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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꽁트] 어떤 이별식

by 컴속의 나 2008. 3. 14.


 

어떤 이별식


슬프군. 그래도 내 곁에 제일 오래 머물러 준 존재인데. 언제나 이별은 있기 마련이지. 말 좀 해봐. 언제나 대화가 이렇게 일방적이니 쉬 입을 열기도 거북스러워, 알겠니. 하지만 오늘은 다르기도 해. 네가 입을 여는 건 더욱 힘들 테니. 넌 내게 너무나도 충실했어. 넌 언제나 나를 허락해 주었고 내 지친 육체와 영혼을 쉬게 했지. 그건 말야, 정말이지 쉬운 노릇이 아닌데 말야. 넌 언제나 성급하고 무지막지한 나의 삽입에도 고통의 신음소리 한번 내지르지 않았고, 너를 발악적으로 짓밟을 때조차도 언제나 순종적이었어. 뭐냐 말야! 되돌아보니 난 너의 그런 모습에서 사디즘을 느끼고 있었어. 왜 나를 그토록 가학적으로 만들었니. 왜 그토록 나를 잔인하게 만들었니. 너의 자학적인 쾌감 때문이었니. 그런 순종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기라도 하려는 거니. 젠장. 다른 여자들과의 정사(情事)의 장면을 목격했을 때조차도 넌 그 흔한 질투 한 번 보이지 않았어. 세상에 널려있는 그 불평 한 마디조차도 내뱉지 않았어. 왜 그랬어.


― 미친 놈, 지랄하는 군.


봐, 지금 우리 곁을 지나가는 저 녀석의 목소리가 들리지.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저런 병신 같은 자식이 지 부랄 만지듯이 끼어드는 것 봐. 옆에 끼고 있는 계집애가 불쌍하군......세상은 이런 곳이란 말야. 저 따위 인간도 저토록 쉽게 욕설을 내뱉는데 하물며 내게 그토록 시달려온 넌 원망은커녕 불평 한마디 없으니 어쩌면 저 병신 같은 놈이 한 욕설은 너를 향한 욕설인지도 몰라. 세상은 순수 하나로 살아갈 수 있는 천국이 아냐, 알겠니. ’순수‘ 는 ’지랄‘ 이란 말처럼이나 관념적일 뿐이야. ’지랄 같은 놈’ 은 존재할 수 있지만 ‘지랄’ 이란 말은 그저 관념적인 용어일 뿐이지. 마찬가지로 순수 그 자체는 존재할 수 없단 말야. 그런데 순수 그 자체로 존재하려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거니. 존재할 수 없는 것을 붙들려는 거냐. 그런 너야말로 미친년이야. 알겠니. 제기럴. 지금이 조선시대인줄 아니. 나도 한때 아주 복종적이기만 한 여자를 찾아 헤맬 때도 있었지만 그건 시대 착오였어. 


― 지랄. 철학자군, 철학자. 뭘 잘못 처먹었나.

 

그래 얼마든지 비웃어라. 개자식들아......난 네 몸매처럼이나 네 마음이 조금은 교활하고 음탕할 줄 알았지. 섹시한 네 몸매만큼이나 섹시하길 바랬지. 헌데, 그게 아니었어. 네 몸매와 마음은 따로 놀았어. 처음엔 아주 획기적인 유물을 발견한 고고학자처럼이나 흥분 속에 휩싸이며 끝없는 오르가즘에 빠지기도 했고 그런 네 몸매를 내 뜻대로 맡겨버리는 그 완전한 순종에서 백치미의 매력을 느끼기도 했었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백치미가 아니었고 따라서 매력도 아니었어. 약간은 멍청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그런 백치미가 아니었던 거야. 사실 넌 너무나도 완벽했고 정확하기만 했어. 그저 백치처럼 눈감아 주었을 뿐이었지. 무수한 내 오입질과 너에 대한 가학을 넌 마치 남의 일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어. 그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 그렇게 다가왔기에 신기함을 느꼈을 뿐 더 이상의 도발적이고 육욕적(肉慾的)인 쾌감을 느낄 수는 없었어.


― 사랑은 쓰고도 쓴 법이지. 알만해. 쯧쯧.


자식, 꼴값을 떠는 군. 사랑을 종류별로 다 해봤다는 말투 군. 하긴 사랑이 쓸 때도 있지......말 좀 해봐. 솔직히 난 너의 그 몸매를 원했어. 너의 몸매만 봐도 난 오르가즘을 느낄 지경이었지. 그 나이트 앞에서 널 처음 보았을 때 난 널 정복하고 싶었어. 네 시선으로 스쳐 가는 너의 몸매, 그 몸매 때문이었지. 솔직히 뭇 사내들의 하룻밤의 ‘등정’ 과 ‘정상 정복’ 스토리와 다름이 없었지만 말야. 난 숱하게 많은 여자애들과 사귀고 있었고 그저 너의 그 몸매가 시선으로 들어왔을 뿐이긴 했지. 처음처럼이나 네 몸매 때문이긴 했나봐. 길어봐야 3개월을 넘지 않은 여자애들과의 관계를 본다면 1년이나 넘게 지속된 너와의 관계는 정말이지 너의 그 몸매 때문이었던가 봐. 괜한 칭찬이군.


― 여자 몸매, 왝--. 그거 참 좋은 거지 좋은 거, 왝왝---. 태액시---따따불---.


많이도 취했군. 몸매란 말은 들리는가 본데 집으로 곧장 가셔......하지만 널 만나고 너의 속마음이라고 할까, 성격이라고 할까, 아무튼 널 깊이 알면서부터 네 그 위선이 너무나도 싫어졌어. 네 몸에 올라타 짓밟을 때도 넌 지아비 마냥 정성을 들이기만 했고 어떤 반대 급부도 원하지를 않았어. 다른 계집들은 어떤지 알잖아. 언제나 흥정이지. 흥정 말야. 사랑이란 말을 지껄일 때조차도 흥정일 뿐이었지. 돈으로 처발라주어야 사랑이란 말을 반대급부로 내뱉어 주었지. 원래 그런 게 사랑의 공식 같은 것이었어. 그런데 넌 그게 아니었단 말야. 알겠어. 그저 주기만 하고 베풀기만 했지. 순종하기만 했어.


― 야, 뭘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냐. 네 차와 이별식이라도 치르고 있는 거냐? 오, 이제 몸매가 끝내주는 네 차 드디어 내게 넘어오는 구나. 흐흐흐. 1년이면 폐차 아니냐. 


녀석이 30분 빨리 도착했군. 녀석의 모터 싸이클과 널 맞바꾸기로 했어. 이젠 제발 녀석에게 위선을 떨지마, 제발. 알겠니. 오늘 마지막 너와의 이별을 위해 이별식처럼이나 긴 대화를 나누었군. 그럼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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