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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0 22:49

아이를 통해 읽게 된 <최악>





관련글  2009/03/30 - [영화] - 아이를 통해 만난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


지난 2월 입니다. 중학생인 큰 아이에게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니 오쿠다 히데오의 <최악>이란 소설을 읽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인터넷이나 신문 광고를 보고 혹했다 봅니다. 요즘 인터넷 광고 얼마나 집요합니까? 알라딘이나 인터파크 등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보면 읽고 싶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저도 이 블로그에 알라딘 TTB광고 붙여놓고 있지만 뭐 책이야 사람들 정신을 흔들어 놓아야 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택도 없는 것들에 유혹되고 돈 낭비되는 것보다는 책에 유혹당하는 것 만큼은 행복한 유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물론 게 중에는 나쁜 책들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다른 책 몇 권과 함께 <최악>이란 소설을 사주었습니다. 재미있게 읽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드는 생각이 소설에도 분명 19금이 있을 텐데 그냥 아이에게 던져 놓아두면 될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소설<최악>의 이곳 저곳을 훑어보았습니다. 검열자가 된 것이지요. 성적인 묘사가 더러 있더군요. 영상과는 달리 그 후유증이 그다지 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부모의 판단으로 아직은 중학생이 보기에는 다소 무리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읽기를 중단시키고 좀 머리가 큰 뒤에 읽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70페이지 정도를 읽은 상태였습니다.

이 후 책을 그대로 방치해 오다 저번 주부터 제가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데, 역시 광고문구 그대로 속도감있게 무척 잘 읽혀 지더군요.

다중 시점이라고 하나요? 다수의 주인공들의 여러 갈래의 독립적인 이야기가 절묘하게 어우리러지면서 하나의 사건으로 통일되는 구성으로 재미있게 읽혀지는 소설입니다. 역시 인간들이란 관계를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란 걸, 또한 그 관계로 파멸되기도 하고 파멸시키기도 하는 운명이란 걸 느끼고 있는 중인데 아직 다 읽지 못해 결론이 더욱 궁금합니다. 지금 읽고 싶은데, 아뿔싸! 저녁 모임 자리에 그 책을 놓고 와 버렸습니다! 그쪽에 전화를 해보니까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다행입니다. 결말을 빨리 알 수 없어서 좀 그렇네요.  제가 읽은 부분은 결말이 어떻게 날까 하는 궁금증으로 페이지를 넘기던 부분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책을 잃어버린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궂이 결말을 알 필요가 있을까? 그 허구의 결말을  나 자신이 채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나는 독자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상상을 통해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물론 터무니 없는 생각, 아니 공상이지만 말입니다. 
 



이포스팅을 시작한 의도는 이런 이유때문이 아니었는데 쓰다가 보니까 옆길로 새어 버렸습니다. 다시 가던 길로 돌아 갑니다. 과연 이 <최악>이 중학생 아이가 읽기에 부담이 없는 책일까의 바로 그 문제 로 말입니다. 

옛날 세계명작소설이란 이름을 달고 있던 <아라비안 나이트><차타레 부인의 사랑>이나 <데카메론> 등을 골라 골라 핵심 만을 짚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읽긴 했지만 막상 자식이 그런 소설들을 세계명작이란 이름으로 읽는다고 하면 어찌 보라고 권장 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아, 고전중에 고전 <데카메론> 꼭 읽어봐라?" 이럴 수 있을까요? 막상 자신은 세계 명작이란 이름으로 핵심만을(?)을 골라 읽었으면서도...... 이게 참 이중적인 태도처럼 여겨집니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만약 부모 모르게 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일테고, 포르노나 음란 서적을 보는 것 보다는 낫다고 자위할 수 밖에 없는 것이겠죠.


한편으론 안타깝습니다. <최악>의 소설은  제법 두툼합니다. 아이가 이런 소설을 읽고 싶다고 한다면 그것은 소설의 감동은 물론이거니와 독서의 습관을 기르고, 인내를 기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러가지 교육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로서 검열자가 된 듯한 기분이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현실적으로 중학생쯤 되면 더 저속하고 야한 영상을 접하는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모르고 있겠지만 중학생쯤 된 자식들은 알 건 다 알고 있는 게 현실일 것입니다. 오히려 부모 머리위에 있는 녀석들도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조금은 야하더라도 좀 폭력적이더라도 문학성있는 소설을 접하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잘못한 것일까요? 아이의 상상력을 너무 제약하고 있는 것일까요? 부모의 현명한 판단이었는지, 아니면 무모한 판단이었는지 ...... 참 조심스러워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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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19:26

음식의 역사

음식의 역사
Food in History

래이 테너힐의 Food in History(음식의 역사, 손경희 옮김)를 읽으면서 음식이 단순한 인간 문명의 부산물이거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인간의 역사에 상호 영향을 끼쳐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가 과거와 미래의 대화’ 라는 카의 명언에 음식의 역사를 적용해보면 인간의 역사가 생물적인 한계와 관습을 가지는 보다 유기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역사의 모습을 제공해 주는 듯하다. 단순히 ‘대화’ 라는 유기적인 역사인식 보다 더 나아가 마치 역사가 우리의 식탁위에 놓여있다는 일상성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러한 느낌은 음식이 갖는 친밀감 때문일 것이며 삶의 현장이 곧 음식을 제공해주는 자연, 곧 현재의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그 공간과 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우리가 체험하지 못한 과거의 거대한 정치적인 사건이 학습과 이성으로 그 심각성과 교훈이 전달되는 것과는 다른 이치이지 싶다. 단순이 요리의 레시피와 조리과정을 소개하는 요리책과는 다른 재미였다. 과장된 예가 되겠지만, 인간이 영양실조에 빠져 침대에 누워있다면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물로서의 인간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그 에너지의 충족 여부에 따라 행동이 유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음식의 역사가 여러 인간 역사의 한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은 진실일 수밖에 없다.

특히 식량(음식)이 인간의 생존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시기에 식량의 획득이야말로 인간 생존의 본질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인간의 역사가 음식의 역사와 동질적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좀 더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하고 삶이 풍요로워지면서 다양한 생존 요소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음식이 차지하던 절대적인 중요성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음식이 인간 생존의 수단인 이상 그 관계는 여전히 변함이 없으리라고 본다.

이렇듯 인간의 역사에 있어 음식이 미친 영향은 곧, 인간의 생물적인 조건이나 환경이 인간의 역사를 해석하는 여러 단서들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목격한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저자의 말」의 서두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음식의 역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간단한 주제를 다룬 선구적인 저작이다. 이 책을 쓴 목적은 인류의 3만 년 역사를 통하여 식생활의 특성을 형성해 온 영향 요인들을 조사하고, 보다 많은 양질의 음식에 대한 추구가 역사의 진행 방향에 때로는 결정적으로 또 대개는 미묘하게 작용하게 되는 경로를 쉽게 설명하려는 데 있다. 요컨대, 어떤 면에서는 음식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임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 방법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은 글을 읽는 내내 참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를테면, 쟁기와 십자군 원정의 관계, 흑사병과 동물 쓰레기의 불법 투기, 인도인들이 암소를 신성시하는 원인등등 음식이 “역사의 진행 방향에 때로는 결정적으로 또 대개는 미묘하게 작용하게 되는 경로” 를 접하는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인간의 역사에 음식이 “때로는 결정적으로 또 대개는 미묘하게 작용해왔다면” 오늘날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의 역사가 진행형이듯이 음식의 역사 또한 진행형이다. 저자의 말대로 “미래의 식량의 역할이 과거보다 덜 결정적이지는 않을 것”이기에 음식이 인간의 역사의 진행방향에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작용을 하기를 바라지만, 음식과 관련하여 인간이 처한 현실은 다소 비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식량의 문제는 과거의 부족사회와 같은 국지적인 성격이 아닌 국가, 대륙, 지구적인 차원에서 발생하고 있다. 인종과 국가간의 교류가 증대함에 따라 그 규모는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후진국의 영양부족과 선진국의 비만이라는 극단적인 대비와 환경의 파괴에서 뚜렷이 볼 수 있다. 음식의 부패와 오염, 그리고 저장의 문제 같은 것이 아니라 음식 자체를 생산할 수 없는 어두운 현실에 직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래의 인간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그 변화의 저변에는 음식이 어떻게 자리할 것인지,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 아닐까 한다.

책의 뒷표지에는 독자들의 시력을 측정하기라도 할 듯이 까만 바탕에 흰색으로 깨알같이 써놓은 아래의 질문들이 있다. 이에 대한 답은 앞으로 해 나가고자 한다.


1.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2.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3.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4.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5.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6.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유목민들에게 왜 비타민 결핍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7.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8.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9. 통조림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몇 달씩 배위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0.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11. 20세기초 영국의 징병검사에서 41%의 청년들이 병역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12. 식품판매업자들의 사기행위와 불량식품에 정부와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13. 외국에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이 과연 자국의 식량 상황과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14. 식량 생산과 환경 파괴, 과식으로 인한 질병과 굶주림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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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6 21:33

K를 위한 변명


K를 위한 변명, 그 마을 모퉁이 작은 도서관



아마 이십년도 더 넘은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 사건이 일어난 곳은 B라는 도시 근교의 작은 마을로 반쯤 도시화된 아직은 농촌의 풍경이 남아있던 곳이다.

그 곳은 묘하게도 삼각형의 지형을 하고 있었는데 그 꼭지점에 해당하는 지점들에 각각 동쪽으로는 도서관, 서쪽으로는 나이트 클럽, 그리고 북쪽으로는 은행이 위치해 있었다. 이곳에서는 그 도서관, 그 나이크 클럽, 그 은행이 가장 두드러진 이정표가 되었다. 도서관 옆 어디, 나이크 클럽 뒤쪽 어디, 은행에서 한 정거장 가서 어디 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은 추억거리에서나 이야기 되는 지나간 시간 속에 남아있는 사실들이다. 현대식 도시가 되어버린 이곳에 이제는 도서관이 무려 20곳 , 은행이 100여 곳, 나이트 클럽이 200여 곳이 난립하고 있다. 작은 농촌 마을이 이렇게 산전벽해가 되리라고는 이십년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옛날 이곳의 도서관과 나이트클럽과 은행은 유명한 이정표라 일종의 홍보 효과 또한 컸다. 별다르게 놀이시설이 없던 곳이라 학생들은 도서관에 모여들었고 마을의 유지들은 은행을 비롯해 은행 주변에 형성된 다방촌 근처에서 커피와 쌍화차를 앞에 놓고 노닐기 일쑤였으며, 나이트클럽은 주로 외지에서 관광 온 젊은이들이나 마을의 논다는 놈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이렇게 단순했던 곳이 이제는 누구도 그 지역의 성향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도서관과 은행과 나이트 클럽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도서관에서도 놈팽이들이 지랄을 하고, 은행 근처에는 오락실과 사채업자들이 난리를 치고 나이트클럽은 학원가와 술집들이 뒤섞여 번쩍거리고 있다.

이제 이 도시에서 낭만이라고는 찾아 볼 수도, 찾을 수도 없다. 수 많은 인간들은 쉴 새 없이 지나다니고 있지만 인간성이 상실되었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고 있다.


*

이십년 전 그 사건의 주인공은 K이다. 은행에서 큰돈을 털어 아버지의 수술비로 쓰려던 K는 조여 오는 경찰의 포위망에 밀려 도서관으로 뛰어들었던 사건이다.

그 당시 신문의 한 모퉁이에 작게 취급된 K의 강도 사건은 동시에 참 황당한 사건이기도 했다. 교회나 절로 도망간 범인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도서관으로 뛰어 들어 간 범인은 믿거나 말거나 K가 세계 최초가 아닐까 한다. K 또한 머리에 머리털이 나고 처음으로 들어 간 도서관이었다.

경찰도 이런 K의 사정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K가 도서관에 숨어있다고는 추측조차 않고 나이트클럽과 다방가 일대를 포위하고 은행에서 도시로 나가는 도로들을 차단하는 등 헛된 부산을 떨기만 했다.

만약 K가 도서관에서 나와 도서관 뒤쪽 야산으로 도망을 쳤다면 분명 K는 이 마을을 빠져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작은 마을이었기에 경찰도 예상하지 못한 경우였다.

K는 도서관으로 들어가 4층 자유 독서실내에 있는 캐비넷에 돈 가방을 넣었다. 도서관내 어디에서도 K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유 독서실은 숨어있기에는 주위가 너무 트여 있다는 생각이 들어 K는 아래층 자료 열람실로 내려갔다. 바깥에서 기웃거리다 보니 높은 책꽂이들이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 숨기에 알맞은 장소처럼 보였다.

K는 자료 열람실로 들어가 책꽂이 사이를 천천히 거닐었다. 28년이란 힘든 삶을 살아오면서 책은 단 한 번도 K의 손에 잡혀있던 적이 없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초등학교의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K는 아버지가 한글 정도는 배워라고 하면서, 쓰레기통에서 주워 가져다 준 초등학교 우리말 교과서가 전부였다.

이후 책은 K로부터 완전히 멀어졌다. 그 속사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가슴이 아프지만 여기에서 다두기는 좀 적절치가 않다.

이런 K가 비록 숨어있는 곳이기는 하나 책의 오솔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건 삶의 수 없이 많은 경험들 중에서 단 한 번의 경험이었다. 수많은 책들을 보면서 그 향기를 맡으면서 천천히 걷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K가 책꽂이 사이를 걷고 있을 때 K의 시선으로 들어 온 한 아리따운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K가 걸어가는 방향에서 K를 마주보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피해 K를 지나치면서 가벼운 눈인사를 보내었다. 순간 K는 참을 수 없는 가슴의 고동소리를 들었다. K도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녀가 지나쳐 가면서 뿌려준 그녀의 체취는 도피의 불안감에 빠져있는 K에게는 마취와도 같은 것이었다. 감미롭기 이를 때가 없었다. 막다른 모서리에 몰린 쥐처럼 도피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K에게 이상하게 찾아 온 여자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었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감정이었다. 책의 향기와 여자의 체취에 취한 K는 가슴 속 깊이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무언가에 그 자신의 육신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동시에 도피라는 극단적인 상황과 사랑이라는 애틋한 감정이 중첩되면서 K는 절규할 것만 같은 고뇌에 휩싸여들었다. K는 뒤돌아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책꽂이 앞에서 문득 문득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그녀는 책꽂이 쪽으로 목을 쭉 빼고 한 참을 들여다보기를 되풀이 했다. 그러다 책을 빼는 그녀의 긴 손가락은 너무나도 희고 가늘었다.

그녀가 저만치 멀어지고 이내 그녀의 모습은 오른편 책꽂이 쪽으로 사라졌다. K는 서있던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책꽂이는 더욱 높아져 보였고 책들이 더욱 아득히 보였다.

별 필요도 없을 듯 한 수많은 책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이 이상한 곳이 K에겐 이상할 정도로 편안해졌다. 그리고 K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들은 왜 이토록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일까? 이 책들을 써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책을 쓴 사람들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 K는 앉아있는 자리에서 무심히 책꽂이를 보았다. <슬픔없는 이별>이라는 어느 소설가의 자전 소설이었다. K는 <슬픔 없는 이별>을 책꽂이로부터 빼서 한 페이지를 넘겼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나는 이 도시를 떠납니다. 그녀와의 이별이라기보다는 이 도시와의 이별이라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비록 그녀를 떠나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을 거두어 들인 건 아니니까 말입니다. 이 도시에 남겨진 사랑이 있는 한 이 도시 또한 영원히 나의 마음 속에서 살아있을 것입니다. 안녕!”

K에게는 뜻하지 않게 찾아든 한 소설가의 느닷없는 작별의 인사였던 것이다. 은행에서 돈을 훔쳐 죽어가는 아버지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했던 K이지만, 세상에 대한 원한과 원망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사랑도 무의식 깊은 곳에 깃들어 있었던 것일까? K의 머릿속에 ‘안녕’ 이란 단어가 메아리쳤다. 안녕, 안녕, 안녕! K의 눈이 촉촉이 젖어갔다.



*

K는 호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볼펜으로 이렇게 써내려갔다.

“전 참 나쁜 인간입니다. 은행을 턴 강도입니다. 도서관에 숨어 들어와 있습니다. 돈가방은 4층 자유 독서실내에 있는 캐비넷에 넣어두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도서관을 나가 바로 자수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제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한 아버지입니다. 돈가방에서 수술비만 빼서 아버지 수술을 하게 해주시면......제가 감옥을 나온 후에라도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제 집 주소는......”

K는 그녀를 찾기 위해 책꽂이들 사이를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걸었다. 그녀는 K가 앉아 있는 책꽂이에서 2블록 떨어진 책꽂이 앞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K는 조용히 그녀에게로 다가가 그녀 앞에 섰다. 그녀는 K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가만히 서있는 K의 모습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K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경계심이 서려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K는 가만히 접은 메모지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녀의 표정은 경계심에서 의아함으로 변했다. 그녀가 멈칫거리며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K는 그녀에게 머리를 깍듯이 숙이고는 자료 열람실 문 쪽으로 달려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녀는 K의 그런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www.flickr.com/photos/86946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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