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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있는 꽁트] 원더풀 투나잇

by 컴속의 나 2008. 10. 19.

원더풀 투나잇


강아지 한 마리가 도로 위에 쓰러져 있었다. 죽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신호에 걸려 있는 동안 건널목 중앙선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강아지를 내려다 보았다. 나는 강아지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면서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렸다. 언제나 그렇듯이 출근길은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일찍 집을 나와 일찍 직장에 도착하는 여유로움을 누리기에는 나의 아침은 분주하고 여유가 없었다.

그것은 야행에 길들여진 나의 생활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직장을 다녔지만 나 혼자 가질 수 있는 밤의 시간을 즐겼다. 영화를 보고, 소설이란 걸 끌쩍거려 보기도 하고, 책을 보면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은 그 무엇보다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방해하는 것들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 그것은 더 없는 행복이었다. 독신을 고집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힘든 생활이었다. 두, 세 시간의 잠으로 직장생활을 견딘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다. 짧은 잠을 깨우는 아침은 결코 반가울 수가 없었다.

시간에 맞추어 도착해야 하는 직장이 있었고 직장은 내가 한 눈을 파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출근길에선 나는 앞만 보고 달려야 했고 간혹 나의 차를 추월하려는 뒤차를 위해 백미러를 보아야 했다. 직장을 향해 나는 습관화된 몸놀림으로 핸들을 돌리고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밟고 경적을 누르고 주위를 살폈다. 나는 도로 위에서 긴장해 있어야만 했고, 신호등은 때때로 나를 불안하게 만들곤 했다. 혹시 빨간 신호가 바뀌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에......하지만 10년 동안의 직장 생활 동안 신호등이 그렇게 고장이 난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만약 한 번이라도 신호등이 고장 났더라면 아마도 나는 신호등이 고장이라는 핑계를 대고 어디 다른 곳으로 핸들을 돌렸을 지도 몰랐다.

아직 신호등은 빨간 불이었고 사람들은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다. 강아지는 움직임이 없었다. 힘없이 늘어져 있는 강아지의 시체는 도로 위에 버려진 쓰레기처럼이나 불필요하게 보였다. 건널목 신호등의 파란 불이 깜빡거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더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클러치를 밟으며 기아를 일단으로 위치시키는 동안 강아지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정말이지 귀엽게 생긴 강아지였다. 잘 다듬어진 옅은 갈색의 털은 아침 햇살에 반들거렸다.



*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긴장에서 해방된 여유가 있었다. 직장 동료나 학교 동창들과 함께 술자리를 즐긴다거나 혼자 극장에 들러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여유 같은 것 말이다. 보이지 않는 끈이랄까, 뭐 그런 것으로부터 풀려나는 느낌이었다. 퇴근길도 출근길 못지않게 차들의 정체가 심했지만 집으로 향한다는 여유로움은 직장으로 향하는 마음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확실히 아침에 잡았던 핸들보다 각도 선택의 폭이 넓었다. 나는 어디로든지 핸들을 돌려 원하는 곳으로 갈 수가 있었다. 고속도로를 달릴 수도 있었고, 국도를 달릴 수도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던 하거나 어디로든 갈 수가 있었다. 해변의 모래사장을 거닐 수도 있었고, 산의 숲 속을 거닐 수도 있었다.

나는 아침에 보았던 강아지 같은 것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기억 할 필요도 없었다. 대수롭지 않는 사고였을 뿐이었다. 보통의 하루가 다 그랬다. 자질구레한 것들은 기억의 저장고에 오래 머무르게 해선 안 되었다. 나는 가능하면 정신과 육체를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부족한 잠 때문이라도 느긋해질 필요가 있었다.

여유로운 퇴근길이었지만 나는 동료들이 함께 하자는 술자리를 거절하고 일찍 집으로 들고 싶었다. 오후부터 나에게 엄습한 미열(微熱)과 두통 때문이었다. 잠을 실컷 자고 싶었다. 나의 경험상으로 미열과 두통은 부족한 잠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내게 잠은 모든 자유 중에 최고의 자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죽음 같은 잠을 잔다는 것은 나에겐 행복이었다. 세상 모든 것 접어두고 잠을 자고 싶을 때는 그냥 잠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나는 오직 달콤한 잠을 위해 달콤하게 핸들을 움직였고 달콤한 음악을 듣기 위해 카스테레오를 틀었다. 시계가 오후 여섯 시를 가리켰다. 라디오의 FM에서 팝 음악을 들려주는 프로 ‘6시 팝송’ 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DJ의 미성이 음악처럼이나 감미로웠다. 도로 위였지만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집으로 향하고 있고 감미로운 음악이 있는 이 시간이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아침의 그 신호등에 다다랐을 때 다시 나의 시선으로 강아지의 모습이 들어왔다. 하지만 나의 동공에 박혀든 것은 원래의 강아지의 형체를 상실해 버린 강아지 같은 그 무엇이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던 옅은 갈색의 털은 피로 얼룩져있었다. 아침과는 달리 강아지의 형체는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그 귀엽던 형체는 사라지고 일그러진 괴물체처럼 도로를 더럽히고 있을 뿐이었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강아지 위를 밟고 지나갔던 것이다. 나는 다시 아침과는 반대편에서 완전히 일그러져 형체조차 알기 어려운 강아지를 내려다보면서 집으로 빨리 달려가고 싶어졌다.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고 간단한 저녁을 먹고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신 뒤 깊이, 깊이 단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라디오에선 ‘원더풀 투나잇’ 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에릭 클립튼 <Wonderful To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