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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녹차의 맛(2)

by 컴속의 나 2009. 4. 19.








녹차의 맛(2)

실낙원: 손녀 또는 하루노 사치코

파라다이스 또는 천국은 다름이 아니라 엄마의 자궁이다. 이곳처럼 행복한 곳도 없다. 인간은 엄마의 자궁을 나오는 순간 낙원을 상실한 실낙원의 존재가 된다. 완전무결했던 세계가 파열된다. 양수가 터지고 탯줄이 잘린다. 파열과 단절의 세계이다. 이 세계에서 아이는 서서히 결핍을 느껴가기 시작한다. 혼자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 또는 걱정이 싹튼다. 이것은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표현력의 부재나 특정한 환경에서 형성된 특이한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난 모든 인간이 봉착하는 보편적인 문제이다.

엄마의 자궁속 세계와 파열되고 단절된 세계에서 느끼는 상이함의 간극은 참 클 수밖에 없다. 단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뿐이다. 어린 시절을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는 어른의 입장이지만, 그것은 분명한 진실일 터이다. 아이는 엄마의 배속과 세계 사이에서 엄청나게 큰 생물적인 조건의 차이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한마디로(그러나 아이의 기억 속에서는 묻혀 버린, 물론 어른들의 기억에서는 더 더욱 멀어진) 불안함과 당혹함일 것이다. 이제는 자궁처럼 완벽한 생존의 조건이 갖추어진 낙원이 아니라 자신이 맞추어가야만 할 불안한 외부의 조건인 것이다. 알을 깨고 나온 순간 날아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처럼. 물론 이러한 박탈감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세계일 것이다(자궁이라는 낙원에서의 삶을 기억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러한 낙원을 상실한 아이의 반응은 대체로 어떻게 나타날까? 물론 두려움과 불안감이다.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존재로 서야 한다는 사실을 무언으로 확신하는 순간 당혹감과 불안감이 밀려온다. 외부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혼자 일어서야 한다. 엄마의 배속 자궁의 그 아늑하고 평온한 세계를 떠나 이제는 자신이 여러 조건들에 적응을 해야만 한다. 주위의 환경이 요구하는 모든 것들에 적응해야만 한다. 이 또한 분명한 이유를 모른 채 효율적으로 수행해야만 한다. 초등학교 1, 2 학년만 되어도, 아니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홀로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언제나 엄마의 가슴에 안겨있고 싶은데, 엄마의 젖을 빨고 싶은데 사회는 그러한 행동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어른들의 난해한 언어들이 난무한다. 소통이 가장 어려운 두 세계는 어른과 아이의 세계인지도 모르겠다. 이유를 모른 체 낙원을 상실해야 만하는 아이는 멍해 질 수밖에 없다.

둘째로, 외로움이다. 외로움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다. 물론 이 외로움은 어른들이 느끼는 삶에 대한 외로움과는 완전히 다르다. 뭐랄까, 혼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느낌 같은 것이다. 아이는 어느 일정한 시점까지 크나 큰 관심을 받는다. 물리적인 탯줄은 끊어졌지만 여전히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탯줄에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혼자 해야 할 시간들은 늘어만 간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또래 집단에서도 외로움은 늘어만 간다. 가족들로부터, 특히 엄마로부터 이전에 받았던 관심은 기대할 수 없다. 엄마의 배속으로 들어 갈 수도 없고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도 없다.




이처럼 낙원을 상실한 하루노 사치코의 충격 또한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치코는 고민에 빠져있다. 따라서 사치코의 마음속에 무슨 고민거리가 있는지를 헤아리는 것이 이 영화를 보는 흥미있는 관점들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바로 이 영화의 맛을 우려내는 하나의 녹차 잎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고민을 너무 쉽게 흘려버리는 경향이 있다. 아이의 고민 자체를, 아니 아이가 고민을 한다는 자체를 어처구니없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에게도 분명 고민이 있다. 무시해 버리는 것은 어른들의 자만심 때문이다. 아이들의 세계는 단순하다. 문제의 원인 또한 단순하다. 어르들은 너무 복잡함에 익숙해 있어서 일까?



사치코의 고민은 어른들의 자만심(무관심과는 성격이 다르며 아이들의 고민 자체에 대해 어른 중심적인 해석을 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내면화되었는지도 모른다. 이해 못할 어른의 세계가 하품을 유발할 정도로 고리타분하고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렇게 보면 몸집은 크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에겐 별 쓸모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실낙원에서 어른이 되어야만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사치코에게는 강박감이고 고민처럼 보인다. 사치코 혼자서 ‘미지의 세계’ 같은 놀이터에서 철봉 돌기 연습을 계속하며 마침내 철봉을 도는 것에 성공한 순간 사치코의 어깨를 짓누르는 강박감은 사라진다. 괴물처럼 그 자신을 바라보던 어른이 된 자신의 허상은 사라진다. 잡초 우거진 놀이터에서 혼자서, 마침내 철봉을 도는데 성공하는 사치코의 모습은 바로 사치코가 혼자서 걸어가야 할 어린 동심과는 점점 멀어져 가는 실낙원의 모습이며 사치코의 앞으로의 삶의 모습이기도 한 것은 아닐까?(*)


위의 이미지는 모두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PhotoList.do?movieId=40326 에서 가져 왔습니다.


2009/03/15 - [영화] - 녹차의 맛
2008/10/10 - [분류 전체보기] - 일본영화 음악 3곡(녹차의 맛, 우동,칠석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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