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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1 18:21

주방이 아름다운 나라





주방이 아름다운 나라


얼마 전 식당의 위생문제를 고발한 블로그 포스트가 눈에 띄었습니다. 남은 음식 재탕, 삼탕하는 음식점 충격! 이라는 글로 혀나 겅주님 께서 KBS1의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을 근거로 쓴 포스트였습니다. 기성 언론 보다 더 성실하고 가슴으로 쓴 진실한 글이라 판단됩니다. 이번 고발 프로와 관계없이 식당의 위생문제는 공공연하게 떠돌았고 추측은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고발 기사나 프로그램이 과거에도 끊이지 않고 있어왔으니까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식당에서 불쾌한 장면들을 직접 여러번 목격하기도 했으니까요. 식당의 비위생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번 식당 위생에 대한 TV의 심층적인 문제 제기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안전하고 위생적인 먹거리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합니다.  



참고로 아래의 링크는 식당의 비위생적인 현실을 지적한 블로그입니다. 많은 곳을 찾지 못해 두 곳만을 링크해 놓았습니다.  

gundown의 식유기 비위생적인 냉면집들
더시크릿 불만제로 중국산 불량 갈비탕 통조림, 통조림 갈비탕 -식당, 예식장 갈비탕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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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고발에서 특히나 충격과 경악을 느낀 것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광우병 사태와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미국산 소고기의 유통을 실질적으로 육류업자들에게 맡겼고 유통과 거래를 투명하게 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정부의 단호하고 엄격한 정책 시행의 의지를 보여주려는 듯 총리가 세관의 검역소에서 소고기의 냄새를 맡는 사진과 어느 식당을 방문하여 원산지 표시판을 걸기도 했습니다. 이벤트라는 의심을 받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소비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요구했습니다. 사먹지 안으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러고 대통령은 시위하는 사람들도 "소고기를 먹지 않을까 싶다" 고 비아냥거렸습니다.(click!)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무책임한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였습니다. 국민의 건강과 보건, 영양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보장을 해주는 세계적인 추세와 역행하는 처사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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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oasis.seoul.go.kr/wow/



그런데 이런 식당 음식의 재탕, 삼탕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사회가 미국산 소고기의 검수와 유통과 보존 등을 철저히 수행하는 체계가 사회적으로  확립되어 있는지 참으로 참담한 느낌이었습니다. 정부의 여러 조치들이 혹 임기응변식 떼우기가 아닌지 걱정스러워졌습니다. 원산지 표기에서 부터 검역상의 허점, 위법 행위에 대한 조치나 범법행위 등과 관련된 부정과 부패, 또는 탈법과 위법이 얼마나 횡행할지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위법이나 관리 소홀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겠지요.

식당의 위생은 식당 주인의 양심이 1차적인 문제이겠지만 정부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국가나 지자체 차원에서 위생을 생활화하는 시스템과 공무원들이 철저하게 식당의 위생문제를 관리하고 감독한다면 위생상의 문제가 많이 개선 될 것입니다. 물론 주방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비양심적인 행위까지 제재할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식당주인의 의식개혁과 양심 회복을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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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blog.empas.com/stragus/read.ht



식당은 곧 주방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들어진 음식을 보고 먹는 곳은 식당이지만 주방에서 그 음식들이 만들어집니다. 아무리 푸짐하고 먹음직스럽게 보여도 그 음식의 조리과정이나 재료에 비위생적이고 비양심적인 행위가 개입이 되어있다면 그 음식은 보기와는 달리 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식당은 위선적인 공간이 되고맙니다. 푸짐하게 차려 내놓으면서 웃는 웃음 뒤에 비양심이 똬리를 틀고 있으니 말입니다. 속과 겉이 다르다는 표현이 바로 이러한 식당에 그대로 적용이 될 수 있습니다. 주방은 양심적인 공간이 되어야만 합니다. 위생적인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내 가족을 먹인다는 자세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식당주인의 의식개혁과 양심 회복을 호소합니다. 또한 정부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대책을 촉구합니다. (*)

 대통령은 시위하는 사람들도 "소고기를 먹지 않을까 싶다" 고 비아냥거렸습니다.(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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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9 03:01

신 벌거벗은 임금님(2)




신 벌거벗은 임금님(2)

누드우스, 그리고 로라 리웬스키의 음모




“음식이 권력을 뒤엎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또 음식이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는 이 현실 앞에서 그저 먹고만 있자니 가슴이 아프다.”

― 어느 무기력한 귀족의 넋두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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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임금님인 누드우스 임금님은 소의 통 바비큐를 참 좋아했다. 소의 통 바비큐는 소를 통째로 구운 바비큐로써, 줄여서 소통바비큐라고 불렸다. 특히 몬타넬로산 소통바비큐를 제일 좋아했다.


몬타넬로는 수도 조덴스덴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구 15만의 소도시로써 해발 1500m의 에스틸뇨 산이 중앙을 차지하고 이 산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져있다. 이 초원에 15만의 인구보다도 더 많은 30만 마리의 소와 15만 마리의 양들이 방목되고 있으나 또한 737만 마리의 쥐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쥐들이 서식하는 이유는 몬타넬로가 왕국의 그 어느 곳보다도 인공적인 것이 하나도 없는 원형의 자연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박멸도구와 쥐약을 피해 전국의 쥐들이 몰려들어와 서식하게 된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은 몬타넬로산 소통바비큐를 일주일에 4일, 그러니까 월, 수, 토, 일요일마다 보르도산 포도주와 함께 먹기를 즐겼는데 언제나 축제에 가까운 만찬을 베풀었다. 누드우스 왕은 왕궁의 정원에서 몬타넬로산 소통 바비큐를 즐기며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몬타넬로 산 소고기를 백성들은 결코 맞볼 수가 없었다. 가격이 엄청 비쌀 뿐만 아니라 국가에서 귀족용 가축으로 제한하면서 일반 시중의 유통을 철저하게 막았기 때문이었다. 소고기뿐만이 아니었다. 소의 각종 내장과 유제품과 양털 또한 마찬가지였다.


백성들이 소통 바비큐를 먹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목숨을 무릎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50m의 담벼락을 넘거나 암석층을 뚫고 땅굴을 파서 몰래 훔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먹어보는 것이 그야말로 일생의 소원이 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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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http://kr.blog.yahoo.com/openb



이런 이유로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둘러싸고 언제나 소동이 벌어졌다. 담벼락을 넘다 추락사하는가 하면, 땅굴을 파다 매몰되기도 했다. 또한 몬타넬로산 소고기라고 속이고 비싼 값에 가짜 고기를 유통시킨다거나 일반 유제품을 몬타넬로산으로 둔갑시켰다. 귀족들의주변에서는 언제나 썩은 생선 냄새 같은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귀족들이 암암리에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유통시키면서 막대한 부의 축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몬타넬로산 소고기로 인해 민심은 흉흉해지고, 귀족들은 타락해 갔다.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의 실정으로 백성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설상가상 몬타넬로산 소고기까지 그러한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것은 왕국의 존재까지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귀족들 사이에서는 몬타넬로산 소고기 개방이 심각하게 고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누드우스 왕은 단호했다. 그에게 몬타넬로산 소고기 개방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몬타넬로산 소고기 한 번 먹는 것이 소원인 백성들에게 누드우스 왕은 “그까짓 몬타넬로산 소고기 안 먹으면 그만 아닌가! 안먹으려고 노력해라!” 하고 심장에 불사르는 짓까지 하니 백성들의 분노는 조젠스덴의 흐릿한 하늘을 찔러 갈라지게 할 정도였다.


누드우스 왕에게 백성들이란 신하의 확대된 의미에 불과했고 그들의 분노나 원망이란 한낱 이성을 잃은 개망나니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누드우스는 백성이란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일방적인 지시, 명령의 대상일 뿐이었고, 그런 그들에게 소통바비큐 따위는 사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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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r.blog.yahoo.com/openb



그런 사치란 자신과 귀족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한이었다. 백성들이 왕에게 고개를 쳐들고 ‘임금님이 옷을 벗고 있다느니, 옷을 입으라’ 느니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먹고 싶다는 소동에 있었으랴.


이렇게 하루하루 심기가 불편한 일을 당하면서 아무리 똥배짱이 강한 누드우스 왕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누드우스 왕이 마음을 둘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리웬스키 밖에 없었다.


리웬스키는 서글서글한 눈망울에 풍만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리웬스키는 몬타넬로 시 출신으로 얼마 전 죽기 전까지 왕궁에서 집사로 근무했던 우엥 리웬스키의 딸이었다.


우엥은 왕궁에서 빼돌린 몬타넬로산 소고기를 로라가 어렸을 때부터 물리도록 먹였던 탓인지 로라 리웬스키는 몸매가 육중하고 가슴과 엉덩이가 엄청난 글래머였다. 누드우스는 이런 리웬스키의 넒고 깊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들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리웬스키는 누구보다도 권력과 부에 대한 욕심이 강했다. 옷을 벗은 채 흉포하고 잔인하고 엽기적인 짓을 하는 누드우스 왕과는 달리 그녀는 밝은 미소로 예의를 갖추고 남을 배려하는 척을 했다.

누드우스왕이 리웬스키에게 의지하면서 거의 집착에 가까운 신뢰와 애정을 보이자 리웬스키의 권력과 부에 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욕심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탐욕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돌변에는 그녀에 대한 귀족들의 태도도 한 몫을 했다. 누드우스왕이 리웬스키에게 완전히 빠져버리자 리웬스키에게 온갖 아첨과 아부를 하는 귀족들이 하나 둘씩 늘어갔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베게머리 송사가 완전히 먹혀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욕심 많은 리웬스키가 어떻게 제정신을 차리고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자태를 뽐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누드우스 왕이 빠져버린 리웬스키라는 탐욕의 항아리는 그 좁은 입구와는 달리 깊고도 넓었다. 누드우스 왕이 그 좁은 입구를 거슬러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리웬스키라는 항아리는 깊은 늪처럼 끈적끈적했다.


리웬스키는 고고한 척 하면서 몬타넬로산 소통바비큐를 굽는 바비큐 대를 돌리듯 누드우스 왕을 가지고 구워삶기 시작했다. 리웬스키는 누드우스 왕에게 몬타넬로산 소들에 대한 규제를 풀어줄 것을 눈물로 호소하는 척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신뢰하는 리웬스키라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귀족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리웬스키는 이런 점까지 꿰뚫고 있었다. 백성들의 신뢰를 받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었다.


리웬스키는 영향력있는 귀족들을 협박과 회유로 한 사람 한사람씩 그녀의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얼마 뒤 귀족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게 됨으로써 리웬스크가 실질적인 권력의 핵심으로 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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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웬스키는 몬타넬로에 살고 있는 삼촌 오르겐 리웬스키와 오빠 나발 리웬스키에게 자신은 몬타넬로 소의 규제를 풀고자 하지만 누드우스 왕이 완강하게 막고 있다는 사실을 백성들 사이에 퍼트리도록 사주했다.


누드우스 왕에게 분노하고 있던 백성들이 리웬스키의 그러한 숭고한 노력에 감동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입으로 사실들이 전해지던 시대에 오르겐과 나발의 소문 확산은 효과적이었다. 백성들 사이에서 리웬스키는 졸지에 왕국을 지키는 잔다르크가 된 것이다.


백성과 소통 자체를 원하지도 않는 누드우스 왕이 이러한 소문을 접할 리가 없었다. 귀족들 중에 이러한 사실을 왕에게 직언하는 경우도 없었다. 귀족들은 이미 누드우스 왕에 대해 체념한 상태였다.


그저 목숨만이라도 부지해야했다. 누드우스 왕과 함께 벌거벗고 있어야 하는 처지에 대해서조차 벙어리처럼 말 한 마디 못하는 현실에서 그러한 직언은 불가능 일이었다. 또한 리웬스키의 막강한 파워가 현실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게 누드우스 왕을 둘러 친 인의 장막은 ‘누드우스의 담벼락’ 보다도 더 높아만 갔다.


리웬스키가 퍼트린 또 다른 소문은 그녀가 끊임없이 누드우스에게 옷을 입어라고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들불처럼 소문이 퍼져나갔다.

“리웬스키가 누드우스를 인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군.”

“벌거벗은 누드우스에게 옷을 입힐 인간들이 그렇게도 없다니, 리웬스키보다도 못난 인간들이군.”

“저 왕궁에 벌거벗은 짐승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왕국의 수치가 아니겠나. 왕궁이 아니라 인간 동물원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듯하네. 그나마 리웬스키가 동물원의 조련사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군 그래.”


백성들은 ‘누드우스의 담벼락’ 과 ‘인의 장막’ 에 둘러싸인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에게 리웬스키가 옆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나날이 리웬스키에 대한 칭송은 늘어갔고 이와 반비례해서 누드우스 왕은 몰락해갔다.


리웬스키에 저항하던 귀족들조차  마침내 흔들리면서 그녀에게 손바닥을 비비기 시작했다. 누드우스는 허물뿐인 존재였고 리웬스키는 실제적인 권력자가 되었다. 심지어 누드우스의 친위대가 리웬스키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하기까지 했다.이로써 누드우스 왕의 수족은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이러한 과정에 이르기까지 누드우스 왕은 완전히 무기력했는데 이것은 리웬스키가 몬타넬로산 소통 바비큐에 섞어 넣은 약 때문이었다. 그 약은 누드우스의 판단력을 마비시켰다.


정치적으로 백성들과 귀족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육체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누드우스 왕은 이렇다 할 변변한 저항 한 번 하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거나 습관적으로 집무실에서 엽기적인 행위들로 소일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 보잘 것 없는 시녀 로라 리웬스키의 사사로운 음모가 왕국의 권력을 교체하는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이름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는 개인들 각자의 몫이다. 그것은 단일한 의미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나도 다의성을 갖는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세계사에 로라 르웬스키의 음모와 왕위식이 기록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평가의 다의성에 기인하는 듯하다.


벌거벗은 임금님 누드우스 왕은 이렇게 리웬스키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백성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그들의 삶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시적인 분노와 원망의 감정 해소였을 뿐이었다.


얼마간 야만과 흉포의 시대가 사라진 듯이 보였으나 더욱 교할하고 위선적이며 가식적인 로라 리웬스키, 자칭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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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의 탄생과 함께 유일하게 백성들에게 돌아간 혜택이 있다면 몬타넬라산 소들을 가두고 있던 담과 철망들이 제거되고 몬타넬라산 소통바비큐가 백성들에게 일상적인 음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이 개인적으로 소고기에 물려 더 이상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이러한 몬타넬라산 소고기의 규제 완화 조치는 고도의 정치적인 음모가 깔려있었다. 그것은 몬타넬라산 소통 바비큐에 신경 완화제를 주입하여 백성들의 정치적인 의식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몬타넬라산 소고기와 소통 바비큐가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 또한 로라 엘리지아 1세 여왕의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이 사실을 백성들은 모르고 있었다.


백성들은 오늘도 힘든 노동 뒤에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집으로 돌아와 무표정한 모습으로 식탁 위에 놓여진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먹었다.
(2008.8. 7.07:14)
 
*제일 위 사진 출처: http://kr.n2o.yahoo.com/NBBS

신 벌거벗은 임금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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