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7, 8년쯤 된 낡은 구식 휴대폰을 공짜폰으로 교환을 했다. 순전히 아내가 나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낡은 휴대폰을 구입할 때도 그랬다. 나는 휴대폰을 가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때까지 휴대폰 없이 잘 생존해왔고 잘 생존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홈쇼핑으로 신청한 휴대폰이 도착했을 때 아내에게 투덜거렸다. 왜 이렇게 괜한 짓을 하느냐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된 폰이었다.
그걸 새로운 휴대폰으로 바꾼 것이다. 내 의견을 무시하고 커플폰 휴대폰이 생활의 필수품이니 어쩌니 하는 아내의 잔소리에 인상만 한 번 찡그렸을 뿐이다. 어차피 사용해야 할 것이라면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았다. 7, 8년 동안 그 낡은 휴대폰은 별 유용하게 사용되지 않았다. 휴대폰 자체는 유용한 것이고 나 자신이 그것의 유용성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한 달에 몇 통화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휴대폰 요금은 꼬박고박 2만 원 이상씩 청구되었다. 차라리 이 돈으로 적금을 드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휴대폰을 없애지도 적금을 들지도 못했다.
아내는 직장을 다닌다. 매일 아침 7시에 고등학교 1, 2학년 연년생인 큰 딸,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선다. 아내는 아이들을 학교에 실어다 주고 자신의 직장으로 간다. 아내는 인터넷 포탈 업체에서 애니메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벌써 10년째이다. 그 사이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만 두었다기보다 쫓겨났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10년째 살림을 도맡아 왔으니 전업 주부(主夫)인 셈이다. 그러나 전업주부 답지 않게 일탈적인 주부이기도 하다.
아침에 청소나 빨래,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소파에 앉아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TV를 틀고 아침 뉴스를 본다. 이것은 대체로 매일의 규칙적인 일과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이 이후부터 규칙적인 일과와는 완전히 결별한다. 대낮술을 진탕 마시고 취해버린 다거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난 후 책 코너에서 2, 3시간씩 앉아 책을 본다던가, 오락실에서 장 볼 돈을 탕진하기도 한다. 이런 일은 그다지 심각한 것은 아니다. 아내가 돌아오는 7시를 단 한 번도 넘지 않고 저녁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야 야간 과외로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이니 저녁 준비는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일탈적인 것은 목적지를 아무렇게나 정해놓고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훌쩍 가족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가족들에게 이런 일은 정말 예측 불허였다. 메모 한 장 남기지 않고 사라졌으니 말이다. 처음엔 당황한 아내가 경찰에 행방불명 신고를 한 적도 몇 번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는 신고보다는 조용히 기다리긴 했지만. 아내는 메모나 전화 한 통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러면 스릴은 반감되고 만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스릴 넘친다. 그다지 유쾌한 짓거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죄책감을 가질 만한 짓도 아니었다. 정해진 틀 속을 벗어나는 자유는 참 좋았다. 아내가 이러한 나의 속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가끔씩 집을 떠나보라고 용돈에 격려까지 해주지만 연락이나 메모 한 장 없는 나의 태도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었다.
“여보 메모 남기거나 연락하기가 그렇게 어려워?”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꾸한다.
“내가 어디 한, 두 살 먹은 어린애야? 그냥 바람 좀 쉬고 오는 건데 뭐.”
사실 이런 말은 너무 무책임한 말이었다. 전업주부를 선언하고 그런 예기치 않는 행동을 하면 아내는 나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저항심이 솟구쳤다. 집에만 틀어 박혀 있는데 나도 좀 훌훌 한 번 떠나 보자구! 당신이 하루쯤은 청소다, 설거지다, 빨래쯤은 할 수 있는 것 아냐? 밥도 좀 시켜 먹으면 어때!
휴대폰이 도착 한 날 전화번호들을 옮겨 놓으면서 아내가 처음 한 말이 “이제는 휴대폰도 바꾸었으니 메모을 남기거나 연락 좀 해줘. 숨길 이유가 없잖아.” 였다. 그리고는 아내는 메시지를 적고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내게는 필요도 없는 휴대폰을 사용하라는 아내가 좀 귀찮았다. 아내의 마음은 짐작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었지만 휴대폰에 대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도대체 휴대폰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휴대폰을 바꾸고 며칠 뒤, 아내와 아이들이 집을 나서고 난 뒤, 문득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야겠다는 강렬한 욕구 같은 것이 솟구쳤다. 어떤 이유인지도 몰랐다. 메시지를 쓰고 보내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준 아내가 갑자기 고마워졌다. 나는 거의 모든 숫자가 4자로 이루어진 가장 재수 없을 것 같은 전화번호를 누르고는 정성껏 메시지를 썼다.
“나는 당신이 가장 재수 없는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기에 사실 가장 재수 없는 인간인지를, 아니, 아니, 가장 재수 없는 운명에 처해진 인간 인지를 알고 싶어 이렇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기분 나쁘게 생각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모든 숫자가 4자로 이루어진 당신의 전화번호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면 꼭 답장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곧 바로 답장이 왔다. 메시지를 보내긴 했지만 이런 전화번호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물론 있으니 메시지가 발송되었겠지만 말이다.
“미친 놈, 이런 장난질이나 하지 말고 잠이나 처자라! 너 또라이냐? 미친 새끼!”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피장파장이다. 그에게 4의 미신을 확인하고자 한 나나 나에게 미친 새끼라고 한 그나 서로에게 무례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참 아전인수격의 해석이다. 정체불명의 메시지를 보낸 내게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기계적으로 휴대폰의 버튼에 손가락이 다시 올라갔다. 유혹처럼 마음 속 깊이에서 제어 할 수 없는 충동이 북받쳐 올랐다. 왜 그래? 작은 저항을 해보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미친 새끼라고? 너야 말로 미친 새끼야? 알겠어? 난 단지 호기심 밖에 없었단 말이다! 4에 대한 호기심 말이다! 그런데 내가 미친 새끼라고? 넌 내게 그저 정중하게 ‘4가 오히려 행운을 가져왔다’ 거나 ‘그런 허무맹랑한 미신을 아직도 믿고 있다니’ 하는 식의 답신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했단 말이다. 아무튼 4가 네 목을 죌 테니 두고 봐!”
난 이렇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답신을 기다렸다. 생각대로 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칼칼한 사내의 목소리였다. 나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이런 개새끼가 다 있나! 너 그기 어디야! 뒈질래, 응! 이런 X만한 새끼가. 한 번 만 더 이런 짓을 하면 목을 비틀어 놓을 테니 알아서 해라! 에이 재수 없는 새끼.”
분노가 폭발한 느낌이었다. 글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목소리에 서려있는 분노의 떨림이 느껴졌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무언가 새디즘적 쾌감에 몸서리를 쳤다. 그에게 4의 저주가 오늘 내릴 것 같았다. 심장마비가 아니면 뇌출혈. 분노를 이기지 못해 거품을 물고 있을 그를 생각 하자니 통쾌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통괘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아내가 너무 고마웠다.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 준 아내가 너무 예뻤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아내가 보고 싶었다. 아내와 뜨거운 시간을 갖고 싶었다. 직장을 마치고 돌아 온 아내는 부부생활을 피하는 것 같았다. 언제나 아내는 ‘너무 피곤해 여보‘ 하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간혹 나누던 섹스도 무성의했다. 나는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꽉 막힌 벽에 뚫린 출구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여보, 오늘 당신과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어! 미치도록 당신을 탐하고 싶어! 여보, 내가 집에 남아서 갈고 닦는 게 뭔지 알아! 짐작하겠지! 당신을 뜨겁게 달구어줄 용광로에서 막 꺼낸 무기가 있단 말이야! 다양한 테크닉도 익혔지. 아마 내일 아침쯤에는 내 목에 다시 달라붙어 직장에 가고 싶지 않다고 앙탈을 부릴지도 모르지. 섹스의 괘락이 샘처럼 솟는 멋진 밤을 기대하며, 당신의 변태쟁이가”
나는 내 목을 묶고 있는 끈을 끊고 싶었을까? 휴대폰 메시지를 어떤 통로쯤으로 여겼을까? 설거지를 끝내고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행복이다 싶었던 그 마음속에서 조금씩 피어오르던 안개같이 몽롱한 기분. 그 몽롱한 기분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현실은 더 깊은 질곡으로 나를 밀어 넣고 말았다. 비극으로 받아들이기에 나는 너무나도 희극적인 인간이었다. 현실을 감당하면서 덧없는 몽상은 괜한 우울과 분노를 잠시 접어놓아야 할까? 아니면 영원히?
“아빠, 엄마 휴대폰에 보낸 이상한 메시지 아빠가 보낸 것 맞아! 아빠, 변태야!”
그날 아내는 수련회를 가는 딸에게 휴대폰을 주었던 것이다. 왜 아내는 그 사실을 내게 알리지 않았던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