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토이치(3)
-마이너리티 리포트
맹인 자토이치는 로닌(浪人)이다. 로닌은 사무라이의 위계질서에 편입되어 정착하지 못한 사무라이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로닌은 소속된 조직이 없는 소속 외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바람처럼 이곳저곳을 떠도는 사무라이라고 하면 된다.
자토이치는 외관상 어떠한 조직에 소속되기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아주 현대적인 외관을 하고 있다. 머리는 노란 염색에 가깝고, 의복 또한 마찬가지이다. 머리모양과 의복만을 놓고 보면 자토이치는 21세기의 인물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자토이치의 외관은 격식을 파괴하고 있다.
약간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자토이치를 만나 자토이치를 통해 대리 복수를 하는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하나같이 사회의 비주류들이다. 우선 가족을 죽인 살인자들을 복수하려는 남매는 부모를 잃고 정처 없이 살인자를 찾아 헤맨다. 그런데 그 남매에게는 자토이치 이상의 이질적인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사내인 남동생이 여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전도된 현상은 어린 시절의 충격(어른에 의한 아동 동성애, 경제적인 궁핍을 모면하기 위한 동성매매)에서 기인하고 있다. 이것은 소수 동성애자들의 문제를 제기한다고 할 수 있다. 가족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기 위해 여장하고 춤을 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이해를 호소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는 하층민이다. 집단화된 도적 패에게 언제나 폭력을 당하는 경제적, 계층적인 약자이다. 자토이치가 신세지고 있는 집의 여주인과 거리의 상인들이 그러한 존재들이다. 이들은 집단화된 도덕 패들에 의해 자릿세를 뜯기고 폭행을 당하면서 하루하루를 영위해 가는 존재들로 삶이 핍박하고 고달프다. 이들은 소수라는 측면보다는 약자라는 측면에 더 강조점이 두어져야 하지만 절대적인 빈곤층이란 의미에서 마이너리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칼을 쓰지 못한다는 면에서 자토이치와 다를 뿐 실제적으로 사회적인 이방인으로 도박과 술과 여자에 빠져 죽은 둥 사는 둥 살아가는 중독자들이다. 이들은 자의적으로 사회를 일탈한 존재로서 마이너리티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알콜 중독자, 마약 중독자 등도 이러한 사회적인 약자(사회로부터 냉대를 받는다는 의미에서)로서 동일한 부류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하지만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냉대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격리는 범죄자에 대한 동일한 인식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범죄자가 감옥에 격리되듯이 병원 따위에 수용이 되는 것이다.
넷째는, 셋째의 부류와 다소 동일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같은 부류로 분류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바로 미친자들이다. 미친자는 자의적이지도, 어떤 지향성(술, 마약, 여자)도 갖지 않는 존재라는 면에서 중독자들과는 다르다. 자토이치가 머물고 있는 집 주위를 함성을 지르며 도는 이웃집 아들이 바로 미친자이다. 영화 <자토이치>에서 왜 이 미친자가 등장할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만들어 낸 캐릭터는 결코 아니라고 본다. 하층민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들의 존재는 웃음만을 자아내기에는 서글픈 존재가 아닐 수 없으며 운명적으로 사회적인 냉대와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슬픈 존재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약자와 대척점에 있는 존재가 집단화된 도적 패거리이다. 이 집단화된 도적 패거리를 현재적인 시간에서 그 대응 집단들을 살펴본다거나 변화된 모습을 살펴본다거나 도적이란 본질을 위장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알레고리로 자리잡는 것이다. 자토이치의 시대 상황이 과거이지만 해석은 지금, 여기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는 언제나 현재에서 만들어지듯이 현재의 시점에서 하는 해석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대척적인 존재들(사회적인 약자 vs 집단화된 도적 패거리) 사이에 놓여있는 자가 자토이치라고 하면 어떨까? 이 자토이치가 도박을 즐기고, 여자를 즐기고, 관습을 무시한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다면 자토이치는 마이너리티에 관용적인 자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그 자신이 육체적으로 맹인인 약자라면 어떠한가? 판단은 영화를 보는 개인 각자의 몫이지만, 분명한 것은 자토이치의 몰골은 그 당시의 시점에서는 결코 보편적이거나 관용적일 수 없는 모습이었다는 사실이다. 자토이치가 칼을 휘두른 것은 집단화된 도적 패거리지만 어쩌면 그것은 사회적인 약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질성을 말살하려는 관습의 편견인지도 모른다. 분명 자토이치는 이질적인 것, 사회적인 역자들의 편에 서있다.
영화가 끝나면 사회적인 약자들과 집단화 된 도적 패거리가 함께 모여 춤판을 벌린다. 이 춤판은 두 가지의 있다고 본다. 하나는 영화내내 자행되는 칼질에 대한 살풀이의 마당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더욱 중요한 것으로써 사회적인 약자들의 신명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자유와 평등에 대한 염원이다. 나무를 자르고, 깎고, 다듬어 불탄 집을 다시 세우는 그 축제의 한마당은 바로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인 것이다.(*)
(2008.4.20.21:30)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 | 2008.07.27 |
---|---|
[일본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4) | 2008.07.10 |
[일본영화] 자토이치(2) (0) | 2008.04.14 |
[일본영화] 자토이치 (4) | 2008.03.23 |
[일본영화] 무사의 체통(2) (0) | 2008.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