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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목욕탕의 추억(1)

by 컴속의 나 2009. 1. 22.


 

순결한 수산나, 헤너


목욕탕의 추억

어린 시절 목욕탕은 놀이터와도 같은 곳이라 생각할 것이다. 오늘날의 수영장을 대체하는 의미가 있었다거나, 엄마와 함께 여탕으로 가던 추억이나, 목욕후 아빠가 사주던 짜장면에 대한 추억들 따위로 어린 시절과 목욕탕을 낭만적으로 연결 지으려고도 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런 추측은 9할 정도는 맞을지도 모른다. 목욕탕이 낭만적인 곳이었다는 생각은 보편적인 생각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목욕탕에 대한 기억이 그리 낭만적이지 못하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엄마와 함께 여탕을 이용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간혹 여탕에서 목욕하기도 했다. 이건 내겐 낭만이 아니라 차라리 악몽이었다. 엄마의 편리를 위해 희생된 비극적인 결과였다. 빈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심지어 나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도 엄마와 함께 여탕을 들락거렸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애가 여탕에 가기에는 좀 커지 않나 하는 소리를 듣기도 하면서도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여탕으로 향했다. 엄마는 억척같고 생활력이 강한 여자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상하게 내가 엄마 손을 잡고 여탕의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 순간부터 같은 반 여학생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나의 초등학교 1, 2학년 여학생들은 나의 나신에 꽤 익숙해 있을 것이다. 남자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로 드물게 보았기에 나는 여탕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 더욱 부끄러웠다. 그 아이들은 어디에서 목욕을 할까? 아빠를 따라 남탕으로 가겠지? 여자 아이들을 볼 때면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고추가 뻣뻣해져 얄궂은 수치심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탈의실에서부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여자 아이가 있는가부터 살폈던 것이다. 만약 여자 아이가 있으면 아예 등을 돌리고 후다닥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욕실에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참 단순한 행동이었다. 작은 욕실은 더욱 더 피할 곳이 없었으니 말이다. 공간의 제약이 더욱 심해서 함께 나란히 앉아야 할 경우도 있었다. 작은 목욕탕은 가끔 악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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