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꽁트

[꽁트] 왕몬도씨 고자되다(2)

by 컴속의 나 2008. 3. 2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http://kr.fun.yahoo.com/NBBS/n




 왕몬도씨 고자되다(2)


중복의 더위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비만인 그에게 여름의 폭염은 가시방석보다도 더 싫었다. 젊은 아내 석녀는 외출중이었다. 고등학교 동창들 계모임으로 아침 일찍 집을 비웠다. 그는 새파란 석녀가 요염하게 꾸미고 외출을 하는 것이 사실 두려웠다. 그의 그런 두려움을 눈치 채기라도 했는지 석양이 그의 귀에 대고 콧소리로 속삭였었다.


“자기, 나 당신밖에 없다는 것 알죠--응. 당신 두려워한다는 것 나 잘 알고 있다구요. 새파란 계집이니 그럴만도 하겠죠. 하지만 난 당신밖에 없다구요, 알겠죠, 응. 오늘밤에...응. 그럼 다녀올게요.”


그의 머리는 여전히 의심으로 가득 찼지만 석녀를 믿기로 했다. 그런 믿음은 사실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요염하게 차려 입은 그녀의 외출을 의심하고 흥신소 직원을 미행케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의심할 만한 일은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젊다는 것을 이해해주어야 했을 뿐이었다. 늙은 영감과 사는 것이 때론 고독을 몰아다주지 않겠는가? 미행한 흥신소 직원으로부터 그녀가 친구들과 어울려 오락실과 카페를 전전하고 쇼핑을 즐긴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그가 자신에게 한 질문이었다.


‘그래 그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다. 세대는 그 세대에 알맞은 놀이 문화가 있는 것이다.’


그때 그는 제법 아량 있는 표정으로 아량 있는 마음으로 아량 있는 말로 혼자 중얼거리며 자신의 아량에 흐뭇해했었다. 그는 그런 아량을 가지고 그날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그가 살고 있는 15층의 아파트로 들어와 뚫려있는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다 열어 젖혔다. 열려진 창문들을 통해 제법 서늘한 바람이 그의 땀에 젖은 몸뚱이에 와 닿긴 했지만 땀은 여전히 비오 듯이 퍼부었다. 현모양처인 석녀가 데리고 온 애완용 개가 낑낑대는 것도 짜증나는 일이었다. 그는 점심때 먹었던 보신탕을 생각했다. 하지만 석녀가 그가 사준 보석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끔찍이도 좋아하는 애완견이고 보면 그의 개에 대한 영향력은 보잘 것이 없었다. 물론 보잘 것 없는 크기가 보신탕 감으로도 부족했다. 시계의 시침이 3이란 숫자를 살짝 넘어 있었다. 그는 낮에 구입한 비아그라 병을 들고 알약 두 개를 끄집어내어 단숨에 삼켰다. 흐흐흐. 그리고 그는 선풍기 앞에 벌렁 드러누워 약의 효능이 효과적으로 몸으로 퍼지기를 바랬다. 그런데 불행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방심한 탓이었을까. 믿기지 않는 사건이었다. 그 병아리만한 애완용 개가 비아그라 통을 입에 물고 베란다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재빨리 달려가 약통을 낚아채려 했지만 이미 늦어있었다. 비아그라 통은 개의 밉살 맛은 주둥이를 벗어나 중력의 노예가 되어 낙하를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아악. 아까운 비아그라. 거금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그가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땐 이미 가속도가 붙어 엄청난 속력으로 떨어져 흙바닥이긴 하지만 살인적인 마찰력으로 인해 박살이 난 듯 비아그라 통은 흔적조차 없었고 사방에 흩어져 있을 알약들의 흔적도 알 길이 없었다. 사람도 병아리 만하게 보이는 판에 알약이야 오죽하겠는가. 15층이란 물리적인 거리는 그것을 구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약과 약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듯 했지만 그것들의 존재를 어렴풋이 확인시켜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개였다. 약통이 떨어졌을 법한 자리에 개 한 마리가 열심히 무언가를 핥고 있었다. 그것은 비아그라가 분명했다.


“오오, 저놈에 개새끼가!”


비아그라를 핥아먹고 있는 똥개(?). 그는 석녀의 그 밉살맞은 애완견을 노려보았다. 고의가 아닌 듯 능청을 떨고 있었지만 그건 고의가 분명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연의 똥개(?)를 위해 비아그라를 선사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정황으로 보아 그렇게 의심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개연성이 있는 추측이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개 같은 일]이란 관용어를 상기해보면 이런 개 같은 일이 일어날 법도 하지 않는가.


‘이런 개 같은 일이’


그는 석녀의 애완견을 창 밖으로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순간 그의 머리 속을 스쳐 가는 생각에 그 지독한 감정을 억제할 수 있었다. 아니 훗날을 위해 억제해야만 했다.

‘내연(內緣)의 그 똥개(?)를 은밀하게 만나겠지……’


미행이란 말이 떠오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고 동시에 복받치는 감정을 억제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밉살맞은 현양의 애완견을 미행한다면 분명 단서가 잡힐 것이다. 그는 일단 일보 전진을 위해 한 걸음을 후퇴하기로 마음을 다져먹고 애완견을 노려보았다. 애완견은 꼬리를 내린 채 석녀가 밥통을 놓아주는 부엌과 거실의 경계를 구분하고 있는 듯이 놓여있는 식탁 아래로 숨어 들어갔다. 그는 다시 애완견을 째려보았다. 그리고 옷을 주워입고 밖으로 나갔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