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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21:44

독일이 선전용으로 만든 <타이타닉>(1943년)





이 영화는 실제 타이타닉호의 인명 손실 보다 훨씬 더 컸던 2차 대전의 마지막 주에 침몰한 여객선인 JJ Cap Arcona호의 선상에서 촬영되었다. 구명보트들의 장면들은 발틱해(the Baltic Sea )에서 촬영되었고 실내 장면들은 토비스 촬영소(Tobis Studios)에서 촬영되었다.

타이타닉(1943)은 그 당시까지 가장 많은 액수가 투자된 독일 작품이었으며 관계자들의 의견 충돌, 메우기 힘든 제작상의 이견들과 전반적인 전시상황의 어려움 등을 포함하는 많은 제작상의 어려움들을 겪었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로 인해 조셉 괴벨스(Joseph Goebbels)는 반역 혐의로 감독인 헤르베르트 셀핀(Herbert Selpin)을 체포하여 바로 그 다음날 그에게 자신의 선실에서 목을 매 죽으라고 명령한다. 통제를 벗어나 거칠게 소용돌이 치던 이 미완성의 영화는 마침내 베르너 클링글러(Werner Klingler)에 의해 완성이 된다.



1943년 초에 영화가 개봉 예정이었으나, 초벌 프린트(the answer print: 완성 작품으로서 감상에 사용되는 최초의 영화 프린트)를 보관하고 있던 극장이 상연 전날 밤 폭격을 당한다. 필름은 같은 해의 크리스마스 쯤 파리에서 활기 없는 개봉을 하기 위해 옮겨지지만, 결국은 괴벨스가 상연을 금지한다. 그러한 판단은 연합군의 야간 폭격을 겪고 있는 시점에서 독인 국민들이 대규모의 죽음과 공포를 묘사하는 영화를 보는 걸 그다지 바라지 않으리라는 이유에서 였다. 타이타닉은 1949년에 다시 발견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즉시 상영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그 영화의 혹독한 반 자본주의적인 진술과 매우 관련이 깊은 소련(Soviet) 관객들로 인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50년대 이후, 때때로 독일의 텔레비전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타이타닉은 잊혀져 갔다. 그러나 1992년에 검열 받은 저화질의 VHS 복사본이 독일에서 발매가 되었다. 이 버전은 가장 혹독한 선전 장면들을 삭제 하였는데, 이것은 논쟁적인 내용들을 아주 완화시켰다. 마침내 2005년에는, 타이타닉이 완전히 복구가 되어, 최초로, 무검열 버전이 키노 비디오사(Kino Video)에 의해 DVD 특별판으로 발매되었다.

2. 구성

영화는 화이트 스타 주식 소유자들(the White Star stock holders)에게 주식이 폭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화이트 스타의 회장은 타이타닉호의 처녀 출항 동안 주식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비밀을 밝히기로 약속한다. 그는 타이타닉호가 속도에서 세계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거라고 혼 자 알고 있고 그것이 주식의 가치를 올려놓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와 화이트 스타의 이사회는 더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재구매 하기 위해 심지어 그들 자신의 주식을 매각함으로 주가를 낮추려고 계획한다. 그들은 타이타닉호의 신기록 속도에 대한 뉴스가 언론에 발표되기 바로 직전에 주식을 재매수하기로 계획한다.



자본주의 문제와 주식 시장이 영화 내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1912년 영국의 타이타닉호의 불행한 운명의 항해에 승선한 가상의 독일인 일등 항해사인 페테르손(Peterson)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연기한다. 그는 배의 부유한 속물적인 소유주들에게 배이 속도를 늦추도록 호소하지만, 그들은 거부하고 타이타닉호는 빙하와 충돌하고 침몰하게 된다. 항해사 페테르손과 삼등 선실의 몇 몇 독일인 승객들은 용감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반면에, 부유한 자들은 아주 천박한 겁쟁이들로 묘사된다. 페테르손은 많은 승객들을 가까스로 구출하고, 그의 연인에게 구명보트로 오르도록 설득하고(1997년 영화에서 훌륭하게 모방된 바로 그 장면에서) 돌보지 않고, 냉정한 영국인 자본주의자인 엄마에 의해 선실에 남아 거의 죽어가는 어린 소녀를 구한다. 이 영화는 대부분의 타이타닉 침몰과 관련된 개작들이 그런 것 처럼, 보편적인 인간의 오만과 뻔뻔스러움에 대해서 보다도 오히려 특정하게 영국의 탐욕에 대해 타이타닉의 침몰을 알레고리로 삼고 있다.


이미지 출처:http://en.wikipedia.org/wiki/Titanic_(1943_film)


이 영화는 타이타닉 필름들의 모든 “고전적인” 장식물을 포함한다. 수많은 부차적 줄거리들이 탐욕, 오만, 불운한 연인들, 풋사랑, 비운의 배 위에서 다시 만나는 옛 애인들, 그리고 한 아내가 불행한 정기선에 그녀의 남편을 남겨두려는 것을 거절하는 강력하고 극적인 장면을 가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면이 근거하고 있는 실제의 커플은 유대인었는데, 이 1943년 독일 영화에서는 설명되지 않은 사실이었다.

제일 아래의 사진을 제외한, 위 모든 이미지들의 출처는 http://www.jimusnr.com/Titanic1943.html 입니다.
윗글은 http://en.wikipedia.org/wiki/Titanic_(1943_film) 을 우리말로 서툴게 직역한 것이므로 어법상, 의미상 잘못된 부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역이나 잘못은 댓글로 남기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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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4 20:21

유대인과 집시

 

일본의 전후( 2차 유럽 대전후) 처리에 대해 그 피해 당사자인 우리는 유대인들에 대한 독일의 피해 보상, 역사적 인식 등을 비교하면서 일본 정부의 비인간적이고 몰역사적인 태도에 강한 분노를 표출한다. 전후 일본의 터무니 없는 피해 보상과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 왜곡, 성노예 할머니들에 대한 인격적인 모독 등 반성은 커녕 자국의 역사를 오히려 미화하는 짓을 서슴치 않고 있다.

독일의 경우 전대미문의 유대인 대학살을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측면에서 그들 스스로도 유대인들에 대한 보상과 전범 처리, 역사인식등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인류에게 유대인 대학살은 살아있는 역사이며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독일이 근본적으로 일본의 전후 태도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니요이다. 독일 또한 일본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무엇이 독일과 일본의 태도를 다르게 했을까?

우선 하나의 실례로 유대인과 한국인(피해 당사국을 한국으로 국한)이란 차이를 들 수 있다. 유대인은 어떤 민족인가? 올해 5월 14일로 건국 60주년을 맞이한 이스라엘을 세운 민족이 아닌가? 유대인의 선조 헤브라이 인이 B.C. 15세기 경에 팔레스티나에 나라를 세운 후 분열과 박해와 추방을 당하며 전세계를 떠돌다 19세기말 시오니즘 운동이 전개되면서 다시 팔레스티나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국과 미국의 정계를 움직일 수 있었던 그들의 경제력과 시오니즘이라는 종교적인 결집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미국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의 영향력은 미국의 대 이스라엘 정책을 보면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전세계적인 유대인 리스트



Ruth Bader Ginsburg







Henry Kissinger

Jon Stewart



Steven SpielbergBarbra StreisandJon Stewart
Norman MailerMichael BloombergAlbert Einstein
Scarlett JohanssonRuth Bader GinsburgMel Brooks
Louis BrandeisHank GreenbergMilton Friedman




이에 비하면 한국은 가난한 아시아의 변방국에 불과했다. 유대인들과 비교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약소국의 현실을 안고 있었던가? 비유하자면 팔레스티나 아랍인들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과 영국이 팔레스티나 아랍인들에게 했던 처사와 일본이 우리에게 한 천후의 태도의 본질은 곧 강자의 약자에 대한 잔인한 태도 인 것이다.

독일인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피해 보상과 깊은 뉘우침은 실상은 유대인이 강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판단되며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일본이 우리에게 아직도 역사왜곡을 일삼는 비상식적인 태도는 바로 우리가 약소국이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역사적인 인식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박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유대인이 강했던 어떻던 독일은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충분한 보상과 역사적인 인식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근본적으로 일본이 전후 보상과 역사인식은 독일과는 근복적으로 다르고 양심적이라고.

 그러나 전후 보상에 대한 독일인의 양면성을 알게 된다면 독일 또한 일본의 태도와 다르지 않으며 유대인들에 대한 피해 보상은 유대인의 능력이 유발한 것이지 독일인의 근본적인 반성에서 나왔다는데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집시들에 대한 독일인들의 전후 보상으로 볼 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주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유대인과 집시에 대한 독일의 야누스적인 전후 보상과 태도는 독일의 뻔뻔스러움을 여지 없이 보여준다.

Gypsy costumes



우선 집시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유럽에서 집시에 대한 명칭의 유래는 세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이집트 인(Egyptian)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영어의 gypsy, 프랑스어의 gitan, 에스파냐어의 gitano(히타노) 등을 들 수 있다. 두번째는 중세 그리스어의 아팅가노이(이교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독일어의 치고이네르, 프랑스어의 치가느(tsiganes) 등이 그 예이다. 세번째는 15세기 보헤미아 왕이 집시에게 영내 통행권을 부여한 것에서 보헤미안(bohemian)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정작 집시 자신들은 스스로를 롬(Rom) 이나 로마(Roma)로 부른다.

이 로마들이 나치스에 의해 학살된 숫자가 50만에서 70만에 이른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아마도 600만명 이라는 상상하기 끔찍한 유대인 학살이 이러한 숫자를 가리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50~70만명이라면 실제로 상상하기 끔찍한 숫자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집시에 대한  보상은 유대인들에 대한 피해 보상에 비해서 터무니 없다. 독일의 전후 보상법은 유대인들을 중점에 두었으며 그 보상액도 유대인들에게 집중되었다. 1981년에 집시와 동성애자등을 대상으로 하는 '비유대계 피박해자 특별기금' 으로 약 1억 마르크, 우리나라 돈으로 500억원이 조성되었는데 이 액수는 1991년까지 1월까지 유대인 희생자들에게 지급된 864억 마르크에 비하면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였다. 이러한 집시에 대한 독일의 태도가 곧  전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태도와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독일의 전후 보상이나 역사인식이라는 것은 일본과 비교해도 오십보 백보에 불과한 것이다.

독일의 유대인 보상의 전례를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전후 보상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로 들먹인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독일 또한 일본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일의 태도는 집시 학살에 대한 독일의 태도가 분명하게 입증하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어느 나라던 비극을 피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으로, 군사력으로 강하고 보아야 한다. 



*이 글은 이전 히틀러와 집시라는 글로 소개한 글이지만 이번 이스라엘의 팔레스티나 침공을 목격하면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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