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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53

[꽁트] 거시기를 위하여 거시기를 위하여 모년(某年) 모월의 어느 여름 전국을 강타한 태풍이 지나가자 그 작은 마을의 주민들이 서서히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주민이라고 해봤자 고작 200명 안팎이지만 놀랍게도 그들 모두는 졸부들이었다. 최근 마을 근처에서 발견된 세계 최대의 금광 때문이었다. 가난한 산촌 마을에 내려진 횡재라면 횡재였다. 자신들의 땅과 집 밑에서 금 덩어리가 솟아져 나와 적게는 수억에서 수 십억이 굴러들어 왔으니 갑작스러운 돈벼락이었다.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는 다소 이상스런 표현은 순박하던 촌사람들이 처음에는 그 돈벼락에 어리둥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개의 졸부들에게서 볼 수 있는 행태들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는 의미이다. 그들의 돈을 유혹하는 온갖 검은 마수들이 달려들면서 마을은 과거의 순수하고 순박했던 모.. 2008. 2. 16.
[꽁트]청국장의 맛 청국장의 맛 이 간단한 진리를 부모들은 왜 이다지도 모르는지 몰라. 식빵에 이렇게 치즈와 햄을 놓고 다시 식빵 한 조각을 올려먹는 것이, 포크로 돌돌 말아 쪽쪽 빨아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를 말야. 악취(?)가 나지도 않고 얼마나 좋아. 그리고 먹으면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설거지 따위의 노동이 필요 없어 시간을 유용할 수 있고 말야. 그런데도 우리나라 음식의 위대성만을 주입하려는 그 얼빠진 부모들이, 아니 모든 한국인들이 난 정말이지 싫어. 아주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음식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지고 케케묵은 것인지 몰라. 밥과 국그릇을 비롯해서 그 많은 반찬그릇들이 얼마나 공간적, 시간적으로 비효율적인가 말이야. 자원의 낭비는 물론이고, 이동.. 2008. 2. 13.
[꽁트] 바람의 신화 바람의 신화 K가 홀연히 사라져버린 건 여름방학을 일주일쯤 앞두고였다. 사회의 통념을 깨려고 부단히 온 몸으로 발버둥 쳐왔던(?) K이고 보면 방학을 앞두고 무단결석, 아니 행방을 알 수 없는 가출을 한 것이 처음에는 그다지 심각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패싸움으로 머리가 깨지고, 오토바이를 몰다 중상을 입고, 여자 친구 낙태를 시키고, 가출을 다반사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학교로 돌아왔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처음의 무던한 생각과는 달리 이번 가출은 그저 기우로만 여겨지지가 않았다. 정말이지 K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K의 사라짐은 말 그대로 완벽한 사라짐이었다. 집에도, 학교에도, 여자애들과 어울리는 클럽에도, 비디오방과 만화방에도, 그 어느 곳에서도 K.. 2008. 2. 4.
[꽁트] 꽁트 선언 꽁트 선언 글을 읽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탄한다. 그건 당연하다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글을 대체하는 수많은 매체들이 등장했고, 이제 글은 낡은 전축과 LP 레코드판처럼 시대와는 걸맞지 않다고들 한다. 글이 문학의 유일한 매체였을 때 문학은 문화 그 자체로서 인식되곤 했다. 그러나 수많은 매체들의 등장으로 문화의 영역이 확대되고 대중화됨으로써 이제는 문학이 문화의 하위 개념으로 저 한 구석을 자치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의문이다. 왜 짧은 꽁트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가? 단숨에, 가볍게 읽을 수 있고 부담 없이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꽁트가 왜 그 가치와 유효성을 인정받지 못하는가 말인가? 화장실에서 똥을 누는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인 꽁트가 왜 똥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할까? .. 2008. 1. 31.