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의 흔적들

아이를 통해 읽게 된 <최악>

by 컴속의 나 2009. 4. 10.




관련글  2009/03/30 - [영화] - 아이를 통해 만난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


지난 2월 입니다. 중학생인 큰 아이에게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니 오쿠다 히데오의 <최악>이란 소설을 읽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인터넷이나 신문 광고를 보고 혹했다 봅니다. 요즘 인터넷 광고 얼마나 집요합니까? 알라딘이나 인터파크 등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보면 읽고 싶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저도 이 블로그에 알라딘 TTB광고 붙여놓고 있지만 뭐 책이야 사람들 정신을 흔들어 놓아야 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택도 없는 것들에 유혹되고 돈 낭비되는 것보다는 책에 유혹당하는 것 만큼은 행복한 유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물론 게 중에는 나쁜 책들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다른 책 몇 권과 함께 <최악>이란 소설을 사주었습니다. 재미있게 읽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드는 생각이 소설에도 분명 19금이 있을 텐데 그냥 아이에게 던져 놓아두면 될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소설<최악>의 이곳 저곳을 훑어보았습니다. 검열자가 된 것이지요. 성적인 묘사가 더러 있더군요. 영상과는 달리 그 후유증이 그다지 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부모의 판단으로 아직은 중학생이 보기에는 다소 무리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읽기를 중단시키고 좀 머리가 큰 뒤에 읽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70페이지 정도를 읽은 상태였습니다.

이 후 책을 그대로 방치해 오다 저번 주부터 제가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데, 역시 광고문구 그대로 속도감있게 무척 잘 읽혀 지더군요.

다중 시점이라고 하나요? 다수의 주인공들의 여러 갈래의 독립적인 이야기가 절묘하게 어우리러지면서 하나의 사건으로 통일되는 구성으로 재미있게 읽혀지는 소설입니다. 역시 인간들이란 관계를 벗어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란 걸, 또한 그 관계로 파멸되기도 하고 파멸시키기도 하는 운명이란 걸 느끼고 있는 중인데 아직 다 읽지 못해 결론이 더욱 궁금합니다. 지금 읽고 싶은데, 아뿔싸! 저녁 모임 자리에 그 책을 놓고 와 버렸습니다! 그쪽에 전화를 해보니까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다행입니다. 결말을 빨리 알 수 없어서 좀 그렇네요.  제가 읽은 부분은 결말이 어떻게 날까 하는 궁금증으로 페이지를 넘기던 부분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책을 잃어버린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궂이 결말을 알 필요가 있을까? 그 허구의 결말을  나 자신이 채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나는 독자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상상을 통해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물론 터무니 없는 생각, 아니 공상이지만 말입니다. 
 



이포스팅을 시작한 의도는 이런 이유때문이 아니었는데 쓰다가 보니까 옆길로 새어 버렸습니다. 다시 가던 길로 돌아 갑니다. 과연 이 <최악>이 중학생 아이가 읽기에 부담이 없는 책일까의 바로 그 문제 로 말입니다. 

옛날 세계명작소설이란 이름을 달고 있던 <아라비안 나이트><차타레 부인의 사랑>이나 <데카메론> 등을 골라 골라 핵심 만을 짚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읽긴 했지만 막상 자식이 그런 소설들을 세계명작이란 이름으로 읽는다고 하면 어찌 보라고 권장 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아, 고전중에 고전 <데카메론> 꼭 읽어봐라?" 이럴 수 있을까요? 막상 자신은 세계 명작이란 이름으로 핵심만을(?)을 골라 읽었으면서도...... 이게 참 이중적인 태도처럼 여겨집니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만약 부모 모르게 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일테고, 포르노나 음란 서적을 보는 것 보다는 낫다고 자위할 수 밖에 없는 것이겠죠.


한편으론 안타깝습니다. <최악>의 소설은  제법 두툼합니다. 아이가 이런 소설을 읽고 싶다고 한다면 그것은 소설의 감동은 물론이거니와 독서의 습관을 기르고, 인내를 기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러가지 교육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로서 검열자가 된 듯한 기분이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현실적으로 중학생쯤 되면 더 저속하고 야한 영상을 접하는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모르고 있겠지만 중학생쯤 된 자식들은 알 건 다 알고 있는 게 현실일 것입니다. 오히려 부모 머리위에 있는 녀석들도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조금은 야하더라도 좀 폭력적이더라도 문학성있는 소설을 접하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잘못한 것일까요? 아이의 상상력을 너무 제약하고 있는 것일까요? 부모의 현명한 판단이었는지, 아니면 무모한 판단이었는지 ...... 참 조심스러워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