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37 아프리카에는 야후가 없다?(3) 아프리카에는 야후(Yahoo)가 없다? (3) 위의 캡처 이미지에서 보는 것처럼 아프리카 대륙에는 국가별 야후 없다는 것은 이미 이전 글들 에서 몇 번 언급을 했습니다. 물론 중동에서도 야후의 국가별 포털 사이트가 없다 는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입니다. 미래의 경제적인 잠재력을 가진 수많은 아프리카의 국가들을 등한시한다는 것은 야후의 미래를 보아서도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의 국가들 중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South Africa)같은 국가는 경제규모도 크고(이미 인도네시아와 비교를 했습니다) 전략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여겨지는데 야후 포털이 없다는 것이 의외였습니다. 아직까지 확실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아직은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이 타당하게 보입니다. 야후가 미래의 잠재력을 보고 불확실한 현실에.. 2008. 8. 29. 피와 뼈 피와 뼈 낯선 삶이었다.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나 공간등 간과 할 수 없는 여러 주제들, 이를테면 광기의 역사적 상징성, 불행한 가족사의 부조리함, 개인의 병적 심리 등 역사라는 거창한 주제에서부터 가족사의 비극과 한 개인의 심리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감상의 자료를 제공해주었지만, 나의 생각은 인상적인 한 인간의 괴물 같은 삶(연기)에 주로 매달렸다. 아마도 낯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 내내 김준평(기카노 다케시)의 ‘괴물성‘ ’야수성‘의 근원이 어디에서 있는지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괴물성‘ 과 영화의 어디에도 그 인과성을 찾지를 못했다. 김준평의 괴물성을 일본 제국주의에 항의하는 메시지로 읽고자 했으나, 그것은 넌센스 같았다. 아니 관객인 내가 그렇게 해석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없을 것이다.. 2008. 8. 28. 형제와 사탄사이 형제와 사탄사이 이미지 출처: 뉴시스 야후미디어 뉴스 에서 기사 내용 캡처 기독교는 관용을 모르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배타의 종교이며 그 자체로 중심이다. 신의 섭리만이 존재한다. 기독교는 그 테두리에서는 모두가 형제이고 자매이며 사랑과 희생과 평화와 봉사를 부르짖지만 그 바깥 테두리의 이교들에게는 잔인하다. 함께 살아 온 이 자연과 전통과 민족이라는 테두리는 중요하지 않다. 이교도란 한낱 사탄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온화한 기독교인들이라고 해도 그 마음의 밑바탕에는 신의 섭리만을 믿는다. 관용이란 없다. 관용을 누릴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님과, 그 독생자 예수와 성령의 존재를 믿는 신자들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 휴거를 예언한 목사가 있었다. 그 목사는 휴거 의 .. 2008. 8. 28. 토니 타키타니 토니 타키타니 단편소설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의 이 영화는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를 영상화한 것입니다. 다른 영화들에 비에 다소 짧은 편(76분)이지만 진지하고 무게감 있게 다가옵니다. 간결하고 경쾌한 문체에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주제를 담고 있는 하루키의 소설(읽는 것은 《상실의 시대(Norwegian Wood)》가 유일하지만)과 마찬가지로 경쾌하고 간결한 문체를 마치 눈으로 보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문장이 간결하면 경쾌해지고 또 스타카토의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단문과 단문사이의 여백은 ‘인상’을 만드는 유용한 공간으로 존재합니다. 선에 비유하자면, 점선이 완전한 선은 아니지만 더욱 인상적인 선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점과 점 사이의 공간 덕분입니다. 실선은 완전하나 점선보다 인상.. 2008. 8. 26. 이전 1 ··· 47 48 49 50 51 52 53 ··· 8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