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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돌아보기

인듀어런스호와 새클턴

by 컴속의 나 2008. 4. 10.


 

부빙에 갖힌 인듀어러스호


인듀어런스호와 새클턴


“1915년 11월 21일 P.M. 4:50: 인듀어런스호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문명세계와의 마지막 끈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P.102) 


인간은 어느 정도까지 강인해 질 수 있을까? 자연이 가하는 위협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의연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인듀어런스호와 새클턴을 비록한 27명의 선원들이 답을 해준다. 2년에 가까운 극지에서의 잔인한 ‘전투‘에서 모두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은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기적을 새클턴과 인듀런스호의 승무원들은 이루었던 것이다. 그들의 고투의 나날들은 그야말로 죽음과 맞닿은 잔인하고 살벌한 시간들이었다. 창고 책임자 오들리의 말처럼, 그들은 영락없이 “얼어버렸다, 초콜릿 바속에 박힌 아몬드처럼.”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지만 또 참으로 낙천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그 낙천성이 그들에게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해 주었을까? 어찌 초코렛이나 아몬드에 비유할 수 있을까? 죽음이요, 고통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숭고함의 실체는 아주 평범하고 소탈한 것이었다.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이었다. 신의 모습도 아니었고 영웅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바로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비극 앞에서 당당히 선 인듀어런스호의 선장인 새클턴과 그의 대원들의 인간애가 아닌가 한다. 그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고통 속에서 서로를 격려해주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미쳐버릴 듯한 극한 상황에서 고통에 맞섰다.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비극에 맞섰던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인 욕설로 고통에 맞섰다. 그들은 저주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저주했다. 바, 배, 물보라, 추위, 바람 그리고 가끔씩은 서로를. 그들의 욕설에는 간절한 말투가 담겨있었다. 마치 이 축축하고 추운 고난에서 해방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것처럼” 


비록 동상에 걸려 몸은 썩어 팔 다리를 잘라내는 고통과 허기에 몸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했지만 그들은 그들의 희망만은 꺾지 않았다. 그린스트리트 대원의 말처럼, ......썩어가며 하루를 보낸다. 빌어먹을! 썩은 하루가 또 지나갔지만, 끝내 그들의 운명은 ‘법칙이 틀렸음을 입증해주었다.  


이러한 극한의 상황을 그들은 어떻게 이겨낼 수 수 있었을까?  비슷한 시기에 북극에서 조난당한 칼 럭호 승무원들이 몇 개월 만에 모두 숨진 것과 비교해 본다면 분명 인듀어런스호 대원들의 생존은 인간이 구현한 숭고한 모습이 숨어있음이 분명하다.  


1916년 4월 엘리펀트 섬의 부빙에 갇혀있던 인듀어런스호와 남은 대원들을 뒤로하고 선발대로 새클턴과 몇 명의 대원들은 800 마일 쯤 떨어진 스트롬니스 기지(Stromness station)가 있는 사우스 조지아섬(the island of South Georgia)를 향해 출발하는데 조악한 항해도구에 의지한 17일간의 사투의 항해였다. 그들의 사우스조지아 섬으로의 항해 중 그들의 희망을 솟구치게 해 준 존재는 가마우지 한 마리였다. 가마우지는 보통 육지에서 20-30km 이상을 날지 않는 새였기 때문이었다. 5월 10일 그들은 사우스 조지아 섬에 발을 내딛지만 여전히 장애는 도사리고 있었다. 약 10일쯤 뒤인 5월 19일 그들은 빈약한 장비에 고통스런 몸을 이끌고 22마일 떨어진  스트롬니스 기지를 향해 36시간의 강행군을 해 그곳에 도착했다. 이후 4번의 실패를 겪으며 8월 30일 칠레 정부로부터 빌린 쇄빙선으로 인듀어런스호가 있는 엘리펀드 섬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고 대원들을 구조하게 되었다.


상상하기에도 힘든 이 극한 상황을 이겨낸 새클턴과 인듀런스호의 대원들에게 경의 표한다. (*)     



(참고 서적: 살아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알프레드 랜싱, 유혜경 옮김)

(참고 사이트:  http://www.amnh.org/exhibitions/shackleton/home.html)




* Expedition Members

Sir Ernest Shackleton Sir Ernest Shackleton
leader

Frank Wild
second-in-command

Frank Worsley
captain

Lionel Greenstreet
first officer


Hubert T. Hudson
navigator

Thomas Crean
second officer

Alfred Cheetham
third officer

Louis Rickinson
first engineer

A. J. Kerr
second engineer

Dr. Alexander H. Macklin
surgeon

Dr. James A. McIlroy
surgeon

James M. Wordie
geologist

Leonard D. A. Hussey
meteorologist

Reginald W. James
physicist

 

 

            *인듀어런스호의 조난 일지도













 

   






Robert S. Clark
biologist

James Francis Hurley
official photographer

George E. Marston
official artist

Thomas Orde-Lees
motor expert and storekeeper

Henry McNish
carpenter

Charles J. Green
cook

Walter E. How
able seaman

William Bakewell
able seaman

Timothy McCarthy
able seaman

Thomas McLeod
able seaman

John Vincent
able seaman

Ernest Holness
fireman

William Stevenson
fireman

Perce Blackborow
stowaway (later ste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