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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11:00

쥐교(Ratholic) vs 야옹교(Catolic)




당신들은 아시나요? 쥐가 종교를 만들고 인간들이 그 쥐의 열성적인 신도가 되어가는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를 말입니다. 그 이름하야, Ratholic, 쥐교입니다. 이 쥐교는 인간에 대한 영적 구원보다는 쥐의 우월성을 증거하려는 세뇌적이고 이단적인 교리에 입각해 있는 비종교적 종교라는 논리모순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쥐가 교주임에도 쥐를 위한 종교적인 안식이나 구원과 메시아적인 성격은 찾아 볼 수 없는 하늘에 의해 소명되고 특권의 향유를 위임받은 소수의 특이한 쥐들과 쥐교에 동화되는 동물과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체들을 구원에서 배제하는 초율법적이고 소수파 쥐중심의 중독적이며 유아적인 종교입니다. 그들은 같은 동족인 쥐들에게는 어떠한 구원의 메시지나 손길을 내밀지 않은 체 오직 인간과 타 동물들을 위해서만 유아틱한 종교적인 마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동족인 쥐들은 굶주림에, 폭력에 비참하게 죽어 갈 뿐입니다.
 


쥐교(RATholic)의 교주. 쥐교의 교리중 삼존재 일체성 의 삼각형중 한 꼭지점을 차지하는 존재인 Michy Rat(미치 랫. 미치 마우스라고도 함). 나이가 50살을 넘었음에도 지나친 성형으로 가면을 뒤집어 쓸 수 밖에 없는 미치 마우스. 선량한 가면 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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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모습이

더보기

 
 

어린 신자들의 확보를 위해 만들어진 사제복을 입고 마법을 부리는 쥐교, 미치 마우스 교주 캐릭터.





교주의 탄생지 뒤주니랜드( 또는 뒤쥐니랜드). 수 많은 쥐들이 희생과 인간 신도들에 의해  세워진 뒤쥐니랜드. 여기에 쥐교의 교주 미치 마우스가 살고 있다. 어린 나이에 여기를 방문하여 평생 쥐교의 신도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수 없이 많다.  
http://www.arqhys.com/hoteles/waltdisney-parks.html
 
 






선한 인간의 형상을 한 쥐교의 창조주 뒤쥐니(또는 뒤주니라고 발음).  쥐교의 교리중 삼존재 일체성 의 삼각형중 최고의 꼭지점을 차지하는 쥐교의 유일신이자 창조주이다.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거대한 쥐다.  
http://www.all-science-fair-projects.com/science_fair_projects_encyclopedia/Walt_Disney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간의 형상을 한 미치 마우스의 창조주이자 유일신 디쥐니의 원래 모습. MB(MOUSE OF THE BEST)






쥐교의 사제들 , 개와 오리도 보인다. 쥐교는 이렇게 귀여운 가면을 뒤집어 쓰고 유아틱한 성례를 행한다. 열광하는 어린 인간들은 마치 쥐가 된 모양으로 평생 신도로 살아간다.  
http://www.flickr.com/photos/wallyspam/1976781221/






쥐교의 교리중 삼존재 일체성 의 삼각형중 한 꼭지점을 차지하는 존재인 초인화된 나이트 마우스. http://www.barryejackson.com/?fa=character2&group=mouse
 
 
 
 


쥐교에 세뇌되어 쥐교의 사제가 되어 쥐처럼 행동하는 한 인간 신도의 모습
www.moveon21.com






쥐교와는 상관 없는 그냥 귀여운 한 여성
 http://www.flickr.com/photos/coletterochelle/2700452276/




교주, 미치 마우스를 둘러싼 은총과 은혜를 받으며 호의호식하는 주위의 쥐들과는 달리 쥐의 현실은 너무나도 비참하다. 쥐교의 가장 큰 특징은 동족인 쥐들을 배타적이고 이방적인 존재로 못 박아 버리고 쥐교에 의해 세뇌된 인간들로 하여금 억압하게 하는 반 쥐륜적인 종교집단이란 사실이다. 이 쥐교는 기타의 제 종교들과는 달리 방송 매체를 통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또한 책자, 영어교재, 교육용 보조 도구를 통해 끊임없이 성례를 행하면서 신도들을 진공청소기 처럼 빨아들인다.  


멀리 중앙에 교주 탄생 50주년을 알리는 꽃 장식물 위에 두 손을 펼치고 았는 교주 미치 마우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도 가까이서 찍지 못하도록 인간의 벽을 쌓고있다. 인간의 위에 군림 하는 선량한 쥐의 탈을 쓴 쥐새끼가 가증스럽다.
http://www.flickr.com/photos/happiestplaceonearth2005/231859192/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변종 쥐교의 부작용 까지 나타나고 있다. 위 사진은 진짜 쥐교라고 우기는 다담쥐교의 교주 매드 보이 2세(MB2)
http://www.flickr.com/photos/gsxrex/2655794199/




이런 사악한 쥐교에 대항하여 나타난 종교개혁의 선구자 가 있었으니 이 종교가 바로 Catolic(야옹교) 이다. 아래는 야옹교의 교주인 킹 마르틴 루터(King Martin Ruther)이다.  이 킹 마르틴 루터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흰 고양이가, 바로 캣뱅(Catbin)이다. 


쥐교 박멸을 위해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든 킹 마르틴 루터와 캣뱅. 킹 마르틴 루터는 젊은 시절  한 때 독실한 쥐교의 사제였으나 쥐교의 불합리성과 타락을 보고 과감히 쥐교와 투쟁하는 선봉에 서며 Catolic을 창시했다. 머리 위에는 쥐교를 교리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깨치는 정의의 사도 고양이 캣빙.
 http://www.flickr.com/photos/victius/411683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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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1 18:53

마음이 괴로울 땐...

이미지 출처: http://kr.blog.yahoo.com/gdy23



마음은 바다와 같아요. 언제나 잔잔하기만 할 수는 없거든요. 파도가 일기도 하고, 소용돌이 치기도 하고, 사납게 출렁이기도 하지요.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언제나 평온이하기만 할 수 있을까요? 나의 소망은 그렇습니다. 언제나 평온한 마음을 갖는 거지요. 하지만 그런 소망은 언제나 깨어지기 일쑤 입니다. 

호수에 던지는 작은 돌이 파문을 일으키 듯, 마음에 던져지는 작은 돌에 마음의 파문이 크져 가기도 하지요. 태연한 체, 아무렇지 않은 체 해도 마음은 작게나마 출렁이지요. 마음은 그런 겁니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그 관계 속에서 수 많은 오해들이 생기고 수 많은 갈등들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마음에 떨어지는 돌은 수도 없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관계를 끊고 살 수는 없는 거 잖아요. 관계를 끊는다는 말은 관계 속에 탄생하고, 관계 속에 놓여있는 모든 인간적인 조건을 거부한다는 것이지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성직자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수행승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관계를 벗어나기는 불가능 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관계를 마음에 띄우는 배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배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서로 배를 타고 잔잔한 마음의 물 위를 쉬엄 쉬엄 저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근본적인 삶의 태도가 아닐까 합니다. 배는 숭고한 관계로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이건 너무나도 어려워서 실천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또 있습니다. 시간에 맡기는 겁니다. 시간처럼 효율적인 약은 없다고 봅니다. 명상이나, 독서, 음악, 기도, 조용한 산책, 잠 같은 것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면서 바다는 잔잔해 지는 법이지요. 마음이 바다라면 그 변화를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에는 단서가 있습니다. 타인의 마음에 돌를 던지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비록 고독하고 외롭지만, 때론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조용히 마음을 시간에 맡기는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쾌락하니 무언가 성과 관련된 것으로 볼 것 같은 데 그것에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흥겨운 시간을 가지면서 망각하는 것입니다. 음악, 독서, 영화 같은 것들은 시간에 맡기는 수단들과 중복되는 부분도 있네요. 이것들도 쾌락을 주기도 하니까요. 아무튼 술이나 춤 같은 쾌락은 약간의 후유증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효율적인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단 중독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에 가장 충실한 방법이랄 수 있겠죠. 

  
이렇게 적고 있다는 것이, 아직도 삶이 혼란스럽다는 반증이겠지요. 마음이 괴로울 땐,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삶 속에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뒤섞여 있지요. 일관된 삶의 신념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세속을 초탈한 종교적인 신념이 아니기에 참 약하디 약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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