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www.thehorrorblog.com/2006/09/
이혼 날의 연가
정 만찬과 한 마리. 그들은 이혼 도장을 찍기 위해 법원을 찾았다. 서로 남남이 되기 위해 함께 마지막 외출을 한 것이다. 그들의 외출은 거의 10년 만이었다. 만찬 씨의 직업이 밤낮이 뒤바뀐 밤무대의 가수이고 마리 씨가 낮에 봉제공장에서 재봉틀을 돌리고 있으니 둘이 함께 하는 외출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에겐 자식이 없었으니 더더욱 의기투합되기가 어려웠다. 이혼 도장을 찍는 날이 10년만의 외출이 되어버렸으니 남남이 되려는 순간이었지만 서로의 감회가 남달랐다. 만찬 씨는 만찬 씨 대로 약간의 아쉬움이 없지 않았으며 마리 씨는 마리 씨 대로 밤낮이 뒤바뀐 남편에게 동정이 갔던 것이다. 사실 그들의 이혼이 아주 사소한 일에서 터져 되돌릴 수 없는 지경까지 왔지만 서로의 자존심이 서로에게 고개 숙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10년의 결혼 생활 동안 묵묵히 서로를 잘 참아와 준 부부이고 보면 이번의 이혼 사건은 납득키 어려운 구석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마도 그것은 10년이라는 변화 없이 지나간 시간들이 그들에게 가져다 준 삶의 권태와 연관이 되었음이 분명했다. 두 사람이 법원 건물을 마주보고 섰을 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10년만의 외출이며 마지막 외출을 위해 식사나 함께 하자는 말이 동시에 튀어 나왔다. 그 말의 내용도 똑같았다.
“식사......”
그들은 굳이 반대를 하지 않았다.
“저기 저 뷔페가 어때?”
“그러죠 뭐.”
그들이 향한 곳은 법원 근처의 뷔페였다. 그들이 뷔페를 선택한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 그대로 대식가였으니 말이다. 만찬(晩餐)씨는 신들린 듯이 음식을 먹어 치웠으며 마리 씨는 통닭이던 돼지던 거의 한 마리 단위로 상대를 했다. 그리니 뷔페가 그들의 취향에 맞을 수밖에 없었다.
뷔페에 도착한 그들은 접시에 음식을 가득하게 담아 네다섯 번을 날랐다. 옆 좌석에 앉아있던 자잘한 위를 가진듯한 작은 사람들은 곁눈질을 해가며 혀를 껄껄껄 차기만 했다. 도대체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만찬 씨와 마리 씨는 그런 사소한 일에 의기소침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입 속으로 음식들을 밀어 넣었다. 사실 그들은 이혼을 앞두고 긴장을 한 탓인지 전 날 저녁부터 식사를 거의 걸렀다. 그랬기에 그들의 식욕은 상승해 있었다. 식욕 앞에서 그들은 더 이상 이혼을 앞둔 부부가 아니었다. 식사를 하면서 만찬 씨는 마리 씨에게 갈비 먹어봐, 라며 음식을 마리 씨의 접시에 옮겨 놓기도 했고 마리 씨 또한 이에 질세라 곰장어에요, 하고 만찬 씨의 접시에 들어 놓아 주었다.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는 것은 보기가 너무 좋아 느끼할 지경이었다. 이런 모습은 영락없이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상기시켰다. 옆 좌석의 사람이 세 번쯤 바뀌었을 때 그들의 배도 충만해졌지만 그러고도 디저트는 있는 대로 챙겨먹었다. 몇 번의 트림 뒤에 그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지만 여전히 그들에겐 어떤 여운(餘運)의 기운이 서려있었다. 이혼 도장을 찍어야했기에 언제까지 다정하게 앉아서 히히거릴 수만도 없었다.
그들이 뷔페를 나오자 약간 구름이 끼어있던 하늘이 갑자기 시꺼멓게 변하면서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도 없었던 폭우였다. 바로 왼쪽으로 법원 건물이 보였지만 비를 맞으며 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뷔페에서 다정하게 식사를 했지만 밖에서까지 함께 붙어있기는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서로 약속 시간을 정해 놓고 법원에서 만날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마지막인데 굳이 그렇게 까지야.’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뷔페의 입구에 서있었다. 곧 지나갈 비라고 생각하면서 함께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비는 퍼붓듯이 내렸고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자 약간 초초해졌다. 만찬 씨는 법원으로 달려가고 싶었고 마리 씨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런데 갑작스런 사건이 벌어졌다. 골목을 지나가던 트럭이 더러운 진흙탕 물을 만찬 씨와 마리 씨에게 퍼붓고 말았던 것이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돌발적인 사태였다. 그들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실 눈도 뜨지 못할 지경이었다. 포장이 되지 않은 골목이라 흙탕물 세례를 심하게 받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여관이란 간판을 내걸고 있는 바로 옆 건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결국 이혼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마리 씨의 임신 때문이었다. 그날 마리 씨는 임신을 했고 얼마 뒤 만찬 씨는 ‘성빈’ 이란 애명으로 밤무대를 떠나 방송국의 전속 가수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10년만의 외출, 그리고 그 이혼의 날이 그들에게 황금 알을 낳았던 것이다. 그들의 식욕과 성욕, 그 본능은 또 어떠했는가? 그들의 무의식 속에 도도하게 흐르던 본능에 대한 갈망. 이미 그들은 도장 찍기를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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