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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녹차의 맛(3)

by 컴속의 나 2009. 4. 26.







이미지 출처:http://kr.image.yahoo.com/GALLERY/read.html?img_filename=44e56fc0f103


녹차의 맛(3)
-사춘기의 내상(內傷) : 손자 또는 하루노 하지메

영화의 첫 장면은 하루노 하지메의 뜀박질로 시작된다. 전학 가는 짝사랑, 스즈이시가 타고 가는 기차를 보기 위해서 뛰고 또 뛴다. 그녀에게 마지막 작별의 손짓이라도 보여주기 위한 필사의 뜀박질이다. 기차는 하지메의 이마를 뚫고 지나간다. 떠나가는 기차를 보는 하지메의 이마에는 떠나간 기차의 뻥 뚫린 흔적이 남는다. 엽기적인 표현이지만, 그 이상의 큰 아픔일 것이다. 만개한 벚꽃 나무, 들판 풍경, 나지막한 산, 개울이 정물처럼 나타난다. 하루노 하지메의 내면의 풍경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동시에 그 내면을 위로하는 자연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메의 여동생 사치코, 낙원을 상실한 그 사치코가 밀려가야 하는 곳은 사회라는 신대륙이다. 황량한 신대륙, 실낙원의 초입에서 주저하고, 당황해하고, 어쩔 줄 몰라 할 때, 하지메는 신대륙의 좀 더 깊은 곳을, 으슥한 곳을 탐색하고 조심스럽게 더듬는다. 사치코는 그렇게 하지메가 된다.

이로써 우리는 지나간 시절의 또 다른 액자 하나를 갖게 된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있다. 눈처럼 서럽도록 내리는 벚꽃 나무가 있다. 눈물처럼 애잔히 흐르는 개울도 있다. 서러움 풀어 놓아야 할 두 눈 시리도록 푸르른 들판도 있다.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그 둘 사이, 아니 하지메 혼자만의 소름 끼치도록 전 육체의 감각 세포들을 돋아나게 하고 고양시키는 이성에 대한 순수한 감정이 있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혼돈과 격정을 고스란히 보듬고 있는 풍경화 같은 한 폭의 그림이다.


이미지 출처:http://kr.image.yahoo.com/GALLERY/read.html?img_filename=44e56fc0f103


이걸 좀 더 넓혀보면, 젊은 날을 거친 모든 인간들의 추억들 속에서 강렬한 인상으로 남을 만한 한 폭의 그림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전제가 있다. 이러한 강렬한 인상은 쌓여있는 현실의 먼지를 털어내어 야만 도드라져 나와 우리의 감정을 자극할 것이다. 우리의 감정이 그만큼 무뎌져 버린 탓이다.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얼마나, 얼마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가! 우리가 순수하게 아름다워 질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그림이지 않는가? 우리의 감정을 이토록 순수하고 소름끼치도록 고양시켜주는 것들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영화의 첫 시작은 인상적이다.

사랑이라 부르기에는 아직 영글지 않은 감정이고 우정이라 하기에는 이성적 호기심이 강렬한 감정이겠지만, 아무튼 스즈이시의 작은 날갯짓이 하지메에게는 지축을 흔드는 크나 큰 충격으로 다가 온다. 스즈이시가 전학 온 날 교실을 맹렬히 휘젓던 돌풍보다도 칠판 앞에 서있던 스즈이시에게 넋이 나간 채 빠져들던 하지메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한다. 스즈이시는하지메에게 돌풍보다도 더 강렬하게 그의 넋을 빼앗아 놓는 존재가 되고 만다.

하지메는 중성같은 외모를 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영화의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아직은 사랑이라고 불리기에는 애매모호한 순수한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성에 가장 무지하고 순수하면서도 그 설레임의 감정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느 시기보다 야릇하고 강렬하게 고양된 감정으로 지배되는 시기. 이러한 감정은 사춘기라는 신대륙상에서의 새로운 발견이다. 새로운 발견이란 성장의 과정이고 단계이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들 중에 ‘이성에 대한 눈뜸, ‘ 바로 이것은 파열되고 단절된 실낙원에서 결합과 완전으로 향하려는 성적 호기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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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헤어짐이다. 성적인 호기심의 당사자, 스즈이시가 주위에서 볼 수 있다는 것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이다. 스즈이시가 떠남으로써 그녀를 중심으로 궤도를 돌던 하지메는 졸지에 궤도를 이탈한 별이 되고 만다. 그것이 바로 하지메에게는 사춘기의 내상으로 자리하게 된다.

하지만 이 내상이 상처만으로 끝난다면 성장은 멈추고 말 것이다. 애틋한 감정을 삭여야 하는 법 또한 배워야 한다. 내상은 오래 가겠지만 치유해야만 한다. 현대 문명에서 이 내상에 의해 발생하는 숱한 후유증을 목격한다. 내상을 차분하게 치유하는 여유보다는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를 수 없이 많이 목격한다. 마치 그것이 권리인양 말이다. 치정에 얽힌 수많은 범죄, 자살, 중독 등이 그것을 입증한다. 때로 실수와 치기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차분하고 한 박자 느린 호흡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다. 바로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의 하지메의 바로 그 모습처럼 말이다. 녹차처럼 차분한 마음으로 음미해 볼 일이다. 자연이 상징하는 것의 의미를 음미해 볼 일이다. 그래서 첫 장면은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메의 이성에 대한 감정의 촉수는 점 점 더 섬세해 질 것이다. 또 섬세해 질수록 그 감정은 무뎌지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성장의 과정이다. 스즈이시가 떠났지만 사회는 하지메를 여러가지 방식으로 시달리게 할 것이다. 추근거리고 스캔들을 만들어 내기도 할 것이다. 국수집 사건과 편의점 사건이 바로 그런 예이다. 그렇게 하지메는 이성 문제를 비롯한 사춘기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조금씩 성숙한 안목을 갖게 될 것이다. 녹차의 맛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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