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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26. 12:22

[꽁트] 잡글 인간




잡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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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별명은 잡글 인간이다. 그의 삶이 잡글처럼 잡스럽기만 해서 그가 쓰는 글도 장르불명의 잡글처럼 잡스럽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 별명은 다른 사람이 붙여준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붙인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서다. 그에게 유감인 점은 자신이 꽁트라고 생각하는 글이 소설, 더 나아가 웅대한 서사소설로 확대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더 축소되어서  꽁트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잡글이나 쓸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인식과 사고의 얄팍함에 대한 자조인 셈이다. 즉, 그에게 잡글 인간이란 말은 그렇게 잡글 밖에  쓸 수없는 운명과 동격인 것이다.


그의 삶이 잡글 처럼 잡스럽기만 하다는 말은 서사보다는 단편적인 에피소드, 아니 에피소드라 하기에도 좀스러운 짓들로 삶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과 같다. 깊이가 없고 무게 없이 살아왔다는 것이기도 하다. 인과의 꼬리를 물고 무는 삶의 이야기, 즉 서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단편적인 파편들로 흩어진 삶이었다는 것이다. 항상 우연적인 삶에는 인과가 반드시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인과로 엮으려는 상상력을 발동해 보지만 잡글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고, 그는 결심을 했다. 잡글 인간을 긍정하는 것이다. 삶의 편린들을 인과로만 연결시키지 말자. 삶에는 우연성이 인과의 고리를 맺은 필연성 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고. 특히 그의 삶을 언급하고자 한다면 우연을 개입시키지 않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삶을 되돌아보면 지나간 사건들이란 반드시 그러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필연으로 받아들여지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사실 잘못되었다. 순전히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너무 관용적인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사건과 사건, 인간과 인간을 인과로 맺어주는 어떤 실재란 존재 않지도(신의 부정은 아니다) 않고 따라서 동시에 필연 또한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필연이란 이름을 고상하게 달고 있는 것들 ― 필연적인 만남이니 필연적인 사랑이니 필연의 인연이니 하는 따위의 말들 ― 은 단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필연처럼 보이는 것은 그저 일시적이거나 자의적인 해석의 결과일 뿐이다.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그는 비록 잡글이 될 망정 그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꽁트를 쓰기 시작했고 자신의 삶과 의식을 단편적으로 반영하는 꽁꽁트들과 꽁트들 간의 인위적인 연결 고리를 찾아 이어 꽁트를 다시 모방적으로 확대재생산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두기로 하고 그저 그의 우연 한 토막을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내 삶 전체가 그렇지만 그 날은 특히 잊을 수가 없어. 아침에 잠에서 깨었는데 말야, 낯선 장소가 아니겠어.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신 날에도 이런 일은 없었거든. 그런데 전날은 술도 마시지 않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 침대에서 잠을 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거든. 그런데 낯선 곳이라니 말이 안 되잖아! 정말 기가 막혔어. 마법이나 꿈도 아닌데 말야.


놀란 중에서도 방안을 둘러보았지. 벽에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난 기절을 할 뻔했어. 그 액자 속의 인물이 말야, 내가 쓴 꽁트 속의 인물과 똑 같지 않겠어. 뒤통수가 담겨있는 사진 액자였거든. 그래서 창가로 달려가 거리를 내다보니 사람들이 다 뒤로 걷고 있는 거야. 이게 바로 내 꽁트 <뒤로 걷는 사람들>의 세팅과 똑 같았어. 이제야 내가 쓰고 있는 꽁트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인간들은 엉덩이에 눈이 붙어 있다. 하의(下衣)는 언제나 큰 구멍이 두 개가 뚫어져 있다. 그 구멍으로 큰 두 눈이 깜빡거린다. 눈의 형태는 같지만 그 기능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눈알이 360도 회전이 가능하다. 바깥은 물론이고 몸의 내부도 볼 수 있다.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알 수 있다. 음식물이 식도를 따라 위로 내려와 위액과 뒤섞이고 다시 대장 소장을 통해 똥이 되는 과정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눈이 엉덩이에 붙어있다 보니 입으로 음식을 먹고 똥을 눈다. 항문은 없다. 식도와 분뇨도가 입으로 통해서 입에서는 언제나 악취가 난다. 그들은 너무 익숙해져 악취라는 인식자체가 없다......<뒤로 걷는 사람들, P.1>


한 인간이 이런 세상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의 육체가 그야말로 터무니없이 비실용적으로 설계된 구조에 당황하지 않겠니. 아니 당황할 정도 그 이상이겠지.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지지 않겠니. 음식과 똥이 입으로만 들락거리는 것을 어떻게 참을 수가 있어. 음식물과 똥이 뒤섞이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물적인 구조는 그야말로 너무나 고역이고 최악이야. 상상만 해도 최악이야. 오직 꽁트 따위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다행스럽게도 거울을 보니 얼굴은 그대로였어.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어. 상상조차도 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현실적인 행동이 가능할 수 있겠니. 내가 쓴 꽁트 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었어. 그래서 내린 결론이 자살이었어. 나를 너무 비관론자로 생각지는 말아. 자살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글의 감옥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가 말야.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겠니. 또한 이 지옥 같은 곳에서의 삶 자체가 죽음이 아니겠니. 너라도 나와 마찬가지 결론에 이르렀을 거야


나는 자살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어. 침대의 카버를 찢어 연결해 방 천장에 연결하고 침대에 앉아 마지막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았지. 나의 행동이 너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에 말야. 이게 과연 나의 자유의지인가고 혼란스러워 진 것이지. 꽁트 속의 등장인물이 된 내가 스스로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가 하고 말야. 이 꽁트를 쓴 작가로서, 아니 내가 쓴 꽁트의 등장인물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그런 고민으로 하고 있을 때 짜증스런 고함 소리와 함께 갑작스러운 충격이 뒤통수로 전해져 왔어.


“이런 글을 꽁트라고! 완전히 잡글이구만! 에이~~.


이어서 충격은 뒤통수를 거쳐 머리로 다음에는 어깨로 그리고 배로 점점 아래로 전해서 발가락에 이르러 멈추었어. 책이 덮이면서 나는 책 속에서 압사당하고 만 것이지. 자살만이 아니었어. 압사도 있었던 거지. 나는 한 편으로는 행복했어.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러나 나는 눈을 감으며 생각했지. 어떤 꽁트 작가도 자신이 쓴 꽁트 속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단 걸 말야. 독자가 꽁트가 아니라고 하면서 책을 덮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거든. 행복감이 사라지면서 슬픔이 몰려왔지. 그러나 또 한편으론 희망이 엿보였어. 우연이란 그 사실 때문이었지. 내가 이렇게 우연하게 압사당하리라고 어떻게 생각했겠어. 결국 꽁트는 내가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이란 놈이 쓰고 있었어.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 따위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일이 일어 날 수 있는가 말야. 이것에는 어떠한 필연성도 인과성도 이성이니 과학적인 합리성이니 객관성도 없어. 그래서 분명하게 한 마디 하고 싶은 건, 내 꽁트에서 깊이나 진지함 따위를 잊어 달라는 것이지. 형식 따위도 너무 따지지 말란 것이지. 우연이고 파편이고 그저 똥이나 누면서 시간이나 때울 수 있는 존재로 보아 달라는 것이지. 좀 더 친근한 존재였으면 더 좋고 말이야.


그는 그렇게 죽었다. 아무도 그를 찾지 못했다. 그는 행방불명되고 만 것이다. 이 처럼 그의 꽁트는 필연이나 인과와는 거리가 먼 우연에 불과한 파편일 뿐이었다. 심지어 그의 죽음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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