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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7 22:44

[꽁트] 신문이 아주 가끔 똥 보다 더러운 이유(4)





 
신문이 아주 가끔 똥보다 더러운 이유(4)

나는 신문으로 똥을 닦는다. 신문으로 똥을 닦는 이유는 실용과 분노의 해소이다.

나는 가난하다. 그러나 휴지를 살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 솔직히 휴지를 사느니 다른 생필품을 하나라도 더 사는 것이 실용적이다. 휴지를 사느니 라면이나 노란 무를 사는 것이 더 실용적이란 말이다. 내 처지에 실용적으로 놀아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똥 닦고, 코푸는데 휴지 따위 구입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이렇게 투덜거렸다.

“어휴, 이젠 당신도 좀 휴지로 똥 닦아요.”

이게 아내의 유언처럼 되어버렸다. 그래도 지금 나는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실 아내의 말은 과장이었기 때문이다. 내 궁색함에 대한, 아니 고집에 대한 원망이었던 거다. 나는 사실 가끔씩 휴지로 똥을 닦았다. 누워있던 아내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신문으로만 똥을 닦는다. 나는 몸 져 누워 있던 아내를 위해 휴지를 대량으로 구입해 놓았었다. 아내가 죽자 나는 휴지를 어떻게 처리 할지 고민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내가 쓰지 않는다면 주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휴지를 공중 화장실 여기저기에 놓아두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휴지를 사회에 헌납한 셈이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이 휴지가 돈이라면, 내게 아무 쓸모도 없는 휴지가 돈이라면 가난하고 불행한 자들에게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하고 말이다.

휴지로 똥을 닦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솔직히 널려있는 게 휴지다. 종이를 수입하는 나라지만 널려 있는 것이 종이라는 사실은 좀 괴상하다. 심지어 부드러운 휴지조차도 식당의 화장실이나 은행의 로비에 널려있다. 이런 휴지 좀 빼다가 똥을 닦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신문으로 똥을 닦는다. 두 손으로 신문을 비벼서 부드럽게 만든 뒤 똥을 닦는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나 사진이 있으면 두 손으로 더욱 힘껏 비벼서 닦는다. 신문을 비벼서 똥을 닦으면 그렇게 마음이 시원 할 수가 없다. 특히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특정한 신문들을 좍좍 찢어서 비벼서 똥을 닦으면 더 좋다. 변기에 앉아 비벼댄 신문지 조각을 펴서 가끔씩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상상하곤 한다.

‘수백억 재력가가 실용 운운하며 니미럴 뒷구멍에서는 술값으로 수백만원을 뿌려댄다면, 수백억 정치가가 니미럴 뒷구멍에서는 자신의 홍보로 수억, 수십원을 뿌려댄다면 그 뒷구멍은 뭐로 닦는가? 가난하고 불행한 자들을 위해 헌신해야할 종교인들이 입으로는 예수의 희생과 사랑을 전도하지만 뒷구멍으로는 호의호식 한다면 그 뒷구멍은 금박지를 입힌 뒷구멍인가? 입으로는 내세우는 게 우리같은 서민이지만 뒷구멍으로는 서민이 안중에도 없는 짓거리라면 그 뒷구멍은 도대체 뭐로 닦아야 하나.’

‘기자들 개**들도 마찬가지야. 신문 기자들은 죄다 홍보 요원들이야. 빌어먹을 타락하고 저속한 인간들을 고귀한 인간들로 만들다니. 궤변론자들이지. 뒷구멍을 혀로 핥는 자들이지.  똥고물을 핥는 거지. 너희들도 뒷구멍은 부드러운 휴지로 닦겠지.’

이러다 너무 감정에 빠져든 자신을 추스리라는 은은한 소리가 들려온다.

‘어이, 자네 뭐 그리 흥분하나. 세상사 다 그런 것 아닌가? 재력, 권력이 아무에게나 오는 건가? 하늘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그들이 그렇기 소니 뭐 그리 흥분 할 것이 있나! 감정 풀라구! 세상 적당하게 타락하고, 저속하게 살다 가는 거야. 권력자들이란 위선적이어야 한다구. 요사이 세상 발칵 뒤집고 있는 광우병을 보라구. 광우병 걸리는 것은 그저 재수가 없을 뿐이라네. 세상 다 그런거네. 소고기 싸게 공급해 준다는데 무슨 불만이 있나. 숭례문 불 났을 때도 책임진 놈 누구 있었나. 아무도 없지. 세상 그런거라구. 광우병으로 누가 죽더라고 자네가 걱정할 일은 아닐세.  ’그냥 재수가 없어 죽는 거라구. 또 책임질 놈도 없고 말야. 뭐 세상을 그렇게 어렵게 사냐구. 배고픈 소크라테스 그건 옛말이라구. 배푸른 돼지가 훨씬 세상에 부합하는 존재라네. 또 실용적인 존재라네. 실용적으로 살자구.‘

이런 상상을 하다가 간혹 밖에서 노크 소리라도 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체로 이러한 상상의 뒤끝은 좋지가 않기 때문이다. 우유부단한 나 자신을 한 없이 원망하기 시작하면서 분노가 치솟아 주체 할 수 없는 심정으로 십중팔구 술집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똥을 닦을 때는 상상을 자극하는 정치기사들이나 가식적인 연예기사들은 피하는 편이다.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나 기사를 똥구멍에다 대고 똥칠을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감정이 다소 누그러진다. 그러나 이내 슬픔이 몰려온다. 고작 이러한 짓거리나 해야 분노가 풀리는 무능한 늙은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똥이나 닦으며 분노를 삭여야 하는 누구에게 말하기조차 거북스런 더러운 방식에 자신이 슬프지는 거다.

그러나 더욱 슬픈 건 내 똥구멍에도 그 더러운(?) 잉크 냄새, 먹물 냄새가 베여드는 것이다.  그래서 신문으로는 똥도 닦기가 조금씩 불편해 지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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