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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흔적들

이 빌어 먹을 놈의 신용카드

by 컴속의 나 2008. 10. 25.

이미지 출처: http://kr.news.yahoo.com/servi.

신용카드, 이름은 듣기만 해도 좋지만 실용성을 놓고 볼 때는 완전히 빵점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현금 가지고 다니는 것에 비해 약간 편할 뿐 전혀 인간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잔인함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신용카드다. 사용한도액이 있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제력을 잃기라도 하면 펑펑 쓰고 만다. 

자제력을 잃는 데는 술만한 것이 없다. 술은 참 좋은 데 내일을 사자리게 한다. 오늘만 있게 한다. 지금 이 시간만 있게 한다. 지금 이 시간의 쾌락만이 있다. 카프 디엠. 내일이 사라지면 돈도 오늘 다 써야 한다. 아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시간에 자본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신용카드를 긁는 것은 지금 이 시간에, 지금 이 밤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가장 최악의 조합이 술에 지배당하는 영혼과 신용카드의 결합니다.  술이 영혼을 조정하는 것은 리모콘으로 TV 채널을 바꾸는 것이나 마찬지이다. 그리고 술이 빠져 나간 자리에는 마음을 뻥 뜷는 공허함과 고통만이 덩그런히 남는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전날 밤의 시간을 되새김해보지만 흐릿한 영상 뿐이다.

술과 신용은 비례한다. 술에 취해갈수록 신용은 점 점 더 높아진다. 술집 사장도, 주점의 언니들도, 나이트의 웨이터들도, 아니 밤에 일어나는 모든 역사적 현장의 주역들은 신용을 하염없이 보내준다. 신용카드로 긁어대는 건 돈을 뿌려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백주 대낮에 말짱한 정신으로 돈을 뿌려 볼 수 있겠는가? 이게 가능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이 빌어먹을 놈의 콤비네이션, 술과 신용카드 듀엣은 가능하게 해준다. 인간에게 보내주는 신용이라기보다는 신용카드에 보내주는 신용이다. 밤은 그렇게 지나간다. 밤은 점 점 적막속으로 미끄러져 간다. 그 새벽의 적막감은 무섭기까지 하다.

시린 속을 부여잡고 도둑 고양이처럼 방으로 기어들어가서는 영혼을 회복하는 죽음의 의식을 치루기 시작한다. 잠과 함께 서서히 영혼을 지배하던 술은 조금씩 빠져나가고 술이 빠져 나간 자리에 다시 자리 잡은 이런 빌어먹을 이성이란 것은 온갖 근심 걱정들을 불러 놓고, 혹 부주의해 아내가 영수증 뭉치를 먼저 발견하고 앙탈을 부리기라도 하면 현실은 악몽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신용카드를 앞세워 그토록 자신만만해 하던 밤의 기품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건 한 낱 꿈이었을까? 이 빌어 먹을 놈의 신용카드는 왜 아무 말도 없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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