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음식의 역사 개괄
2. 인간은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었을까?
3. 사람들이 음식을 요리해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4. 음식은 인구 증가와 도시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5. 새로운 쟁기가 어떻게 십자군 원정의 불꽃을 일으켰을까?
6. 인도인들은 왜 암소를 신성시할까?
7. 채소와 과일을 거의 먹지 않는 유목민들에게 왜 비타민 결핍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8. 센 불 위에서 프라이팬을 흔들면서 재빨리 볶아내는 중국식 요리법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9. 향신료를 찾아 탐험을 떠난 유럽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주민들의 삶과 문명을 파괴했을까?
10. 통조림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몇 달씩 배위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1. 남아메리카에서 전해진 칠면조가 왜 ‘터키 닭’ 이라는 영어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12. 20세기초 영국의 징병검사에서 41%의 청년들이 병역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13. 식품판매업자들의 사기행위와 불량식품에 정부와 소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14. 외국에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이 과연 자국의 식량 상황과 경제에 이익이 되는 것일까?
15. 식량 생산과 환경 파괴, 과식으로 인한 질병과 굶주림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10. 통조림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 몇 달씩 배위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질문과 관련된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이 질문 속의 주체가 되는 ‘선원들’ 이라는 한정된 범주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여행자들’ 의 휴대식품이 또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선원’이야 말로 핵심적인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주요한 여행은 주로 항해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항해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적으로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선 항해의 시대였다. 따라서 장기간의 항해를 해야 하는 선원들의 식량에 대한 관심은 클 수밖에 없고, 그 식량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고 흥미있는 일이아닐 수 없다.
이 책의 5부는 세계의 확장(1500 ~ 1800)이란 하위 제목을 달고 있다. 고상한 표현이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흔히 말하는 식민지 경쟁의 시대라던가, 노예와 학살로 얼룩진 착취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그 원주민들의 학살과 노동력 착취를 위한 북동부 아프리카 흑인 노예무역은 인간의 비인간적 전형이 될 수 있을 정도다. 아마 더 언급하면 잔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 만큼 이 시기는 산업 기술과 무기의 성능이 앞섰던 유럽인들이 다른 대륙을 무력에 의해 식민지화하면서 그 대륙들의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착취한 피로 얼룩진 시기였다.
음식이나 식량의 관점에서 보면 더욱 비극적이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인들의 식량 보존과 상업적인 이익을 얻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향로의 획득을 위해 시작된 여행이 결과적으로 학살과 착취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집약적 농산업의 성장과 그에 따른 노동의 필요에 의해 흑인 노예무역이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인의 배불림을 위해 비유럽인들을 굶주림과 죽음으로 내 몬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비극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배제된 채 단순히 ‘선원들이 무엇을 먹었나?’ 하는 따위의 질문에 답하려니 약간은 당혹스럽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축소하고 은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럽인의 시각을 변호하는 것은 아니다.
장거리 항해에 필요한 16세기의 배들은 대략 600톤급으로 음식만을 싣거나 저장 시설이 발전했다면 선원들의 어려움은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거운 돛과 그것을 다루어야 하는 선원들과 ‘화물이나 대포‘ 를 함께 실어야 했기에 식량의 부족을 자주 겪어야 했을 것이다. 식량이 부족할 경우 어획물이나 바다새를 먹을 수는 있었지만 식수의 부족으로 인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선원의 식량은 목조 선박이라는 제약에 의해 고려되어야 했다. 첫째는 목재는 물을 흡수하는 자재였기 때문에 식품을 건조한 상태로 유지 할 수 없었다. 장기간의 여행에 있어 건조식품은 아주 유용한 식량이었다. 그러나 목조선박이란 제약 때문에 소금에 절인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선택되었다. 이외에 건조한 완두와 건빵이 소금기를 흡수하는 데 이용되었다. 둘째는, 목조선박의 화재 위험성이었다. 따라서 배안에서 요리용으로 불을 피우는 데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이로 인해 선원들은 바구미가 우글거리는 건빵이나 익지 않은 돼지고기를 먹어야 했을 것이다.
Labskaus(영어명:lobscouse, 북부 독일에서 기원한 음식)
건빵은 밀가루 반죽을 구워 건조시킨 것으로 먹기 힘들 정도로 딱딱했다. 야채 섭취의 부족으로 가득이나 이가 약한 선원들이 이로 깨어 먹기에는 무리일 정도였다. 손으로 부수기에도 어려울 정도였다. 이 선원용 건빵은 맛과는 상관없이 50년간 선원들의 식량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선원들이 건빵을 먹었던 방식은 이러했다.
“선원들은 건빵을 할당한 소량의 물에 담가서 죽과 같은 맛없어 보이는 음식으로 만든 다음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덩어리나 소량의 식초를 가하여 맛을 내고는, 스킬리골리(skillygolee), 랍스카우스(lobscouse), 또는 스카치 커피(scotch coffee)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불렀다.“(pp.309-310)
건빵이나 소금에 절인 소고기와 돼지고기 외에도 맥주, 버터, 치즈 등이 식품 목록에 기록되어 있는 정도였다. 이러한 식품들은 오랜 항해 동안에 시거나 산폐되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식량 공급은 선원들의 건강에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레이 태너힐이 “식량 조달을 맡고 있는 선주들과 나중의 해군 관리들은 인색한 만큼 상상력도 없엇다” 고 표현하고 있는 바와 같이 주로 ‘고형의 값싸고 부피가 큰 식품‘ 을 공급했기 때문이었다. 고작 ’선의(船醫)의 필수품’ 을 가장해서 양념들이 실리기도 했으나 일반 선원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소금이나 전분 위주의 식사에 도움이 되는 설탕이나 건포도는 식품 목록에서 빠졌는데 사치품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신선한 야채나 과일은 커녕 제대로 조리된 음식을 장기간 먹지 못하는 선원들은 비타민C의 결핌으로 인한 괴혈병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바스코 다가마의 ‘최초의 탐험 항해‘에서 선원의 반 이상이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위의 이미지들은 모두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가지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