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꽁트

[꽁트]청국장의 맛

by 컴속의 나 2008. 2. 1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국장

 

청국장의 맛


이 간단한 진리를 부모들은 왜 이다지도 모르는지 몰라. 식빵에 이렇게 치즈와 햄을 놓고 다시 식빵 한 조각을 올려먹는 것이, 포크로 돌돌 말아 쪽쪽 빨아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를 말야. 악취(?)가 나지도 않고 얼마나 좋아. 그리고 먹으면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설거지 따위의 노동이 필요 없어 시간을 유용할 수 있고 말야.


그런데도 우리나라 음식의 위대성만을 주입하려는 그 얼빠진 부모들이, 아니 모든 한국인들이 난 정말이지 싫어. 아주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음식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지고 케케묵은 것인지 몰라.


밥과 국그릇을 비롯해서 그 많은 반찬그릇들이 얼마나 공간적, 시간적으로 비효율적인가 말이야. 자원의 낭비는 물론이고, 이동성이라고는 전혀 없으며 부수적으로 따르는 노동의 양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야. 제사를 예로 떠올려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이동성이라는 말을 하면 혹 김밥이 우리나라 음식이라고 주장하는 얼빠진 인간들은 없겠지. 이왕 김밥이란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스시도 얼마나 좋으냐 말야. 이 세계화의 시대에, 일분 일초도 아까운 이 속도의 시대에 밥과 국, 반찬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그 정신 사나운 장면을 상상해봐. 갓 쓰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것 같지 않니.


이렇게 본다면 또한 우리나라 음식문화는 야만의 상징이 아닐 수 없어. 허위의식과 권위주의는 물론이고 자원낭비와 환경파괴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음식문화는 종적으로 횡적으로 많은 부작용만을 잉태하고 있으니 말야.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런 음식 문화 하나만 봐도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다른 문화들이 갖는 성격들을 고스란히 짐작해 볼 수 있지 않겠니. [빨리 빨리 문화]가 그런 것 아니겠어. 그 많은 밥과 국과 반찬에 여유롭게 반응할 수 있겠니. 빨리 빨리 먹어야 모든 반찬을 한 번씩이라도 먹을 수가 있지 않겠니. 귀신은 뭐하고 있는지 몰라. 이런 음식 문화를 개혁하지 않고 말야. 무슨 무슨 개혁들이다 말들이 많은데 도대체 왜 우리나라 음식문화 개혁은 안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난 밥이 정말 싫어. 국이 정말 싫어. 김치가 무지하게 싫어. 청국장이나 된장찌개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난단 말야. 한국 사람인 나에게도 구역질이 날 정돈데 뭐 김치가 세계인들의 음식이 되고 있다고 떠드니, 나 원 참. 김치에 들어있는 젓갈의 효능과 발효를 과학이란 이름을 빌려 두리 뭉실하게 신비화시키기 전에 좀 더 냉정하게 김치의 실용성과 김치에 대한 세계인의 의식을 알아 볼 수는 없을까.


아직도 지동설처럼 대한민국을 세계의 중심에 놓으려는 한심한 인간들이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이라니. 가관인 것은 한국 사람은 김치 아니면 못산다는 그 얼토당토않은 세뇌공작이지. 민족의 동질감이니 공동체 의식이니 하며 음식부터 내세우는데 정말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어. 내 부모들이 매일 똑같은 밥에 국과 반찬을 식탁에 올려놓는 것은 이런 세뇌의 결과인지도 모르지.


도대체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밥과 김치가 주식이 되어야만 하고 국이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다녀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어. 다른 것들은 다 바뀌는데 왜 이 식탁 위의 음식들만은 바뀌지 않는지 말야. 정보의 시대에 인터넷이 가정에 속속 들어와 앉아있는 이 마당에 패스트푸드나 일식이나 양식으로 식사를 할 법도 하잖아.


세계화의 시대에, 개방의 시대에 식탁에 수저 대신에 나이프와 포크를 올려놓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구. 부모들은 언제나 밥과 김치와 된장찌개를 왜 주식으로만 고집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야. 난 집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미쳐버릴 것만 같아.


특히 아빠가 즐겨먹는 청국장과 젓갈이 식탁에 오르기라도 하면 구역질을 참지 못해 화장실로 뛰어가기가 일쑤였지. 언젠가는 엄마가 임신으로 오해한 적이 있었지 뭐야. 구역질을 하며 뛰쳐나가는 나를 보고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어. 한참을 화장실에서 토하고 나서도 여전히 콤콤하고 썩은 듯한 냄새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했지.


그날 난 엄마에게 모진 취조(?)를 당해야만 했어. 요즘 신세대론을 쉴 새 없이 내뱉어대지 뭐야. 하지만 그런 잔소리는 청국장 냄새보다는 쉽게 참을 만 했어. 나는 엄마의 잔소리가 끝나자 청국장 때문에 구역질을 했다고 말했지. 나의 그런 말에 엄마는 의심을 쉬 뿌리치지는 못했지만 임신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안도하는 듯 했어. 하지만 청국장 때문에 구역질을 한다는 그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지.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어. 아마 대한민국의 청국장 옹호론자들은 내게 벼락이라도 내리고 싶겠지.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던 거지.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엄마는 막무가내로 나를 나무라기만 하셨어.


“망할 년, 넌 한국 사람이 아니냐?”


그런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의 식성은 조금도 고려하지도 않고 청국장이다 젓갈이다 된장 등을 식탁에 꾸준하게 올려댄 건 두말할 나위가 없어.


한참 사춘기의 예민함으로 고민하는 나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어. 물론 엄마는 간혹 샐러드나 햄, 샌드위치나 포크커틀릿을 해주시기도 했지만 영 엉성하기만 했지. 샐러드 옆에 된장찌개가 놓이고 샌드위치와 함께 김치를 올려놓고 포크커틀릿에 미역국을 함께 먹어야했으니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었겠니.


난 집에서 밥을 먹을 때면 언제나 다이어트를 핑계로 양을 줄이곤 했는데 이유는 바로 우리의 위대한(?) 주식 때문이었다는 걸 눈치는 챌 수 있겠지. 내가 제일 행복할 때는 말야,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햄버거나 닭고기를 먹으며 천천히 맛을 음미하는 것이지. 물론 스테이크에 와인을 곁들여 먹는 다거나, 아니면 스시에 샤브샤브를 먹거나 이탈리안 식당에서 스파게티나 피자를 먹는 것은 더 행복한 일이지만 흔치 않은 일이라 안타까울 뿐이지. 마치 탈옥한 죄수가 세상의 공기를 호흡하듯이 말야.


난 이런 음식들을 진정으로 사랑해. 찌꺼기가 남아도니, 아니면 밥그릇이다 국그릇이다 반찬그릇이다 하며 그 많은 그릇들이 필요하니. 그러니 설거지가 없어 물이 절약되고 환경에 해로움을 덜 미치지 않니. 이렇게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음식 문화를 난 진심으로 사랑해. 패스트푸드라고 하며 아주 눈을 깔고 대하는 우리나라 음식 옹호 골수분자들은 도대체 이러한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건지 말야. 그저 콜레스테롤 타령이나 하면서 비만이다 고혈압이다 위협과 협박을 해대기만 하고 말야. 무식해도 너무 무식하단 생각이 들어.


대한민국이란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고 그 한국 사람은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나와 있는 법이니. 물론 외식집들이 번창하고 있긴 하지만 가정에서의 한국 음식 집착은 여전하기만 하지. 한국 음식만을 고집하는 고리타분한 부모들의 혓바닥하고는......


어쩌면 난 대한민국이란 땅을 떠날지도 몰라. 그 지긋지긋한 음식문화 때문에 말야. 난 정말이지 청국장 냄새나 된장 냄새, 젓갈 냄새나 김치냄새 따위와는 함께 살수가 없어. 한국 사람 운운하며 동일한 미각을 가질 것을 강요하는 넓게는 대한민국이, 좁게는 부모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니 솔직히 말하면 증오스럽기까지 해.


하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식들과 음식문화를 나 하나 저항한다고 해서 바꿀 수 없는 일이고 보면 개인적인 선택으로 한국 음식을 피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것이 나의 한계이며 우리 10대들의 한계가 아니겠니.


내가 집을 뛰쳐나온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어. 가출이 유일한 대안이었어. 내가 이 나라를 떠나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지. 난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어. 진정으로 말야. 난 패스트푸드를 위해 내 가족을 버렸어.


남들은 내 가출의 이유를 이성문제다 학업문제다 연예인 문제다 뭐 그런 것 따위에 초점을 맞추나 본데 결코 그런 것 때문은 아니었어. 지긋지긋한 밥과 김치와 청국장과 된장과 젓갈 때문이었지. 무엇보다도 청국장이 결정적인 음식이었어. 가출을 하던 날도 말야, 그 역겨운 청국장 냄새를 정말이지 참을 수 없었거든.


이제 그런 지옥으로부터 도피를 했으니 내 마음대로 음식을 선택해서 먹을 수 있어 너무나도 행복해. 다시 말하건대 가출 이후에는 이 나라를 미련 없이 떠날 거야. 청국장과 된장과 김치가 없는 세계로 말이야.  


이랬던 그녀였다. 패스트푸드의 나라 미국으로 이민 후 청국장과 김치와 고추장과 젓갈이 먹고 싶어 거의 미쳐버린 그녀는 한국 음식 예찬론자가 되어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다시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 기회에 그녀의 한국 음식 예찬론을 들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http://kr.blog.yahoo.com/qkrgudwns0118/112

'꽁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꽁트] 아픈 사랑의 노래  (0) 2008.02.17
[꽁트] 거시기를 위하여  (0) 2008.02.16
[꽁트] 바람의 신화  (0) 2008.02.04
[꽁트] 꽁트 선언  (0) 2008.01.31
[꽁트] 거울  (0) 2008.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