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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by 컴속의 나 2008. 7. 27.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기이한 만남과는 달리 헤어짐의 담담함은 이 영화의 처음이자 끝이며 그 메시지가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예상치 않게 만난 예상치 않은 존재는 우리의 일상에서 벗어나 있지만(숭고함에 가까운 감정이던 호기심이던), 헤어짐은 이러한 만남과는 달리 우리 일상의 한 단면을 통속적으로 보여줄 뿐이다(일순간의 동정이었을뿐). 꿈에서 깨어나는 아쉬움이라고 할까? 끝까지 조제를 책임져 주길 기대하는 우리의 상상적인 기대를 여지없이 배신해버리기 때문이다. 숭고함(또는 호기심)이 일상의 것으로 추락할 때 우리의 실망은 얼마나 클 것인가? 그러나 또 우리가 인정해야할 우리의 일상이기에 우리는 씁쓸한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정의 변화에 솔직해 진다는 것은 일상으로의 귀환이며, 의지는 또 다른 숭고함인 것을...... 조제의 삶을 책임지리라는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코네츠의 조제에 대한 사랑은 휘발성이 강한 일시적인 사랑의 감정일 뿐이다. 아니면 동정이거나. 코네츠는 의지가 아니라 감정을 선택했다. 비통할 정도로 가슴 아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코네츠의 가슴처럼이나 이 둘을 지켜보는 우리들의 가슴도 마찬가지긴 하다. 이 영화의 결말과 ‘영화가 끝난다는 사실’은 함께 이제 우리는 과장된 감정을 훌훌 틀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것은 인간적인 감정의 솔직함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으로 불리울까.



1.사랑의 감정들


<오아시스> 와 <나쁜 남자>의 경우. 이 영화 내내 이창동의 <오아시스>가 떠올랐다. 아마 장애인의 사랑을 다룬 영화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물론 오아시스의 주인공들은  둘 다 사회로부터 정신적 육체적으로 소외된 인간들이다. 그들의 관계에 ‘사랑‘이란 진정성의 무게를 두고자 할 때, 그것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으로 작용한다. 영화 내내 보는 이들이 부끄러웠던 것도 그런 진정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잘 들어맞는 한 쌍이었고. 그것은 어느 일방의 동정심에 근거한 관계가 아니라 가식 없는 ’진정한 사랑‘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작 우리에겐 그런 진정성에 우리를 투신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위선적이고,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랑은 그 대상을 파멸시킬 수 있을까? 대상을 파멸시키는 <나쁜 남자>의 그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그 모든 것조차 초월하는 것을 김기덕 감독은 보여주는 것일까? 한 여자를 덫에 걸어 자신의 옆에 애완동물처럼 두고자 하는 것이 과연 사랑일 수 있을까? 아니면 나쁜 남자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영화임에도 내가 사랑이란 말을 잘못 갖다 붙이고 있는 것일까? 오아시스와는 달리 <나쁜 남자> 에서의 남녀의 관계는 부담스럽고 껄끄럽고 낯설기만 하다.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런 관계의 설정에서부터 <나쁜 남자>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하 <조제~>표기) 은 흡사하며 그 감정의 처리 방법에서도 흡사한 측면을 갖고 있다. 그것은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향은 극단적으로 다른데, 나쁜 남자가 감정을 폭력의 단계까지 극단적으로 과장하면서 끌어올리는 반면, <조제~’> 는 감정의 변화에 솔직히 반응하면서 감정의 가변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조제를 포기하는 것도 실상은 감정에 솔직해 지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조제~>에서는 감정이 가변적이고 일시적이며 자연스럽다는 전제에서 감정을 쉽게 놓아버리지만, <나쁜 남자>에서는 강렬한 일시적 감정의  절대성을 포착하여 그 감정을 극단으로 수렴하는 병적이고 집착적인 모습을 보인다.


우리가 감정에 솔직해 진다고 했을 때 <나쁜 남자>‘나 <조제~> 는 진실일 수 있다. 그리고 진정성일 수 있다. 그러나 <조제~>에서의 코네츠의 사랑의 감정은 동정심에 가깝고 의지적이다. 이러한 감정은 의지가 약해질 때 더불어 약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나 있다. <나쁜 남자>에서의 사랑의 감정 또한 강렬하며 의지적이긴 마찬가지다. 다른점이라면, <조제~>에서의 동정심에 가까운 의지적인 감정이 쉽게 포기되는 반면, <나쁜남자> 에서는 감정대로 이루려는 의지가 너무나 강력해 조금도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폭력과 억압에 가까운 감정이 되어 상대를 파멸시킨다(이것에 진정성이란 이름을 달기에는 왠지 끔찍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아마도 김기덕의 의도가 일반화된 사랑의 감정을 낯설게하기겠지만 이것은 일상적인 사랑의 진정성과는 솔직히 거리가 멀다. 낯설고 도발적인 사랑을 통해 인간에게 있어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별스러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겠지만......사랑은 이럴 수도 있다는...... 감정에 솔직해 진다는 면에서 <조제~’>와 ,나쁜 남자> 는 서로 극단의 방향이지만 동질성을 나타낸다. 



2. 사랑과 동정의 사이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사랑은 무엇인가? 일시적인 감정인가? 지속적인 감정인가? 아니면 감정을 초월한 어떤 것인가? 감정이 촉발시키는 행동인가? 그 어느 것에 사랑의 이름을 붙이던 개개인들의 정의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인간만큼의 사랑에 대한 정의들이 존재하는 것이니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랑의 정의는 불가능하다는 말과 같지 않을까? 사랑이란 전형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인 관계인 경우는 어떤가? 코네츠처럼 정상적이고 여자들에게 인기있는 대학생과 출생도 불분명한 뇌성마비인지 병명조차 모르는 장애인인 조제의 관계말이다. 코네츠의 조제에 대한 감정은 일시적인 감정일까? 지속적인 감정인가? 아니면 감정을 초월한 어떤 것인가? 위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영화의 파국으로는 판단해 보면 분명 일시적인 감정이다.  그렇다면, 코네츠의 감정에 사랑의 라벨을 달아줄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사랑에 ‘일시적인’ 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주는 것으로 우리는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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