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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사의 체통(3)

by 컴속의 나 2008. 7. 28.



무사의 체통(3)

― 누구의 사랑이고 명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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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士の 一分>의 영어 제목 <Love and honour>은 영화의 내용을 왜곡하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 제목 <무사의 체통>이 영화의 내용에 적확하다고 여겨진다. 영화의 내용으로 볼 때 사랑은 무사의 명예(체통)에 종속되기 때문에 그렇다. 일본의 전통적인 미덕을 love 와 honour라는 단어로 소개하려고 한 듯 하지만 기실 영어 단어 love와 honour의 의미를 변질시키고 왜곡시킨 일면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의 영제를 <Love and honour>라는 기만적인 미화보다는 일본어 제목과 마찬가지로 사무라이라는 한정사를 붙이는 것이 보다 솔직하다고 본다. 그것은 ‘사무라이의 사랑이고 명예’ 이지 인류의 보편적인 사랑이나 명예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이냐 무사의 사랑이냐를 떼어놓고 볼 때, ‘무사의 관점‘ 에서 보는 사랑은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좁게는 한 개인으로서 사무라이의 사랑과 명예에 대한 태도일 수 있으나, 좀 더 공간을 넓혀 보면 의미 또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완고한 계층질서에서 <남, 녀 간의 사랑>이란 감정이 주변으로 밀려난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또는 사랑과 명예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때 사랑이 무사의 명예에 종속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더욱 더 넓게는 국가주의에 부속화 되는 개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무력에 압살당하는 사랑(일본군국주의에 희생당한 위안부 할머니처럼)의 일그러진 모습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무사의’ 라는 한정사는 내용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영화 <색계>의 예를 잠시 빌려오면, 이 영화는 사랑과 애국이라는 선택에 흔들리는 한 개인의 감정, 특히 한 여자의 감정이 밀도 있게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이안 감독이 집단이나 국가 이전에 사랑이라는 한 인간의 감정을 유연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고 애국과 민족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매국을 두둔하는 것도 아니다). 애국(민족, 국가)라는 중력과 개인의 일탈적인 힘이 부딪히면서 동정과 이해, 공포와 용서, 사랑과 증오의 감정들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들의 약한 모습이고 단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무사의 체통>은 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명예가 존중되는 국가주의나 군국주의의 초개인적인 냄새만을 맡을 수 있다. 마치 심오한 무언가가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맹목적인 개인과 개인들이 집단(사무라이, 더 나아가 국가)의 중력에 흐물흐물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신파조의 사랑타령이 조금 등장하기도 하지만 양념일 뿐 오직 하나의 중심에 수렴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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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무사의 명예에 사랑을 주변적인 것으로 종속시켜버린 다는 것은 사무라이 영화의 당연한 특성의 일부로 전통적인 미덕이나 영화 자체로도 사무라이의 남성성을 멋지게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어딘지 무서운 일면을 뿌리 칠 수가 없다. 무사와 칼에 여성과 사랑이 종속된다는 것은 아무리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인류 보편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일본의 과거도 미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역사의 경우도 가족을 몰살하고 전쟁터로 나아가는 장군의 이야기나 다소 성격을 달리하긴 하나 남존여비의 유교사상이 그러한 예로 들 수 있다. 칼과 무사, 사랑과 여성을 좀 더 단순화해서 인류 보편적인 상징으로 표현한다면 여러 가지 추상적인 단어들과 구체적인 존재들과 조우할 수 있을 것이다. 남성중심주의, 가부장제도, 부자유와 복종 등의 단어들이 아닐까 한다.

장님이 되어버린 한 가난한 무사의 체통과 권위주의 아래에 사랑, 헌신, 봉사가 종속되면서 순수하고 희생적인 의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관계는 얼마나 삭막해질 것인가? 아니 삭막한 정도가 아니라 관계 자체가 두절되고 파괴되면서 비민주적이고 폭압적이며 비상식적인 어두운 통로들만이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닐까? 바로 남성중심주의요, 가부장제도이며 부자유와 복종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리 무사도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영화에 나타나는 남성중심주가 미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무사도는 일본 군국주의의 실체였으니 말이다. 이러한 무사도가 <love and honour>라는 이름으로 그럴듯 하게 포장되고 상품화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21세기의 일본 영화에 아직도 이러한 사무라이의의 전통적인 미덕이 칭송되고 있다는 것은 현대 일본인의 마음에 내재에 있는 의식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사랑보다도 사무라이의 명예를 추켜세우는 것은 결국은 국가에 종속되는 개인과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로 확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해석이고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최근의 독도 문제를 보면서 영화와 현실이 별개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미지출처: http://kr.blog.yahoo.com/iamji
                 http://kr.news.yahoo.com/ser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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