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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봅시다

9.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by 컴속의 나 2009. 2. 5.


9.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
    했을까?

1.음식의 역사 개괄

2.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3.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4.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5.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6.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7.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유목민들에게 왜 비타민 결핍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8.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9.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10. 통조림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몇 달씩 배위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1.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12. 20세기초 영국의 징병검사에서 41%의 청년들이 병역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13. 식품판매업자들의 사기행위와 불량식품에 정부와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14. 외국에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이 과연 자국의 식량 상황과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15. 식량 생산과 환경 파괴, 과식으로 인한 질병과 굶주림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미션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스페인의 선교사들이 남미 원주민들을 교화하는 희생적인 모습을 아주 스텍터클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남미의 문명은 식인이 보편화 되어 있었고 야만적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인 정복자들이 그들의 학살과 문명 파괴를 ‘신의 벌‘ 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도 이러한 원주민들의 식인풍습과 야만성에 근거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The Sacred Cow and the Abominable Pig : The Riddles of Food and Culture,1985)에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목격한 부족 원주민들의 식인 풍습의 많은 사례들이 인용되어 있다. 이 식인풍습의 목격담은 심장이 서늘해 질 정도다. 이러한 인용들 가운데 하나를 좀 길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예수회 신부였던 주앙 데 이스필쿠에타 나바로(Juan de Aspilcueta Navarro)가 1549년에 오늘날의 살바도르 시 근처의 한 마을에서 본 목격담이다.

“……내가 도착하자 그들은 그들이 이제 막 한 소녀를 죽이는 일을 마쳤다고 말하면서 나에게 그 집을 보여주었다. 그 안으로 들어 간 나는 그들이 그 소녀를 먹기 위해 요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그 머리가 나무에 걸려 있었다. 나는 이러한 혐오스러운 일과 이렇게 자연에 위배되는 일에 대해 그들을 꾸짖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런 뒤 나는 다른 집으로 갔는데 거기서 나는 사람의 발과 손과 머리들이 연기 속에서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19세기 후반 식인풍습의 분포도

이미지 출처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이러한 목격담들은 그 사실을 반박하기 힘들도록 만들고 있다. 따라서 ‘미션’ 이 보여주는 선교의 의미는 상당히 의미있는 백인들의 자기희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사냥에 나섰던 유럽의 ‘정복자’들은 식인 풍습 이상의 잔혹한 짓을 또한 했음을 숨겨서도 부정하거나 부인해서도 안된다. 신대륙의 발견에 대해 백인들이 부여하는 의미는 실상 수많은 학살과 문명의 파괴를 가리는 경우가 많다.

『음식의 역사』(Food in History) 이 책에는 질문에 대한 답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지는 않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과 문명 파괴의 구체적인 원인들과 그 역사적인 기록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단지 이 책의 내용의 행간을 통해 답을 구성하기는 좀 어려웠다. 단지 한 군데 적절한 답을 발견할 수 있어 그 나마 다행이었다. 그 내용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코르테스 시대 이전에는 중부 멕시코의 주민이 2,500만 명 정도로 추산되었으나, 30년 후에는 600만명 남짓으로 줄어 들었다. 그리고 1605년경에는 단지 107만 5천명 밖에 남지 않았다. 전쟁, 경제적 대변동, 착취, 새로운 질병들에 대하여 중앙아메리카의 주민들은 아무런 저항력이 없었고, 이 모든 요인들이 결합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재난의 하나를 초래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를 두고 냉혹하게도 ‘신의 벌’ 이라고 말했다.(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