웃님들 눈만 어지럽히는 건 아닌지...예쁘게 봐주세요^^(휴대폰이 하는 말 입니다)



정확히 언제 구입한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TV홈쇼핑으로 구입한 것입니다. 사실 저는 그 당시에 휴대폰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도 않았고 오히려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터라 아내가 구입을 하고 아내가 사용하던 것입니다. 저는 끝까지 휴대폰 없어도 괜찮다고 우기면서 제 것은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내가 새 것을 구입하면서 억지로 제가 물려 받은 것입니다. 처음 부터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고 그랬기에 애착도 갖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용도 거의 하지 않았구요. 시대의 조류를 완전히 거스른 셈이지요. 만인의, 특히 연인들의 필수품을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만 있었으니 정말 시대에 뒤처진 이방이었을까요.
 



저 선택 버튼 보시면 알겠지만 엄청 세게 그것도 연속적으로 눌러대야 운좋게 모니터가 뜨고 메일을 확인하고 그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닳아 있는 것입니다. 선택 버튼 누르면서 내가 지금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하고 엄청 짜증이 나기도 했구요. 아무튼 선택 버튼이 파워 버튼과 같은 것인데 이게 이 모양이었으니 말이죠. 하지만 이게 제가 많이 사용해서 저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전에 모니터와 버튼 패널이 부서져서 무려 12만원을 들여서 고쳤던 이후 그런 징후를 보이다가 급기야는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되더군요. 교환할 무렵에는 완전히 식물 휴대폰이 되었습니다.




제게는 그야말로 거품이 많았던 휴대폰입니다. 거의 사용조차 하지 않았는데 한 달에 꼬박꼬박 기본료를 포함해서 2만여원의 사용비가 나왔습니다. 이거 완전히 손에 들고만 있으면서 들고 있는 댓가로 달마다 거금(?)을 지불해야 하는 사실이 정말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 이제 휴대폰을 폐기하고 나면 다시는 휴대폰을 가지지 않겠다. 저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습니다. 정말 우습게 들리죠.





밧데리는 또 어땠을까요? 밧데리로써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충전도 되지 않았습니다. 거의 수명이 다 되어 가는 중이었습니다. 인간으로 따지면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심장이라고 한다면 심장의 기능이 거의 멈춘 상태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사진을 보면서 좀 서글퍼 지네요.  굿바이!





아내가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휴대폰을 다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을 하였지만 아내는 공짜폰이라는 걸로 그것도 카플폰이라는 것으로 자신이 사용하고 있던 것과 제 것과 함께 두 개나  교환을 한 것입니다. 휴대폰이 없으면 않된다고 하면서 억지로 내미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정말 휴대폰이 꼭 필요한 것일까요? 제가 너무 케케먹은 것일까요? 시대의 트랜드와 변화를 거역하는 시대 거부의 이방아일까요? 한참을 생각해 봐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도태되는 것과 도태 시키는 것. 이렇게 휴대폰들은 교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는 이제 영영 사라져 버렸고 다른 하나는 제 손에 들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 새로운 것에 의해 도태되고 사라지겠지요. 사실 교환한 저 쇼에 능란한 저 새로운 휴대폰도 최신의 것은 아닙니다. 이웃님들께선 저에게는 새로운 이것이 낡은 것으로 여겨지시나요?


휴대폰 교환으로 얻은 하나의 수확이 있었습니다. 제 보잘 것 없는 꽁트의 모티브를 제공해 준 것입니다. 한 번 읽어 주시겠습니까?   2009/05/07 - [꽁트] - 전업 주부를 마치고 나면 녹색 운동가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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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1 20:38

[도움 부탁] 블로그가 왜 이럴까요?


블로그가 얼마 전 부터 글이 크지고 이상해졌습니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계속 이렇네요. 아래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완전히 엉망진창입니다. 또 저와 같은 스킨을 사용하시는 모든 블로그들도 다 이렇게 보입니다. 왜 이렇는지 모르겠습니다. 도움 부탁드립니다.  꼭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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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0 23:05

아이를 통해 보게 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지난 2월 일 것 같네요.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 녀석에게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사주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아이가 읽고 싶다고 해서 사주었습니다. 제목에서 동화적인 느낌을 받았기에 괘히 승낙하고 인터넷으로 신청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책이 도착하고 보니 그 두께에 완전히 질리고 말았습니다.(사진으로는 책의 두께가 실감나지 않을 것입니다.) 읽는 다고 하니 믿을 수 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과연 끝까지 읽을 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아들 녀석이 다 읽고 나면(틈틈히 읽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과연 얼마나 읽었는지......) 제가 읽으보려고 합니다만 완전히 백과 사전 수준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사전류도 아닌데 이렇게 두껍게 책을 만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장장 1235 페이지입니다. 책이란 장소와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가지고 다니면서 읽도록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이 책은 당최 들고 다니기에도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보기만 해도 그 두께에 질리고 마는 외관을 자랑합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읽는 다면 더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제가 한 손으로 들기가 어려울 지경인데, 아이들은 두 손으로 들고 다녀야 할 정도입니다.

책의 가격도 정말 부답스럽더군요. 시리즈의 합본으로 그 가치를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종이의 질(페이퍼백 같은 느낌)로 볼 때는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어도 될 것 같은데......출판업계의 사정을 잘 모르는 까닭에 근거 없는 억지가 될지도 몰라 이쯤 하겠습니다.

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책 내용 외적으로 여러모로 책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2009/04/10 - [일상의 흔적들] - 아이를 통해 읽게 된 <최악>
2009/03/30 - [영화] - 아이를 통해 만난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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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3 18:12

유입경로의 궁금증: 왜 착시현상일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착시현상 이란 키워드 제 블로그의 유입 경로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블로거님들도 그런지 궁금합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런지 알고 계신 분 꼭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자가 돌고 있는 방향은?




2009/02/14 - [알아봅시다] - 착시 현상: 여자가 돌고 있는 방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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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0 22:49

아이를 통해 읽게 된 <최악>





관련글  2009/03/30 - [영화] - 아이를 통해 만난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


지난 2월 입니다. 중학생인 큰 아이에게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니 오쿠다 히데오의 <최악>이란 소설을 읽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인터넷이나 신문 광고를 보고 혹했다 봅니다. 요즘 인터넷 광고 얼마나 집요합니까? 알라딘이나 인터파크 등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보면 읽고 싶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저도 이 블로그에 알라딘 TTB광고 붙여놓고 있지만 뭐 책이야 사람들 정신을 흔들어 놓아야 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택도 없는 것들에 유혹되고 돈 낭비되는 것보다는 책에 유혹당하는 것 만큼은 행복한 유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물론 게 중에는 나쁜 책들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다른 책 몇 권과 함께 <최악>이란 소설을 사주었습니다. 재미있게 읽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드는 생각이 소설에도 분명 19금이 있을 텐데 그냥 아이에게 던져 놓아두면 될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소설<최악>의 이곳 저곳을 훑어보았습니다. 검열자가 된 것이지요. 성적인 묘사가 더러 있더군요. 영상과는 달리 그 후유증이 그다지 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부모의 판단으로 아직은 중학생이 보기에는 다소 무리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읽기를 중단시키고 좀 머리가 큰 뒤에 읽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70페이지 정도를 읽은 상태였습니다.

이 후 책을 그대로 방치해 오다 저번 주부터 제가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데, 역시 광고문구 그대로 속도감있게 무척 잘 읽혀 지더군요.

다중 시점이라고 하나요? 다수의 주인공들의 여러 갈래의 독립적인 이야기가 절묘하게 어우리러지면서 하나의 사건으로 통일되는 구성으로 재미있게 읽혀지는 소설입니다. 역시 인간들이란 관계를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란 걸, 또한 그 관계로 파멸되기도 하고 파멸시키기도 하는 운명이란 걸 느끼고 있는 중인데 아직 다 읽지 못해 결론이 더욱 궁금합니다. 지금 읽고 싶은데, 아뿔싸! 저녁 모임 자리에 그 책을 놓고 와 버렸습니다! 그쪽에 전화를 해보니까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다행입니다. 결말을 빨리 알 수 없어서 좀 그렇네요.  제가 읽은 부분은 결말이 어떻게 날까 하는 궁금증으로 페이지를 넘기던 부분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책을 잃어버린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궂이 결말을 알 필요가 있을까? 그 허구의 결말을  나 자신이 채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나는 독자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상상을 통해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물론 터무니 없는 생각, 아니 공상이지만 말입니다. 
 



이포스팅을 시작한 의도는 이런 이유때문이 아니었는데 쓰다가 보니까 옆길로 새어 버렸습니다. 다시 가던 길로 돌아 갑니다. 과연 이 <최악>이 중학생 아이가 읽기에 부담이 없는 책일까의 바로 그 문제 로 말입니다. 

옛날 세계명작소설이란 이름을 달고 있던 <아라비안 나이트><차타레 부인의 사랑>이나 <데카메론> 등을 골라 골라 핵심 만을 짚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읽긴 했지만 막상 자식이 그런 소설들을 세계명작이란 이름으로 읽는다고 하면 어찌 보라고 권장 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아, 고전중에 고전 <데카메론> 꼭 읽어봐라?" 이럴 수 있을까요? 막상 자신은 세계 명작이란 이름으로 핵심만을(?)을 골라 읽었으면서도...... 이게 참 이중적인 태도처럼 여겨집니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만약 부모 모르게 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일테고, 포르노나 음란 서적을 보는 것 보다는 낫다고 자위할 수 밖에 없는 것이겠죠.


한편으론 안타깝습니다. <최악>의 소설은  제법 두툼합니다. 아이가 이런 소설을 읽고 싶다고 한다면 그것은 소설의 감동은 물론이거니와 독서의 습관을 기르고, 인내를 기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러가지 교육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로서 검열자가 된 듯한 기분이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현실적으로 중학생쯤 되면 더 저속하고 야한 영상을 접하는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모르고 있겠지만 중학생쯤 된 자식들은 알 건 다 알고 있는 게 현실일 것입니다. 오히려 부모 머리위에 있는 녀석들도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조금은 야하더라도 좀 폭력적이더라도 문학성있는 소설을 접하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잘못한 것일까요? 아이의 상상력을 너무 제약하고 있는 것일까요? 부모의 현명한 판단이었는지, 아니면 무모한 판단이었는지 ...... 참 조심스러워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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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6 19:10

그림조각 맞추기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조각 맞추기를 하는데 제법 빨리 맞추더라고요. 사실 평소보다는 조금 느렸지만. 비교 대상을 확인 할 수 없어 어느 정도 빠른지는 모르겠지만,(저는 하다가 몇 번을 포기해 버렸거든요.) 확실히 아이들의 감각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기록도 해 놓을 겸 동영상으로 남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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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15:37

모나리자 패러디


 
최초의 모나리자 패러디(1919). 마르셀 뒤상의 L.H.O.O.Q (Marcel Duchamp, L.H.O.O.Q. )
 


















이미지 출처:http://www.megamonalisa.com/
                 http://en.wikipedia.org/wiki/Mona_L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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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2 00:29

오늘은 저의 빼빼로 데이(Day)입니다!



오늘은 저의 빼빼로 데이입니다.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구요??? 
  

 
직접드리지는 못하지만 빼빼로 많이 드세요^^
이미지 출처는 이곳입니다.



다들 이런 경우들 한 뻔씩은 경험하셨죠. 그래서 시시하시겠죠^^;; 그래도 재미삼아 올려봅니다. 랭크 위젯에 등수가 1,111(2009.2.22.00:05)입니다. (사실 이게 무슨 랭크인지는 모름. 좀 알려주세요^^). 완전 제게는 오늘이 빼빼로 데이로군요^^  밋밋하고 재미었었던 일상 이런 웃음으로 한 번 떨쳐내 봅니다. 숫자가 너무 재미있어서 캡처해 보았습니다.  





이런 거 염장 포스트는 아니죠^^(당연히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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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8 22:40

세상에 이런일이, 물속에서 다리미질 하기





 
*위 동영상의 출처는 여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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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8 15:55

돈 뿌려 준다는 머니보이(MB)



MB는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팔고있는 중국산 부두인형(voodoo doll)에 붙여진 Money Boy 라는 인형의 이니셜입니다. 이 인형은 "당신의 인생에서 재물과 행운을 가져다 줄 거라" 고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100% 수제품이며 아주 질긴 면실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이것 하나 구입하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재물과 행운을 가져다 줄까요?  요즘 하도 중국산이 미덥지 못해 혹 허위 과장 광고는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머니 보이, 돈을 뿌려 줍니다! 재물을 왕창 부어줍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vdbaby.com/store/50200.html


머니보이, 정말 돈을 뿌려 준다구! 재물을 왕창 부어준다구!  좋아라! 멋있어! 머니보이, 정말 멋있어! 


MB는 이탈리아의여배우이자 모델인 Monica Bellucci (1964-  ) 의 이니셜이기도  합니다.  
 



으흐흐흐, 부두 인형이 날게 돋힌 듯 팔리겠는데! 순수한 척 보이는 저 머니보이 인형의 모습이 광고로는 탁월한 효과가 있군! 으흐흐흐, 저 풍만한 여체도 마찬가지구 말이야! 으흐흐흐~~콜록콜록~~

 
 
MB는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에 나오는 Montgomery Burns 의 이니셜이기도 합니다.
 

 
아주 음흉하고 사악하게 보입니다.



*개별 출처가 표기되어 있지 않은 이미지는 모두 위키피디아 영문판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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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7 16:09

삼가 김수환 추기경님의 명복을 빕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어제 선종하셨습니다. 정말 큰 어른 이셨는데......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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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0 17:08

활기를 되찾는 복이

집에서 키우고 있는 거북이 '복이' 입니다. 원래는 두 마리 였는데 구입을 하고 얼마 뒤 한 마리가 죽고 오랫동안 살아남은 녀석입니다. 한편으로 가엾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겨울 동안 잠만 자던 복이가 제법 기지개를 펴는 듯합니다. 죽은 듯이 움츠리고 있기만 하던 복이 녀석이 머리도 내밀기도 하고 이리 저리 움직이기도 합니다. 봄이 오긴 오나 봅니다. 하는 짓이 미련하지만 또 앙증맛은 구석도 있습니다. 

 




겨울 동안 요렇게 좁은 구석에서 몸을 움츠리고 잠만 자는 것 같았습니다.







사지를 힘차게 뻗었습니다.










아주 늠를하게 보입니다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아 바로......




......이것 이었군요.





사진을 찍으려니 마치 포즈를 취하기라도 하는 듯이 얼굴을 내밀고 올려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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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8 01:39

결혼 기념일에 먹은 아구찜, 아니 스파게티

오늘은 결혼 기념일이라 모처럼, 정말 모처럼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고 외식을 했습니다. 글로 쓰면 고상해지려는 성향을 억제하면서 좀 투박하게 오늘의 행사(?)를 돌이켜 보면 사실 부끄럽습니다. 딱 영화 <발키리> 한편에 점심으로 스파게티를 먹은 것이 끝입니다.  디저트로 자판 커피 한 잔씩 하구요. 항상 그래왔지만 고생한다고 꽃 한송이 못 건넸습니다. 마음으로 위로하고 또 그렇게 한 해의 결혼 기념일이 지나갔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인증샷인데, 어찌 사진들의 색이 이상하게 나왔습니다. 위의 두 사진은 제가 먹은 것인데  중국식 굴소스와 치킨 스파케티로 색깔이 좀 거무칙칙해야 한데 조명 때문인지, 영락없는 아구찜처럼 보이네요^^ 아래 것은 이름을 잘 모르겠네요^^;;



* 별로 먹음직스럽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맛은 느끼하지 않고 괜찮았습니다. 굴소스와 치킨 스파게티는 오히려  매운맛이 나면서 중국 음식 향이 났습니다.

*바로 옆 테이블에 독일인 부부가 앉았는데 참 다정하게 보이더군요. 한국식으로 스파게티를 먹는 게 신기한 지(?) 가끔씩 쳐다보더군요. 또 서로 나누어 먹고, 들어 먹고, 먹든 걸 먹고 하는 것도 이상한 건지, 신기한 건지 곁눈질을 하더군요.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식을 존중해주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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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7 08:31

맛있는 베이컨 드세요.






krang 님의 블로그(
http://krang.tistory.com/382) 에 둘렀다가 참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이나 다른 사이트에 큰 베이컨 한 조각이 보이도록 할 수 있도록 해주네요.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http://bacolicio.us/ 에 찾아 가셔서

2.검색창에 보이는 그 사이트의 URL에 자신이나 다른 사이트의 URL를 붙이고 


3. 클릭을 하니까 큰 베이컨 조각이 나타나네요.



제가 시도한 것으로 것 한 번 클릭 해 보세요^^

http://bacolicio.us/http://conteworl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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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31 17:56

스키와 키스의 유사점은?


위키피디아

http://kr.news.yahoo.com/servi


*스키와 키스의 유사점은?

1.스키는 두 발로 타고 키스는 두 입술로 한다.

2.스키와 키스는 할 수록 실력이 는다.
3.스키와 키스는 마찰계수가 작아야 한다.
4.스키와 키스는 둘 다 짜릿하고 시원하다.
5.스키와 키스는 때론 모험이 될 수 있다.
6.스키와 키스는 둘 다 끝나고 나면 더 하고 싶다.
7.스키와 키는 둘 다 약간은 촉촉해야 한다.
8.스키와 키스는 둘 다 몸과 머리를 틀어야 효율적이다.
9.스키와 키스는 둘 다 스틱과 혀라는 보조 도구가 필요하다.
10.스키와 키스는 둘 다 삶의 활력을 샘솟게 한다. 

*스키와 키스의 차이점은?(클릭)

주의: 스키 타는 법으로  키스 하거나 키스 하는 법으로 스키는 타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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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8 23:36

대통령 오바마, 귀여운 금바마



열악한 조건에 금붕어들을 기르고 있는 모습을 노출하자니 죄송합니다만, 블로그의 포스트를 위해  기르던 금붕어들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을 계기로 검은 금붕어를 금바마로, 주황색 금붕어를 한국의 토속적인 냄새를 풍기는 호돌이로 지었습니다. 금바마와 호돌이 앞으로 대등한 입장에서 좋은 관계를 맺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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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아름답다.  (7) 200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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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13:02

음식의 역사(2)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1.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2.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3.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4.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5.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6.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유목민들에게 왜 비타민 결핍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7.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8.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9. 통조림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몇 달씩 배위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0.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11. 20세기초 영국의 징병검사에서 41%의 청년들이 병역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12. 식품판매업자들의 사기행위와 불량식품에 정부와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13. 외국에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이 과연 자국의 식량 상황과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14. 식량 생산과 환경 파괴, 과식으로 인한 질병과 굶주림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인간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기까지는 일련의 당연한 진화의 과정을 밟았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깃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한 과정은 오랜 시간을 거쳐 느리게 진행되었을 것이고 경험이 전수 될 수 있는 지식으로 형성되는 데는 수 천년, 아니 수 만년의 시간이 필요로 했을 것이다.

기원전 500,000년경에서 네안네르탈이 등장하여 활동하던 어느 시기에 불이 발견되고 원시적인 요리법이 개발되기 이전 수십만년을 날 것으로 음식을 섭취하였으며 그리고 기원전 10000, 신석기 혁명 이전까지 수렵과 채집을 통해 식량을 얻던 “성공적인 약탈자” 에 불과했다. 기원전 10000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간은 농사, 목축과 더불어 정착하게 되면서 마을이 생겨나게 되었다. 미국의 인류학자 칼턴 쿤이 “요리법의 도입은 원초적 동물 상태의 사람을 보다 완전한 인간으로 만드는데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p.48) 하였듯이 음식과 관련하여 불의 발견과 요리법의 등장이 인간의 진보 그 자체에 미친 영향을 짐작케 한다. 단순한 불의 발견과 원시적인 요리법의 개발이 이러할 진데 농사와 목축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원시적인 인간 그 이상의 존재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원전 10000년 경에 오랜 사냥과 채취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동물과 식물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꽤 축척되었을 것이고 이러한 축척된 지식으로 신석기혁명의 여명이 시작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여성은 종자, 채소, 과일을 채집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들이 바라는 일정한 장소에서 키울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한 것 같다고 한다. 특히 동굴 생활중에 발견한 씨앗의 발아 현상은 식물 재배에 상당한 기여를 했을 것이다. 겨울에 저지대의 동굴에서 생활하다 여름에 고지대의 동굴로 이동한 후 다시 초여름 언덕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이 버려놓고 간 쓰레기 더미 위에서 식물이 무성하고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채취와 종자 발아의 발견을 통해 여성들은 식물 재배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게 되고 이것이 농사와 정착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남성들에 의한 목축도 신석기 혁명의 중요한 요소이다. 목축과 관련하여서는 책의 내용을 좀 길게 인용하고자 한다.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빙하기가 물러가기 전에 인간과 순록의 관계과 형성되기 시작했는데......순록은 눈이 녹아서 습해진 땅에서 자라는 이끼와 풍부한 양치류를 먹었다. 그러나 눈 녹은 물에 의존하는 동물들은 염분 부족 때문에 정기적으로 해변이나 내륙의 지표에 노출된 암염지로 원정을 가야했다. 그러다가 순록이 사람의 오줌을 염분의 급원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를 미끼로 사람은 그의 야영장 부근까지 순록을 유인할 수 있었고, 동물들을 길들이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상호의존관계를 맺는 데 성공했다.”(p.54)

결국 순록이나 가젤같은 동물들이 가축이 되는 데는 실패했으나 이러한 경험을 통해 목축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실제로 신석기혁명 이전 1천년 동안 아시아 늑대가 개로 길들여졌다는 사실이 미국의 아이다호에서 발견된 기원전 8420년경의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정착농과 목축이 시작된 신석기혁명은 지구상의 다양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을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두 군데의 명확한 중심지역‘ 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은 카스피해 서쪽과 남서쪽, 그리고 중앙아메리카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가 심각한 도전을 받게되는 데 완두, 콩, 오이, 마름의 종자들이 발견된 태국의 미얀마 국경 지대 부근의 ’스피릿(Spirit Cave)의 등장으로 인해서 이다. “이것은 농업이 중동이나 중앙아메리카에서 시작되었음을 입증하는 경우보다 거의 2천년이나 앞선 것이다.“(p.56)

마을의 형성과 관련하여서도 상충되는 이견들이 존재한다. 고고학적으로 가장 오래된 기록이 남아있는 중동에서는 농사와 목축이 시작되기 전에 마을이 발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와는 달리 농사와 목축은 상당한 인력을 필요로 하며 그 인력의 확보를 위해 소규모 공동체 생활을 포기하면서 씨족 공동체가 더 큰 집단인 마을을 형성했다는 이론도 존재한다. 이 책에서 이러한 견해의 차이가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야 농사와 목축과 마을의 형성이 갖는 관계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 형성은 야생 곡식이 풍부하게 자라는 들판이었다. 곡식을 거둬들이기 위해 수확기를 전후해 그곳에 정착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정착지들이 이러한 목적으로 하나 둘씩 생겨났으며 수확물을 가지고 다시 동굴로 돌아가는 것은 짐수레나 바퀴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원전 9000년경 북부 이스라엘의 말라하(Mallaha) 의 예는 정착과 농사, 그리고 농부의 탄생에 대한 좋은 예를 제공해 준다. 책의 내용을 인용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사냥과 채집에 의존했는데,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단계들을 거쳐서 채집은 경작으로 발전했다. 우선 그들은 야생 곡식의 수확을 너무 효율적으로 하는 경우에 이듬해의 수확이 현저히 감소하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다음 줄기에 이삭의 일부를 남겨두자 그보다는 낫지만 불규칙한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마침내 그 다음의 합리적인 단계로서 씨앗들을 손으로 골고루 뿌려주게 되었을때, 그들은 단순한 채집자에서 벗어나 농부가 되었다.”(p.58)

기원전 10,000 경 중동의 야생곡식 들판은 그 주위에 마을 형성하였고 그 야생곡식 들판을 동물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했다. 왜냐하면 야생곡식 들판은 동시에 야생염소와 양들의 번식처를 제공해주었고 먹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3가지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몰살, 들판을 지키기, 그리고 지배가 바로 그러한 선택의 여지들이었다. 당시의 상황에서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선택은 지배로 낙점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염소의 경우는 고기는 물론이고 농토를 확장하던 초기의 경작에 있어서 관목숲을 제거하고 잎사귀를 먹어치우는 능력을 가진 일꾼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었다. 양의 경우는 다소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한 마리의 양이 먹어치우는 목초의 양이 너무 많아 그 유지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돼지는 염소, 양, 다음으로 기원전 7,000년 경 등장하는 가축으로 되새김 동물과는 달리 목초들을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6100~5800년경 가장 늦게 소가 사육된다.

음식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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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4 23:19

블로그 당분간 중단합니다!




이웃님들, 그리고 블로거님들 죄송합니다. 당분한 블로그를 중단하기로 하였습니다.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2개월 정도 블로그를 중단하고 자신을 더욱 냉혹하게 바라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블로그를 공개적으로 운영하지 않을 뿐 비공개적인 포스팅은 하고 싶습니다.  혹 rss를  통한 구독자님들께는 대단히 미안한 마음입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rss를 취소하십시오. 다음에 제가 돌아와 가치있는 포스팅을 한다고 판단되면 다시 구독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Mr.번뜩맨, Maro님, 초하님, 로망롤랑님, 명이님, freesopher님, 열산성님, inuit님, susanna님, 리브홀릭님, 러브네슬리님, cliomedia님,비트손님, 김치군님, 호박님, mindeater님, 미미님,  A2님, 김Su님, Future sharper님, rince님, Fallen Angel님, 백마탄초인님, Char님, Mr.Children님, 챈들러님, 신어지님, 시골친척님, 세담님, 펀펀데이님, 호박님, skyplot님, Dramatique Essay님,  도꾸리님, 베쯔니님, 고군님, ggacsital님, Bay님, a님,먹는 언니님,하얀 로냐프강님,w0rm9님,김진애님,사앙라이님, j4blog님, jjoa님, life is good님, 이해님, Make Your Life Happy님, moondog님,oddlyenough님, PLUSTWO님,plusone님,KeunNaRa님,차완무시님,살타래님,sleep Attack님,Slow Adopter님,pictura님,sujae님, Ikarus님,잉샨님,짠이아빠님,tasha님,결정적 순간엔 평상심, 독설닷컷님,근대사 박물관,LoveWish님,다희님,온누리님,채다인님,달빛새님,더필름보이 닭컴님,도아님,류토피아님,맛짱님,달려라 멀더님,미도리님,미쓰.문.님,반추사님,필감준수님,별바라기님,북대인님,붉은매님,비바리님,유주언니님,Ray님, 그외 알게 모르게 스쳐간 수많은 이웃님들......혹 이름이 빠졌을지도 모를 소중한 님들. 

그 동안 블로그를 하면서 오프상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소중한 시간을 일깨워 주신 분들입니다. 참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지치고 힘들었을 때 받았던 격려와 위안은 제겐 참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짤막한 지식이나 정보보다는 삶의 진솔한 모습들, 살아가는 모습들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있는 추억들입니다. 지금껏 짧지 않는 삶을 살아오면서 비록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참 순박하고 진솔한 관계를 맺으며 가졌던 추억들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너무나도 소중한 인간의 냄새를 맡았다는 것은 참 역설적입니다.

 그 동안 컴속의 나는 참 행복했습니다. 컴밖의 나는 참 그가 부럽기만 합니다.  

 앞으로 2개월 정도 블로그를 중단하고자 합니다.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겠습니다. 다시 컴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 동안 모든 이웃님들 건강하시구요, 항상 행복한 나날들 가지시길 바랍니다. 

다시 만날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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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3 19:34

술은 아름답다.

모든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인식하는 바다. 모든 인간이 추잡스런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상식적으로 인식하는 바다. 세상은 아름답다거나 추잡스럽다. 이 또한, 또한 상식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술을 마시고서, 취하고서 인간을 비난하는 인간들, 세상을 추잡하다고 하는 인간들은 상식적인 인식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술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인간을 아름답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욕이 필요하다. 세상은 delagatory words  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fuck you 가 필요하다. 그런데 또한 증오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세상이다. 세상을 욕하면서도, 세상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라면!

소통을 거부하는 인간들을 나는 조소한다.  술을 마시고 소통이 불가능한 인간을 나는 증오한다. 술은 소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통을 거부한다면 술을 마실 하등의 이유가 없다. 술을 마시고 소통을 거부하다면 그는 인간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100%이다. 소통을 거부한다면, 순수한 마음을 되찾으려 하지 않은다면, 술은 마시면 안된다. 술은 그런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세상을 사랑한다. 어떻게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미워도 증오스러워도, 원망스러워도 세상은 내가 몸담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세상을 증오할 수가 없다.

술을 마시고 세상에 욕을 퍼부어라! 미친듯이 외쳐라! 세상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그나마 그렇게 외치는 인간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술은 그렇다. 밖을 시끌벅적하게 한다. 그러나 속을 , 속을 아프게 하는 것을 진실로, 진실로 소통을 바라게 하는 것을! 이 진실이 없다면, 껍데기로 노딘다면 껍데기는 가라!


나는 술이 좋다. 술 그 자체가 좋다. 취하는 것이 좋다. 내 더러운 껍질을 벗겨내고 내 가식을 벗겨내고, 내 찡그린 표정을 벗겨내기 때문이다. 술은 취할 수록 좋다. 취하니 좋다. 내가 아니기에 좋고, 껍질을 벗겨놓기에 좋고, 흥겨웁기에 좋다. 나를 이 팍팍한 세상으로부터 떠나게 하기에 좋다.

그래서 술은 아릅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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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8 20:46

스키와 키스의 차이점


1. 스키는 혼자 타지만 키스는 둘이서 해야만 한다.

2. 스키는 푹신해야 하지만 키스는 촉촉해야 한다.

3. 스키는 발로 비비지만 키스는 입술로 비빈다.

4. 스키는 넘어지지 않으려 하지만 키스는 넘어지거나 넘어뜨리려는 경우가 많다.

5. 스키는 미끄러지지만 키스는 짝짝 달라붙는다.

6. 스키는 폴이 있어야 하지만 키스는 입술만 있으면 된다.

7. 스키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록 짜릿하지만  키스는 길수록 더 짜릿하다.

8. 스키는 주로 계절적 제약을 받지만 키스는 제약이 없다.

9. 스키는 순수한 흰색을 연상하지만 키스는 달콤한 분홍색을 연상시킨다.

10. 스키는 차갑지만 키스는 뜨겁다.

11. 스키는 대체로 입을 닫아야 하지만 키스는 입을 열어야 한다.

12. 스키는 평행해야 지만 키스는 교차해야 한다.

13. 스키는 딱딱하지만 키스는 말랑말랑하다.

14. 스키는 누구나 탈 수 있지만 키스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5. 스키는 돈이 필요하지만 키스는 마음만 맞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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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5 18:22

이 빌어 먹을 놈의 신용카드

이미지 출처: http://kr.news.yahoo.com/servi.

신용카드, 이름은 듣기만 해도 좋지만 실용성을 놓고 볼 때는 완전히 빵점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현금 가지고 다니는 것에 비해 약간 편할 뿐 전혀 인간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잔인함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신용카드다. 사용한도액이 있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제력을 잃기라도 하면 펑펑 쓰고 만다. 

자제력을 잃는 데는 술만한 것이 없다. 술은 참 좋은 데 내일을 사자리게 한다. 오늘만 있게 한다. 지금 이 시간만 있게 한다. 지금 이 시간의 쾌락만이 있다. 카프 디엠. 내일이 사라지면 돈도 오늘 다 써야 한다. 아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시간에 자본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신용카드를 긁는 것은 지금 이 시간에, 지금 이 밤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가장 최악의 조합이 술에 지배당하는 영혼과 신용카드의 결합니다.  술이 영혼을 조정하는 것은 리모콘으로 TV 채널을 바꾸는 것이나 마찬지이다. 그리고 술이 빠져 나간 자리에는 마음을 뻥 뜷는 공허함과 고통만이 덩그런히 남는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전날 밤의 시간을 되새김해보지만 흐릿한 영상 뿐이다.

술과 신용은 비례한다. 술에 취해갈수록 신용은 점 점 더 높아진다. 술집 사장도, 주점의 언니들도, 나이트의 웨이터들도, 아니 밤에 일어나는 모든 역사적 현장의 주역들은 신용을 하염없이 보내준다. 신용카드로 긁어대는 건 돈을 뿌려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백주 대낮에 말짱한 정신으로 돈을 뿌려 볼 수 있겠는가? 이게 가능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이 빌어먹을 놈의 콤비네이션, 술과 신용카드 듀엣은 가능하게 해준다. 인간에게 보내주는 신용이라기보다는 신용카드에 보내주는 신용이다. 밤은 그렇게 지나간다. 밤은 점 점 적막속으로 미끄러져 간다. 그 새벽의 적막감은 무섭기까지 하다.

시린 속을 부여잡고 도둑 고양이처럼 방으로 기어들어가서는 영혼을 회복하는 죽음의 의식을 치루기 시작한다. 잠과 함께 서서히 영혼을 지배하던 술은 조금씩 빠져나가고 술이 빠져 나간 자리에 다시 자리 잡은 이런 빌어먹을 이성이란 것은 온갖 근심 걱정들을 불러 놓고, 혹 부주의해 아내가 영수증 뭉치를 먼저 발견하고 앙탈을 부리기라도 하면 현실은 악몽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신용카드를 앞세워 그토록 자신만만해 하던 밤의 기품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건 한 낱 꿈이었을까? 이 빌어 먹을 놈의 신용카드는 왜 아무 말도 없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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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7 14:21

제주도 돌하루방, 이스터섬 모아이(석상)





의혹의 제기

제주도의 돌하루방과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

제주도의 돌 하루방과 이스터 섬의 모아이(석상)들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크기에서 차이가 나지만 그 형태는 유사성이 많아 보입니다. 모자까지 쓰고 있는 모습은 더욱 그렇습니다. 또한 형태상의 유사성 뿐만 아니라 섬이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폴리네시안 원주민(이스터 섬의 인구 구성은 라파 누이(Rapa Nui)족이 60%, 칠레인이 39%, 어메리컨 인디언이 1%입니다. 추측컨데 모아이 석상을 만든 종족은 라파 누이족이라 생각되나 어메리컨 인디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들이 이스터 섬(일명 라파 누이 섬)의 모아이(석상)을 만들면서 자연을 황폐화 시키고 결국 식량 부족으로 서로를 잡아먹는 비극을 잉태하면서 이스터 섬을 몰락한 문명의 섬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스터 섬의 비극은 지구의 환경파괴에 대한 소중한 교훈이기도 합니다. 

*모아이(Moai) 는 그 자체로 석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종족의 명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모아이(Moai)이스터 섬의 석상, 또는 라파누이 섬 석상 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모아이 석상이라고 하면 의미가 중복된 것입니다. 제가 모아이 석상이라 표기하면서 모아이 족들이 만들었다는 잘못된 표기를 하였기에 수정하였습니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석상)가 먼저라면,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거대한 크기의 모아이로 인한 이스터 섬의 비극을 안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 현저하게 크기를 작게 한 것은 아닐까?  


제주도의 돌하루방이 먼저라면, 제주도에서 이스터섬으로 전해진 돌하루방이 점 점 크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비극속으로 빠져든 것은 아닐까? 



제주도 돌하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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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돌하루방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scham

 
 




이스터 섬 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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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쓴 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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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이

제주도 돌하루방과 이스터 섬 모아이(1) 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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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18:19

Yahoo와 야후 코리아 비교(2)






야후와 야후 코리아 비교





두 사이트의 첫 인상
☜ 을 비교해 봤을 때 야후의 첫인상이 훨씬 좋다고 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첫인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사람을 잘못 판단할 수 있는 위험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그 첫인상을 완전히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아무튼 첫인상은 좋을수록 좋고 판단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인터넷 사이트의 첫인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이트의 외면적인 인상 비교는 필요했고 야후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이제 사이트간에 좀 더 구체적인 부분들로 비교를 하고자 한다. 이러한 비교는 사이트의 발전을 위해서 라는 고루한 말을 달지 않더라도 조금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연예 또는 엔터테인먼트 part 비교(9월 11일 야후, 야후코리아 사이트 중)

사용자 삽입 이미지

Yahoo의 entertainment 내용






위의 야후 코리아와 Yahoo의 '연예' 와 'entertainment' 란은 그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아주 많은 차이가 난다. 첫인상에서 부터 형식과 내용에 이르기까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야후 코리아는 반성하고 또 고민하는 모습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아래의 캡처 이미지들로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를 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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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탭을 클릭하고 나타난 사이트 화면





야후 코리아의 경우 연예 탭을 클릭하자 이전의 화면과는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는 화면이 다소 혼란스럽고 어지럽게 나타났다.  느닺없이 'YAHOO! KOREA 미디어' 가 나타나고, 왼쪽 상단에 세로로 연예란의 항목들이 나타나면서 더 어수선해진 모습이다.연예란의 항목들 또한 연예속보, 연예가 뒷얘기,영화,방송/TV,애니/만화, 가요, 해외연예,낱말퀴즈로  전문화 되지 않고  어지럽고 어수선하다. 연예에만 국한된 내용이라 하기에도 너무 광범위하고 정신이 없다.(바로 아래 캡처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예 탭을 클릭하자 느닺없이'미디어' 라는 단어가 나타나고 연예란의 항목들도 특성화 되지 않고 어수선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ntertainment 탭을 클릭하고 나타난 사이트 화면


그러나 이와는 달리 Yahoo의 경우 Entertainment 탭을 클릭하자 나타나는 가로탭으로 연예 관련 항목들이 깔끔하게 처리되어 나타난다. 사이트 화면은 MUSIC, MOVIES, TV, omg!, GAMES, BROADWAY 의 탭들을 가진 전문화되고 연예 소식으로 특화된 화면이다. 이중에 MUSIC 탭을 선택하여 클릭하자 음악이 특성화 된 아주 깔끔한 화면이 나타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YAHOO! ENTERTAINMENT 화면. 특성화된 항목들로 갈끔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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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에서 MUSIC 탭을 클릭하고 나타난 화면. 음악으로 특성화되어있다.



이상에서의 비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야후 코리아의 난삽하고 혼란스러운 구성과는 달리 Yahoo는 ENTERTAINMENT> YAHOO! ENTERTAINMENT>특성화된 항목들(MUSIC, MOVIES, TV,omg!,GAMES, BROADWAY) 로 이어지는 general에서 specific으로 쳬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비교는 당연히 YAHOO! ENTERTAINMENT의 KO승으로 귀결된다.

좀 지자치게 나아간 것은 아닌지 모르겠으나, 야후(yahoo.com)의 일목요연하고 정제되고 전문화된 사이트의 모습과 야후 코리아의 난삽하고 혼란스럽 모습은 물론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사이트의 비교에서만 아니라 미국 사회의 모습과 한국사회의 모습  여러분야에서 비교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를테면 물리적인 공간으로써 도시의 모습에서 부터 정치인들의 태도와 교육 현실에 이르기 까지 이러한 비교가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야후와 야후 코리아 첫인상 비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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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2 18:34

추석


추석 차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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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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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www.kwangcheon.com..

삼색 나물


삼색나물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를 일컫습니다. 이 나물들은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합니다. 흰색의 뿌리채소인 도라지는 기본을 나타내는 현재의 우리를 있게한 과거의 조상을, 갈색의 줄기채소인 고사리는 현재를 , 초록의 잎채소인 시금치는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처럼 후손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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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blog.naver.com/e_gw/20054139374

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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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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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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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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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www.klara0223.x-y.net/cook/baesuk.htm

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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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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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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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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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로

위 이미지들의 출처는 http://www.delicook.com/이며 그외 이미지 출처는 각 이미지에 표기합니다



추석 음식 가려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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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7 06:54

♥ 비틀즈의 Abbey Road, 그리고 Zebra와 Pelican의 공통점은? ♥






비틀즈 Abbey Road와 횡단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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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bra crossing(흰줄 무늬 횡단보도)이 인상적인 비틀즈 Abbey Road 앨범 커버 사진




문제) Zebra, Pelican, Puffin, Panda, Pegasus 이 동물들의 공통점은?
         

*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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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Abbey Road 앨범 커버 사진은 Zebra crossing(이하 흰줄무늬 횡단보도로 표기) 이 인상적이다. 1969년 당시의 위치에서 약간의 이동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비틀즈 팬들(Beatlemaniac)에게는 성지 순례(?) 일부가 아닐까 한다. Abbey Road는 그처럼 비틀즈의 상징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흰줄 무늬 횡단보도는 영국에서 1949년에 시험적으로 1000 곳에서 실시가 된 후. 1951년에 표준이 정해지면서 법으로 정착이 되었다. 이때 흰색 줄의 Zebra crossing의 표준(이전에는 푸른색과 노란색이었다)이 정해진 것이다.

횡단보도와 관련해서 보행자들, 특히 어린아이들의 횡단 안전을 위해 1942년에 정해진 Kerb Drill 이 1971년에는 좀 더 정교해진 Green Cross Code 로 대체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러한 Code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 나라에서는 관행상 Kerb Drill이 사용되고 있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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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ww.flickr.com/photos/nanacomp




*Kerb Dr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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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en Cross 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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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들의 횡단을 위해서 등교 시간대에 lollipop man 이 횡단을 도왔는데 그들이 들고 있는 pole 이 롤리팝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원의 가장 자리에는 붉은 선으로 그려져 있고 가운데는 검은 사각형(bar) 이 있는데 여기에 신호를 위반한 차의 번호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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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llipop pole을 들고 있는 Lollipop lady



횡단보도는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를 하는데 영국에서는 Zebra crossing이 그러하듯 횡단 보도의 타입을 구별하기 위해 동물의 이름이 사용 되었다. Zebra crossing 이후 Pelican crossing이 등장한다. Pelican crossing의 공식적인 이름은 Pelicon crossing(PEdestrian LIght CONtrolled crossing을 줄여서) 이지만 동물 이름을 딴 다른 타입의 횡단보도와 구색을 맞추어 Pelican crossing 이라고 한다. 이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버튼을 작동하여 횡단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Panda crossing 의 실패 후, 1969년에 도입된 Pelican crossing 은 영국에서 최초로 신호등으로 통제되는 횡단보도였다. 신호등과 과련해서, Zebra crossing 도 신호등(Belisha beacons)이 있었으나 단순히 경고 신호로 사용되었을 뿐 통제용 신호는 아니었다. Puffin crossing은 대개의 보행자용 신호등이 맞은 편 쪽에 위치해 있는 것과는 달리 보행자가 있는 쪽에 통제용 버튼과 함께 위치하고 있고 보행자들이 대기하고 있거나 횡단할 때 보행자의 존재를 감지하는 센스가 작동한다. Toucan crossing(Since two-can, both pedestrians and cyclists, cross together, the name toucan was chosen.)은 보행자와 자전가가 함께 횡단할 수 있는 횡단보도이다. Pegasus crossing는 이름 그대로 보행자와 말을 탄 보행자를 위한 횡단보도이다.

이상은 영국과 연연방 국가들의 황단보도의 종류들이다.


아래는 북미 국가들, 미국과 캐나다의 횡단보도 표시 무늬들이다. 비록 Zebra란 이름이 존재하지만 영국의 Zebra crossing 은 북미의 Continental 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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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의 횡단보도 무늬의 종류들



*Pelican cro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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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 cro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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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ffin cro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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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can cro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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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gasus cro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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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과 사진들은 위키피디아 사전에서 인용하고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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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4 01:06

♥ 비틀즈 Abbey Road에 얽힌 수수께끼 ♥




비틀즈 Abbey Road에 얽힌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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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이 되는 오른쪽 인도(pavement)에 서있는 남자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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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윗 사진의 왼쪽에 있는 흰 딱정벌레(beetle:폭스바겐차)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more..

3. 흰줄이 그으져 있는 횡단보도의 영어명은 무엇일까요?
     
 

more..


4. Abbey Road Studio 는 어디에 있을까요?
   
   

more..


5.  Abbey Road 앨범 커버 사진은 1969년 10월 12일 폴매카트니의 사망 음모설이 떠돌기 시작하고 사망설을 설명
    하는 자료로 제시됩니다. 어떤 이유가 담겨져 있을까요?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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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ey Road cover 패러디. 횡단보도에 그려진 사인이 위의 사진과는 다르다


자료는 위키피디아 한글, 영문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미지는 위키피디아와 이곳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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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3 18:19

♥ 비틀즈의 Abbey Road 패러디 ♥



비틀즈의 Abbey Road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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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은 내가 피던 담배의 브랜드명을 따서 Everest라는 타이틀을 붙이려고 했다“ 비틀즈와 함께                < Revolver><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The White Album>< Abbey Road> 앨범 작업을 한 것으로 잘 알려진 녹음실 오디오 엔지니어인 Geoff Emerick 이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한 말이다. 심지어 히말라야산맥에서 커버 사진을 찍자는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그룹이 사진을 찍어야 할 때 쯤, 비틀즈는 ‘Abbey Road’ 라고 부르기로 결정을 내리고는 1969년 8월 8일에 스튜디오 밖에서 사진을 찍었다.

커버 디자이너는 에플 레코드의 창의적인 연출가인 Kosh였다. 커버 사진은 사진사 Iain Macmillan 이 찍었다. Macmillan은 사진을 찍는 데 그날 아침 11:30쯤 겨우 10분이 주어졌을 뿐이다.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Abbey Road 커버 사진은 그 이후로 레코딩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모방의 대상이 되는 앨범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위키피아 영문판 참조)



Abbey Road Studio에서의 recording 모습. Abbey Road는 studio의 바로 밖에 있다


아래 이미지 출처: http://www.amiright.com/album-covers/abbey-road-paro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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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3 00:02

일연의 자취를 찾아서






일연의 자취를 찾아서


이 글은 일연의 사상이나 삶 또는 삼국유사에 관한 글이 아닙니다. 일연의 삶과 관련이 있긴 하나 일연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유서 서린 사적들을 둘러보려는 피상적인 글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직접 기행하면서 일연의 삶의 향기를 직접 맡고 사진에 담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이 글 자체로던 다른 지면(이 블로그의)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물론 여행기에 불과하겠지만 말입니다. 일연이나 삼국유사에 대한 내용을 보기 위해서라면 이 글은 참조할 만한 글이 아님을 미리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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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1206년에 128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206년칭기즈 칸이 몽고를 통일한 해로써 몽고의 침입은 실제로 일연의 삶에 있어서 떼어 놓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삼국유사』를 집필한 동기 자체도 기실 몽고의 고려 침략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쓴 목적은 무엇이며, 그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삼국유사』「기이」편의 맨 처음에 있는 ‘서왈(敍曰)’에 명쾌하게 나타나는데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자주 의식의 소산이다. 일연은 그당시 고려 전기의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지나친 사대주의로 일관해 중국 문화의 주변 혹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의식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고려가 떠받들던 중국 송나라가 망하고 중국인들이 그토록 무시하던 몽골족이 새롭게 원나라를 세운 사실은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실상 일연의 삶은 몽골의 침략에 따른 내정 간섭과 상당히 관련된다. 그러나 일연은 『삼국유사』를 통해 민족 자주적 입장에 서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버금갈 만한 유구한 역사 민족임을 드러내려 하였다.“ (삼국유사, p.12. 일연지음, 김원중 옮김, 을유문화사)

이제 일연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사적들을 돌아봅시다. 일연이 태어난 곳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으로 당시에는 압량이라 불렸습니다. 일연이 태어날 때 그의 어머니는 밝은 해가 집으로 들어와 사흘 동안 배를 비추는 태몽을 꾸었다고 합니다. 일연의 성은 김씨였고 이름은 견명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일직 여윈 일연은 9살 되던 1214년에 어머니와 함께 압량(지금의 경산)에서 전라도 광주 무량사로 갔습니다. 무량사로 간 이유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일연의 행장을 기록한 비문에 무량사에 취학(就學)했다는 구절이 있고 또한 승려가 된 것은 14살 때이기 때문에 승려가 되기 위해 무량사를 찾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14살이 되던 해인 1219년에 무량사를 떠나 설악산 자락에 있는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 에서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진전사는 당나라에 유학했던 도의선사가 선종을 전파하기 위해 세웠는데(821년) 당시 신라의 지도층에서 교종만을 인정하는 있던 터라 경주가 아니라 설악산 자락에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선종은 도의선사의 제자 염거화상을 거쳐 보조선사 체징(804-880년)에 이르러 신라 지배층의 인정을 받게 되는데 이후 신라에는 산을 중심으로 9개의 선종 분파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를 구산선문(九山禪門)또는 구산문(九山門)이라고 합니다. 보조선사가 세운 가지산의 보림사 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문의 본산입니다.

일연이 광주 무량사에서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까지 가서 구족계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광주 무량사 근처에 가지산문의 본산인 장흥 보림사가 있어서 가지산문의 정신적인 지주인 진전사를 선택했다고 보여 집니다.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된 일연은 가시산문의 승려가 되어 시간을 거슬러 도의선사에게로 이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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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www.seelotus.com/gojeon



일연이 스물 살이 되던 해에 승려들의 과거시험인 선불장을 치룹니다. 선불장은 교종과 선종으로 나뉘어 치러졌는데 선종은 개성의 광명사에서 치러졌습니다. 일연은 선불장에서 1등으로 합격하는 영예를 누립니다. 불교를 숭상하던 고려 사회에서 이것은 대단한 명예이기도 합니다.

선불장에서 합격한 후 일연은 경상북도 달성의 비슬산(당시에는 포산)으로 향합니다. 비슬산은 일연의 고향인 압량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습니다. 승려가 되어 속세를 떠난 일연이 고향은 찾지 못하고 근처의 비슬산을 찾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 일연은 비슬산에서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냅니다. 비문의 기록에 따르면 비슬산 보당암에 거처를 잡았으나 여기저기를 옮겨 다녔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은 몽고의 침략과 연관이 있습니다. 몽고의 침략은 1230년에 이후부터 본격화되는데 경주의 황룡사 구층목탑이 불타 사라진 것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

일연은 몽고군을 피하기 위해 문수보살에게 지혜를 구합니다. 기도가 통했던지 문수보살이 벽 사이에서 나타나 일연이 가야 할 곳이 무주(無住)라고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일연은 무주가 어디인지 몰랐으나 다음해 여름에야 비로소 묘문암의 북쪽에 있는 절이 무주라는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일연은 바로 묘문암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이 묘문암에서 일연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1236년의 일입니다. 그리고 선사가 되어 비슬산을 내려옵니다.

일연은 비슬산에서 내려와 경남 남해의 정림사 주지가 됩니다. 정림사는 장안이 자신의 집을 절로 만든 곳입니다. 비슬산을 내려와 일연이 정림사 주지가 된 것은 팔만대장경 간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정안은 몽고에 의해 불타버린 황룡사 구층목탑부인사의 대장경을 보면서 팔만대장경 간행을 통해 민심을 모으고 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팔만대장경은 강화도에 있는 대장도감선원사에서 간행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팔만대장경이 대장도감이 아닌 분사도감에서 간행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분사도감 가운데 그 이름이 전해지는 곳은 남해뿐이라고 합니다. 이 남해에 바로 정안이 세운 정림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 그 정암사의 주지가 바로 일연이었습니다. 일연은 1256년 정림사를 떠나 길상암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1261년에 일연은 왕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갑니다. 무신정권이 무너지면서 원종은 불교계를 쇄신하면서 일연을 강화도로 불렀던 것입니다. 이때 일연은 대선사였습니다. 강화도에서 일연의 행적은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단지 강화도에서 일연은 여러 차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일연은 3년 후에 강화도를 떠나 포항 부근의 오어사 (吾魚寺)의 주지가 됩니다. 1264년 일연은 경북 청도에 있는 인흥사로 갑니다. 이 인흥사는 이전에 일연이 머물던 비슬산에 있는 절로 일연의 감회가 남달랐을 것입니다. 비슬산에 머무는 동안 1268년 운해사에서 팔만대장경 간행을 축하하는 대장낙성회에 참석합니다. 1274년 충렬왕이 왕위에 오르고 인흥사에 사액을 내립니다. 인흥사에서 일연이 한 가장 큰 일은 『역대연표』를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역대연표』의 일부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1277년 일연은 왕의 명령으로 인근에 있는 운문사로 옮깁니다. 이때 일연의 나이가 고희가 지난 72살입니다.

1281년 일본 원정을 위해 출항하는 몽고와 고려의 연합군과 함께 경주에 머물던 충렬왕은 일연을 경주의 행재소로 일연을 불러 개경으로 함께 가자고 합니다. 일연은 왕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개경으로 올라가 광명사에 머뭅니다. 그리고 국사에 책봉됩니다. 일연의 나이 78살 때입니다.

그러나 일연은 70년을 떠나있던 늙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충렬왕으로부터 떠납니다. 이때 일연의 어머니의 나이는 95세였습니다. 일연이 광명사를 떠나 거처로 정한 곳은 운문사라고 추측됩니다. 비문에 기록되어 있는 구산(舊山)은 일연이 떠났던 안흥사가 있는 비슬산이라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이듬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른 뒤 일연은 운문사를 떠나 인근의 인각사로 갑니다. 이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언제부터 삼국유사를 시작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인각사에서 완성한 것은 분명하다고 합니다.

1289년 84세가 되던 해에 일연은 다시 인각사를 떠납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멀고 도 먼 입적의 길입니다. 그 해 7월 7일 칠석날입니다.

“『삼국유사』 에는 일연의 긴 발자취가 담겨 있다. 최남선은 일연의 『삼국유사』집필을 ‘일한사(一閒事)’라고 하였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일연이 늘그막의 한가로움을 이기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일연은 삶의 황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삼국유사』를 마무리했다. 어쩌면 당시의 사람들은 『삼국유사』의 저술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일연의 비에 『삼국유사』가 빠져있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삼국유사』의 가치는 커졌다. 만약 『삼국유사』가 전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고대 세계로 가는 거대한 문 앞에서 막막한 표정을 짓고 있어야 했을 테니까. 『삼국유사』는 고대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다.“(우리 고대로 가는 길, p.50. 이경덕, 아이세움)

참고도서: 1.삼국유사,일연,김원중 옮김
              2.우리 고대로 가는 길, 이경덕, 아이세움
                [이 글은 전적으로 책 2의 내용과 흐름에 의존하였음을 밝힙니다]

인터넷 검색 과정에서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서울디지털 대학교 김대식 교수가 49회에 걸쳐 『현장에서 읽는 삼국유사』를 연재하시고 재개를 약속하면서 잠시 중단하고 있는 것을 알 수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전문적인 답사 기행이 아니라 단순한 큰 인물 일연의 삶의 체취가 베여있는 유적지들을 가볍게 둘러 보고 일연의 삶의 향을 맛고자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위의 글은 일종의 여행의 순서도유적지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전문적인 기행기가 답사가 있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는 그다지 없으리라고 봅니다. 김대식 교수의 『현장에서 읽는 삼국유사』를 읽지는 않았지만 정독의 가치가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듭니다. 아래 글은 김대식 교수의 연재를 마치면서 쓴 글입니다.

  * 연재를 마치며
 
  나는 지난 10년 여 동안 혼자서 『삼국유사』를 읽고 그 현장을 찾아보는 일종의 순례를 해오면서, 말하자면 순례기를 써 왔다. 지난 3년 동안 이곳 <프레시안>을 통해서 발표된 것은 그 순례기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중간 점검 삼아 그 순례를 잠시 쉬면서 순례기 또한 잠시 쉬고자 한다.
 
  『삼국유사』에 관해서는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책 한 권이 "조선 상대를 혼자 담당하는 문헌"이라든가, "문학적 상상력과 영감(靈感)의 원천"이라든가 하는 선학들의 평가가 있고 보면 『삼국유사』는 참으로, 차근차근 음미하며 두고두고 캐내어야 할 보배로운 고전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나로서는 『삼국유사』를 읽는다든가, 그 현장을 찾는 일은 그만둘 수 없는, 일상의 작업이 되어 있다.
 
  언제 어디서가 될지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다시 『삼국유사』의 현장에 대한 순례가 재개될 것이다. 그때 다시 뵙게 되기를 희망한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읽는 삼국유사』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김대식/서울디지털대 교수 (inkyu@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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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0 21:51

[베이징 올림픽] 최민호 선수의 눈물



                       최민호 선수의 눈물



최민호 선수
유도 남자 60 kg 급 금메달 획득(2008.8.9)
 

동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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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blog.daum.net/dudnjs5842/6330715?nil_profile=tot&srchid=IIMZ0uAz00






최민호 선수 정말 장합니다. 5경기 모두를 한판으로 물리치며 당당히 금메달을 딴 그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금메달을 따고 매트에 엎드려 눈물을 짓는 모습은 최민호 선수에게 뿐만 아니라 최민호 선수를 지켜보는 우리 국민들에게 금메달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짐작하기에 남도록 만들었습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준비 과정동안 유보했던 자신의 삶도 떠올랐고, 그 기간 동안 일어났던 모든 슬픔과 고통과 어려움들이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한 감정을 우리 국민이 함께 공유하는 것은 어떤 소설보다도 감동적인 한편의 드라마 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약간 아쉬운 것은 금메달을 딴다는 것은 동시에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순간인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얻어낸 기쁨의 결정체인 것입니다. 이럴 때 눈물과 함께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드라면, 패자에게 먼저  위로의 악수와 포옹을 전해주었더라면, 태극기를 펄럭이며 관중들에게 기쁨의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덩실 덩실 춤이라도 춰 주었더라면, 눈물 속에 스며있는 고통과 슬픔들이 감격과 함께 더 큰 기쁨과 행복감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괜한 딴지를 걸려는 것도, 또한 감동과 감격을  지우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소 과장된 감정이겠지만, 단지 한의 민족이라는 자위의 언어, 핍박과 억압의 한 맺힌 민족이라는 위축의 언어를 이제는 지웠으면 하는 바랍입니다.
 
최민호 선수가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최민호 선수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의 축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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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0 03:45

다시 비틀즈를 추억하며








                           다시 비틀즈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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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coolmristuff.wordpress

최근에 John Lennon Confidential 다큐 영화가 상연되고 호평 여론을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비틀즈(The Beatles)의 음악과 함께 했던 지나간 시간들이 새록새록 기억을 되새김질 하고 있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참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들의 음악이 아니었다면 삶이 조금은 우울했었을 시절이 있었다.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도 그런 행복이나 위안을 받지는 못했다. 그 시절 비틀즈라는 이름과 그들의 음악들이 가슴 속에 너무나도 강하게 각인되어서 오히려 음악적인 편식을 앓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1980년 12월 8일 존 레논(John Lennon)은 자신이 살고 있던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광적인 팬이 쏜 총탄에 맞고 사망했다. <Woman>의 레코딩을 끝내고 오노 요코와 함께 아파트에 막 도착하고 서였다. John Lennon은 뉴욕이 위험한 곳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John Lennon이 뉴욕을 떠나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 1980년 그가 죽었을 때 뉴스위크지, 타임지에 표지 인물로 실린 레논의 모습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눈물을 참지 못했다. 바로 전 해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 되었을 때도 울지 않았던 나였다. 존 레논의 죽음은 나의 행복과 위안을 앗아갔기에 나는 슬펐고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런 상실감을 무엇으로 메워 갔는지는 기억나지가 않는다. 아마도 다른 무엇이기는 했을 테다. 아니면 그런 상실감 자체가 무엇이었거나.


혹 그들의 사진들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테입이나 앨범들은? 나는 비틀즈의 사진 한 장을 구하기 위해 내가 살고 있던 도시의 레코드점들과 헌책방과 백화점을 헤매고 다녔다. 그들의 사진 한 장을 발견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그 때 그들의 사진 한 장의 의미를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내 삶 속에 그들은 또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메카트니의 아내 린다가 1998년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어 죠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 2001년 페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 비극적인 사실들을 다 공교롭게도 라디오를 통해 알았다. 그들이 해체되고 멤버들과 가족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비틀즈는 점점 나로부터 멀어져 갔다. 아니 멀어져 갔다기 보다는 나의 일상이 비틀즈의 기억들을 조금씩 마모시켜 갔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시간은 망각을 부르는 마법사가 아닌가. 가끔씩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망각을 헤집고 나오곤 했다. 나는 그들의 공개 콘서트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그들 중에 누군가를 단 한 번도 직접 본적도 없다. 오직 그들의 음악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불행한 비틀즈의 팬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레논도 해리슨도 영영 볼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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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kr.news.yahoo.com/servi


조지 해리슨은 내게는 너무나도 각별한 존재였다. 내게 조지 해리슨은 비틀즈의 멤버들 중에서 가장 우수에 차고 우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지 해리슨은 내게 약간은 이율배반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Something>,<While my guitar gently weeps>은 (가사와 관계없이) 슬프게 들었지만, 한편으로 그의 <Here comes the sun>은 언제나 희망을 불러 넣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존 레논이야말로 가장 슬픈 존재였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일관되게 우울하고 무거웠으며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존 레논의 <Strawberry field forever><Julia> 속에는 어린 시절의 불행했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존레논의 노래에는 자신이 들어가지 못해 발버둥치는 듯한 격정이 녹아든 꿈과 환상이 있다. 그가 역시나 우울하고 심각하게 보이는 오코 요코와 만난 것도 예술가적 정서를 공유하는 운명적인 동지애였을 것이다. 존레논은 죽기 바로 직전 <Woman>이란 노래를 남기고 죽었다. 그와 동지애로 함께 헌신한 오노 요코를 위한 헌사가 아닐까 한다. 존 레논이 1970년대 평화 반전 운동을 할 당시 오노 요코는 바로 아내이자 동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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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www.slashgear.com/rumor


판단컨대 이렇게 무겁고 진지했던 존 레논과 낙천적이었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비틀즈를 이끌어 갔기에 불멸하고 위대한 음악들이 탄생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들을 비틀즈로 영원히 묶지 못했던 것 또한 그 둘의 상반된 개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음악에서는 조화를 가져왔지만 삶에서는 불화를 초래해 버린 아이러니가 아닐까? 시간은 죽음을 잉태하고 그 죽음을 아무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언제나 내게 젊음의 우상이었던 비틀즈의 멤버들은 기억속에서 조차 가물거린다. 레논과 해리슨의 영혼은 광할은 우주를 가로질러 떠돌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살아 남아있는 폴 메카트니(Paul McCartney)와 링고 스타(Ringo Starr)도 세월과 함께 늙어간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만큼은 영원히 젊음의 광채를 발하며 내 가슴 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비틀즈 관련 사이트:http://www.thebeatl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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