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돌아보기

죽은 기자의 사회(Dead Journalist s Society)

by 컴속의 나 2008. 5. 24.




 

죽은 기자의 사회(Dead Journalists Society)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자의 정신은 사회의 정의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기자 정신은 사회의 불의와 거짓을 고발하고 바로 세우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기자 정신이 상업주의, 권력과 결탁하거나 심지어 종속되는 듯한 느낌을 뿌리 칠 수 없다.


살아 있는 기자 정신이 실종되면 사회의 비판적인 기능이 무뎌지면서 민주주의를 황폐하게 만드는 검은 독버섯이 도처에서 활개를 치게 된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거짓이 횡행하면서 사회는 적당주의와 무기력 양심과 도덕에 대한 무감각이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기자 정신의 실종이란, 곧 기자 개인의 사욕의 충족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사회의 타락을 잉태하게 되는 것이다. 기자는 공인 중에 공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들이 쓰는 기사 하나 하나에 살아있는 양심과 정의의 혼을 불어 넣어야 하는 것이다.


기자는 공인 중에 공인이라는 생각을 언제나 명심하면서 보편적인 진리와 인간애를 기사의 근간에 깔고 객관적인 사실 보도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사욕의 추구나 일신의 행복만을 추구한다면 기자정신은 실종될 것이고 비판과 저항이라는 대항적인 존재가 아닌 권력과 상업주의의 기생적인 존재나 홍보요원으로 추락할 것이다.


과연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자들이 살아있는 기자정신으로 보편적인 진리와 인간애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사실 보도에 충실할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관적이다. 이번 광우병 사태와 관련하여 기자정신의 실종을 더욱 끔찍하게 목도할 수 있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해 주기는커녕 권력의 시녀처럼 홍보와 합리화, 심지어 궤변에 가까운 기사들을 양산해 내었다. 특히 조중동의 경우는 기자정신의 실종을 넘어 권력과 상업주의와의 기생적인 관계에서 사욕을 추구하지 않나 하는 의혹을 갖게 될 정도였다. 광우병 문제로 촛불 시위가 한창일 때 MB 어천가를 불러대던 중앙일보의 한 기사는 이러한 기자정신의 실정을 보여주는 백미였다. 


      

*


좋은 신문을 말할 때 흔히 ‘보도의 객관성’, ‘날카로운 비판정신’ 그리고‘ 창조적인 대안’ 같은 말들이 떠오르는 것은 신문의 공익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일 것이다. 문(pen)은 무(sword)보다 강하다는 격언도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신문 사명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신문을 보노라면 원칙 없이 서로 상반되고 모순되는 기사들과 광고들이 무분별하게 뒤섞여 세상의 축소판을 보는 것 만 같아 어지러울 지경이다.


이러한 무원칙의 가치 혼란 상태는 사회적인 문제들의 악순환을 조장한다는 차원에서 신중하게 선별되어야만 한다. 경제가 어렵다는 기사 밑에 수억 원씩 하는 아파트의 광고가 등장하는가 하면 실증되지도 않은 과장된 영어 광고로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해외의 쓰레기 같은 기사들을 버젓이 해외 토픽으로 포장하여 상업주의를 조장하며 어학연수다 이민 설명회다 하여 서민들의 의욕을 상실케 하고 과장된 약 광고로 국민 건강까지 왜곡하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원칙 없는 짓들을 자행하고 있다.


특히 신문의 공신력을 앞세워 과장된 광고들을 확대 재생산하게 되고 당연시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어 심각할 지경이다. 건강식품, 영어회화, 식품광고, 광고(classified ads)란 등은 신문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와는 걸맞지 않는 전형적인 과대, 과장 광고로써 신문의 기능을 다시 한 번 재고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과장과 왜곡 광고 및 상업주의 못지않게 언론이 권력의 시녀가 되어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의 사명을 망각한 체 권력의 혜택을 누리려는 실종된 기자정신을 보고 있노라면 민주주의의 가면을 뒤집어쓴 지식인들의 허위와 위선을 보는 것 같아 분노하게 된다.


정론과 비판정신, 객관적인 사실 보도라는 불변의 기자 정신을 팽개쳐버리고 사욕에 눈이 먼 듯한 왜곡과 과장과 궤변을 토사물처럼 토해내는 신문기사들을 볼라치면 과연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인가, 언론이 민주주의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히 걱정스럽기도 하다.


사회의 병적 징후들을 드러내 놓고 예방과 처방과 심지어는 수술까지도 해야 할 언론이 사회의 문제들과 악순환의 연결 고리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기사 선택에 있어서 사회 현실과 조화될 수 있는 신중한 선별이 필요하며 광고의 경우에는 비록 광고가 재정을 지탱해 주는 원천들 중에 하나이지만 그 광고들을 비판하고 선별하는 사명도 신문의 사명들 중에 하나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권력으로부터 객관적인 거리감을 두면서 비판하고 견제하는 언론(기자)의 본질적인 소명의식을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에 소수 기자들의 정론이나 객관적인 사실로 포장된 권력자 예찬이나 주관적인 사설등을 접하면서 언론, 특히 기자들의 소명의식이 죽은 사회에서 민주주의도 함께 죽는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기자들은 우리 사회가 죽은 기자의 사회(Dead Journalists Society)라는 의혹을 불식시켜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