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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출
실업자가 된 요즈음 나는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다. 아내가 집을 비우는 낮 동안 나는 대충 집안일을 정리하고 잠에 빠져들기가 일쑤이다. 아내와 시간이 겹치는 서너 시간을 제외하고 대체로 밤 12시 이후는 잠들지 못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 급기야는 밤낮이 뒤바뀐 생활에 익숙해진 것이다.
밤 시간 동안 나는 혼자 술을 즐겨 마신다. 아무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술이나 마셔대는 나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직장을 잃고 난 후 한 동안 실의에 빠지긴 했으나 다시 의욕적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자 했고 아내도 내게 힘을 보태주었다. 하지만 의욕과는 달리 시간만 흘렀고 새로운 일은 계획의 단계에서 포기하기가 태반이었다. 아내도 더 이상 참아 주지 않았다.
아내가 직장을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뜻하지 않게 전업주부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내 유일한 낙은 영화를 보거나 되지도 않는 꽁트를 쓰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밤새 술을 마시며 영화를 보거나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는 것은 어쩌면 못난 자신에 대한 자학적인 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생긴 버릇이 하나 있다면 가끔 새벽에 해장국집을 찾는 것이다. 아파트에서 걸어서 10분쯤 걸리는 일출이라는 해장국집이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에 탈 때 마다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다.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 관한 기억, 혼자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던 기억이다. 누구나 한 번쯤 하는 상상이고 뻔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내게는 그런 상상이 현실로 일어난 적이 있었다. 15층에서 탄 엘리베이터가 11층에 접어들 때였다. 갑자기 전원이 꺼지면서 멈추어 선 것이다. 잠시 뒤 전원은 들어왔지만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가 몰려왔다. 추락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날 것 만 같았다. 밀폐된 엘리베이터의 공간 속에서 혼자 추락해 끝장나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지금 다시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내가 아파트의 정문을 나서자 말자 처음 목격한 것은 개 한 쌍이다. 암, 수 두 마리면 좋을 것 같다. 녀석들이 암, 수인지를 구분할 수는 없지만 흐릿한 형체로 판단해 보더라도 그들은 내게 낯익은 개들은 분명하다. 유난히 떠돌이 개들이 많았고 그 개들은 대부분 엇비슷한 생김새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개들에게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개들도 내게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이나 개들에게 습관화된 모습인지도 모른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그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이 존재한다. 나는 도로변에 쭈그리고 앉아 개들을 바라본다. 그들도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깨어지기 어려운 습관 같다.
아파트 앞으로 나있는 텅 빈 도로는 적막에 눌려있다. 가는 빗물에 촉촉이 젖은 도로가 외로워 보인다. 가로등이 적막감에 익숙한 모습으로 서있다. 도로를 따라 조금 나아가자 가로등에 기대어 오줌 줄기를 내뿜고 있는 한 사내가 시선으로 들어온다. 술에 취한 듯 몸을 기우뚱거리며 뿜어대는 오줌 줄기가 갈 지 자로 흔들린다. 나는 그 사내를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곱슬머리에 안경을 쓰고 늘 같은 양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상처(喪妻)한 9층 K다. 나는 그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그냥 지나쳐 걷는다. 뒤돌아보니 그는 불안하기는 하나 귀소 본능에 충실한 모습이다. 비틀거리며 아파트 정문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들어가고 있다. K와 나는 같은 동 같은 라인이다. 나는 그보다 6층이 높은 15층이다. 나는 상가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주차장에서, 거리에서, 가끔은 카페 수에서 그를 보았지만 단지 가벼운 목례만 나누곤 했다. 그런 어색한 관계는 나의 탓인지 그의 탓인지 아니면 모두의 탓인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처를 했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도 나는 그저 지나쳐가는, 스쳐가는 K의 얼굴만이 파편처럼 떠오를 뿐이었다. 그를 지나치면서 쳐진 그의 어깨가 또 다른 파편처럼 다가온다.
CAFE 수. 직장을 다닐 때는 귀가 길에 언제나 들르곤 하던 카페다. 직장을 그만 둔 뒤로 발길을 끊었다. 직장과 집 사이에서 삶에 다시금 들뜨게 하고 흥얼거리게 해주었던가. 얼음 같은 현실을 잊고 뜨거운 꿈과 이상의 열정으로 위안해 주었던가. 나이를 잊던 곳이었다. 시간을 멈추어 주던 곳이었다. 차가운 현실로 인해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주던 곳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던 곳. 내 눈물마저 닦아주던 곳, 내 상처마저 감싸주던 곳, 그런 곳 카페 수의 네온도 꺼져있다. 문득 웃음이 나온다. 인간은 심각할 정도로 감정적인 동물이란 생각에. 카페 주인은 얼음을 뽀드득 뽀드득 씹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얼음을 씹어대면서 내게, 손님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너무 열정적이거나 감상적인 것도 좋진 않지요. 카페의 얼음은 바로 그래서 필요한 것이지요. 그럴싸한 말 같았지만, 그가 손님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터득한 눈치의 소산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럴듯한 위로가 되곤 했다. 그래서 카페 수는 그 명칭과는 달리 주인의 수준이 다소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는 여전할 것이다.
카페 수를 나와 오른쪽 모퉁이를 돌면 작고 아담한 벽돌 건물이 보인다. 초등학교 건물이다. 가끔씩 들러 그네를 타거나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던 곳이다. 그러나 이제 발걸음을 끊은 지도 오래되었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과 달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던 곳이다. 가끔씩 떠오르던 나의 어린 시절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하던 곳이기도 하다. 벤치에 앉아있으면 수많은 느낌들이 별들이 되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긴 시간을 건너온 느낌이었다. 내가 얼렁뚱땅 갑자기 커지기만 한 느낌이었다. 도대체 나의 머릿속이 무엇으로 채워져 왔는지 싸늘한 느낌이었다. 내가 어디로 가고만 있는지도 모르는 느낌이었다. 무언가를 풀어 헤쳐 놓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막연한 느낌이었다. 하늘의 별과 달을 바라보며 들뜬 열기와 취기에 해본 어리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해장국집 일출의 붉은 네온이 반짝이고 있다. 식당으로는 근처에서 유일하게 꺼지지 않은 네온이다. 반갑다. 해장국과 일출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이상하게도 주인은 일출의 사진들에 집착했다. 나는 언제나 좋은 뜻이려니 생각해왔다. 식당 안 벽면에도 대형 해돋이 사진이 걸려있고 카운터 뒤 벽에도 일출 사진의 액자가 결려있다. 대머리 주인이 일어서면 뒤쪽의 떠오르는 태양이 후광처럼 보인다. 나는 해장국집으로 들어가 카운터에 앉아 목을 돌리며 잠을 깨우고 있는 주인에게 인사를 한다. 주인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항상 앉는 자리에 다른 손님이 먼저와 앉아있다. 나는 주방이 정면으로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해장국을 주문한다. 창문 밖으로 옅은 어둠이 걷혀 가고 있다. 해장국이 금방 나온다. 나는 해장국을 먹기 시작한다. 큰 깍두기를 입으로 밀어 넣고 아작거리며 씹는다.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려간다. 해장국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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