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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꽁트] 그 나무

by 컴속의 나 2008.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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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www.flickr.com/photos/petervan

 
 
        그 나무


어느 외국 시인이 노래했던가.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를 결코 본적이 없다고...... 그렇다,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를 그 어디서 볼 수 있으랴. 봄, 여름, 가을, 겨울, 흙 속에 서러움 쥐어뜯듯 애잔히 뿌리 붙박은 체, 상처 같은 헐벗은 몸뚱이 하나로 고독의 기나긴 시간들을 묵상하듯 숨쉬어 가는 나무가 어찌 아름다운 시의 모습이 아닐 수 있을까. 그런 나무를, 가볍게 업신여기는, 인간은, 시를 파괴하는 어리석은 미물. 시를 파괴하는 인간은 잔인한 시간을 견뎌내지 못할 테지. 시를 파괴하고 묵상을 압살하는 인간은 시간의 손에 들린 비수에 심장을 찔리고 말테지. 그런데도 인간은 어리석은 앞날의 꿈을 꾼다니. 그 타락한 꿈을 아름다울 것이라 하다니.


한 그루 나무만큼 위대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저 위대한 인간은 나무를 닮았을 뿐이다, 라고 할 수 있을 뿐. 그러기에 나무를 한낱 인간 주위 흔해빠진 미물이나 인간을 위한 도구로 본다면 그건 인간의 가치를 너무 과대하게 평가하는 짓이다. 오히려 나무는 아름다움으로 그런 인간들을 사랑하고 있으니. 나무가 없어진 세상을 상상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상상은 인간의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가슴을 상실하고 죽음에 몸을 내맡긴 괴물 같은 인간의 모습. 그런 상상 말라고, 나무는 인간을 사랑한다. 그토록 고요하고, 무던하고, 희생적인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시가 있을 수 있을까.


그 나무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 나무가 사랑한 인간들 중에 한 노인이 있었다. 그 나무가 노인을 사랑했다는 사실에, 무슨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 사실이다.


모년 춘 사월의 어느 날이었다. 환하게 피어오르는 생명의 계절과는 달리 노인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생명을 거스르는 죽음의 징후였다. 노인은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노인은 죽음만이 그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결론을 내리고는 산을 올랐다. 노인은 나무에 목을 매달아 이 세상을 떠나고자 산을 올랐던 것이다. 노인이 산으로 오르자 그 차가운 공기를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그 나무였다.


노인이 그 나무에 다다라 굵은 가지 아래 돌을 놓고 서서 밧줄을 묶는 동안 그 나무는 슬픈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 방울이 노인의 얼굴에 떨어졌다. 하지만 노인은 밤새 고인 이슬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밧줄 묶기를 계속했다.

그 나무는 더욱 슬퍼 스스로 가지를 꺾었다. 그 가지에 밧줄을 묶던 노인은 조금 놀랐지만 밤  사이 심했던 바람이 마른 가지를 꺾어 놓았다고 생각했을 뿐 밧줄을 풀어 다른 가지에 묶기 시작했다. 그 나무는 자신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안타까움에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노인은 산 속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로 생각했다.

그 나무는 낙담했다. 한 인간의 죽음을 막을 수 없는 그 나무의 고통은 너무나도 깊고 깊었다. 어떻게 할거나, 어떻게 할거나!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몸이 한스러웠다. 죽음의 도구로 쓰이는 자신의 가지가 안타까웠다. 그 가슴 아픈 무기력에 그 나무는 절망 속에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 나무는 그 깊은 고통 때문에 순식간에 꽃이 시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노인의  마음이 조금 동하는 듯 했다. 노인은 그 나무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도 잠시였다. 그 자신의 슬픔을 그 나무에 이입시킨 것일 뿐 정말로 그 나무가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고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노인은 그 나무의 꽃들이 시든 것은 메마른 땅과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주위 나무들의 생동하는 꽃들을 보고서 잠시 눈가에 눈물이 맺혔으나 자신의 추측을 거두어들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가 목을 매달기에 안성맞춤의 나무라 여겼다. 꽃잎 지고, 가지 부러진 그 나무가 자신의 처지와 어쩌면 이토록 흡사할 수 있는가 생각하면서 말이다.

노인은 가지에 밧줄을 다 묶고는 튼튼한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몇 번을 잡아당겼다. 그 나무는 밧줄의 차갑고 거친 감촉에 찢어지는 슬픔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밧줄을 찢어 버릴 수만 있다면, 찢어 버릴 수만 있다면......노인은 자신의 목을 둥근 밧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순간 나무는 파르르 떨었다. 그저 바라 볼 수밖에는 없는, 이겨낼 수 없는 슬픔과 참담한 무기력함과 애절한 안타까움의 몸부림이었다. 죽음을 막으려는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노인은 잠시 나무의 떨림에 멈칫했지만, 다시 죽음의 유혹에 이끌려 갔다. 


노인은 죽었다. 노인이 죽은 바로 직후부터 이상하게도 그 나무는 더욱 싱그러워졌다. 누가 보더라도 탐스러워 보였다. 가지에 매달린 노인의 주검을 애도하면서 그 나무는 발악하듯 생기를 발했다. 주위의 나무들 보다 그 나무는 더욱 자신을 뽐내고 과시하는 듯 우람하게 서있었다. 다른 나무들은 그 나무가 노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미쳐버렸다고 생각했다. 다른 나무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가 죽은 그 직후부터 그 나무는 슬픈 얼굴로 햇빛을 받아들이고 식욕 잃은 뿌리로 물을 빨아들였으니 말이다.


미친 듯한 사랑 바로 그것이었다. 그 나무는 노인의 관으로 쓰이거나 상주(喪主)들의 상장(喪杖)으로 쓰이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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