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그 슬픈 삐에로
찰리 체플린, 가장 삐에로 같은 외모로 가장 삐에로 같은 인간
히틀러, 삐에로 같은 외모로 가장 삐에로 같지 않은 인간
노틀담의 꼽추, 가장 삐에로 같지 않은 외모로 가장 삐에로 같은 인간
배용준, 가장 삐에로 같지 않은 외모로 가장 삐에로 같지 않은 인간
블로거, 가장 삐에로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인간
by 컴속의 나
인간은 태양의 주위를 도는 지구의 공전 궤도가 조금만 삐거덕해도 공멸(共滅)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지구라는 둥근 공위에서 궤도의 줄을 타고 있는 슬픈 삐에로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인간의 삐에로 같은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인위적으로 지구의 공전을 줄타기에 비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상 인간은 삐에로와 같은 희․비극적 모습을 삶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삶 속에 죽음, 젊음 속에 늙음이 깃들어 있는 모순적인 사실, 삶의 조건인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여러 아이러니한 사실, 개인과 집단과의 끊임없는 삐걱거림, 현세와 내세에 대한 분열적인 고뇌, 전쟁과 평화, 사랑과 증오의 극단적인 감정의 변주, 풍요와 빈곤이라는 현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줄타기에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줄타기는 너무나도 오래 지속되고 있어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고 있다는 인식을 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나약하고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모습에 대해 언제나 겸손해야 균형과 조화를 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리혀 오히려 위치를 망각하고 증오와 분노로 조화와 균형을 깨드리고 과신의 오만함에 빠져있다. 삐에로가 삐에로의 위치를 상실하고 전지전능한 초월자로 줄 아래를 향해 경멸적인 조소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자아를 상실한 가엾은 삐에로. 신이 되어 버린 삐에로. 신을 죽여버린 삐에로.
삐에로가 스스로 우주의 중심이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삐에로라는 사실을 자꾸 잊어가는 현실을 인간은 자랑스럽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곳곳에서 삐에로임을 주지시키는 경종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울려대기도 하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 예술, 문화의 영역에서 마초적인 삐에로의 심성을 부드러운 여성적 삐에로의 심성으로 돌려놓으려는 노력을 피눈물 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길 La Strada>의 길 위의 그 슬픈 삐에로의 모습을 삶의 구석구석에서 상기해야 하는 것이다. 숭례문의 전소를 삐에로의 슬픈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삐에로가 삐에로의 처지를 애써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대견스러운 일이지만 삐에로의 매력은 사실 슬픔과 연민을 자아내는 그 애틋한 모습에 있다.
아돌프 히틀러:스스로 신이 된 인간
그러나 인간들은 어렵게 줄을 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삐에로의 그 슬픔과 연민을 자아내는 표정과 몸짓 그리고 속마음 사이의 깊이 있는 역설을 잊고 있다. 서로의 비극을 헤아려주는 연민이나 동정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빠져 나와 이제는 그 마음속에 삐에로를 잊은 우주 만물의 영장이라는 위엄과 허세가 들어차 있다.
니체는 삐에로를 너무 오만하게 만든 상징적인 인간은 아닐까?
찰리 채플린은 삐에로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 상징적인 인간은 아닐까?
인간이 비극적 존재이니 희극적 존재이니 하는 따위는 물론 인간 스스로의 주관적인 해석이겠지만 이 막막한 우주에서 그야말로 작디 작게 존재하는 지구라는 땅위에서 근원적인 고독을 되씹으며 버겁게 살아간다는 것이 그저 희극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더 크다. 그런데 작디 작은 존재이며 근원적으로 고독한 인간들이 얼마나 오만하고 잔인한지를 보라, 인간들이 숱하게 저질러온 전쟁들을 보라. 이 세계화의 시대, 이 실용주의의 시대에 아프리카 대륙의 구석에서 굶주림에 죽어 가는 아이들의 모습들을. 하찮은 인간들이 얼마나 다른 인간들을 멸시하고 하찮게 여겨왔는지를, 얼마나 비극에 비극을 더해 왔는지를. 삐에로의 위치를 망각한 인간들이 저지른 잔인한 행위들이다.
인간 스스로 삐에로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이 광활한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전쟁과 기아에서 그 숱한 비극을 싹트게 하고 무관심해 왔겠는가. 인간이 스스로 초인으로 행세하고 스스로를 구원하는 메시아로 자처하곤 했고 종교의 힘을 빌려 오기도 했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의 고독과 비극성 때문이다. 줄 타는 슬픈 삐에로의 모습처럼 말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면서 동시에 신에게 용서를 구하며 인간의 고귀함과 존엄성을 외친다는 것, 이 얼마나 용서받지 못할 인간의 부끄러움인가?
인간의 본질적이고 실존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 벌거벗은 삐에로의 모습을 보고 싶다. 오만하고 과시적인 삶의 방식을 초월해 있는 진정 삐에로, 그 슬픈 ‘인간’의 모습을 보고 싶다. 이 광활한 우주를 인식하고 있는 인간만이 역설적으로 스스로의 초라함을 깨닫을 수 있기에 기댈 수 있는 곳은 오직 인간들 스스로라는 분명한 사실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간, 줄을 타고 있는 그 슬픈 삐에로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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