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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by 컴속의 나 2008. 10. 23.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아내는 비행기를 내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탈 때는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아내는 버스를 타기만 해도 심한 멀리를 하는 체질이었다. 공항에서 멀미약을 사서 마신다, 멀미 방지용 테입을 귀밑에 붙인다 하고 부산을 떨었다. 가족들의 마중을 뒤로하고 비행기를 탈 때까지 아내는 아들을 만난다는 기쁨보다도 멀미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대장부 같은 아내도 멀미 앞에서는 꼼짝을 못했다. 그런 그녀였기에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내심 덩달아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이륙할 때 소스라치게 놀라며 한 동안 눈을 감고 나의 목을 꽉 잡는 것을 끝으로 그녀의 멀미에 대한 근심이 막을 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멀미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멀미의 걱정에 가리어졌던 기대감과 흥분감을 천진난만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긴한 걱정을 했시유. 멀미는키녕 기부니 허버러지게 상쾌해 지구먼요.”

아내는 마치 놀이터의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기내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의 눈총 같은 것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아내는 언제나 그랬다. 주위 눈치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기내의 신기함이 그녀의 호기심을 더욱 강하게 일으킨 탓도 있지만 땅위에서도, 물위에서도 언제나 장소를 가리고 않고 나서길 좋아했다. 오죽하면 그녀의 별명이 이웃들 간에 꼴깝댁이고,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망둥이년으로 통했을까. 원래 아내의 기질이 그런 식이었다. 남편인 나로서도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꼴갑짓과 망둥이짓 만큼이나 순수하고 악의가 없었다. 아무튼 땅에서의 버릇이 하늘에서 달라지지는 않았다. 기내를 돌아다니면서 아들 자랑을 늘어놓기도 하고 외국인들에게는 ‘알라뷰‘ 하고 손을 흔들어 대기도 했다. 같은 또래의 노인네들에게는 노래 한가락 뽑아보라고 청하기도 했다. 아내는 승무원들에게 몇 번 제지를 당하고 경고를 받고는 조금 시들해지기는 했지만 경미한 변화였을 뿐 기내를 활개치고 돌아다니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들내미 만내러 미국가구먼요. 하바든가 히바든가 하는 시계에서 치고로 조은 디학서 공부하고 있시유. 갸는 마 허벌나게 공부만 했구먼유.”

거머리 달라붙듯 척척 달라붙어 아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승무원들이 재차 아내를 만류했지만 아내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교양이나 공중도덕적인 관점에서는 작은 흠(?)이 될 수 있으나 승무원이 강제할 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안전벨트 착용과 화장실 앞에서의 질서 등 승객으로서의 의무들을 충실하게 수행했으니 말이다. 나는 처음 몇 번 아내를 잡아 좌석에 앉히고 할 때마다 참 많이도 민망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시간이 약이라는 생각에 심호흡 크게 한 번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미운 구석, 정겨운 구석 그것이 사람 살아가는 냄새가 아닌가, 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오히려 가슴 한 구석으로 무료함과 허전함이 몰려왔다.

젊었을 때 중동 건설현장에서 뛰던 나는 비행기를 타보기도 했고 바깥세상을 호흡해 보았지만 아내는 사정이 달랐다. 남편이 부재하는 동안 아내는 악착같이 돈을 벌기위해 재래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했다. 중동에서 송금해 주는 돈으로는 자식교육이나 미래의 삶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내는 오직 자식과 남편을 위해 자신의 삶을 유보하거나 포기했다. 내가 중동에서 귀국하고 그런대로 편안해질 쯤엔 막내아들 녀석이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의대로 편입 하면서 아내의 삶이 다시 신산해지기 시작했다. 그기다 졸업 후 유학을 가면서 또 다시 아내의 등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시장 모퉁이에서 붕어빵 장사를 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도무지 피핍한 삶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아내가 이 치료와 틀니를 포기한 것도 바로 그맘때였다. 두 개의 윗니와 한 개의 아랫니가 없이 뻥 뚫려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내는 주위의 눈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군데군데 빠져 있는 이를 드러내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 웃노라면 희화화된 인물 같았다. 8년 동안 그렇게 불편하게 생활해왔다. 이제는 이 없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편하다고 치료나 틀니 말만 꺼내도 손을 내젓는 아내다.

아내는 마치 제비 새끼처럼 엉거주춤 반쯤 일어난 자세로 손을 들어 비행기승무원이 제공하는 다과와 음료수를 수시로 주문했다.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승무원을 부르는 아내의 모습이 추상화처럼 어렵고 당혹스러워 보인다. 포도주를 마시다가 맥주를 주문하고, 콜라를 마신 후에 오렌지쥬스도 마셨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옆 좌석의 외국인의 무릎위에 음료수를 쏟는 실례를 범하기도 했다. 그가 영어로 무슨 말을 했지만 아내는 그저 웃기만 했고 나는 연신 쏘리, 쏘리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국인들이 대다수인 국내 항공사 비행기라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또 한 번은 화장실에서 손찌검을 하며 언성을 높이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화장실 앞에서 줄서 기다리던 아내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한 사내에게 대뜸 욕을 해댄 것이다. 사내에게서 나는 담배연기 냄새 때문이었다. 그 사내는 한국 사람이어서 다행히 아내의 욕이 섞인 한국말은 효과가 있었다. 그런 요란한 싸움에 앞서 화장실 센서가 작용해 비상벨이 울렸고 승무원들이 화장실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 사건은 그나마 아내의 공헌으로 평가되었다. 승무원들은 아내에게 미소를 지으며 기내 흡연에 대한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욕설은 자제하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난 혹 이러다가 기내 바닥에 앉아 화투판을 벌이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지경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멀미에 대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고 오히려 다른 승객들이 멀미를 일으키게 했다. 망나니 칼춤 추는 꼴이었다. 막 죽어가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기내를 휘저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내가 승무원들을 가끔 곤혹스럽게 하긴 했지만, 기내를 휘저었다는 식의 나의 표현은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는 않았다. 아내에 대한 다른 승객들의 반응이 그다지 불쾌하다거나 나쁘게 여겨지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들은 비행기가 도착지에 가까워오자 오히려 아내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비행기를 내리면서는 모두들 맑고 유쾌한 웃음을 아내에게 보내주었다.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건 오전 11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뉴욕에서 마중 나온 막내아들과 함께 자동차편으로 보스턴으로 갈 예정이었다. 한국에서 보냈던 전날의 오전 11시를 여기 또 뉴욕에서 맞이한 것이다. 아내도 시간이 이상타며 퀭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미리 미국에는 아침에 도착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아침이란 사실에 신기해하기만 했다.

“이상쿠먼유. 이짝은 밤인지 알았는디 아참이구먼유. 시계 바닐을 꺼구러 돌리났다 봐유.”

아내와 함께 여권과 입국허가증을 들고 수하물 검사대로 갔다. 검사대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아내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거나 미소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막내 아들에게 보낼 물건은 이미 보낸 터라 우리에게는 작은 수하물 가방 두 개가 전부였다. 둘 다 하드 케이스의 가방이 아닌 일반 천 가방이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검사대에 작은 가방 두 개를 올리자 무슨 콤콤한 냄새가 나는 듯 했다. 나는 그때서야 둔한 코를 원망했다. 김치 냄새였다. 나는 검사대에서 재빨리 가방을 내리려고 했으나 직원이 이미 가방 지퍼를 열어 놓은 상황이었다. 손쓸 틈이 없었다. 자극적인 신김치의 냄새가 심하게 코로 전해져 왔다. 검사대의 직원이 잠깐 미간을 찌푸렸지만 금세 다시 미소를 띠며 가방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었다. 잡동사니들이 튀어나왔다. 터진 신김치 봉지, 김치 국물에 저려진 양말들, 수저, 화투, 된장, 고추장……예상하지도 못한 돌발적인 상황이었다. 곁눈질을 하니 나와는 달리 아내는 뒤에 있는 한국 사람과 히히거리고 있었다. 가방에서는 신김치 냄새가 더욱 진동을 했다. 터진 신김치 봉지에서 흘러나온 국물이 검사대에 흥건하게 고였다. 그래도 직업의식 탓인지 검사대 직원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미소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김치, 김치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검사대 직원은 미소를 띠었지만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쥐구멍에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었다. 그때 아내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아내는 신김치의 포장지를 더 크게 찢더니 김치 죽지 하나를 꺼내 두 손으로 쭉쭉 찢어 검사대의 아가씨에게 내미는 것이 아닌가. 검사대 직원이 뒤로 주춤 물러서자 아내도 김치를 들고 팔을 더 쭉 뻗었다. 요렇게 먹는 거다는 식으로 아내는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내밀고 김치를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한 입 가득 우물거렸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주위의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고 파안대소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개인적인 인상은 김치가 세계화되기에는 이렇게 어려운 고비가 많아야 하리라는 것이었다.

출국심사대를 통과하고 출구쪽 공항 로비로 나가자 막내아들 녀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막내 아들를 안고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등을 다독이고 두 손을 꼭 잡고 뺨을 문질러 댔다. 아내를 안고 있던 막내아들이 코를 컹컹거렸다.

“이거 신김치 국물 냄샌데? 엄마 김치 포장지 터졌지? 와우 엄마, 고생 좀 했겠네.”

막내아들 녀석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연방웃기만 했다.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미국 처음 올 때 김치 포장지 터져서 난처했었어. 김치 때문에 망신 많이 당했지. 그런데 말야, 여기서 공부하면서 보니까 미국사람들이 김치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더라구. 비만의 나라 미국이 날씬해지려면 김치가 딱이지 싶어, 엄마. 그리니 엄마는 미국인들에게 경종을 울려준 거라구요. 김치 국물 세례를 해준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엄마. 엄마한테 좋은 말이야. 정말 잘했어, 엄마.”

엄마를 위로하려는 막내아들이 살갑게 느껴지긴 했지만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아내의 모습은 분명 지나친 데가 있었다. 아니 지나쳤다. 그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다소 화난 표정으로 오랜만에 만난 기쁨도 저만치 젖혀두고 막내 아들에게 쏘아 붙였다.

“세례긴 이놈아! 망신도 그런 망신은 없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였는데 넌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런 말장난이냐? 어디 이래 가지고 널 다시 만나러 올 수나 있겠냐. 검사대에 새어나온 흥건한 신김치 국물하고, 냄새는 또 어떻고. 거기다 더해 네 엄마가 김치를 쭉쭉 찢어서 검사대 직원에게 내밀었으니 …… 세계적인 망신이 아니고 무엇이냐. 도대체 망신스러워 혼났구나.”

그런데 막내아들 녀석이 하는 말이 걸작이다.

“김치 세례가 맞는데 아빠도 참. 그럼, 엄마에겐 고통스러운 통과의례였다고 해줄께. 아빠, 통과의례 그거 중요한 거 아니냐구? 이제 세계일주 해도 되겠다, 그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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