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 somewhere in Pankow 이미지출처:www.flickr.com/photos/ok6/2723
Breakthrough
실천이란 측면에서 보면 나는 비난받아 마땅한 인간이다. 대학 교수라는 직함을 갖고 온갖 이론으로 지적 유희를 누리고만 있을 뿐 인류가 직면해 있는 문제들에 대해 사실 나는 실천적인 해결을 도모한 적이 없다.
물론 대학 교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대학 교수들은 이론과 지식의 현실적인 적용과 실천을 위해 투신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교수라는 타이틀을 직업으로 밖에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사명감’ 이나 ‘봉사’ 또는 ‘희생‘ 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내게 교수란 단어와 한 짝을 이루고 있는 단어가 있다면 ’안정‘ 이란 단어가 가장 적절하지 싶다. 내가 인류의 평화를 위해 무엇을 실천했던가? 없다. 내가 인류의 굶주림을 막기 위해 무엇을 했던가? 없다. 내가 인류 삶의 터전이며 보고인 자연의 파괴를 온 몸으로 저지하였던가? 아니다. 좀 더 범위를 좁히더라도 나는 별 할 말이 없다. 내 주위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내가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에 빠져 내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하고 있던 것은, 읽고 있는 뉴스위크 영문판의 ‘전쟁’ 에 대한 짤막한 칼럼 속의 한 단어 때문이었다.
Breakthrough. 왜 이상하게 생겨먹은 영어 단어 하나가 갑자기 나의 온 존재를 이토록 사로잡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무의식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기에 그럴까? 예전에도 가끔씩 나에게 이런 따위의 일이 일어나곤 했다. 단어와는 성격이 다른 것들이지만 죽어있는 벌레나 벽지의 무늬나 변기로 떨어지는 소변 줄기 같은 것들이 갑자기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말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것이라 자위하면서도 나를 갑자기 사로잡는 그 대상에 대한 반응에 감상적이라거나 심미적인 이름을 달아주기에는 너무 편집적이고 병적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뿌리칠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영화의 한 장면이나 노래 가사나 낙엽 따위의 대상에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 예술가에게 있어 그러한 현상은 현현이라는 이름으로 가치를 발하지 않는가?
하지만 나의 이런 현상은 병적인 편집증에 불과할 뿐이었다. 아니, Breakthrough 같은 쓸데없는 단어에 대학교수가 어떠니, 실천과 이론이 어떠니, 사명감과 희생이 어떠니 하고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것이 병적인 편집증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 대학교수로서 나의 존재가 어때서? 나는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나는 저항을 해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편집과 우울이 다시 나를 지배해 버린다. 그러니 나는 그렇게 피곤한 존재로 운명 지워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까지 하게도 된다.
아무튼 Breakthrough, 이 단어의 뜻은 봉착된 문제나 난관 등의 돌파를 뜻한다. ‘돌파’ 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가 괜한 생각과 감정의 비약을 불러일으키면서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적 동기는 의식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돌파, 돌파, 하고 힘주어 중얼거리면서 눈을 지긋이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때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뭐해요! 화장실 전세 내었어요! 빨리 나와요.”
“알았다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뭐, 그리도 급해!”
나는 아내에게 몇 마디를 더 투덜거리고는 꽉 막혀있는 항문을 뚫어보려고 힘을 주었다. 염소 똥 같은 작고 딱딱한 똥 덩어리들 몇 개가 변기 속으로 떨어졌다. 아, 이 지긋지긋한 변비! 왜 이렇게 꽉 막혀서 나를 괴롭히냐 말야.
생각건대 Breakthrough 라는 단어는 지긋지긋한 내 변비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항의식을 상징하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영어 단어 ‘Breakthrough’ 를 변비라는 생리적인 문제에 아주 섬세하고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실천적인 지식인일 수는 없을까? 지식은 쓰이기 위해 존재하고, 나는 그것을 내 삶의 한 가운데서 소박하게 실천하고 있다고 자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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