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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꽁트] 잠자는 거북

by 컴속의 나 2008.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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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거북

출발 선상에서 그 둘만이 살아남은 건 아주 큰 행운이었다. 확률 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원인이 곧 밝혀지겠지만 현대의학 쪽에서 보자면 미스터리일 것이며 생존의 법칙으로 보자면 불굴의 의지일지도 몰랐다. 과학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인간의 의지, 이를테면 암을 극복하는 경우나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 깔려 생존하는 경우의 인간 의지 말이다.

달려야만 살 수 있는 생존의 도상에서 그들은 오직 달리는 것에 맹목에 가까우리 만치, 아니 맹목적으로 집착해야 했다. 달리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방식이라면 오직 달리는 것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그들 둘 만이 살아 남았음에도 그들은 조금의 여유도 가질 수 없었으며 오로지 뛰고 또 뛰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들에겐 트랙경기, 즉 마라톤과 경보경기를 포함하는 육상이 가장 소중한 운동이었고 즐겨 보는 경기였다. 특히 장거리보다는 중단거리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평소에 장거리 연습으로 지구력을 단련하는 녀석들도 많이 보았지만 대부분이 단거리를 통해 폭발적인 질주를 배웠고 중거리를 통해 지구력과 전술, 그리고 공정한 룰을 배웠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몰래 상대방의 두 눈에 이물질을 뿌리거나 고의적으로 충돌을 하거나 했지만 그것은 인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더러운 짓이었기에 공정한 룰을 가혹하게 적용했던 것이다. 달리기의 룰은 언제나 공정해야만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들은 달리지 않으면 살수가 없었기에 달리기에 관계된 많은 정보들을 모으고, 그 정보를 달리기에 유용하게 사용했다. 그들이 존경하는 육상선수(?)로는 토끼와 거북이였다. 그들 둘 중의 하나는 토끼를 가장 존경하는 동물로 생각했고 다른 하나는 거북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솝이 의도했던 현상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토끼와 거북을 단순히 동물로만 생각하지 않고 그들 달리기의 교훈적인 의미로 언제나 되새기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토끼와 거북을 존경하는 것이 참으로 공교로운 사실이지만 더욱 공교로운 것은 토끼와 거북에 대한 그들의 상반된 해석이었다. 달리기를 그들 생존의 공통분모로 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토끼와 거북에 대한 서로 상반된 해석은 다소 의외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달리기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솝우화의 내용이 어떻든 토끼를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거북을 존경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어떠한 해석의 차이인지는 대충 이러했다.

"내가 토끼를 존경하는 것은 아량과 양보의 정신이다. 잘 뛰는 쪽에서 못 뛰는 쪽에게 보내는 그런 아름다운 마음씨 말야. 정말 토끼가 낮잠을 자다 거북이에게 진 것일까? 사실 토끼는 느리게 걷는 거북이를 위해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려고 했던 것이며 거북이와 함께 삶의 의미를 체험하고자 했던 것일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거북이는 영원히 토끼를 이길 수 없었을 거야."

"나는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거북은 결코 토끼를 이길 수 없도록 운명 지워져 있어. 하지만 난 단지 거북이의 인내와 꾸준한 노력을 높이 산 것이지. 타고난 재능보다는 꾸준하고 성실한 노력이 더욱 값진 것이 아닐까."

그들이 토끼와 거북이에 대한 생각이 다르듯이 달리기에 대한 의견도 서로 상이했다. 이를테면 한쪽이 지름길을 찾아 약간의 모험도 감수한다면, 다른 쪽은 선배들이 이미 뚫어 놓은 기존의 길을 달리는 안정된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달리기가 그들 생존의 유일한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그 둘 만이 남아버린 현실에서 다른 쪽을 짓밟아야 한다는 그 탐욕스럽고 잔인한 현실이 정말 가슴이 아팠다. 비록 그들의 외부적 환경이 생존을 위한 거친 숨을 내쉬게 했지만 그들의 내면은 언제나 사랑과 위안과 이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외부적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정말이지 둥근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살아가기 위해 서로를 짓밟아야 한다는 현실을 자꾸 뿌리치고만 싶어졌다. 둘은 여전히 얼굴을 마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토끼를 존경하는 쪽이 말했다.

"우리 둘 다 거북이가 되는 것이 어때?"

거북을 숭배하는 쪽이 몸을 약간 흔들며 대답했다.

"넌 토끼를 존경하잖아. 우리 둘 다 거북이가 되는 건 둘 다 불행해 지는 건 아닐까?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우리 둘 중에 하나는 승자가 되어야 돼. 경쟁사회의 기본적인 원리가 아닌가 말야. 선의의 경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지. 승자가 없는 경쟁사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니."

토끼를 존경하는 쪽이 다시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불행한 건 아냐. 둘 다 승자가 되는 방법이 있다면 말야. 그렇게만 된다면 경쟁에만 의존하는 살벌한 사회에서도 벗어나지 않을까."

거북을 존경하는 쪽이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둘 다 승자가 되는 방법이 뭔데?"
"이미 말했잖아. 둘 다 거북이가 되자고. 둘 다 이 길 위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자는 거지.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말야."
"나 참, 잠자는 토끼는 들어봤어도 잠자는 거북이는 영 어색한데."
"좀 어색하긴 하지. 우리의 인식 속에 익숙한 상황이 아니니 말야. 하지만 묵묵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거북이가 휴식을 취하는 것은 결코 어색한 것이 아니라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니. 이번 기회에 우리가 이러한 인식 범주를 한 번 만들어 보는 건 어때! 잠자는 거북이를 말야!"

이제 그 둘은 ― 끝까지 숨기려고 했지만, '잠자는 거북' 의 창조자로서 그들의 이름을 이제 밝혀야만 하겠기에 ― 그 두 마리의 정자는 치열한 경쟁을 포기하고 거북들이 되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자들의 경쟁들은 또 끊임없이 이어지겠기에. 잠 속으로 빠져들기 전에 두 정자는 이렇게 기도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건대 난자가 하나 듯이 정자도, 아예 처음부터 건강한 것으로 하나만 만들어 서로를 죽이는 치열한 경쟁을 없애주시기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