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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들

말 할 수 있는 죽을 동물

by 컴속의 나 2009. 1. 14.
"말 할 수 있는 죽을 동물": 아리스토 텔레스는 이 술어를 인간의 가장 고유한 본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본다(아리스토텔레스, P.23, A.E. 테일러, 이정우 역, 종로서적, 1986)


도대체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이유로 "말 할 수 있는 죽을 동물" 이란 말을 인간의 가장 고유한 본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았을까? 여기에서 몇 가지의 개념을 추출해 보면 말, 죽음, 동물일 것 같은데 말은 미래의 죽음을 알게 한다는 의미에서 미래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동물임을 강조한 것일까? 말이 없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무엇이 다를까? 따지고 보니 말과, 죽음, 그리고 동물이라는 사실만큼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표현도 없을 것 같다.

인간의 문명과 문화는 말의 또다른 형태일 것이고,  역사는 죽음의 기록이며, 동물은 생존이며 번식으로 이어가야 하는 존재, 바로 현실속에 실존하는 생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죽을 동물은 현실 속을 살아가고 있다.

어제는  한 지인의 부모의 화장을 위해 화장장을 방문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죽음은 내 속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마치 나와는 동떨어진 것처럼 고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죽음을 의식적으로 애써 회피하고자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 앞에서의 침묵은 참으로 무거웠다. 죽음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인간들에게 말은 정말 필요할 것인가 자문해 보았다.

이제, 역전이 되어,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이 고역이 아니라 말을 한다는 것이 참 고역이 되어버렸다. 참 역설적이다. 죽음을 잊기 위해 숱하게 많은 말을  지껄이지만 죽음 그 자체는 너무나 조용하다. 죽은 자의 그 침묵, 죽음을 거부하기 의해 말은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인간은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죽을 동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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