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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5. 19. 22:26

[꽁트] 영재를 위한 몰입식 교육법 특강






 

영재를 위한 몰입식 교육법 특강


나는 한 번도 글자와 숫자를 배운 적이 없었다. 2살 밖에 되지 않은 내가 글자와 숫자를 배울 수 있으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글자 읽기는 물론이거니와 숫자 읽기는 아주 쉽게, 덧셈 뺄셈은 가뿐하게, 구구단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익힐 수 있었다.


하루는 아빠와 엄마 앞에서 신문 사설을 줄줄 읽고, 숫자를 읽고, 더하기 뺄셈을 하고, 구구단을 외었고, 그런 나를 지켜보던 아빠와 엄마는 입에 거품을 물고 거의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2살이었으니 말이다. 모르긴 해도 영재의 탄생이라고 흥분하셨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겐 아주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었을 뿐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흥분으로 몸을 떨면서도 평소 글자와 숫자 공부를 시키지 않은 자신들이 미안스럽다는 표정이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아빠와 엄마처럼 숫자 공부를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준 사람들도 이 세상에 없지 싶다. 그러니 지금 아빠와 엄마에게 말하건대 정말 고맙다는 말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말한다. 내가 참으로 고맙다고. 과외를 시키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좋은 학습지 한 권 제대로 사주지도 않았는데 숫자를 익히고 글을 익혔다는 것을. 경제적인 손익을 따져보더라도 그 엄청난 투자의 생략이야말로 그 만큼 가계부담을 줄이는데 기여했음에 고마움을 표했던 것이다.  


내게 최적의 학습 조건은 무엇보다도 아빠와 엄마의 자유방임에 가까울 정도의 개방적 태도였다. 내가 2살이 되던 그 해 겨울에 아빠와 엄마는 좋게 말하자면 냉전(冷戰)중이었다. 서로에게 무관심했고 그들 사이에 대화는 차단되었다. 그러니 그 냉기(冷氣)같은 침묵이야말로 우선 기본적인 학습조건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침묵과 학습효과와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모범적인 사례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냉전은 나에게는 크나큰 배려였고 관심이었다는 것을 아직도 그들은 모르지 싶다.


다음으로 냉전의 기류를 사이에 두고 있던 아빠와 엄마의 참호를 오갈 수 있던 나는 그들이 언제나 중독처럼이나 똑같은 일에 빠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빠는 신문 읽기와 컴퓨터에 엄마는 텔레비전 드라마와 잡지에 열중해 있었다. 탁월한 반복 학습이 잘 이루어졌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참호에서는 물론이고 쉬리가 헤엄치며 노는 어항이 있는 거실과 해제된 무기들이 놓여있는 부엌을 포괄하는 공동경비구역(JSA)이나, 비무장지대에서 조용한 분위기의 휴식과 함께 무언가에 빠져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집중력은 물론이고 인내와 성실함 같은 덕목들도 함께 체득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집중해서 어떤 일을 성취해낸다는 침묵의 교훈을 배웠던 것이다. 그랬기에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풍부한 학습 교재와 자료였다. 무엇보다도 아빠의 컴퓨터 시디에서 반복해서 흘러나오는 뽕짝의 가사와 텔레비전 드라마의 대사를 듣고 감동적이고 살아있는 언어를 익혔는데 동시에 이것은 나를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주 조숙한 인간으로 변화시킨 이유들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 신물 나도록 들은 뽕짝의 가사 때문이었는지 멜로 드라마의 대사 때문인지 사랑의 상처나 이별의 아픔 같은 것을 일찍이 경험했던 것이다. 뽕짝 노래와 가사집(歌詞集)과 텔레비젼 드라마의 대사는 내가 글자를 익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엄마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흘러나오는 표준말을 익힌 것은 엄마의 큰 배려였다는 것을 지금에야 느끼고 있다. 뽕짝과 드라마를 통해 글자를 듣고 외웠다면, 집의 곳곳에 흩어져있는 신문과 가사집과 잡지를 통해 듣고 외운 글자들을 복습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영재적인 재능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언어감각도 한 몫을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후천적인 환경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글자는 그렇거니와 숫자에 대해서 말하자면 신문 한 장으로 충분했다. 아빠가 즐겨 읽던 스포츠 신문을 통해 수많은 숫자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 아시겠지만 스포츠 신문에는 수많은 전화번호들이 벌레처럼 우글거렸는데 아마도 스포츠에 전화 통화 종목 - 이를테면 누가 빨리 전화를 걸고 내리나, 얼마나 빨리 말할 수 있나 하는 서부시대의 총잡이처럼 손과 입의 재빠름과 속사를 측정하는 종목-의 추가를 주장이라도 하는 듯 했다.


물론 농담이지만, 그 전화번호들이 하필이면 스포츠 신문에 그토록 많아야 하는지는 4, 5년이 지나서 다시 호기심을 부추겼고 그 스포츠 신문을 사서 밤낮 없이 전화번호를 돌려댄 것도 바로 그때였다. 조숙함을 넘어 완숙함으로 변화했다고 할까.


그랬기에 내게 스포츠 신문의 영향은 지대했던 것이다. 숫자들의 기능적이고 산술적인 의미를 익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숫자들의 상징적이고 이면적인 의미와 함께 성적으로도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사족은 떼버리고, 숫자는 그렇게 쉽게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영재 교육법을 스스로 발견, 터득하여 실천했고 그런 나를 지켜보며 아빠와 엄마는 그들의 의무를 다했다는 듯이 그 이듬해의 첫 달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던 것이다. 이후 나의 삶의 크나 큰 부분에서 다시 참고하고 활용할 수 있었고 이제 <바부자모>, 즉 <바람났던 부모의 자녀들 모임>의 회원들인 여러분들 앞에서 <영재를 위한 몰입식 교육법 특강>이란 다소 늦어버린 강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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