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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본영화] 무사의 체통(2)

by 컴속의 나 2008.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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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의 체통(2)


일본이 진정으로 무사의 체통을 찾는 길은 군국주의에 대한 참회라고 강조한 글을 썼다. 이것은 영화외적인 상황을 영화 해석의 수단으로 이용한 경우이다. 그러나 영화를 지나간 과거의 틀로만 해석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니 바람직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우리처럼 사무라이에 대한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는 나라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화 자체를 통해 일차적으로 영화를 해석할 것이다. 그러다 해석의 방법을 다양화해가다보면 일본의 군국주의와 대면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영화외적인 상황을 영화 해석의 근거로 삼든, 영화 자체를 해석의 근거로 삼든 보는 이의 다양한 시각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즉, 어떤 영화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혼돈에서 질서가 생겼듯이 한 편의 영화도 수많은 해석에 의해 의미들이 생산되는 것이다. 해석에 의해 의미가 명료해 질수도 있고 더욱 불명료해 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의 이론에 기반을 둔 난해하고 현학적인 영화 해석이 후자의 경우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다양한 여러 해석들, 심지어 난해하고 현학적인 해석조차 하나의 텍스트로 귀를 기울이는 개방된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어느 민족이고 타민족에게 너그럽지 않다는 것은 역사의 수많은 전쟁들과 분쟁들이 증명해 준다. 심지어 민족 간에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수없이 목격할 수 있다. 인간은 왜 같은 동족에게 칼을 들이대고 총부리를 겨냥하는가? 이 질문은 인류가 풀어야할 영원한 과제가 아닐까 한다.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도 결국은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정착한 것이다. 같은 동족에게 피를 요구하는 문화였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가 오랜 전통이 된 것은 그 시대적인 상황을 배우지 않고서는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사무라이를 있게 한 시대적인 상황에 대해서 언급하기에는 지식이 너무 짧다. 따라서 영화에 나타난 사무라이와 사무라이의 생활, 그리고 일반적인 일본 문화에 대한 몇 가지 인상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의 문화로 사무라이 문화를 이해하게 될 때 <무사의 체통>은 좋은 자료들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일본 문화에 대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우선 <무사의 체통>을 통해 사무라이의 생활이 대단히 절제 있고 금욕적임을 알 수 있다. 미무라가 먹는 음식이나 입는 옷, 행동과 말씨를 통해 사무라이의 생활이 금욕적임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미무라의 식사가 스님의 탁발을 연상시킬 정도다. 이러한 사무라이의 금욕주의는 가마쿠라 시대(1192~1333)의 금욕적인 군사규율과 무로마치(1336~1573) 시대에 불교의 영향을 받아 사무라이 문화로써 무사도의 경지로 정착되는데 <무사의 체통>은 그러한 사무라이의 무사도(武士道)를 잔잔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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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http://www.news365.com.cn/wxzt

대개의 사무라이 영화가 그렇지만 사무라이의 위계질서와 규율은 가혹할 정도로 엄격하다. <바람의 검>에서 사무라이의 그러한 엄격한 규율을 실감나게 볼 수 있다. 사무라이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의 작은 실수도 할복이란 극단적인 방법으로 만회한다. 주군의 식재료로 싱싱하지 못한 붉은 골뱅이를  선택한 식재료 담당자가 할복하는 것이 그렇다. 결과적으로 붉은 골뱅이를 먹은 독미역사인 미무라 신노조가 맹인이 되고 사무라이로서 처참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러한 실의는 전사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데서 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마다에게 복수를 불태우면서 비로소 사무라이로서 살아나는 듯하다. 맹인이지만 무사의 체통을 회복하려는 미무라의 모습에서 무사도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맹인 무사의 주제는 <자토이치>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또한 검도 도장에서 스승에게 가르침을 부탁하면서 스승과 나누는 대화에서 그리고 미무라가 되풀이 하는 과거 스승으로부터 들었던 말에서 무사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알겠냐. 미무라. 목숨을 주고받는 진검승부는 도장에서의 검술과는 다르다. 상대는 무엇을 할지 몰라. 칼끝을 피하지 마라. …… 너는 죽을 각오가 되었고 상대는 사는 것에 집착하고 있어. 그것 밖에 없다. 네게 기예를 전수할 때 전해줬던 말이 있었다. 기억하느냐?”

“같이 죽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라. 승리는 그 가운데 있으니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산다.” 


그리고 시마다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독미역사의 권태로움에서 깨어난 무사도의 외침이며 무사의 체통과 명예를 지키려는 사무라이의 전의인 것이다.


미무라에게는 토쿠헤(사사노 타카시)이라는 몸종이 있다. 토쿠헤이(천민)의 존재는 사무라이의 신분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세기초부터 사무라이는 지방귀족계급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농부, 장인, 상인들을 지배하는 계급으로 급부상한다. 실제로 부유한 상인이나 장인들이 사무라이와 혈연으로 맺어져 권력적인 기반을 닦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무라이 계급도 일반사병과 가신(家臣), 제후(諸侯)그리고 쇼군(將軍)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으로 분화되어 있긴 하나, 아무튼 사무라이가 존경의 대상이 된 것은 분명하다. <바람의 검>에서 몰락해가는 사무라이를 보게 되는데 사무라이의 몰락은 18세기 메이지유신으로 근대적인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 이르러서이다.


미무라는 주군으로부터 봉록을 받는 무사로 주군의 식사에 든 독을 감별하는 독미역사이다. 그런 하위 사무라이가 몸종을 이끌고 있는 것은 사무라이의 계급적인 위치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무사의 체통>에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절대적인 복종이 있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자의 위치는 분명하다. 아내 카요(단 레이)는 미무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듯이 보일 정도이다. 위계질서하의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카요의 바짝 엎드린 인사법을 통해 볼 수 있는 복종적인 여자의 이미지를 현대 일본 여성의 이미지와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사마다가 아내 카요를 성적으로 농락한 것은 맹인이 된 자신을 농락한 것과 같은 차원에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동시에 여자의 부정이 남편의 체통과 명예와도 관련이 되어 칼로 체통을 회복하는 것이 사무라이의 보편적인 방법인 것에도 무사도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또 하나의 것은 신사에서 발견한 스님의 존재이다. 카요가 남편의 건강을 위해 신사에서 기도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스님이다. 신사와 절이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는지 아니면 신사와 절이 공존하는 것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지만 토속적인 일본의 신앙과 외래 종교 불교가 만나 어떠한 형태의 종교를 만들어 내는지 호기심을 자아낸다.


지나쳐 버린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또한 이면의 의미를 통찰하기보다 표면의 인상만을 읽은 것이 안타깝고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이러한 호기심을 가지고 일본인과 일본 문화를 차근차근 알아보는 과정이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일본 영화를 보는 감동과 함께 재미중에 하나가 아닐까 한다. (*)


(2008.2.27.1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