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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5 19:33

[꽁트] 콘돔 논쟁



 

콘돔 논쟁


이 이야기를 하면 나 자신이 먼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놀이방 교사인 내가 아이들의 그 지루한 논쟁을 재미있게 보고만 있었다는 사실이. 하지만 너무나 진지한 아이들의 모습이라 교육적인 차원에서의 배려였다고 하면 지나친 나 자신에 대한 변명일까.


방의 한 쪽 구석에서, 명구 녀석이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은, 일상적인 아이들의 행동과는 다를 게 없었다. 헌데 녀석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 좀 색다른 것이었다. 바로 콘돔이었던 것이다. 명구가 풍선처럼 입으로 불어댈 때 현경이가 끼어들었다.


“애두, 그건 풍선이 아니란 말야. 주사 모양으로 생겼잖아.”


명구가 부는 걸 그만두고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먼데 가시내야.”


현경이의 옆에 있던 지영이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명구를 보았다.


“주사 모양이잖아. 그러니 주사 장갑이지 뭐긴 뭐야”


그리곤 지영이는 어떤 반박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숫제 결론을 내렸다.


“우리 아빠가 그러던데 주사는 깨끗해야 되기 때문에 장갑을 끼는 그래, 알겠니 이 바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한솔이가 맞받아 쳤다.


“바보는 바로 너야. 장갑은 사람 손가락에만 끼는 거야. 주사는 손가락이 아니잖아. 손가락에 끼는 장갑이야, 바보 멍청이”


지영이가 화난 표정이 되어 달려들었다.


“헌데, 손가락은 다섯 개 잖아.”


한솔이가 여유 있게 대답했다.


“가운데 손가락 있잖아. 제일 긴 손가락 말야. 그 손가락에 끼고 콧구멍을 팔 때 사용하는 거야, 멍청이.”


평소 관찰력이 뛰어난 한국계 미국인 2세인 캔디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서툰 한국말로 끼어들었다.


“그건 고--추에 끼--우는 거야. 화--장--실 같은 데 가봐. 고--추가 그려져 있는 자--판--기를 보면 그게 그려져 있--단 말--야. 그러니 고--추에 끼--우--는 거야, 빨--간 고추에.”


하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실용적인 가치에 마음이 쏠려있는 아이들에게 고추를 끼운다는 말은 허무맹랑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고추를 왜 쓸데없이 끼운단 말인가. 평소 캔디의 관찰력에 어느 정도 동조를 해주던 아이들조차도 고추라는 말은 영 터무니없었다. 그러니 아무도 캔디의 말에 동의해 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잠시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평소 기발한 말을 자주 하는 명발이의 입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손가락에 끼우는 게 맞긴 맞아. 헌데 콧구멍이 아니라 다른 구멍에 사용하는 거야.”


명발이의 [다른 구멍론]은 녀석의 자신 있는 태도에 제법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서서히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듯이 명발이가 말을 이어갔다.


“이것 봐, 끝이 우리 엄마 젖을 닮았잖아. 젖이 아플 때나 갑자기 아기가 울 때  엄마가 가운데 손가락에 끼우고 젖처럼 아기 입 속에 넣는 거야. 틀림없어.”

   

명발이가 자신이 결론을 내린 듯 으쓱해하고 있을 때 지영이가 다시 반박을 했다.


“손가락에 끼우는 게 아니야. 봐, 이건 손가락 보다 더 크잖아.”


현경이가 지영이를 거들고 나섰다. 성대결의 양상을 띠는 듯 했다.


“그래, 손가락보다 크잖아. 손가락으로는 너무 헐렁할 거란 말야. 다른 걸 끼우는 게 분명해. 고추는 아니고......”


고추라고 하던 캔디가 지영이의 말을 거들었다.


“고추가......아니라면......아......마 쏘시지......일지......몰라. 먹다......남은 쏘시지......를 끼워......두는 건지......몰라.”


지영이의 말을 정점으로 아이들은 성대결의 양상을 띠면서 양쪽의 주장 중 어느 하나가 정답이라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사내아이들은 손가락, 콧구멍, 젖, 입 같은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으로 주장을 폈고 여자 아이들은 주사, 고추, 쏘시지 따위의 단어들을 주장의 밑받침으로 사용했다. 손가락, 콧구멍, 젖, 입 VS 주사, 고추, 쏘시지의 대결은 끝이 없이 펼쳐졌고 한쪽을 위해 다른 한쪽이 양보를 하거나 수그러들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그럴 경우 제 3자의 중재를 위한 개입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할까, 내가 끼여들려고 할 때 돌발적인 사건이 터졌다. 오준이의 행패(?)가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이 끼여들 여지가 없는 논쟁에 괜한 질투의 심보가 발동한 것이리라. 자세히 말하자면 오준이는 오줌을 더러워 한다는 타인의 심리를 이용해서 자신이 싫어하는 일로 기분이 상할 때 옷을 훌렁 벗고 오줌을 쏘겠다는 협박이 아주 효과적이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었다. 녀석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지만 오준이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자주 했다.      


“애들아, 뭐 그런 시시한 시합을 하니. 멀리 멀리 오줌을 쏘자”


아이들은 혼비백산해서 오준이를 피해 물러났고 그런 와중에 우연하게도 명구가 들고 있던 콘돔이 오준이의 바로 앞에 떨어졌다. 오준이가 그걸 들고 장난스럽게 자신의 고추에 씌우면서 말했다. 아이들의 모든 논의를 비꼬는 듯한 말투였다.


“오줌 막을 라고 꼬치에 끼우는 건 아닐까. 여자 아이는 귀저기, 남자 아이는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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