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목욕탕을 갔다. 보일러가 고장 나 온수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참석해야할 행사가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오전에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여동생을 전송하고, 오후에는 사촌의 결혼식과 대학원 논문 프레젠테이션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물론 뒷풀이까지도...... 굳이 목욕을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목욕을 의무감처럼 해야 할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오랜 기간 동안 보지 못할 여동생에 대해서는 내 몸을 씻지 않고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우울함이 큰 작용을 했다. 물론 결혼식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결백증이라는 것일까, 하고 생각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작은 웃음이 나왔다.
평일 날이었는데도 그날은 이상하게 목욕탕이 만원이었다. 도시 변두리 작은 마을에 하나 밖에 없는 공중목욕탕이었지만, 그렇게 만원인 적은 없었다. 갑작스런 만원이 어떤 복선이었을까? 귀중품을 카운트에 맡기지 않은 나의 잘못이 현실화 되고 말았다. 목욕을 하고 나오니 사물함이 열려있었고 양복의 안주머니 속 지갑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내 지갑에서는 적지않은 현금과 신용카드 2장이 들어 있었다. 그런 것은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나 내가 오랜 동안 간직해 온 내 첫사랑의 징표만큼은 꼭 되찾아야만 했다. 바로 잃어버린 지갑 그것이었다.
그 지갑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녀가 죽고 그 다음날 내게 택배로 보내져온 수첩이었다. 유쾌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몇 번이고 그것을 버리려 했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기를 반복했다.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감상적인 생각을 떨쳐버렸다. 그런데도 지갑은 내 가슴 곁에 있는 것이 맞았다. 그랬다. 그걸 태워 버린다는 것은 그녀를 두 번 죽이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37세의 노총각으로 늦게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고, 미국으로 영구 이민을 가는 여동생을 전송하고, 노총각 자웅을 겨루던 동갑내기 사촌의 결혼식을 참석하는 건 지갑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렇게 빽빽한 일정이 줄줄이 이어져 나를 목욕탕으로 밀어 넣고 지갑을 잃게 한 건 우연보다는 짜여진 각본이리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잘 잃어버렸어! 잘 잃어버렸다! 그건 고의가 아니잖아, 그녀도 그걸 이해할거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런 마음 한 구석에서 빠르게 번져 오르는 막을 수 없는 저항을 어쩔 수는 없었다. 찾아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은 너무나 빨리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탈의실에 감시 카메라가 작동하고 있는지 주의를 살펴보았다. 감시 카메라는 없는 것 같았다. 벌거벗은 몸이 몰래 촬영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닌가. 분실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목욕탕의 출입구 근처에 카메라가 있는지 카운트에서 졸고 있는 주인을 깨워 물어 보았다. 주인은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은 신고하고 싶은 표정은 아니었다. 대신 기꺼이 비디오를 함께 보자고 했다. 과연 단서를 잡을 수가 있을까. 막막하기만 했다. 또한 그날따라 손님들이 많았으니...... 비디오 영상은 흐렸다. 사람의 모습들은 흐릿했다. 도시 변두리의 작은 마을에 하나 밖에 없는 공중목욕탕에서 최신 카메라가 설치되었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녹화된 테이프의 화질은 기대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허탈한 심정으로 탈의실 의자에 잠시 앉았다. 시계를 보니 출발해야할 시간이었다. 시계의 초침은 목욕탕에서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라는 어떤 강요 같았다.
11시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여동생은 11:30분 시카고 행 비행기를 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의 차장으로 맑은 하늘과 바다가 펼쳐졌다. 하늘은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르렀다. 동생은 저 푸른 하늘을 가로 질러 이국의 머나먼 땅으로 갈 것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지 않는가? 마침 비행기 한 대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공항 탑승구 앞에서 여동생과 만났다. 여동생 가족을 배웅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여동생은 나를 제외하고 아무에게도 이민 소식을 알리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또 다른 이별을 위해 오랜 이별 후에 잠깐 다시 만나야 하는 이 아이러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가. 각자의 녹녹치 않는 삶이었다. 내가 고 2, 여동생이 중 3 때 우리는 부모님을 잃었다. 작은 구멍가게를 하던 부모님들은 누전으로 화재가 난 가게에서 까맣게 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제부는 여동생에겐 첫사랑이었다. 제부에게도 여동생은 첫사랑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들을 위해 뭐 하나 제대로 해준 것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그들로부터 틈틈이 도움을 받기만 했다. 제부는 자동차 1급 정비사로 작은 정비소를 운영하면서 꽤 많은 돈을 모았다. 이민은 자식들의 교육과 다른 몇 가지 이유들이 복합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둘째 딸의 신체적, 정신적인 상처가 이민을 더욱 재촉했다고 했다. 편치 만은 않았겠지. 여동생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여동생의 어깨를 껴안았다. 흐느낌이 파도가 되어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몰려왔다. 탐승구로 걸어가는 여동생 가족들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한참이나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여동생 가족은 뒤돌아보며 웃음을 지었다. 여동생이 소리쳤다. 오빠 연락할게. 그래,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언제쯤이 될까, 다시 만나는 날이. 어차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니던가. 나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공항을 나섰다.
사촌의 결혼식은 2시였다. 그다지 시간이 촉박하지는 않았다. 나는 결혼식장 근처의 카페로 들어가 결혼식이 시작될 때까지 대학원 논문 프리젠테이션 연습을 했다. <첫사랑의 징후에 대한 고찰>. 전날 밤 꽤 긴 시간동안 프리젠테이션 내용과 시간을 체크하고 발표 연습을 했지만 어딘지 부족했다. 결혼식장 근처의 카페라 하객들이 많은 것 같았다. 모두들 캐쥬얼한 복장보다는 정장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테이블에 올려놓은 노트북의 자료들을 읽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쪽으로 다가와 반갑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마, 니 현수아이가. 니, 와 그래 한 번 연락도 안했노. 고향 마을의 친구인 석민이였다. 동갑인 사촌과는 같은 고추 친구이기도 했다. 석민이는 제법 떨어져 있는 테이블 쪽으로 다시 걸어가 친구들을 세 명 더 데리고 왔다. 아버지가 세탁소를 하던 덕철이, 엄마가 우리 학교 선생님이었던 혁인이, 아버지가 목재소에서 일하던 갑수. 어렴풋한 이름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도대체 얼마만인가? 20년도 더 넘어 버렸다. 우리는 반가움에 제법 떠들썩했다. 우리는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어릴 적 옛 추억들을 회상했다. 석민이의 아버지는 동네 공중목욕탕에서 이발을 했다. 아버지와 친구였던 석민이 아버지는 항상 내 머리를 깎아주었다. 석민이는 지금 아버지의 이발소를 물려받았다고 했다. 덕철이 아버지는 아직도 세탁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학교 선생님이었던 혁인의 어머니는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갑수 아버지가 일하던 목재소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고 했다. 어린 시절의 빛바랜 추억들이 하나 둘씩 떠올랐다. 참 멀리도 떠나온 어린 날의 추억이었다.
사촌의 결혼식은 3시에 끝났다. 오래 동안 보지 못했던 숙모, 삼촌등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결혼식이 있기 오래 전부터 고향 친구들은 내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나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친척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쉽게 내버려 두지 않으려 했다. 석민이는 나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이기 얼마 만인데 니 지금 갈라고 그라노. 타지의 생활에 젖어 잘 찾지 않던 고향이었고 잘 만나지 않았던 친척들이었기에 너무나 반갑기는 했지만 헤어져야만 했다. 다음을 기약하자! 만남이 있으면 그렇게 떠남이 있기 마련이 아닌가. 아쉬움을 뒤로 그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술이라도 한잔 했어야 하는데 아쉬움을 떨쳐버리기 너무나 어려웠다.
대학원 논문 프레젠테이션은 5시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직장인들 때문에 그렇게 시간이 잡혀졌다. 결혼식장에서 대학까지 택시로 20분 거리였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프리젼테이션은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까지 포함해서 총 8명의 대학원생들이 10분씩의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아무리 긴 질의 시간이 합쳐져도 2시간은 넘지 않을 것이다. 지도교수의 멘트도 그다지 길지는 않을 것이다. 평가는 다음시간으로 예정되어 있었고 말이다.
5시 정각에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었다. 한정된 시간 내에 논문 주제와 관련된 핵심적인 내용을 정해진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일목요연하게 내용을 발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지도교수는 작은 종을 들고 시간에 맞추어 그것을 울렸다. 전날 시계를 보며 여러 번 연습을 하였지만 연습처럼 시간이 조절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대로 무사히 내 차례가 끝났다. 나의 논문 주제는 <첫사랑의 징후에 대한 고찰> 이었다. 첫사랑에 대한 애매모호한 인식을 넘어 보다 명확하게 첫사랑의 존재를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첫사랑에 대해 자료들에 입각해 좀 더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자는 것이었다. 첫사랑이 나타나는 연령, 대상, 환경등 개인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첫사랑의 공통적인 존재 양상 등을 밝히는 것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지도교수는 고개를 내저었다. 논문으로서의 가치에 대해서도 회의했다. 그건 문학이나 예술의 영역이지 사회학의 영역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나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추상적인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노력은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고 맞섰다. 물론 힘든 작업이었지만, 첫사랑의 존재 양상들이 개인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윤곽이나마 드러낼 수 있다면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우리가 지켜야할 아름다운 첫사랑의 가치는 분명해 지는 것이 아닐까? 각박한 세상에 첫사랑의 순수함을 지킨다는 것은 의미있는 노력이 아닌가?
하지만 예기치 않게 아침에 잃어버린 지갑이 떠올랐다. 내가 첫사랑이라 생각하는 그녀에 관한 질문처럼 느껴졌다. 그녀와의 사랑이 진정 첫사랑이었던가? 그렇다면 그것이 첫사랑이었음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나의 확신에 비해 그것을 입증하기란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것은 체험되는 것이지 입증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몰려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첫사랑은 분명이 있어야 한다는 선의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쓸데없는 짓처럼 여겨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갑자기 막막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프리젠테이션은 지나갔고 이후의 일은 이후에 생각할 것! 나는 조금 바빠 질 것 같았다. 첫사랑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지갑을 잃어버린 것으로 충분할 것 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뒷풀이는 꽤 무질서했다. 저녁을 먹고, 소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또 술을 마셨다. 그러는 동안 내 기억력은 점점 흐릿해지고, 감각은 무뎌지고, 육체는 흐느적거렸을 것이다. 내 머리 속에 마치 마시기 위해, 잊기 위해 술을 마시려는 무의식적인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눈을 뜨니 내 원룸의 바닥이었다. 바닥에는 소주병과 맥주병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방안을 둘러보니 대학원 동기들이 침대 위, 소파 위에서 자고 있었다. 내 예감이 적중했다. 내 기억은 뒷풀이의 어느 시점에서 끊겨 전혀 재생되지가 않았다. 입고 있던 바지 주머니 속 휴대폰에서 벨이 울렸다. 모르는 전화번호였고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잃어버린 지갑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갑 때문에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목욕탕 주인이었다. 목욕탕 밖 쓰레기통에서 지갑을 발견했다고 했다. 어제 밤에 지갑에 들어있는 내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더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그나마 내 소중한 수첩 만이라도 내 품에 돌아오게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