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늦게 목욕탕을 가서 혼자서 목욕을 하는 경우가 있다. 목욕탕 문을 닫는 시간이 가까워져 마지막으로 혼자 남거나, 이상하게 목욕탕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그날도 그런 경우였다. 한 사람 두 사람 빠져 나가면서 나 혼자만 남았다. 혼자일 때는 부담스러웠다. 마칠 시간도 아니고 나가야 할 이유도 없건만,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듯이 괜히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벗겨내어야 할 몸의 때는 많이 남았는데 이런 경우가 생기면 때에 대한 집착 보다는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텅 비어 있어야 할 곳에 불필요한 존재처럼 혼자 있어야 한다는 몹쓸 생각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다행이었다. 내가 머리를 감고 있는데 욕탕문 여닫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면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렸다. 비록 욕탕문을 등지고 앉아 머리를 감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내게 마치 구원소리처럼 들렸다. 순간 나는 마음이 편해져 왔다. 다시 때를 편하게 벗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희망에 다시 부풀었다. 내가 머리를 두 번 감고 있는 동안 그는 잠시 몸에 비누칠을 하고는 탕 속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발길질로 생긴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내가 머리를 들고 뒤로 힐긋 돌아다보니 그는 욕탕에 머리만 내놓고 굵은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으흐......으흐......시원타! 으흐......”
그가 하는 느릿한 신음소리로 보아 금새 목욕탕을 나갈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머리를 감고 나가려는 생각을 접고 몸에 비누칠을 한 후 다시 한 번 몸 구석구석을 때밀이타올로(흔히 이태리타올이라고 했다. 패션의 도시 이태리라는 이름을 따온 명품 전략일 것이다.) 훑을 작정이었다. 국산이지만 프랑스 왕조의 이름을 딴 부르봉 비누로 막 몸을 씻었으니 이태리타올은 격이 맞는 조합이었다. 그러나 고상한 부르봉 비누에 이태리 타올과는 걸맞지 않게 때는 스파게티 면발처럼 줄기차게 흘러내렸다. 고시 공부를 한답시고 골방에만 처박혀 법전에만 몰두하다 보니 몸에는 때가 쌓여 갔던 것이다. 오늘 1차 시험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고 밀린 때부터 밀어야 했던 것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일종의 징크스처럼 되었다. 1차 시험 한 달 전까지 목욕을 하지 않았고 합격자 발표가 날 때까지 또 미루다 합격자 발표가 나면 바로 목욕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 도합 2개월여 동안 목욕을 하지 않고 지낸 것이다. 사법고시가 무엇인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나의 삶이었다. 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의식 없이 움직이는 마네킹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해 라고 하다가도, 사법 고시에 걸리고 나선 봐라! 떵떵거리며 살 수 있지 않겠는가! 누가 뭐라고 하던, 나는 내 신념대로 살 것이다! 떵떵거리면서! 사실 사회와 국민들을 위한 공익적인 기여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기여를 더 기대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공공의 적이라고 비아냥거림을 받던 나는 떵떵거리며 살것이다! 어쩌겠는가, 그것이 솔직한 심정인 것을! 세상에 밟히고 있다고 믿고 있는 그 때의 비뚤어진 심정이었던 것을!
부지런히 때를 벗기며 잡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의 등 뒤로 욕이 튀어 나왔다.
“개새끼들! 검사놈들이 더해요, 더해! 어이쿠, 얼굴에 기름기 좔좔 흐르는 그 미친 새끼는 또 어떻고!”
나는 고개를 돌려 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검사라는 말에 나의 호기심이 약간 발동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검사 새끼라니! 그 혼자 중얼거림이 상승작용을 일으켰는지 나는 자신이 마치 검사의 신분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모욕을 당한 느낌이었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목만 내밀고 있는 그의 입에서 다시 짧은 욕설이 튀어 나왔다. 개새끼들! 쓸어버릴 종자 새끼들! 이번에는 그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눈이 옆으로 쫙 하고 찢어진 눈매가 너무 잔인해 보였다. 내가 급히 고개를 돌리며 물통을 들고 욕탕물을 푸는 시늉을 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어이 이봐, 뭘 봐 하는 몸짓으로 말이다. 시비조의 눈초리였고 몸짓이었다.
내가 사타구니를 씻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그가 언제 내 쪽으로 걸어왔는지 그의 발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애써 태연 한 척을 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발을 거쳐, 사타구니와 거시기를 거쳐, 배로 가슴으로 내 시선이 도달하는 순간 내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온몸의 문신 때문이었다. 그것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너무나도 컬러풀한 문신이었다. 꾀죄죄한 문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품격 높은 문신이었다. 발에 휘감겨 올라가던 두 마리의 용이 짧은 발로 허리를 박차면서 한 마리는 가슴 쪽으로, 다른 한 마리는 등 쪽으로 용트림을 하는 문신 같았다. 나는 용 문신을 따라 마침내 어깨와 목 위에 놓여져 있는 얼굴에 시선이 멈추었다. 뺨을 따라 길게 그어진 칼자국이라니! 내 심장은 계속해서 더욱 더 강하게 쿵쾅거렸다. 그에게서 강하고 역겨운 알코올의 냄새가 퍼져왔다. 그는 오른손으로 면도기를 들고 있었다. 술김에! 정말 불길한 예감이 소름처럼 온몸 구석구석 세포 하나하나로 퍼져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도 사람을 죽이는 잔혹한 세상이지 않는가! 온갖 시나리오가 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칼 휘두르는 게 애들 장난 같겠지…… 나 하나 죽이는 것 뭐 대수일까, 쥐도 새도 모르게 …… 하는 생각이 미치자 사지가 떨려오기까지 했다.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구나.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게는 까마득히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렇게 자책하면서 여차하면 벌거벗고 라도 목욕탕 밖으로 뛰쳐나갈 작정이었다.
‘잘못 걸려들었어! 눈알을 깔지 않고 시선을 마주친 것이 실수였어!’
그가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내 앞에 털썩 주저앉고는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 이건 또 뭔가? 나는 예측 못한 그의 행동에 다시 깜짝 놀랐다. 아니 오히려 맥없이 긴장이 풀렸다. 내 표정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새꺄, 표정 풀어. 똥씹었어, 라고 말을 한 것으로 보아 나는 아주 멍한 표정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내게 오래 동안 반말을 해온 것처럼 내게 가래를 뱉듯 툭툭 반말을 뱉어내었다.
“별 희한한 새끼 다 보겠네, 어이 몸에 문신 처음 봐. 등에 때 좀 밀어!”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들고 있는 면도기 때문에 더욱 위축이 되었다. 변병 같이 들리겠지만 나는 그 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어디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이 말이야 말로 그 당시의 나를 표현하는 이 세상에 가장 적절한 표현이리라. 물론 알고 있는 표현이 그것 밖에 없어서 이지만. 나는 그의 화려한 문신 등짝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야, 야, 더 세게 문질러봐!”
나는 좀 더 세게 문질렀다. 용이 나를 노려다 봤다. 이태리타올로 문지를 때 마다 세밀하게 그려진 비늘 하나, 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댔다. 때도 좀 나왔다.
“아야, 아야, 이 새꺄, 감정있냐! 그거 하나 척척 못맞추냐!”
나는 순간 움찔했다. 그가 면도기를 들고 있던 오른손 어깨를 갑작스럽게 돌리려 했기 때문이었다.
“어이, 비누!”
나는 그에게 비누를 건네주었다. 손이 떨렸다.
“어, 이 새끼, 비누 이거 외제냐? 부르봉 비누? 부르봉이 뭔 뜻이냐? 하여튼 우리나라 인간들은 죽여줘요. 비누에도 부르봉인지 보르붕인지 영어를 갖다 붙이냐! 그래야 잘 팔리냐! 어이쿠, 대가리야! 머리 아파서 살 수가 있나! 좀 간단하게, 심플하게 살자! 너 이거로 씻으니 잘 씻기든! 솔직하게 말해봐! 별 차이 없지! 하여튼 개종자들이 노란물이 들어도 싸가지 없이 들었어! 어이쿠 대가리야, 좀 쉽게 살자! 부르봉, 놀고 자빠졌네!”
그의 말이 끝남과 거의 동시에 욕탕문이 열렸다. 한 명의 건장한 사내가 들어왔다. 그는 용문신이 앉아있던 자리쯤에 앉았다. 간단하게 비누로 몸을 씻은 뒤 욕탕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 숨을 쉬었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5분쯤 뒤 다른 사내 하나가 욕탕으로 들어왔다. 그는 내가 있는 자리의 왼쪽으로 2~3미터 떨어진 곳에 앉았다. 그도 몸에 물을 두어 번 퍼붓고는 욕탕으로 들어가 머리만 내놓았다.
뒤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강력계 형사들이었다. 밖에서 욕탕 안을 잠깐씩 기웃거리던 때밀이 사내가 내가 인질처럼 잡혀 있다고 생각하고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그것을 도저히 눈치 챌 수가 없었다. 벌거벗고 있으니 더욱 그랬다. 무슨 표시라도 있어야 말이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그들이 경찰이라고 눈치 챌 수 있을까? 벌거벗고 있는 몸에 경찰이란 딱지라도 붙어 있을까? 사실 그나 나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그의 위협 아래에서 그의 등짝을 이태리타올로 밀고 있었고, 그는 면도기를 들고 나에게 반말로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욕탕에 두 명의 사내가 더 있다는 것이 내게는 위안이 되긴 했다.
그러나 그에게 그리고 나에게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비누를 받아든 그는 얼굴에 거품을 내고는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감지한 큰 변화였다. 그 면도기의 칼날이 나를 겨냥한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가냘프지만 그럴듯한 추측이 가능했다. 다시 이 추측은 강한 추측으로 발전했다. 술에 취한 그의 손에 잡힌 면도칼날이 그의 목을 스쳐 베고만 것이다. 그의 목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고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를 본 그가 더욱 사나워질 것이란 생각도 기우였다. 그는 얼굴을 물로 씻어내고 두 손으로 목을 움켜잡았다.
“뭐하냐, 뭐해! 앰뷸런스 불러라! 불러!”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하잖아. 이게 아니잖아! 그러면서 과감하게도 이런 생각까지로 나아갔다. 놀고 있네, 약간 벤 것 가지고 앰뷸런스는 무슨! 그 순간 두 사내가 그를 덮쳤다. 벌거벗은 세 사람들이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며 별스러운 짓들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발버둥을 쳤지만 그다지 심하게 저항하지 않았다. 사내들은 그의 양손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웠다. 나는 너무나 놀랐다. 당시에는 그들이 경찰이라고는 전혀 눈치 채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의 위협에서 벗어난 것에만 신경이 모아져 있었다. 살았다는 느낌 그것 밖에 없었다.
“이건 또 뭐냐, 앰뷸런스 부르라는데 이 새끼들은 또 뭐냐?”
*
인간을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말은 진실이다. 그러나 부분의 진실이다. 겉을 보아야 알 수 있는 경우 또한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탈의실에서 전신에 용문신이 새겨진 그의 벌거벗은 몸에 겉옷이 걸쳐졌을 때 비로소 판단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실수라면 두 형사가 미리 그의 탈의용 캐비닛을 살펴보지 않은 것이랄까? 불행하게도 앰뷸런스에 실려 간 쪽은 그 두 명의 형사들이었다. 때밀이 사내도 그 이후로 그 목욕탕에서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다음 날 그 목욕탕 문이 굳게 닫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과연 그는 누구였을까? 공공의 적, 우리의 강철중 형사가 밝혀 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