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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녹차의 맛

by 컴속의 나 2009. 3. 15.





이미지 출처:http://www.koreafilm.co.kr/movie/review/nokcha.htm



녹차의 맛

녹차의 맛을 한 편의 영화로 표현한다면 어떤 영화가 될 수 있을까?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녹차의 맛을 어떻게 우려 낼 수 있을까? 녹차의 맛은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떫고 쓴맛이 나다가 달콤하고 짠맛이 나기도 하는 오묘한 맛이랄 수 있다. 한마디로 인공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의 맛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녹차의 맛이 단순히 차 잎에서 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녹차의 맛을 단순히 미각적인 테두리로 설명하는 것은 부족한 구석이 있다.


자연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차는 필수적이지만, 또한 녹차를 마실 수 있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하고, 녹차를 우려내기 적합한 적당히 뜨거운 물이 빠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구운 다기(茶器)도 있어야 하며, 녹차의 맛을 함께 음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다. 아니 혼자여도 좋다.


그러니 녹차의 맛은 이성보다는 감성적이며 분주함보다는 여유로움이며 외면적인 표현이기 보다 내면적인 성찰이요, 채움보다는 비움이고 번잡함보다는 단순함이다. 그래서 녹차는 도시의 빌딩과 자동차와 도로보다는 자연의 나지막한 집들과 들판과 오솔길이 더 어울린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 보다 크고 느리게 돌아가는 페리스 휠과 어울린다.


이제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녹차의 맛을 한 편의 영화로 표현한다면 어떤 영화가 될 수 있을까?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녹차의 맛을 어떻게 우려 낼 수 있을까? 그것은 결국 은은한 사람들의 맛이고 오묘한 삶의 맛이 될 것이다. 녹차의 맛처럼 미각적으로 오묘하며 정서적으로 감성적이며 내면적이며 단순하고 자기 성찰적인 사람들의 따뜻하고 은은하며 고요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며 비명을 질러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페리스 휠을 타며 조용히 자연을 관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하나하나의 차 잎들이 모여 오묘한 맛을 내듯이 여러 개인들이 모여 삶의 쓰고, 떫고, 달고, 슬픈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보여주는 삶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짙은 커피향에 익숙한 이들에게 녹차의 맛은 너무나 무미건조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액션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야기에 익숙한 이들에게 녹차의 맛은 자극과 재미가 없는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녹차의 맛은 아득한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본질적인 맛이라는 것이다. 인공의 미각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마음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서 그 내면을 성찰하도록 하게 하는 맛이라는 것이다. 성찰이란 말 자체도 번거로울 정도로 비움의 맛이라는 것이다.


녹차의 맛을 위해 대가족의 구성원들을 주된 등장인물들로 설정한 것은 참 적절한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관계 중에서 가족처럼 본질적인 관계가 어디에 있을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알고 있는 그대로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관계가 또 있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지막까지 지켜져야 할 가족조차 그 본질적인 관계가 해체되고 있는 현실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다. 의도가 개입되고, 자본이 개입되고, 사회적인 체면이 개입되면서 가족의 관계도 갈등을 겪으며 허물어지고 있다. 자식의 영어 공부를 위해 ‘기러기 아빠’ 가 되고, 때로 외로움에 자살을 하는 비극적인 아버지의 모습. 자식들로부터 버려진 노부부의 모습. 자연적이고 건강한 성장통을 겪으며 자라나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공부와 과외에만 시달리며 맹목적으로 내달려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 맛으로 따지자면 가족의 본질적인 맛을 상실하면서 인공적이고 비본질적인 맛이 색소처럼 자극을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녹차의 맛>의 가족 구성원들은 녹차 잎에서 우러나오는 불립문자의 오묘한 맛처럼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성장통을 겪으며, 성인들은 성인들대로 나름의 상처와 고통과 기쁨 등 틀에 박힌 일상에서도 삶에 체념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녹차의 맛 같은 은근한 맛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녹차의 맛>은 본질적인 가족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보도록 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대가족으로 형성된 <녹차의 맛>의 가족들은 그래서 우리에게 깊은 의미, 녹차의 맛으로 다가온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바로 이 대가족과 그 구성원들의 삶을 통해서 인간의 삶과 관계와 그리고 더불어 자연과 인간의 관계(녹차의 맛을 음미하는)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